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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의 위기와 예술적 상상력 / 조민현 2005-09-09 / 5588   

시대의 위기와 예술적 상상력
- 세르반테스와 벨라스케스의 인식론적 상관성을 중심으로 -

조 민 현



1. 들어가는 말


한 시대의 미적 인식은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각 분야는 자신의 고유한 표현 양식이 있기 때문에 영역간의 소통을 가져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중에서도 문학과 시각 예술인 미술은 특히 서로 다른 형식의 예술이다. 따라서 이 두 가지 예술 사이에 들어있는 공통적 의미를 밝히는 것은 쉽지 않은 작업이 될 것이다. 하지만 예술이 글쓰기 형식이든 아니면 시각적 형식이든 간에 궁극적으로 정신 작용을 바탕으로 하는 미학을 추구한다면 우리는 서로 다른 형식의 예술 작품들에서 동일한 미적인 효과를 추출해낼 수 있을 것이다. 루이스 고이띠솔로(Luis Goytisolo)는 그림 같은 평면적인 예술과 독서과정이라는 시간의 흐름을 요하는 소설 장르가 어떻게 하나의 미적 현상으로 묶일 수 있는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우리 독자가 보기에 중요하고 인상적인 곳에 밑줄을 치거나 여백에 메모를 하는 작업이다. [···] 이러한 현상은 우리가 경치를 감상할 때도 똑같이 일어난다. 모든 것이 거기에 있다. 그러나 경치의 각 부분에 의미를 주고 감상하는 데에는 (책을 읽을 때와 같은) 시간의 흐름을 요한다.(Goytisolo, 180)


이것은 소설가나 화가가 자신들의 작품에 대해 또는 독자나 감상자에 대해 동일한 방식으로 반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의 그림은 감상자의 계속되는 시선 속에 엮어지는 정신 작용을 통해 하나의 소설적 구성을 가질 수 있으며, 소설 역시 구조와 주제 등에 대해서 회화적 조응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견지에서 볼 때 우리는 장르적 구분과는 별도로 공통된 인식소를 바탕으로 동일한 미적 현상을 추구한 시대를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20세기 초반 초현실주의 운동이 문학, 회화, 영화 등 다양한 장르에 걸쳐 일어난 것을 쉽게 목도할 수 있을 것이다. 근래의 포스트모더니즘도 장르를 망라하고 동일한 인식론적 기저를 갖고 있다. 이것은 예술이 특정 시대의 역사적 조건과 부단히 대응하며 한 시대의 인식론을 구성함을 의미한다.1)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17세기 스페인 사회 속에서 잉태된 두 예술가에 주목하고자 한다. 세르반테스와 벨라스케스가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장르는 다르지만 동일한 시대적 문맥 속에서 예술적 인식을 가졌다. 카를로스 푸엔테스는 이 두 거장의 예술적 상관성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푸코는 각 시대 마다의 잠정적인 질서의 공간을 에피스테메(episteme)라고 부른다. “에피스테메는 일정한 시기에 있어서 인식론적 형상, 학문 그리고 형식화된 체계를 낳게 하는 언설적 실제를 결합하는 관계들의 총체이며 [···] 제반 학문들 사이에서 일정한 시대동안 발견될 수 있는 관계들의 총체이다.(The Archaeology of Knowledge, 191)

『돈키호테』로부터 영감을 받아서 그려진 회화작품은 많이 있지만 -호가스로부터 도미에, 도레에서 피카소, 그리고 19세기의 조지 크룩생크에서 20세기의 안토니오 사우라까지- 세르반테스의 소설과 가장 상응할 수 있는 주목할 만한 그림 하나가 마드리드에 있는 프라도 미술관의 넓고 조용한 홀에 있다. 이 홀에 들어설 때, 우리들은 한창 작품을 완성중인 화가 디에고 로드리게스 데 실바 이 벨라스케스의 놀란 듯한 표정과 마주치게 된다.(푸엔테스, 219-220)


푸엔테스가 언급하는 이 그림은 미셸 푸코, 존 서얼 등 많은 비평가의 조명을 받았던 「시녀들 Las meninas」이다. 푸엔테스는 스페인과 스페인계 아메리카의 역사를 문화적 맥락에서 조망하면서 세르반테스와 벨라스케스는 제국 통일의 이상을 위해 현실적 다양성을 무시하고 하나의 도그마로 닫힌 사회에 자신들의 예술을 통해 허용되지 않는 것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고 논하였다. “이 모든 것은 도그마와 하나의 시점에 근거한 폐쇄사회에 하나의 길을 열어주고 있는 것은 아닌가? [···] 이 두 사람은 폐쇄사회의 한가운데서 활동하면서 상상력에 의해서 현실을 재정의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었다.”(푸엔테스, 222) 이 같은 푸엔테스의 논의는 한 시대의 변화 앞에 예술 작품이 어떻게 대응할 수 있느냐는 논의를 낳게 한다. 그것은 예술 작품은 한 사회의 공식적인 언술과는 다르게 감성적 인식을 바탕으로 현실 세계뿐만이 아니라 그 뒤편에 존재 가능한 또 다른 세계를 형상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세르반테스와 벨라스케스는 자신들의 작품 속에서 잠정적인 관객이나 독자에 대해 동일한 인식론적 행위로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는 서구 역사에서 현실적인 것은 무엇인가라는 인식론적 변화 앞에 예술은 어떠한 역할을 수행했는지를 고찰하며 그 연장선상에서 시대의 전환과 위기 속에서 세르반테스와 벨라스케스가 자신들의 작품 속에 그 시대와 세상의 변화를 어떻게 예술적으로 형상화할 수 있었는지를 탐색해 보려고 한다.


