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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르반테스와 16-17세기 스페인 / 바산타 2003-10-22 / 6895   

세르반테스와 16-17세기 스페인

앙헬 바산타 / 현중문 옮김



     세르반테스는 스페인의 역사와 문화에 있어서 중요한 시기였던 16-17세기에 걸쳐 살았다. 역사를 보면, 세 명의 군주를 거치는 동안 스페인 제국은 영광과 함께 몰락의 첫 증후가 나타났다. 세르반테스는 카를로스 1세 치하(재위 1517-1556) 말기에 태어나, 펠리페 2세(재위 1556-1598) 때에는 외세에 대항하여 레판토 해전에 참가했으며, 펠리페 3세(재위 1598-1612) 시절에는 붕괴한 스페인 사회와 쇠퇴해가는 제국을 목격했다. 문화와 예술 분야에서 16세기 르네상스와 17세기 바로크는 스페인 문학의 “황금세기”였다. 세르반테스의 삶과 작품보다도 르네상스의 이상에서 바로크의 환멸로 이행 과정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과 삶은 없을 것이다.


1. 스페인 쇠퇴기에 희생된 삶

     우여곡절이 많았던 세르반테스의 생애에 대해서 우리가 아는 바는 많지 않다. 세르반테스는 마드리드에서 조금 떨어진 대학도시이자 출판 중심지였던 알칼라 데 에나레스(Alcalá de Henares)에서 태어났다. 추측컨대, 1547년 9월 29일이었을 것이다. 여러 도시에서(아마 마드리드나 세비야 같은 도시에서) 가난한 유년시절을 보내고, 20세가 조금 넘은 나이에 로마로 건너가서 아쿠아비바(Acquaviva) 추기경 밑에서 일했다. 이때 이탈리아를 두루 여행했고, 찬란한 르네상스 문화에 심취했다. 그리고 스페인 군에 입대했고, 1571년에는 레판토 해전에 참가하여 용감하게 싸웠다. 이 전쟁에서 기독교 세력은 큰 승리를 거두었고, 터키[이슬람] 세력은 지중해에서 힘을 잃게 되었다. 그러나 왼팔에 부상을 입은 세르반테스는 결국 외팔이가 됨으로써 군인으로 출세하려던 꿈은 물거품이 되었다. 세르반테스는 이후에도 여러 전투에 참가했다. 그러나 1575년 스페인으로 돌아가던 도중 터키 해적에게 붙잡혀 알제리에서 5년 동안(1575-1580) 포로생활을 했다.

     알제리 지하 감방에서 보낸 포로생활을 기점으로 세르반테스의 생애는 두 단계로 구분된다. 포로생활을 하면서 영웅심에 불타는 젊은이의 꿈은 사라졌고, 이후 여러 가지 문제에 직면하면서 환멸을 경험했다. 사모라 비센테(Zamora Vicente)의 말처럼, 포로생활 이후 세르반테스는,


젊은 시절의 미학관과 정치관이 침몰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이태리풍이고 거침없는 가르실라소(Garcilaso)의 세계 대신에 공고라(Góngora)의 바로크적 왜곡이 솟아나는 것을 보았고, 눈에 선연하게 떠오르는 이태리의 찬란한 도시 ―제노바, 피렌체, 로마― 대신에 황량하고 가난에 찌든 카스티야 지방의 마을 ―아르가마실랴, 페드로 무뇨스, 킨타나르― 을 보았으며, 에라스무스의 사상이 휩쓸던 도시 알칼라 대신에 종교회의가 열린 트리엔트를 보았으며, 레판토 해전의 승리 대신에 무적함대의 패배를 목격했다.



