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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스테리온의 집으로 가는 길(2) / 현중문 2003-10-22 / 5970   

아스테리온의 집으로 가는 길(2)

현 중 문



목 차

아스테리온의 집으로 가는 길(1)
아스테리온의 집으로 가는 길(2)
아스테리온의 집으로 가는 길(3)



III. 보르헤스의 「아스테리온의 집」 자세히 읽기


1. 작품의 얼개와 화자

    보르헤스 작품을 읽기 전에 작품 얼개와 화자부터 얘기하는 게 순서일 것이다. 이 작품은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었다.

1) 제목(아스테리온의 집)과 아폴로도로스의 제사(題詞)
2) 아스테리온 이야기
3) 테세우스 이야기

    첫 부분에서는 화자의 관점(또는 focalization)이 지배적이며, 둘째와 셋째에서는 각각 아스테리온과 테세우스의 목소리가 텍스트 표면에서 물결치고 있다.

    이와 같은 이질성을 통합하는 접착제는 이야기의 기초를 이루고 있는 그리스 신화와 화자인데, 신화는 앞으로 언급할 사항이므로 여기서는 화자만 살펴보기로 한다.

    모든 소설에서 화자는 이야기를 중개하고, 나아가서 이야기를 통괄하는 기능을 가진다. 그러나 한 가지 차이가 있다. 일반적인 양태의 현대 소설은 화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감추려고 온갖 장치를 사용하고 있으나 이 작품은 의도적으로 화자를 드러내고 있다.

    이를테면, 보르헤스 작품에서 흔히 볼 수 있듯이, 이 단편에도 각주가 하나 붙어있는데, 이는 화자의 주석이다. 이후에도 화자는 대괄호([ ])를 사용하여 본문에 견해를 밝힘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분명하게 드러낸다.

    이처럼 드러난 화자는 불투명한 스크린이나 검열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아스테리온 이야기든 테세우스 이야기든 우리가 읽는 이야기는 모두 화자가 통제한다는 사실, 다시 말해서 겉으로는 아스테리온이나 테세우스의 목소리처럼 들릴지라도 실제로는 화자의 관점과 해석이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과시하려는 문학적 장치이다.





2. 제목과 제사


아스테리온의 집

그리고 여왕은 아들을 낳았는데, 아스테리온이라 불렀다.
― 아폴로도로스, 『도서관』, III권 1장



    이미 여러 경로를 통해서 이 작품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알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잠시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자. 미(美)란 대상을 향해 곧장 나 있는 길보다는 조금 에둘러 가는 길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책장을 펼치면 첫눈에 띄는 단어는 아스테리온이다. 아스테리온? 아스테리온이 누구일까? 이런 기본적인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는 실마리는 아폴로도로스 인용문인데... 그런데 이 인용문만 보고 아스테리온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부분은 백과사전에서 아폴로도로스 항목을 참조할 것이다.


아테네의 아폴로도로스(Apollodorus of Atens, B.C. 140년 경 사람) 박식한 그리스 학자. 저술 가운데 『연대기』가 유명하다.[...] 흔히 그리스 신화를 요약한 『도서관』을 이 사람 작품이라고 하나, 실제 저자는 아니다.(Britannica 백과사전)


    생몰 연대만큼이나 모호한 정보이다. 참고 문헌의 미로를 더듬어 다시 문제의 책 『도서관』 영역본을 찾아 3권 1장을 보면,


그리고 왕비 파시파에(Pasipae)는 아스테리온을 낳았는데, 미노타우로스라고 부르기도 한다.


다시 말해서, 아스테리온은 곧 미노타우로스이며, 아스테리온 집은 미노타우로스 집, 즉 미로라는 얘기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왜 보르헤스는 널리 알려진 미노타우로스라는 이름을 제쳐두고 굳이 아스테리온이라고 했을까? 여러 가지 추측이 가능하다.

    1)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려는 전통적인 소설 기법이다. 보르헤스는 모든 정보를 한꺼번에 제공하는 대신에 작품 전반을 통하여 주인공 대한 몇 가지 실마리를 하나씩 제시하기 때문에 독자는 추측해보는 재미를 누릴 수 있다. 실제로 이 작품을 끝까지 읽으면 아스테리온이나 아폴로도로스나 『도서관』에 관한 정보를 찾지 않아도 미노타우로스 얘기라는 것쯤은 누구나 파악할 수 있다.

