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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리엘 / 칼리반 : 부에노스 아이레스 / 쿠바 / 송상기 2003-10-22 / 7892   

아리엘 / 칼리반 : 부에노스 아이레스 / 쿠바

송 상 기



     중남미 문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탈식민주의라는 이론은 어떠한 공헌을 할 수 있는가? 탈식민주의라는 용어는 유럽과 미국의 학계에서 통용되는 용어로 주로 아시아나 아프리카 지역 연구에 많이 적용되어 왔다. 중남미에서는 이를 단지 또 하나의 외국 이론의 수입으로 여겨 그러한 용어의 무분별한 사용에 저항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이론을 중남미의 역사와 문화의 문맥에서 재점검하려는 자세를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양면적인 태도는 탈식민주의가 제 1세계 아카데미즘과 제 3세계 문화적 생산물을 접합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라틴아메리카주의자들에게 이 용어는 민족주의와 문화적 제국주의 그리고 자생적인 것과 외국으로부터 파생된 것을 동시에 의미하는 것으로 보여졌다. 탈식민주의 이론가들이 분석의 대상으로 삼는 대부분의 아시아나 아프리카 지역은 1945년 이후 식민주의로부터 벗어나 탈식민 혹은 신식민 상태에 있게 되나, 쿠바와 푸에르토리코를 제외한(이 두 국가는 1898년 미서전쟁 이후 독립함) 중남미 대부분의 국가는 1826년 이미 정치적 독립을 쟁취하게 된다.

    진 프랑코(Jean Franco)가 베네딕트 앤더슨의 용어를 빌어 기술하는 바와 같이 스페인으로부터 독립 이후 상상의 민족적 공동체로서 국가(The Nation as Imagined Community)를 설계하는 것이 19세기 중남미 지식인의 화두였다. 19세기 중남미 낭만주의 소설의 로맨스는 민족적 알레고리로 읽혀지기도 했다. 당시 대부분의 지식인들 혹은 지배계급은 서구에 유학한 인텔리겐차(intelligentsia)로 자신의 준거 사회를 파리나 뉴욕에 두기도 했다. 원래 인텔리겐차는 19세기 러시아 제정시대에 파리에 유학간 젊은이들이 돌아와 문화중심(파리)의 변방(러시아)에서 주변인으로서 살면서 문화적 정체성을 잃고 방황을 하는 사람들을 일컬었다. 아놀드 토인비는 스페인 귀족 아버지와 잉카 공주 사이에서 태어난 메스티소 작가 잉카 가르실라소 데 라 베가(El Inca Garcilaso de la Vega)를 -그의 대표작 『왕실의 기록』의 영역본 서문에서- 아메리카 인텔리겐차의 첫 번째 예로 꼽는다. 19세기 중남미 인텔리겐차들은 권력을 지닌 새로운 세력으로 부상(浮上)하고 있었으며 그들은 새로운 이정표를 제공해야 했다.

    그러나 스페인의 잔재를 청산(탈식민화)하며 내세운 그 이정표는 또 다른 서구의 메트로폴리에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공동체 의식을 지역국가 단위로 둘 것인가 아니면 스페인어권 중남미 전체에 둘 것이냐 하는 논란도 있었다. 여기서 셰익스피어의 『태풍』(The Tempest)에 등장하는 아리엘과 칼리반에 대한 중남미 지식인들의 다양한 해석은 탈식민화-신식민화-탈식민화의 우여곡절을 겪는 중남미 문화적 정체성의 복합적인 흐름을 보여준다.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담론의 흐름을 개괄하고 각각의 해석에 따라 제기될 수 있는 문제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이러한 중남미 문화분석이 역으로 보다 확장된 탈식민주의 해석에 보탬이 되길 소망하며 본문을 시작한다.


I.

     1900년 당시 29세의 우루과이 출신 작가 호세 엔리케 로도(José Enrique Rodó가 『아리엘』(Ariel)을 출간한 후 중남미의 지성계에서는 이 책의 평가를 둘러싸고 숱한 논란이 있어 왔다. 이러한 논란은 중남미 문화 자체가 안고 있는 딜레마를 대변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아리엘리즘이란 용어는 중남미에서 코스모폴리타니즘 혹은 보편주의를 의미하며 스페인을 비롯한 카톨릭 라틴 문화를 더욱 고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백색 전설’(leyenda blanca)의 한 축을 형성한다. 이는 미국으로 대표되는 앵글로색슨족의 실용주의 및 실증주의에 저항하는 라틴의 정신적 문화적 우월성에 입각하여 윤리적이고 미학적인 저항의 연대를 형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백색 전설‘이란 용어는 ‘흑색 전설’(leyenda negra)의 대항적 파생어이다. ‘흑색 전설’이란 바르톨로메 데 라스 카사스(Bartolomé de las Casas)신부가 짐승 취급을 받던 인디오들의 인권을 옹호하기 위해 스페인의 잔인한 식민정책을 고발한 데서 유래했는데, 나중에는 후발 제국주의 국가인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가 스페인 식민정책을 비하하고 상대적으로 자신들의 온건한 식민정책을 선전하기 위한 정치적 용어로 변질된다.

     중남미에서 ‘흑색 전설’이란 반스페인적이라는 의미의 은유로 쓰이는데 19세기 초 독립 이후에는 3세기 이상 지배했던 스페인 문화 잔재의 청산을 주장한 지식인들을 칭하기도 한다. 그들은 19세기 초 유럽의 주변부로 밀려난 스페인의 문화적 지배를 받는 자신들이 더 이상 주변부의 문화를 답습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을 갖게 되어 준거 문화를 프랑스의 계몽주의나 영미 계열의 실용주의 혹은 실증주의에서 찾고자 했다. 특히 19세기 말 멕시코와 아르헨티나는 각각 미국과 영국과 교역이 늘어나면서 실증적 과학을 숭상하고 근대적 산업화를 시도한다. 그런데 자신들이 모방하려는 모델의 주인공들이 자신들의 생존을 위협한다면 그 당혹감이란 엄청날 것이다. 이러한 주변부의 비애 속에서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을 재정립해야겠다는 기조 속에서 『아리엘』은 출간되었고 그 즉시 셰익스피어의 『태풍』에 등장하는 아리엘에 대한 수사학적 반향은 중남미 지식인들에게 깊게 각인되어 자신의 정체성을 추구하고 진단하는 수사적 틀이 되었다.

     1492년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중남미는 근대화의 주변부 혹은 그늘 속에서 유럽인과 인디오 혹은 아프리카로부터 수입된 흑인 노예와 인디오 혹은 백인간의 혼혈의 역사(대부분의 중남미 국가의 경우)나 혹은 미국처럼 백인들의 원주민 학살 혹은 추방의 역사(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의 경우)가 이어져 왔다.

     여기서 로도가 우루과이 출신으로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활동한 공간적 특이성과 유미주의적 세기말 사상이 지배적이었고 1898년 미서전쟁 이후 스페인어권 국가들이 미국에 갖는 두려움과 위협이 극에 달한 시간적 배경은 이 텍스트의 해석에 있어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미국의 승리는 앵글로색슨의 라틴 혹은 히스패닉 문화에 대한 우월성을 입증하는 듯한 인상을 주었고, 실증주의의 탈을 쓴 특수 민족의 우생학적 우월성을 주장하는 인종주의와 결부되어 상대적으로 중남미 혼혈인종의 열등감을 가중시키는 듯 했다. 미국의 중남미 정치에 대한 간섭이 더욱 노골적일수록 중남미 지식인들의 반미감정은 증폭됐다. 이들은 미국의 문화를 천박한 물질주의라고 치부했고 미국식 민주주의라는 것도 우둔한 다수의 참여정치라고 치부하며 자신의 문화적 근간이 되었던 라틴 문화를 다시 부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구한말 우리의 동도서기(東道西器)론과 비교한다면 ‘서기’는 앵글로색슨의 근대화 산업화 프로그램이고 ‘동도’는 라틴의 유미적 관념론을 의미한다. 여기서 ‘유미적’이란 용어를 썼는데 당시 중남미를 풍미하던 문예사조는 모데르니스모(modernismo)라고 불리는 유미주의로 『아리엘』의 저자 호세 엔리케 로도 역시 중남미 모더니스트이다.