2. 현실의 변화와 예술의 존재론

2.1. 추방의 형식으로서의 예술

예술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는 모방으로서의 예술을 만나게 된다. 예술은 우선 모방적 성격을 띤다. 그런데 문제는 예술가가 모방하는 대상이 무엇인가 라는 문제가 있다. 서구 역사에서 그리스인들에 의해서 오랜 세월동안 정립되어온 실재하는 것은 감각적이고 변하는 사물 뒤에 숨겨진 것으로 항상 완전한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실재를 인식한다는 것은 눈에 보이는 사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뒤에 숨겨진 것, 다시 말하면 초월적인 이데아를 찾는 일이었다. 따라서 수공업자가 만드는 책상과 침대는 실재라고 부를 수 없는 단지 외관일 뿐이다. 그런데 문제는 예술가는 사물의 이데아를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수공업자가 만든 감각적인 사물을 대상으로 함으로써, 플라톤은 예술 일반이 진리에서 3단계나 떨어져 모방한다고 주장한다.(플라톤, 379)

따라서 예술가는 모방을 통해서 결코 사물의 이데아에 다가설 수 없고 가변적인 사물의 외관만을 그릴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양식으로서의 예술은 피할 수 없이 사회의 질서를 이루는 공식적 사고로부터 벗어나 문제적인 것이 된다. 플라톤의 『공화국』은 이러한 사고의 일면을 분명히 보여준다. 그는 예술이 진리 즉 로고스를 현전케 하지 못하는 것으로 여겼으며, 나아가서 공화국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위험한 것으로 보았다. 이렇듯 예술이 현실을 제대로 재현할 수 없다는 인식은 비난의 대상으로서의 예술을 상정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플라톤은 고전 작품 중 호머나 헤시오도스, 그 밖의 위대한 시인들이 쓴 이야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신이나 영웅들의 성격에 관하여 표현된 내용이 다 그렇네. 그것은 마치 어떤 초상과 똑같은 것을 그리기를 바라면서 전혀 닮지 않은 것을 그리는 화가와 마찬가지라네.(플라톤, 90)


플라톤에게 실재하는 것은 감각적인 현실 뒤의 이데아의 세계이므로 그 세계를 재현하지 못하는 예술가들은 공화국 영역 밖으로 추방되어야 했던 것이다. 이처럼 예술로 인한 잘못된 재현의 결과는 공화국 내의 질서를 어지럽히게 된다. 그러므로 체계화되어 있고 질서 있는 ‘공화국’과 그 영역 밖의 공간이 자리 잡으며 그에 따른 대립이 형성된다. 진리와 거짓, 현실과 상상의 공간이 그것이다. 이러한 사유 속에서 예술적 상상력은 진리를 현전케 하지 못하는 인간의 위험한 능력으로 고려되었던 것이다.


2.2. 이데아로서의 예술

플라톤은 예술가가 이데아에 다가설 수 있다는 것을 부정했다. 그러나 모든 인식을 감각적인 경험에 그 근원을 두고 있는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가들이 감각적인 세계의 도움을 받으면서 사물을 모방하되 추상 작용을 통해 그들에게 이데아의 세계에 다가설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따라서 이데아의 세계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받은 중세 예술의 근본적인 특징은 감각 세계의 ‘가상’을 넘어서 초월적 세계를 드러내는 데 있다.(진중권, 120) 중세를 거치면서 예술가들의 관심은 이제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현실을 단순히 포착하는 것이 아니라 그 뒤에 감추어진 이데아를 포착하려고 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감각적인 사물을 이상화시키는 것을 통해 가능하였다. 이 시기의 예술관에 대하여 마라발은 언급하길 “예술을 한다는 것은 모방하는 것, 우리가 보는 사물을 모방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실제로 그러한 것으로서 우리가 그것을 마땅히 보아야만 하는 것으로서의 모방이다. 말하자면, 감각적인 불완전한 사물의 외관이 아니라 그것의 완벽한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모방하는 것이었다.”(Maravall, 62) 이것은 예술이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창조가 아니라 정형화되고 불변하는 진리를 옮겨 놓는다는 사고를 반영한다. 따라서 사물을 모방한다는 것은 완전하고 이상적인 것을 모방하는 것을 의미했다. 그것을 포착하는 것이 예술가의 진정한 지적인 능력이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양식의 예술은 그 표현 방식에만 차이가 있을 뿐 이데아를 증명하기 위한 신학이나 철학 등 타 학문과 인식론적인 면에서 별 다를 바가 없었던 것이다.


2.3. 새로운 현실과 근대 미학

모방을 통해 이데아를 재현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차이는 있을 뿐 플라톤이나 중세의 예술가들에게 실재하는 것은 감각의 사물 뒤에 있는 이데아의 세계였다. 그러나 르네상스, 종교개혁 그리고 과학혁명을 거치면서 잉태된 근대적 인식체계는 인간과 세계와의 관계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온다. 이제 사람들에게 실재하는 것은 초월적인 의미에 의해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경험적 사물로 바뀌게 되었다. 철학자나 과학자는 이제 이전에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무엇이 현실적인 것을 구성하는 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근대철학이란 한마디로 과학 혁명을 이룬 인간의 자연적 인식능력 즉 이성과 경험에 대한 신뢰, 다시 말해, 자연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방법론에 대한 각성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이태하, 31) 갈릴레오나 데카르트가 그 예가 될 것이다. 이제 세상은 실재하는 것은 이데아의 세계뿐이라고 하는 플라톤과 그 연장선상으로 중세와는 명확히 다른 곳에 있다.

