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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맥콘도(McOndo) 세대의 새로운 문학적 감수성 / 이성훈 2007-08-29 / 15463   

맥콘도(McOndo) 세대의 새로운 문학적 감수성
-알베르토 푸겟의 『맥콘도』와 『말라 온다』를 중심으로

이 성 훈



1. 푸겟의 문학적 입장과 맥콘도


      알베르토 푸겟(Alberto Fuguet, 1964- )은 1990년대 이후 칠레 문학뿐만 아니라 라틴아메리카 문학에서 가장 주목받은 작가 중 한명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그의 작품세계와 문학적 입장은 이전 시기 라틴아메리카 문학이 가지고 있던 문학적 태도와 매우 차별적인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1990년대에 들어서 칠레 문학계에는 호세 도노소, 호르헤 에즈워드, 폴리 델라노,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등으로 대표되는 이전의 흐름과 차별되는 새로운 흐름이 나타난다. 이른바 칠레 문학사에서 “1950년 세대”, “1970년 세대”라 명명되는 이들과 차별되는 문학적, 이념적 성향을 가진 이 새로운 그룹은 하이메 코야르(Jaime Collar)에 의해 ‘새로운 칠레 서사’라는 용어로 문학적 세례를 받았으며, 알베르토 푸겟, 세르히오 고메스, 카롤리나 리바스, 안드레아 마투라나, 아르투로 폰타이네, 곤살로 콘트레라스 등이 이 경향의 대표적인 인물로 평가된다. 이후 이 ‘새로운 칠레 서사’라는 용어는 주로 90년대 이후 등장한 젊은 세대 작가들의 새로운 감수성과 인식의 태도를 표지하는 용어로 광범위하게 사용되기 시작했는데, 이들 세대가 지니고 있는 앞 세대와의 차별성을 가장 극명한 형태로 보여주는 작가가 바로 푸겟이다.

      푸겟은 창작활동을 호세 도노소와 안토니오 스카르메타의 문하에서 시작했다. 그러나 그가 경험한 에피소드는 푸겟 세대가 지닌 문제의식과 새로운 감수성을 더 이상 이전 세대가 감당해 낼 수 없음을 보여준다. 즉 도스토예프스키를 읽지 않고는 작가가 될 수 없다는 도노소의 질책에 대해, 푸겟은 오히려 찰스 부코브스키(Charles Bukowski)를 읽지 않고는 글을 쓸 수 없다고 말한 것이다. 이 에피소드를 마지막으로 푸겟은 호소 도노소 문하를 나오게 된다. 물론 이 에피소드는 서로 간의 문학을 바라보는 관점 차이에서 기인한 것이지만, 보다 본질적으로는 일상의 경험과 삶에 대한 태도에 있어 이들 세대 간에 큰 괴리가 존재함을 의미한다. 그 차이는 도스토예프스키와 부코브스키라는 두 작가가 상징적으로 의미하는 것만큼 그 격차가 크다고 할 것이다. 물론 이후 다시 도노소와 화해를 하게 되지만, 이들 간에 존재하는 문학을 둘러싼 입장의 차이는 부정할 수 없다.

      스카르메타와의 경험도 이와 유사하다. 80년대 후반 망명지 독일에서 귀국한 스카르메타 역시 그가 가지고 있던 붐세대에 대한 일정한 비판적 태도에도 불구하고, 푸겟은 그에게서도 세대간의 차이를 경험했다고 말하고 있다. 즉 스카르메타의 문하에서 그는 할아버지 같은 느낌으로 시작했다가, 아버지 같은 느낌을 가질 수 있다고 적고 있는데, 이는 스카르메타에 대한 그의 세대론적 진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스카르메타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첫 소설『말라 온다 Mala Onda』(1991)를 출판할 수 있었다.

