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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식민주의와 라틴아메리카니즘 / 이성훈 2003-10-22 / 6255   

탈식민주의와 라틴아메리카니즘

이 성 훈



I. 들어가면서


     중남미를 둘러싼 학문적 의제 역시 세계적인 추세를 따라 1990년대 들어서 일정한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80년대가 주로 탈근대성을 둘러싼 사회과학과 인문학, 그 중에서 특히 문학에서 제기된 논쟁으로 정리될 수 있다면 90년대에는 세계화와 탈식민주의를 둘러싼 논의가 주된 논제로 자리잡게 된다. 이는 자본의 전지구화 경향과 맞물려 노동․문화 등 삶의 각 영역에서 진행된 변화와 밀접한 상관관계를 갖는다. 이제 기존의 국가적/민족적이고 전통적인 가치에 기반한 정체성 논의가, 초국가적이고 탈전통적인 속성을 가진 문화 간의 결합이라는 양상 속에서 새롭게 변모해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이러한 역사적 조건하에서 라틴아메리카라고 하는 개념, 다시 말해 중남미적 정체성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는 것이다.

     이 논문에서는 90년대 이후 지금까지 전개되고 있는 ‘세계화와 탈식민주의’라는 의제를 정리해 보고 이러한 논의의 성과를 분석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 먼저 중남미를 둘러싼 탈식민주의 이론의 지형을 살펴보고, 이 탈식민주의 이론이 제1세계의 중남미에 대한 학문적 전유라고 할 수 있는 라틴아메리카니즘(latinamericanism)의 변모에 끼친 영향을 구체적으로 분석해 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제1세계에서 논의되고 있는 중남미에 대한 담론 혹은 중남미 담론이 갖는 이론적 성취를 포착해내고, 구체적 현실의 추상 형식인 이론 지형을 분석함으로써 또 다른 중남미 현실 전유의 형식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먼저 식민주의에 대한 비판으로서 반(反)식민주의와 탈식민주의 이론이 갖는 쟁점을 살펴보고, 이후에는 탈식민주의 이론에 대한 중남미 이론가들의 비판을 탈서구주의라는 개념을 통해 그 의미를 정리해 보기로 한다. 이 과정을 통해 탈식민주의 이론이 중남미 현실을 설명하는 적절한 이론적 텀(term)으로 사용되어질 수 있는지를 살펴보기 위해 라틴아메리카니즘을 개입시키고자 한다. 또 이러한 탈식민주의적 영향들이 중남미의 학문적 제도화로서 라틴아메리카니즘의 발전적 전화에 끼친 메카니즘을 정리하고, 탈식민주의적 라틴아메리카니즘이 자본과 문화의 ‘전지구화’라고 현상 속에서 중남미적인 것을 절합(articulation)내고자 하는 이론적 시도와 그 성취를 간략하게 살펴보기로 한다.


II. 탈식민주의 이론/ 반식민주의 서사(narrativa anticolonialista)

     제2차대전 이후에 진행된 식민지 해방과 더불어 식민주의에 대한 개념화가 영국과 미국의 대학 등 학문제도 내에서 진행되는 데, 이는 기본적으로 식민국가와 피식민국가라고 하는 두 개의 대립을 통해 어떻게 식민주의의 유산을 정리하고 새롭게 민족적/국가적 정체성을 모색할 것인가에 집중되었다. 여기서 우리가 주의깊게 살펴보아야 할 것이 ‘탈식민주의 이론’과 ‘반식민주의 서사’ 사이의 차이점이다.

