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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리얼의 선택 -에드워드 사이드를 기리며 / 페르난데스 레타마르 2007-08-29 / 14006   

에리얼의 선택 -에드워드 사이드를 기리며

로베르토 페르난데스 레타마르(Roberto Fernández Retamar)/ 김 용 호 옮김



이 논문은 2003년 12월 8-9일에 파리에서 열렸던 ‘고등교육과 연구, 지식에 관한 유네스코 포럼’에서 발표한 것으로, 쿠바 잡지 《카사 데 라스 아메리카스 Casa de las Américas》 제236호(2004년 7-9월)에 실렸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나는 한 가지 사실을 지적하면서 이 글을 시작하고자 한다. 그것은 우주에 대한 연구자들이 끊임없이 정의하고자 노력했던 ‘보편적’이라는 형용사의 본질적인 의미와는 반대로, 사실은 이 작은 행성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그 의미를 변질시켜 왔다는 것이다. 약간 다른 얘기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이곳에서 ‘지역적’인 것은 제 3세계, 즉 저개발 국가들에 해당하는 것을 의미하며, ‘보편적’인 것은 본질적으로 지구상의 모든 국가들을 포함하지 않은 채, 단지 저개발을 강요하는 국가들만을 지칭하는 개념이다. 저개발을 강요하는 국가들이라는 용어는 약 40년 전부터 내가 주창해 온 것인데, 명확한 개념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별로 통용되지는 않는 용어이다. 그런데 이러한 근본적인 불균형은 1492년 콜럼버스의 도착에서 파생된 것으로, 이후 식민주의와 인종주의 그리고 근대성을 낳았으며, 오늘날까지 세상을 둘로 나눠놓고 있다. 이러한 불균형에 대해서는 앞으로 자세히 설명할 예정이다.

        장 프랑코(Jean Franco)는 그의 글 「인종중심주의를 넘어서: 젠더와 권력 그리고 제3세계 지식인」이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대영 제국의 지식인들: 라틴아메리카 혁명가들」은 내가 영국 잡지 《뉴 스테이트먼트 New Statement》에 실은 글을 수정한 것이다. 나는 메트로폴리스와 주변부의 축을 따라서 분리된 지식노동과 육체노동을 종합하여, 투쟁 외에는 더 나은 다른 어떤 방법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이 거주하는 지역의 혁명운동흐름을 제시하였다. 결론은 제3세계에는 이론에 합당한 지역이 많지 않으며, 만약 억지로 이론에 들어맞는다 하여도, 그곳은 예외적인 곳이나 지엽적인 곳으로 간주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좀 더 나아가 그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제3세계에 대한 메트로폴리스의 담론들은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전략을 채택했다. 제3세계는 이론에 부적절하다는 배제의 전략이 그 첫째이며, 두 번째는 제3세계는 비이성적이기 때문에 그들의 지식은 합리적인 메트로폴리스에 의존하고 있다는 차별의 전략이며, 마지막으로 제3세계는 단지 본능의 땅으로만 인식된다는 전략이 그것이다.

        이 작가의 글을 몇 마디만 더 인용하겠다.

내 글에서는 주로 라틴아메리카를 다루고 있으므로, 문학작품을 통해 그들의 힘을 발휘하는 지식인들의 중요한 행위들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과학적 사고의 발전에 대한 기여가 봉쇄되어 있는 지식인들은 전문적인 훈련이나 제도화된 교육이 필요 없는 유일한 길인 문학을 하도록 강요받아 왔다.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메트로폴리스의 담론과 자율사회의 유토피아적 계획 간의 접점이 이뤄지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이 마지막 인용문은 1982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스톡홀름 연설문을 떠올리게 만든다. 아직도 눈에 선한데, 1982년은 오늘날 더욱 강력하고 강압적인 국가로 변모한 미국과 지금은 해체된 소연방 사이의 냉전이 지배하던 때이다. 또 하나는, 우리들의 대륙 라틴아메리카에서 혁명의 불꽃이 타오르고, 그로 인해 전 세계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1960년대에 이르러 서구는 비로소 이 지역의 문학작품들을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것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때부터 오늘날까지, 가르시아 마르케스 외에도 미겔 앙헬 아스투리아스, 파블로 네루다, 옥타비오 파스, 데렉 월코트 등이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문학 외적인 이유, 즉 정치적인 이유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와 알레호 카르펜티에르에게는 시상이 거부되었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충분히 납득할 것이다. 내가 언급한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연설문은 아래의 내용이다.