     세르반테스는 마드리드에서 가족을 만났지만, 집안은 이미 가난에 찌들리고 있었다. 그후 에스키바스(톨레도 지방)에서 19살 연하의 카탈리나(Catalina de Salazar y Palacios)를 만나 결혼했다. 군인의 길을 모색했으나 여의치 않아 다시 문학의 길로 접어들었다. 1585년 목가소설 『갈라테아』를 출판했고, 연극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려고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앞길이 막막한 세르반테스는 세비야로 건너가 무적함대의 군수품 담당관을 거쳐 세금징수원으로 일했다. 그러나 세금을 예치해놓은 은행이 파산함으로써 손실을 변제할 수 없었기 때문에 불운한 세르반테스는 공금 횡령죄로 감방 신세를 지게 되었다.

     이 사건 이후 세르반테스는 스페인 왕실이 임시 체류하고 있었던 바야돌리드로 이사했다. 1605년에 출판한 『돈키호테』는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집 앞에서 어떤 남자가 피살된 이상한 사건 때문에 다시 한번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고, 게다가 재판 과정에서는 집안 여자들이 방종한 생활을 했다는 증언을 들어야만 했다. 1606년 세르반테스는 스페인 왕실을 따라 마드리드로 이사했고, 그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던 경제적 궁핍 속에서도 창작에 전념했다. 말년에 『모범소설』(1613), 장시 『파르나소 여행』(1614), 『8편의 희곡과 8편의 막간극』(1615) 그리고 『돈키호테』2권(1615)을 출판했다. 『돈키호테』2권이 성공을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세르반테스는 생애의 마지막 순간까지 경제적 궁핍을 벗어나지 못했다. 죽기 전 몇 달 동안 『페르실레스와 세히스문다의 모험』(1617년 유작으로 출판)을 집필했으나 교정을 볼 수는 없었다. 세르반테스는 영국의 문호 셰익스피어가 죽은 바로 그날, 1616년 4월 22일 마드리드에서 영면했다. 죽기 직전에 쓴 『페르실레스...』의 헌사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죽음의 고뇌를 안고 말등자(鐙子)에 발을 올려놓은 저는 [...] 살아야겠다는 욕심으로 연명하고 있습니다”.

     세르반테스의 인생은 물질적으로는 가난했으나 인간과 삶에 대한 인식과 경험이라는 면에서는 유복했다. 세르반테스는 인내심 있고 신중하고 상냥하며, 인간 본성을 깊이 이해한 전형적인 인물로 남아 있다. 마지막으로, 영웅적 이상에서 환멸로 이행한 세르반테스의 생애는 스페인의 운명과도 같았다. 그리고 그의 작품은 르네상스 이상주의에서 바로크 염세주의로 이행을 보여줌으로써 16세기와 17세기를 종합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유명한 세르반테스 연구자, 마누엘 아사냐(Manuel Azaña)는 이렇게 쓰고 있다.


그 시기 스페인 군주의 투구는 돈키호테가 시험해보려고 소중하게 보관했던 마분지 투구였다. 그것이 착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유용하다고 믿고 싶었다. 이는 스페인의 수많은 가치와 마찬가지로―그 가치가 구식이건 현대적이건― 순전히 외견상으로만 권위가 있었으며, 사용하지 않을 때만 존재하는 것이었다. 알론소 키하노는 돈키호테가 되기 위해 비판의식을 버려야만 했다. 따라서 세르반테스의 인생은 스페인 쇠퇴기에 희생된 삶이었다.




2. 세르반테스와 황금세기 스페인 사회

     시대에 따라서 몇몇 작가들의 작품은 당시의 사회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되기도 한다. 17세기 로페 데 베가의 극작품이나 19세기 페레스 갈도스의 소설이 그렇다. 세르반테스의 작품도 마찬가지다. 특히 『돈키호테』 속에는 당시의 스페인 사회의 모든 면이 담겨있다.

