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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르반테스와 『돈키호테』 / 바산타 2003-10-22 / 9406   

세르반테스와 『돈키호테』

앙헬 바산타 / 현중문 옮김



     『돈키호테』 1권과 2권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소설로 꼽힌다. 앞으로 논의하겠지만, 기법적인 면에서 보면 이 작품에는 허구적 저자가 몇 명 등장한다. 무어인 역사가 시데 아메테 베넨헬리, 아랍어로 된 원본을 서반아어로 옮긴 무어인 역자, 그리고 제 2의 저자로 소개되는 세르반테스가 그들이다. 그러나 이 간략한 입문서에서 가장 먼저 언급해야 할 사항은 『돈키호테』가,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을 독자 즉 만차 지방의 시골 귀족 알론소 키하노의 이야기라는 점이다. 20세기 초, 루벤 다리오(Rubén Darío)와 우나무노(Unamuno)는 돈키호테에 열광한 나머지 성자(聖者)라는 칭호를 붙였는데, 그 후 살리나스(Pedro Salinas)는 돈키호테를 독자의 수호신이라고 했다.

     실제로 “길거리에 버려진 종이 쪼가리까지도 주워 읽기를 좋아했던”(I, 9)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라는 인물을 통해 이상적인 독자를 창조해냈다. 알론소 키하노는 기사 로망스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재산 관리는 뒷전이었고, 나중에는 읽고 싶은 책을 구입하려고 전답까지 팔았다. 그리고 독서를 하면서 뜬눈으로 매일 밤을 꼬박 세웠다.


그래서 잠은 부족하고 독서는 과다하여 그[알론소 키하노]의 뇌는 말라버리고 올바른 판단력을 잃게 되었다. [...] 그리하여 그가 읽은 황당무계한 이야기가 모든 진실이라고 믿었고, 실제 세상의 이야기도 그런 이야기보다 더 진실된 것은 아니라고 믿게 되었다.(I,1)


     게다가 알론소 키하노는 책에서 읽은 것을 모두 사실이라고 믿고 실천에 옮기기로 결심한다. 이리하여 “만차 지방의 돈키호테”가 탄생했다. 알론소 키하노는 기사 로망스의 영웅들을 모방하려고 편력기사가 되었다. 따라서 돈키호테는 기사 로망스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활약상이 담긴 책에서 영원히 존재하게 되었다.


1. 『돈키호테』는 어떻게 탄생했는가?

     몇몇 『돈키호테』 연구자들은 세르반테스가 처음에는 『모범소설』과 같은 형태의 단편소설을 쓰려고 생각했다고 주장한다. 다른 연구자들은, 이와 정반대의 명제, 즉 세르반테스는 처음부터 장편소설을 쓸 계획이었다고 반론을 편다. 이미 오래 전에 가오스(Vicente Gaos)는 두 주장 가운데 어느 한 편을 배타적으로 옹호하는 것은 밤하늘의 별을 세는 일과 마찬가지로 무익한 일이라고 했는데, 아마 양쪽 주장 모두 얼마간 진실일 것이다.

     세르반테스는 처음에 단편소설을 쓰려고 했다는 주장은 여러 가지 근거가 있다. 그 가운데 하나는 『돈키호테』 1권 1장에서 6장까지의 내용이 완결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이 부분에서 돈키호테는 처음으로 집을 떠나고, 온몸에 부상을 입은 채 다시 돌아오며 신부와 이발사가 서재를 검열하는 장면을 끝으로 하나의 줄거리가 완결된다. 다른 이유는 각 장에서 다음 장으로 넘어가는 대목이 장 단위로 구별할 만큼 그렇게 내용상의 차이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이 작품은 처음부터 장으로 나누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그리고 1장부터 6장까지의 이야기에서 『로만세 단막극』(Entremés de los romances)이라는 작품의 영향이 명백히 드러나는데, 이 또한 앞서 말한 이론을 뒷받침한다.

     방금 언급한 『로만세 단막극』 ―16세기 말엽의 작자 미상의 작품― 을 보면, 로만세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미쳐버린 농부 바르톨로는 로만세의 영웅들을 흉내내기 위해 집을 떠난다. 우연히 만난 여자 목동 편을 들다가, 그녀에게 구애했던 청년으로부터 심한 매를 맞는다. 그리고 가족이 그를 발견했을 때, 바르톨로는 만투아 후작이 자신을 구한 것이라고 상상한다. 이런 줄거리는 돈키호테의 첫 번째 모험과 흡사하다. 기사 로망스 때문에 정신이 나간 시골 귀족 돈키호테는 편력기사가 되려고, 탐독했던 책 속의 영웅들을 모방하려고 집을 떠난다. 톨레도 상인들과 실랑이를 벌이던 돈키호테는 실컷 두들겨 맞고, 자신의 처지와 발도노비스 ―로만세에 등장하는 용사― 의 이야기가 일치한다고 상상하면서 바르톨로가 읊었던 시를 읊조린다. 그리고 이웃 동네에 사는 농부의 도움을 받고도 만투아 후작이 자신을 구한 것이라고 착각한다. 또 돈키호테는 다른 로만세를 떠올리면서 자기 자신을 무어인 아빈다르라에스라고 믿고, 자신을 구해 준 농부를 성주 로드리고 데 바르바에스로 오해한다.

