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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틀뢴에서 아드로게로(1) / 현중문 2003-10-24 / 10309   

틀뢴에서 아드로게로: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테르티우스(1)

현 중 문



목 차

틀뢴에서 아드로게로: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테르티우스(1)
틀뢴에서 아드로게로: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테르티우스(2)
틀뢴에서 아드로게로: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테르티우스(3)


1. 우르와 틀뢴

     1930년대와 40년대 아르헨티나 지식인들은 인류학에 큰 관심을 보였다. 서태평양 원주민을 연구한 말리노프스키(Bronislaw Kaspar Malinowski 1884∼1942)의 저술은 신화와 종교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였고, 크노소스 궁전을 비롯하여 중요한 고고학적 발굴이 호기심을 자극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테르티우스」(Tlön, Uqbar, Orbis Tertius 이하 「틀뢴...」으로 약칭함)에서도 뚜렷하게 감지할 수 있다. 특히 우크바르가 마치 중동 지방에 위치하고 있는 듯이 암시하고, 틀뢴의 원초적 언어를 우르스프라헤(Ursprache)라고 명명하며, 흐뢰니르의 원형을 우르(Ur)라고 부르는 보르헤스의 상상력 속에 이라크 유적지 우르(Ur)가 어른거리고 있었을 것이다.


이라크의 우르

▶그림 설명: 이라크의 우르 지도


     이라크의 우르 유적은 한때 아라비아의 로렌스와 함께 중동을 누비던 영국의 인류학자 울리(Leonard Woolley)가 1921년부터 1934년까지 발굴하였다. 그리고 발굴이 진행중이던 1929년에는 『칼데아인의 우르』(Ur of the Chaldees)라는 제목의 연구가 출판되었으니, 스페인어보다 영어에 더 능통한 책벌레 보르헤스가 이 소식을 놓쳤을리 없다.

     우르 유적은 기원전 2600-2200년경 수메르인들이 건설한 문명이다. 이곳에서 1,800여기의 무덤이 발굴되었는데, 이 중 왕족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곳에서 설형문자가 새겨진 원통형 인장(Sylinder Seal)이 발견되었다. 이로써 무덤 주인이 푸아비(Puabi) 왕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원통형 인장은 당시로서는 세계 최초의 기록문자였으므로 언어와 문자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밖에 없었다 (현재의 고고학 성과를 반영하면 이러한 기술은 수정되어야 한다. 2003년 4월 현재, 세계 최초의 문자는 중국 허난(河南)성에서 발견된 8600년 전(기원전 6000-6200년) 거북등에 새겨진 갑골문자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그림 설명: 우르의 지구라트(Ziggurat)


     이뿐만 아니라 우르에서는 지구라트(ziggurat)라는 탑 건물이 발굴되었다.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울리의 견해를 좇아 이 지구라트가 바로 구약성서 창세기 11장에서 언급하는 바벨탑이라고 여기고 있다.

     이처럼 우르는 최초의 기록 언어가 발견된 곳이고, 하나의 언어가 수많은 언어로 나뉘게 된 계기를 마련한 바벨탑이 존재한 곳이다. 영국인 울리가 괭이를 들고 이라크 땅을 발굴하여 우르를 밝혀냈다면, 보르헤스는 문학이라는 펜을 들고 상상력의 영역을 파헤쳐서 「틀뢴...」을 창조한 것이다.



2. 그노시즘, 장미 공동체, 라이프니츠

     대부분 소설의 배경화면은 일상 현실이다. 그래서 별다른 노력 없이도 쉽게 줄거리를 따라갈 수 있다. 이 작품도 지리적 배경은 부에노스아이레스이다. 그러나 실제 이야기의 맥락은 서구 유현학 또는 은비학(occultism), 특히 그노시즘(gnosism)의 전통 위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노시즘을 다룬 책으로는 『신비의 지식, 그노시즘』(세르주 위탱, 황준성 옮김, 문학동네, 1996)가 있다. 혹시 「틀뢴...」를 읽고 수많은 궁금증을 안고 있는 독자가 이 책을 접한다면 먹장구름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을 보는듯한 지적 후련감을 경험하리라고 확신한다. 요약으로 맛을 조금 보도록하자.


영지주의는 성의 다양한 현상들(성욕, 성교, 수태, 탄생)과 육체적 삶의 다양한 과정들(탄생, 병, 노쇠, 죽음)까지도 완강히 혐오한다. 카톨릭처럼 지상적 존재가 덧없기 때문에 육체를 경멸하는 것이 아니다. 영지주의에 따르면, 지고의 상태에 있던 인간의 영혼이 육체적, 물질적, 가시적 세계로 타락했으며, 원래의 상태에 대한 앎만이 구원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영혼 또한 두 가지이다. 진정한 자아인 천상의 영혼이 하나요, 악마들이 부여한 것으로 죄를 짓는 지상의 영혼이 다른 하나이다. 이러한 논리에 따라, 영지주의는 절대적으로 선하지만 세상에 무관심하고 인간들에게 미지의 존재로 남아있는 초월적 신과 세계와 육체의 창조자인 열등한 하급신을 대립시킨다. 세렝트(Sérinthe)에 의하면, “세계는 최고신의 작품이 아니라 초월적인 이 신의 존재를 모르는 하급신의 작품이다.” 하급신이 만든 가시적인 우주는 출생과 죽음을 통해 반복되는 영원히 부조리한 연속의 영역, 즉 물질 속으로 추락한 우월한 영혼들이 유폐되어 있는 지역이다. 이 가시적인 우주 속에서 영혼은 이미 수없이 많은 육체를 전전, 즉 윤회하면서 시간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의 표현에 따르면, “영혼은 악의 소굴, 즉 세계라는 미궁의 모퉁이를 헤메고 있다.” 따라서 인간의 영혼은 추락 혹은 타락하기 이전의 고향에 대한 본원적인 향수를 느끼고 있다.