      이러한 푸겟의 개인적인 경험은 푸겟을, 그리고 푸겟의 세대를 칠레 문학사에서 어디에 위치시킬 것인가라는 문제에 대해 상징적인 진술로 사용될 수 있다. 즉 호세 도노소로 대표되는 붐세대의 문학적 입장, 그리고 붐의 문학적 입장에 반기를 들었던 포스트 붐세대의 대표자인 스카르메타와의 차별성을 통해 푸겟과 그의 세대는 이전 세대의 문학적 패러다임과 전혀 다른 새로운 패러다임을 지닌 세대임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푸겟의 세대는 붐과의 차별성이라는 측면에서 포스트 붐세대와 친연성을 지닌 그룹이 아니라, 이 두 그룹간의 간극을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뛰어넘는 문학적 입장을 가지고 있다는 평가가 가능한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푸겟을 라틴아메리카 문학 논의지형에 있어 중요한 지점에 위치시키는 것이 바로 그의 맥콘도(McOndo) 론에 의해서이다. 이에 관해서는 뒤에서 상술하겠지만,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마콘도(Macondo)를 패러디한 이 용어를 통해 푸겟은 이전의 라틴아메리카 문학과는 다른, 그리고 이전의 일상과 차별되는 새로운 일상을 경험하는 새로운 감수성을 지닌 세대가 등장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맥콘도 논의를 통해 푸겟은 최근의 라틴아메리카 문학 논의에서 중요한 키워드로 작동하고 있다.


2. 붐소설과 마콘도(Macondo)

      푸겟이 주장하는 라틴아메리카 현실의 정합태로서 맥콘도라고 하는 개념을 이해하려면 먼저 붐소설에 대한 선 이해가 필요하다. 붐소설이 라틴아메리카를 대표하는 소설로, 그리고 마술적 사실주의가 라틴아메리카 현실을 형상화하기 위한 독창적인 소설미학으로 자리잡게 됨에 따라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마콘도 역시 라틴아메리카의 전형적인 공간으로 자리 잡게 된다. 환 룰포의 코말라, 오네티의 산타 마리아와 함께 라틴아메리카적인 삶의 질서가 유지되는 전형적인 공간이 된 마콘도는, 『백년 동안의 고독』의 명성과 함께 라틴아메리카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메타포로 기능하게 된다. 마술적 사실주의가 라틴아메리카를 대표하는 소설미학으로 자리 잡게 됨에 따라 붐세대의 소설 작품들이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정전으로 평가되고, 이제 라틴아메리카의 공간들은 마콘도화해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작품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공간에서는 논리적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낯선 것, 마술적인 것, 신비한 것들이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이 공간이 라틴아메리카를 대표하는 공간으로 자리 잡게 됨에 따라 라틴아메리카는‘마술적인 것이 편재하는, 서구인들이 일찍이 이성의 힘으로 파문했던 것들이 일상화한 공간이 되는 것이다. 이런 마콘도화된 라틴아메리카를 읽으면서, 서구인들은 그들이 배제했던 것에 대한 우월적 향수를 가지고 라틴아메리카를 타자화하고, 동일자로서 자신들에 대한 이성적 신뢰를 구축해 나가는 것이다.