     하지만 세르반테스가 처음부터 장편소설을 구상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모범소설』과 같은 형태의 작품을 쓰려고 했다는 이러한 가설을 일축한다. 1장에서 6장까지의 완결성에 관해 이들은 돈키호테의 첫 번째 여행은, 두 번째 여행에서 볼 수 있듯이, 반복되고 확장되는 구조의 원형적 틀을 예시한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첫 번째 여행에 산초 판사가 동행하지 않았다고 해서 두 번째 여행이 계획에 없던 것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한다. 돈키호테는 종자와 같은, 기사도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될 요소를 결코 간과하지 않았을 것이다. 산초 판사가 첫 번째 여행에 등장하지 않은 까닭은, 농부였던 산초가 주인이 여관에서 치렀던 그 우스꽝스러운 기사 서임식을 목격했더라면 결코 돈키호테를 섬기는 종자가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에 근거한다.

     『로만세 단막극』의 영향과 더불어 간과할 수 없는 사항은, 로만세는, 기사 로망스도 그렇지만, 『돈키호테』의 중요한 일화(몬테시노스 동굴의 모험, 페드로 극단) 속에 상존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각 장의 말미에 이어지는 다음 장의 모두(冒頭)가 구문상 연관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문제는, 첫 번째 여행에서만 보이는 것은 아니다. 이와 유사한 구문적 연결성은 이야기를 전개하는 데 긴장감과 역동성을 고조하기 위한 창작 방법으로써 작품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현상이다.

     요약하면, 단편소설로 출발했다는 명제가 사실처럼 보이지만, 이를 부정하는 수많은 논증이 있다. 다시 말해서, 세르반테스가 처음부터 장편소설을 구상했다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가 없다.


2. 재미와 교훈

     많은 사람들은 『돈키호테』를 읽지 보지도 않고 무겁고 따분한 작품일 것이라고 지레짐작한다. 그러나, 역설처럼 들리겠지만, 『돈키호테』는 문학사상 가장 재미있는 작품 가운데 하나다. 이 작품을 한 페이지 한 페이지 꼼꼼하게 읽었던 동서고금의 수많은 신중한 독자들은 이 책에 담겨있는 희극성, 유머, 재미를 음미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세르반테스는 유익한 즐거움을 강조하는 고전주의 이상을 따라서 귀찮은 설교를 늘어놓기보다는 재미와 교훈을 동시에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모든 독자들을 위해 작품을 썼다. 독자는 자신의 능력에 맞춰 『돈키호테』를 읽을 것이다. 맨 처음 이 사실을 인식한 사람은 다름 아닌 저자 세르반테스였다. 그는 2권에서 산손 카라스코의 입을 빌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돈키호테』 1권은] 아주 평이해서 어려운 대목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아이들도 뒤적거려 보고, 젊은이들도 읽고, 어른들은 외우고, 노인들은 극구 칭찬을 합니다. 사실 책이 다 닳아빠지도록 읽고 또 읽었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다 잘 알고 있어서 바짝 마른 말이 지나가는 것을 보기만 하면 “저기 로시난테가 간다”고 말할 정도입니다.(II, 3)


     사실 오늘날의 독자가 『돈키호테』에 산재하는 수많은 재미를 만끽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적절한 주석본을 이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돈키호테』를 완전히 이해하려면 지난 수세기 동안의 문학을 염두에 두면서 텍스트에 접근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모험 속에, 그리고 돈키호테와 산초 사이의 대화 가운데는 『돈키호테』 이전에 존재했던 많은 문학 장르들이 인용되고 있다. 로만세와 기사 로망스가 대표적인데,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작품은 『아마디스 데 가울라』와 『티란테 엘 블랑코』이다. 여기에 덧붙여, 이태리 르네상스 시대의 기사 문학도 언급되고 있는데, 특히 아리오스토의 『광란의 오를란도』, 보이아르도(Boiardo)의 『사랑에 빠진 오를란도』와 같은 작품이다.

