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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르반테스와 바로크 미학... / 신정환 2003-10-22 / 6168   

세르반테스와 바로크 미학 - 『돈키호테』를 중심으로

신 정 환



1. 들어가는 말


     기본적으로 문예사조란 한 시대를 공유했던 작가들이 그 세계관과 문학관 그리고 문체에 있어서 유사하게 드러내고 있는 집단적 현상을 연구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한 작가 혹은 작품을 문학사 내의 사조라는 틀 안에 넣어 이해하려는 태도는 분류와 분석을 즐겨하는 학자들의 당연한 욕구이지만 그 틀만을 강조하다 보면 오히려 작품의 특질을 간과하는 사회학적 혹은 문예사조적 결정론에 빠질 위험성도 다분히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시대”라는 것이 뚜렷이 구별되는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 부단히 변천하고 상호 침투하는 것이어서 각각의 특정 시대는 그 자체 내에 수많은 타 시대적 요소를 융합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모든 작품, 특히 걸작일수록 그 시대에 발생한 양식을 표현하면서 동시에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려는 길항 작용을 보여주고 있다. 결론적으로 문학사를 공부하는 데에 있어서 시대구분이란 한편으로 역사의 흐름을 파악하고 질서를 세우는 데에, 다른 한편으로는 특정 작품에 대한 이해를 보다 확실하게 하는 데에 도움을 주는 한도 내에서 그 의미를 찾아야 할 것이다.

     이런 전제하에서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는 문예사조적 자리매김이 가장 논란이 되는 작품들 중의 하나이다. 예를 들어 독일의 괴테가 말하는 〈세계 문학〉(Weltliteratur), 혹은 프랑스의 방 티겜(Van Tiegem)이 내세우는 〈일반 문학〉(General Literature)이라는 개념에서 볼 수 있듯이, 타 문학의 특수성보다는 가지치기를 통한 보편 문학의 수립을 지향했던 세계주의는 『돈키호테』를 포함한 16-17세기의 스페인 문학을 보통 르네상스의 틀 안에 꿰어 맞추어 왔다. 이는 르네상스 기간을 14세기에서 17세기까지 매우 폭넓게 잡는 경향을 낳았으며 이에 영향을 받은 한국의 문예사조사 관련서적들 역시 이 작품을 예외 없이 르네상스 문학으로 평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 기간 내의 작품들을 하나의 사조로 묶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점차 깨달아 시대구분이 미분화되고 있다. 즉 보통 17세기 문학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바로크라는 개념이 19세기에, 그리고 매너리즘(manierismo)이라는 개념이 20세기에 대두되면서 16-17세기를 전후한 문예사조의 지형은 더욱 얽히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따라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문학사적 위상 역시 매우 복잡해진다. 즉 세계에서 바로크 예술이 가장 활발하게 전개되었던 스페인에서 세르반테스는 르네상스 작가라기보다는 바로크 작가로 이해되는 경향이 우세하지만 동시에 이 두 사조들간에 위치한 매너리즘 작가로 평가하는 비평가들도 적지 않게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본 연구는 스페인어권 내에서 르네상스와 매너리즘 그리고 바로크 사조가 각각 세르반테스, 특히 그의 『돈키호테』에 대한 권리를 주장함으로써 일어나는 문학사적 혼란을 다소나마 바로잡아보는 데에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먼저 매너리즘과 바로크, 그리고 르네상스와 바로크의 성격을 당대의 시대정신과 연관해 『돈키호테』의 문학사적 위치를 모색해 보고 이를 바탕으로 세계관과 언어관적인 측면에서 이 작품의 문학적 특질을 분석해 보겠다.


2. 세르반테스의 문학사적 위상

2.1. 매너리즘과 바로크


     바로크 미학의 복권에 기반을 닦았던 하인리히 뵐플린(Heinrich Wölfflin)이 말하듯이 바로크는 흔히 르네상스 스타일의 해체적 단계라고 이해되고 있다. 그러나 바로크를 대체 혹은 보완하는 개념으로서 매너리즘이라는 사조가 등장하면서 문학사에 변수가 생긴다. 바로크 미학의 부활이 1920년대에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는데 반해 매너리즘은 1940년대에 들어 마르코 트레베스(Marco Treves, 1941)의 노력에 의해 하나의 사조로서 부각되기 시작된다. 그러나 뵐플린, 베르너 바이스바흐(Werner Weisbach), 칼 프리드리히(Carl J. Friedrich) 등 바로크 전문 비평가들에 의해 그 존재가 무시 또는 축소되다가 쿠르티우스(Ernst Robert Curtius)의 연구를 계기로 전기를 맞게 되었다. 쿠르티우스는 『유럽문학과 중세라틴』(Literatura Europea y Edad Media Latina, 1948)이라는 명저에서 종래에 바로크로 설명되던 모든 예술 경향을 매너리즘으로 대체시키면서 그 폭을 역사적으로 확장시키고 있다. 즉 매너리즘은 고전주의에 반대되는 모든 문학경향을 일컫는 말로서 유럽문학의 상수(常數)가 되어왔다는 것이다. 이는 바로크 미학의 복권과 재정립 과정에서 뵐플린과 에우헤니오 도르스(Eugenio d'Ors)가 바로크를 고전주의에 맞서는 대립적 항수로 파악하는 것과 같은 맥락에 있는 것이다. 도르스는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22개의 바로크 예술을 열거한 바 있는데 이에 반해 쿠르티우스는 기원전의 알렉산드리아 시대, 기원 후 14-138년의 로마 시대, 중세의 초기와 말기, 1520-1650년 사이의 본격 매너리즘 시대 그리고 1800-1830년 사이의 낭만주의 시대 등 5개의 반고전주의 시대를 들고 있다. 쿠르티우스의 견해는 그의 제자인 르네 호크(René Hocke)에게로 계승되어 그 범위가 대폭 확장된다. 르네 호크에 의하면 매너리즘이란 자연을 있는 그대로 모사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특이한 방식(manera)에 의해 재현해 내는 예술을 통칭하는 말이다.

     이후 바로크뿐만 아니라 매너리즘이라는 사조의 존재적 당위성을 옹호하는 학자들이 많이 생겨나 바로크/매너리즘 논쟁은 확대되고 있는데 양자간의 관계에 대한 이들의 견해는 크게 보아 3가지로 분류해 볼 수 있다.

     첫째, 매너리즘은 바로크와 상호 독립적이고 배타적인 관계를 맺고 있으며 설사 병립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최소한 예술사조 내에서 더 상위의 개념이다. 이러한 견해를 가지고 있는 대표적인 사람들로 쿠르티우스, 르네 호크 그리고 옥타비오 파스(Octavio Paz)와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를 들 수 있다. 쿠르티우스와 르네 호크는 앞서 본 대로 매너리즘이 바로크 양식을 대체하는 개념이라는 급진적 견해를 가지고 있는 반면, 옥타비오 파스는 두 양식을 같이 인정하기는 하되 바로크가 낭만주의와 함께 매너리즘의 한 양태일 뿐이라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파스에 따르면 예술사 내에서 매너리즘의 계보는 바로크-낭만주의-상징주의-아방가르드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에코 역시 바로크를 역사적 상수로 파악하는 에우헤니오 도르스의 기본 입장을 받아들이고 있으나 바로크 대신 매너리즘이라는 개념을 선호한다. 즉 그는 문학사의 흐름에서 고전주의와 매너리즘을 초역사적 상수로 간주하며 더 나아가 현대의 포스트모더니즘 역시 ‘네오-매너리즘’이라는 의견을 개진한다.