      이제 서구의 독자들은 마술적이고, 진기한 현실에 매혹되었으며, 특히 상대적으로 쉬운 독서 과정을 통해 도덕적으로 서구가 제3세계에 대해 자행한 약탈과 착취, 저개발과 가난, 굶주림 등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온갖 초현실적인 사건과 인물들이 공존하는 상황을 통해서 보다 실감나게 전달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서구의 독자들에게 저개발은 그들의 즐거운 독서행위를 위해 필요한 조미료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독자층의 증가, 이에 따른 출판자본의 상업적 의도, 또 다른 한편으로 라틴아메리카를 마콘도화하여 타자화하려는 서구의 식민적 욕구에 의해 마술적 사실주의를 통한 라틴아메리카의 마콘도화는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이제 라틴아메리카는 실제의 모습이 아닌 마콘도라는 메타포에 의해 구성된 하나의 시물라크르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또 붐소설이 라틴아메리카 소설에 있어 하나의 정전화하면서 이러한 경향이 지속되어, 라틴아메리카 문화와 문학을 ‘마콘도화’하려는 요구들을 수용하여 이를 재생산해내는 그룹이 존재하게 된다. 물론, 이런 그룹의 생산물들을 철저하게 시장의 상업적 욕구를 수용하여 생산되어 소비된 것으로 간주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지만, 현실적으로 이런 경향의 작가들이 라틴아메리카적인 작가로 평가받고 상업적인 성공을 얻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다시 말해, 가르시아 마르케스에게 마술적 사실주의는 라틴아메리카적 전통의 창조적 계승이고 마콘도 또한 당대 라틴아메리카의 핍진적인 공간이지만, 이제 그의 에피고넨들에게는 시장을 위해 라틴아메리카를 마콘도화하는 과정을 통해 하나의 매너리즘으로 변질되게 되는 것이다. 또 이것을 통해 라틴아메리카 현실과 문화의 풍요로움을 담아내기 위해 사용되어진 마술적 사실주의는 라틴아메리카와 라틴아메리카 문화를 마콘도로 축소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이런 경향은 소설, 영화 등의 장르에서 뿐만 아니라 다양한 영역, 예를 들어 관광을 위한 원주민의 상품화, 민족적 이미지의 고착 등을 통해 재생산되는 것이다. 붐소설이 정전화함으로써, 마술적 사실주의 역시 처음의 치열한 현실 대응능력을 상실하고 신비적이고 이국적인 요소를 강화하는 쪽으로 귀결되게 된다. 이 과정 속에서 라틴아메리카 현실에 대한 메타포로 기능하던 마콘도 역시 현실 삶과의 연관성을 상실하고 상투적인 아이콘으로 변질되는 것이다.


3. 일상의 감수성으로: 포스트 붐의 문제의식

      붐세대에 대한 최초의 반발은 후에 포스트 붐 이라고 명명된 그룹에 의해 가장 먼저 제기된다. 많은 부분 붐세대 작가들과 함께 동시대에 작품활동을 했고, 또 단일한 미학적 스펙트럼으로 범주화하기에는 여러 가지 한계가 보이지만, 붐세대에 대한 일정한 반발이라는 점에서 그들의 주장은 세대 논쟁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음은 명확하다. 이들은 붐세대와 차별되는 새로운 감수성을 주장했는데, 이러한 새로운 감수성으로의 변화를 당대 라틴아메리카 사회의 변모와, 그들이 경험하는 일상의 변화 속에서 포착해 내고 있다.

      변화와 낙관의 시기라 할 수 있는 1960년대를 거치고 라틴아메리카 소설은 이제 일련의 민감한 시대사적 요구들과 직면해야 했다. 즉 68년 멕시코의 틀라텔롤코 광장 사건, 71년 쿠바 정부의 젊은 시인 에베르토 파디야 구속과 자아비판 사건, 73년 피노체트의 쿠데타에 의한 아옌데 정권의 붕괴 등과 같은 일련의 정치적, 문학적 사건을 거치면서 60년대의 분위기가 변화하게 된다. 이런 정치 사회적 변화를 통해 작가들은 현실의 갈등들을 보다 구체적으로 형상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게 되고, 이런 노력은 붐 작가들의 일정하게 저널리즘적 기법과 대중 예술 장르의 기법들을 소설 기법으로 차용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는 작가 자신의 변화된 창작태도 뿐만 아니라, 붐세대 작가들이 지니고 있었던 ‘어려운’ 텍스트에서 벗어나 독자대중에게 보다 쉽게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측면에서 기인한다.