     돈키호테와 둘시네아 델 토보소(Dulcinea del Toboso)의 관계에서 궁정 연애라는 문학적 전통이 엿보이는데, 이러한 유의 사랑 이야기는 프로방스 지방의 음유시인들에 의해 발전되었고, 페트라르카의 시 때문에 널리 알려져, 마침내 대부분의 유럽 문학에 유입되었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점은, 『돈키호테』에 등장하는 다양한 일화에는 기존의 모든 이야기 양식이 통합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기사 로망스, 목가소설, 감상소설, 무어인과의 전투를 노래한 로만세 등으로부터 시작해서 중세의 연대기, 여행담, 신대륙의 연대기 그리고 아베야네다의 『위작 돈키호테』에 이르기까지 모든 이야기 양식이 들어있다. 그리고 『돈키호테』 속에는 그리스, 로마의 문화를 비롯해 전세계의 민담이 인용, 언급되고 있다는 사실 또한 중요하다.


3. 총체성에 대한 열망

     세르반테스는 총체성을 열망하고 있었으므로 모든 것을 상세하게 작품에 담으려고 시도했다. 인간 존재와 관련이 있는 모든 차원과 인간의 모든 관심사를 작품에 포함하려고 노력했다.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를 창작하게 된 첫 번째 목적이 그와 동시대의 독자들로 하여금 기사 로망스가 황당무계하고 믿을 수 없는 엉터리 이야기임을 일깨워주는 데 있다고 누차 강조했다. 그리고 실제로 『돈키호테』는 기사 로망스의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패러디하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이 기사 로망스에 대한 공격만은 아니라는 것 또한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다. 만약 『돈키호테』가 기사 로망스에 대한 풍자에 불과하다면 이 소설의 명성은 패러디 문학의 쇠퇴와 더불어 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돈키호테』는 내용과 형식의 복합성과 풍부함, 다양한 수준의 독자를 만족시키고 또 그런 독서를 가능케 하는 보편성과 다의성 때문에 지금까지도 세계 문학에서 불후의 명작으로 대접받고 있다. 이런 이유로 이 작품에 대한 갖가지 해석이 공존하고 있다. 예컨대 유머를 담고 있다든지, 인간의 이상에 대한 조롱이라든지, 씁쓸한 아이러니가 묻어난다든지, 자유에 대한 찬양으로 읽힌다는 평가가 그러하다. 사실 세르반테스는 이 모든 것을 갈망하고 있는데, 1권 “서문”에서 친구의 입을 통해 자신의 바램을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침울한 사람도 웃음을 터뜨리고, 쾌활한 사람은 더더욱 유쾌해지며, 어리석은 사람도 싫어하지 않고, 재치 있는 사람도 착상의 묘에 경탄하며, 고지식한 사람도 빈축거리지 않고 현자 또한 칭찬을 아끼지 않도록 노력할 일일세.


     이러한 야심을 품고 세르반테스는 작품을 구성했는데, 그것은 독자들에게 문학 이론과 실천에 대한 놀랄만한 교훈이 되었다. 종종 그는 이미 출판된 책에 대해 논의하고 앞으로 어떻게 글을 쓸 것인가를 곰곰이 생각했다. 그 유명한, 돈키호테의 서재 검열 일화를 보면 어떤 책은 찬사를 받고 어떤 책은 화형에 처해지는 신세가 된다. 후안 팔로메케의 여인숙에서 “분별없는 호기심”이 읽혀지고, 기사 로망스과 역사(이야기)에 관한 토론이 시작된다. 돈키호테가 우리에 갇힌 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신부와 교회 참사원은 그 당시의 소설과 연극에 대해 비판적 견해를 피력한다.

     『돈키호테』 2권에 나오는 몇몇 등장 인물들은 이미 1권을 읽었기 때문에 1권에 대해 비평을 한다. 즉, 1권은 2권에서 진행되는 문학이론에 대한 토론의 준거점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2권 첫 부분에 등장하는 산손 카라스코, 돈키호테, 그리고 산초 사이의 대화에서 문학이론과 작품은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통합된다. 후에 돈키호테와 돈디에고 데 미란다(녹색외투의 기사) 그리고 돈디에고의 아들 사이의 대화에서 문학 토론이 재연된다. 이론과 실제는 몬테시노스 동굴의 모험(II, 22-23)이나 페드로 영감의 극단(II, 25-26)과 같은 일화에서도 아주 훌륭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문학이론과 실제의 통합은, 본래 줄거리와 무관하게 삽입된 이야기 속에서도 나타나는데, 삽입된 이야기들은 세르반테스 시대의 대표적인 이야기 문학의 여러 장르를 소설화하는 갖가지 방법을 보여준다.