왜 문학에서는 서슴지 않고 우리의 독창성을 인정했던 서구가, 사회변화를 추구하는 우리들의 줄기찬 투쟁에는 의심에 가득 찬 눈초리로 부정만 하는 겁니까? 왜 유럽에서 진보적인 지식인들이 추구했던 사회정의가 비록 상이한 조건과 상이한 방법이기는 하지만 라틴아메리카 인들의 목표가 될 수도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겁니까? 아닙니다. 우리 역사 속에 점철된 측정 불가능한 폭력과 고통은 수백 년 동안 지속된 부정(不正)과 말할 수 없는 고통의 결과이지, 우리의 땅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획책된 담합의 결과가 아닙니다. 그러나 많은 유럽 지도자들과 사상가들은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마치 생산적인 결과물을 도출해냈던 광기 어린 청년기를 잊은 유치한 노인네들처럼, 세계를 틀어쥔 두 세력의 주인들이 지시하는 데로 살아가는 것 이외에는 다른 운명은 없는 것처럼 믿고 있는 것입니다.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사회변화를 추구하는 우리들의 줄기찬 투쟁”이라고 지칭했던 것이, 장 프랑코에게는 단지 “자율사회의 유토피아적 계획”일 뿐이며, 메트로폴리스의 담론과 접점을 이루어낸 유일한 곳도 문학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다음에 또 말하겠지만, 우리들의 아메리카에서 생산해냈고 생산해내고 있는 것이 문학, 음악, 춤, 회화 등만은 아니다. 그것이 유토피아적이건 아니건 간에, 우리들은 사회변혁의 계획들도 생산해내고 있으며, 다른 형태의 인식방법과 이론들도 생산해내고 있다. 다만 메트로폴리스의 완고한 의식이 이를 인정하기 매우 힘들어 할 뿐이며, 이를 달리 말하면, 식민주의의 의식 속에서 그들을 따라하는 모방주의를 강조하거나 일부러 찾는 것뿐이다. 내가 셰익스피어의 등장인물을 지식인의 상징으로 받아들여 「에리얼의 선택」이라고 이 글의 제목을 결정한 것은, 이러한 서구의 완고함을 거부하고 ‘상이한 조건에서 상이한 방법으로’ 사회변혁의 방법을 생산해내는 의무와 권리를 취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나는 발전된 자본주의 세계라는 서구의 용어 대신 ‘저개발을 강요하는 세계’라는 새로운 용어를 계속 사용할 것인데, 이는 우리가 오랜 세월 겪어온 속임수로 가득 찬 용어보다 우리 자신에게 훨씬 더 솔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세계는 유럽의 일부 지역에서 태동했으며, 그 후 유럽인의 관점에서 보자면 비서구 국가들인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와 같은 구(舊)영국 식민지들에서 성장하였다. 다르시 히베이루(Darcy Ribeiro)의 표현에 의하면, 이는 이들 국가들의 ‘이식된’ 주민들이 원주민들을 배제시키거나 소외시킨 채, 몇 세기 동안 가장 대표적인 자본주의 국가였던 영국의 영향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들 중 하나인 미국은 오늘날 서구의 새로운 우두머리로서, 옛날의 종주국까지 그들의 가신으로 만들며, 절대적인 헤게모니를 꿈꾸고 있음을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다. 유럽의 관점에서 보자면 역시 비서구 국가요 이식된 서구인이 아닌 그들 자신에 의해 자본주의가 정착한 유일한 국가인 일본의 경우는 매우 특별한 대접을 받을 만 하며, 문화적인 면에서 다른 국가들과 매우 다르다. 아무튼 그러한 국가들의 중심, 즉 현재의 빅브라더스(Big Brothers)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 G-7이다. 이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다른 국가들은 서구화된 국가라고 불릴 뿐 서구라고는 불리지 못한 채, ‘약속된 땅’의 주인들인 서구에게 프롤레타리아 계급만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내 생각을 분명히 하기 위해, 나는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타임 Time》지에 발표된 존 엘슨(John Elson)의 글 「천년 동안의 발견. 유럽은 어떻게 암흑의 시대에서 벗어났으며 전 세계를 지배하게 된 문명을 발전시켰는가?」를 인용하고자 한다. “서구의 승리는 여러모로 피비린내 나는 부끄러운 일이었다. 잔혹한 강탈과 생태학적인 파괴, 오만한 탐욕의 역사였으며, 타(他)문화와 비(非)기독교적인 믿음에 대한 오만과 경멸로 가득 찬 배타적인 역사였다.” 나는 이 당돌하지만 진실한 정의에 단지 한 가지만 바꾸고 싶은데, 그것은 과거 시제의 사용이다. 그러한 역사는 단지 과거의 행위만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 진행되고 있는 역사라는 것이다. 또한 서구라는 단어 대신에 북구라는 어휘를 사용하면 과거에서 지금 현재로 넘어오게 되는 것이다. 과거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지리적인 근원을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 구조적인 차이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지 장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저개발을 강요하는’과 ‘저개발된’이라는 이분법을 따르는 것이 훨씬 더 적절하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이들 어휘가 차이에 기반한 식민주의자들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 역시 천사와 악마라는 이분법에 매달리고 싶진 않다. 식민주의자들은 억압받는 민중들을 끊임없이 둘로 나누는데, 이는 식민통치에 매우 효과적이었으며, 지금도 매우 유용한 방법이다. 우리의 가치를 수호하려고 애쓰는 다르시 히베이루 같은 사람은 「새로운 대학, 하나의 프로젝트」라는 글에서 이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라틴아메리카의 지체는 자연스럽지도 필요하지도 않은 일이며, 다만 우리가 그 원인을 묵인하기 때문에 존재하고 계속될 뿐이다. 지체의 원인이, 본유적(本有的)이든 역사적이든 간에, 자연적인 결핍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잘못된 묵인 때문이라는 결론을 떨쳐버릴 수는 없다. 결국, 우리 민중들의 억압과 궁핍 그리고 고통이라는 매우 불행한 대가를 치러야 했던 라틴아메리카의 (신)식민지적 개발 프로젝트는 지배계급들의 입장에서 보면 매우 성공적이었다는 것에 대해 오늘날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 식민지배에서 벗어났을 때, 새로운 종속을 모색하도록 우리를 꼬드긴 것은 고전적인 번영 프로젝트였는데, 이는 그것이 낡은 기득권을 유지시켜주고 확장시켜주는 형태였기 때문이다 [...] 잉여이윤을 만들어 사회적 초(超)특권 계급을 부양하도록 하는 모든 기득권이 항상 포함되도록 만든 것은 바로 대학 지식인이었다.

        좀 더 나아가 그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라틴아메리카의 근대화 과정에서 보이는 종속적 지배계급의 유일한 관심은, 오직 그들의 권력과 특권을 영구히 유지시킬 수 있는 발전과 번영이었다. 이 위협 앞에서 우리 모두는 보수적인 근대화주의자가 되거나 혁명적인 근대화주의자가 되어야만 한다. 즉, 전자는 새로운 힘에 저항하는 반동적인 협력자의 역할로서, 단순히 근대적인 변형만을 통해 현재의 정치, 사회, 경제적인 시스템을 보존하는 데 집착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반면, 후자는 모든 민중들의 권익이 실현되는 새로운 문명을 만드는데 필요한 사회적 규약을 개조하는 혁명을 실행하는 사람이다 [...] 이처럼, 한편에서는 사회혁명이요, 다른 한편에서는 반동적 근대화가 라틴아메리카 민중과 지배계급의 상반된 선택지로 등장한다.


