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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틀뢴에서 아드로게로(2) / 현중문 2003-10-24 / 9618   

틀뢴에서 아드로게로: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테르티우스(2)

현 중 문



목 차

틀뢴에서 아드로게로: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테르티우스(1)
틀뢴에서 아드로게로: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테르티우스(2)
틀뢴에서 아드로게로: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테르티우스(3)



3. 보르헤스의 지인


비오이 카사레스1)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

     보르헤스와 비오이 카사레스(Adolfo Bioy Casares, 1914-1999)는 평생을 함께 한 동료이다. 두 사람은 1932년에 처음 만난 이래 『환상문학 선집』를 공동으로 편찬하였고, 『이시도로 파로디의 6가지 문제』(Seis problemas para don Isidro Parodi, 1942)와 같은 책을 공저하기도 하였다.

     두 사람이 만나게 된 계기는 아르헨티나의 명문 집안 출신의 빅토리아 오캄포(Victoria Ocampo, 1891-1979)가 1931년 창간한 문학지 《수르》(Sur) 때문이었다. 어느날 저녁 오캄포의 집을 방문한 비오이 카사레스는 일생 동안 지속적인 관계를 맺을 두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한 사람은 보르헤스이고, 다른 한 사람은 빅토리아의 동생 실비나 오캄포(Silvina Ocampo, 1903-1994)이다. 실비나 오캄포와 비오이 카사레스는 1940년 결혼하였다.

     「틀뢴...」의 첫머리에서 보르헤스(엄밀하게 말하면 화자 ‘나’)는 두 사람이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소설 작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기술함으로써 비오이 카사레스에 대한 애뜻한 동료애를 표현한다. 비오이 카사레스나 실비나 오캄포의 작품 또한 읽을 만한 가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르헤스의 그림자에 가려졌다는 안타까움이 어찌 보르헤스 독자들만의 생각이겠는가.



2) 알폰소 레예스

     「틀뢴...」에서 언급하는 수많은 인물 가운데 멕시코 출신의 수필가 레예스(Alfonso Reyes, 1889-1959)만큼 보르헤스의 문체와 작품 세계에 커다란 영향을 준 사람도 없을 것이다. 레예스는 20세기 전반 라틴아메리카인들에게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한 지성인이었다. 보르헤스는 책을 통해서 레예스를 알고 있었으나 두 사람이 처음 대면한 시기는, 1927년 레예스가 아르헨티나 주재 멕시코 대사로 임명되었을 때였다. 물론 레예스는 직업 외교관이 아니었다.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작가들에게 여러 가지 직책을 부여하여 해외 공관에 파견하는데, 레예스 또한 이런 관례에 따라 아르헨티나 대사가 되었다.

     보르헤스와 레예스가 언제 어떤 방식으로 처음 만났는지는 증언자에 따라 다르다. 보르헤스 연구가로 널리 알려진 로드리게스 모네갈(Emir Rodríguez Monegal)은 레예스가 대사관에서 만찬을 열어 보르헤스를 포함하여 아르헨티나 문인을 초대하였다고 쓰고 있으나, 페드로 엔리케스 우레냐(Pedro Henríquez Ureña)의 증언으로는 빅토리아 오캄포가 레예스를 만찬에 초대하였고, 여기서 보르헤스를 소개했다고 증언한다. 당시 레예스의 문명(文名)을 고려하면 후자가 더 신빙성이 있다.

     레예스와 보르헤스, 이 두 사람의 관계는 보르헤스가 남긴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가 되기 때문에 중요하다. 보르헤스가 평생을 두고 독자들이 망각해주기를 원한 수필집 세 권이 있었다. 『심문』(Inquisiciones, 1925), 『내 희망의 크기』(El tamaño de mi esperanza, 1926) 그리고 『아르헨티나의 언어』(El idioma de los argentinos, 1928)이다. 만년에 보르헤스가 전집을 출판하겠다는 출판사의 제의를 받았을 때, 첫 번째로 내세운 조건이 이 세 권을 전집에 포함하지 않겠다는 서약이었다. 미국 대학교에서 강연을 한 다음날, 한 학생이 도서관에서 이 세 권 가운데 한 권을 찾았다고 일러주었을 때 보르헤스는 망연자실했다고 한다. 보르헤스의 아킬레스 건을 건드린 셈이다.

