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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데 아메테 베넨헬리의 두 얼굴 / 황병하 2003-10-22 / 3246   

시데 아메테 베넨헬리의 두 얼굴

황 병 하



     이미 앨런(John J. Allen), 엘 사파르(Ruth El Saffar), 플로레스(Ralph M. Flores) 그리고 릴리(Edward C. Riley) 같은 많은 비평가들이 『돈키호테』 1권과 2권 사이에 있어서의 여러 가지 차이점에 대해 지적했다. 그러나 그러한 1, 2권의 차이점을 세르반테스의 문학이론 발전과 연관시켜 조명해 본 접근은 거의 드물었다. 특히 많은 사람들이 『돈키호테』를 로망스(romance)에서 근대적 의미의 소설(novel)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작품으로 인정하고 있음을 볼 때, 새로운 장르를 구체화시키려고 했던 세르반테스의 발전적 과정이 1권(1605년)과 2권(1615년)이 쓰여진 10년이라는 연대적 차이 속에 전혀 반영되지 않았으리라고 보기에는 많은 사실들이 이것을 반증하고 있다. 세르반테스의 새로운 장르에 대한 자각은 『돈키호테』 1, 2권 전편에 흐르고 있는, 소위 기사도 문학(libros de caballerías)에 대한 극렬한 비판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역겨워하고 그리고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칭찬하는 이른바 기사도 문학이라는 잘못된 장치를 없애기 위해 눈을 돌립시다.(I. 서문)


     기사도 문학에 대한 이와 같은 직접적인 공격은 “『돈키호테』는 단순히 기사도 문학에 대한 풍자 또는 패러디”라는 미시안적인 접근의 유형을 만들었다. 그러나 세르반테스가 의식적이었든 무의식적이었든 간에 『돈키호테』를 통해 이룩해낸 문학사적 의미는 그러한 풍자나 패러디적인 것을 훨씬 넘어선다. “세르반테스가 진정으로 추구했던 것은 기사도 문학이라는 어떤 특징적인 장르를 비판하려고 헸던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지고 있는 미학적 개념과의 차이 때문에 모든 흥미 위주의 문학과 싸우려는 것이었다.” 『돈키호테』를 최초의 소설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세르반테스의 이러한 기존 제반 장르와의 싸움, 그리고 이를 통해서 얻어진 성과가 새로운 형태의 산문 형식을 탄생시킨 데서 비롯된다.

     엄밀히 말해서, 세르반테스에게 이 제반 장르와의 싸움은 기존 장르들을 완전히 궤멸시키는 작업이었다기보다는 그것들을 종합하는 작업이었다. 『문학에 관한 하퍼 핸드북』에 따르면 “소설은 인간 경험을 바라보는 두 가지 다른 경향의 종합, 즉 로망스(기사도 문학)와 피카레스크 소설의 종합으로부터 탄생했다”고 본다. 사실 하퍼 핸드북이 소설의 기원을 여기서 찾는 것은 스스로 최초의 소설이라고 정의하고 있는 『돈키호테』의 “우연적인 모험들의 시간적 순서에 따른 서술 구조”, 그러면서도 “현실에 대해 피카레스크적인 시각”을 투사하는 이중적인 성격 때문이다.

     그러나 하퍼 핸드북이 소설의 효시를 들고 있는 것은 『돈키호테』 전부가 아니라 2권이라는 점을 볼 때 『돈키호테』 1, 2권 사이에는 어떤 발전적 구조가 내재해 있음을 추정해 볼 수가 있다. 즉 1권이 한결 더 기존 제반 장르에 대한 의식적, 직접적 공격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고 본다면, 2권은 이러한 공격의 결과로 얻어진, 로망스와 피카레스크 소설의 종합, 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형식이 작품 안에 구체화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돈키호테』에서 끊임없이 ‘원작자’ 또는 ‘화자’(narrator)로 불리는 시데 아메테 베넨헬리 역시 1, 2권 사이의 이러한 발전적 변화를 잘 반영하고 있을 뿐더러, 어떤 의미에서는 이러한 변화를 구체적으로 가시화시키는 가장 중심적인 변수로서 기능하고 있다. “변화는 작중 인물(돈키호테와 산초)에서 일어날 뿐 아니라 화자(시데 아메테 베넨헬리)에서도 일어난다.” 1, 2권 사이에서 보여지는 시데 아메테의 변화는 먼저 그가 가지고 있는 역할의 비중이 1, 2권 사이에서 다르다는 것뿐만 아니라 1권에서는 역사가(historiador)로 지칭되던 그가 2권에서는 화자로 지칭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가장 결정적인 변화는 1권에서는 시데 아메테가 로망스가 가진 화자의 형태로서 로망스를 비판하고 있는 데에 반해, 2권에서는 완전히 소설이라는 장르의 화자로서 형상화되어 있다는 데에 있다.