16세기 말과 17세기 초에 근대 세계의 문을 연 이들의 사고는 [···] 과학의 영역에서만큼 회화의 영역에서, 눈을 통해 현실을 포착하는 데 어떤 조건들을 요구한다. 그러한 현실은 항상 눈의 간섭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자연적인 것은 어떤 경우에도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으로 진리라고 보이는 것의 복사가 될 수 없다. 자연 앞에선 인간의 진실은 항상 자연에 대한 경험적 진실일 수밖에 없다.(Maravall, 50)


이렇듯, 17세기의 세계에 대한 인간의 인식 지평의 변화는 당대의 과학적 지평의 변화에 조응되는 것이었다. 따라서 인간의 관심이 초월적 이데아가 아니라 경험적 현실이라고 할 때, 예술가들에게도 실재하는 것에 대한 사고의 변화를 가져온다. 이제 대상에 대한 예술가 각자의 개인적, 경험적 세계는 이데아를 반영하지 못해 공화국 영역 밖으로 추방되는 것이 아니라 근대적 세계관의 요구에 부합하는 인식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상상력을 근본으로 하는 예술이 하나의 학문으로 그 존재 근거를 마련했다는 데 중요성이 있다. 진중권에 의하면, “우리는 예술이 감성의 문제라 생각하나, 르네상스 시대까지만 하더라도 예술은 이성적 작업이었다. 가령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예술과 과학 사이에 아무 차이도 보지 못했다.”(진중권, 238) 따라서 이전 시대에 인간의 의심스러운 능력으로 공화국 영역 밖으로 추방당한 상상, 감정 등을 바탕으로 한 인간의 예술적 능력을 어떻게 자리매김할 것인가가 문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데카르트는 감성도 일종의 이성으로 봄으로써 감성을 복권시키려고 하였고 이로부터 근대 미학은 탄생할 수 있었다.(진중권, 238) 따라서 플라톤이 말하는 시인의 창조적 역할은 이제 새로 구성된 현실 인식에서는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현실을 구성하는 긍정적인 의미로 변모하게 된다. 말하자면, “그 결과 미와 예술은 일종의 인식이 된다. 그건 감성을 이용한 인식, 말하자면 감성적 인식이다. 감성적 인식의 토대를 이루는 건 상상, 기억, 감정 등이다.”(진중권, 242) 이러한 감성적 인식은 과거의 사람들에게는 인간 정신을 현혹하는 것으로 매도되었으나 이제는 이성을 보완하는 역할을 하며, 나아가 꼭 현실세계만이 아니라 존재 가능한 세계까지도 묘사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으로 변모되었다.

한편 노드롭 프라이는 예술적 감성을 인간의 숭고한 능력으로까지 끌어올렸다. 그는 인간의 감성적 능력을 인간이 세계에 대면할 수 있는 훌륭한 조건으로 고려한다. 따라서 플라톤의 논의를 역으로 이용하여 감각적이고 우연적인 사물을 대상으로 한 예술적 창조가 환희를 불러일으키게 한다. 그것은 예술을 진리나 도덕에서 자유롭게 할 때 가능한 일이다.

예술은 도덕이나 진리와 같지도 않거니와 열등하지도 않다. 단지 문명적인 삶의 종합이다. 삶의 일반적인 법칙은 이러한 삶 안에서 진정한 의미를 얻는다. 예술은 좋거나 나쁜 것이 아니고 좋은 것과 나쁜 것의 본성에 대한 분명한 비전이다. 그것을 도덕 안에 위치시키려는 모든 시도, 다시 말해서 검열하려는 것은 참을 수 없이 저속한 것이 되고 만다.(Frye, 117)


결국 프라이에게 시적인 상상력이 “제한 없는 욕망과 자유가 충만한 세계”(Frye, 26)를 창조한다는 것은 새로운 현실 인식에서 비롯된 사회에서 예술가의 새로운 위상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면은 시대의 위기 속에서 보다 분명하게 나타난다. 17세기 과학 혁명을 통해 과학자나 철학자가 세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되었듯이 이제 예술가는 자신의 상상력을 통해 현실을 진단하고 구성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상상력은 플라톤이 진단한 것처럼 위험하고 의심스러운 것이 아니라 변화된 현실을 능동적으로 감지할 수 있는 인간의 창조적 능력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새롭게 인식된 예술적 상상력은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전환기의 스페인에서 어떻게 나타나는 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3. 근대성의 위기와 예술적 상상력

유럽의 어느 나라보다도 먼저 통일된 민족 국가를 형성한 스페인은 중세를 벗어나 새로운 시대를 맞기 위한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그것은 근대적 인식론이 요구하는 사물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이슬람교와 유대교 등 여러 이질적인 문명과의 갈등과 공존의 경험을 통해서 체험했기에 시대의 전환에 역동적으로 대응할 토양을 자체 내에 이미 구비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스페인에 의해서 주도된 신대륙의 발견은 중세를 지탱했던 우주관을 벗어나 지구가 둥글다는 논의가 단지 가설이 아닌 실제임을 보여준 실천적 움직임이었다.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르네상스의 정신은 스페인에서 보다 실증적으로 근대성의 문을 열게 할 토양이 준비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출발한 스페인의 역동성은 점점 광대하게 형성되어 가는 제국의 논리 앞에 설자리를 잃게 되고 만다. 즉 유럽, 아메리카, 아시아 등에 거대한 제국을 형성한 스페인은 제국을 하나로 묶을 필요성으로 가톨릭을 택한다. 푸엔테스에 의하면,

스페인은 당연하지만 가톨릭의 통일 -불행하게도 그것은 환영(幻影)에 지나지 않았지만-을 재건하겠다는 신념 하에 가능한 한 외부세계의 무질서에 저항했다. 스페인은 삶의 교조적인 행동체계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실제로 종교적 통일의 이상과 결합하게 되면서 스페인은 통일된 세계의 비전을 유지하기 위해서 동시에 통일된 공식의 언어를 가지지 않으면 안 되었다.(푸엔테스, 209)


이러한 단일성에 대한 열망으로 세워진 인위적 현실은 근대적 세계관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었다. 또한 아베얀은 이렇게 말한다.