        우리 라틴아메리카의 문명을 굳건히 하는데, 이 두 가지 선택 중에서 어떤 것이 유일한 해결책인지 말할 필요는 없다. 마지막 언급은 문명사 연구에서 중요한 작가들인 스펭글러나 토인비에 의해 잊혀지거나 부정되었지만, 그들의 계승자인 새뮤얼 헌팅턴에 의해 재인식된 우리의 문명을 떠올리게 한다. 헌팅턴에 의하면 우리 문명은 오늘날 지구상에 존재하는 아홉 가지 문명 중 하나이다. 이 현상을 설명할 때 왈터 미뇰로(Walter Mignolo)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헌팅턴의 분류 논리학이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글과 미셸 푸코의 『말과 사물』(1967) 서문에 채택된 중국 황제의 논리와 유사하다는 것은 제쳐두고, 여기서 내 흥미를 끄는 유일한 것은 헌팅턴이 라틴아메리카를 더 이상 서구의 일부분이 아닌 그 자체로 하나의 문명으로 인식했다는 것이다. 헌팅턴에게 있어서 라틴아메리카는 서구와 다른 정체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비록 유럽 문명의 자손이라 할지라도, 라틴아메리카는 유럽이나 북미와는 아주 다른 길을 따라 발전했다. 그들은 유럽이나 북미가 거의 갖지 않은 집단적이고 권위적인 문화를 가졌다.”

        이로 인해 미뇰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외견상 헌팅턴은 파시즘이나 나치즘을 권위적인 것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 같다. 또한 1945년 이후 영토의 강탈 없이 국제관계의 통제에 기초한 새로운 형태의 식민주의를 기도하는 미국의 행태도 권위적인 것으로는 인정하지 않는 것 같다.

        우리의 문명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굳이 헌팅턴의 잘못된 설명을 기다릴 필요는 없다. 1877년에 이미 스물 네 살의 청년 호세 마르티(José Martí)가 다음과 같이 기술했기 때문이다.

아메리카의 장엄한 문명은 정복에 의해 중단되었지만, 유럽인들의 도래와 함께 새로운 민중이 창조되었다. 새로운 활력이 낡은 신체를 거부했기에, 그것은 스페인의 것이 아니었으며, 파괴적인 문명의 간섭을 겪었기에 더 이상 원주민의 것도 아니었다. 두 개의 적대적인 힘의 충돌과정에서 혼혈 민중이 탄생했으며, 자유의 회복과 함께 새로운 영혼을 발전시켰다 [...] 우리의 모든 문명은, 건강하고 씩씩한 우리 아메리카의 문명은 어쩔 수 없이 정복자들의 흔적을 지닐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민중들의 창조적 활력으로 그것을 개선하고 발전시켜 세상을 놀라게 할 것이다. 비록 상처는 입었지만, 우리는 아직 죽지 않았다. 이제 다시 살아날 것이다!

        마르티는 이후에도 유사한 테마, 특히 혼혈토착주의에 대해 자주 언급하며, 이의 결정판으로 1891년 『우리들의 아메리카』를 내놓는데, 그곳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아메리카의 자연인은 이제 유럽의 수입도서를 극복했으며, 가짜 지식인들을 몰아냈다. 아메리카의 토착적인 혼혈인들은 이제 낯선 크리오요들을 물리쳤다. 이 과정에서 문명과 야만사이의 전투는 없었으며, 다만 거짓된 현학과 자연 사이의 전투만 있었다 [...] 아메리카의 대학은 이제 유럽의 것을 극복해야만 한다. 아메리카의 역사교육에서는 그리스의 아르곤 대신 잉카문명에서 현재까지 이르는 과정을 샅샅이 가르쳐야만 한다. 우리의 고대문명을 가르치는 것이 그리스 문명 교육보다 더 바람직하며, 더욱 필요한 것이다 [...] 우리 공화국에 세상을 접목시켜라, 하지만 기둥은 우리의 것이어야만 한다. 그리고 수명이 다한 현학자들을 침묵시켜라, 우리 아메리카의 고통스러운 현실보다 자신의 지식을 더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에게는 조국이 없기 때문이다.

        마르티는 이 텍스트에서, 그의 다른 텍스트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들의 아메리카’와 그에 속한 사람들을 나타내기 위해 ‘아메리카’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한다. 그것은 일종의 근원에 대한 선언으로, ‘아메리카’라는 용어에 다른 의미를 부여하기 위한 것이었다. 마르티가 우리들에게 아메리카를 되돌려준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에게 서구적 조건에 부응하는 미국의 모습은 <유럽화된 아메리카>이었을 뿐이다. 우리 사상사에서 가장 뛰어난 역작으로 간주하는 이 텍스트에 대해 내 논문의 나머지를 다 할애해도 부족하지만, 얼마 전에 읽은 해설서를 소개하는 것으로 줄이고자 한다. 그것은 포르투갈 사회학자인 보아벤투라 데 소우자 산투스(Boaventura de Sousa Santos)가 쓴 「우리 아메리카, 인식과 재분배의 종속적 패러다임의 재창조」라는 글이다.

        만약 내가 어렸을 때, 누군가 귀에 침을 놓아 다른 신체 기관의 고통을 없앤다고 말했다면, 나는 농담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오랜 기간 서구화된 교육을 받은 나는 서구 의학에 익숙해 있었는데, 서구 의학은 아직 침술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다. 그러므로 나는 서구가 다소 야만적이라고 생각하는 지역들의 많은 지혜들을 무시했던 것처럼, 인체에 또 다른 지도가 존재한다는 것 역시 모르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모든 지식의 공급은 서구의 배타적인 권리였으며, 나머지 지역의 지식은 예외 없이 우스꽝스러운 것으로 간주되었다. 심지어 아랍의 문화처럼 인류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문화조차도 모욕적으로 취급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사반세기 전, 에드워드 사이드가 『오리엔탈리즘』(1978)을 출판해, 이러한 편견에 반론을 제기한 것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하지만, 십자군 전쟁의 공포와 수많은 식민주의적 침략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서구는 또 다른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 그러므로 제국주의라는 용어의 사용과, 문화를 제국주의의 강탈의 결과물로서 파악하는 것에 대해 당시의 학계가 별로 호응을 하지 않던 1993년, 사이드가 『문화와 제국주의』라는 또 다른 책을 출판한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나는 단순한 에피소드 하나를 떠올리고 싶다. 유럽인들이 자본주의의 배아(胚芽)를 가지고 아메리카 대륙에 두 번째로 도착했을 때(첫 번째는 천년 전에 도착한 바이킹들로서 아메리카 대륙에 아무런 영향도 남기지 않았다), 마야 인들은 이미 숫자 0을 발견했었다. 숫자 0은 유럽인들이 스스로의 힘으로는 발견하지 못하고, 아랍인들이 다른 물자들과 함께 인도에서 가져다 준 것이다. 그런데 유럽에서 발견하지 못한, ‘무(無)를 의미하는’ 이 신비스러운 기호가 없었다면, 수학과 같은 절대과학의 엄청난 발전은 상상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예들을 볼 때, 다른 문화와 다른 민족들에게도 모든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지식들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논리적이지 않을까? 나는 여기서 위대한 멕시코 철학자인 알폰소 레예스(Alfonso Reyes)가 스페인 농부에게 배운 금언을 소개하는 기쁨을 누리고자 한다. “우리는 모든 것에서 배웁니다.” 『아메리카의 지성에 관한 노트』(1936)라는 글에 나오는 이 대사의 의미는, 동료인 아르헨티나 철학자 프란시스코 로메로(Francisco Romero)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문화가 총합의 문화라는 것을 나타내고자 한 것이다.