     둘째, 매너리즘과 바로크가 배타적인 관계라는 점에는 동일하나 바로크가 유일한, 혹은 더 상위의 개념이라는 견해로서 베르너 바이스바흐, 헬무트 하츠펠트(Helmut Hatzfeld), 장 루세(Jean Rousset), 칼 프리드리히 등이 대표자들이다. 하츠펠트는 르네상스 이후의 예술을 바로크라는 큰 틀 안에서 이해하면서 이를 다시 세분하여 매너리즘, 고전 바로크(barroco clásico) 그리고 바로키즘(barroquismo)으로 구분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매너리즘은 바로크의 초기 형태이며 고전 바로크는 바로크 예술이 완벽하게 만개한 상태, 그리고 바로키즘은 바로크의 쇠퇴기로서 스페인 건축의 추리게리스모(churriguerismo) 혹은 프랑스의 로코코 양식에서 보듯이 그 양식이 극단화된 경우이다. 하츠펠트는 유럽 각국의 사조 전개가 각각 시기적으로 편차를 보이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가 가장 바로크적인 나라라고 간주하는 스페인의 경우 매너리즘은 1570-1600년, 바로크는 1600-1630년, 그리고 바로키즘은 1630-1670년 사이에 전개된 것으로 파악한다. 칼 프리드리히 역시 비슷한 입장에서, 매너리즘은 르네상스나 바로크와 같이 정식으로 발전된 예술사조적 양식이 아니라 두 사조간의 과도기적 양태에 불과하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셋째, 매너리즘은 르네상스와 바로크 사이에 위치한 하나의 예술사조로서 인정되어야 한다는 견해도 만만치 않은데, 아놀드 하우저(Arnold Hauser), 와일리 사이퍼(Wylie Sypher), 뵐플린 등이 그 대표자들이라 할 수 있다. 먼저 사이퍼는 『르네상스 스타일의 네 단계』(Four Stages of Renaissance Style, 1955)라는 책에서 1400년에서 1700년에 이르는 시기를 르네상스/매너리즘/바로크/후기 바로크 등 4단계로 나누어 고찰한다. 그는 1520-1620년 사이의 매너리즘 예술이 근대철학과 종교개혁 등으로 인해 야기된 영혼과 육체간의 긴장과 애매모호성의 표현이며 1620-1680년간에 전개된 바로크는 이러한 긴장의 해소를 보여주는 예술이라고 주장한다. 한편 아놀드 하우저는 매너리즘이 보통 1575-1650년간 폭넓게 전개된 예술로서 르네상스의 조화가 상실된 세계관적 바탕 하에 주지적 성격을 가진 운동이며 이에 반해 바로크는 좀더 민중적이고 감정적이며 민족적 색채가 짙은 정신경향의 표현이라고 주장한다. 사이퍼와 하우저는 매너리즘을 르네상스와 바로크 사이에 정식으로 존재하는 예술사조라고 인정하며 더 나아가 바로크보다 매너리즘을 더 호의적으로 파악하는 자세를 보여준다. 이에 반해 뵐플린은 매너리즘을 독립된 양식으로 인정하면서도 예술사조의 두 축을 고전주의와 바로크라고 파악하면서 매너리즘보다는 바로크를 더 상위의 양식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바로크는 르네상스 양식의 해체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매너리즘이든 바로크이든 그 시기와 성격 그리고 우열관계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설은 무수히 많지만 궁극적으로 볼 때 중요한 것은 그것이 과연 특정 시대와 예술을 더욱 명확히 파악하기 위해 설정된 유익한 개념이냐 하는 점이다. 따라서 이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15세기에서 18세기에 이르는 유럽 사회의 세계관 혹은 시대정신의 변화와 그것을 담지해 내는 문학과 예술의 특징적 양상들을 분석하는 작업이 필요하며 이는 『돈키호테』의 예술사조적 맥락을 파악하는데 기반이 될 것이다.

     먼저 매너리즘을 바로크보다 상위의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는 르네 호크는 바로크와의 특별한 비교연구 없이 매너리즘의 특징적 양상으로 모순성, 대조법, 기유(奇喩)주의(conceptismo), 잃어버린 낙원에 대한 향수, 죽음에 대한 고뇌와 신비, 시간에 대한 공포, 불규칙성, 미로로서의 세계, 파편화 등을 들고 있는데 이는 대부분 바로크 예술의 특징으로 논의되던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같은 입장에 있는 파스에 따르면 매너리즘은 르네상스 양식을 부정하거나 과장하는 데에서 나오는 산물임과 동시에 바로크의 필연적인 선조가 된다. 이 바탕 위에서 매너리즘은 주지적, 모순적, 철학적임에 반해 바로크는 은유적, 회화적, 미학적이며 전자가 지성을 지향하는 기유(concepto)의 승리라면 후자는 주로 시각적 감각을 지향하는 이미지의 승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파스는 각각의 사조에 해당되는 작가들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지적하지 않고 있다.

     이에 반해 바로크가 매너리즘을 포괄하는 개념이라고 이해하는 하츠펠트에 따르면, 매너리즘은 뚜렷한 예술적 이념과 목적 없이 주지적인 변덕을 통해 자연적인 것을 왜곡시키는 재미에 맛을 들인 예술이다. 그러나 바로크는 정신적인 긴장의 예술로서 영혼의 평화를 갈망하며 정련된 형태의 표현과 고상한 문체를 지향하며 바로키즘은 이러한 바로크 양식이 형식화되어 과장과 장식 그리고 놀라움의 미학을 추구한다고 본다. 다시 말해 매너리즘이 후기 르네상스 양식을 형식적으로만 받아들이고 세련화시킨 것이라면 바로키즘은 고전 바로크 양식의 형식적 잔해만이 남은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것이다. 하츠펠트에 따르면 스페인 문학에서 바로크 문학은 공고라의 매너리즘에서 시작하여 세르반테스에서 완성되며 케베도와 칼데론 델 라 바르카의 바로키즘으로 이어진다.

     한편 르네상스와 바로크 사이의 개념으로 파악하면서도 매너리즘에 매우 호의적인 아놀드 하우저에 따르면 매너리즘은 주지적, 초현실주의적, 귀족적인 16세기의 양식임에 반해 바로크는 표현적, 감정적, 민중적, 민족주의적인 17세기의 양식이다. 결국 매너리즘은 고전주의와 반고전주의, 자연주의와 형식주의, 감각주의와 정신주의 사이의 긴장의 형태로서 16세기의 문학과 미술을 모두 포괄하는 양식이며 따라서, 하우저에 의하면, 미술에서 미켈란젤로부터 엘 그레코(El Greco), 문학에서 공고라로부터 케베도에 이르기까지 (세르반테스도 포함하여) 모두 매너리즘 예술가로 분류된다.

     이외에도 수많은 학자들이 매너리즘과 바로크의 관계에 대해 언급하고 있으나 대부분 지금까지 언급된 틀을 크게 넘지는 않고 있다. 이를 우리는 비교적 객관적인 입장에서 두 양식에 대한 비평가들의 입장을 정리해 놓은 에밀리오 카리야의 견해를 바탕으로 그 문체적 특성들을 비교해 본다면 먼저 르네상스는 고전주의, 객관성, 균형과 조화, 영웅적 이상 그리고 교훈주의라는 특징적 양상을 보여준다. 반면 매너리즘은 반고전주의, 주관주의와 주지주의, 귀족주의와 세련미, 과도한 장식, 역동성, 중세주의 혹은 고딕주의 등의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이밖에도 실험주의, 예술을 위한 예술, 환상성의 강조 등도 엿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바로크는 고전주의와 반고전주의의 애매한 경계에 위치하며, 종교적 가치가 우선시되고 매너리즘과 마찬가지로 역동성이 강조된다. 또한 장대하고 화려하며 정치적, 종교적 의도가 깔려있으며 추하고 그로테스크한 것까지도 재현의 대상으로 삼는 사실성을 보여주면서 엘리트주의적인 매너리즘보다 민중적 정서에 더 가까이 있다.