     영지주의를 비롯한 은비학은 서구 사상의 정통이 아니라 이단에 속한다. 이를테면, 영지주의는 지혜(gnosis)를 통한 구원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헤브라이즘 전통과 배치되고, 논증 불가능한 신비를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헬레니즘 전통과 배치된다. 더구나 극단적인 영지주의자들은 결혼과 출산을 혐오하고 기피하므로 반사회적인 요소도 지니고 있다. 이처럼 영지주의는 근대 종교, 이성, 사회의 절대성과 진리치와 정당성을 한꺼번에 부정하는 전복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카발라의 신비

▶ 그림 설명: 로젠로트(Christian Knorr von Rosenroth), 『카발라의 신비』(Kabbala denudata, 1677-1678) 출처: http://oldsite.library.upenn.edu


     이러한 은비학의 전통을 이어받은 비밀 결사체가 장미십자회인데, 이 단체는 우주적 지혜를 만물의 근원으로 여긴다는 점에서 영지주의와 관련이 있으며, 회원들 사이의 비전을 전수하는 등 비밀 결사체라는 점에서 후대의 프리메이슨과 연관이 있다.

     연혁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일반적으로는 독일 루터파 신학자 요하네스 발렌티우스 안드레아(Johannes Valentinus Andreä)가 카셀(Cassell)에서 출판한 「장미십자회의 명성」(Fama Fraternatis Rosa Crucis, 1614 또는 1616)을 기원으로 본다. 「장미십자회의 명성」에 따르면, 독일 귀족 크리스티안 로젠크로이츠(Christian Rossecreuz, 1378-1484)가 여러 해 동안 근동지역을 여행하면서 기독교 신비주의, 수학과 자연과학에 통달하였다. 그 후 독일로 돌아와 1408년 장미십자회를 세우고 7명의 문하생을 모아 방대한 총서를 편집하도록 했다. 그 중 5명은 매년 한차례씩 모임을 가졌는데, 100년 동안 비밀을 엄수하기로 서약하고 비전을 전수할 후계자를 물색하였다. 안드레아는 자신이 바로 비전을 전수받은 후계자라고 주장하였다 (참고. 움베르토 에코는 『푸코의 진자』 29-32장에서 장미십자회를 다루고 있다).

     보르헤스는 「틀뢴...」에서 우크바르는 가상 공동체(imaginaria comunidad)가 만들어낸 산물이라고 암시하면서 “무한한 지식의 소유자로 어둠 속에서 겸손하게 일하는 라이프니츠와 같은 사람”이라는 구절을 등장시킨다. 보르헤스를 비롯한 20세기 라틴아메리카 작가들은 인구에 회자되는 인물이나 사실보다는 특이한 인물이나 사실에 관심을 갖는 경우가 허다하다. 여기에서도 보르헤스가 단자론 때문에 라이프니츠를 언급하고 있다고 보기 어려워, 참고 문헌(조지 맥도널드 로스, 『라이프니츠』, 시공사, 2000)을 펼쳐놓고 관련 사항을 정리하였다.

     라이프니츠(Gottfried Wilberm Leibniz, 1646-1716)는 연금술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크래프트(J.D. Craft)나 베허(Johann Joachim Becher) 같은 연금술사와 사귀기도 했다. 실제로 라이프니츠는 연금술을 실험한 적은 없으나 제조 가능성을 의심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너무 싼값에 금을 만들면 금값이 폭락할까봐 염려했다. 또한 뉘른베르크 학회의 총무를 맡기도 했는데, 일부의 주장에 따르면 이 학회는 장미십자회가 만들었다고 한다.

     또한 라이프니츠는 모든 지식을 단일 체계로 통합하는 ‘보편 백과사전’을 구상하고 당시 유럽 지식인 수백명과 서신을 교환하여 과학, 수학, 법률, 정치학, 종교, 철학, 문학, 역사, 언어, 화폐학, 인류학에 관해 의견을 나누었다. 지금도 이 때 교환한 편지가 1만 5천통이나 남아 있다. 또한 라이프니츠는 뉴턴과는 상반되게 공간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추상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라이프니츠의 개인사를 살펴보면 장미십자회, 백과사전, 지식인 공동체, 공간의 부정이라는 점에서 틀뢴을 창조할 만한 능력을 가진 인물이라고 추정할 만하다.


목차
틀뢴에서 아드로게로: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테르티우스(1)
틀뢴에서 아드로게로: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테르티우스(2)
틀뢴에서 아드로게로: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테르티우스(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