     이 책 1장에서 언급했듯이, 『돈키호테』는 이른바 스페인 황금시대의 사회의 파노라마, 즉 16세기에서 17세기로 넘어가는 펠리페 국왕 시대의 스페인 사회상에 대한 완벽한 기록으로써, 모든 계급의 등장인물, 다양한 직업과 직종, 갖가지 민간신앙과 관습을 훌륭하게 재현하고 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 돈키호테와 산초는 인간 존재에 대한 뛰어난 문학적 종합명제이다. 산초의 행동은 물질적인 가치에 대한 집착을 보여주는 반면, 기사로서 돈키호테의 행위는 전력을 다하여 그 어떤 이상을 수호하는 좋은 본보기이다. 이 둘은 대립적인 관계가 아니라 상호보완적인 관계이다. 왜냐하면 기사의 광기-제정신과 종자의 상식 사이의 관계는 ―비록 경우에 따라서 어느 한 특성이 두드러지게 보이기도 하지만― 물질적인 면과 이상적인 면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종잡을 수 없이 복잡한 인간의 특성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돈키호테』에 포함된 수많은 일화는 여러 형태의 사랑과 결말을 보여준다. 어떤 일화는 불행한 사랑으로, 어떤 일화는 순수하고 행복한 사랑으로 끝을 맺는다. 기사가 갖추어야 할 필수적인 요건이기 때문에 둘시네아를 사모했던 돈키호테의 경우는 궁정 연애의 전통에 근거를 둔 기사도 사랑을 대표한다. 궁정 연애의 법칙에 따르면, 사랑에 빠진 기사는 사랑하는 여자를 신하처럼 섬기고, 그렇게 함으로써 결국 그녀는 기사를 인도하고 보호하는 귀부인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돈키호테는 모험에 나서기 전에 항상 자신의 연인 둘시네아를 부르고 도움을 청하는데, 왜냐하면 그가 연모하는 귀부인 둘시네아는 기사로서 갖추어야 할 미덕을 강화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둘시네아는 인간 정신이 창조한 가장 숭고한 이상형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돈키호테는 윤리적, 심미적 이상을 추구하는 삶의 본보기이다. 세상의 정의를 수호하기 위해 편력기사가 되었고, 처음부터 문학 작품 속의 등장인물이 되기를 열망했다. 다시 말하자면, 선을 추구했고, 인생을 예술 작품처럼 살려고 했다. 책 속의 주인공이 되기를 원했고 나중에는 역사가(이야기꾼)가 되어 자신의 삶을 기록하려고 생각했다. 그래서 “완전하고 명성 있는 편력기사가 갖추어야 할 모든 것”을 실행에 옮기려고 결심하고, 여러 인물을 흉내내는데, 먼저 아마디스를 모범으로 삼아 시에라 모레나 산에서 고행을 한다. 하지만 아바예-아르세가 지적했듯이, 양자 사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아마디스는 매정한 오리아나 공주 때문에 은둔 생활을 했지만 돈키호테는 아무런 동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청하여 시에라 모레나 산으로 들어간 것이다.

     『돈키호테』 2권에서 돈키호테는 이미 문학 작품의 등장인물 ―1권의 주인공―이 되었기 때문에 세 번째 여행에서 무엇보다도 세상 사람들이 자기를 알아보는지를 알고 싶어한다. 그는 1권을 읽었던 산손 카라스코, 공작 부처 등의 등장인물을 통해 사람들이 자신을 알고 있음을 확인한다. 이에 덧붙여, 자신에 대한 세간의 인식을 확고히 하려고 아베야네다의 『위작 돈키호테』를 언급한다(II, 59, 72). 토렌테 바예스테르(Torrente Ballester)가 지적한 것처럼, “내가 그이다”(1권의 주인공)는 “나는 그가 아니다”(아베야네다의 『위작 돈키호테』 주인공)라는 언급이 이루어져야만 비로소 완전해지는 것이다. 돈키호테는 백월의 기사와 결투에서 패했을 때 편력기사 노릇을 포기해야만 했다. 그러나 그런 고통의 순간에도 예술 작품으로서 삶이라는 개념을 포기하지 않고 목동이 되기로 결심하는데, 이로써 전원적 아르카디아(arcadia)라는 르네상스 신화가 중세 편력기사의 신화를 대체하게 된다.

     이상에서 우리는 『돈키호테』가, 영국 출신의 세르반테스 연구가인 릴리(Riley)가 말한 것처럼, 삶과 문학 그리고 살고 있는 삶과 꿈꾸고 있는 삶의 총체적 결합체라고 할 수 있다. 즉, 사실주의와 환상이 기발하게 통합되어 있고, 포착하기 어려운 현실을 다각적으로 조망하면서 복잡한 인간관계를 소설화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작업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인간적인 것은 모두 상대적이다.