     에밀리오 카리야 자신도 토로하고 있듯이 많은 경우 바로크적 양식은 매너리즘 양식과 구분하기 힘들 정도의 유사성을 가지고 있으며 매너리즘의 특징으로 열거한 주관주의와 장식미, 역동성 등은 바로크에서도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필자는 더 나아가 두 사조를 구분하는 것이 소모적인 논쟁과 그릇된 가치판단을 야기시킬 수도 있으며 거시적인 관점에서 배타적 관계가 아니라 바로크라는 큰 틀 안에서 상호보완적 관계로 파악하는 것이 문학사의 흐름을 명료하게 이해하는데 더욱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다. 매너리즘과 바로크를 적어도 문학사적인 측면에서는 엄격히 구분하기 힘든, 혹은 불필요한 이유로는 다음과 같은 요인들을 들 수 있다.

     첫째, 많은 경우 매너리즘과 바로크는 본질과는 상관없는 용어상의 문제로서 같은 양상을 가리키고 있다. 특히 이러한 경향은 바로크와 매너리즘을 양립하지 않는 배타적 관계로 파악하고 있는 비평가들에게 잘 나타난다. 이는 “우리가 매너리즘이라 명명하는 많은 것들은 다른 책에서 바로크라는 이름으로 나타난다”라고 토로하는 르네 호크의 말을 통해서도 잘 볼 수 있다.

     둘째, 두 사조는 학자들에 따라 시기적으로 겹치기도 하고 뒤바뀌기도 하는 등 많은 편차를 보여준다. 예를 들어 하츠펠트에 의하면 스페인에서 매너리즘은 1570-1600년, 바로크는 1600-1630년 사이의 사조임에 반해 다빗 코소프(David Kossoff, 1974)에 의하면 각각 1565-1588년과 1585-1650년, 호세 후안 아롬(José Juan Arrom)에 의하면 각각 1594-1624년과 1624-1684년의 시기에 해당된다. 이는 매너리즘과 바로크가 시기적인 선후의 관계라기보다는 한 시대 내에 공존하면서 나타나는 다른 국면이라는 점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셋째, 두 사조는 르네상스 말기의 “르네상스적 우울”에서 이미 그 표징을 읽을 수 있는 근대성에 대한 최초의 회의감 혹은 두려움을 노출하는 양식이다. 크게 보아 16-17세기는 새로운 의식과 사회문화적 양태로서의 근대성이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마샬 버먼(Marshall Berman)이 말하고 있듯이 근대성이란 근대화 과정에서 생겨난 인간경험의 차원으로서 세계의 변혁을 약속하는 동시에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위협하는 역설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스페인 바로크 문학의 화두가 되고 있는 환멸(desengaño)이라는 양태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배경 하에서 바로크 문학은 회의(duda)에 휩싸인 위기의 사회를 표출하는 동시에 그 긴장과 모순을 해결하는 임무까지 떠맡게 된다. 앞서의 논의에 따르면 매너리즘이 이 긴장의 표출이라면 바로크는 그것의 해소를 지향하는 사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양자가 모두 이전까지의 세계관을 지탱해 주었던 초월성으로부터 독립해 이를 회의하고 상실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보인다. 이는 옥타비오 파스가 케베도의 ‘고독의 시’(poesía de la soledad)에서 발견한 근대성의 표징인 바, 결론적으로 두 사조 모두 문학적 근대성의 표현이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넷째, 철학자 이정우는 근대성의 문제를 언급하면서 “계열”과 “문턱”이라는 개념을 중요시한다. 예를 들어 문학사라는 계열 내에서 산문의 등장, 타자기 발명, 연재소설의 탄생 등 수많은 문턱들이 존재하는데 이 문턱들의 높이를 어떻게 가늠하는가가 문학사 서술에서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문체라는 하위 계열에서 르네상스 문학이 꺾어지기 시작하는 가장 큰 문턱은 무엇이 될까? 그것은 단연 주관주의의 도래와 언어의 자기반영성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초월성의 상실이 세속적 근대성의 시대정신적 문턱이라면 주관주의와 자기반영적 언어는 문학적 근대성의 문체적 문턱이 될 것이다. 장식미, 과장미, 역동성 등 매너리즘과 바로크의 특성으로서 앞서 보았던 문체적 양상들은 모두 이러한 문턱을 뛰어넘은 산물이다.

     다섯째, 르네상스의 문턱을 뛰어넘은 뒤 찾아온 세계관적 긴장의 표출과 해소는 앞서 매너리즘과 바로크를 구분하는 가장 특징적인 요소가 되었던 주지적(intelectual) 성격과 감정적(emotivo) 성격의 대립과 상응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 문제의 표출이 곧 해소의 전제가 되듯이 주지적인 것과 감정적인 것은 대립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이룬다. 즉 이 두 경향은 사조로 구분될 만큼 결정적인 요소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한 사조 내의 두 요소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프랑크 와른케(Franck Warnke)는 이 두 요소를 지성적 요소(tendencia cerebral)와 관능적 요소(tendencia sensual)로, 레사마 리마(Lezama Lima)는 차가운 바로크(barroco frío)와 빛나는 바로크(barroco brillante)로 나누고 있다.

     마지막으로, 두 시기의 문체가 사조적으로 구분할 만큼 명백하지 않다는 점은 같은 작가라 하더라도 비평가들에 따라 사조의 편입이 제 각각이어서 오히려 혼란만 가중시킨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공고라는 쿠르티우스, 르네 호크, 사이퍼, 하우저, 하츠펠트 등의 비평가들에 따르면 매너리즘으로, 다마소 알론소(Dámaso Alonso), 오로스코 디아스(Orozco Díaz), 마누엘 두란(Manuel Durán), 발부에나 프랏(Valbuena Prat), 코소프 등의 비평가들에 의하면 바로크로 분류되고 있고, 로페 데 베가(Lope de Vega)는 쿠르티우스에 의하면 매너리즘으로, 코소프에 의하면 바로크로, 그리고 하츠펠트에 의하면 후기 바로크로 구분되고 있으며, 발타사르 그라시안(Baltasar Gracián)은 쿠르티우스와 사이퍼에 의해 매너리즘으로, 오레스테 마크리(Oreste Macrí)에 의해 바로크로, 포르케라스 마요(Porqueras Mayo)에 의하면 바로크와 매너리즘의 중복으로, 그리고 하츠펠트에 의하면 후기 바로크이자 전기 로코코 양식으로 이해되는 실정이다. 이러한 자의적인 잣대는 우리가 보고자 하는 세르반테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즉 하우저와 사이퍼는 그를 매너리즘으로, 하츠펠트와 호아킨 카살두에로(Joaquín Casalduero)는 바로크로, 포르케라스 마요는 두 경향의 혼합으로 각각 간주하고 있는 것이다.

     매너리즘과 바로크의 사조구분에 대한 논의는 20세기초의 아방가르드와 모더니즘 논쟁에서 교훈점을 발견할 수 있다. 즉 아방가르드와 영미 모더니즘이 각기 상이한 문체와 지향점을 가지면서도 전체적으로는 세기초의 인식론적 혼돈과 존재론적 회의를 기반으로 동전의 앞뒤 면과도 같이 자율적 존재로서의 예술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모더니즘이라는 큰 틀 안에서 이해되고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또한 19세기말 극단적인 자연주의를 지향했던 인상주의가 질량전화의 법칙에 의해 심미적이고 자족적인 예술의 출발점이 되며 이후 20세기초의 모더니즘 예술의 기반이 되었다는 사실은, 르네상스 후기의 미켈란젤로의 파격적 회화와 이를 따르는 매너리즘 화가들의 화풍이 고전주의적 규범에서 일탈하여 예술사상 처음으로 객관주의에서 주관주의로의 선회를 보여주는 바로크라는 큰 물줄기로 합치되고 있다는 점과 놀라울 만큼의 예술사적 상응성을 보여준다는 사실을 주목해보자. 이는 20세기 초 아방가르드 미학이 등장하면서 바로크 미학에 대한 재평가 바람이 불었으며 “네오바로크”라는 용어가 쓰이기 시작했다는 사실과도 결코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결론적으로 필자는 매너리즘과 바로크가 상호 배타적인 대립관계를 이루며 서로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기보다는 16-17세기를 관통하는 스페인적인 시대정신 내에서 상호보완적으로 작용하는 문체 차원의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리라 본다.