      70년대에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른바 1940년대 생의 젊은 작가들에게는 ‘붐세대’는 반드시 극복해야 할 과제이자 짐이었다. 붐세대와의 단절적인 입장이냐, 아니면 연속적인 입장에서 포스트 붐세대를 보느냐에 따라 다소간 입장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붐 주니어’라는 세례명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들 ‘포스트 붐’ 세대에게 있어, 붐세대를 넘어서는 과정은 미학적인 면에서나 상업적인 면에서 하나의 전통을 세운 세대의 다음 세대가 맞부딪혀야 하는 필연적인 과정이었다

      포스트 붐 세대의 문학관은 우리들에게 〈일 포스티노〉의 원작자로 잘 알려진 안토니오 스카르메타의 글에 잘 나타나 있다. 이들 포스트 붐 세대는 그들 세대의 문화적 경험과 의식이 앞 세대와 차별된다는 입장에서 시작하여, 붐세대의 미학 정전에 대한 비판과 그들 세대의 새로운 감수성에 기반한 소설 미학을 주장하게 되는 것이다. 이들에게 있어 붐세대의 소설과 마술적 사실주의는 교과서에나 나오는, 붐세대가 극복한 사실주의에 기반한 지역주의 소설과 별 차이가 없는 고리타분한 것이었고, 그들이 일상에서 경험하는 직접적인 현실을 포착하지 못하는 화석화한 언어에 불과했다. 이처럼 라틴아메리카의 도시화에 따른 도시적 감수성을 지니고 있으며, 대중문화를 직접적으로 경험하고 자란 이들 세대의 감수성은 이전 세대와 다를 수밖에 없었고, 이 감수성을 표현하는 언어 역시 이전 세대와 구별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대중문화의 언어감각과 도시문화에 익숙해 있었고, 해서 붐세대의 언어와 마콘도로 대표되는 공간, 그리고 마술적 사실주의는 그들에게 극복해야 할 낡은 문학적 유물이었던 셈이다. 따라서 포스트 붐세대는 대중문화, 도시 공간과 도시 일상문화의 적극적인 수용 등을 통한 새로운 감수성을 지닌 젊은 등장인물들의 사적 세계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 것이다. 일상의 감수성을 통해 소설을 쓰고자 한 이들 세대에게 있어, 일상을 넘어서는 초월적인 어떤 것을 추구하는 붐세대의 소설미학과 소설 공간은 더 이상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그러나 이들 세대는 붐세대와 차별되는 소설적 성취를 이루지 못하고, 붐의 대가들의 그늘에 가려 자신들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드러내지도 못한다. 결국, 붐세대와 차별되는 감수성을 지닌 그룹이 성장하고 있다는 것은 보여주었지만, 아직 붐세대들의 문학적 권위와 마콘도에 익숙해진 독자들을 설득해 낼만한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소설 미학을 갖지 못한 한계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들 세대의 인정투쟁이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사실은 이후 등장하는 세대들이 이들에게 대립각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붐세대와 차별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잘 알 수 있다.


4. 마콘도(Macondo)를 넘어 맥콘도(McOndo)로

칠레 산티아고의 맥도날드      이러한 붐세대에 대한 인정투쟁을 가장 상징적으로, 그리고 상업적으로 시도한 사건은 바로 1996년 알베르토 푸겟과 세르히오 고메스가 『맥콘도 McOndo』(1996)라는 이름으로 스페인어권의 35세 미만 17명의 단편소설집을 출판해 낸 것이었다. 이들은 라틴아메리카 소설의 신성화된 영역이었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마콘도를 패러디함으로써 새로운 세대가 성장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그리고 그들 세대의 방식으로 드러낸다. 책의 서문에서 이들은 이 책이 등장하게 된 일화를 설명한다. 미국의 라틴문화 열풍 속에서 한 유명잡지가 라틴아메리카 문학 특집을 마련하고, 세 명의 젊은 작가들에게 작품을 의뢰하지만, 나중에 그 중 두 명의 작품이 편집자에 의해 거부된다. 그리고 그 거부의 이유로 그들 작품이 마술적 사실주의를 결여하고 있으며, 이런 작품은 1세계 어디서나 쓰여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또한 푸겟이 경험한 아이오아 대학의 세계 작가워크숍에서의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마콘도적 이해에 대한 거부감은 결국, 그들에게 허구적인 마콘도의 세계가 아닌, 그들이 실제로 경험하고 있는 현실의 세계 즉 맥콘도(McOndo)의 세계를 구상하기 시작하고, 이를 단편소설선으로 엮어내게 된 것이다.