     소설에서 뿐만이 아니라 로망스에서도 화자는 존재한다. 그러나 로망스에서 화자의 역할은 소설에서 그것과 비교하면 단순히 장식품의 역할 이상의 것을 가지지 못한다. 로망스에서 첫 사건과 다음 사건의 관계는 우연적이다. 한 사건은 전후의 사건들과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있다기보다 단순히 주인공의 영웅적 형태를 증거해 주기 위한 “끝없는 사건들의 연속” 속에 편재해 있는 하나의 독립된 에피소드의 기능밖에 가지지 못한다. 로망스에서 유기적 통일성의 결여 또는 부재는 이러한 로망스의 에피소딕적 구조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이 장르에 속하는 대부분의 작품들은 한 주인공의 전 생애(주인공의 탄생에서 죽음까지)를 연대기(chronicle)적인 형식으로 다룬다. 결국 로망스에서 화자는 연대기에서 보여지는 증인, 또는 목격자의 역할에 한정되게 된다. 물론 로망스가 역사적 사건을 허구적으로 해석하고 있기 때문에 로망스에 나타나는 증인은 허구적 증인이다.

     그러나 소설에서 화자는 이와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소설에서 화자는 작품의 내재적 구조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장치로서 기능한다. 로망스와 달리 소설의 유기적 통일성은 바로 이 화자가 주어진 여러 사건들을 하나의 집약적이고, 특수한 시점(perspective, point of view)을 통해 여과, 선택하는 데서 비롯된다. 소설에서 이러한 화자의 역할이야말로 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탄생을 가능케 한 가장 본질적인 장치인 것이다.

     엄밀히 말해서 시데 아메테는 진정한 의미의 『돈키호테』의 화자가 아니다. 화자라기보다는 작중인물인 시데 아메테가 우리의 주의를 끄는 것은 그의 직업이 화자라는 사실이다. 끊임없이 믿을 만한 자료 제공자(1권) 또는 원저자(2권)로 표상되고 있는 시데 아메테의 등장은 그가 단순히 작중인물의 기능을 넘어서며, 그를 통해 세르반테스가 간접적으로 화자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지 않나 추정케 한다. 더구나 『돈키호테』가 로망스에서 소설로 넘어가는 본질적인 관건이라면 세르반테스가 시데 아메테를 단순히 작중인물로서만 국한시켜 보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은 명백해 보인다. 더구나 1권과 2권 사이에 나타나는 아메테의 화자로서의 작중인물적 성격 변화는 이러한 세르반테스의 의도를 잘 설명하고 있다.