     모데르니스모의 역사적 전개 과정은 미국의 중남미에 대한 영향력이 증대되는 시기와 일치한다. 코스모폴리탄한 모데르니스모의 메카는 단연 중남미의 파리라 불리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이다. 다리오나 로도가 작가로서 명성을 얻은 곳이 바로 부에노스아이레스인데 오늘날에도 프랑스의 주요 사상가가 책을 내면 미국보다 빨리 번역되어 출간될 정도로 유럽의 첨단 사상에 대한 흡수 속도가 빠른 곳이기도 하다. 한편 부에노스아이레스는 19세기 초 독립 이후부터 자유무역을 필요로 하는 상공업자들이 중심이 된 자유주의자들이 아르헨티나 내륙의 농장주를 중심으로 보호무역을 주장하는 연방주의자들과 내전에 가까운 암투를 1880년까지 벌이게 된다. 여기서 자유주의자들의 진영에 가담했던 사람들은 앞서 언급한 ’검은 신화‘에 해당하는 사상가들로서 알베르디, 사르미엔토, 에스테반 에체바리아 등이 이에 속한다. 이들은 내륙의 원주민과 아르헨티나판 카우보이인 가우초들을 국외로 추방하거나 몰살시키고 유럽계 이민자들을 받아들이자고 주장했는데, 이들이 따르고자 한 모델은 바로 미국이었다. ’문명화란 (이민자들을) 이식시키는 것이다“라는 알베르디의 슬로건은 바로 그들의 상상적 공동체(imagined community)가 바로 미국식 근대화임을 보여 준다.

     물론 로도는 이러한 자유주의자들의 상상적 공동체를 비판하고 있으나 거기에 대항하는 대안을 한때 아르헨티나 민족주의자들이 상상적 공동체의 신화로 가우초의 삶을 다룬 『마르틴 피에로』를 위시한 가우초 문학이나 다른 중남미 국가들이 추구한 원주민들의 세계관을 부흥시키는 데서 찾지 않고 라틴 문화의 보편적 정통성의 계승 및 그 연대에서 찾는데 이 역시 부에노스아이레스라는 중남미의 코스모폴리스 역할을 하는 특수한 토양의 문화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또 그러한 엘리트적이고 친유럽적인 토양이 다른 지역의 중남미 지식인들에게 거부감을 자아내게 하기도 한다.

     로도는 『아리엘』에서 셰익스피어의 인물들과 플롯이 지니는 다양하고 미묘한 이미지와 수사를 영혼과 육체, 이성과 본능이라는 전통적인 서구 형이상학의 이분법적 모델로 단순화시킨다. 로도는 이러한 이분법 위에 또 다른 대립항을 추가한다. 그것은 아리엘은 미래의 민주적 이상과 조화로운 인간의 승리의 상징인 반면 칼리반은 미국의 실용주의로 물든 부패한 미주주의의 상징이라는 것이다.

     칼리반이 미국의 은유로 사용된 전례는 로도 이전에 프랑스의 에세이스트인 에르네스트 르낭(Ernest Renan)의 1878년에 발간된 철학적 드라마 『칼리반』, 아르헨티나에 이민간 프랑스계 폴 그로우삭(Paul Groussac)의 『플라타강에서 나이아가라 폭포까지』(Del Plata al Niágara) 그리고 미서전쟁 직후 루벤 다리오의 『칼리반의 승리』(El triunfo de Calibán)라는 신문 사설에서 찾을 수 있다. 르낭의 드라마에서 결말은 칼리반이 섬에 머무르지 않고 프로스페로를 따라 밀라노에 가서 대중의 지도자가 되어 왕자로 뽑힌다. 아리엘은 공기 속으로 사라지고 프로스페로는 칼리반과 협정을 맺게 되는 것으로 끝난다. 이 작품에서 칼리반이 식민지 출신의 신흥세력으로 변모되며 그것이 상징하는 바가 미국임을 간접적으로 암시하고 있다. 그로우삭은 “미국은 남북전쟁과 서부개척 이후 칼리반적인 육체에 양키의 정신을 지니게 되었다”고 자신의 정치평론집에서 밝히며 쿠바의 독립전쟁에 미국이 간섭한 행위에 대한 분노를 표명하면서 미국을 야만적 국가라고 규정한다. 다리오는 한술 더 떠 “영혼의 은총 그 자체인 미란다는 아리엘을 영원토록 사랑할 것이다. 그리고 그 어떤 돌과 철과 금 그리고 베이컨으로 쌓인 산을 준다해도 나의 라틴적인 영혼을 칼리반에게 팔지 않을 것이다”고 말하며 자신의 라틴적 영혼을 미란다에 비유한다. 실제 셰익스피어 작품에서 미란다가 아리엘을 좋아한다는 근거를 찾을 만한 구절이 없고 그녀가 한 눈에 반해 버린 상대는 페르디난드이다. 어찌되었건 그로우삭과 다리오는 셰익스피어의 상징을 반미적인 정치적 담론으로 변환시켜 버린다.

로도의 『아리엘』은 젊은 제자들 앞에서 행하여진 노학자 프로스페로의 마지막 강의 형식으로 되어 있다. 강의내용은 젊은이들이 윤리미를 고양한 후 이상적 모델로 아테네 문화를 제시하고 평준화된 민주주의 개념에 반하여 선택된 소수의 엘리트 정신을 옹호하며 미국의 실용주의와 중남미의 이상주의가 상보적 결합을 이루어 조화로운 미래를 제시하는 것이 그 골자이다.

     이 강의는 세미나 형식이 아니라 노학자가 연설 혹은 낭독하는(dictate) 형식으로 되어 있어 권위적이고 위압적이다. 독재자(dictator)와 낭독 혹은 명령(dictation) 사이의 관계와 이 텍스트의 화자 프로스페로와 셰익스피어 텍스트의 프로스페로 사이의 관계는 상동관계이다. 설준규는 『태풍』을 절대왕정 최고형태의 예술적 실험극으로 규정한다.


프로스페로의 실험을 통해 절대권력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수준의 통치질서의 작동방식과 아울러 그것이 수반하는 자유와 평등의 문제를 동시에 극화함으로써 절대왕정의 궁극적 한계와 그 극복의 필연성 및 방향을 모색한다.
프로스페로는 마법이라는 통치수단을 통해 자신의 실험국가의 신민들을 물리적, 공간적으로 통제하려 기도하며, 교육을 통해 그들의 의식을 통제하려 시도하기도 한다. 상비군과 발달된 관료체제를 결여했던 당대 영국 절대왕정의 이상이 프로스페로에 의해 실험되고 있는 셈이다. 프로스페로가 통치자로서 인본주의적 자질을 겸비한 인물로 절대권력자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를 대변한다면, 칼리반은 다소간 ‘동물적’ 성격을 띰으로써 이성적인 통제와 지배를 마땅히 받아야 할 존재로 설정된다. 따라서, 이 둘의 관계는 지배, 피지배 관계의 정당성을 가장 원초적인 형태로 가늠해 볼 수 있는 조건을 이룬다.


     섬에서 프로스페로의 통치행위를 절대왕정의 실험극이라 볼 때 이는 신대륙에 대한 르네상스 지식인과 절대왕정의 유토피아적인 동시에 제국적인 통치행위에 대한 알레고리로 읽을 수 있다. 알레고리를 어원적으로 볼 때 ‘타자 혹은 다른 것’을 뜻하는 allos와 ‘공개적으로 말하다’를 뜻하는 agoreuein의 합성어로 agoreuein의 뜻은 allos에 의해 바뀌어진다. 때때로 전이(inversio)의 의미는 번역(translatio)의 의미로 쓰이기도 했다. agoreuein 동사의 정치적인 기조는 간과되어서는 안 되는데 검열(censorship)이 텍스트를 우회적이고 아이러니칼한 발화행위로 유도하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가 프로스페로라는 인물을 통해서 보다 강력한 관료체계와 마술적인 인문주의의 힘에 입각한 지배라는 상충적인 지배자의 전형을 만들어냄으로써 보다 강화된 식민주의를 『태풍』에서 그려내고 있다는 주장은 단편적인 해석이다. 이러한 해석은 폴 브라운(Paul Brown)이 보듯 문화적 유물론적 시각에서 볼 때 식민주의적 담론의 신화화(apotheosis)와 그에 대한 아포리아의 동시적 해석의 여지를 남기는 극의 결말을 통해 보류된다. 프로스페로는 분명 들뢰즈와 가타리가 『안티 오이디푸스』에서 언급하는 전제군주기계의 전형이다. 이 제국적 형성체라는 하나의 초월적 코드 속에 다른 모든 코드들을 예속시키고 그 획일화된 지점으로 고착화시킨다. 아리엘의 유미주의나 자유에의 추구나 칼리반의 원시주의 혹은 감각적인 요소들은 제국주의라는 담론 속에 초코드화되고, 등기되고, 전유된다. 이 섬의 권력의 중심축이 칼리반에서 프로스페로로 옮겨가는 것은 바로 원시영토기계에서 전제군주기계로의 전이로 볼 수 있다.