      호아킨 브루네르에 의하면 마콘도가 라틴아메리카의 신비로움을 설명하는 메타포가 되었고, 그것의 본질이 이성이나 근대의 정치, 과학에 의해서도 범주화할 수 없는, 우리가 알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혹은 우리를 놀라게 하는 모든 것을 암시적으로 명명하기 위한 암호가 되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마콘도는 서구와 차별되는 타자의 공간으로 각인되었고, 이성중심적 세계관의 신비주의적 피신처이거나 혹은 소비적 기호품으로 전락하게 된는 것이다. 이러한 라틴아메리카 이해에 따라, 이제 마콘도는 더 이상 라틴아메리카 현실의 대표하는 공간이 될 수 없고, 마술적 사실주의 역시 이 구체적인 현실을 포착하기에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라틴아메리카는 서구와 차별되는 공간이 아니라, 동질적인 소비문화와 정보 유통의 동질적인 스피드를 경험하는 공간인 것이다. 즉 맥킨토시와 맥도널드와 콘도미니움이 공존하는 현실인 것이다. 이제 이들이 거주하고 있는 공간은 노란 꽃비가 끝임없이 내리고,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다니고, 초콜릿을 먹고 하늘로 날아오는 신부가 사는 공간이 아니라, “고속도로와 지하철, 케이블 티비, 쓰레기로 가득 찬, 거대하고 오염이 심각한 인구 과잉의 실제 라틴아메리카 도시”, 즉 맥콘도인 것이다.

      대략 1960년 무렵 출생자들로 구성된 맥콘도 그룹의 문제의식은 기본적으로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마콘도에 대한 풍자를 통해 드러난다. 즉 라틴아메리카란 무엇이고,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에 관심을 환기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들 스스로 인정하듯이, “라틴아메리카의 문화나 습속에 있어 이국적이고 다채로운 성격을 무시하지 않지만, 이것들로 환원시키는 입장, 예를 들어 라틴아메리카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콧수염을 기르고 챙이 긴 모자를 쓰고 나무에서 산다고 하는” 입장에는 동의하지 않는 것이다. 그들 세대에게 있어 라틴아메리카는 맥도날드와 매킨토시 컴퓨터가 있는 소비와 소통에 있어 ‘전지구화된’ 공간인 것이다. 또 붐세대들이 마콘도를 통해 라틴아메리카적 정체성을 추구했다면, 이제 맥콘도 세대에게는 개인적 정체성의 테마가 가장 중요한 것으로 자리 잡게 되고, 개인적 현실과 사적 공간이 주된 배경으로 등장하게 된다. 이들 세대와 유사하게 포스트 붐세대 역시 대중문화와 도시문화 경험을 통해 새로운 감수성을 주장했을 지라도, 국가적 정체성이라든가 현실의 갈등에 일정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반면에, 이들 세대는 탈국가주의(posnacional)적인 소비문화와 그 소통의 스피드에 보다 깊게 침윤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푸겟은 맥콘도라는 엠블렘을 통해 자신들의 세대가, 마콘도와 차별되는 문화적 경험을 하고 있으며 이런 차별적인 문화적 경험들은 자연스럽게 그들 나름의 문학적 형식의 모색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맥콘도 세대의 문제의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980년대 이후 라틴 아메리카 지역에서 가속화해온 신자유주의적 경제 변화와 이에 따른 일상의 경험 변화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5. 『말라 온다』와 『맥콘도』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푸겟은 1990년대 이후 라틴아메리카 문학에서 새로운 감수성을 보여주고 있는 대표적인 작가다. 그의 대표작인 『말라 온다』와 세르히오 고메스와 공동으로 펴낸 『맥콘도』에 실린 그의 단편 「진실 혹은 결과」에는 그의 이러한 문제의식들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먼저, 『말라 온다』는 1980년 9월 피노체트의 권위주의 정부가 제출한 헌법 수정안을 놓고 칠레 사회가 극심한 대립과 혼란을 경험하고 있던 시기를 배경으로 하여, 마티아스 비쿠냐라고 하는 17세 청소년이 경험하는 산티아고의 일상과, 그 일상 속에서 경험하는 정체성의 혼란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일종의 성장소설로 읽혀지는 소설 구조 속에 드러나고 있는 당대 칠레 사회의 젊은이들이 경험하고 있는 극심한 정체성의 혼란과 정치적 무의식은 이전 시기 칠레 서사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경험을 보여주고 있다. 시간적 배경으로 등장하고 있는 국민투표는 정치적 갈등을 다루는 소재로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젊은이들의 정치적 무의식과 좌절의 깊이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사용된다. 이들에게 중요한 일상은 정치적 담론의 영역이 아니라, 개인적 욕망의 해소를 위한 일상적 욕망의 영역에 위치한다.