유럽에 있는 우리의 동료들은 로메로나 나를 오해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철학을 유럽 정복자들의 발췌본 정도로 생각합니다. 이런 경박한 해석대로라면, 총합이란 종결에 불과할 겁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여기서 총합은 새로운 출발점을 의미하며, 새로운 구조물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H2O는 수소와 산소의 단순한 결합만이 아니라, 물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숫자 3은 숫자 1과 2의 결합인 동시에, 1도 2도 아닌 새로운 어떤 것입니다. 아메리카의 비옥한 정신세계에는 이런 능력이 존재합니다. 외견상 아무런 연관이 없는 풍경을 바라보면서도 동시에 그것의 객관적 구조를 세우는 능력 말입니다. 하지만 유럽인들은 절반은 아메리카 인이고 나머지 절반은 유럽인인 우리들 앞에 항상 거대한 만리장성을 세웁니다. 우리의 정신세계를 유럽의 변방쯤으로 생각하는 장벽 말입니다. 유럽인들이 그 장벽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그리고 그 장벽의 존재를 겸손하게 인정하지 않는 한, 그들은 결코 우리 아메리카 인들을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천박한 분류를 통해 우열을 가리지 말고, 현실에 대한 다른 관점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는 『아메리카의 위치』(1942)라는 글에서, “단지 유럽의 전통만이 아니라 전 인류의 유산을 언급하고 있음을” 명확히 밝히며, 『현재의 세상』(1939)이란 글에서는, 서구의 문명이란 “광대한 역사의 관점에서 보자면 한 단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아주 짧은 순간에 불과하다”고 설파했다. 그리고 『인간과 주거(住居)』(1943)란 글에서는 다음과 같이 보충 설명한다. “내일의 서구문화가 여전히 지배문화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므로 타인의 문화를 인정한다는 것은 자기중심적인 실수를 인정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부조리한 제국주의적 개념으로 우리 문화를 고집스럽게 재단하려는 것은, 우리를 행복한 인류가 아닌 희생되어야만 하는 동식물로 간주하는 것이다.”

        우리 쿠바 인들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1940년의 기념비적 저작물인 『담배와 설탕의 쿠바적 대비』에서, 페르난도 오르티스(Fernando Ortiz)는 통문화(transculturación)라는 새로운 용어를 창조해 냈다. 이 용어를 창출해 낸 원래의 목적은 영어의 문화동화(acculturation)이라는 용어를 대체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오르티스는 이 신조어의 개념을 설명하고, 쿠바에 적용시키는데 많은 페이지를 할애했지만, 나는 단지 몇 줄만을 인용하겠다. “개체들의 유전적인 결합에서 발생하는 일들과 똑같은 현상이 모든 문화의 결합에서 발생한다. 인간은 양쪽 부모의 유전인자를 동시에 지니고 있지만, 그것은 부모들의 개별인자와는 항상 다르다. 결국, 이 과정이 통문화 과정이며, 이 단어는 모든 비유의 측면들을 포괄하고 있다.”

        우리 라틴아메리카 문화를 ‘총합의 문화’라고 말할 때의 레예스는, 오르티스가 지칭했던 통문화의 결과물을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조금 더 논의를 진척시켜보면, 오늘날 모든 문화는 단순한 총합이 아니라 통문화라고 생각한다. 쿠바의 민중종교인 산테리아는 유럽의 유산과 아프리카의 유산을 융합시킨 것이다. 나는 유럽인들이 더 우등한 종교, 동질의 종교라고 간주하는 카톨릭 등과 구별하기 위해, 산테리아를 단순한 믿음이 아니라 혼합 종교라고 부를 때마다 항상 놀라게 된다. 하지만 카톨릭보다 더 혼합적인 종교가 있는가? 달리 말하자면, 서구의 문화보다 더 혼합적인 문화가 있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복수의 기원, 인종, 민족, 언어, 종교, 예술, 지혜 등을 가지고 있는 아메리카 문화의 다양성을 큰소리로 주장해야만 한다. 우리가 전 인류의 보편역사에 던져진 것이 1492년부터라는 것은 틀린 얘기가 아니다. 세르주 그루진스키(Serge Gruzinski)는 그의 논쟁적인 책 『혼종 사유』(1999)에서, 지구의 네 방향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문화의 혼합과 혼혈은 맨 처음 아메리카에서 시작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정복에 뒤이은 카오스 상태에서 다양한 형태의 혼혈이 이루어졌으며, 이 혼혈의 물결이 세 번째 밀레니엄의 여명에 나타날 문화들을 미리 보여준다면서 마리우 지 안드라지(Mário de Andrade)의 시 「나는 만돌린을 연주하는 투피다」를 언급한다.