     보르헤스가 이처럼 민감한 반응을 보인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 이 책에서 보르헤스는 아르헨티나의 토속성에 집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 작가라면 아르헨티나적인 요소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아르헨티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소재와 대상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보르헤스의 사고에 전회를 가져온 계기를 마련해준 사람은 레예스였다. 레예스에 따르면, 라틴아메리카적인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라틴아메리카의 토속성만이 아니라 라틴아메리카 문화와 지속적인 상호관계에 있는 유럽 문화를 포용해야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레예스는 아르헨티나의 고유성 또는 라틴아메리카의 고유성을 배제의 원리가 아니라 포괄의 원리로서 규정한 것이다. 이러한 레예스의 사고는 후일 보르헤스의 「아르헨티나 작가와 전통」(El escritor argentino y la tradición)에서도 거의 문자 그대로 반복된다.

     둘째는 문체적인 측면이다. 앞서 언급한 세 작품집은 문체면에서 볼 때 보르헤스의 습작이라고 할 수 있다. 시인이던 보르헤스는 산문을 쓰면서 여러 선배 작가들의 문체, 특히 마세도니오 페르난데스(Macedonio Fernández, 1874-1952)의 까다롭고 복잡한 문체를 모방하였다. 이러한 문체는 이후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보르헤스의 투명하고 깔끔한 문체와 분명한 대조를 이룬다. 과장하면 보르헤스의 글이 아니라고 여길 정도이다. 이같이 난삽한 보르헤스의 문체에 대해서 충언을 해준 사람이 바로 당시 미문의 문장가로 명성이 높던 레예스였다.

     이러한 두 가지 측면을 고려하면, 보르헤스 문학의 전환점은 로드리게스 모네갈이 주장한 것처럼 1938년 크리스마스 무렵의 사고(창문에 머리를 다친 사건)를 통해서 극적인 전환을 이룬 것이 아니라 레예스와 지속적인 대화와 부단한 자기 연찬을 통해서 서서히 형성된 것이다.



3) 알레한드로 술 솔라르


통로

▶그림 설명: 《통로》, 알레한드로 술 솔라르


     보르헤스는 술 솔라르(Alejandro Xul Solar, 1888-1963)를 가리켜, “모르는 것이 없는 사람이며, 신비한 것에는 관심이 많았고, 글쓰기, 언어, 유토피아 이론, 신화, 점성술, 아이러니에 능숙한 우리 시대의 기인”이라고 평했는데, 결코 과장이 아니다.

     술 솔라르의 본명은 오스카르 아구스틴 알레한드로 술츠 솔라리(Oscar Agustín Alejandro Schultz Solari)이다. 솔라르는 무엇보다도 먼저 화가이다. 1911년부터 1924년까지 유럽을 전전하며 큐비즘, 야수파, 표현주의, 초현실주의 등 아방가르드 예술을 접했는데, 특히 폴 클레(Paul Klee) 작품에 매료되었다.

     또한 독서를 통해서 힌두교, 불교, 도교, 유대교, 이슬람교, 일본의 신도 등 세계의 여러 종교에도 관심을 가졌다. 특히 테베트의 밀교에 사로잡힌 솔라르는 티벳의 사원에서 일생을 승려로 살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혀 1907년 건축학과를 중퇴하고 홍콩으로 밀항을 시도했다. 그러나 중도에서 포기하고 유럽에서 내려 여러 나라를 여행하였다.