     칼리반(원주민)의 세계에서 모든 횡적 결연관계들은 전제군주기계에 의해 변용되고 정비되어 잉여가치의 질료가 된다. 모든 편집증적 기재는 분열증적인 표상을 동반한다. 앞서 상충적이라 말한 강력한 관료체계는 모든 코드를 선형적으로 수렴하여 마술적 인문주의라는 초월적 기표(프로스페로의 책) 혹은 라캉이 언급하는 초월적 남근 속에 초코드화시킨다. 칼리반이 프로스페로의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주인의 코드에 대한 저항보다는 오히려 그것은 신화화(apotheosis)하는 데 이바지 할 수 있다. 그러나 셰익스피어의 텍스트는 자신이 형성한 초코드화된 남근적이고 제국주의적 담론 자체를 탈코드화시킨다. 프로스페로 자신이 전제군주적 마법의 힘을 잃으며 결말의 독백에서 섬에서 자신의 모든 행적을 “몽환적 행위”(stuff of dreams)로 규정하기 때문이다. 식민주의적 담론의 주형(forging)은 순간적이지만 허위(forgery)로 드러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스페로는 타자를 설정하고 투쟁을 계속하여 자신의 내러티브를 완성시켜야 했다. 이러한 양면성을 지니는 텍스트 『태풍』은 결코 식민주의의 완벽한 승리를 주장하지 않는다. 이러한 열려진 양가성이 어떻게 상이한 공간과 시간 속에서 변용되어 알레고리화되는가 하는 문제로 돌아가려 할 때 이 원(原) 텍스트(archi-text)가 지니는 풍요로움 덕분에 근대화의 주변부에 있어 맛깔스런 양피지로서 기능을 충분히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이제 이 텍스트가 지니는 상징적 담론을 또 다른 신세계 중남미 역사와 관련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에 주목해 보기로 한다. 프로스페로는 신세계에서 자신의 복권을 꿈꾸며 아리엘과 칼리반 등을 노예화시키며 아리엘을 통한 마법으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후 밀라노로 귀환한다. ‘엘도라도(El Dorado)'의 꿈과 신분 상승을 꿈꾸는 스페인 정복자들은 중남미의 원주민들에게 강제노역을 시켜 플랜테이션이나 광산개발을 통해 획득한 부를 안고 스페인으로 금의환향(錦衣還鄕)한다. 이때, 구대륙의 절대왕정 체계는 신대륙으로 재생산되고 대서양을 넘어선 제국주의 체계가 성립된다. 프로스페로는 신세계에서의 자신의 지배를 강화하기 위해 아리엘을 육체의 생명에 묶어둘 필요가 있다면, 칼리반도 언어의 층위까지 끌어올려 지배를 한다. 아리엘은 순수 언어, 즉 모든 제한을 벗어나려는 징후를 보이는 자유를 상징하고, 칼리반은 물질적 한계에 종속되는 감각적 노예상태를 상징한다. 프로스페로는 이들 둘 다를 능동과 수동, 속박과 초월이라는 변증법 속으로 불러들이고자 애를 쓴다.

     여기서 아리엘은 테리 이글턴이 보기에 노동하기보다는 놀기를 더 원하고, 세심하게 계산된 프로스페로의 전략을 대신 수행하는 존재임을 감수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자신의 하찮은 장난기를 위하여 현실을 조종하려 하는 유미주의자이다. 이러한 이글턴의 평가는 모데르니스모가 현실도피적이라는 이유로 다리오의 시가 지니는 인위적 우아함을 비판하며 그의 시의 상징적 소재인 백조의 목을 비틀어야 한다는 시를 쓴 모데르니스모 후기 시인인 엔리케 곤살레스 마르티네스의 시를 연상시킨다. 곤살레스 마르티네스가 창백한 백조 대신 어둠(시대의 아픔)까지 투시하는 미네르바의 부엉이를 노래한다면 로도는 아리엘이라는 자유를 염원하는 정령을 통해 당시 중남미에 만연하던 실증주의적 근대화 작업이 오히려 미국의 허울좋은 범아메리카주의(Pan-Americanism)에 입각한 또 다른 형태의 제국주의에 일조할 뿐이라고 경고하며 헬레니즘에 입각한 라틴문화의 복원을 통하여 강력한 문화적 공동체를 창출하고자 한다. 그것이 같은 모데르니스모 계열의 작가 호세 엔리케 로도와 루벤 다리오의 차이점이기도 하고 이글턴이 보는 무책임한 유미주의와의 차별점이기도 하다.

     분명 로도는 『아리엘』을 통해 현실적이거나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당시 중남미 사회에 대한 문제제기와 그 치유책이나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모데르니스모를 이끌었던 다리오는 당시 창조적 시인들이 빈번히 하는 그 흔한 선언문 하나 쓰기를 거부했다. 그는 시가 그 모든 것을 창조적으로 대변한다고 믿었다. 그의 시는 아리엘이 추구하듯이 지상의 파편적 의미로 고정화되기를 거부했던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비정치적인 시학에 대해 쏟아지는 비판 때문인지 후기 시 「루스벨트에게」(A Roosevelt)에서 그는 보다 직접적으로 루스벨트의 제국주의 정책(Policy of Big Stick)을 비난하며 현실 참여적인 면을 보인다. 이 시에서 다리오는 로도의 아리엘적인 라틴 문화적 공동체에 아스테카나 마야 문화가 남긴 문화적 유산까지 첨가하며(다리오가 중미 니카라구아 출신임을 상기시키는 대목) 라틴적인 요소에 아메리카적 요소을 덧붙이는 상상적 공동체를 형성한다. 로도와 다리오는 서로 대립하기도 하며 영향을 주고받으며 20세기의 초엽 중남미의 유토피아적 모데르니스모를 발전시킨다.


II.

     예일대 스털링 석좌교수인 로베르토 곤살레스 에체바리아(Roberto González Echevarría)는 로도의 “아리엘”에서 프로스페로가 자신의 영감의 원천(numen)이라고 표현한 아리엘의 동상 앞에서 그가 강연을 하는 것에 주목을 하며, 자유를 얻어 공기 속으로 사라진 아리엘이 남긴(각인시킨) 동상이 어떻게 프로스페로의 장엄한 연설을 통하여 다시 살아나 학생들을 이데올로기화하는가에 주목한다. 프로스페로는 아리엘의 영(靈)을 불러 들여 지금껏 그가 행한 강연 중에서도 가장 부드럽고 설득력 있는 힘으로 강연을 한다고 밝힌다.