스페인에서 근대적 자본주의의 발달은 아메리카의 발견이후 이 새로운 대륙의 풍부한 자원을 들여오고 또한 교역을 통해 동력을 받을 수 있었다. 번영할 수 있는 산업의 토양이 출범했던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 이유는 가톨릭 왕들에 의해서 수립된 종교 정책에서 찾아야 된다. 이들에 의해서 시행된 정책은 종교적인 방법 이외에는 국가적인 단일성(unidad nacional)을 세울 여하한 수단들이 없었다는 것에 기인한다. (Abellán, 106-107)


그런데 하나의 제국을 세우려는 통치논리로서의 단일성의 열망은 근대라는 새로운 시대를 맞는 스페인 사회에 암울한 그림자를 드리우게 된다. 아베얀의 지적처럼, 세계는 스페인을 중심으로 변했는데, 스페인은 이 세계에 적응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했던 것이다.(Abellán, 107) 결국 에라스무스주의를 둘러싼 논쟁이후 더 엄격해진 종교 정책으로 인한 ‘순혈(limpieza de sangre)’의 고집은 근대 세계로의 길과는 역행되는 것이었다. 이렇듯 근대의 문턱에서 유럽과 상이한 길을 택한 스페인에 대해 반토흐(Wantoch), 모르프(Morf), 클렘페러(Klemperer) 등 독일 학자들이나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스페인에는 실질적 의미의 르네상스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Abellán, 103-104) 이것은 르네상스 이후 갈릴레오, 데카르트, 파스칼, 라이프니츠, 뉴턴 등 근대 과학으로 완성되어 가는 시대의 변화 속에 스페인은 철저히 배제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스페인은 모든 과학적 정신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것이다.

스페인 사람들은 (과학적) 연구를 통하여 가져올 결과에 대해 공포감을 느꼈다. 그래서 이미 펠리페 2세의 시대에 모든 엔지니어들은 이탈리아인이었고, 1576년에는 살라망카대학의 해부실이 아무도 사용하지 않으므로 문 닫았으며, 해부학 수업마저 폐강되기에 이르렀다. 상황은 더 악화되어 살라망카대학의 수학과 교수직은 17세기 내내 비어있었는데, 1743년에 가서야 또레스 비야로엘이라는 사람이 들어왔다.(Abellán, 217-218)2)


2) 당시 일화 중에 “펠리페 3세는 갈릴레오를 스페인에 초대하기도 했지만 이 무렵 스페인을 찾은 외국인 여행가들은 스페인인들이 대체로 후진적이고, 과학이나 기술 문제에 관심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엘리엇, 336)

결과적으로 국가적 통합을 위해 하나의 도그마를 고집한 것은 스페인의 미래에 암울한 그림자를 드리웠던 것이다. 스페인의 이러한 모습은 결국 닫힌 사회로의 회귀를 의미한다. 플라톤의 이데아의 세계처럼 절대적이고 고정된 것에 대한 염원인 것이다. 이러한 세계는 플라톤이 안정된 세계의 질서를 추구하기 위해 도덕적 검열을 행한 것처럼, 당대의 스페인 역시 종교 재판소를 통하여 가시적인 현실의 운동성을 배제하고 관념적인 통일성을 구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플라톤이나 중세적 질서라기보다는 인위적인 닫힌 현실의 추구였다. 이 속에서 예술가의 상상력의 구조는 새로운 위상을 갖게 된다.

플라톤에게는 이 상상력 속에는 존재의 토대를 흔드는 혼돈과 폭력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새로운 근대에 접어들고 스페인이 만든 인위적 현실 속에서 예술가의 상상력은 현실을 분석하고 적극적으로 보충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하우저는 억압된 사회에서 이데올로기의 표출이 직접적이지 않고 간접적인 방식에 의존하는 예술 작품의 영향력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한 작품의 사회적 정치적 작용은 그 의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나지 않으면 않을수록, 또한 동의를 덜 구하면 구할수록 그만큼 더 강하다는 사실은 특기할 일이다. 직접적이고 미숙하며 노골적인 경향은 의혹을 불러일으켜 방어태세를 도발시키는 반면에 잠복성의 위장된 이데올로기, 밀수된 마약, 그리고 비밀의 독약은 아무런 주의를 환기시키지 않더라고 예상 외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다.(『예술과 사회』, 128)


이것은 공식적인 역사 속에서 제대로 표출되지 못한 근대성에 대한 사유가 예술적 상상력 속에서 빛을 발할 수 있음을 일깨워준다. 따라서 그것은 푸엔테스가 지적하듯이 “역사의 붕괴는 예술의 승리로 인해서 보상받았다는 것”(푸엔테스, 235)과 상통한다. 세르반테스와 벨라스케스는 이러한 시대적 문맥 속에 위치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유럽 국가에서는 이미 가시적인 현실 세계에 정착하던 근대적 사유가 스페인에서는 그 출구가 막혀버리자 이들은 이러한 인식 체계를 예술적인 형상화의 과정을 통해서 구하려고 했던 것이다.3) 그들은 어떤 의미에서 갈릴레오나 데카르트, 베이컨을 대신하는 스페인적 방식이었던 것이다.

3) 아베얀은 이러한 의미에서 개종한 기독교인들(cristianos nuevos)에 대한 차별은 스페인 문화의 평등한 성격의 기독교적 인문주의를 위한 건강한 비판을 가져왔다고 말한다. 그들 중에는 페르난도 데 로하스, 루이스 비베스, 폭스 모르시오, 프란시스코 산체스, 마테오 알레만, 바르톨로메 데 라스 카사스, 테레사 데 헤수스, 미겔 데 세르반테스 등을 들 수 있는데, 이들은 그 기원에서 개종한 기독교인들이며, 평등과 진보적인 인문주의를 방어하려고 했다.(Abellán, 108)


4. 사물의 진리에서 예술적 진리로

4.1. 절대적 관념에서 경험적 현실로

『돈키호테』에 대해서는 수많은 해석이 있어왔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돈키호테』를 이루는 수많은 해석은 사물과 의미의 관계를 문제 삼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사물이든지 사물 자체의 성질과 그 사물이 해석될 때 나타나는 의미의 세계가 자리 잡고 있다. 오르테가 이 가세트(Ortega y Gasset)는 돈키호테와 산초의 모험을 이루는 여정 속에는 인간이 사물을 바라보는 이 두 가지 관점이 숨어있다고 말한다.