     1권에서 시데 아메테는 5개의 장(9, 15, 16, 22, 27)에서 등장한다. 2권에서는 무려 13개 장(1, 8, 24, 40, 47, 50, 52, 53, 60, 61, 70, 73, 74)에서 등장한다는, 이 피상적인 사실만 본다 하더라도 얼마만큼 시데 아메테의 역할이 소설에서의 그것처럼 강조되었는지 쉽게 짐작해볼 수 있다. 더구나 1권의 5개 장 중에서도 2개의 장(9, 16) 만이 조금 상세하게 시데 아메테를 언급하고 있을 뿐, 나머지는 단 한 문장밖에 시데 아메테의 묘사에 할애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 피상적인 사실 외에 우리의 주의를 끄는 것은 1권에서 시데 아메테를 역사가로 묘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I, 8, 15). 앞서 밝힌 바와 같이 로망스에서 화자의 기능은 역사가의 기능, 특히 연대기 작가가 가지고 있는 역사적 증인의 기능이었다. 그런데 2권에서는 거의 시데 아메테를 역사가로 지칭하지 않고 있다. 대신 그가 작가(autor)로 변신하고 있다(II, 24, 27). 물론 작가와 화자가 동의어는 아니지만 ‘역사가’라는 호칭의 소설은 일반적으로 로망스에서 화자가 역사가로 불려지고 있는 점을 볼 때 로망스의 화자를 부정하려고 하는 세르반테스의 의도가 2권에 나타나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의도를 뒷받침이나 하듯 시데 아메테의 『돈키호테』에 대한 기여도가 1, 2권에서 현저히 달라진다. 즉 1권에서 시데 아메테는 단지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를 쓰기 위해 사용한 여러 가지 참고 문헌들 중 중심문헌의 저자에 불과하지만, 2권에서는 아예 전편의 저자로서 등장한다. 2권은, 시작 첫 문장에서부터 전개될 이야기가 시데 아메테의 입을 통해 개진될 것이라는 선언으로부터 시작된다. 즉 2권의 모든 얘기는 시데 아메테에 의해 서술된다.


시데 아메테 베넨헬리가 이 이야기의 2권과 돈키호테의 세 번째 출정에서 서술하기를...(II, 1)


     결국 세르반테스, 시데 아메테, 『돈키호테』 2권의 관계는 아래와 같은 도표로서 조망해 볼 수 있다.


세르반테스(저자) ...... 시데 아메테(화자) ...... 『돈키호테』(이야기된 것)


     결국 화자는 작가가 아니라 순전히 작품의 구조적 산물이라는 사실은 현대 소설학이 정립한 가장 중요한 개념 중의 하나이다. 작가는 화자라는 소설의 구조적 기능을 이용하여 자기가 표현하고자 하는 무엇이 이야기되도록 만든다. 현대 이야기학(narratology)은 화자의 구조적 기능을 “화자가 말하기를...” 하는 공식으로 잘 설명하고 있다. 미키 볼의 예로서 좀 더 부연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내가 말하기를) : 엘리자베스는 오늘 어쩐지 피곤하다는 것을 느꼈다.
(I narrate) : Elizabeth felt somewhat tierd today.


    여기서 말하는 ‘나’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일인칭 소설의 ‘나’가 아니다. 일인칭 소설의 구조를 위에 든 예문으로서 도식화해보면, “(내가 말하기를): 나는 오늘 어쩐지 피곤하다는 것을 느꼈다”이다. 괄호 속에 든 ‘나’는 화자이고, 후자의 ‘나’는 작중인물이다. 화자로서 ‘나’를 괄호 안에 집어넣은 이유는 대체적으로 이 화자가 작품 전면에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데 아메테 또한 이러한 구조 속에서 『돈키호테』2권을 이야기한다. 오히려 그가 작품 전면에 등장했다는 것은 세르반테스가 시데 아메테를 통해 화자의 이러한 기능을 가시적으로 상징하고자 했던 의도가 있었지 않나 추측해 보도록 하는 계기가 된다. 즉 시데 아메테는 2권에 와서 소설의 화자가 가진 역기능을 완벽하게 수행한다. 이것은 『돈키호테』 1, 2권 사이에서 보여지는 로망스에서 소설로의 전이를 증거하는 여러 가지 결정적인 예들의 하나가 된다.

     1권에서 시데 아메테의 역할은 로망스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순전히 구조적 장치”에 머문다. 그러나 2권에 와서 시데 아메테의 구조적 위치는 구조적 장치의 성격을 넘어서 구조적 본질로서 자리잡게 된다.