     700명이 넘는 다양한 계층의 인물이 등장하는 『돈키호테』는 펠리페 치하의 스페인을 종합적으로 보여준다.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에 이르는 스페인 사회의 이미지이며, 당시의 문화적․정신적 태도의 요약이다. 다마소 알론소(Dámaso Alonso)가 말했듯이, 『돈키호테』속에는 스페인 사회 전체와 그 “본질”까지도 담겨있다. 『돈키호테』 속에는 상층 귀족 계급부터 미천한 시골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회 계급이 등장한다. 당시의 총체적인 역사상 속에는 바로 잡고 극복하지 않으면 안될 갈등과 불의와 상처로 가득찬 사회가 드러난다. 그러므로 이 소설은 근대 세계의 탄생을 예고하는 여러 유토피아론 가운데 하나로 여겨지기도 했다.

     『돈키호테』 속에 나타난 황금세기 사회는 피라미드 구조이다. 상층에는 왕이 있고, 하층에는 농사꾼, 목동, 마부, 하인 그리고 평범한 마을 사람들이 있으며, 그 중간에는 고도로 성층화된 다양한 계층, 즉 다양한 귀족계급이 존재한다. 『돈키호테』속에는 군주 세 사람이 등장하는데, 세르반테스는 이들 치하에서 살았다. 카를로스 1세와 그의 아들 펠리페 2세에 대한 암시는, 오스만터키에 맞서 지중해에서 해전을 치렀고 나중에는 포로가 되었던, 대위의 일화(I, 39-41)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펠리페 3세는 무어인을 추방령을 공포한 왕인데, 리코테 가족 이야기에서 두루 언급된다.

     귀족 계급은 다시 부유한 작위, 시골 귀족(hidalgo), 주인을 섬기는 종자로 나뉜다. 상층 귀족에 속하는 인물은 부유한 리카르도 공작(도로테아와 루신다를 유혹하는, 페르난도의 아버지) 그리고 돈키호테와 산초를 성(城)으로 초대한 공작부부이다. 이 귀족들의 행동은 모범적이지 않다. 부유한 기사계급의 인물로는 카르데니오(루신다의 구애자), 돈루이스(대법관의 딸인 도냐 클라라의 동반자), 가스파르 그레고리오(리코테의 딸 아나 펠릭스를 사랑하는 인물)가 등장한다. 유복한 귀족은 바르셀로나의 기사 돈안토니오 모레노와 같은 호인으로부터 산적(山賊) 로케 기나르트, 평온하고 안락한 삶을 영위하는 시골 귀족 돈디에고 데 미란다(녹색 외투의 기사)에 이르기까지 천차만별이다.

     일반적으로 시골 귀족은 약간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는데, 알론소 키하노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키하노의 재산목록 1호는 귀족 가문과 순혈(純血)이다. 그러나 재산이 없어 기사가 될 수 없었다. 이는 기사로망스를 사기 위해 상당한 양의 토지를 팔았다는 데서 증명된다. 시골 귀족은 특권계급의 마지막 고리로, 세금이 면제되었으며 당면한 경제적 궁핍보다는 사회적 관습(예를 들면 명예)에 더 관심이 있었다. 그러나 알론소 키하노는 세상에 정의를 회복하기 위해 편력기사가 되기로 작정하고, 돈키호테가 되며, 자신의 문학적 운명의 주인이 된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 다시 만차 지방의 시골 귀족으로 되돌아와 “나는 이제 만차 지방의 키호테가 아니라, 알론소 키하노요. 착하게 살았다고 해서 ‘선한 알론소 키하노’라 했지요”(II, 74)라고 말한다. 따라서 죽은 사람은 돈키호테가 아니라 알론소 키하노였다는 사실에 주의해야 한다. 소설의 등장인물 돈키호테는 결코 죽지 않을 것이다.

     또 하나의 시골 귀족은 종자(從者)이다. 원래, 종자라는 말은 기사를 따라다니며 무예를 연마하는 사람을 일컬었으나 16세기에 이르러서는 기사를 섬기거나 귀부인을 수행하는 가난한 시골 귀족을 지칭했다. 돈키호테와 겨루었던 비스카야인이나 공작 부부 저택의 하녀장 도냐 로드리게스의 죽은 남편이 이에 속한다.