     술 솔라르는 언어에서도 타고난 재능을 보였다. 스페인어, 프랑스어를 비롯한 5개 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였으며, 라틴어, 희랍어에도 정통했다. 또한 산스크리스트어에도 조예가 있었다. 이런 언어적 지식을 바탕 위에서 솔라르는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독일어, 영어를 혼합하여 크레올(Creol) 또는 네오크리오요(Neocriollo)라는 이름의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 냈다. 또한 전세계 사람들이 두루 사용할 수 있는 일종의 보편어로서 판렝구아(Pan lengua)를 만들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보르헤스는 소개한 일화에 따르면, 어느날 술 솔라르는 허겁지겁 빅토리아 오캄포의 집으로 들어오면서 “큰 소식이 있다”고 외쳤다. 무슨 소식이냐고 물었더니 “부사(副詞)가 죽었다”고 했다. 사람들이 ‘안녕히 가세요’라는 말을 “Que le vaya lindamente”라는 대신에 “Que le vaya lindo”라고 사용하므로, 부사는 이미 죽었다는 주장이었다.

     이처럼 언어에 관심이 많은 술 솔라르라면 틀뢴의 복잡한 언어라고 할지라도 쉽게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벵상의 역사의 거울

▶그림 설명: 벵상, 『역사의 거울』(출처: http://expositions.bnf.fr)



4. 거울과 백과사전

     「틀뢴...」의 첫머리에 등장하는 “거울과 백과사전의 결합”이라는 어구의 문맥적 의미는 단순하다. 등장인물 ‘나’와 비오이 카사레스가 한밤중 복도 끝에서 번뜩이는 거울을 보고 섬뜩한 느낌을 받았으며, 이의 연상작용(혹은 관념연합)으로 비오이 카사레스가 어떤 구절을 인용하였는데, 이 구절의 출전이 백과사전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우크바르를 찾아보는 등 사단이 붙었으니, 작품의 발단이 된 사건이다.

     역사적 맥락을 천착하면, 거울과 백과사전은 대상을 반영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이미지를 사용하는가 아니면 언어를 사용하는가만이 다르다. 실제로 중세에는 백과사전이나 역사서에도 거울(speculum)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세상과 인간사의 거울이라는 의미이다(보르헤스는 거울을 비유적으로 ‘기억’과 연관시키기도 한다. 역사가 인간사를 비추는 거울이고 또 인간사에 대한 기억의 집적이라면, 거울은 기억이라는 비유법이 성립한다. 참고. 보르헤스, 「아베로에스를 찾아서」)

     백과사전을 거울이라는 단어로 표현한 몇 가지 용례를 살펴보자.

1) “이러한 이미지는 8세기에 이르면 상징적인 작품 『장미 이야기』에서(이 책에서는 플라톤의 말이라고 한다) 다시 나타나고, 전설적인 인물 헤르메스가 저술했다고 이야기하는 백과사전 『삼중의 거울』(Speculum Triplex)에서도 나타난다.”(보르헤스, 『또 다른 심문』)

2) 성인 베르나르도(Bernardus, 1090-1153)는 책과 거울(Liber et speculum)이라는 표상을 사용함으로써 공동체가 바로 책의 반영이요 책이 곧 공동체의 반영이라고 얘기하였다.

3) 벵상(Vincent of Beauvais, 1190-1264)은 『큰 거울』(Speculum Majus)이라는 총서를 저술하였는데, 그 가운데 역사 부분인 『역사의 거울』(Speculum Historiale)은 천지창조에서 경건왕 루이에 이르기까지 중세의 여러 연대기 작가들의 작품에서 발췌한 내용을 모자이크 식으로 늘어놓은 역사서이다.

     책이 세상의 거울이라는 아날로지(analogy)의 기원은 카발라(유대 신비주의)에서 찾을 수 있다. 거울에서 사물과 이미지의 대응 방식과 책에서 사물과 철자의 대응 방식이 동일하다는 것이다. 보르헤스는 「책에 대한 숭배」에서 이렇게 얘기한다.