     15세기에 산문문학에 관한 가장 격렬한 논쟁은 소위 ‘기사도 문학’에 대한 인기와 그에 대한 비판과 연관관계를 가지고 있다. 교회를 중심으로 한 도덕주의자들과 역사비평가들에 의해 제기된, 일반 대중의 의식구조 속에 깊이 파고든 이 기사도 문학에 대한 15세기의 비판은 ‘역사’와 ‘허구’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되고 있다. 이 잘못된 일반적 통념이 조장된 근본적인 책임은 기사도 문학 작가들에게 있었다. 중세 이후부터 기사도 문학 작가들은 끊임없이 자신들의 작품이 ‘역사적’이고 ‘진실한’ 것이라고 선언해 왔다. 물론 기사도 문학에 어느 정도 역사적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장르의 작품들은 근본적으로 허구의 바탕에서 출발하고 있다. 더구나 문제를 악화시킨 또하나의 계기는 “15세기 후반의 비평가들이 기사도 문학을 허구의 소산으로 보지 않고 가짜 역사로 본” 데 있다. 작가들의 거짓 선언 그리고 비평가들의 이러한 잘못된 접근 방식은 다음 세기에 들어와 보다 더 이 장르의 성격을 재고해보도록 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비록 ‘허구’(ficción) 대신 ‘가짜 역사’(historia falso)라는 단어를 쓰기는 했지만 아마디스 데 가울라의 개작자인 몬탈보가 아마 이러한 개념의 혼란에 대해 가장 일찍 자각하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가짜 역사가 “자연의 법칙에 어긋난 경이적인 것들에 대한 강조”로서 정의되고 있음을 볼 때, 그것이 다름 아닌 허구를 지칭하고 있음을 쉽게 짐작해 볼 수 있다. 기사도 문학을 역사가 아닌 허구로 보려는 몬탈보의 시각에 대해 세르반테스가 간접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려고 하고 있음을 『돈키호테』 1권의 한 장면에서 엿볼 수 있다.


아닙니다, 선생 [...] 이발사가 말했다 [...] 나는 그것이 이 장르로 쓰여진 모든 책들 중에서 가장 낫다고 들었고, 그러니까 이 계통의 예술 작품 중에서는 유일하게 용서를 해야 한다고 봅니다.(I, 7)


나중에 신부조차 태우지 않기를 동의하는 이 책은 다름 아닌 아마디스 데 가울라이다.

     그러나 세르반테스의 기사도 문학에 대한 공격은 현저히 다르다. 15세기 비평 또는 이 장르에 대한 몬탈보의 비평은 그 중심이 역사성에 맞추어져 있으나 세르반테스의 초점은 이 허구의 구조적 결함에 맞추어져 있다. 세르반테스에게 기사도 문학은 허구이기 때문에 그것이 역사적이지 못하고, 진실되지 못하다 하더라도 비판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세르반테스가 공격하는 것은 허구로서의 이 장르에서 보여지는 허구적 진실(verosimilitud)의 결여이다. 이 허구적 진실의 구조적 결핍은 로망스란 장르가 가진 유기적 통일성의 결여를 의미한다. 한 사건이 허구 속에서 진실성을 갖기 위해서는 다른 사건들과 인과적 관계로 묶여져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한 진술은 문자 그대로 허구에 그치게 된다. 이러한 허구적 진실의 창출은 소설에서 보여지는 화자의 구조적 기능 없이는 불가능하며, 이것이 바로 소설을 로망스로부터 구분하는 몇 가지 결정적인 기준들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그러나 이 허구적 진실에 관해 『돈키호테』 1,2권은 발전적 입장을 취한다. 많은 비평가들에 의해 1권의 “전체적 통일성의 결여”는 지적되어 왔다. 1권의 이러한 구조적 결함은 이야기를 제공한 시데 아메테의 로망스적 성격과 전혀 무관하지 않다. 1권에서 시데 아메테는 로망스가 가진 “상상의 얘기”(imaginada historia)의 가짜 ‘역사가’에 지나지 않는다. 세르반테스의 아직 성숙되지 않은 허구적 진실에 관한 개념은 비록 로망스가 허구(상상의 얘기)라는 것은 인식하고 있지만 소설적 화자라는 구조적 장치를 통해 구체화시키는 단계에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시데 아메테 또한 몬탈보적, 상상의 얘기를 진술하는 역사가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마치 2권이 끌어올린 유기적 통일성을 뒷받침이나 하듯 2권에서 시데 아메테의 성격은 극적으로 변한다. 플로레스(Ralph M. Flores)의 지적처럼 “2권에서 시데 아메테는 1권의 부차적인 구조적 장치로서의 그와 어느 면에서도 유사하지 않다. 세르반테스가 틀림없이 1권을 회고해 보며 시데 아메테의 예술적 가능성을 인식했던 것 같다”. 더 이상 시데 아메테는 허구의 사건들을 증언하는 역사가가 아니다. 그는 “생각을 그리고, 상상을 발견하고, 질문에 대답한다.”(II, 40) 생각과 상상을 그리는 것은 역사가의 영역이 아니라 화자의 영역이다. 그러나 시데 아메테는 1권에서처럼 이런 생각과 상상들을 포함해 “모든 것을 정확하게”(I, 15)만 그리려고 하는 게 아니라 중요하지 않은 것은 생략해버리는, 여과 및 선택을 통한 작품의 유기적 통일성에 관심을 표명한다.