     이것이 모든 독단론을 피하고 단순화를 경계하는 세르반테스의 관대한 포용력의 기반이다. 그 예로 대야 투구(baciyelmo)라는 독창적인 신조어를 들 수 있는데, 이 단어는 맘브리노의 투구(yelmo)라고 우기는 돈키호테와 이발사의 놋대야(bacía)가 분명하다고 여기는 여타의 등장인물들 사이의 논쟁을 해결하기 위해 산초가 만들어낸 말이다.(I, 44) 이 “대야 투구”는 인간사의 상대성과 세계에 대한 언어적 전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기호이다.


4. 놀이로서 소설

     『돈키호테』의 구성 요소들 가운데 상당수는 유희로서 소설과 관계가 있다. 이 작품의 구성은 매우 복잡하고 다양한 이야기 기법에 기초하고 있는데, 1권 9장에서 이 기법은 무한한 가능성을 드러낸다. 1권 9장에서 세르반테스는 “발견된 원고”라는 기교를 사용하여, 이야기의 저자는 무어인이고, 아랍어를 스페인어로 번역한 사람은 모리스코(스페인 거주 무어인)라고 꾸며댄다. 발견된 원고라는 기법은 기사 로망스에서 사용된 기법의 패러디인데, 기사 로망스의 경우, 원고 저자는 고대의 현인이다. 그러나 세르반테스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기법을 이용하여 돈키호테의 모험에 상당한 개연성을 부여했고, 다양한 관점에서 이 모험을 조망했으며, 그때까지 어떤 작가도 성취하지 못했던 예술적 자유를 최대한 구가했다.

     그처럼 풍요로운 과정에서 다양한 요소가 돌출한다. 『돈키호테』라는 허구 속에서 시데 아메테 베넨헬리(Cide Hamete Benengeli)라는 무어인 역사가는 『돈키호테』의 첫 번째 저자이며 톨레도에 거주하는 무어인은 첫 번째 번역자로 나타난다. 세르반테스 자신은 『돈키호테』의 두 번째 저자라는 허구적 인물로 등장한다. 이 두 번째 저자는 고도의 전지적 화자를 통해 독자에게 이야기를 전달하며, 마음이 내키면 어디에서나 논평을 가한다. 왜냐하면 무어인의 번역을 통해 모든 이야기를 사전에 읽은 화자는 방대한 지식과 자유를 누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1권을 읽은 독자들 또한 허구적 인물로 텍스트에 등장한다.

     이와 같은 저자, 번역자, 화자, 독자들의 다양한 유희는 비상한 창작의 자유를 가능하게 하는 동시에 작품을 모호하게 만들고, 의심하게 만든다. 세르반테스는 자신이 창안한 수많은 기법을 자랑스럽게 여겼으며, 결함을 방어하는 수단으로 이용했다. 이러한 기법은 문학적으로 의외의 전망을 가능하게 만든다. 세르반테스는 오류를 항상 시데 아메테 베넨헬리나 무어인 번역가의 탓으로 돌린다. 시데 아메테 베넨헬리는 진실을 말하는 역사가이며 동시에 거짓말을 잘하는 아랍인인데, 어떻게 그가 쓴 것을 진실이라고 믿을 수가 있겠는가? 무어인이 충실하게 번역했다고 누가 단언할 수 있겠는가? 이제 모든 것이 가능하다. 시데 아메테 베넨헬리까지도 번역본에 대한 불만을 토로할 수 있다. 모순과 거짓말로 판명된 사실은 모두 설명이 가능하며, 몬테시노스 동굴의 일화처럼 무한히 복잡해진다. 그리고 1권에서 산초의 당나귀 도난 사건과 관련된 불일치도 2권에서는 인쇄공의 실수 탓으로 돌리기도 한다.

     이러한 유희는 소설의 구성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주동인물의 광기 또한 마찬가지다. 광기는 르네상스 시대 문학에서 흔히 보이는 동기(motive)이며, 이는 종종 명석한 광기로 표현되었다. 이러한 광기는 이탈리아 작가 아리오스토의 『광란의 오를란도』와 에라스무스의 작품 『광기 예찬』에서도 찾을 수 있다. 돈키호테는 기사 로망스를 탐독하는 편집증 환자이다. 화자는 돈키호테가 미친 사람이라고 단정한다. 대부분의 등장인물은 돈키호테를 구제불능의 광인이라고 생각하며, 몇몇 등장인물은 돈키호테가 간간이 뛰어난 명석함을 자랑하기 때문에 “반쯤 미친 사람”이라고 간주한다. 일반적으로, 돈키호테는 편력기사와 연관된 일에서는 미친 사람이며, 그 밖의 문제에서는 건전한 판단력의 소유자이다. 돈키호테가 기사 로망스에 미친 것 또한 어쩌면 세르반테스가 창안한 최고의 유희적 요소가 아닌지 의심해보아야 할 것이다.