    2) 보르헤스는 여러 판본의 미노타우로스 신화 가운데 『도서관』판에 기초하여 이 작품을 썼다는 암시이다.

    3) 미노타우로스 신화라고 할 때 직관적으로 떠오르는 괴물 이미지 같은 고정 관념에서 탈피하려는 서술 전략이다.

    여담이지만, 간혹 보르헤스의 작품은 낯이 선 정도를 넘어서 수수께끼처럼 보일 때도 있는데 도서관에 자리를 펴고 차분하게 앉아 보르헤스식 퍼즐을 하나하나 풀어가는 즐거움을 만끽할 경우에는 매력적인 요소가 된다.

    그러나 "독서는 행복이고, 작품은 읽기 쉬워야 하며, 이런 맥락에서 『율리시즈』나 『피네건의 경야』처럼 난해한 작품을 쓴 제임스 조이스 같은 사람은 근본적으로 실패한 작가"라고 주장한 사람이 보르헤스라는 사실에서는 아이러니를 느낀다.



3. 아스테리온의 관점에서 본 인간과 세계


[1-3행] 내가 오만하다거나, 사람을 싫어한다거나, 혹은 실성했다고 수군거리는 사람들이 있다. 모두 터무니없는 비난이다(때가 되면 응분의 조치를 취할 것이다).


    첫 문장의 진술 주체는 '나', 아스테리온이다(일인칭 소설이라는 뜻은 아니다. 이 작품의 화자는 아스테리온이 아니라 추상적인 '그'이다). 여기서 아스테리온 대신 미노타우로스라고 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우리 귀에 익숙한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르헤스는 이 작품에서 미노타우로스라는 고유명사는 한 번도 사용하지 않는다. 그 이름이 우리 귀에 너무 익숙하기 때문이다. 결국 미노타우로스는 독자가 찾아내야 할 이름이다.

    아무튼, 첫 문장의 주어 '나'는 이 작품을 해독하는 가장 중요한 열쇠(혹은 코드)이다. 세상과 사물과 인간을 바라보는 주체의 관점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관점은 우리처럼 인간적인 시각과 사고가 아니라 반은 사람이고 반은 황소인 아스테리온의 시각과 사고라는 사실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이렇게 보면, 아스테리온은 자신을 괴물로 생각하지 않으며 자신의 행위를 인간적인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에 대한 인간들의 평가는 모두 험담이고 "터무니없는 비난이다".


[4-8행] 내가 집밖으로 나가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밤이나 낮이나, 사람들은 물론 동물들에게도 문이(무한히 많다)[각주] 열려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들어오고 싶으면 들어오라. 이곳에서 여성적인 화려함이나 궁전처럼 휘황찬란한 물건은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그 대신 적막과 고독을 발견할 것이다.

[각주] 원문은 '열 넷'이라고 적혀 있다. 그러나 아스테리온 입장에서 이 숫자는 '무한'에 해당한다고 추론할 수 있는 근거는 아주 많다.


    이상한 형태의 집이다. 미로이기 때문이다. 문이 달려 있는 미로가 있던가?

    그런데 화자의 각주는 원문을 보충하기는커녕 독자가 해결해야 할 수수께끼만 남긴다. 14 = ∞ 의 공식에 대한 아무런 설명이 없기 때문이다. 왜 14인가? 신화에 따르면 남자 7명과 여자 7명, 도합 14명을 제물로 바쳤다고 한다.

    그렇다면 14가 어떻게 무한이 될 수 있단 말인가? 몇몇 원시부족을 연구한 인류학자의 보고가 생각난다. 손가락 셈법 이상의 숫자는 모두 "많다"라는 언어로 표현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유형의 해석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지는 모를 일이다.

    차라리 이 부분을 보르헤스의 유희로 이해하면 어떨까. 각주에서 "원본"을 언급하고 있는데, 정말 이 작품의 원본이 존재하는 것일까? 물론 없다. 단지 있는 척할 뿐이다. 마찬가지로 14가 무한이라고 추정할 수 있는 합리적인 근거 또한 현재로서는 전무하다. 그렇게 가정하고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을 뿐이다.