6일도 넘게 특별히 쓸 만한 중요한 게 일어나지 않았고 [...] 다른 것들에서는 항상 그래왔던 것과는 달리 시데 아메테는 여기에 대해서는 정확성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II, 60)


     『돈키호테』 2권의 유기적 통일성을 이루는 화자의 시점은 돈키호테의 ‘환상으로부터 깨어남’(desengaño)이다. 1권이 단순히 환상에 빠진 주인공의 모험들을 시간적인 배열로 집산해 놓고 있다면, 2권은 여전히 시간적인 순서에 따라 사건들을 배열하고 있지만 이러한 화자의 시점에 따라 취사 선택의 구조적 칼질이 가해져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적 변화에 부응하여 시데 아메테 또한 2권의 “소설적 분위기를 광범위하게 조절하는” 조정자로 변한다.

     세르반테스의 로망스에 대한 공격과 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에 대한 태도는 1,2권에서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아직 1권이 이 새로운 형식을 구체적으로 작품 안에 승화시키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1권에서 세르반테스의 태도의 다분히 직설적이고 이론적이다. 이것은 그가 단지 이론적으로는 소설에 대해 어렴풋이 나마 깨닫고 있지만 작품을 통해 이를 형상화시킬 수 있는 단계에까지는 이르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1권의 여러 곳에서 문학이론들이 아주 직설적으로 개진되고 있음을 목격할 수 있다. “세르반테스에 있어 허구와 문학비평의 결합은 아주 강하게 드러난다. 그러한 결합 없이 『돈키호테』는 쓰여질 수 없었을 것이다.” 1권 6장에서는 하나 하나 예를 들어가며 소위 기사도 문학에 속하는 많은 작품들을 직설적인 어조로 비판, 성토하고 있다. 1권 22장에는 피카레스크 문학에 관한 토론이 등장한다. 서문에서는 세르반테스의 친구가 문학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말한다.


화자의 이론적 쟁점에 관한 불확실성은 1권에서 나타나는, 문학에 관한 끊임없는 토론이라는 주제에서 잘 나타난다. 작중인물들은 자주 문학의 법칙을 토의하고, 이상적인 소설의 모형을 갈파하고, 현재 제작되고 있는 연극 작품들을 자기 자신들의 작품에 대한 인상을 분석한다.


    말하자면 『돈키호테』 1권은 세르반테스가 이전 시대의 산문문학의 개념들을 공박하기 위한 이론적 싸움터로 변해 있다.

     2권에서도 물론 이러한 이론적 성격이 완전히 배제된 것은 아니지만 작가의 이론적 개입이나 토론은 현저히 감소되어 있다. “2권에서 세르반테스는 문학의 법칙을 토론하는 데에 그다지 관심을 표명하지 않고 있다. 산손 카라스코의 논쟁을 제외하고는 드러내놓고 문학에 관한 문제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있다.” 등장인물들의 문학에 관한 대화는 이론적인 토론의 성격에서 벗어나 작품의 전체적인 구조와 연관된 사건적 형태를 띄고 있다. “1권에서 표현되고 있는 비평적 의견들의 소설화가 아주 거친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면” 2권에서는 거의 완전한 형태로 소설화가 이룩되어 있는 것이다.