투피[브라질 북부에 거주하는 토착종족 - 옮긴이]이면서 만돌린과 같이 대단히 유럽적이고 세련된 악기를 연주하는 것이 가능하다. 혼합이 종종 고통스럽다 할지라도, 양립되지 않거나 타협될 수 없는 것들은 아무 것도 없다 [...] 만돌린과 투피가 다른 역사에 속하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회 신부들이 경영하는 인디오 공동체의 한가운데서 시인의 펜 아래에 있는 만돌린을 연주하는 투피를 다시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요즘 우리는 투피와 만돌린의 만남보다 훨씬 더 장엄하고 풍부한 만남을 보고 있다. 그것은 치아파스 인디오 공동체의 부사령관 마르코스와 인터넷의 만남이다. 이 인터넷과의 만남 덕택에 우리는 깊이 있고 시적이면서도 유머로 가득 찬 그들의 메시지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오 세기 동안의 억압과 그보다 훨씬 더 오래된 지혜를 가지고, 보다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투쟁하고 있는 그들의 메시지 말이다. 1994년 1월 1일, 멕시코를 제 1세계의 한 나라로 만들겠다며 미국, 캐나다와 북미자유무역협정을 발효시키던 바로 그 날, 사파티스트 민족해방군(EZLN)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는 것은 매우 의미가 있다. 그들 중 가장 유명한 대변인이 부사령관 마르코스다. 멕시코에서 민족해방군이 반대했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심각한 위기는 그 해 12월 경제 붕괴와 페소화 가치폭락으로 현실화되었다.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은 2년 뒤인 1996년 라 레알리다드 마을에서 신자유주의에 맞서 인류를 옹호하기 위한 아메리카 대륙간 회의를 개최하였다. 아메리카 대륙을 격동시켰던 수많은 원주민 운동들은, 설령 자치권에 대한 요구가 있었다 할지라도, 콜럼버스 도착 이전의 과거로의 복귀를 꾀하는 불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대한 고발이었으며, 전 지구를 황폐화시키고 있는 민영화에 대한 고발이었다. 그러므로 라틴아메리카 사회과학 위원회(CLACSO)가 2003년 10월 27일부터 31일까지 개최한 아바나 강연회의 참석자들을 보았을 때, 나는 매우 흥분되었다. 거기에는 아르헨티나의 아틸리오 보론(Atilio A. Boron), 멕시코의 파블로 곤살레스 카사노바(Pablo González Casanova), 아나 에스테르 세세냐(Ana Esther Ceceña), 빅토르 플로레스 올레아(Víctor Flores Olea), 브라질의 프란시스쿠 올리베이라(Francisco Oliveira), 에미르 사데르(Emir Sader), 베네수엘라의 에드가르도 란데르(Edgardo Lander) 같은 라틴아메리카 학자들뿐만 아니라, 미국의 노암 촘스키, 이집트의 사미르 아민(Samir Amin), 영국의 페리 앤더슨(Perry Anderson), 벨기에의 프랑소아 후타르(François Houtart) 같은 세계의 석학들이 참여했으며, 1992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과테말라의 리고베르타 멘추(Rigoberta Menchú),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Evo Morales), 에콰도르의 블랑카 찬코소(Blanca Chancoso) 등과 같은 원주민 지도자들도 참석했다.

        최근에 우리는 원주민들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는 부조리한 행위를 다시 목격하고 있다. 아직도 왕성히 활동하고 있는, 총명한 작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는 라틴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 증가는 대륙의 후퇴를 상징한다는 잘못된 가정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정반대이다. 이미 1세기 전에 마르티는 이 땅에서 원주민들이 자유롭게 걷지 못하는 한 라틴아메리카의 발전은 없다고 설파했다. 1920년대에 마리아테기(José Carlos Mariátegui) 또한 원주민의 문제는 인종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이기에, 원주민 스스로에 의해 해결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지금 그들이 하고있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그들에게 지혜와 동기는 충분한 것이다.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았지만 몇 가지만 더 언급하고자 한다. 하나는 대학과 관련된 것이다. 비록 학생으로서 또는 교수로서 몇몇 대학을 섭렵했지만, 나는 이 분야의 전문가는 아니다. 하지만, 지식의 개척자와 전달자로서 어쩔 수 없이 그것을 언급해야만 한다. 라틴아메리카에서 첫 번째 대학은 1530년 산토도밍고에 세워졌으며, 식민지배 기간 동안 카톨릭 종파들의 후원으로 몇몇 대학이 더 생겼다. 독립 이후 몇 가지 형식적인 변화를 겪었지만, 거의 기능적인 변화일 뿐이었다. 다르시 히베이루는 대학의 역사를 다음과 같이 종합하였다.

라틴아메리카 대학의 역사적인 역할은 우리 사회의 발전에 따라 변하였다. 식민기간 동안 대학은 사제계급과 지식 엘리트를 형성하는 근원이었다. 독립 이후 반(反)사제, 반(反)왕당파 의식을 갖는 지식계급을 형성함으로써 지배계급의 이해를 항상 충실히 대변하는 똑같은 기능을 수행한다. 하지만, 이 변화과정에서 대학이 근대화되어야만 했던 것도 사실이다. 지배계급의 자녀들에게 학위를 수여함으로써 그들의 권위를 세워주고, 법률가, 의사, 엔지니어 등 시스템을 유지하고 지배계급의 이익에 봉사할 사람들을 교육시키기 위해서는 문호를 확장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에 있던 스페인의 최고교육제도를 폐기하고, 프랑스의 전문대학 모델에 종속된 규범을 채택하는 걸로 충분했다 [...] 대학은 이렇게 사회경제적 시스템의 근대화와 병행해서, 현재까지 고착화된 교육의 역할로 복귀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지배계급에 달라붙어 그들의 이해를 묵인하는 일의 권위까지 획득한 것이다.

        그러나 각 사회들의 모방적이고 (신)식민지적인 성격은 이들 대학들이 그들 사회에 적합한 지식을 획득하는데 방해가 되었다. 그래서 『우리들의 아메리카』에서 공개적으로 우리대학이 유럽의 대학을 극복해야만 한다고 설파하기 전에도, 마르티는 이미 “대학의 미성숙하고 거짓된 문화와 역사적 방임이 라틴아메리카 민중들에게 끼치는 허위의식”에 대해 말했던 것이다. 대학의 이런 ‘미성숙하고 거짓된 문화’ 구조를 변화시키려는 노력들 중에서, 가장 반향이 컸던 운동은 1918년 중반 아르헨티나 코르도바 대학에서 데오도로 로카(Deodoro Roca)를 중심으로 일어났었던 대학개혁지지운동이다. 그 해 6월 21일 발표된 「코르도바의 청년들이 남미의 자유인들에게 드리는 글」이란 선언문에서, 그들은 정태적이고 관료적인 대학문화와 권위적이고 일상적이며 굴종적인 교육을 거부하였다. 아르헨티나는 물론이고 다른 많은 라틴아메리카에서도, 이 운동의 여파는 대단히 강렬했다. 그것은 또한 대학문제만이 아니라 개별 국가들의 사회적 문제에도 영향을 끼친 사건이었다. 이렇듯 우리의 많은 대학들이 정치적 격변의 중심에 있었다.