    14 = ∞이란 이 작품에서만 작동하는 고유의 셈법이고 논리이며, 독자가 잠정적으로 수용해야 하는 기본 가정 정도로 여기고 더 이상의 의문은 제기하지 않도록 하자. 아직은 대답 없는 질문만 무성할 것이므로.


[8-9행] 또한 지상에서는 둘도 없는 집을 발견할 것이다 (이집트에 이와 유사한 집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것은 거짓말이다).


    여기서 말하는 "유사한 집"이란 전설상의 이집트 미로이다. 헤로도투스와 플리니우스에 의하면, 이집트 12왕조(B.C. 12C 경) 아메넴하트 3세가 미로를 건설하라고 명령했다고 한다.


[10-13행] 집 안에 '단 하나의 가구'도 없다는 것은 나를 비방하는 자들조차 인정하는 사실이다. 어처구니없는 일이 또 하나 있는데, 나 아스테리온은 수인(囚人)이다. 닫힌 문이 하나도 없다고 되풀이 말할 필요가 있을까? 자물쇠도 없다고 덧붙일 필요가 있을까?


    가구, 문, 자물쇠가 없다는 것은 아스테리온이 살고 있는 집이 일반적인 주택이 아니라 미로라는 또 하나의 암시이다. 보르헤스는 탐정소설처럼 이 작품에서 꾸준히 이러한 종류의 암시를 제공한다.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 부분이 알쏭달쏭하게 보일 수도 있다. 보르헤스가 '단 하나의 가구'라고 강조한 까닭은 뒤에서 밝혀질 것이다.


[14-20행] 게다가 어느 날 오후, 나는 길거리로 나간 적도 있다. 밤이 되기 전에 돌아온 까닭은 핏기가 없고, 손바닥처럼 밋밋한 평민들의 얼굴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이미 해는 저물었다. 그러나 한 아이의 애절한 울음과 신도들의 거친 애원으로 미루어보아 모두들 내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기도를 하거나, 도망치거나, 무릎을 꿇었다. 어떤 사람들은 '쌍도끼 신전' 기단(基壇) 위로 기어올라가고, 어떤 사람들은 돌을 모으고 있었다. 바다 밑으로 숨어버린 사람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아스테리온이 반인반우(半人半牛)라면, 머리와 몸통 중 어느 쪽이 황소일까? 머리일 수도 있고, 몸통일 수도 있으나 보르헤스는 아폴로도로스의 견해를 따라 머리가 황소라고 한다. 그렇다면 "핏기 없는 얼굴"과 "손바닥처럼 밋밋한 평민들의 얼굴"은 황소 눈에 비친 인간의 모습이리라(투우사가 투우 앞에서 흔들어대는 천은 빨간색이다. 그러나 소는 색맹이므로 빨간색을 보고 흥분하는 것은 소가 아니라 관객들이다).

    그 다음 문장도 여전히 아스테리온의 관점이다. 인간들의 편에서 이 장면을 기술해보자. 괴물이 거리에 나타났으니 아이는 자지러지게 울고, 사람들은 목청이 터지라고 고함을 지르고, 일부는 돌팔매질을 하고, 일부는 두려움 때문에 바다 속으로 뛰어드는 등 크레타 섬(일단 이렇게 얘기하자)은 아비규환이었으리라 (쌍도끼 신전에 대해서는 프롤로그의 미노타우로스 항목 참고).


[21-22행] 어머니가 여왕이라는 게 공연한 일은 아니었다. 나는 평민들과 같을 수 없다. 겸손하기 때문에 그러고 싶지만.


    비록 괴물이지만 아스테리온의 혈통은 가까이는 왕손이며, 조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신의 후손이다. 따라서 이 행의 표면은 혈통에 대한 자부심의 표현이다. 하지만 자신은 겸손하기 때문에 평민들과 함께 어울리고 싶으나 어머니가 왕비이므로, 즉 왕손이므로 평민들과 어쩔 수 없이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발언을 뒤집어보면 평민들(괴물이 아닌 사람들)이 괴물 아스테리온을 두려워하고 멀리한다는 얘기다.