     이렇게 주장하는 비평가는 세라노 플라하(Serrano Plaja)와 토렌테 바예스테르이다. 이들은 돈키호테의 광기를 기사도 법칙에 따라 소설 속에 코드화된 유희로 설명한다. 돈키호테는 어린애처럼 천진한 영혼을 지니고 있는 노인이다. 고상한 이상을 위해 일생을 바치며, 세상사의 난관에 부딪혀 삶을 마감한다. 왜냐하면 신부, 이발사, 공작, 자경단원(自警團員), 기사로 변장한 학사는 유희의 규칙을 준수하지 않기 때문이다. 돈키호테는 미친척하며, 편력기사 놀이를 하기로 결심한다. 이를 위해 자신이 애지중지하는 기사 로망스에 의탁하며, 기사 로망스에 맞추어 현실을 변형시킨다. 그래서 여관을 성이라고 상상하고, 풍차를 거인으로 보며, 화류계 아가씨를 공주라고 부른다. 자신의 기도가 참담한 실패로 끝날 때면 돈키호테는 기사 로망스의 코드에 의거하여 이를 설명한다. 즉, 자신의 명예와 영광을 시기한 사악한 마법사들이 요술을 부려 현실을 감추어버렸다고 얘기한다.

     돈키호테가 미치지 않았다는 증거는 양떼를 군대라고 우기면서도 아래를 향해 창을 휘둘러 양 몇 마리를 죽였다는 점이다. 만약 군인이라고 생각했다면 정면을 향해 찔렀거나, 로시난테의 빈약한 골격을 고려할 때 당연히 위를 향해 공격했을 것이다. 시에라 모레나 산에서 산초는 노새 양도증서에 서명을 해달라고 요구하지만 돈키호테는 거절한다.(I, 25) 왜냐하면 알론소 키하노의 이름으로 서명을 하면 소설이 엉망이 되며, 돈키호테의 이름으로 서명을 하면 법적 효력이 없기 때문이다. 반면에 둘시네아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서명을 하는데, 이는 유희의 법칙에 들어맞기 때문이다. 이와 동일한 논리에서 돈키호테는 시에라 모레나에서 토보소까지 마법의 도움으로 여행했다는 산초의 거짓말을 믿는다.(I, 31) 그리고 가짜로 꾸며낸 미코미코나 공주 이야기를 듣고도 수긍하고, 이발사의 가짜 수염이 떨어졌을 때에도 모른척한다. 산초가 둘시네아는 마법에 걸렸다고 둘러댔을 때에도 그냥 넘어가는데, 이는 영리한 산초가 기사도 법칙에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기사도 코드에 따라 행동하는 돈키호테는 거인 판다필란도 델라 포스카 비스타에게 왕국을 빼앗긴 미코미코나 공주를 돕지 않을 수가 없다. 신부와 이발사가 공모한 속임수도 이러한 유희의 법칙에 따른 것이다. 그리고 돈키호테는 이 법칙을 존중함으로써 자신의 행위를 변호한다. 예를 들면, 사람들이 후안 팔로메케 여관에서 “어리석은 호기심”을 읽고 있는 동안 돈키호테는 적포도주 가죽 부대를 난도질하며, 이처럼 터무니없는 짓을 사악한 거인과 싸운 것이라고 둘러댄다. 돈키호테의 유희는 항상 깨끗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그러나 돈키호테를 우리에 가두어 집으로 데리고 간다하더라도 결국은 소설로 돌아가는 것이다. 왜냐하면 돈키호테의 세계를 창조한 사람은 바로 돈키호테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돈키호테 자신만이 돈키호테를 이길 수가 있다. 대단원에서 돈키호테는 허구를 거부하고 편안하게 죽는다. 그러나 죽은 사람은 만차 지방의 시골 양반 알론소 키하노이지 돈키호테가 아니다.