     반식민주의자들은 기본적으로 식민주의 극복을 위한 대안으로 피식민국의 문화적 진정성(autenticidad)을 강조한다. 식민 이후 진행된 서구화(occidentalización)에 대한 적대감에 기반하여 자신들의 문화적 진정성을 대안으로 상정하는 본질주의적 경향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70년대 말 이주자 후손이나 정치․경제적 난민들이 제1세계의 대학이나 연구조직에 유입되기 시작하면서 탈식민주의 이론이라고 하는 새로운 연구방법론이 구축되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피식민국가와 식민국가 두 개의 서로 다른 문화를 경험하면서 사회화된 주체들로서 두 문화의 중간자적 위치에서 기존의 반식민주의 서사와는 차별되는 발화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반식민주의가 자국의 문화적 진정성에 기반해 있다면 탈식민주의자들은 혼합(mezcla) 혹은 접이(contacto)로서 문화의 가능성을 강조한 것이다. 이렇듯 제3세계 출신 지식인들이 제1세계 내에서 지적 활동에 종사하게 됨으로써 당시 주된 의제로 기능하고 있던 탈근대성, 탈구조주의 그리고 페미니즘 등과는 차별되는 식민주의에 대한 새로운 문제 제기가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 점은 프랑스와 영국의 피식민지 경험을 지닌 스피박, 바바, 사이드 등 아시아, 아프리카 출신 지식인들을 통해 일반화되었지만, 중남미 지역에도 동일한 메카니즘을 적용할 수 있다. 엔리케 로도(Enrique Rodó)가 『아리엘』(Ariel, 1900)에서 중남미 문화의 근간을 라틴과 섹슨간의 대립으로 파악한 이후 중남미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틀로 유지되어 온 이러한 대립적인 관점이 20세기 중반부터 급격하게 진행된 ‘전지구화’ 과정을 통해 변모하게 되고, 이제 문제틀이 식민 이후 진행되어온 중남미에 대한 인식체계를 가능하게 한 특정한 역사적 문화적 맥락에 대한 문제제기로 이전한 점에 기인한다.

     이들 탈식민주의 이론가들은 60-70년대의 반식민주의 서사와는 본질적으로 차별되는 방식으로 식민주의에 대한 비판을 절합하게 된다. 이미 언급한 것처럼, 반식민주의 서사는 식민주의적 지배를 가능하게 했던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급격한 단절과, 피식민국가의 민족적/국가적 정체성의 강조, 그리고 아시아․아프리카에서 진행된 민족해방 과정과 냉전이라는 정치 공간 속에서 ‘새로운 사회’의 건설을 강조했다. 즉, 식민주의를 제1세계에 의해 강제된 근대성(modernity)의 유럽적 기획으로 이해하고, 이러한 억압적 구조와의 단절을 모색한 것이 반식민주의 서사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탈식민주의 이론가들이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반식민주의 서사 역시 그들이 극복하고자 하던 식민주의의 이론적․물적 토대로 기능하고 있던 근대성의 문법으로 자유롭지 못하며, 유럽 식민주의의 ‘전체주의적’ 기획에 본질적으로 포섭되어 있다는 혐의이다.

     스피박의 견해를 빌자면, 식민주의에 대한 비판 역시 피억압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지 못하고 담론적인 주변성과 타자성을 강조하는 쪽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결국 그가 하위 주체는 말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에 대해 답하는 것처럼,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점은 중남미의 경우에서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는데, 중남미 문화적 진정성을 담보하는 논리로 사용되어지는 마술적 사실주의, 해방신학 등의 연구 주제들이 등장했지만, 결국 ‘티칭 머쉰’에서 중남미의 타자성과 제3세계성을 강조하기 위한 상품으로 소비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억압과 피억압, 주변과 중심, 문명과 야만 등의 대립축을 기반으로 하여 작동하는 반식민주의 서사는 여전히 지식 생산의 서구적 틀에 적합한 개념들을 사용함으로써 일정한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이에 반해 호미 바바, 사이드, 스피박은 반식민주의 서사와는 다른 발화 위치를 모색하려 한다. 이들은 중간자적 위치를 통해 탈식민주의라고 하는 새로운 이론 형태를 만들어 내게 된다. 특히, 구하를 중심으로 하는 하위 주체 연구 그룹은 반식민주의적 민족주의/국가주의를 탈신화화하고, 마르크스주의의 ‘제국주의적’ 레토릭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취한다. 이들에 의하면 근대성에 기반한 전문가 제도에 여전히 식민주의적 유산이 잔존하고 있으며, 특히 학문의 영역에서 타자에 대한 재현 형식이 부르조아적 이성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한다.

     이러한 비판은 비벌리를 대표로 하는 미국내 하위 주체 연구 그룹에 의해 기존의 라틴아메리카 연구가 탈식민주의적인 전회를 가능하게 하는 이론적 토대가 된다. 90년대 초반부터 미국 대학을 중심으로 한 제도권 내에서 일부 좌파 성향의 학자들을 중심으로 라틴아메리카니즘이 수행하고 있던 헤게모니적 기능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이들에 의하면, 지역연구로 대표되는 이전 시기의 라틴아메리카니즘 경향은 미국의 대외정책에 있어서 제국주의적 이익을 보존하는 제도적 메카니즘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이들 중남미 하위 주체 연구그룹은 사이드, 바바, 스피박의 이론을 라틴아메리카니즘의 탈식민주의적 전회를 위해 수용해야 한다는 견해를 내놓는다.