        폭력적인 바티스타 정권이 아바나 대학을 휴교시켰을 때인 1957년에서 58년까지 나는 예일대학의 교수로 있었는데, 그 때 동료 교수와 나눴던 대화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는 라틴아메리카의 학생들과 교수들이 학문을 연마하는 대신 정치적 문제로 시위에 나서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다고 했다. 물론, 그는 1918년 코르도바의 개혁운동과 그 영향을 받았던 다른 수많은 라틴아메리카의 운동들을 모르고 있었다. 더군다나 코르도바 운동이 일어난 반세기 후인 1968년 지금 우리가 있는 이곳 파리에서 학생운동이 발발할 것은 상상도 못했으며, 그 영향으로 많은 국가들에서 학생운동이 발발할 것과, 그중 멕시코 틀라텔롤코에서 처참한 사건이 일어나리라는 것은 상상도 못했다. 파리 학생운동은 당시 수동적이던 미국의 대학생들까지 격동시켜,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그 유명한 연좌시위를 하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코르도바에서 시작된 개혁운동은 애초에 그들이 계획했던 새로운 대학을 건설하는 데는 실패했다. 개별 국가의 조건 아래서는 애초부터 불가능했던 것이다. 최근 이들 국가들은 시장경제와 민영화를 주창하고 물질적인 면에서 비생산적인 행위들을 멸시하는 신자유주의의 공격을 받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고등교육에 관해 최근 출판된 책들 중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책의 제목이 코르도바의 개혁운동을 떠올리게 만드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그것은 마르셀라 몰리스(Marcela Molli)s가 편집한 『라틴아메리카의 대학은 개혁되었는가 아니면 변질되었는가?』이다. 다양한 그룹의 학자들이 모여서 출판을 할 정도로 관심을 끄는 주제이기에, 이 책 외에도 1996-97년에 간행된 잡지 《칠레의 인문학》 17호와 유네스코가 98년과 99년 두 번에 걸쳐 기획한 학술대회에도 수많은 학자들이 참여하였다. 이 주제에 대해 독자적으로 작업한 학자들도 다수 있으며, 그 중 멕시코 국립대학교의 총장을 지냈던 곤살레스 카사노바의 『21세기에 필요한 대학』이라는 책은 매우 뛰어나다. 그러한 연구들을 이끌었던 일반적인 기준들이 다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자유시장과 민영화만을 내세우는 파괴적인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필수적인 선택인 민주화와 연대를 위해서도 저항하라는 것이다. 2003년 10월 24일과 25일 이틀 동안 멕시코에서 개최된 〈인간성 보호를 위한 국제회의〉에는 심각한 세계상황을 성찰하기 위해, 다양한 지역의 대학과 매스컴 그리고 사회운동조직에서 활동하는 수많은 지식인들이 몰려들었다. 그런데 이 회의의 최종선언문에는 이전과 다른 대학, 진실로 새로운 대학이 출현해야 될 필요성이 다음과 같이 가장 단순하면서도 명쾌하게 설명되어 있다.

평화를 이루며, 보다 더 자유롭고 정의로운 세상을 만드는데 필요한 교육, 연구, 문화보급에 자신의 지식을 봉헌할 수 있도록, 전 세계의 인문학자, 과학자, 예술가들이 모일 수 있는 국제대학의 창설을 제안한다. 이 대학은 위에서 언급한 목적을 추구하는 모든 반(反)제국주의적, 사회민주주의적 지식인들이 모이는 공간이 될 것이다. 또한 우리시대 고급문화의 지식인들과 사회운동가들이 함께 참여하는 대화공동체의 건설도 모색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모든 것들은, 함께 있든 떨어져 있든 간에, 그 구성원들이 공동 프로젝트를 위해 협력하는 여러 자치조직들의 네트워크 형태로 조직될 것이다.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와 로이 와캉(Loic Wacquant)이 2000년에 ‘새로운 불가타 성경’이라고 언급한 것의 부정적 효과는 빼놓을 수 없는 문제인데, 이것은 특히 미국 대학에 속하는 것으로, 그들은 다른 국가들에게 그들의 아젠다를 마구 살포하고 있다. 이들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새로운 불가타 성경의 보급은 제국주의의 상징적인 산물이다. 이 제국주의가 신자유주의 혁명 추종자들에 의해 수용될 때만이 아니라, 스스로를 여전히 진보주의자라고 생각하고 있는 문화의 생산자들(연구원, 작가, 예술가)이나 좌파 전사들에 게 수용될 때도, 그 결과는 매우 강력하고 유해하다 [...] 오늘날 미국사회와 미국대학의 특수성에 관련된 지적 대립으로부터 파생된 많은 주제들이, 외형상 비역사화란 가면을 쓴 채, 지구촌 전체를 압박하고 있다 [...] 보편적인 것으로 생각되어 제시될지라도, 그것은 단지 미국의 이야기일 뿐이다. 그래서 반쯤은 전문가적인 능력을 지녔지만, 모든 공적인 영역에의 접근이 차단돼서, 정치적 욕망을 배출할 공간이 없는 대학생들에게 사상이란 탈을 쓴 캠퍼스의 논쟁거리로 전락한 특별한 모순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프랑스의 석학 부르디외에 의해 제기될 수 있었다면, 우리 라틴아메리카의 대학과 지식인들의 상황은 훨씬 더 심각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보호되어야만 할 라틴아메리카의 많은 두뇌들이 밖으로 빠져나가는 이유는 너무도 명백하므로 언급하지 않겠다. 여러 가지 이유가 존재하겠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낮은 급여나 도서관과 실험실 부족으로 상징되는 우리 대학들의 물질적 어려움과 그에 대비되는 미국대학의 풍요로움으로 인해 빠져나가는 것이리라. 나는 그 결과의 중요성에 집중하고자 한다. 아벨 트리고(Abel Trigo)에 의하면, “우리는 명백하게 입증되지도 않은 것을 암묵적으로 받아들인다. 또한 라틴아메리카 문화연구는 부록이나 영어로 씌어진 보편적인 문화연구의 번역 정도에 불과하다는 일반적인 인식에 대해선 논쟁조차 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문화적으로 찬란했던 60년대의 열기 속에서 쏟아져 나왔던, 현대 라틴아메리카의 수많은 비평가와 사상가들의 역작과 문화운동, 그리고 사상적 흐름, 교육, 출판들이 오늘날까지 계속 새롭게 재현되고 있다”는 것을 깡그리 잊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이어서 트리고는, 그 시대에 우리는 종속이론, 내적 식민주의론, 해방신학, 민중철학, 민중교육학, 집단창작극, 거리연극공연, 신(新)영화운동, 신(新)가요 운동, 새로운 시와 소설의 창작 기법 시도 등 모든 분야에서 새로운 실험을 단행했다고 말한다.