     따라서 이탈리아 비평가 세그레(Cesare Segre)의 말처럼 “돈키호테의 최대 패배는 이성의 회복이다”. 그 때까지 돈키호테의 유희는 한계가 없었다. 돈키호테는 첫 번째 출정에서 그를 보고 깜짝 놀란 이웃사람 페드로 알론소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 잘 알아. [...] 그리고 내가 말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프랑스의 열 두 용사와 구대용사(九大勇士, los nueve de la Fama)까지도 될 수 있는 사람이야. 왜냐하면 내가 한 일은 그 사람들이 성취한 업적을 모두 합쳐놓은 것보다도 위대하거든.(I, 5)



5. 상대적 관점

     『돈키호테』는 단 하나의 관점에 지배되기보다는 다양한 관점을 포함하고 있어 다채롭다. 마찬가지로 이야기의 모든 측면에 침투해있는 상대주의는 단순화와 독단론의 위험을 막아준다. 『돈키호테』의 첫 부분은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왜냐하면 작가는 만차 지방의 서고에서 돈키호테에 대한 자료를 찾는 연구자로 제시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내 두 명의 저자가 나타나며, 발견된 원고라는 기법과 더불어 어떤 전망에도 타당성을 부여하는, 저자, 역자, 화자, 독자의 끝없는 유희가 시작된다. 게다가 많은 등장인물이 끊임없이 대화에 참여하고, 인물들은 각자 자신의 관점을 보여주며 구사하는 언어에 의해 개성화되기 때문에 세르반테스는 근대 이야기 문학이론의 기초를 정립한 미하일 바흐찐보다 3세기나 앞서 다성악 소설을 창조했다.

     다양한 관점은 처음부터 표명된다. 1권 2장에서 화자가 하는 말에 따르면, 일부 사람들은 돈키호테의 첫 번째 모험은 라피세 관문의 모험이었다고 하며(첫 번째 관점), 다른 사람들은 풍차의 모험이었다고 주장하지만(두 번째 관점) 만차 지방의 기록에 의하면(세 번째 관점) 그 날 특별한 일은 하나도 없었던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절대적 확실성의 결여는 시골 양반의 이름에서도 나타나는데, 이 사람이 갖고 있는 이름을 살펴보면, 키하다, 케사다. 키하나 그리고 알론소 키하노이다. 기사로서 이 시골 양반의 이름은 돈키호테이지만 나중에는 “슬픈 얼굴의 기사”, “사자(獅子)의 기사”라는 호칭을 가지기도 하고, 돈아소테(don Azote), 돈히고테(don Gigote)처럼 웃음거리가 되기도 하며 키호티스 목동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다른 등장인물도 여러 개의 이름을 갖고 있다. 이 모두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소설 전체를 관류하는 다양한 관점의 결과이다. 또한 저 유명한 세르반테스의 부주의, 즉 산초 판사의 아내 이름을 후아나 구티에레스, 마리 구티에레스, 후아나 판사, 테레사 판사, 테레사 카스카호 등 경우에 따라 아무렇게나 부른 것까지도 이러한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상대적 관점은 수많은 보통명사의 형식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언어적 증거는 세르반테스가 종종 동일한 의미를 지닌 다양한 방언을 구사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좋은 실례가 음식인데, “그 생선은 카스티야에서는 ‘명태’라고 하고, 안달루시아에서는 ‘대구’, 어떤 지방에서는 ‘노가리’라고 부르고, 또 어느 곳에서는 ‘북어’라고 부르는 것이었다.”(I, 2) 마른 대구를 지칭하는 이러한 명칭은 다양한 통로를 통해 동일한 현실에 접근하려는 수많은 시도 가운데 하나이다. 이로써 비전은 한결 완벽해지는데, 왜냐하면 현실은 비록 동일하지만 그것을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서 상이하게 지각되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돈키호테가 “네 눈에는 이발사의 대야로 보이는 모양이지만 내게는 맘브리노의 투구로 보인다. 다른 사람에게는 또 다르게 보이겠지”라고 말한 물건을 가운데 두고 빚어진 논쟁을 중립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산초가 지어낸 기발한 신조어 “대야 투구”가 존재할 수 있는 근거이다. 또한 여기서는 인간 존재의 모든 표현에 대한 세르반테스의 유명한 이해심도 드러난다. 이로써 세르반테스는 근대 소설의 창조에서 기본적인 표명 가운데 하나에 기여한다.


6. 돈키호테와 자유

     세르반테스가 작가로서 주장한 자유는 마찬가지로 돈키호테에게도 주어진다. 돈키호테는 세계문학사에서 진정으로 자유로운 첫 번째 등장인물이다. 소설의 첫 부분부터 예술가와 등장인물의 자유가 선언된다. 세르반테스는 이미 서문에서 작가의 자존심을 얘기하며, 등장인물 돈키호테는 1장 첫 문단부터 자유롭게 태어난다. 끝으로 작가가 펜에 마지막 인사를 하는 장면은 지금까지 한번도 쓰여진 적이 없는 문학적 재능에 대한 자신감이다. 그리고 돈키호테는 죽어 땅에 묻히며, 다시는 아베야네다 같은 사람이 위작을 쓰지 말도록 권고한다.