     이제 학문의 영역에서 근대성에 기반한 권력이 행한 식민지의 하위 주체화라는 인식론적 전략에 대한 대안을 어떻게 모색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제기된다. 이를 위해 하위 주체들이 학문 권력에 의해 동일화되고 차이가 무화되는 상황에서 그들 자신을 스스로 드러낼 수 있는 재현 형식을 절합할 수 있는 발화 위치(locus enuntiationis)를 모색하고자 한다. 비벌리는 미국내 대학 제도에서 사용하는 정전화된 중남미 텍스트에 대한 비판을 통해, 미그놀로는 global designes/local histories 라는 개념을 통해, 모레이라스는 라틴아메리카니즘을 통해 구체적인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III. 탈식민주의/탈서구주의(posoccidentalismo)

     이처럼 인식 대상으로서 중남미를 탈식민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탈식민주의주의자들에 대해 탈서구주의자들은 이견을 제출한다. 이들 탈서구주의자들의 기본적인 문제 의식은 레타마르의 『우리 아메리카』(Nuestra América, 1976)에 의존하고 있는데, 이를 미그놀로의 입론을 따라가면서 탈식민주의와 탈서구주의 사이의 개념적 차이를 더듬어 보기로 하자.

     미그놀로는 중남미에 있어서 탈식민주의라는 표현대신 탈서구주의(posoccidentalismo)라는 개념의 적실성을 주장하면서, 논쟁의 중심은 여전히 중남미 근본주의(fundamentalismo latianoamericanista)대 문화연구, 하위주체 연구 그리고 탈식민주의 등의 ‘제국주의적’ 기획 사이의 대립에 있다고 파악한다. 그리고 중남미를 중남미적 텀(term)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전자의 태도를 따라, ‘서인도’로 명명된 시기부터 라틴아메리카까지 포함하는 시기를 설명하는 적합한 용어는 ‘서구화’라고 간주한다. 아시아나 아프리카에서 대영제국에 의해 진행된 식민시기를 언급하기 위해 사용되는 식민주의(colonialismo)라는 개념 대신, 그는 중남미와 관련해서는 서구중심주의(occidentalismo)와 탈서구주의(posoccidentalismo)라는 용어를 사용하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탈식민주의보다는 탈서구주의가 중남미의 지적 탈식민담론을 절합하기 위해 보다 바람직한 용어라는 입장이다.

     미그놀로에 의하면, 탈서구주의는 19세기 독립이후 유럽과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시기에 등장하여, 미국의 패권 국가화 과정, 그리고 자본의 세계화 과정 속에서 현 시기 중남미 정체성에 관한 담론을 형성해 나가면서 라틴아메리카의 역사적 상황에 대한 비판적 반성을 이끌어 내는 비판적 담론이다. 반복하자면, 레타마르가 주장하는 “진정한 중남미인은 유럽인이 아니라 원주민이나 아프리카 후손들에게서 찾을 수 있다”라는 사고를 계승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서구중심주의의 논리를 구성하는 몇 개의 키워드를 상정한다. 첫 번째가 스페인의 정복시기에 이루어진 원주민의 개종과 정복을 합리화시키는 카톨릭 신앙이라는 외피를 차용한 서구중심주의 대서사가 작동하던 시기이고, 두 번째는 공간적인 의미에서 야만적(salvaje)이고, 카니발적(caníbales)인 요소의 극복과, 시간적인 의미에서 원시적인 단계의 극복을 의미하는 논리라고 할 수 있는 ’원시에서 문명으로‘라고 하는 근대성 단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근대성에 입각한 시간적 진보라고 하는 개념을 통한 지배는 1950년 이후 아시아, 아프리카 그리고 카리브 연안 지역국가의 탈식민화 과정과 맞물려 그 효용성을 일정하게 상실하게 된다. 이후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 산업혁명 시기 시작하여 18세기말 19세기 초까지 진행된 과학기술의 고양과 맞물려 있다. 이 시기의 근대성은 과학기술의 진전과 연결되어 설명되어지고, 여전히 지금까지도 유효한 의미소로 기능하고 있다. 이렇듯 자기 정체성을 유럽적으로 구성하려고 할 때, 서구중심주의는 여전히 일정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따라서 탈서구주의는 15세기말 스페인의 식민주의부터, 미국과 구소련의 식민주의까지 중남미에서 진행된 식민화 기획의 현실적 방안이었던 서구중심주의를 극복하고자 하는 비판적인 기획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여기에서 기억해야 할 점은 반서구주의(antioccidentalismo)와의 차별이다. 반서구주의는 공간과 시간에서 ‘뒤처진’ 문명을 변화시키겠다는 담론체계라고 할 수 있는 근대성 담론이 여전히 지배적이라는 관점을 취하며, 중남미적인 것의 적극적인 승인을 통한 문화의 독자성을 강조한다. 그렇지만 레타마르의 예에서 보듯이, 대안세력으로 노동계급과 원주민, 아프리카 이주민을 강조함으로서 역시 지나치게 계급적이고 인종주의적인 관점에 머물렀다는 한계를 드러낸다. 또한 반서구주의는 탈식민주의가 우려하던 반식민주의적 태도와 이론적 친연성을 내포하고 있다.