2.2. 르네상스와 바로크

     앞장의 결론대로 매너리즘과 바로크의 특징적 문체들을 존중하되 그것을 바로크라는 틀 안에서 파악하고자 할 경우 세르반테스의 문학사적 평가에 있어서 진짜 문제는 그가 매너리스트인가 바로크 작가인가를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르네상스 작가인가 바로크 작가인가를 구분하는 논의로 초점이 맞추어진다. 실제로 많은 비평가들은 『돈키호테』에서 전형적인 르네상스적 경향을 발견한다. 아메리코 카스트로(Américo Castro)는 『세르반테스의 사상』(El pensamiento de Cervantes)에서 플라톤이나 에라스무스의 영향과 레온 에브레오(León Hebreo)의 관계를 언급하면서 세르반테스를 르네상스 작가로 분류하고 있고 호세 마누엘 블레쿠아(José Manuel Blecua)도 『황금세기의 시』(Sobre poesía de la Edad de Oro)에서 이 견해에 따르고 있다. 또 마르셀 바타욘(Marcel Bataillon)과 다마소 알론소는 각각 『에라스무스와 스페인』(Erasmo y España)과 『세르반테스 소설』(La novela cervantina)에서 『돈키호테』를 르네상스 후기 혹은 르네상스와 바로크의 과도기 작품으로 간주한다.

     미학적인 측면에서 본 르네상스와 바로크의 시대구분은 앞서 매너리즘과 바로크를 비교하면서 자연스럽게 정리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즉 바로크는 균형과 조화를 강조하는 르네상스의 고전주의적 성향을 지양, 혹은 부정하는 사조로서 장식적이고 역동적인 반고전주의적 성향을 드러내며 주관주의 예술의 시작을 알린다. 따라서 여기서는 구체적으로 『돈키호테』에 관련된 여러 논의들을 분석하면서 이 작품의 문학사적 위치를 탐색해 보겠다. 이 작품의 르네상스적 성향을 주장하는 비평가들의 입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고 할 수 있다. 첫째, 시대적으로 세르반테스가 태어나고 활동한 시기는 스페인 역사에서 전형적인 르네상스기에 해당된다. 둘째, 사상적으로 세르반테스는 인문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돈키호테』 역시 그러한 속성을 보여준다. 셋째, 문체론적으로 『돈키호테』는 언어의 간결함과 신중함을 지향하여 스페인 바로크 문학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과식주의 혹은 기유주의를 발견할 수 없다.

     먼저 시대적으로 보아 세르반테스가 르네상스의 인간이라는 주장은 그가 생애의 대부분을 살았던 시대가 스페인의 역사 구분에서 르네상스기에 속한다는 입장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흔히 스페인의 르네상스는 시기적으로 해가 지지 않는 스페인 제국의 융성시대와 맞물려 있다. 구체적으로는 국토수복전쟁의 와중에 카스티야 왕국의 이사벨 여왕과 아라곤 왕국의 페르난도 왕이 혼인을 함으로써 기독교 왕국이 통일된 1469년을 그 출발점으로, 그리고 펠리페 2세가 세상을 떠나는 1598년을 그 종착점으로 보는 경향이 우세하다. 1547년에 태어나 1616년에 세상을 떠나는 세르반테스는 생애 초기 약 10년을 카를로스 1세 치하에서, 약 42년을 펠리페 2세 치하에서, 그리고 생애의 마지막 부분인 18년 정도를 펠리페 3세 치하에서 보냈으니 사실상 펠리페 2세 시대의 작가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한 작가가 속한 세대를 구분하는 데에 있어서 보다 중요한 점은 그의 생물학적 세대가 아니라 작품산출 당시의 사회학적 세대라고 할 수 있다. 세르반테스는 1547년 생이기는 하나 『돈키호테』 1부는 1605년, 2부는 1615년, 『모범소설집』(Novelas ejemplares)은 1613년 그리고 『페르실레스와 세히스문다』(Persiles y Segismunda)는 사후인 1617년에 나오는 등 그의 주요 작품들이 모두 펠리페 3세 시대에 출판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평생 온갖 고난과 역경을 겪으며 각지를 떠돌다가 1606년에서야 마드리드에 정착하게 되는 작가의 삶의 여정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그의 주요 작품들이 산출되는 시기는 공고라, 케베도, 로페 데 베가 등 정통 바로크 작가들의 활동 연대와 일치하며 이는 단순한 생몰 연대의 기준에 따라 그를 르네상스 시대로 분류하는 것이 무리임을 말해준다.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를 산출해 낸 전후의 시기, 구체적으로 말해 1598년부터 1620년 사이의 기간은 무적함대의 패배(1588)로 예감되었던 스페인의 몰락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기간이었다. 외적으로는 유럽 내에서의 정치적․군사적 주도권 상실, 내적으로는 살인적인 인플레이션, 잦은 흑사병의 창궐, 1600년도 중반에 있었던 모로인들의 추방으로 인한 농업의 몰락과 금융기관들의 파산, 도적떼들의 출몰 등으로 이미 합스부르크 왕가의 스페인은 총체적인 해체 단계에 접어들고 있었다. 이러한 사회해체 현상에 대해 안또니오 마라발은 몰락(decadencia)보다는 보다 지속적이고 정서적인 분위기를 포착케 해주는 위기(crisis)라는 용어를 구사하는데, “몰락”이든 “위기”든 모두 바로크와는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안또니오 마라발의 말대로, 17세기의 스페인 사람들은 해체되어 가는 스페인 제국의 임종을 지키면서 르네상스 시기와는 확연히 다른 불안과 고뇌의 상태를 체험해야 했던 것이다. 세르반테스의 작품, 특히 『돈키호테』는 이러한 환멸의 시대를 배경으로 태어난 바로크 작품이다.

     둘째, 사상적인 측면에서 세르반테스는 에라스무스로 대표되는 인문주의의 영향을 절대적으로 받았으며 이는 『돈키호테』에도 잘 드러나기에 이 작품을 르네상스의 산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이와 관련해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세르반테스는 르네상스의 정점에서 세계를 바라본다”라고 말하며 아메리코 카스트로 역시 이 견해를 따르고 있다. 작품에 나타나는 자연 예찬, 황금세기에 대한 동경, 민중 언어와 경구의 구사, 정의와 도덕의 찬양 등은 모두 세르반테스의 에라스무스주의적 그리스도교 신앙을 말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비평가․학자들은 세르반테스에게 미친 에라스무스의 영향에 대해 의심하지 않으면서도 『돈키호테』를 전형적인 르네상스 사조의 작품으로 간주하는 데에는 반대하고 있다. 호세 루이스 아베얀은 후안 발레라(Juan Valera), 메넨데스 피달(Menéndez Pidal), 마라발 등의 연구를 토대로 『돈키호테』에 나타나고 있는 중세적인 요소에 주목하고 있다. 이들은 이 소설이 비록 기사소설을 비판하기 위해 쓰여졌음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 중세의 기사도 정신에 의해 움직이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근대의 문턱에서 중세 시대를 찬양한 마지막 작품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주인공 돈키호테는 중세의 갑옷을 입고 근대 세계로 뛰어든 주인공으로서, 정통 가톨릭 신앙을 수호하고 군주에 충성을 바치면서 모로족을 무찔렀던 중세의 영웅과 자신을 동화(identificación)시킨다.