     『돈키호테』의 첫 부분은 널리 알려져 있다. “얼마 전, 만차 지방의 어느 마을에 ―마을 이름은 말하고 싶지 않다― 시골 양반이 살고 있었다.”(I, 1) 이런 허두부터 이미 세르반테스 소설의 시공간 좌표는 기사 로망스와 차별된다. 그리고 전개되는 사건은 편력기사 얘기처럼 고대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 전에 시작되며, 먼 나라가 아니라 이곳에서 가까운 만차에서 시작된다.

     만차 지방의 마을 이름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지만, 매우 자유로운 작가의 자부심을 드러낸다. 모든 설명이 타당하며, 상보적이기도 하다. “만차 지방의 어느 마을에”라는 구절은 사실 작자 미상의 로만세에서 따온 것이다.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의 고향 마을 이름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만차 지방의 모든 마을을 아우르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르반테스 자신의 말처럼 “만차 지방의 모든 마을이, 그리스의 일곱 도시가 저마다 호머를 자기네 고장 사람이라고 했듯이, 그를 배출하고 또한 묻었다는 영광을 차지하려고 다투게” 만들려고 했기 때문이다.(II, 74) 또한 이 구절은 기사 로망스의 장중한 출발보다는 민담에서 흔히 보이는 소박한 시작과도 유사하다. 세르반테스가 만차 지방의 이름을 밝히지 않은 이유는 아마도 그 마을에서 구금 생활을 하면서 『돈키호테』를 집필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도 한다.

     이러한 설명을 전적으로 부정할 수는 없으나, “그 마을 이름을 기억하고 싶지 않다”라는 구절의 문학적 효과는 훨씬 광범위하다. 레오 슈피처(Leo Spitzer)와 아바예-아르세는 이 구절에서 저자와 등장인물의 자유를 최대한 방어하려는 기호를 보았으며, 이를 문학사의 진화라는 관점에서 설명한다. 세르반테스 이전의 문학은 몇 가지 엄격한 관례가 지배하고 있었다. 이러한 전통적인 모델에서 등장인물의 출신 성분은 미래의 운명을 결정했다. 아마디스는 가울라 지방에서 출생했고, 왕족의 자손이었으며, 나중에는 영웅이 되었다. 반면에 라사리요는 토르메스 지방에서 출생했고, 가난하고 천한 사람의 아들이었으며, 성장해서는 반영웅(反英雄)이 된다. 운명은 출신 성분에 지배되었던 것이다.

     반면에 세르반테스는 등장인물의 출생 사항을 확실하게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등장인물이 결정론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자신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만들었다. 같은 이유로, 이 시골 양반의 가계(家系)나 정확한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의 의붓아버지일 뿐”이라는 말은 타당한데, 왜냐하면 돈키호테 스스로가 돈키호테의 진정한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환상을 쫓는 등장인물은 자신의 이름을(돈키호테) 만들어내고, 말에 이름을(로시난테) 붙이며, 무기를 만들고, 둘시네아라는 인물을 상상하며, 기사도적 환영에(풍차를 거인으로, 여관을 성으로, 창녀를 공주로, 양떼를 군대로 인식하는 것) 적합한 현실을 창조한다. 그것도, 아래 돈키호테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완전한 의식과 의지를 가지고 그렇게 행동한다.


나 자신이 둘시네아 아가씨를 세상의 가장 위대한 공주님으로 생각하고 있으니까 말일세. [...] 결론적으로 말해서, 내가 하는 말은 모두 과장인 아닌 진실이라고 믿네 [...] 로마의 여성들도 도저히 따를 수 없는 아름다움과 지위를 가졌다고, 나는 바라는 대로 상상으로 그려본다네.(I, 25) [왜냐하면] 둘시네아가 세상에 존재하는지 않는지, 환상인지 아닌지는 하느님만이 아시지. 이러한 문제는 아무리 천착해보아야 끝장을 볼 수 없는 문제이지.


     돈키호테 이후 문학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삶은 한결 자유로워졌다. 왜냐하면, 멕시코의 소설가 푸엔테스(Carlos Fuentes)의 말처럼, 세르반테스는 아마디스를 라사리요와 대화하게 만들었으며, 그 과정에서 세계에 대한 일원적이고 통합적인 해석은 영원히 소멸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돈키호테 이후, 토르메스의 땅에서 태어난 인물들도 영웅이 될 수 있고, 가울라에서 태어난 사람도 왕실 궁전에서 자란 반영웅이 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