     결국 이런 측면에서 새로운 지리적․문화적 범주의 필요성이 제기되는데, 이 과정에서 두 가지 과제가 제기된다. 우선, 자본의 세계화가 결과하는 새로운 물적 토대의 형성 그리고 이주로 인한 영토와 문화간의 ‘추정적인’ 결합의 해소 과정을 통해 중남미에 대한 개념자체를 다시 재검토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또한 이와 관련하여, 이 과정에 대해 발언하는 지적․학문적 영역에서 중남미적 사고와 제도로서 중남미학(estudios latinoamericanos) 사이의 관계를 다시 설정해야 할 필요성이 생긴다.

     여기에서 탈서구적인 기획의 공헌은 한편으로 라틴아메리카를 자본과 문화의 세계화에 따른 새로운 환경에 적절하게 위치시키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 중남미적 사고와 중남미학 사이에 접합점을 찾는 것이다. 전자의 문제제기는 독립시기부터 진행된 서구화에 대한 지속적인 반성을 통해 지역적 역사(historias locales)에 기반한 비판적 사고를 형성시켰고, 두 번째는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 속에서, 1960년대 이후 미국의 패권국가화와 연동되어 있는 세계화 기획에 직간접적으로 대응하는 앎의 형태를 형성해 내었다. 이처럼 탈서구주의는 지역 연구라는 ‘제국주의적’ 경향에 대해, 지역적․경제적 제약으로 문화가 생산되는 지역과 여기에 대해 담론이 형성되는 지역의 차별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탈서구적인 관점으로 지적 생산물을 재구성하려고 시도한다. 이는 세계화 기획에 포섭되지 않은 ‘경계적’ 인식론을 기획하고, 이 안에서 지역적 서사(historias loclaes)에 기반한 성찰이 진행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런 공간를 글로리아 안살두아(Gloria Anzaldúa)는 boderland / la frontera 라고 부르고 반제국주의적 지리역사적 범주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러한 탈서구주의적 문제의식은 중남미적 특수성에 보다 천착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지만, 그들이 부정하고 있을지라고 탈식민주의 이론에 지대하게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여기에서 탈식민주의와 탈서구주의를 대립적으로 이해되는 것보다는, 탈서구주의를 식민지 경험의 차이에서 주어지는 중남미적 특수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상호 보충적인 개념으로 이해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음 절에서는 지금까지의 논의를 바탕으로 중남미에 대한 인식의 총합으로 간주되는 라틴아메리카니즘의 변모를 검토해 보기로 하자.


IV. 라틴아메리카니즘의 탈식민적 전화

     라틴아메리카니즘, 라틴아메리카학 혹은 중남미 연구라고 개념화할 수 있는 이 흐름은, “제1세계의 연구기관이나 대학, 특히 미국의 몇몇 문학 관련학과에서 생산된 중남미에 대한 이론적 인식이나 지식체계”를 지칭하는 것으로 “발화의 대상으로서 중남미에 대한 가능한 지식을 제공하는 재현의 총체 혹은 일련의 합”으로 정의할 수 있다.