우리들은 돈키호테와 산초와 함께 이 들판을 걸으면서 사물에는 두 개의 측면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하나는 사물의 ‘의미(sentido)’이니, 그 의미는 사물이 해석될 때에 나타나는 바로 그 의미이다. 또 다른 측면은 사물의 ‘실체(materialidad)’이니, 그 절대적인 본질은 바로 모든 해석을 앞서거나 또는 초월해서 사물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Meditaciones del Quijote, 131)


전술한 바와 같이 중세 시대에는 사물 뒤에 숨어 있는 이데아만이 현실적인 것으로 생각되고 절대적인 언어로 표현된 반면 근대의 세계관은 우연적이고 현재적인 감각의 세계가 실재적인 것으로 고려되기 시작했다. 이 서로 양립할 수 없는 세계관을 이루고 있는 것이 『돈키호테』를 이루는 중심 테마이다. 말하자면 돈키호테와 산초의 모험은 무엇이 실재하는 현실인가를 증명하는 여정이 될 것이다. 돈키호테에게 현실적인 것인 감각적인 사물이 아니라 그 사물 뒤에 숨은 이데아의 세계이다. 그것은 신의 계시로 자연현상을 설명하는 중세적인 세계관처럼 자신이 읽은 『아마디스 데 가울라』등과 같은 기사 소설을 통해 세계를 바라보는 데 있다. 반면 산초의 현실은 눈에 보이는 감각적인 세계 자체이다. 『돈키호테』의 8장은 우리에게 대표적으로 알려진 풍차의 모험에 대한 이야기를 구성한다. 두 번째 모험에 나선 돈키호테가 산초와 이야기를 주고받는 가운데 우뚝 서있는 30, 40개의 풍차를 발견하였다.

돈키호테가 이것(풍차)을 보자 종자에게 말하였다. “행운의 신은 우리가 원했던 것보다 더 좋은 방향으로 우리를 인도하는 구나. 산초 빤사여, 저것 좀 보아라. 서른이 훨씬 넘는 굉장한 거인들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느냐. 나는 저놈들과 싸워서 몰살을 시킨 뒤 그것에서 얻은 전리품으로 부자가 될 생각이다.” [···] “거인이라뇨?” 하고 산초 빤사가 묻는다. “바로 저기 네가 보고 있는 놈들 아니냐?” 라고 주인은 대답했다. [···] “잠깐만 나리” 하고 산초가 대답했다. “저기 보이는 것은 거인이 아닙니다요. 풍차란 말입니다요. [···](Cervantes, 145)


돈키호테는 기록된 언어와 사물 사이의 동일성을 찾기 위해 순례한다. 그가 세상을 파악하는 언어는 인간의 경험에서 비롯되지 않은 사물 자체의 언어였다. 그런데 근대에 접어들어서 “이제 기호는 자기를 인식할 수 있는 사람이 다가오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그것은 오직 인식이라는 행위에 의해서만 구성될 수 있는 것이다.”(푸코, 90) 따라서 사물의 이데아를 찾던 중세에서 벗어나 감각적 사물에서 현실을 구하던 시대에서 보면 돈키호테의 현실인식은 분명히 착각일 수 있다. 돈키호테는 변화된 시대에서 아직까지 지난 시대의 현실 속에 갇혀 사는 시대착오적인 인물로 비춰질 수 있는 것이다. 푸코는 돈키호테의 광기에 대해 “유사성과 기호는 예전의 동맹관계를 해체했고, 유사성은 기만적으로 되어 거의 환상이나 광기에 가까워졌다”(푸코, 77)고 말한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풍차라고 보는 산초의 인식을 비롯한 우리들의 인식은 확실하고 불변하는 것인가라는 점이다. 객관적이라고 생각하는 우리들의 인식 역시 상대적인 시선 속에 수많은 다른 것으로 비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오르테가에 의하면

먼 곳에 있는 까만 점은 (인간의 시선에 따라) 마치 하나의 탑처럼, 마치 하나의 나무처럼, 마치 하나의 인간처럼 우리들에 의해서 계속적으로 보인다.(Meditaciones del Quijote, 133)


그것은 우리가 사물 자체를 보는 것이 아니고 사물 자체에 대한 우리의 경험을 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시 사물에 대한 인간의 경험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실제적으로 거인이란 존재가 과거에도 현재에도 없었기에 오르테가의 말을 빌리면, “인간이 최초로 거인이라는 것을 생각했던 기회가 실은 세르반테스가 연출하는 이 장면과 본질적으로 아무런 차이가 없었던 것이다.”(Meditaciones del Quijote,, 132) 이러한 언급은 절대적인 관념으로 세워 놓은 언어체계를 극복함과 동시에 사물과 언어와의 새로운 관계정립을 요구한다. 그것은 감각적인 현실에서 우리들이 경험하는 세계는 사물 자체와 고스란히 조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해석을 통해 의미를 만들어가는 자의적인 세계일뿐이라는 것이다. 이제 절대적인 관념 즉 이데아를 현실로서 고려하지 않음과 동시에 산초나 우리들의 세계도 확실한 의미의 세계가 아니라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자의적인 합의에 의해 만들어진 세계일뿐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절대적 관념의 언어에서 경험적 현실의 언어로의 이행은 단지 현실 층위의 변화뿐만이 아니라 현실은 상대적인 범주 내에서만 가능할 뿐이라는 시선을 낳게 한다. 그러한 전망을 보다 구체화하기 위해서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 전반을 이루는 이분법적 전망 속에 또 하나의 전망을 제시한다. 그것은 1부 44장에 나오는 이발사의 대야에 얽힌 장면이다. 돈키호테는 그것을 투구(yelmo)로 여겨 노획하지만, 산초와 우리는 그것을 대야(bacía)로 안다. 한 사물에 대한 이러한 두 시선 앞에서 종자 산초는 등장인물들 사이의 논쟁을 피하기 위해서 ‘대야투구(baciyelmo)’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낸다. 이를 통해 돈키호테의 절대적 관념의 언어도 사람들의 감각적 세계의 언어도 결국은 인간의 경험적 언어에서 결국 상대화될 수밖에 없음을 암시하고 있다. 이 ‘대야투구’는 모든 독단적 사고를 피하고 인간 세계의 상대성에 대한 전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기호라 할 것이다. 특히 근대적 세계관 속에서는 산초를 비롯하여 우리들이 인식하는 세계 역시 사물과는 절대적 거리가 있어 그 의미는 자의성을 가질 수밖에 없음을 일깨워 주는 것이다. 결국 세사레오 반데라가 지적하듯이 인간의 감성적 인식의 예술 속에서 “대야와 투구를 구별하는 것은 공기에 선을 긋는 것이요. 허공에 건설한 성벽이다. 객줏집의 이러한 싸움에서 모든 차이는 사라지고, 현실과 허구는 용해되고 그 자체로 섞여버린다.”(Bandera, 51)

