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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드보일드 소설과 새로운 문학적 가능성... / 송병선 2003-10-22 / 5149   

하드보일드 소설과 새로운 문학적 가능성:
지아르디넬리의 『뜨거운 달』

송 병 선



1. 추리소설과 라틴아메리카 현대문학


멤포 지아르디넬리     1980년대 이후 라틴아메리카의 문학은 1960년대와 1970년대 전 세계를 강타했던 ‘붐’ 문학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보르헤스와 가르시아 마르케스, 그리고 푸엔테스와 바르가스 요사로 대표되는 ‘붐’ 문학이 소설 형식의 혁명을 추구하면서 라틴아메리카의 현실과는 멀어진 것과는 달리, 80년대 이후에 글쓰기를 시작한 ‘포스트 붐’ 작가들은 군사독재로 얼룩진 그들의 현실을 그리면서 기성 권력에 도전하는 현실 비판의 문학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그들은 19세기 리얼리즘 형식을 따라 철학적이고 근엄한 어조의 ‘팜플렛 문학’으로 현실을 비판한 것이 아니라, 추리 소설 특히 미국에서 발전된 하드보일드 소설의 모델을 변형시키면서 자국의 현실을 비판적 관점으로 되돌아본다.

     물론 라틴아메리카 현대 문학사를 살펴볼 때 이런 젊은 작가들이 처음으로 추리 소설의 기법에 관심을 보인 것은 아니다. 보르헤스의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이나 「죽음과 나침반」 혹은 「배신자와 영웅의 논고」와 같은 작품들은 추리 소설의 기법을 사용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보르헤스를 위시한 60년대와 70년대의 ‘붐’ 작가들의 추리소설은 현실과의 직접적인 접촉을 피하면서 현실에 의문을 던지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유럽 문학의 모델을 사용했던 것이지, 라틴아메리카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포스트 붐’ 세대라고 일컬어지는 작가들에 의해 새로운 성격을 획득하게 된다. 그들은 전통적으로 저급한 문학으로 취급되었던 추리소설(특히 하드보일드 소설)과 그것에서 파생된 서스펜스 소설 속에서 자신들의 암울한 현실을 그릴 수 있는 도구를 발견했던 것이다. 특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칠레 작가들은 70년대와 80년대에 군사독재의 억압을 받는다. 그들은 군사 독재를 피해 망명을 해서 글을 써야만 했다. 그들은 작품을 통해 권력의 전횡을 묘사하면서, 자기 조국의 제도화된 폭력의 문제를 살피고자 했다. 그리고 이런 문제를 보다 효과적으로 서술할 수 있는 장르가 바로 추리소설임을 깨달았던 것이다. 오스발도 소리아노(Osvaldo Soriano), 세르히오 시나이(Sergio Sinay), 리카르도 피글리아(Ricardo Piglia), 마누엘 푸익(Manuel Puig), 루이사 발렌수엘라(Luisa Valenzuela), 앙헬리카 고로디셔(Angélica Gorodischer), 멤포 지아르디넬리(Mempo Giardinelli), 로베르토 볼라뇨(Roberto Bolaño)와 같은 라틴아메리카 작가들이 이런 장르를 선호하면서 발전시킨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소설의 축이 범죄와 권력 남용, 폭력과 죽음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2. 알려지지 않은 젊은 영원한 반항아: 멤포 지아르디넬리

     1993년 제 8회 로물로 가예고스 소설상은 『기억의 성사(聖事)』(1991)를 쓴 아르헨티나의 멤포 지아르디넬리에게 돌아간다. 베네수엘라 정부가 1967년에 이 상을 제정하고 첫 수상작품으로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색시집』(La casa verde)을 선정한 이후, 지금까지 이 상을 받은 작품으로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Cien años de soledad), 카를로스 푸엔테스의 『테라 노스트라』(Terra Nostra) 등이 있다. 라틴아메리카 최고의 문학상이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아르헨티나 작가인 멤포 지아르디넬리에게 돌아갔다는 소식은 라틴아메리카 현대 문학 비평가들을 적지 않게 놀라게 했다.

     그러나 로물로 가예고스 상만이 비평가들을 놀라게 한 것은 아니었다. 1983년 7월 멕시코 문학계에는 전례 없는 일이 일어났었다. 멕시코 국립 예술원이 매년 수여하는 멕시코 국가소설상이 처음으로 외국 작가에게 수여되었던 것이다. 수상 작품인 『뜨거운 달』(Luna caliente)은 흔히 추리소설(black novel)로 비평가들과 작가들이 과소 평가하던 장르였다. 당시 아르헨티나의 차코 출신의 이 젊은 소설가는 1976년부터 멕시코에 거주하면서 기자로 활동하면서 명성을 얻고 있었다. 그리고 스페인과 미국에서는 그의 작품이 출판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조국에서는 군사독재동안 ‘전복적’이라는 이유로 금지되어 있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군부 통치자들이 멤포 지아르디넬리의 작품을 ‘전복적’이라고 규정한 것은 일리가 있는 지적이었다. 왜냐하면 실제로 그 작품은 그런 효과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1983년에 아르헨티나에 민주주의 정부가 들어서고, 그는 9년 간의 멕시코 망명 생활을 청산하고 조국으로 귀환한다. 이후에도 멤포 지아르디넬리는 전통적이 미학 규범을 탈피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실존과 사회의 문제를 지적하는 새로운 문학 형식을 찾는 영원한 반항아였다.