프로스페로는 명상에 잠기며 조각의 얼굴을 만지고 나서 자신의 주위에 있는 젊은이들에게 굳건한 목소리-생각을 사로잡거나 영혼의 심층을 파헤치며 빛이 투과하거나, 대리석에 새기는 정의 두들김 혹은 화폭에 삶을 섞어 바르는 붓놀림 혹은 모래 위의 물결과 같은 대가의 목소리로-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청중들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아리엘의 영(靈)은 프로스페로의 목소리로 육화되어, 대가의 목소리가 담지하는 진리를 학생들에게 전달된다. 굳이 데리다의 『목소리와 현상』(La voix et le phénomenè)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목소리와 진리는 서구의 전통에서 볼 때 분리될 수 없는 요소였다. ‘공기(air)’에서 연원하는 아리엘의 이름은 진리, 영혼, 희망과 같은 모든 긍정적인 요소들이 공기 속에서 프로스페로의 목소리를 통해 구현된다는 시나리오를 암시한다. 모래 위의 물결과 같은 공기의 흐름은 대리석 위에 각인시킬 만한 힘을 지니고 있다. 공기 안에는 순결한 진실과 투명한 목소리가 거주하며, 공기의 미세한 떨림(subtle vibration), 즉 목소리는 청자의 뇌리에 깊게 각인된다. 이 새기기 작업은 들뢰즈와 가타리가 말하는 원시영토기계에서는 가축에 불도장 찍는 행위(brand)나 신체 위에 새기는 문신을 통하여 횡적 연관관계 및 소유관계를 등기하는 작업이었다. 그것이 전제군주관계에서는 군주제 혹은 절대신이라는 초월적 코드로 종적으로 연계되고 환원된다.

     프로스페로의 권위는 신의 메시지인 진실을 담지하는 목소리의 떨림으로부터 나온다. 프로스페로의 내면의 심장은 “잘 울리는 금속판(placa sonora)”과 같아 떨림을 반사해내고 별처럼 빛을 반사한다고 로도는 묘사한다(13). 프로스페로의 심장은 영혼이나 공기가 생성되는 에테르가 가득 찬 중심이 아닌 타자의 울림이 반사되는 금속판이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바로 금속성이다. 그것이 빛이나 공기가 반사되어 튕기게 하는 탄성을 지니게 하는데 효과적인 물질이긴 하지만 결코 그 자체의 내부는 변함이 없고 그 날카롭고 강인한 성분으로 인해 남에게 해를 끼칠 수도 있는 융통성 없는 물질이라는 점이다. 그것은 그 어떤 변증법적 탄력성이 없는 자신만을 관철시키는 편협한 담론일 수 있다.

     로도 텍스트 속의 미장센이라 할 수 있는 ‘관대한 왕의 집’이라는 우화에는 상처받은 가슴을 달래려 빵과 향료를 얻고자 사람들이 왕의 집으로 가는 데, 왕의 심장은 상처받은 이들의 고통을 충만감과 희망으로 반사시켜 보낸다. 이 우화는 실용주의적 코드로 고통받는 영혼들에게 내적인 자유를 선사하겠다는 로도의 의지를 반영한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의 주의를 끄는 것은 왕의 내적 구조물의 형태이다. 그 구조물은 기둥이 많고 추상화된 장식이 화려한 아랍 풍의 성(alcázar)이고 그 안에는 짙은 종교적 침묵이 잠자고 있는 순결한 대기를 감돈다.


하지만 그 안 쪽 깊숙하게 수로로 감싸인 황금빛 성이 숲 속 깊숙하게 감추어져 있는 어랜드(Ludwig Uhland)의 감추어진 교회처럼 범상한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데 인적이 드문 길 끝에는 그 아무도 발을 들여놓을 수 없는 신비스러운 방이 있어 오직 왕만이 문지방을 넘어서는 순간 자신의 자비로움은 고행의 이기심으로 변하였다. 두터운 성채는 방을 에워싼다. 바깥의 소란스러운 세계의 그 어떤 반향도, 자연의 심포니의 한 소절도, 인간 입술에서 나오는 그 어떤 단어도 벽을 에워싸는 반암(斑岩)의 토대를 투과하거나 금지된 장소에 공기를 진동시키지 못했다. 성스러운 침묵이 고요하고 오점이 없는 공기에 가득 찼다. .스테인드 글래스 투과한 빛은 조용하고 위엄 있게 방안으로 내려와 천상의 고요 속에서 따스한 동아리에 내린 눈처럼 녹아들었다. 깊은 바다 속이나 숲 속 한 가운데에서도 이러한 평화를 느껴본 적이 없었다. 때때로 밤이 투명하고 고요할 즈음 정교하게 장식된 천장은 조개껍질처럼 둘로 갈라지며 거대한 그림자가 진주의 모태 속으로 들어오게 한다. 하얀 수련의 순결한 흐름은 방안에 맴도는데, 그 향기는 편안한 명상과 심오한 영혼에의 추구를 하게끔 한다. 어두운 여신상이 대리석 입구를 지키며 모든 이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훈계한다. 입구의 정교한 이미지는 이상주의와 명상과 휴식을 이야기한다... 비록 그 어느 누구도 늙은 왕을 따라 그의 안식처로 가보지 못했지만, 그의 형언할 수 없는 관대함으로 손님들은 만질 수 없고 실체를 느낄 수 없는 그의 벽 속에 들어온다. 이 방에서 전설적인 왕은 꿈을 꾸고, 현실로부터 탈출하고, 그의 명상은 파도에 의해 다듬어진 조약돌처럼 정교해진다. 거기서 프시케(Psyche)는 자신의 하얀 날개를 그의 이마 위에 편다. 그리고선 죽음이 왕에게 찾아와 당신은 단지 당신의 성의 하숙객에 불과하고 난공불락의 방은 영원한 휴식에로 가라앉는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그 아무도 나이든 왕이 자신의 영혼의 세상 끝에서 혼자 있고 싶어하는 것에 불경스럽게 들어와 세속화시키지 못했다.


     이러한 우화를 마치며 프로스페로는 라틴 아메리카의 젊은이들에게 그들의 내면세계도 늙은 왕의 성채처럼 굳건히 하여 오직 고요한 진실만을 받아들이고 불필요한 감정이나 실용주의적 이해관계에 자신의 내적 성채를 내어주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 왕의 성채는 고도로 다듬어진 장식으로 인해 세계로부터 동떨어져 있다. 성채라는 은유 자체가 브라운 운동을 하는 공기처럼 자유로운 상태, 혹은 대화(목소리)를 교환하는 상태를 거부하는 방어적이고 배타적인 이미지를 지니게 한다. 이것이 진정 아리엘의 영감을 받은 프로스페로의 내면상태라 할 수 있을까? 이 상반된 모순은 『안티 오이디푸스』 3장 6절에서 8절에 걸쳐 소개되는 전제군주기계의 기재를 통해 설명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파도에 의해 조약돌처럼 정교해진 그의 명상은 그 어떤 종류의 욕망의 흐름도 초코드화해서 신이나 전제군주에게 종속시키는 아주 잘 정련된 전제군주기계 코드가 공고화되는 과정을 드러내는 은유적 표현이다. 그러한 편집증적 압축의 기재가 바로 성채, 조약돌 혹은 고행적 이기심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나 화려한 장식으로 가득 찬 성채의 내부는 놀랍게도 비어 있었다. 조개의 껍질을 둘로 갈랐을 때 드러나는 것은 조개의 속살이 아니라 침묵과 그림자만이 스며드는 무(無)의 공간이었다. 라캉의 초월적 남근이 실재하지 않는 것처럼 들뢰즈와 가타리가 말하는 전제군주기계의 초코드화되어 이제는 초월적 의미를 지니게 된 신이나 전제군주의 편집증적이고 정교화된 코드의 내부는 비어 있을 뿐이다. 발터 벤야민은 바로크를 “허공에 대한 공포”라고 표현한 바 있다. 성당을 가득 매운 천사나 성인의 장식 혹은 화폭에 그 어떤 여백도 남겨 놓지 않고 빽빽하게 있는 형상들은 바로 허무와 죽음에 대한 공포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우화의 말미에 노쇠한 왕에게 인생의 덧없음을 깨우치는 죽음은 요새의 장식의 외면은 실상 빈 껍데기임을 가르쳐 준다. 관대한 왕의 내적인 성채는 바로 바로크적 중남미 자아의 자기방어적 표상이자 증상이다.

     이러한 방어기제는 요새의 안쪽에 비워있는 결핍의 둘레에 배치된다. 왕의 비어있는 방에는 억압되어 온 욕망의 대상의 허공 위에, 혹은 글쓰기로 인해 아물어지지 않은 상처 위에 중남미 문화의 새로운 기표가 바로크적으로 장식화된다. 하지만 여전히 방은 비어있다. 아리엘은 공기 속으로 사라지고 육화된 아리엘은 프로스페로(로도)의 중남미에 대한 채워지지 않는 소망과 정치적 무의식의 반영으로 반사되어 나타나 20세기 초 젊은 중남미 독자들의 내면의 성채에 장엄하게 새겨진다. 그러나 그 성채의 벽은 양피지와 같아서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기고 새로운 글쓰기(각인)를 혹은 새로운 기표의 탄생을 기다리고 있었다.