이럴 때, 예술 작품은 현실과의 관계에서 그 진리를 구하는 오랜 관습에서 탈피하여 그 자체로서의 현실성, 다시 말하면 예술적 의미의 진리를 탄생시킨다. 그것은 사물 자체와 그것에 대한 인간의 경험 사이에는 항상 절대적 거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술가는 사물 자체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에 대한 자신의 주관적 관념을 그리는 일로 돌아섰다. 예전에 사물의 진리의 반영 여부에 따라 그 존재 근거를 구하던 예술은 새로운 현실 앞에 그 자체로서의 진리를 구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고는 벨라스케스의 그림에서 보다 분명히 나타난다. 여기에는 무엇을 그릴 것인가가 근본적인 문제성으로 자리 잡고 있다.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은 상상할 수 있는 인물들의 공간에 따라 세 측면으로 구분될 수 있다. 첫 번째 측면은 관객과, 국왕 부처 그리고 그림 밖에서 실제로 이 그림을 그리고 있는 화가의 측면이다. 두 번째는 그림 속에서 작업하고 있는 화가와 그림 속의 공주와 시녀들의 측면이다. 세 번째는 거울과 앞의 두 측면을 유일하게 모두 바라볼 수 있는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의 측면이다. 이 세 측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화가에 의해서 차지한 공간이다. 왜냐하면 그는 이 세 측면에 모두 현재하기 때문이다. 그림 밖에서는 관객으로서 그림을 바라보고 그림 안에서는 작업을 하는 중이고 마지막 사람의 모습처럼 그림이 포함하고 있는 모든 것을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림이 표방하고 있는 근본적인 인물은 그림 안과 밖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화가 자신이다. 푸코에 의하면, “마치 그 화가는 자기를 담고 있는 그림에 나타나는 동시에 그가 어떤 것을 표현하고 있는 그림에 한꺼번에는 나타날 수 없는 것처럼. 그러나 그는 이 두 개의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가시성(可視性)의 문지방을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푸코, 26)

한편으로 우리들은 그림에는 직접 언급되지 않는 가상적인 존재이다. 그러나 벨라스케스는 그러한 가상적 세계 역시 대상의 한 부분으로 만들고 있다. 「시녀들」에서 화가는 우리들을 객체의 위치에 세우면서 우리들을 향해 시선을 던진다. 우리들 관객들은 이 그림의 하나의 부가적 요소다. 말하자면 「시녀들」을 형성하기 위한 능동적인 요소이다.

감상자인 우리는 하나의 부가적인 요소이다. 설령 우리가 화가의 시선과 마주쳤다 해도 그 시선은 우리를 그냥 지나쳐 버릴 수도 있으며 우리에 앞서 거기에 항상 존재했던 것, 즉 모델 그 자체가 우리를 대신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반대로 그 그림 밖에서 그에게 직면해 있는 허공에로 향한 화가의 시선은 감상자들이 존재하는 만큼 많은 수의 모델들을 용인하고 있다. 바로 이 중립적인 장소에서 응시자와 피응시자는 끊임없는 교환에 참여하는 것이다. 누구의 시선도 인정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캔버스를 수직으로 관통하고 있는 시선의 중립적인 궤적 속에서 주체와 객체, 즉 감상자와 모델은 서로의 역할을 끊임없이 뒤바꾼다.(푸코, 27)


그럼으로, 끊임없이 역할을 바꾸는 운동 속에 참여하는 화가와 모델 그리고 관객 어느 누구의 시선도 고정된 것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이것은 무엇을 그릴 것인가에 대한 화가의 인식론의 변화에 기인한다. 그것은 벨라스케스가 사물의 이데아를 그리려고 하거나 또는 단순히 감각적인 사물을 그대로 재현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대상에 대한 자신의 경험을 표현하려 했다는 데 있다. 이것은 마라발의 언급처럼, 갈릴레오나 데카르트에 비견되는 근대 세계에 대한 벨라스케스적 인식의 혁명적 변화인 것이다. “대상을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이 바로 벨라스케스적 혁명인 것이다. 그로부터 대상 자체가 예술가에게 흥미로운 것이 아니다. [···] 개인적인 단순하고 순수한 조건이 흥미의 대상이 된다.”(Maravall, 88)

벨라스케스의 그림은 이러한 세계관을 반영하고 있다. 중세적 가치 그리고 당대 스페인이 고수하던 가치가 현실에 대한 이상화의 과정을 통해 수직적이며, 주체에서 객체로의 일방성을 지녔다면 이 그림은 그림 그리는 행위 자체를 대상으로 함으로써 주체와 객체가 고정되지 않고 서로의 시선에 따라 끊임없이 자리바꿈을 하고 있다. 이렇듯 벨라스케스의 그림에는 하나의 독단적인 시선과 대상은 사라지고 상대적인 관점들만이 놓이게 된다.