     이 절에서는 모레이라스의 라틴아메리카니즘에 대한 견해와 여기에 대한 탈식민주의의 영향을 분석해 보기로 한다. 모레이라스에 의하면, 라틴아메리카니즘를 두 가지 흐름으로 나누어서 설명할 수 있다.

     60년대 이후 중남미를 학문적으로 구성하려고 하는 과정에서 ‘중남미적 차이’를 드러내고자 하는 시도는 지식의 본질적 통합, 혹은 기본적 총체성을 추구하는 경향에 의해 포섭되어 통제됨으로써 무화되고, 서구의 학문적 대상으로만 존재하게 된다. 또한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지역 연구에서 보이듯이 글로벌 에이전시(global agency)로서의 제국주의적 국가기구에서 도출된 규율적 권력의 특정한 학문적 형태를 필요로 한다. 이런 특정한 학문적 형태가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과 이론적 토대를 같이하는 라틴아메리카니즘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라틴아메리카니즘의 재현과정을 통해, 중남미의 차이는 통제되고 동질화되게 되며, 글로벌한 재현 체계를 위한 타자로 위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라틴아메리카니즘은 주로 대규모로 진행된 중남미인들의 이주와 급격한 민주화에 따른 변화를 경험하게 되는데, 탈식민주의 연구라고 하는 학문의 흐름에 의해 기존에 진행되어오던 “통합적 논리”에 기반하고 있던 라틴아메리카니즘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탈식민주의적 라틴아메리카니즘이 모색되게 된다. 즉, 이제 더 이상 라틴아메리카니즘은 지리학적 경계 너머에 위치해 있는 타자들에 대한 단순한 인식론적 전유로 기능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제 국경은 북쪽으로 그리고 내부로 이전되게 되며, 거칠게 이야기하면 그 경계는 흐려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주적 상상력(imaginario inmigrante)이 이론적 모티브로 등장하게 된다. 이제 이주적 상상력에 기반한 새로운 라틴아메리카니즘, 다시 말해 탈식민주의적 라틴아메리카니즘이 등장하게 된다.

     이주적 상상력에 의해 타자를 구성하고 있던 지리 문화적 경계가 흐려짐에 따라 이제 국가적/제국주의적 요구에 기반한 지식체계는 영향을 받게 된다. 왜냐하면 더 이상 타자는 우리와 분리되거나 대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자신이거나 혹은 우리들 자신의 많은 부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탈식민적 라틴아메리카니즘은 이제 그들 자신을 글로벌한 재현 체계로부터 거리를 마련해 내는 반헤게모니적 이미지들을 표현해 내고, ‘세계화’에 저항하는 차이의 생산 혹은 절합을 위한 인식론적 실천의 한 형식으로 자리메김한다. 이렇게 하여 이주적 상상력은 역사적으로 구성된 라틴아메리카니즘의 헤게모니적 성격을 부정하는 반세계주의적(antiglobal theory) 이론으로서의 탈식민주의적 라틴아메리카니즘의 형성에 기여한다.

     새로운 라틴 아메리카니즘은 더 이상 고정된 위치나 발화 위치, 정체성에 기반하여 중남미를 구성해 내는 것이 아니라, 늘 유동적이고 가변적인 형식에 주목함으로서 창조적인 문화를 생성시키는 비판적인 힘을 갖게 된다. 세계화가 아직 완결되지 않고, 훈육 사회와 통제 사회 사이의 시간적 간극과 차이가 아직 존재하는 상태에서 대안적 가능성은 중남미적인 것, 다시말해 “lo singular, lo tenue o desvaneciente, lo arcaico” 것과의 절합에 의존하게 된다. 따라서 세계를 전유하려고 하는 지배적 질서의 시도에 저항하고자 하는 중남미적 차이의 효과가 역할을 발휘할 수 것은 바로 이 탈식민적 라틴아메리카니즘을 통해서이다.