      주인공 마티아스는 밤마다 통행금지가 실시되는 산티아고의 밤을 배회한다. 혼자이든지 혹은 친구들과 함께, 아니면 늦은 밤 바에서 만난 여자와 술, 마약, 음악, 섹스에의 탐닉을 통해 일상의 무기력함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이러한 현실도피적 태도는 자신의 가계를 둘러싼 위선, 특히 자신들이 유대인인 것을 숨기는 조부모, 경제적으로 성공한 자본가 계층이지만 도덕적으로 타락한 부모님들과의 소통 단절을 통해 그는 자신의 정체성이 고립되어 가는데서 보다 극단화 된다. 이런 마티아스가 겪는 개인적 방황은 자신의 주변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도덕적 위선, 정치적 불신을 통해 당시 칠레 사회에 내연해 있던 냉소조의를 체화한 젊은 세대의 자전적 기록이라 할 것이다. 결국, 주인공이 경험하는 견딜 수 없는 일상의 무기력함과 이를 해소하기 위해 매일 처방하는 술, 마약, 섹스 등이 남기는 견딜 수 없는 정신적 후유증은 푸겟 세대가 경험하고 있던 삶의 형식과 문제의식들을 압축적인 방식으로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칠레 현실에 대한 부담과 불편함은 소설 도입부에 등장하는 브라질 여행과, 브라질에서 만났던 여자, 브라질 거리, 술집 등에 대한 지속적인 동경을 통해서도 강도 깊게 드러나고 있다. 이런 여행과 칠레 외부에 대한 동경은 그의 「진실 혹은 결과들」에도 그대로 등장하고 있다. 「진실 혹은 결과」에서도 칠레에서 도망처 나와 미국남부를 정처 없이 떠돌고 있는 한 칠레 젊은이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등장하고 있다. 푸겟의 소설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있는 여행의 모티브는 칠레 소설의 주된 모티브이지만, 이 세대 작가들에게 보다 강렬하고 빈번하게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이들이 자신의 고향인 칠레로부터의 이탈을 꿈꾸게 되는 결정적인 이유는 명확하게 칠레사회라는 문맥 속에서만 해석되는 것은 아니다. 앞서 지적했듯이 『말라 온다』에서는 피노체트가 제안한 헌법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이 드러나 보이기는 하지만, 주된 갈등은 개인을 둘러싸고 있는 일상의 문제, 가족사를 둘러싼 개인적인 문제에서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말라 온다』에서 보여주는 부모세대와의 갈등, 「진실 혹은 결과들」에서 보이는 부인과의 갈등, 앞 작품에서 보이는 학교에의 부적응, 후자의 작품에서 보이는 자기 직업에의 부적응, 그리고 주위 사람들과 관계의 단절 등 현실에 대한 적응력을 상실한 모습이 바로, 푸겟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주된 특징이다. 이런 측면에서 푸겟의 작품들은 쿠데타 이후 급격하게 진행되는 칠레의 자본주의화가 파생한 사회관계의 일정한 훼손이라는 맥락을 잘 드러낸다고도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정치적 관심 없이 오직 경제적 성공에 집착하는 부모세대, 그리고 부모세대가 보여주는 도덕적 위선은 경제적 부유함을 통해 일상의 안락함을 보장받았을 젊은 세대에게 고스란히 삶의 부하로 남겨지게 되는 것이다. 