III.

     세기말의 다리오의 코스모폴리스와 로도의 아리엘의 섬이라는 이상주의적인 유토피아는 1930년대 들어 중남미의 근대화 과정에서 보호무역과 대체산업정책의 실패로 신식민지 자본주의체계가 강화되면서 비판받는다. 이러한 소극적인 정신적 귀족주의는 더더욱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예속상태가 심화되는 미국에 대해 아무런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인식이 중남미 지식인들 사이에서 팽배해진다. 이것은 중남미와 미국이 신대륙 발견 이후 유럽 르네상스적 유토피아라는 상상력의 산물이라는 동일선상에서의 출발 후 엇갈리게 되는 운명과 관계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로도는 미국이 생명력이 가득 차고 건전한 노동윤리를 지니는 훌륭한 민주주의 사회이지만 협소한 실증주의와 배금주의로 타락한 것으로 진단했었다.

     로도는 이를 헬레니즘적 우아함과 카톨릭적 영성주의으로 결합된 예술과 이상주의의 후계자로서의 중남미와 차별화시킨다. 분명 논리상으로 미국은 같은 프로스페로의 노예 신분이었던 칼리반이어야 했다. 물론 이것은 사르미엔토의 ‘문명과 야만’이라는 해묵은 19세기 중남미의 주요테제를 따르고 있지만 반미적 그리고 반실용주의라는 점에서 철저히 반사르미엔토적이다. 19세기 초 독립 이후 절대적 군주제와 반종교개혁의 스페인의 잔재를 벗어내려 앵글로색슨적인 민주체제와 실용주의를 도입하려 했는데, 그 도입에 무리가 따랐고 실용주의의 상징 미국이 중남미 전체에 가장 큰 위협의 대상이 되면서 복고적인 스페인을 포함한 정신주의와 카톨릭 정신을 다시 강조하기에 이르게 것이다. 로도의 아리엘은 분명 남유럽적인 것이었고 중남미의 꿈과 희망은 지중해 그 어딘가에 표류하고 있었다.

     앞 소절에서 언급한 『아리엘』의 전제군주적인 코드와 수사는 동료이자 형제인 칼리반의 성장과 위협에 유럽이라는 아버지의 친자관계 혹은 문화적 상속권을 보장받으려는 로도의 편집증적 욕망이다. 그러나 세계대전을 거치며 유럽의 프로스페로로서의 권위와 위용은 사라지고 르낭의 상상대로 미국이 이제는 새로운 주인의 위치를 점하게 된다. 칼리반이 프로스페로의 위치에 올랐다. 아리엘은 칼리반을 양부(養父)로 받아 들여야 할 것인가? 그리고 메스티소와 인디오 그리고 흑인이 상당수를 차지하는 중남미가 진정 아리엘이라 불릴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들은 응당 제기될 수 있는 물음들이었다.

     1950년대에 들어서 에이메 세자르(Aimée Césaire)와 프란츠 파농(Franz Fanon)이라는 두 명의 프랑스령 카리브 출신의 작가가 셰익스피어의 『태풍』을 다시 해석하게 된다. 파농은 마노니(O. Mannoni)의 『프로스페로와 칼리반』(Prospero and Caliban: Psychology of Colonization)을 재해석하며 프로스페로를 식민주의자로 칼리반을 가난하고 착취 받는 피식민자로 본다(파농, 107-110). 세자르는 셰익스피어의 『태풍』의 결말 부분과 르낭 텍스트의 결말과는 또 다른 결말을 그려낸다. 칼리반은 탈식민지화의 과업을 이루기 위해 섬에 남아 프로스페로와 결투를 벌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아리엘이 로도가 생각하듯이 자유로운 영혼을 상징하지 않고 단지 프로스페로의 하수인에 불과하다고 본다.

     이러한 지적 흐름의 연장선상에서 쿠바의 시인 로베르토 페르난데스 레타마르(Roberto Fernández Retamar)는 1971년에 쓴 『칼리반』(Calibán)에서 이 불쌍한 노예가 중남미를 대변하는 상징이라고 밝힌다. 1971년은 로도가 태어난 지 100년이 되는 해였다. 그가 남미의 문화적 코스모폴리스인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꿈꾸었던 이상세계는 아바나에서 혁명 이후 쿠바의 문화지도자인 페르난데스 레타마르에 의해 전혀 다른 역사적이고 지역적 문맥에서 수정된다.

     카리브(Caribe)해의 섬들은 콜럼버스가 첫 번째 항해에서 처음 당도한 곳이다. 그가 처음 본 아라왁 부족은 그가 보기에 무척 온순하여 그는 인디오와의 첫 대면에서 그들을 ‘선한 야만인’(buen salvaje)으로 묘사한다. “부모가 그들을 낳아 준 그대로 벌거벗었던” 그들은 스페인인들에게 친절했고 착하고 온순해 보였다. 서구인들이 꿈꾸던 자연과의 조화 속의 무위(無爲)적 삶을 구현하던 황금시대(La Edad del Oro)가 바로 콜럼버스의 눈앞에서 구현되고 있었던 것이다. 마르코 폴로의 텍스트와 성서에서 계시적으로 느껴졌던 유토피아적 세계에 대한 그의 묘사는 1580년 출간된 르네상스 인문주의자 몽테뉴의 『카니발에 대하여』(On Cannibals)를 거쳐 훗날 프랑스 낭만주의자들에게 이국적인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칼을 보고 신기해하던 인디오가 그것을 꽉 쥐어 손을 베는 것을 보자 콜럼버스는 인디오들의 순진무구함과 동시에 그들은 손쉽게 정복할 수 있는 대상임을 확인시키는 계기가 된다. 그는 인디오 남성을 만세보(mancebo, 청년이라는 뜻)라고 표현한다. 이 용어를 선택한 것은 그들의 젊은 육체적인 아름다움을 기술하고 이를 이상화시키는 역할을 하지만 또한 ‘만세보’는 성적으로 불완전한 남성과 도덕적으로 덜 성숙한 남성이라는 함의도 가지고 있다. 코바루비아스(Covarrubias)사전에서는 만세보를 아직도 아버지의 권위 아래 놓여 있는 남자아이로 스페인사람의 이러한 아버지로서의 시각은 명백하다. 아라왁의 열등함은 스페인의 우둔함과의 관계 속에서 정의되고 있으며, 이는 애초에 관대한 후견인으로서의 스페인의 위치를 스스로 드러낸다. 제독은 인디오들을 처음 보고 그들이 아무런 종교가 없기 때문에 쉽게 기독교인이 될 것이라고 기술한다. 인디오의 의식 상태는 백지(tabula rasa)와 같아 단지 왕실의 황공한 스케치만 기다릴 뿐이라는 논리는 인디오라는 자아(유럽문화)의 투사를 기다리는 결핍의 타자(인디오)라는 문화 제국주의적 심리적 기재에서 출발한다. 즉 타자(인디오)는 나(콜럼버스)의 욕망의 대상으로 기능할 뿐이다. 그러나 라캉이 갈파하듯이 나(콜럼버스)의 욕망은 타자(스페인 왕실)의 욕망의 반영일 뿐이다. 마노니는 백인의 식민주의가 실은 아들러적 의미의 과잉 보상, 다시 말해 자신의 불만감을 종식시키고자 하는 욕망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파농, 109). 만일 그러한 온순한 타자가 아닌 프로스페로가 자신의 딸 미란다를 겁탈할까 봐 겁냈던 칼리반같은 난폭한 타자가 나타난다면, 그러한 존재는 트링쿨로가 칼리반을 처음 보고 물고기인지 괴물인지 모르겠다고 표현한 것 이상의 두려움의 존재일 것이다. 기이한 타자를 본 주체는 어떻게 대상을 내면화하고 표현하는가?