이제 화가는 사물에 얽매여 맹종적으로 사물을 잡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에 대한 자신의 한 관점만을 투영할 뿐이다. 이때 나타난 예술 작품은 사물 자체는 아니지만 사물에 대한 하나의 표상이며 그 자체로서의 현실성을 획득하게 된다.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예술에 있어서의 관점에 대하여」에서 이러한 변화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당시까지 화가의 눈동자는 노예 같은 맹종의 궤도를 따라 각 대상의 주위를 프톨레마이오스적으로 운행해왔다. 그런데 벨라스케스는 전제적으로 하나의 관점을 고정시키기로 결심했다. 여기서 그림 전체가 단 하나의 시선 속에서 탄생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사물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그 시선 속으로 움직여 들어오려고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것은 철학사상에 있어 데카르트, 흄 그리고 칸트에 의해서 성취된 바에 비견할 만한 코페르니쿠스적 혁명과 같다.(Sobre el punto de vista en las artes, 187)


결과적으로 하나의 제국을 세우기 위해 스페인이 하나의 독단적이고 절대적인 관점을 강요했다면 세르반테스와 벨라스케스는 그러한 관점을 벗어나 상대적이고 다양한 관점이 존재하는 근대적 세계관을 상정했던 것이다. 그것은 근대 세계의 존재 방식에 상응하는 예술적 형식의 창조로 이어진다.


4.2. ‘자기 반영적’인 텍스트로서의 세상

현실이 무엇인가에 대한 인식의 변화는 세상에 대응하는 예술 작품의 구조적 변화를 가져온다. 수많은 예술가들은 자신의 책이나 그림이 세상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하나의 거울로서 기능하기를 염원했다. 그것은 성경에서 태초의 말씀이 그대로 세상이 되었듯이, 세상을 담는 ‘절대적인 책’을 구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책은 시간의 흐름에 오염 받지 않는 고정되고 변함없는 현실을 전제로 한 것이다. 따라서 우연성과 가변성을 특징으로 하는 인간 세계의 현실에서는 그러한 책은 계속해서 좌절된다. 보르헤스는 이러한 현실의 일면을 한 지도 제작자의 일화를 통해서 보여준다.


영국 땅의 한 부분이 완전한 수평을 이루고, 거기에 어떤 지도 제작자가 영국의 지도를 그린다고 상상하자. 그 작품은 완벽하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지도에 기록되지 않은 영국 땅의 세부사항은 없다. 모든 것이 지도와 상응한다. 그런데 이 경우 그 지도에는 지도 속의 지도가, 그 다음에는 지도 속의 지도의 지도가 있어야 하고, 그렇게 무한히 계속되어야 한다.(Borges, 55)


반영하는 것이 끝없이 반영되어지는 것 속에 다시 포함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레온 리빙스톤(Leon Livingstone)은 그것을 ‘내적인 자기 반영성(duplicación interior)’이라는 용어로 설명하고, 스페인 문학 전통의 특징적 요소의 하나로 언급하며 그 배경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기 반영성은] 현실과 모든 삶의 방식에 대한 독특한 개념의 산물이다. [···] (여기서) 사물은 실체적인 존재(ser sustancial)를 상정해온 서구의 문화적 전통처럼 불변하고 고정된 위치를 점하지 않는다. 그것은 꿈꾸는 사람의 상상 속에서처럼 깨어있는 사람의 경험에서도 계속해서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존재의 유동성을 표현하는 문학에서는 경험적인 사물이든 이상적인 대상이든 고정된 경내로서 고려되지 않는다. [···] 다분히 현대적인 기법으로 인식되어온 이 형식은 실상은 구조적으로 스페인의 상대주의적 형이상학의 현대적 재인식일 뿐이다.(Livingstone, 164)


이러한 ‘자기반영성’의 구조는 무엇보다 전술한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에서 분명히 나타난다. 이 그림은 시선의 변화는 시간의 흐름을 가져오고 그 속에서 대상이 어느 일순간도 고정되지 않고 또 다른 단면으로 이행됨을 구조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그의 또 다른 작품 「실 잣는 여인들 Las Hilanderas」은 이러한 메커니즘의 일부분을 풀어서 설명함으로써 유동적 현실과 예술 작품과의 관련성을 모색하고 있다. 이 그림의 특징은 일견 보기에 서로 다른 두 개의 현실을 동시적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림의 앞부분을 차지하는 넓은 부분은 일반 평민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고 뒤쪽의 밝은 부분은 귀족적이고 신화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이 두 현실은 너무 상이해서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앞의 논의처럼 벨라스케스는 이렇게 서로 다른 현실을 한 그림 속에 제시함으로써 어느 것이 고정된 진정한 현실인가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런데, 여기에 또 하나의 측면이 언급될 수 있다. 앞의 두 현실의 종합인 것처럼 보이는 그림 안쪽에 그려진 또 다른 그림의 존재이다. 이렇게 그림은 세 개의 서로 다른 측면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 현실은 실제로 실을 잣고 있는 일상의 여인들이며, 두 번째 현실은 이 첫 번째 현실과 공존할 수 없을 것 같은 귀부인들의 모습 그리고 마지막 현실에는 그림 속의 그림이 있다. 이러한 예술적인 과정은 각각의 측면이 계속해서 다른 측면과 혼합되고 중첩되는 ‘액자적’ 구성을 보이는데 그것은 바로 『돈키호테』의 창조 과정으로 연결된다. 『돈키호테』는 기사도 이야기, 목가소설, 피카레스크적인 것 등 상이한 현실 등의 복합적 구성으로 되었으며, 몬떼시노스의 동굴 이야기나 뻬드로의 꼭두각시 연극에서 보듯이 이야기 속에 또 다른 현실의 이야기를 삽입시킴으로써 현실 인식의 상대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중첩된 현실 인식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는 『돈키호테』 2부의 주요인물들이 1부를 읽은 자들이고 그것에 대해서 각자의 의견을 개진한다는 점이다. 이럴 때 이러한 인물들은 「시녀들」에서처럼 『돈키호테』라는 책의 안과 밖에 동시적으로 들어 있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 이처럼 책 속에 책이 들어있는 것, 그림 속에 그림이 들어있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보르헤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왜 우리는 돈키호테가 『돈키호테』의 독자가 되고 햄릿이 『햄릿』의 관객이라는 사실에서 불안을 느낄까? 나는 그 이유를 찾았다고 생각한다. 즉 이러한 전도가 암시하는 바는, 허구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독자가 되거나 관객이 될 수 있다면 그 허구의 독자나 관객인 우리도 허구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Borges, 55)