        이제 우리나라에 대해 간략하게 언급하는 것을 허락해주기 바란다. 나는 쿠바라는 이름만으로도 다양한 반응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1955년 이 도시를 사랑하는 학생으로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맘보와 시가 그리고 론 정도를 제외하고는, 쿠바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었다. 지금은, 정확히 말해서, 1959년부터 쿠바에 대해 언급한다는 것은 논쟁을 각오해야만 하는 행위가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논쟁에 참여하고 싶지 않다. 나는 〈대부〉 같은 영화에 영감을 줄 정도로 부패하고, 피가 흘러 넘쳤던 신(新)식민주의시대의 쿠바도 겪었을 만큼 나이가 많다는 걸로 충분하다. 또한 그 어려운 현실 속에서, 어느 다른 라틴아메리카의 국가나 제 3세계의 어떤 나라와도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사회정의가 살아있는, 건강하고 굳건한 독립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을 만큼의 나이도 먹었다. 그래서 우리는 유아사망률이나 평균수명 같은 분야에서는 저개발을 강요하는 국가들 수준까지 목표를 달성하였다. 교육과 과학연구에 있어서는, 대학의 숫자를 늘리고, TV와 같은 첨단 미디어를 이용하는 등 가장 최신식 방법들을 사용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고등교육이 가능할 정도로 문맹인구가 전혀 없는 나라가 되었다. TV의 경우 한 개의 교육 전담 채널을 두고 있으며, 그 외 다른 채널들에는 <만인을 위한 대학>이라는 공통된 프로그램을 방송함으로써 고등교육의 보편화를 꾀하고 있는 정도이다. 과학연구 분야에 있어서는 국제적으로도 인정받는 연구기관들을 많이 설립하였는데, 유전자공학 및 바이오테크놀로지연구소, 세포면역학연구소, 결핵접종연구소, 국립과학연구소, 페드로 코우리 열대약학연구소, 국제신경회복연구소 등이 대표적이며, 그 외에도 10여 개 연구기관이 더 있다. 지난 10월 20일, 유네스코가 시상하는 2003년도 국제 호세마르티 상을 수상했던 멕시코 지식인 파블로 곤살레스 카사노바는, 수상식장에서 유네스코의 사무총장인 고이치로 마츠우라(Koichiro Matsuura)씨의 연설 뒤에 다음과 같은 감사의 메시지를 표했다.

마르티의 품행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도덕적인 행동양식, 사상, 정치행위를 만들었으며, 오늘날 수백만의 쿠바 인들이 그것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위대한 스승, 그의 가르침이 없는 다른 세상은 생각지도 못 할 일입니다. // 제가 과장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쿠바에 가서 보십시오. 그곳에서 정부와 하나된 민중들이 획득해 낸 보편적인 문화의 보급과 초등, 중등, 고등교육, 그리고 자연과학과 인문학 연구 성과물들을 보십시오. 건강과 사회정의, 그리고 민중의, 민중을 위한, 민중과 함께 하는 민주주의를 보십시오. 심지어 미국 민중까지 포함시켜서, 세계의 모든 민중들에 대한 평화와 인류애를 기원하는 보편적 의지, 이런 것들이 쿠바에서 이루어낸 것입니다. 세계는 평화, 교육, 생명에 대한 길을 발견할 것인데, 그 길은 틀림없이 쿠바를 통해서일 것입니다. 사상과 행위의 고전 속에 호세 마르티를 포함하게 될 것입니다 [...] 수상 상금을 이곳에 있는 쿠바 대표부, 롤란도 로페스 델 아모(Rolando López del Amo) 대사님께 전할 수 있어 대단히 기쁘게 생각합니다. 쿠바 정부가 실행하고 있는 국가와 대학 발전 프로젝트에 작은 기여나마 할 수 있게 돼서 말입니다.

        한 가지에 대한 것만 말해놓고 끝내는 것은 적절치 않은 것 같다. 그래서 반대로 모든 것을 언급해 놓고 끝내려 한다. 모든 것, 즉, 서구와 나머지 지역들, 북반구와 남반구, 그리고 저개발을 강요하는 국가들과 저개발 국가들, 이 모든 것들이 우리가 직면한 거대한 난관들이다.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생태적 난관들이다. 모든 지식들은 그러한 난관에 직면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무지가 불행한 것이었다면, 단순한 지식은 훨씬 더 무서운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전쟁들이 그것을 너무나 잘 증명해준다. 다음의 시구는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쓴 것이다.

아이들을 밀어붙이고,
어머니들은 겁에 질려 하늘을 쳐다본다
영리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들이 하늘에 나타날까봐.


        V2호로 런던을 초토화시키고, 원자폭탄으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폐허로 만드는 등, 영리한 몇몇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이 세상을 황폐화시킬 때, 나는 아주 어렸었다. 흥미롭게도 수십 년 뒤에, 나는 사람들이 그러한 발견을 어떻게 과학의 승리로서 간주하려는지 보게 되어 매우 놀랐다. 항상 얘기되듯이, 의식이 없는 과학은 너무나 위험한 것이다. 널리 알려진 사실에 대해서는 장황하게 언급하지 않겠다. 예를 들어 인류의 수가 급속하게 늘어나는 사이(20세기의 마지막 40년 동안에 인류의 수는 두 배로 늘었다), 빈민층과 극빈층의 수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인류의 요람이었던 아프리카의 남부 사하라는 인류멸망의 시초가 되지 않나 할 만큼 위협적이다. 예기치 않은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소련의 해체 이후, 우익이 득세하고 좌파의 상당 부분이 우경화 될 때, 나는 놀라움과 감사함으로 자크 데리다의 『마르크스의 유령들』(1993)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거기에 있는 많은 글들 중에서 다음 대목을 소개하고자 한다.