카발라주의자들의 추론에 따르면, 주님 명령의 효력은 단어의 철자에서 나온다. 서기 6세기 경에 팔레스타인이나 시리아에서 편찬된 『창조의 책』(Sefer Yetsirah)에는, 여호와의 군대, 이스라엘의 하느님, 전능하신 하느님이 알파벳의 22철자와 1부터 10까지의 기수를 사용해 우주를 창조했다고 밝히고 있다. 숫자가 천지창조의 요소 또는 수단일 수도 있다는 것은 파타고라스와 잠발리쿠스(Jámbalico)의 교리이며, 철자가 그러한 수단이라는 것은 명백히 글쓰기의 새로운 신앙에 대한 징표이다. 『창조의 책』 제2장 2절을 보면, 스물 두 개의 기본적인 철자, 하느님께서 그리고, 조각하고, 조합하고, 가늠해보고, 배열하셨으며, 이 철자들을 이용해 현존하는 모든 것과 앞으로 생겨날 모든 것을 만드셨다고 한다. 이어, 어떤 철자가 하늘, 물, 불, 지혜, 평화, 은총, 꿈, 분노에 대해 권능을 가지는지 설명한다. 예컨대, 생명에 대해 권능을 지니고 있는 카프(Kaf)라는 철자가 어떻게 해서 우리 몸의 왼쪽 귀와 일년 중 수요일과 세상의 태양을 형성하는 데 쓸모가 있었는지를 밝히고 있다.(보르헤스, 『또 다른 심문』)


     백과사전이 거울이라는 아날로지의 배경은 그리스 언어철학까지 거슬러올라간다. 즉, 언어는 사물을 직접 지시한다는 것으로, 말이 곧 사물이 되는 상태를 일컫는다. 이러한 언어관은 구약성서를 비롯하여 세계 각지의 주술적 사고에서도 종종 발견된다.

     이어 중세 라틴어학자들은 언어가 실재를 반영한다고 생각하였다. 문법의 범주와 사물의 범주가 상응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문장의 부수적인 요소, 이를테면 “매우”와 같은 부사어와 상응하는 실재가 있을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제기된다. 이에 대한 해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문장의 중심은 실체(substance)인 명사(substantive)이며, 나머지 문법 요소는 이 명사를 꾸며주는 조연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보르헤스가 「틀뢴...」에서 언급하는 언어관은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중세의 언어관을 뒤짚어 놓고 있다. 틀뢴의 남반구 언어와 북반구 언어 대한 설명을 잠시 살펴보자.


수도원 필경사

▶그림 설명: 중세 수도원의 필경사



5. 틀뢴의 남반구 언어와 북반구 언어

     보르헤스에 따르면, 틀뢴의 남반구는 “관념론을 전제”하며, 원초적인 언어에는 “명사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 주어가 없는 무인칭 동사(verbo)만 존재한다.” 명사가 없다는 이야기는 실체가 없다는 이야기이며, 동사만 있다는 얘기는 말(동사의 어원은 ‘말’, ‘단어’를 의미하는 라틴어 verbum이다)만 남는다는 뜻이다. 따라서 틀뢴 남반구는 말의 세계, 곧 버클리(George Berkeley, 1685-1753) 주교가 주장한 관념의 세계이다.

     여담이지만, 버클리의 관념론은 우리의 일상적 관념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당시 존슨 박사는 버클리 주교의 관념론 강의를 듣고 강연장을 나오던 길에 벽을 발로 세게 차면서 “이렇게 외부세계가 분명히 존재하는 데, 이게 어떻게 생각이야!”라고 외쳤다고 한다.

     틀뢴의 남반구 언어와 마찬가지로 북반구 언어에도 명사가 없다. 그 대신 단음절 형용사의 집합으로 명사를 표현한다. 그리고 문학은 알렉시우스 마이농(Alexius Meinong, 1853-1920)의 대상론과 유사하다고 한다.