     평범한 가정의 선남선녀가 사회적으로 출세할 수 있는 세 가지 직업은, 『돈키호테』에 수록된 속담을 인용하면, “교회, 바다, 왕실”이다. 실제로 문(文)과 상(商)과 무(武)는 페레스 비에드마 형제들의 출세길이었다. 이들 형제 가운데 맏형은 무(왕의 친위대)를 선택했고 ―작품에서는 포로 이야기(I, 39-41)의 주인공이자 화자로 등장한다―, 둘째는 상업을 선택하여 아메리카로 건너갔다. 그리고 막내는 살라만카 대학(산손 카라스코 학사도 여기서 수학했다)에서 공부를 마치고 판관(判官)이 되어 멕시코 지원(支院)으로 부임한다. 당시 “교회”라는 말은 모든 종류의 연구를 포함하고 있었지만, 신학을 최고의 학문으로 여겼다. 엄격한 의미에서, 성직자 계급은, 돈키호테의 이웃이자 친구인 페로 페레스 신부로부터 톨레도의 참사원과 다양한 교단의 수도승에 이르기까지 작품 곳곳에 등장하며, 돈키호테 자신은 토보소에 도착했을 때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겼다. “산초야, 우리 앞에 있는 건 교회로구나.”(II, 9)

     서민을 대표하는 인물은 만차 지방의 전형적인 농부 산초 판사이다. 돈키호테는 산초를 종자 신분으로 격상한다. 그럼으로써 산초는 돈키호테의 시적 환상 영역으로 진입한다. 이 두 사람은 상보적 존재이다. 물질적 가치에 집착하는 산초와 허황된 이상을 추구하는 돈키호테는 긴밀한 상보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물질주의적이며 동시에 이상주의적인 인간의 복잡성을 완벽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산초 판사는 순수한 시골 사람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산초는 타고난 상냥함과 양식(良識)과 서민적 지혜를 이용하여 분쟁을 해결하고, 적절하게 속담을 인용하며 포도주 감식가로서 뛰어난 자질을 보인다.

     최하층 계급인 평민은 농부, 목동, 양치기, 상인, 객주, 순경, 군인, 포로, 마부, 이발사, 하인, 매춘부, 갤리선 죄수, 피카로, 순례자, 산적, 무어인, 꼭두각시 놀이꾼 등 다양한 모습의 군상으로 묘사된다.

     요약하면, 『돈키호테』는 모든 사회계급을 포함하고 있다. 매우 광범위한 영역의 직업과 직종을 보여주며 민중의 신앙과 관습에 대한 완전한 파노라마를 제시한다. 당시 스페인이 직면했던 가장 중요한 갈등도 작품 속에 담겨 있다. 계급 사회의 정치 사회적인 문제 그리고 정통 기독교도와 개종한 기독교도의 차별은 산초가 누차에 걸쳐 순혈을 변호하는 데서 엿보인다. 외국과 전쟁, 지중해까지 진출한 오스만터키의 위협은 포로 이야기와 아나 펠릭스와 가스파르 그레고리오의 운명에서 찾아볼 수 있다. 무어인 추방령으로 야기된 비극은 리코테 가족의 방랑생활에서 나타나고, 카탈란 지방에서 성행했던 산적은 로케 기나르트 일당에서 엿볼 수 있다. 또한 당시의 관습과 습관도 기록되어 있는데, 객줏집에서 책을 읽거나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관습이 일례다.(이런 식으로 중편 소설 “어리석은 호기심”도 읽혀지며, 같은 객줏집에서 포로는 자신의 얘기를 한다) 그리고 살라만카 대학과 같은, 명성과 권위를 자랑하는 일류 대학과 시구엔사 대학(신부 페로 페레스가 수학했다), 오수나 대학(바라카리아 섬의 의사 페드로 레시오 박사가 공부했다)과 같은 형편없는 하류 대학도 기록되어 있다. 또한 코르도바 신발의 명성, 마드리드의 포도주, 시에라 데 과다라마의 북(紡錘)과 같은 흥밋거리도 작품 속에서 언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