     다시 콜럼버스의 『항해일지』로 되돌아 가보면, 그가 명명한 카리브해는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용맹하고 사나운 카리브 부족에서 따온 말이다. 그가 처음으로 발견한 지금의 도미니카 공화국에 해당하는 한 섬에 당도하여 온순한 아라왁 족을 만나고 열대 섬의 울창한 자연경관을 보고 그는 세계가 여성의 가슴 형태를 지니고 자신이 발견한 섬은 유두(乳頭)에 해당한다고 기술한다. 그는 금을 찾아 섬 주위를 항해할 때 식인풍습을 행하고 눈이 하나인 카리브족이 존재한다는 정보를 얻게 되었다고 1492년 12월 4일자 일지에 적는다. 12월 11일자 일기에는 그 기이한 식인종 이름 카니바(caniba)와 몽고황제 칭호인 칸(Can)과 연관지으며 자신이 동양에 왔다는 것을 확신하는 기이한 환유적 상상을 하기도 한다. 다음해 2월 15일자 일지에는 “나는 드디어 그들이 사는 섬을 발견했는데 그들은 괴물은 아니었으나 사람의 육신을 먹는 잔인한 사람들이다”라고 기록한다.

     태풍에 의해 그의 항해가 순탄치 못할 경우에는 갑자기 자연과 아라왁이나 카리브를 불문하고 인디오들이 그의 생존을 위협하는 적대적인 존재로 바뀌어 표현된다. 서인도제도는 갑자기 메두사 같은, 사람을 잡아먹는, 길들어지지 않는 까다로운 여자로 변한 것이다. 서인도제도라는 기호를 여성화하고 에로틱화하는 것은 이상화시키면서 동시에 두려워하고 모욕하는 두 개의 상반된 작용으로 기술된다. 그렇기에 자신이 항해한 바다의 이름은 타이노(아아왁의 스페인어 표현)해가 될 수 없었고 카리브해로 지어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적인 불평등한 가치가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분법에 세워진 문화 경제에서 여성의 에로틱화는 욕망과 경멸 이 두 가지를 동시에 내포한다. 선한 야만인(buen salvaje)으로 대표되는 콜럼버스의 인디오에 대한 모순적인 정신분열증은 여성의 가슴의 이미지가 제공하는 에로틱한 글읽기를 통하여 분리됨이나 모순 없이 동일한 담론의 영역에 머물게 한다. 프로스페로에게 아리엘이나 칼리반은 모두 그의 귀향과 권력의 회복이라는 욕망을 달성하기 위한 식민지에서의 대리인들이다. 그가 고향에 도달할 때 섬에서의 그 모든 것은 꿈의 산물이다라고 말한다. ‘선한 야만인’이란 신화 혹은 아라왁이나 카리브에 대한 상반되는 지극히 주관적인 기술, 자연에 대한 변덕스러운 묘사, 그 모두는 콜럼버스의 욕망의 실현을 위한 환상적인 기재였을 뿐이다.

     프로스페로 역시 변형과 변용의 마술로 상대방을 압도할 뿐 아니라 그의 회유와 위협을 통한 말솜씨로 아리엘과 칼리반을 노예화시킨다. 그러나 그것은 프로스페로에게 ‘거친 마술’(rough magic)일 뿐이며 밀라노에 돌아가기 앞서 자신이 예전에 밀라노 공국의 정사를 소홀히 하면서까지 연구했던 그 마술을 포기하며 그의 책들을 덮는다. 심미현은 셰익스피어가 마술에 의해 다양하고 신비한 초인간적 변형을 통해 인간의 내면적인 변용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그것을 르네상스 시대에 보편화되었던 존재의 대연쇄라는 보다 더 거시적인 차원에서 풀이하면서,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뛰어넘어 신의 아이덴터티를 가장하려고 할 때 불가피하게 뒤따르는 한계라고 본다. 유토피아란 이러한 인간의 꿈이 투사한 에덴 동산과 같은 존재의 조화로운 대연쇄(harmonious great chain of being)가 이루어지는 가상(假想)의 세계이다. 유토피아가 존재하지 않는 장소라는 의미를 지닌다면, 유토피아에 사는 아리엘/칼리반 혹은 아라왁/카리브 역시 존재하지 않는 정령 혹은 사람들의 표상일 뿐이다.

     그러나 그 표상이 얼마나 허구적인가를 논하기 앞서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사실은 유토피아적 기획과 환상이 어찌되건 간에 신대륙은 존재하고 아프리카 흑인들이나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인디오)들은 프로스페로의 환상적이고 신비스러운 꿈이 끝난다 하더라도 사라지지 않는 섬의 주인들이라는 점이다. 칼리반(Caliban)은 식인종(anthropophagus)을 뜻하는 '카리브‘에서 유래하는 카니발(cannibal)의 철자 바꾸어 쓰기(anagram)의 한 예이다. 이것은 식민주의자가 피식민자를 강등시키려 하고 차별화 하려는 권력의 산물이다. 칼리반은 자신의 이름과 언어를 자신의 몸을 구속하는 정복자에게 부여받는다. 그는 조지 래밍(George Lamming)이 보듯이 프로스페로가 준 언어와 문화의 굴레 속에서 벗어 날 수 없는 문화적 식민주의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109)가 아니다. 오히려 그는 말콤 X의 X처럼 이름 지워지기를 거부하는 즉 타자에 의해 정체성을 부여받기를 거부하는 자이며 주인이 가르쳐 준 언어로 주인에게 대항하는 자이다. 페르난데스 레타마르는 쿠바의 독립전쟁과 쿠바혁명의 의미가 바로 제 1세계에 대한 칼리반적인 저항에 있다고 본다. 그러면서 그는 피델 카스트로가 행한 히론 해안(Playa Girón) 전투 10주년 기념 연설문을 인용한다.


정확히 말해 우리는 아직도 이름을 지니고 있지 않다. 그것이 라틴아메리카이건 이베로아메리카이건 인도아메리카이건 우리에게 합당한 이름을 부여받지 못했다. 제국주의자들에게 우리는 단지 무시 받고 천한 사람들일 뿐이다. 적어도 우리는 지금까지 그래왔다. 하지만 히론 전투 이후부터 그들은 생각을 바꿨다. 이제 크리오요이고, 메스티소이고, 흑인이건 간에 단지 라틴아메리카 사람이면 그들에게 인종적 (공포와) 멸시의 대상이다.


     페르난데스 레타마르가 중남미가 처한 조건을 칼리반적이라고 보았을 때 “태풍”의 또 다른 주인공은 아리엘이 아니라 프로스페로이다. 아리엘/칼리반이라는 이중구도는 없는데, 둘 다 외국인 마술사인 프로스페로의 노예이기 때문이다. 공기의 생산물 아리엘이 지식인의 전형이라면, 칼리반은 거칠고 좀처럼 지배당하기 힘든 섬의 진정한 주인이다. 헤겔의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의 지양(止揚)과정에서 주인은 노예와의 투쟁에서 그를 포섭(包攝)하고 보다 고양된 새로운 주체로 발전해 간다. 그에 비해 페르난데스 레타마르는 노예를 주체로 놓고 지양과정에서 비록 주인의 언어를 쓰게 되나 결코 포섭되거나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주체를 잃지 않는 과정, 즉 반(反)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을 보여준다.


IV.

     로도와 다리오가 모데르니스모의 선구적 위치에 있으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면 페르난데스 레타마르는 또 다른 모데르니스모 시인인 호세 마르티(José Martí)를 자신의 정신적 아버지로 삼는다. 마르티는 지금도 체 게바라와 더불어 쿠바의 정신적 우상인 쿠바 독립의 아버지이다. 다른 모데르니스모 시인들이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코스모폴리탄한 환경에서 시작(詩作)을 했다면 그는 정치적 이유로 뉴욕에서《라 나시온》(La Nación)이라는 아르헨티나의 대표적 일간지의 특파원 역할을 하며 쿠바 독립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그는 1891년에 쓴 기념비적인 수필 「우리 아메리카」(Nuestra América)에서 메스티소인 아메리카인들이 통합적인 문화적 공동체를 이루고 있고 다가올 미국의 위협에 맞서는 정치적 공동체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이는 19세기 초 중남미를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게끔 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해방자’(el libertador), 시몬 볼리바르(Simón Bolívar)가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 연방제를 통한 하나의 중남미 국가를 이루자는 중남미 통합주의(hispanoamericanismo)를 계승하는 것이었다. 그 후 그는 쿠바에 돌아가 1895년 독립전쟁 중 전사한다. 그의 글들은 한동안 잊혀지다가 쿠바혁명운동의 발발과 더불어 다시 읽혀지기 시작하였다.