사실상, 이런 탈 식민적 라틴아메리카니즘은 위치, 고정된 발화위치, 정체성을 모색하고자하는 “창”으로서 앎을 인식하는 규율적 질서 패러다임의 종언과 함께, 역사적으로 구성된 라틴아메리카니즘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자각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렇지만 자신의 새로운 의미는, 기존의 역사적이고 정체성에 기반한 차이를 시물라크르나 혹은 기존의 것에 반복에 기초한 차이로 대체하는 한 의미를 상실한다. 중남미적인 것의 긍정은 실증적인 차이의 구축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규율적 형성이나 혹은 통제로서의 재건축하는 과정의 산물로서 정체성을 추구하고자 하는 지적 태도들에 대한 인식론적 부정의 과정 속에 끝없이 열려 있는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렇게 역사적으로 구성된 라틴아메리카니즘을 이주적 상상력을 통해 재구성하려 할 때, 비판적 힘과 거리를 유지할 수 있겠는가의 문제가 야기된다. 이러한 라틴아메리카니즘의 재구성 또한 학문의 식민화를 기도하는 제1세계에 의한 세련된 방식의 타자화 전략이라는 우려가 존재하는 것이다. 다시말해 중남미를 글로벌한 학문체계내에 다시 포섭하여 위계적으로 배치할려고 하는 새로운 시도에 저항할 수 있겠는가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V. 나가면서

     탈식민적 라틴아메리카니즘 역시 제1세계의 학문적 위계화를 위한 세련된 전략일 수도 있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문화의 세계화 경향 속에서 중남미적 대응 전략을 절합해낼 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매우 주목할 만하다. 특히 우리의 경우처럼 여전히 ‘중남미적 것’을 강조함으로서 자본과 문화의 전지구화 경향이 새롭게 배태 착종하는 변화에 주목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엔리케 로도가 『아리엘』에서 라틴 족과 앵글로 섹슨 족간의 문화적 대립을 통해 중남미 문화를 일반화시키려는 시도를 한 이후, 여전히 중남미적 문화의 특수성을 강조하는 60년대 이후의 마술적 사실주의 등이 지배적 담론을 형성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20세기 말부터 진행된 전지구화 경향이 결과한 새로운 문화적 현상을 설명해낼 이론적 패러다임을 요구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라틴아메리카니즘에 대한 논쟁을 통해, 19세기부터 중남미에 대한 진행되어온 개념화 방식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새로운 문화적 의제를 제공함으로서 중남미 이해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제공한다는 장점을 갖는다. 그러나 이미 지적한 바 처럼, 그리고 세계화라는 개념이 제기하듯이 문화의 탈영토화 과정은 추상적이고 이론적인 것이 아니라. 지역화(localizado) 과정을 수반한 구체적인 과정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런 작업을 구체적으로 수행하는 것이 우리가 언급한 탈식민적 지식인들의 과제로 반식민주의자 혹은 반서구주의자들이 식민주의자들의 문법과 동일한 개념을 사용하면서, 그들 자신의 언어로 식민주의자들에 저항한 것에 반해, 탈식민주의 이론은 탈전통적인 컨텍스트 내부에서, 다시 말해 사회적 주체들이 세계화와 연동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모색해가는 지점, 따라서 문화적 경계들이 흐려지는 지점에서 절합된다고 할 수 있다. 반식민주의 서사가 개념적인 이분법에 입각해 구체적인 변화의 외부에 자신의 발화지점을 위치시켰다면. 탈식민주의 이론가들은 서구의 내부, 안살두아가 언급하는 접이 지대(zonas de contacto)라고 하는 내부적 관점에서 식민주의를 사고하게 됨으로써 일정한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이렇게 이들은 양 문화의 접이 지역에 위치하면서 중남미 문화를 세계문화 속에 위치시키고, 헤게모니 문화에 저항하는 대안 문화를 절합할 수 있는 위치를 차지 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이들은 반식민주의 담론 형성을 담당하던 비판적 지식인들이 수행했던 ‘반식민주의 서사 혹은 제3세계론자들의 역할를 극복하고 새로운 문제의식에서 이론과 실천사이의 관계를 새로운 형식으로 모색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이미 지적한 것처럼, 문제는 이러한 과정이 중립적이고 융합적인 것이 아니라, 비대칭적인 성격을 갖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비 대칭적 성격을 인정하는 한에서, 중남미적인 것이 어떻게 세계적인 것과 결합하는가를 해명하는 작업이 우리가 새로운 물적 토대 하에서 중남미를, 구체적으로 중남미 문화를 보다 체계적으로 이해하는 방법론적인 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