여기서 우리는 세르반테스, 벨라스케스와 비슷한 시기에 살았던 깔데론 데 라 바르까가 말했던 ‘세상이라는 거대한 연극(El gran teatro del mundo)’이나 ‘인생은 꿈’이라는 개념을 떠올려 볼 수 있다. 세상을 하나의 연극으로 바라보는 것은 어떠한 현실도 그 자체로서 고정될 수 없다는 인식에 다름 아니다. 세상은 끝없이 생성되고 변화는 속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이러한 세상의 구조를 반영하는 예술적 구조로 세르반테스와 벨라스케스는 ‘자기반영성’의 구조인 ‘책 속의 책’, ‘그림 속의 그림’이라는 형식을 사유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예술 양식은 고정된 세계를 담는 ‘절대적인 책’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가변적인 세계를 상징하는 은유적 구조가 되었다.4) 김춘진 교수는 이 시대의 예술의 새로운 표현 양식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4) 벨라스케스의 「이솝의 초상화」라는 그림 속에는 현자로서의 이솝의 이미지와는 상반되게 사시에 누더기를 걸치고 있는 이솝이 책을 한 권 들고 있는 모습이 제시된다. 여기에서 우리는 자신의 모든 힘을 잃어버린 어떤 신의 초상, 더 이상 전지전능하거나 유일한 존재가 아닌 신의 모습을 유추할 수 있다. 그의 운명은 이제 자신의 사팔뜨기 눈처럼 고정된 시선과 거기에서 끝없이 벗어나는 또 다른 시선의 움직임 속에 있다. 여기서 그가 지니고 있는 책의 존재는 중요하다. 그것은 절대적 진리를 담아내는 책이 아니라 계속해서 또 다른 해석 속에 자유로울 수 없는 책의 운명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비판적 기독교 인문주의 정신과 복고적 수구주의 이데올로기가 교차하는 가운데 황금세기는 위기 시대의 예술 정신을 유감없이 표출시켜 주었다. 위기의 시대에 사상가는 기존 사상이 지니는 모순을 제기하고 새로운 사유 방식을 찾을 것이며, 정치가에게는 새로운 이념이 예술가에게는 새로운 표현 양식이 필요했을 것이다.”(김춘진, 21)


이렇게 세르반테스와 벨라스케스는 위기 시대의 예술가의 역할이 어떤 것인가를 분명히 보여주는 예라 할 것이다.


5. 나가는 말

현실과 예술의 관계를 논하는 것은 오랜 세월 동안 논쟁이 되어온 주제이다. 그것은 또한 우리가 인식하는 현실이 무엇인가에 따라서 달리 생각되어왔다. 현실을 고정적이고 초월적인 것으로 보았을 때, 예술은 사회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위험한 것이 되었다. 한편으로 예술을 통해 사물의 본질 자체를 고스란히 재현할 수 있다는 신념의 시기가 있었다. 그것은 중세 시대의 예술가의 역할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역할은 신학자나 철학자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과 다를 바가 없었다. 예술의 힘은 사회에 대해 윤리적 역할을 수행하는 데서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창조성으로 인해 사회의 질서를 어지럽힌다는 플라톤의 논의를 역이용할 때 드러난다. 그것은 초월적인 힘에 의해서 규정된 세계를 벗어나 인간이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의 변화 즉 근대적 세계관 속에서 잉태된다. 근대적 세계관은 대상에 대한 인간의 경험을 표현한다. 따라서 절대적이고 고정된 질서를 지양하는 것이다. 이러한 세계 속에서 예술가는 사회를 반영함과 동시에 사회를 진단하고 재구성할 수 있는 창조적 힘을 갖게 되는 것이다. 오르테가에 의하면,

예술은 현실을 재현하거나 헛되이 복사하는 것에 한정되지 않으며, 그러한 것으로 정당화되지 않는다. 그것의 사명은 상상의 세계를 불러내는 데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일은 우리의 현실을 거부하고, 그 현실을 넘어설 수 있을 때 비로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La deshumanización del arte. 87)5)


5) 예술가의 역할에 대해 오르테가는 또 다른 곳에서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인간이 끝나는 데서 시인이 나온다. 인간이 목적은 인생을 사는 것이지만 시인의 사명은 존재치 않은 것을 창조해내는 일이다. 여기에 시인의 역할이 정당화 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것이다. 시인은 이미 존재하는 현실에다가 상상의 세계를 더해줌으로써 우리의 세계를 풍부히 해주고 있다. 저자 autor라는 말은 auctor -늘려주는 이-에서 유래한 것으로, 그것은 로마시대에 장군들이 새 영토를 정복하여 제국의 영토로 만들었을 때 그들에게 수여된 칭호였다.”(La deshumanización del arte, 76) 이 말 또한 예술가의 예술적 상상력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는 것이다.

이러한 예술에 대한 인식 속에서 세르반테스와 벨라스케스는 서구의 보편적 역사에서 벗어나 근대성을 완강히 거부했던 스페인에서 아이러니 하게도 다양한 관점, 신념과 의심, 확실성과 불확실성 등 근대 세계의 중심 문제들을 담은 소설과 그림을 탄생시켰다. 그들은 당시 근대화의 중심이었던 서구 어느 나라의 예술가보다도 근대성의 변방인 스페인에서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가장 잘 감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예는 예술적 상상력은 한 사회를 지배하는 독단이나 이해관계에서 벗어날 때 오히려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말하자면, 예술의 풍요로움은 역설적으로 시대의 위기 속에서 결여된 것을 메우려는 부단한 상상력 속에서 발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이 두 사람은 하나의 도그마에 근거한 닫힌 사회에서 예술적 상상력을 통해 갈릴레오나 데카르트가 바라보았던 현실을 자신들의 작품 속에 형상화하고 새롭게 현실을 재구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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