     마이농에 따르면 모든 대상은 존재(Sein)하는 것이 아니라 존립(bestehen)한다. 그리고 모든 것은 대상이며, 각 대상은 ‘특성’을 갖는다. 예컨대, 사각형 원은 둥글고 네모나다는 ‘특성’을 갖는 대상이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대상은 아니다. 거창한 학설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19세기 후반 언어철학의 최대 난제인 언어와 지시대상의 문제를 해결해보려는 가설이었다. 이 문제는 프레게(Gottlib Frege, 1848-1925), 버틀란트 러셀(Bertrand Russell, 1872-1970) 등이 언어는 대상을 직접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갖는다고 설파함으로써 해결되었다.

     아무튼 틀뢴의 북반구 언어에서 심리학을 거쳐 자아동일성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전제된 학설은 흄(David Hume, 1711-1776)의 관념연합이다. 우선 흄은 인상과 관념을 구별한다. 인상이란 감각 기관에 우연히 나타나는 지각이고, 관념은 이같은 인상을 나중에 재생할 때 나타나는 지각이다. 그런데 관념은 유사성, 접촉, 인과성(즉, 시공간적 접촉)에 의해 다른 관념과 연합한다.

     이러한 흄의 주장에 따르면, “실체라는 관념은 [...] 상상에 의해 결합된 단순관념들의 집합에 불과하다.” 그리고 동일성이란 상상력의 허구(the fiction of the imagination)가 만들어내는 개념일 뿐이다. 말을 바꾸면, 우리가 경험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대상의 단일성(unity) 아니면 다수성(multiplicity)뿐인데, 이러한 관념들에다 시간 또는 지속의 관념을 적용시킴으로써 동일성의 관념을 갖게 되는 것으로, 이는 일종의 실수이고 착각의 결과이라는 것이다.

     보르헤스는 틀뢴 남반구에서 “명사는 형용사들의 집합으로 이루어진다”고 얘기하는데, 이는 실체가 관념연합이라는 흄 논증의 문학적 버전이다. 그리고 “아무도 명사들의 현실성(또는 실체성)을 믿지 않는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명사들의 숫자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는 것을 뜻한다”. 기억왕 푸네스(『픽션들』)가 좋은 예이다. 푸네스는 특정한 시공간에 위치한 나뭇잎을 남김없이 모두 기억한다. 이를테면,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의 모양과 빛깔을 하나 하나 기억하고, 또 차이를 또렷하게 인식하기 때문에 나뭇잎이라는 일반 명사로 뭉뚱그려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나뭇잎의 미묘한 차이를 말하려면 수많은 형용사를 동원할 수밖에 없으며, 우리에게 동일한 나뭇잎이라고 할지라도 푸네스에게는 언제나 수많은 나뭇잎이 되는 것이다.

     틀뢴의 유물론 논쟁도 흄의 관념론과 맥락이 닿아 있다.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틀뢴은 관념론의 세계로서, 대상이 의식의 바깥에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사고를 유물론이라고 부른다. 제논은 운동을 부정하기 위해 “날아가는 화살을 매 순간 정지해 있다”는 역설을 만들어냈다면, 틀뢴의 이교도 교주는 관념론을 부정하기 위해 “화요일에 잃어버린 동전은 금요일 새벽에 발견할 수 있다”는 궤변을 만들어냈다. 물론 틀뢴 사람들에게 궤변이란 우리에게는 상식이다.

     이러한 궤변에 대한 틀뢴 사람들의 논박에 따르면, 동일성(identity)과 동등성(equality)은 별개이다. 여기서 동등이란 어떤 중단이나 변화를 수반한 유사성을 의미한다. 화요일 잃어버린 동전과 금요일 새벽에 발견한 동전은 동등한 것일 뿐, 동일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궤변론자들은 “네 개의 동전이 계속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으므로, 다시 말해서 동일성을 전제하고 있으므로, 순환논법의 오류―보르헤스의 용법으로는 “일종의 귀류법(reductio ad absurdum)”―를 범하고 있다는 것이다.



목차
틀뢴에서 아드로게로: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테르티우스(1)
틀뢴에서 아드로게로: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테르티우스(2)
틀뢴에서 아드로게로: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테르티우스(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