     그렇다면 세르반테스로 하여금 이렇게 중세와 르네상스의 가치관을 충돌시키게 하였던 원인은 무엇일까? 아베얀은 그것이 바로크적인 위기의식의 발로라고 말한다. 즉 르네상스의 세례를 받고 난 뒤 이미 세상이 바뀌었는데도 중세를 그리는 시대착오적인 사고는 스페인 제국의 몰락이 가시화된 당대 사회의 위기의식이 낳은 긴장의 산물이라 볼 수 있다. 결국 부분적으로 『돈키호테』는 르네상스적인 요소를 보여주지만 동시에 중세적인 요소 역시 발견되며 이러한 “모순된 조화”는 바로크 시대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세르반테스가 작품에서 환기시켰던 중세적 이상이 종교적으로 가시화된 것이 바로 반종교개혁(Contrarreforma)이다. 스페인이 중심이 되어 예수회와 트리엔트 공의회를 두 축으로 전개되었던 반종교개혁은, 베르너 바이스바흐의 연구가 잘 보여주듯이, 바로크 문화의 꽃을 피게 하였다. 즉 바로크는 그리스도교 예술 전성기의 산물로서 당대의 반종교개혁의 본질적인 정서를 표현할 임무를 띠고 있었던 것이다. 세르반테스의 개인적인 삶을 볼 때에도 그의 신앙심은 확고부동했으며 스스로도 자신이 착실한 구교도(舊敎徒)임을 끊임없이 강조하고 있다. 돈키호테 역시 비록 광기와 르네상스적 이성을 보여주지만 작품 내에서 가톨릭 신앙에 위배되는 행위는 결코 일으키지 않으며 시종일관 모범적인 신앙인으로 그려진다. 이 때문에 헬무트 하츠펠트는 이 작품이 이념적인 측면에서 반종교개혁의 도덕적 이상을 온전히 표현하고 있으며 트리엔트 공의회의 미학적 규범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고 말한다. 철학자 우나무노는 돈키호테의 모습에서 일체의 육체적 욕구를 자제하는 스페인 교회의 진정한 사제상 마저 발견한다. 결론적으로 『돈키호테』는 르네상스의 세속적 인문주의가 종교적 인문주의로 전환된 바로크 시대의 작품으로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돈키호테』라는 작품 내에는 전형적인 바로크 작가들이 보여주고 있는 문체적 특징, 즉 과식주의와 기유주의를 발견할 수 없기에 르네상스로 편입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이 작품에는 오히려 르네상스 사조에서 볼 수 있는 명석(claro)하고 온건한(moderado) 문체가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바로크를 문체의 외형적인 화려함과 과장성만을 기준으로 규정하려는 편협한 잣대의 산물이다. 또한 과식적이고 복합 은유적인 바로크의 문체가 가지고 있는 세계관과 언어관적 기반을 간과하는 데에서 나온 것이다. 『돈키호테』의 바로크적 문체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패러디의 개념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하겠다.


3. 『돈키호테』의 바로크 미학

3.1. 마법에 걸린 현실: 세르반테스의 세계관


     르네상스, 매너리즘 그리고 바로크에 대한 이론적 분석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한 작품이 르네상스의 문턱을 넘었느냐의 여부는 결국 그것이 문학적 근대성을 성취하고 있느냐라는 문제로 귀결될 수 있다는 점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필자는 『돈키호테』가 세속적 근대성이 초래한 회의를 문학적 근대성으로 담지해 낸 전형적인 근대 문학이며 따라서 르네상스의 문턱을 넘어선 바로크 문학이라 평가하는데 이는 먼저 작품에 나타나는 세계관적 측면을 통해서 확인해 볼 수 있다. 근대인의 심성에 자리잡은 가장 큰 특징들 중의 하나는 바로 세계의 불확실성에서 비롯되는 “의심”이 될 것이다. 시대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한 채 영문도 모르고 낙원에서 추방된 근대인은 의심의 바다에 살면서 불확실하고 적대적인 세계 내의 고아가 된다. 세르반테스와 같은 시기를 살았던 영국의 형이상학파 시인, 존 던(John Donne, 1573-1631)은 이런 의미에서 “모든 것은 의심의 대상이다”라고 말한다. 이에 역시 동시대의 철학자 데카르트(Decartes, 1596-1650) 역시 “주체”를 초월적 요소로부터 분리시켜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을 의심함으로써 철학계열에서 근대성의 문턱을 넘어선다. 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는 명제로 주관주의(subjetivismo) 철학의 출발점을 알리는데 세르반테스는 이미 그에 앞서 근대 주관주의의 요소를 보여주고 있다. 『돈키호테』를 통해 작가가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철저한 부정과 의심을 통해 눈앞에 펼쳐지는 객관세계를 주관적 현실로 치환하는 작업이었다. 주인공의 광기는 “나의 지존성”(supremacía del yo)을 현실에 부과하는 치환작업의 최후의 도구였던 것이다.

     그러나 같은 현실에서 각각 철학과 문학에서의 근대성의 출발을 알리는 데카르트와 세르반테스의 회의는 궁극적으로 역사적 근대성에 대한 상반된 태도를 보여준다. 즉 데카르트의 의심을 낳았던 현실, 즉 해체되어 가면서 어느 것도 확실하게 보이지 않는 세계는 이 철학자로 하여금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인식을 획득하기 위한 “방법론적 회의”(duda metódica)를 가지게 한다. 데카르트의 의심은 존재론적 회의에서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으로 지향했던 바가 근대 이성에 바탕한 낙관주의를 바탕에 깔고 있는 지적인 확실성, 즉 인식론적 회의였다. 이에 반해 세르반테스의 의심은 기사도의 실천(praxis)을 위한 매개가 되는 것으로서, 돈키호테는 햄릿과 함께 이성에 의해 세계를 해명할 수 있다고 믿었던 근대의 낙관주의를 풍자한 최초의 근대적 주인공이 된다.

     안토니오 마라발은 『바로크 문화』에서 근대성의 요소로서 봉건적 질서의 붕괴, 자본주의 경제의 발흥, 대도시의 발전, 국민국가의 출현, 가톨릭의 쇠퇴, 이성주의 철학의 등장, 근대과학의 발전 등 7가지를 들고 있는데 이 요소들은 사회 전반적으로 여러 여파를 미치고 있다. 우선 이전까지의 총체적 세계관이 혼돈에 빠지면서 명예, 도덕, 신앙 등 스페인을 지탱해 왔던 전통적인 가치관이 붕괴된다. 질서와 혼돈을 동시에 수반하는 근대성의 속성에 따라 야기된 세속적 삶의 허위적이며 불안정한 성격은, 세르반테스의 개인적인 불행과 오버랩되어 돈키호테의 환멸로 전이된다. 중심을 잃어버리고 낙원을 상실한 근대인은 “고아의식”, 즉 신학적․형이상학적으로 세계를 지탱해 오던 신념체계가 붕괴되고 “주체”의식과 개인주의가 득세하면서 소외와 고독감 그리고 혼돈의식을 가지게 된다. 『돈키호테』라는 작품이 종국적으로 보여주고자 한 것은 “과연 진정한 현실이란 무엇인가?”라는 존재론적 물음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현실의 모든 인간들은 단지 세계라는 무대에 선 가면을 쓴 배우들로서 죽음으로써만 이 불가해한 현실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2부 12장) 돈키호테의 말에서 볼 수 있듯이 세르반테스는 마법에 걸린 듯한 세계의 불가해성을 처절하게 인식하고 있었던 최초의 근대 작가인 것이다.