‘새로운 인터내셔널’은 국제법의 이러한 위기들을 통해 추구되는데, 그것은 이미 부적합하고, 때로는 위선적인 인권들에 관한 담론의 한계들을 고발한다. 오늘날 그런 담론들은 어쨌든 시장법칙, ‘외채’, 과학기술, 군사, 경제 발전의 불평등이 인류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기괴한 것으로 만연하고 있고, 극심하게 실제적인 불평등을 유지하는 한에서 형식적이고 자가당착에 빠져 있다. 왜냐하면 특정한 사람들이 인간 역사의 이상으로서 최종적으로 실현될 자유민주주의의 이상이란 이름으로 신복음화를 감행하는 시기에 인권을 외쳐야 하기 때문이다. 폭력, 불평등, 소외, 기아, 경제적 압박이 지구와 인간 역사에서 이처럼 많은 인간들에게 고통을 준 적은 없었다. 역사의 종말에 도취한 상태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이상이 도래한다고 노래하는 대신에, 이데올로기의 종말과 위대한 해방 담론들의 종말을 찬양하는 대신에 이처럼 명백한 거시적 사실들, 무수히 특유한 고통을 무시하지는 말자. 지구상의 어떠한 진보도 그처럼 많은 인간과 여성과 어린이가 절대적인 암호에 묻혀 예속되고, 굶주리고, 대지로부터 추방당한 적이 없었다는 점을 결코 무시하도록 하지는 않는다.

        후기에 발표한 『문화가 위험하다』라는 텍스트에서, 부르디외는 ‘새로운 인터내셔널리즘’을 주창하는데, 그것은 파스칼 카사노바(Pascale Casanova)가 이미 『문자 공화국』에서 ‘창조자들의 국적 없는 인터내셔널리즘’이라고 부른 것이다. 부르디외는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러한 문화적 인터내셔널리즘의 전통은 외형과는 달리 ‘세계화’라고 부르는 것을 근본적으로 반대한다. 세계화란 용어는 성스러운 것 또는 정언명령처럼 행세하지만, 사실은 정치경제적 지배세력인 강대국들, 특히 미국의 특별한 이해관계를 보편화시키고, 그들 강대국들에 더욱 유리한 경제적, 문화적 모델을 전 세계에 확산시키려는 가면일 뿐이다. 이를 위해 강대국들은 세계화를 규범이나 의무 또는 숙명이나 보편적인 가치처럼 제시하는데, 나머지 국가들은 거기에 적극적으로 합세하든지, 아니면 최소한 체념적으로라도 속해 있어야만 한다 [...] 문화적 인터내셔널리즘의 전통을 고수하는 사람들, 즉 모든 나라의 예술가, 작가, 연구원, 출판인, 화랑 디렉터, 비평가들이라 할지라도, 오늘날 그들은 경제적, 문화적 권력을 가진 이들이 ‘세계화’란 이름 아래 보편적으로 강요하는 자유화 정책에 따라 움직여야만 한다. 그들은 즉각적인 이익의 창출이라는 자체의 논리에 따라 문화의 생산과 보급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부르디외는 『지성인들의 인터내셔널: 직업으로서의 과학, 참여로서의 정치 - 정치적 노동의 새로운 분류를 위하여』라는 또 다른 텍스트에서 그 점에 대해 더욱 명확한 입장을 취한다. 이 책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남반구와 북반구의 불균형으로 인해, 인류 공통의 이익을 실현시키기 위한, 세계지식인들의 결합이 국가의 경계를 초월해서 형성될 것이다 [...] 학계의 좁은 세계를 떠나 외부 세계와 접촉하려고 나서는 것이다. 특히 노조와 시민단체, 그리고 능동적인 정치그룹들과 접촉하려고 나서는 것이다. 학술세계의, 다소 비현실적인 내부적 토론에 만족치 않고, 경쟁과 참여를 통해 재능의 조화를 만들어내려는 것이다.

        심각한 위기의 시대를 사는 인류가, 우리가 바라는 대로 세상에 나올 수 있다면, 그것은 오직 데리다가 언급한 그 ‘새로운 인터내셔널’ 덕분일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지식인들의 인터내셔널이 아니라, 브루디외가 표명한 것처럼, 지식인들이 북반구와 남반구의 불균형을 초월해서 학술적인 좁은 세계를 버리고, “외부 세계와 접촉하려고 나서는 것이다. 특히 노조와 시민단체, 그리고 능동적인 정치그룹들과 접촉하려고 나서는 것이다.” 하지만 혹시 남반구와 북반구의 수많은 도시들에서, 즉, 치아파스와 시애틀에서 제노바, 프라하, 퀘벡, 포르투 알레그레까지, ‘약속의 땅’의 주인들처럼 행세하는 그룹들이 아메리카 자유무역지대와 같은 신(新)식민지주의적 질서를 논의할 때, 이런 신자유주의의 세계화 정책에 강력하게 저항하고 있는 행위들이 새로운 인터내셔널 운동이 아닐까? 혹은 예고된 전쟁인 이라크에 대한 잔혹한 침공에 반대하는 대형 시위가 그러한 인터내셔널 운동을 지향점으로 삼는 것은 아닐까? 아직까지 구체적인 모습이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에, 누구도 진정한 의미의 인터내셔널 운동을 모른다. 하지만, 그러한 모든 행동들은 호세 마르티가 언급했던 우리 모두의 조국인 인류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한다. 샤르뎅(Teilhard Chardin)이 말한 것처럼, 인간적인 현상의 생존이 게임처럼 위기에 처했을 때, 인류는 팔짱낀 채 지켜만 보고 있지는 않을 것이며, 자주 반복되는 인위적인 긴장 조성에도 착취당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에르네스토 카르데날(Ernesto Cardenal)이 『우주찬가』란 시집에서 시, 과학, 종교, 정치, 고통, 희망 등 모든 것을 혼합해 시어로 표현해 낸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