▶ 그림 설명 : 크노소스(Knossos) 궁전의 벽화


4. 유일무이한 존재의 고독


[1행] 사실 나는 유일무이한 존재다.


    세상에 단 하나뿐이라는 것, 유일무이하다는 것. 이것이 아스테리온의 자부심이면서 고독의 원천이다.


[2-5행] 그리고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전수할 수 있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철학자처럼 나도 글이라는 기예를 통해서는 아무 것도 전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내 머리는 오로지 큰 것만을 생각할 뿐, 성가시고 자질구레한 사항은 담아두지 못한다. 그래서 이 글자와 저 글자의 차이점을 눈여겨본 적이 없다.


    3행 "철학자처럼"은 보통명사가 아니라 정관사를 동반한 명사로 특정한 사람을 지칭한다. 아스테리온은 신화적 인물이므로 후대의 철학자 이름을 명기할 수 없기 때문에 보르헤스는 적당히 얼버무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함축하고 있는 뜻은 "말로 가르친 인류의 스승", 즉 피타고라스, 소크라테스, 석가모니, 예수 그리스도이다.(『보르헤스 강연』 참고) 이들은 글(文字)이란 생각을 왜곡한다고 여겼기 때문에 글보다는 말을 신뢰했다. 전체적으로는 유머가 넘치는 서술이다.


[6행] 고결한 조바심 때문에 글을 배우지 못했는데,


    "고결한 조바심" 보르헤스 작품에서 이러한 유형의 수식 형용사는 우리말로 옮길 때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원문이 워낙 모호하므로, 즉 시적인 다의미를 띄고 있으므로 직역을 하면 어색하게 보일 뿐더러 의사소통이 안 되는 경우가 있고, 뜻이 통하게 의역을 하면 해당 문장 앞이나 뒤에서 그 단어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구절이 불쑥 튀어나와 오역이 될 확률이 높다.

    조바심: 참을성이 없고, 인내가 없고, 끈기가 없고, 진득하지 못한 성질이다. 이미 앞에서 아스테리온이 글을 배우지 못한 것도 차분한 성격이 아니라고 서술하고 있으므로 매끄럽게 이해할 수 있다.

    고결한: 일상적인 의미로는 속이 넓은, 관대한, 인자한 (사람)처럼 쓰이는 형용사이다.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여유가 있는 사람이 너그러운 법이므로 이차적인 의미는 '풍부한', '비옥한', 나아가서 '고귀한', '고결한' 뜻을 갖고 있다. 이 중에서 어느 의미를 취하든 지간에 조바심이라는 단어하고 어울린다고 할 수 없다.

    따라서 1) 4-5행을 고려하여 "고결한 조바심" 을 해석하면 큰 일만을 생각하고 성취하려는 아스테리온의 성향을 드러낸다.

    또한 2) 이 작품에서 교차하고 있는 두 종류의 시선―다시 말해서, 표면적인 아스테리온의 시선과 그 아래에서 작동하는 화자의 시선―을 고려하면 "고결한"은 아스테리온의 평가이고, "조바심"은 화자의 평가로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양자의 의미론적 불일치 때문에 아스테리온 성격의 양면성이 드러나고 끝내는 아이러니로 치닫는 구절이다(바흐찐의 이론을 따라서 이중음성성이라고 규정할 수도 있다).


[7-8행] 가끔 후회가 될 때도 있다. 밤과 낮이 너무 길기 때문이다.


    가슴이 뭉클한 대목이다. 여기서 느끼는 감동은 독자의 경험 투사로 발생한 우연적인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이 작품을 읽는 동안 머리 속에 하나하나 축적된 아스테리온 이미지의 종합이고 결과이다. 고독, 수인, 소외, 멸시 등 한 맺힌 삶을 자존심 하나로 포장하고 견딜만하다고 우기는 아스테리온!

    한편, 한편, 밤과 낮이 너무 길다는 진술은 다음 단락에서 얘기하는 아스테리온의 놀이에 정당성(문학적 동기)을 부여한다.