     시데 아메테에 대한 태도 역시 1, 2권 사이의 이러한 이중적 구조를 벗어나지 않는다. 이미 우리는 시데 아메테가 1권에서는 로망스의 화자를, 2권에서는 소설의 화자를 상징하고 있음을 밝혔다. 그런데 이 각기 다른 성격의 시데 아메테를 제시함에 있어 1,2권이 다른 방식의 기교로 접근하고 있음이 목격된다. 1권에서 시데 아메테에 관한 언급은 작가(세르반테스)의 개입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 즉, 현대 이야기학에서 말하는 “보고된 서술” (reported discourse)또는 “얘기된 서술”(narratized discourse)로 불리는 묘사 부분에서 시데 아메테가 항상 언급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말하자면, 작중인물들이 나누는 대화의 부분이 아닌 이른바 서술 diegesis 부분). 본질적으로 성격상 대화 부분보다 더 작가의 개입이 직접적으로 가능한 이 서술 부분에 주로 시데 아메테의 묘사가 의존하고 있다는 것은 1권이 2권에 비해 한결 이론적 형태를 띄고 있다는 사실과 철저히 부합되는 것이다. 시데 아메테가 처음으로 묘사되는 1권의 9장 역시 이 서술 부분에서 로망스 화자의 표상으로서의 그를 풍자적 어조로 소개하고 있다.


이 얘기의 진실성에 대해 어떤 이의를 제기해 볼 수 있다면, 그것은 다름 아니라 저자가 아랍인이었다는 것인데, 왜냐하면 아랍인들이란 바로 거짓말쟁이들이기 때문이다.


    1권에서 시데 아메테에 대한 언급은 이처럼 서술 부분의 직접적인 묘사에 기조를 두고 있다. 2권에서도 서술 부분에서 시데 아메테에 대한 언급이 물론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2권에서는 서술 부분의 묘사보다 작중인물들의 입을 통한 시데 아메테의 인상이 더 강조되고 있다. 즉 2권에서 시데 아메테는 한층 더 구조적 필요성에 의해 소설화된 형식으로 나타난다. 시데 아메테의 화자로서 성격은 암시 또는 내재화되고 있지, 논거되거나 토론되는 것을 될 수 있으면 피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이미 인용한 시데 아메테의 국적에 얽힌 진실성의 문제가 2권에서는 산초를 통해 제기되고 있는 점에서 우리는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를 얻는다.


시데라는 이름에 따르면, 그리고 그들은 모두 사기꾼들이니까 무어인들한테는 진실을 기대할 수 없고...(II, 6)


     멘싱이 주장한대로 “1, 2권 사이의 가장 두드러진 차이 가운데 하나는 작중인물들과 사건들에 관한 정보가 독자들에게 전달되는 방식에 근거한다”. 화자로 지칭되어 작중인물화되어 있는 시데 아메테 역시 이러한 구조적 특성에서 벗어나는 예외적 장치는 아니다. 하나의 작중인물로서 그도 1권에서는 한층 직접적인 서술의 형태로서 묘사되어 있고 2권에서는 한층 간접적인 소설적 형상화 안에서 제시되어 있는 것이다.

     『돈키호테』 1, 2권의 발전적 차이점은 그것이 로망스에서 소설로 전이되어 나가는 산문문학의 과도기적 과정을 예증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대한 문학사적 의의를 갖는다. 다른 여러 가지 요소들과 함께 화자로 기용되고 있는 시데 아메테 역시 그러한 진화 단계를 밝혀보려고 하는 우리의 추적에 매우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한다. 특히 화자가 소설이라는 장르를 규정짓는 가장 본질적인 기준임을 염두에 둘 때 1, 2권에서 달리 나타나는 시데 아메테의 성격은 로망스에서 소설로의 변이를 구조적으로 조명해 볼 수 있는 최대 변수임을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1, 2권에서 다른 모습으로 출현하는 시데 아메테의 이 두 개의 얼굴이야말로 17세기 산문 세계가 목격했던, 죽어 가는 옛 장르와 새롭게 탄생하는 장르의 생생한 초상화이다. 하나는 사이비 역사가라는 꾸민 역사의 거짓 증언이고, 다른 하나는 허구에 통일성과 진실성을 가져다주는 보이지 않는 장인의 역할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