     이러한 의식은 특히 『돈키호테』의 1부보다는 2부에서 더욱 잘 드러난다. 불확실한 근대 세계를 살면서 확실성의 부호에 집착하고 있는 돈키호테는 기사소설의 텍스트 세계를 총포가 등장한 현실 세계에 부과하려 한다. 그러나 항상 모든 사건의 중심에 서 있으며 생각은 곧 행동으로 옮겨지는 1부에서와 달리 2부에서 돈키호테는 비록 산전수전의 고초는 줄어들지만 고뇌는 늘어간다. 세계의 불확실성을 어렴풋이 깨달으면서 의심과 함께 우수가 그의 영혼에 드리워지며 세상을 떠나면서 결국 “이성”을 되찾는다. 옥타비오 파스는 근대 소설이 “위대한 희망”과 “잃어버린 환상”이라는 두 명제로 압축할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돈키호테』야말로 매혹에서 깨어나 슬픈 이성을 되찾은 최초의 환멸소설이 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루카치가 『소설의 이론』에서 『돈키호테』는 기독교적 신이 세계를 떠나고 정착하지 못한 영혼의 인간이 고독해지는 시대의 문턱에서 태어난 최초의 위대한 소설이라 한 지적은 정당하다. 그가 지적하듯이 이 작품은 기존의 가치체계에 거대한 혼돈이 발생하고 있던 시대에 내면성이 외적 삶의 산문적 통속성에 대항해 벌인 최초의 위대한 투쟁이다. 루카치에 의하면 세계가 신으로부터 버림받고 있다는 사실은 모든 인간적 노력에 선험적 좌표가 부여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럴 때의 영혼은 자신의 행동무대인 외부세계보다 좁은 유형으로 혹은 넓은 유형으로 나타나게 되는데 『돈키호테』는 외부세계보다 좁은 (혹은 외부세계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했거나 아직 어리둥절한) 영혼이 현실에서 겪게 되는 좌절을 그린 작품인 것이다.

     중심 축과 총체성이 상실된 혹은, 미셀 푸코가 말하듯이, 말과 사물이 분리된 사회에서 불안정한 언어와 사회적 질서를 추구하는 전통적 가치관 사이의 딜레마를 표출하고 이를 해결하는 것은 세르반테스와 로페 데 베가 뿐만 아니라 셰익스피어를 포함한 당대 대부분의 작가들의 초미의 관심사였다. 따라서 『돈키호테』의 근대적 소설기법은 사회의 세속화가 전면화되면서 경험하게 되는 해체의 위기와 인간존재의 불확실성을 형상화하려는 미학적 시도였다고 볼 수 있다. 그 결과 이제 문학은 중심을 잃어버린 시대의 또 하나의 현실로서 급기야는 외부 현실을 전복하기에 이르며 이는 근대 문학의 탄생을 뜻하는 것이었다.


3.2. 풍자의 패러디

     불확실한 현실 앞에 선 인간은 세계해명의 불가능성에 마주쳐 현실을 담아내지 못하는 관념화된 언어에 회의적 시선을 던지고 언어와 현실, 말과 사물의 거리를 인식케 된다. 미하일 바흐친(Mijaíl Bajtín)에 의하면 16세기에 일어나는 말과 사물의 분리는 재현 representación의 차원에서 볼 때 무능한 언어에 대한 인식이며, 이 결과 동시에 언어가 현실로부터 독립하게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는데 그것의 극적인 양태가 패러디이다. 패러디는 현실을 직접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 텍스트에 의지해 현실을 반영함으로써 그 텍스트의 관습화된 반응을 거부하고 기존 언어의 질서를 파괴하며 더 나아가 그 언어에 기반하고 있는 현실을 전복한다. 바흐친은 초기의 패러디가 언어와 현실간에 거리를 두게 함으로써 그리고 모든 예술의 정의가 될 인위성을 명백히 함으로써 소설의 길을 준비했다고 말한다.

     전통적인 기사도 소설의 형식을 따르면서도 기사도 소설을 비판하기 위해 쓰여졌다는 『돈키호테』는 패러디의 본질을 이상적으로 구현하고 있는 작품이다. 편력여행을 나가는 기사와 그 종자, 정의를 실현하는 와중에서 그가 겪는 고충과 영광, 한 여성에게 바치는 지순한 사랑 등은 두말할 나위 없이 이 작품이 기사도 소설의 전형을 따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광기에 사로잡힌 기사의 행태로 인해 발생하는 유머와 희극성은 전통 기사도 소설에 익숙해 있는 독자들을 당혹하게 한다. 그의 행위는 외양과 본질, 현실주의와 이상주의, 신앙과 이성 등의 대립에서 긴장을 야기시키면서 기사소설의 시대착오성을 신랄히 조롱한다. 작가 자신도 1부의 서문에서 이 작품이 “기사도에 관한 서적이 세상 사람들에게 가지고 있는 권위와 힘을 타도하는 것 이외의 다른 목적은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나 릴리(Riley)의 말대로 세르반테스의 독창성은 기사소설을 단순히 풍자한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인 미친 기사로 하여금 기사소설을 모방하게 하고 이 소설을 삶에 적용시키려는 과정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기사소설을 패러디했다는 데에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비단 기사소설뿐 아니라 로만세(romance), 피카레스크 소설, 목가 소설 등 과거의 모든 정전을 패러디의 대상으로 삼는다. 작가는 서문에서 이미 선대 작가들의 문장과 격언들을 모방할 것임을 떳떳이 밝히고 있다. “독창성”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이해해야 할 “반복성”에 바탕을 둔 이 작품의 패러디 구조를 체계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쿠바의 소설가이며 네오바로크 이론의 전문가인 세베로 사르두이(Severo Sarduy)의 이론을 빌어오고자 한다. 사르두이는 패러디를 바흐친의 카니발 이론과 연관시켜 17세기와 20세기의 바로크 미학의 전형적인 구조적 특성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글쓰기에서의 패러디란 간단히 말해 작가가 스스로의 독창적인 주제와 기법을 구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쓰여져 있는 다른 글의 흔적을 찾아 덧씌우기를 하는 것으로써 역동성과 변신을 특징으로 하는 바로크 시학의 본질적 요소가 된다. 보이지는 않지만 표현된 글 위에 마치 투명용지처럼 겹쳐져 있는 다른 글의 흔적을 찾아가는 역동적인 독서를 유도하며 “열린 작품”을 지향한다.

     사르두이는 패러디를 상호텍스트성(intertextualidad)과 내(內)텍스트성(intratextualidad)으로 구분하고 있다. 먼저 상호텍스트성이란 외부 텍스트들과의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지는 패러디로서 인용과 회상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는 풍자와 비판적 기능으로서의 패러디를 말하는 것이다.

     인용이란 외부의 텍스트를 변형 없이 옮겨오는 기법을 말하며 독자가 쉽게 식별 가능하다. 『돈키호테』에서 가장 잘 볼 수 있는 인용의 기법으로는 두말할 나위 없이 박식한 독자, 돈키호테가 주워섬기는 역사적 인물과 작가들, 그리고 다른 작품들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과 문장을 들 수 있다. 아마디스 데 가울라, 돈 벨리아니스, 팔메린, 엘 시드, 베르나르도 델 카르피오, 모르간테, 몬탈반, 갈랄론, 헤라클레스 등 그 수효는 끝이 없으며 돈키호테가 외어서 옮기는 다른 작품의 문장들도 무수하다. “나의 이성을 만든 이성 아닌 이성에 나의 이성도 힘잃고 그대의 아름다움을 한탄하니 이 또한 이성이노라”(Feliciano de Silva의 『프로리세르 데 니케야』). “브리튼에서 왔을 때의 란사로테 님보다 귀부인들이 사모한 무사는 없었노라”(스페인 민요). 인용의 또 다른 형태로서 가장 빈번히 이 작품에 등장하는 것이 산초 판사의 입에서 거침없이 쏟아져 나오는 속담과 경구들이다. 산초 자신이 말하듯이 그는 책 한 권 분량보다도 더 많은 속담을 알고 있어서 언제나 입에서 그 녀석들이 대기하고 있다가 서로 밀치고 비비면서 먼저 나오려고 야단법석이라는 것이다(2부 43장).