이들 세대의 고민이 보다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문제에 대한 고민으로 확장되어 가지 못하고, 실존적인 층위에 머문다는 점에서는 푸겟의 작품이 갖는 한계를 지적할 수 있겠지만 당대 젊은이들의 일상과 그 일상의 소비문화를 속도감 있게 그려냈다는 점에서 이전 세대의 작품이 보여주지 못한 새로운 감수성의 포착으로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푸겟의 작품은 1990년대 이후 진행된 칠레의 급격한 도시화, 신자유주의적 경제구조의 강화 등을 배경으로 주로, 1980년대에 청소년기를 거친 도시의 청년 그룹이라는 구체적인 사회그룹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이들은 구체적인 개인적 문제 앞에서 절망하고 동요하고, 또 무력감을 느끼면서 서로 사랑하고, 약물을 하는 그런 세대들이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이들의 이러한 동질감이 앞 세대들의 문제의식인 “우리들은 누구인가”라고 하는 라틴아메리카 대륙의 정체성, 라틴아메리카 인들의 정체성을 묻는 방식으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철저하게 이들의 고민은 “나는 누구인가”라고 하는 개인적이고 실존적인 문제의식에 맞추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의 변화는 1990년대 본격적으로 진행된 신자유주의적인 경제정책의 결과로 집단적 유대관계가 아닌, 경쟁에 의존한 개인의 능력이 주된 준거틀로 기능하고 있는 칠레 사회에서 개인이 느끼는 피로도가 강력하게 증가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도 읽혀진다. 정치적 관심과 사회적 연대보다는 이제 시장의 규칙에 의해 각 개인들의 삶의 논리와 일상의 경험들이 변화되었고, 이런 변화 속에 적응하지 못한 젊은 세대의 일상이 소비문화에의 과장된 함몰과, 정치적 무관심이라는 형식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푸겟의 작품은 극단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데, 『말라 온다』라고 하는 작품을 두고 “쓰레기“라고 평한 칠레의 비평가가 존재하기도 할 정도로 칠레 문단 내부에서 뜨거운 쟁점을 제공한 것이다. 다시 말해 좌파 진영의 비평가들은 여피족의 개인적 소외에 면죄부를 준 작품으로 부정적인 평가하고, 우파진영의 비평가들은 피상적이고 경박스러운 작품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이러한 논쟁을 통해 푸겟은 90년대 이후 칠레의 새로운 서사를 이끌어 가는 주목할 만한 작가로 자리매김 되었고, 그의 작품들은 젊은 세대의 새로운 감수성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평가 받게 된다.