     1994년 멕시코 치아파스에서 쿠데타를 일으킨 사파티스타 민족 해방전선(EZLN)의 마르코스가 멕시코 혁명 영웅 에밀리아노 사파타의 정신을 계승한다고 천명하듯이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는 호세 마르티를 혁명의 정신적 대부로 삼았다. 그러한 문화운동의 지도적 위치에 있는 페르난데스 레타마르는 보르헤스와 잉카가 무슨 관계가 있냐고 반문하며 호세 마르티야말로 비록 그의 부모는 스페인 이주민이지만 카리브와 칼리반의 후예라고 천명한다. 마르티는 아스테카나 마야 등의 콜럼버스 이전의 원주민 문화를 복원하며 중남미 정통 문화를 이루려 하는 페르난데스 레타마르에게 중남미의 반식민주의자의 전형으로 비추어지고, 라틴문화를 복원하려 했던 로도나 미국의 피그만 침입을 지지하고 피노체트 문학상을 받은 보르헤스는 식민주의 지식인의 표상으로 비추어진다. 레타마르는 마르티의 「우리 아메리카」를 인용하며 프로스페로/칼리반의 논의를 다시 한번 발전시킨다. 그의 인용문은 다음과 같다.


유럽적인 대학은 아메리카적(중남미적) 대학에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 그리스의 아르고 배의 선원들(Argonauts)을 가르치지 않는다 하더라도 잉카에서 오늘에 이르는 아메리카의 역사는 완벽히 가르쳐야 한다. 우리는 그것을 필요로 한다. 외국의 식민주의자 대신 민족주의 정치인들로 채워야 한다. 세계는 우리의 공화국들에게로 이접(移接)되는데 그 큰 줄기는 우리의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정복당한 현학적인 체 하는 자들은 조용히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불행한 아메리카 공화국에서 잰 체 하는 자들은 이미 고국을 잃은 자들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프로스페로의 주입을 상징하는 유럽적인 대학을 거부하는 것은 즉 『아리엘』에서의 프로스페로의 목소리를 거부하는 것과 같다. 물론 「우리 아메리카」는 『아리엘』보다 일찍 씌워지고 마르티가 염두에 두는 비판 대상은 사르미엔토의 ‘문명과 야만’의 테제이다. 하지만 로도나 사르미엔토의 문화적 준거 대상은 미국이나 남유럽 같은 제 1세계라는 점에서 양자는 마르티의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마르티는 ‘문명과 야만’이라는 테제를 ‘거짓된 지식인과 자연’으로 수정한다. 즉 마르티와 사르미엔토는 ‘원주민주의’와 ‘반원주민주의’로 구분되어진다. 로도에게 있어 인디오들은 그의 염두의 대상도 아니었다. 마르티/페르난데스 레타마르와 사르미엔토/로도의 차이는 물론 출신지역의 문화적 정체성의 차이(쿠바와 아르헨티나/우루과이)에서 비롯된다. 쿠바의 인구구성에 있어 흑인과 메스티소의 수가 압도적인 반면 우루과이나 아르헨티나는 백인주의 국가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상이한 이데올로기와 시대적 배경을 지니는 지식인들에 의해 지역적 배경과 필요에 의해 투사된 문화 진단과 처방책이 지역과 시대적 조류로 머물지 않고 보편적인 중남미의 문화적 정체성으로 확대 재생산되는 데에 있다. 물론 이 사상가들은 자신의 관심의 대상을 지역이나 국가에 한정짓지 않고 중남미를 대상으로 하고 있는 데 있다. 물론 카리브해의 몇몇 국가와 브라질을 제외한 대부분의 중남미 국가들은 카톨릭 국가에 스페인어를 쓰고 식민과 탈식민 혹은 신식민이라는 비슷한 역사적 체험을 지니고 비슷한 문화적 동질감을 지니고 있다. 쿠바계 출신 라틴 팝 가수 글로리아 에스테반의 노래 ≪우리는 같은 언어로 얘기해야 합니다≫(Hablemos el mismo idioma)는 바로 이러한 라티니즘(Latinism)을 반영하는 마르티적인 노래다.

     그러나 1994년 예일대학에서 있었던 ”세기말의 라틴 아메리카(América Latina, el fin del siglo)"라는 주제로 벌어진 미국과 중남미의 중남미문학 전공자들이 모인 학술대회에서 다양한 문화의 혼재성(heteroglosía)에 입각한 바로크를 통해 중남미 문화의 정체성을 파악하려는 쿠바 출신 학자들과 그보다는 프랑스 철학자들의 이론을 선호하는 아르헨티나 출신 학자들간에 그 접점이 찾아지지 않는 논쟁이 있었다. 물론 이러한 지역적 차이 말고도 이데올로기 차이도 내재해 있다. 문학비평과 정치 혹은 시와 정치 사이의 연관관계는 생각보다 골이 깊었다. 물론 시나 문학비평의 이름으로 정치적 상이함을 뛰어넘어 통합적 유대감을 찾으려는 시도는 항상 있어왔다.

     이름과 예일대 중남미 문학교수였다는 공통점 외에는 이데올로기를 비롯한 여러 가지 점에서 반대 성향을 보이는 로베르토 페르난데스 레타마르와 로베르토 곤살레스 에체바리아가 《다이아크리틱스》(Diacritics)라는 코넬대학 주관의 문학지에서 벌인 대담은 쿠바 출신의 대표적인 두 비평가의 만남이라는 점에서 전공자들의 주목을 끌었다. 한 명은 프레드릭 제임슨이 중남미의 에드워드 사이드(Foreword, viii)라 불리는 혁명 정부 문화지도자이고 다른 한 명은 비록 맑시스트 중남미 문학 비평가인 닐 라르센(Neil Larsen)에 의해 “정치의식 없는 해체적인 예일 학파의 문학이론을 중남미 문학작품에 접목한다”는 비아냥을 감수해야 했지만 같은 학교 동료 해럴드 블룸(Harold Bloom) 등으로부터는 “현존하는 가장 뛰어난 스페인어권 문학비평가”라는 찬사를 받는 비평가이다.

     여기서 두 사람은 또 한 명의 예일대학 중남미 문학 교수인 에미르 로드리게스 모네갈(Emir Rodríguez Monegal)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회피한다. 이미 『칼리반』에서 페르난데스 레타마르는 “아리엘”의 코스모폴리타니즘과 모데르니스모 정신은 중남미 문화를 이해하는 데 시대를 초월한 의미를 지닌다고 보는 우루과이 비평가 로드리게스 모네갈을 제국주의의 하수인이라고 비판하며 그가 60년대 파리에서 주관하던 잡지 《신세계》(Nuevo Mundo)가 CIA로부터 자금지원을 받았다고 비난한 바 있다. 그 뿐만 아니라 그 잡지에 기고했던 멕시코 소설가 카를로스 푸엔테스(Carlos Fuentes)나 네오바로크 이론을 주창하고 쿠바로부터 망명해 텔켈(Tel Quel)그룹의 일원으로 활동하던 세베로 사르두이(Severo Sarduy)도 식민주의적인 작가라는 낙인을 찍는다. 물론 이러한 자신에 대한 인신공격에 로드리게스 모네갈도 페르난데스 레타마르가 에이메 세자르와 프란츠 파농의 텍스트를 쿠바 정부의 대변인의 입장에서 잘못되게 해석한다고 비난한다.