     한편 회상이란 외부 텍스트가 적당한 변형을 거쳐 원 텍스트에 삽입되는 경우로서 일반 독자로서는 그것을 식별하기가 용이하지 않다. 세르반테스는 이 회상 기법의 명수라고 할 수 있어 기존의 표현을 이용하되 그 상투적 표현을 그대로 베끼는 것이 아니고 조금씩 변용시킴으로써 표현력과 해학미를 발생시킨다. 특히 그는 고전 작품이나 민담들에서 문장들을 빌어와 변형시킨다. 예를 들어 이 작품의 제일 첫 머리에 나오는 “그 이름을 기억하고 싶지 않은...”(de cuyo nombre no quiero acordarme)이란 문장도 이미 스페인의 고전인 『루카노르 백작』에서 차용한 것이며, 알고 보면 그것 역시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투스가 썼던 문장의 변형이다. 원래 세르반테스가 의도했던 해학과 풍자를 감안할 때 상호텍스트성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그의 패러디는 린다 허치언(Linda Hutcheon)의 정의대로 “비평적 거리를 둔 반복”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상호텍스트적인 패러디는 전체적으로 『돈키호테』를 상이한 텍스트들의 이종혼합적 콜라쥬로 만들어 버리면서 끌어들인 텍스트들을 풍자한다. 그러나 『돈키호테』의 패러디의 진가가 나타나는 것은 사르두이가 내텍스트성이라 분류한 차원에서이다.


3.3. 유희의 패러디

     상호텍스트성이 외부 텍스트의 미끄러짐이라면 내텍스트성이란 작품과 글쓰기 자체 내에 이미 내재화되어 있는 미끄러짐 구조를 말하는 것이다. 사르두이는 이 구조를 보다 자세히 분석하기 위해 줄리아 크리스테바(Julia Kristeva)의 그라마(grama)라는 용어를 빌려온다. 그라마는 투명하게 겹쳐진 다층적 텍스트의 각 단위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음성학적, 의미론적, 그리고 구문론적 등 3개로 분류된다. 상호텍스트적 패러디가 주로 풍자적 효과를 노린다면 내텍스트적 패러디는 유희적이고 과잉적이며 자기충족적인 효과를 산출해 낸다고 볼 수 있다.

     내텍스트성 중에서 음성학적 그라마(gramas fonéticos)는 수음중첩법(paronomasia)에서 대표적으로 볼 수 있듯이 순전히 음성적인 차원에서 일어나는 미끄러짐 구조를 말한다. 수음중첩법이란 기표상의 음성적이거나 형태적인 요소들의 반복을 통해 발생하는 것으로서 공고라, 케베도, 로페 데 베가 등의 바로크 작가들에 의해서 매우 빈번히 쓰이고 있었으며 『돈키호테』 내에서 무수한 예문을 들 수 있다. “sonadas soñadas, cala y cata, cosas y casos, estacas/espada, despeñar y despenar...”. 그러나 넓게 보면 음성의 순수반복 형태인 철자교환 anagrama (cosa/caso/caos, amor/roma), 첩운법 aliteración (“no estuviese escrita, estaría“, "su desdén y desengaño los conduce a términos de desesperarse”, “Soy más que contento desa condición y convenencia”, Mambrino/Malandrino/Martino/Malino), 어미반복법 similicadencia (maleante/estudiante, dedo/miedo, ofrecimientos/comedimientos, "veni, vidi, vici") 등 음성적 원리에 기반을 둔 대부분의 말장난 juego de palabras이 수음중첩법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볼 수 있다. 이밖에도 음성학적 차원의 패러디로 중복강의법(重複强意法) ("vivir la vida", "morir la muerte", "contar un cuento", “apartóse a una parte"), 관용적 표현 (“luego luego, casi casi, al cabo al cabo, de todo en todo, de lugar en lugar, poco a poco, punto por punto, de trecho a trecho..."), 의미강화를 위한 단어 반복 (“aventuras y más aventuras, palos y más palos..."), 같은 동사의 변화 ("hecho, hago y haré"), 접두사, 접미사를 이용한 반복 (“no hacía sino mirarle y remirarle y tornarle a mirar"), 구문의 도치 반복 ("Rindióse Camila, Camila se rindió“) 등 수많은 예를 들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주인공의 이름의 변형(Quijada, Quesada, Quejana, Quijana, Quijano) 역시 음성적 반복을 이용한 언어의 유희이며 동시에 당대인들의 정체성의 혼돈을 암시하는 의미론적 장치라 할 수 있다. 결국 음성학적 패러디의 원리가 되고 있는 반복은 순수 청각적, 혹은 시각적 효과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서 말장난의 분위기를 조성하며 궁극적으로는 독자들뿐만 아니라 작중인물들의 주제적 행보를 혼돈에 빠지게 한다.

     반면 의미론적 그라마(gramas sémicos)는 담화 뒤에 숨어있는 또 다른 텍스트 층을 분석함으로써 해독할 수 있는 것으로서 담화에서 기의가 자신을 지칭하는 기표가 텍스트 표면에 직접 부상하는 것을 원치 않음으로 인해 발생하는 독서지체 현상이며 이로 인해 더욱 능동적이고 풍부한 독서행위를 가능케 해주는 것이다. 이것은 앞서 본 단순한 기표의 증식과 혼동될 수 있으나, 증식이 음성적 기표들의 미끄러짐이라면 의미론적 그라마는 의미발생의 연기를 위한 장치로서 의미론적 미끄러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하여 특정한 의미소(意味素)들이 글쓰기 공간에서 억압되거나 금지되는 현상인 우설법(perifrasis)과 생략법(omisión) 등이 보통 구사된다. 그러나 의미론적 차원에서 『돈키호테』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패러디는 바로 작가의 “의도적 오류” 혹은 “실수의 미학”에 의한 의미의 연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실과 픽션, 현실과 환상 그리고 작가와 독자가 전복되는 상황에서 작가의 실수는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실수는 크게 3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1부의 10, 29, 30, 35, 36장에 나오는 서두의 요약문과 내용의 불일치인데 이는 작가가 작품을 탈고한 뒤 이것들을 마지막으로 서둘러 썼다는 데에 기인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작가 자신도 이를 알고 있으면서 방치함으로써 패러디 기법을 이용한 애매모호성을 발생시킨 효과를 노린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도둑인 히네스 데 파사몬테가 자기의 칼을 훔쳐갔다고 돈키호테가 말하는 장면이 있으나 (1부 30장) 이는 사실이 아니며 작가의 부주의 혹은 의도적 오류라 할 수 있다. 또한 1부 25장에서는 산초가 자기 당나귀를 잃어버렸다는 언급이 있으나 그것이 어떻게 발생된 일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앞서 아무런 사전 언급이 없었다. 이는 책의 재판을 찍으면서 23장에서 히네스가 그것을 훔쳐간 것으로 이유가 해명된다. 이에 대해서 산초는 2부 3장에서 1부의 잘못을 시정하지만 산손 카라스코가 또 다시 “당나귀가 아직 나타나지도 않았는데 산초가 같은 잿빛 당나귀를 타고 있었다고 작가가 써놓은 대목”, 즉 또 다른 작가의 실수를 지적하자 산초는 역사가나 인쇄공의 잘못이라고 둘러댄다. 마지막 실수는 산초 판사의 부인 이름이 매번 틀리게 나온다는 점이다. 즉 1부 7장에서는 마리 구티에레스, 1부 52장에서는 후아나 판사, 2부 5장에서는 테레사 판사, 2부 50장에서는 테레사 산차로 등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오류 역시 애매모호성을 발생시켜 의미를 연기시킴과 동시에 소설은 허구의 미학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일깨워주는 메타픽션적인 장치라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름의 변형과 더불어 작품 내에서 매우 빈번히 등장하는 인물의 변신 역시 음성학적 미끄러짐을 이용하여 중심 없는 정체성의 혼돈을 말해주는 동시에 의미론적 미끄러짐을 지향하는 수법이라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구문론적 그라마(gramas sintagmáticos)는 글자 그대로 한 텍스트 내에서 미끄러짐이 앞서 보았던 음성적, 의미적 차원이 아니라 구문론적으로 발생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주로 극중극(劇中劇) 형태로 나타나며 시보다는 산문에서 즐겨 구사되고 있는데 다른 패러디의 양태들과 마찬가지로 글쓰기의 동어반복적이고 자기충족적인 성격을 명확히 보여준다. 『돈키호테』는 일단 2부가 1부의 패러디이며 3번에 걸쳐 발생하는 주인공의 출정 역시 상호동일구조를 가진 패러디라 할 수 있다. 『돈키호테』에 등장하는 수많은 단편 작품들과 시구(詩句)들은 모두 극중극 형태를 이루면서 종착점 없는 주인공의 편력과 동궤를 이룬다. 1부의 예를 들어보면, 돈키호테의 풍차모험 -> 그리소스토모와 마르셀라의 사랑 이야기 -> 양떼에 대항해 싸우는 주인공 -> 카르데니오와 루신다의 이야기 -> 경솔한 남편 안셀모 이야기 -> 포로의 이야기 등이 극중극 형태로 삽입되어 있으며 카르데니오와 루신다의 얘기는 페르난도와 도로테아의 얘기를, 포로의 이야기는 끌라라의 사랑 이야기를 또 다시 낳고 있다. 극중극 기법 말고 또 다른 형태의 구문론적 그라마는 한 사건에 대한 여러 시점의 전개, 즉 조망주의가 있는데 이는 앞서 본 사자와의 만남에서처럼 3개의 시점이 겹치면서 발생한다.