5. 아스테리온의 놀이


[1-7행] 물론, 소일거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나는 적을 향해 돌진하는 양처럼 석조 회랑을 내닫다가 현기증을 느껴 바닥에 꼬꾸라지기도 한다. 저수조 뒤에나 복도 모퉁이에 웅크리고 숨거나, 술래잡기를 하기도 한다. 옥상도 있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뛰어내리며 노는 곳이다. 어느 때라도 잠을 자는 놀이를 할 수도 있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눈을 감고 있는 놀이다.


    아스테리온이 희생 제물로 바쳐진 인간을 사냥하는 과정을 기술하고 있으므로 "소일거리"란 사실 매우 완곡한 표현이다. 여기서 인간 사냥을 어떻게 놀이라고 얘기할 수 있으며 생사의 갈림길에서 쫓고 쫓기는 일을 술래잡기라고 표현할 수 있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되바라진 문학적 상상력쯤으로 치부하여도 되고, 또 보르헤스의 사고에 따르면 개인이란 존재는 티끌 같은 존재, 알파벳 기호에 불과하다는 명제에 빗대어 이해할 수도 있다.

    작품 구성의 긴밀성에 초점을 맞추면 첫 구절("내가 오만하다거나, 사람을 싫어한다거나, 혹은 실성했다고 수군거리는 사람들이 있다.")의 유연한 펼침으로도 볼 수 있다. "오만"은 아스테리온의 혈통에 대한 자부심을 압축한 표현이고, "사람을 싫어한다"는 것은 인신공양을 가리키며, "실성했다"는 이 단락 마지막 행 "우리 둘은 마주보고 껄껄 웃는다"와 연관이 있다.

    참고로, 아스테리온 이야기는 에게해 지방의 고대 신화이다. 이 곳에서는 인간이 황소머리를 뒤집어쓰고 종교 의식을 거행하였는데, 이것이 투우의 기원 가운데 하나이다. 그렇다면 투우는 자연과 인간 사이의 생존 대결이 종교 의식이 되고, 이어 놀이로 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대목을 읽으면 투우장에서 소뿔에 들이 받치는 투우사가 떠오른다.


[8-9행] (이따금 정말로 잠을 자기도 한다. 눈을 떠보면 하루의 색깔이 바뀌었을 때도 가끔 있다)


    "하루의 색깔..."은 밤과 낮의 변화이다. 뒤에서 다시 언급하겠다.


[10행] 그 많은 놀이 가운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놀이는 다른 아스테리온이 되는 것이다.


    "다른 아스테리온"이 되는 놀이는 앞 단락에서 말한 유일무이한 존재로서 아스테리온이 느끼는 고독의 직접적인 산물이다. 또한 "다른 아스테리온"은 거울 이미지이다. 나르시소스 신화처럼 이곳에서도 자아 분열(ego split) 또는 자기 반영(self-reflexion)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다.

    루이스 캐롤의 『거울 나라의 엘리스』(최종민, 나라사랑)도 참고 대상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거울 나라는 당혹, 미로, 유희는 비대칭에 기초한 사상(事像)의 전도로 형성된 세계인 반면에 보르헤스의 세계는 사물의 대칭성을 강조하고, 사상의 공간적인 역전보다는 시공간적인 반복과 증식에 바탕을 두고 미로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11-18행] 그가 나를 찾아와서 집구경을 시켜주고 있다고 상상한다. 나는 정중하게 얘기한다. "이제 우리 지나왔던 네거리로 돌아갑시다." "이제 우리 다른 안마당으로 들어갑시다." "홈통이 마음에 드실 거라고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이제 모래가 가득 담긴 항아리를 보시게 될 겁니다." "곧 지하실이 어떻게 두 갈래 갈라지는 되는지 아시게 될 겁니다." 가끔 나는 실수를 하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우리 둘은 마주보고 껄껄 웃는다.


    미로 내부 구조에 대한 공간적인 기술이다. 여기서 보르헤스는 크노소스 궁전을 상상하고 있는 듯하다. 이 궁전은 1878년 크레타 고미술품 상인이 발굴을 시작했고, 1900-1931년에 걸쳐 아더 에반스(Athur Evans)의 지휘로 완전히 발굴되었다.



▶ 사진 설명 : 크노소스 궁전의 항아리와 지하 통로(출처: http://www.antikefan.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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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테리온의 집으로 가는 길(1)
아스테리온의 집으로 가는 길(2)
아스테리온의 집으로 가는 길(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