     곤살레스 에체바리아는 인터뷰 당시 로드리게스 모네갈과 같은 과 동료교수였고 그가 서구에 중남미문학의 전도사역할을 한 공적을 높이 사고 있었고 세베로 사르두이 역시 그가 따로 평론서를 낼만큼 좋아하는 작가였다. 두 로베르토 간의 인터뷰에서 곤살레스 에체바리아는 혁명시기의 페르난데스 레타마르의 서사적 시들과 『칼리반』같은 정치적 팜플렛이 세월이 지나 혁명이 제도화되면서 어떠한 내면적 변천을 겪게 되었냐고 질문한다. 이에 페르난데스 레타마르는 시적 진실과 혁명 정신은 상이한 역사적 현실에서도 살아남는다고 대답한다. 이에 곤살레스 에체바리아는 소위 부권적인 국가 주도 예술(L'Art D'étre grand-pére)이 근대성의 신화가 위협받는 오늘날 어떤 의미가 있으며 전통적으로 사회의 이단아 혹은 이교도(heretics)였던 시인들이 제도화된 사회주의 혁명정부에서도 이단아 역할을 할 수는 없는가라며 반문한다.

     이에 페르난데스 레타마르는 모더너티는 정의하기 나름이며 ”정통성(orthodoxy)안에 궁극적인 비정통성(ultimate heterodoxy)이 있다“는 체스터톤(Gilbert Keith Chesterton)의 말을 인용하며 혁명가와 시인은 동시적일 수 있으며 그것이 월트 휘트만(Walt Whitman)이 꿈꾸었던 또 다른 종류의 모더너티이며 이교도인 시인은 자신이 뿌리내린 현실 속에 침잠함으로써 자신의 이단성을 찾을 수 있다고 대답한다.

     페르난데스 레타마르는 1986년 「다시 돌아온 칼리반」(Caliban Revisited)이라는 산디니스타 혁명을 지지하는 글에서 1971년 시인 파디야(Heberto Padilla)를 반혁명 혐의로 기소했다가 그로 하여금 반성문을 쓰게 강요를 하고 풀어준 파디야 사건을 계기로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와 훌리오 코르타사르를 비롯한 중남미 지식인들이 ‘문화적 외국인 공포증’(cultural xenophobia)라며 쿠바로부터 등을 돌린 데 대해 유감을 표시한다. 물론 이미 고인이 된 로드리게스 모네갈에 대한 비판 역시 멈추지 않고 보르헤스를 보수적인 무정부주의자로 낙인찍는다. 그에게는 결코 타협이 없었다. 중남미적 보편 문학을 갈망하던 그는 역설적으로 세계(특히 서방세계)에서 중남미 문학의 가장 상징적인 인물들로 인정받는 작가들을 부정함으로써 자신의 좁아진 입지를 드러낸다. 여기서 쿠바 정부의 공식입장과 시인인 저자의 입장은 그 어떤 괴리 없이 표출된다. 이 글의 결말에는 이젠 고립위기에 처한 자신의 입장과 그가 대변하는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비장감이 스며있다.


‘제 3세계’라는 용어가 나를 거슬리게 하는 것이 있다면, 아마도 그것이 비자발적으로 우리를 비하시키는 의미를 내포한다는 것이다. 이제 곧 억압받는 자들이 승리하여 하나의 세계가 될 것이다. 우리 아메리카는 이러한 승리를 위한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태풍은 가라앉지 않았다. 하지만 『태풍』의 난파된 선원들인 크루소와 걸리버가 신대륙으로부터, 바다 속으로부터 솟구쳐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거기서 그들을 기다리는 건 프로스페로와 아리엘 그리고 칼리반, 돈키호테, 프라이데이와 파우스트 뿐 아니라 소피아와 올리베이라 그리고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이 마르크스와 레닌, 볼리바르와 마르티, 산디노와 체 게바라와 같이 역사와 꿈의 노정에서 기다릴 것이다.


     그의 소망은 더 이상 쿠바와 니카라구아를 비롯한 카리브 연안국들을 고립시키지 말고 세계의 일부분으로 보아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동구권의 몰락과 구 소련의 해체 후 사정이 더욱 악화된 1992년(이 해는 콜럼버스가 신대륙에 당도한지 500주년 되는 해이다), 그는 뉴욕 대학(NYU)에서 ‘500년 후에 칼리반이 말하다’(Caliban Speaks Five Hundred Years Later)라는 연설을 한다. 이번에는 그는 미국 학계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던 탈식민주의(Post-Colonialism)에 고무 받아 기존의 자신의 입장을 발전시킨다. 1492년부터 칼리반이 던져주는 스피박의 은유-개념(concept-metaphor)이 갖는 의미가 카리브해나 남미에서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인 뿌리를 갖는다는 것이다. 이는 서두에서 언급한 해방철학자 엔리케 두셀의 견해와 동일한 것이다. 이제 세계는 G7을 비롯한 소위 선진국과 저개발국으로 분리되고 저개발국에게 급격한 경제변혁을 요구하는 IMF를 위시한 신자유주의 물결이 전 세계 인구의 3/4에 해당하는 칼리반의 영토를 잠식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라는 마르크스의 선언은 1992년 마르크시즘을 신봉하던 세계의 몇 안 되는 국가의 문화지도자를 통하여 이념을 떠난 서방(North)의 신자유주의적 논리에 대항하는 칼리반(South)의 단결로 변형된다. 이러한 단결은 시적 상상력 속에서 그리스인들이 아나그노리시스(anagnorisis)라고 말한 참된 재발견으로 전인류를 이끈다고 밝힌다. 그에게 마지막 남은 희망은 이러한 상상의 힘이었다. 그는 “역사는 우리들이 갖는 것보다 더 큰 상상력을 가졌다”는 마르크스의 말과 “상상력은 지식보다 더 중요하다”는 아인슈타인의 말을 인용하며 연설을 마친다.

     곤살레스 에체바리아나 로드리게스 모네갈이 보듯이 페르난데스 레타마르의『칼리반』이 가지는 체제옹호적인 면은 우리가 살펴본 『아리엘』의 전제군주적 담론의 절정을 보는 듯하다. 사실 아리엘이나 칼리반이나 상상적 공동체(imagined community)를 이루려는 유토피아적 담론이다. 그들은 ‘아리엘’이나 ‘칼리반’이란 기표를 중남미인들에게 각인시키며 중남미 지성사에 있어서 중요한 이정표를 그리는 것도 사실이다. 동시에 그 강력한 각인 때문에 그들이 모데르니스모 작가이자 시인임에도 불구하고 교조적이고 배타적이라는 오명을 쓰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1992년 페르난데스 레타마르의 연설문을 보면 그의 입장이건 쿠바 정부의 공식 입장이건 간에 전지구적으로 볼 때 국제정세의 변화 때문인지 몰라도 그들의 담론은 전체주의적 교조주의를 떠나 이교도적이고 비정통적인 시인의 담론으로 변모되었음을 볼 수 있다. 결국 페르난데스 레타마르가 궁극적으로 추구한 것은 이론적 틀이 아니라 시인의 상상력이었다. 『칼리반』과 그 후속 텍스트들은 정치적 팜플렛이지만 그 자체가 하나의 완벽한 자서전적 소설의 시리즈 물이다. 그가 어릴 때 타잔 영화에 분노하는 것이나 할렘에서 콜럼비아 대학생이 되길 꿈꾸었던 것이나, 시인으로 성공하여 그 대학의 교수직 제의를 쿠바 혁명 소식을 듣고 거절한 것이나, 시인에서 혁명정부의 문화운동가로 교조적으로 변모한 것이나, 자신과 동지들의 실패한 프로젝트 속에서도 시적 상상력을 추구한 것이나, 그 모든 것이 어느 한 실천적 시인의 생의 궤적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리엘이란 미적 유토피아의 부정과 그 부정에 섰던 페르난데스 레타마르의 삶의 궤적은 중남미 문화의 대변인으로서의 지식인의 소멸을 보여주는 지도 모른다. 다시 페르난데스 레타마르가 나중에 의지한 시적 상상 혹은 환상에 대한 증후군은 그 어떤 배타적인 전제군주적인 기재보다 더 생산적인 기재이다. 그것은 지식인에게 자기의 존재기반이나 입장을 뿌리 채 뽑아내고 보다 생산적인 방향으로 자신을 상상하는 것을 제안한다. 물론 그것이 신자유주의를 공고화하는 비정치성이나 타협을 의미하는 바는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세계체제 내에서의 탈주의 효과적인 기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추구가 계속될 때 아리엘과 칼리반은 서로 조우하여 통합적인 상상의 공동체를 이루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