6. 맥콘도 세대의 문학사적 의미

      지금까지 알베르토 푸겟의 작품세계를 간단하게 살펴보았다. 칠레의 90년대 이후 대표적인 작가로 자리매김한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그가 사용하는 라틴아메리카 현실을 설명하는 틀로서 맥콘도라는 개념을 구체적으로 분석해 보았다. 붐세대의 대표적인 인물인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작품세계를 설명하는 메타포로 사용되어지는 마콘도라는 공간에 대한 패러디로서 맥콘도가 의미하는 바는 결국, 새로운 세대의 문학적 위치를 마련하고자 하는 세대간의 인정투쟁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보다 본질적인 것은 1960년대와는 달리 서구와 동질적인 문화적 경험을 하는 세대들이 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들의 새로운 문화적 경험들을 담아내기 위해서는 새로운 문학적 형식이 필요하다는 것이 푸겟과 그들 세대의 입장이라 할 것이다.

      500년 전 정복자들이 원주민들에게 색색의 유리구슬을 나누어 주면서 환심을 샀듯이, 500년이 지난 지금 그 후손들이 마술적 사실주의라는 또 다른 유리구슬을 보여주면서 정복자들의 은혜를 갚고 있다는 오스카르 한의 역설적인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마술적 사실주의와 라틴아메리카의 마콘도화는 일정하게 부정적인 혐의를 지울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선배 세대의 문학적 태도에 대한 치열한 문제제기를 통해 푸겟과 그의 세대는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새로운 의미를 포착해 내고 있다.

      물론, 이들 세대의 작품이 가지고 있는 질적으로 평가절하하면서 이들 작품의 유행을 또 다른 상업주의의 마켓팅 전략으로 폄하하는 경향도 분명 존재한다. 즉 1990년대 ‘새로운 칠레 서사’의 성립을 상업적인 맥락의 강화라는 측면에서 이해하는 경향이 그것이다. 1990년대 피노체트의 권위주의 통치하에 있던 사회 분위기가 점차 변화해 가면서, 이런 변화와 맞물려 문화의 영역에서도 일정한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플라네타(Planeta) 출판사가 비블리오테카 델 수르(Biblioteca del Sur)라는 시리즈를 통해 국내 소설들을 집중적으로 출판하면서 이런 변화는 더욱 가속화했는데, 이런 변화는 그리할보(Grijalbo), 몬다도리(Mondadori) 등 대규모 출판사가 가세함에 따라 더욱 두드러졌다. 이제 새로운 출판 공간과 독서시장에서 젊은 작가들이 대중적인 인기를 획득하게 된다. 이런 맥락 속에 등장한 ‘새로운 칠레 서사’의 붐은 출판자본에 의한 상업적인 현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에 대해 결과적으로 생존하는 것은 세대가 아닌 개별적인 작품들이라는 전제에서, 푸겟의 작품은 1990년대 이후 세대의 문학관과 새로운 감수성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논의 지점에 위치한다는 점에서 주목을 요한다고 할 것이다.

      또한 90년대 ‘새로운 칠레 서사’의 상업적 성공이 정치 지형의 변화에 따른 출판 자본의 공세적 운영이라는 측면이외에도, 이들에 의해 선택된 작품들이 주로 권위주의 정권의 민간정부로의 협약에 의한 이행이라고 하는 정치적 합의를 전복할 불온한 텍스트들보다는 소비재로서 의미를 가진 작품들이 선호되었다는 점도 지적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판매량이라고 하는 상업적 지표아래, 이데올로기의 문제나 정치의 문제들은 이제 과거의 문제들이 된 것이다. 푸겟과 그의 세대에 대한 비판 역시 이러한 문제틀에서 자유롭지 않다. 또 이들 세대의 작품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세대적 일관성과 개별적 정체성을 일정부분 상실하고 있음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들 세대의 문학 작품에 대한 대립적이거나 혹은 유보적인 평단의 평가에도 불구하고 이들 세대가 보여준 문제의식은 온전하게 평가되어야 한다. 끝없는 자기 성찰과 단절의 경험을 통해 자신의 광휘를 발해온 라틴아메리카 문학은 이들 세대의 또 다른 단절의 진통을 경험함으로써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그 진통과 상처가 의미 있는 산통이 되리라는 신뢰의 중심에 그와 맥콘도 세대의 작품이 위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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