     지금까지 보았듯이 사르두이의 패러디 이론을 적용해 볼 때 『돈키호테』라는 작품은 전체가 “미끄러지는” 구조를 가지고 있음이 밝혀진다. 러시아의 언어학자, 로만 야콥슨은 언어의 배열이 유사성에 근거를 둔 선택과 인접성에 바탕을 둔 결합의 2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고 본다. 그리고 시적 언어는 유사성(equivalencia)의 원리가 선택의 축에서가 아니라 결합의 축에서 이루어짐으로써 발생한다고 말한다. 이는 다시 말해 은유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대체 행위가 환유적인 차원에서 실행되는 것을 의미하는데 텍스트의 내재적 원리에 의한 이러한 미끄러짐이야말로 패러디의 본질적인 원리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앞서 음성적, 구문론적, 의미론적으로 살펴보았던 『돈키호테』의 내텍스트적 패러디는 모두 지시적 기능을 거부하고 유희를 즐기는 언어의 속성을 보여준다. 언어는 사물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물을 지칭했던 또 다른 언어, 즉 또 다른 기표를 불러낸다. 그러나 사실 불리어진 기표 역시 거슬러 올라가면 또 다른 기표의 기표임이 드러나고 끝없이 연속되는 이러한 의미화 과정에서 언어의 궁극적인 대상은 자기 자신으로 되돌아온다. 『돈키호테』의 언어 역시 외부 사물을 언급하는 선택적이고 수직적인 대상언어(object language)가 아니라 인접해 있는 언어를 향해 미끄러지는 결합적이고 수평적인 메타언어(metalanguage)를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패러디의 관점에서 『돈키호테』의 1부와 2부를 비교해 보았을 때 1부에서는 풍자성을 띤 상호텍스트성이, 그리고 2부에서는 언어유희가 강조되는 내텍스트성이 주도한다고 볼 수 있다. 기사소설을 풍자하고 비판한다는 1부의 소기의 목적이 2부에서는 사라져 버리고 같은 작품내에서의 미끄러짐만이 있게 된다. 행동하는 돈키호테는 이제 명상하고 고뇌하는 돈키호테로 변모한다. 1부에 나타나는 돈키호테의 모습을 2부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오히려 말을 타고 창과 방패를 들고 가족과 책을 버리고 돈키호테를 치료하기 위해 길을 나서는 산손 카라스코를 통해서이다. 1부의 명성이 널리 알려진 다음 쓰여진 2부에서 이전 작품에 대한 작가의 자의식이 반영된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수도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2부에서 돈키호테는 자신의 그 명성의 희생자가 되는데 자신을 비웃는 사람들은 주인공을 알아보지 못한다. 카를로스 푸엔테스의 말대로, 이 소설은 아마도 등장 인물이 자신이 허구 속에 살고 있는 동시에 쓰여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문학사상 최초의 작품일 것이다.

     한편 『돈키호테』의 플롯을 면밀히 분석해 볼 때 작품 내에서 미끄러지고 있는 것은 비단 언어뿐만이 아니다. “그 이름을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고장 출신, 즉 밝혀지지 않는 기원에서 출발하는 돈키호테의 편력 여행은 자유로운 미끄러짐을 통해 그 종착점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2부의 10장에서 사라고사로 방향을 정했던 돈키호테 일행은 후에 어느덧 바르셀로나를 향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또한 돈키호테가 구원의 여인으로 상정한 둘시네아는 끝내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며 사실 그 존재조차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왜냐하면 돈키호테도 산초도 그녀를 한 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2부 10장). 이는 이미 와해되어 그 형체를 찾아볼 수 없는 스페인 제국, 더 나아가 의미가 상실되어버린 당대 세계를 전반적으로 상징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산초가 줄곧 미친 주인을 따라다니며 꿈꾸었던 한 고을의 총독이 되는 소원 역시 마침내 이루어지기는 하지만 불과 열흘만에 산초는 “정말 이런 장난은 두 번 다시 되풀이하는 게 아냐”라고 뇌까리면서 주인을 따라 또 다른 편력에 나선다 (2부 54장). 이러한 플롯 상의 미끄러짐을 구조적 패러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패러디는 앞서 예를 들었던 구문론적 그라마의 형태와 함께, 하츠펠트가 지적하듯이, 바로크 음악가 바하가 보여주는 푸가(fuga) 형식과 일치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돈키호테』에서 전형적으로 볼 수 있듯이 17세기 문학에서 패러디가 성행했다는 사실은 모든 것이 의심으로 뒤덮여있는 근대의 도래와 함께 발생한 불확실한 세계와 불안정한 자아의 바로크적 체험이 낳은 당연한 귀결이다. 따라서 이 작품은 르네상스의 문턱을 넘어 자의식적 거리를 확보하면서 “근대를 다시 쓰는 혹은 패러디”하는 작업이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패러디 양태가 작품의 글쓰기 자체에 대한 자의식적 시각을 드러낼 때 이 작품의 또 다른 근대적 면모인 메타픽션적 성격을, 또 작가 자신에 대한 자의식적 거리를 노출시킬 때 작가와 독자의 존재론적 전복을 볼 수 있는 것이다.


4. 맺는 말

     본 연구는 르네상스, 매너리즘 그리고 바로크 사조의 비교연구를 통해 스페인 문학에서의 매너리즘/바로크 경계 논의의 무익함을 주장하고, 이를 전제로 시대적, 사상적, 그리고 문체적 특성상 『돈키호테』가 르네상스보다는 바로크 세계에 이미 진입하고 있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돈키호테가 바라본 현실은 모든 것이 의심과 회의로 뒤덮인 마법에 걸린 세계이며 작가는 이를 종착점에 다다르지 못하는 부유하는 언어를 통해 형상화하고 있다. 주인공 돈키호테는 정의가 살아있고 사적 소유의 개념이 없었던 황금세기를 그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품 『돈키호테』는 르네상스 시대의 일관된 주체가 바라보는 안정된 세계도, 세계의 재현 가능성을 자임하는 신뢰받는 언어도 보여주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돈키호테』는 바로크 언어를 통해 세속적 근대성에 맞서 문학적 근대성을 선취해냈다고 말할 수 있는데 이를 위해 유희적이고 자기충족적인 본질을 가지고 있는 패러디를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