     그럼 ꡔ뜨거운 달ꡕ을 쓴 멤포 지아르디넬리는 누구일까? 그는 1947년에 아르헨티나의 차코 지방의 수도인 레시스텐시아에서 태어났다. 그의 출생지를 여기에서 언급하는 이유는 지금까지 출판된 그의 작품은 모두 바로 이 지역을 무대로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아르디넬리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화려한 번화가인 코리엔테스 거리보다 이런 소외된 지방을 더욱 중시한다. 그는 노르데스테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으며, 아주 젊었을 때부터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1976년에 첫 번째 소설인 ꡔ왜 서커스를 금지했을까?ꡕ를 쓰지만, 이 소설은 아르헨티나 군사 독재에 의해 검열 당하면서 금서로 지목된다. 이 사건으로 인해 당시 정치와 노동조합 운동에 관여하던 그는 조국을 버리고 멕시코로 망명한다. 그곳에서 그는 중남미 소설의 거장인 환 룰포를 비롯한 중남미의 대표적인 문인들의 도움을 받아 작품 활동을 계속하고, 대학 강의와 멕시코의 주요 일간지인 《엑셀시오르》의 칼럼니스트로 생계를 유지한다. 그는 군사 독재가 끝난 1985년에 아르헨티나로 귀국하고, 1985년부터 라틴아메리카 현대 소설의 메카라고 불리는 쿠바의 문예지《아메리카의 집》에서 주최하는 문학상의 심사 위원으로 일한다. 그리고 1993년에는 중남미의 노벨 문학상이라고 불리는 ‘로물로 가예고스’ 상을 수상한다.

     그가 쓴 소설로는 ꡔ자전거 혁명ꡕ(1980), ꡔ현재의 천국ꡕ (1981), ꡔ왜 서커스를 금지했을까?ꡕ(1983)와 ꡔ뜨거운 달ꡕ(1984), ꡔ죽은 사람들만 남았을 뿐ꡕ(1985), ꡔ기억의 성사ꡕ(1991), ꡔ불가능한 균형ꡕ(1995), ꡔ열 번째 지옥ꡕ(1999) 등이 있으며 작품집으로는 ꡔ모범적인 삶ꡕ(1982) ꡔ하느님의 벌ꡕ(1993)이 있다. 그리고 에세이집으로는 ꡔ추리소설ꡕ(1984) ꡔ이상한 나라ꡕ(1999)가 있다. 또한 멕시코의 이베로아메리카 대학에서 강의를 하며(1977-1984), 귀국한 후 라플라타 대학 교수로 일한다(1989-1994). 그리고 미국의 버지니아 대학(1997)과 게티스버그 대학(1998), 플로리다 주립대학(1999)에 초빙되기도 한다.


3. 하드보일드 소설과 ꡔ뜨거운 달ꡕ

     멤포 지아르디넬리의 ꡔ뜨거운 달ꡕ은 파리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라미로 베르나르데스가 고향인 아르헨티나의 차코 지방의 레시스텐시아로 돌아오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는 8년 만에 돌아오지만 자기의 내면에 잠자고 있던 폭력적 본능이 모습을 드러낼 것이며, 그런 이유로 자기가 두려움과 놀라움의 포로가 되어 살게 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귀국 사흘째 되던 날 그는 레시스텐시아 인근의 폰타나에 있는 브라울리오 테넨바움 박사의 집에 저녁 식사를 초대받는다. 그리고 그곳에서 테넨바움 박사의 딸인 아라셀리를 알게 된다. 저녁 식사 내내 그녀는 너무나 매력적인 눈으로 그를 뚫어지게 바라본다.


뜨거운 달

▶ 그림 설명: 영화 《뜨거운 달》의 한 장면


     그런데 라미로는 차가 고장나 하는 수 없이 그 날 밤을 테넨바움 박사의 집에서 머물게 된다. 그러나 아라셀리의 우수에 잠긴 듯 하면서도 유혹적인 눈을 잊지 못해 라미로는 분별력을 잃고 그 날 밤 그녀를 강간하고 그녀의 침실에서 그녀를 살해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생각이었을 뿐 아라셀리는 죽은 것이 아니었다. 아라셀리가 죽었다고 생각한 그는 테넨바움 박사의 집에서 도망치려고 하지만, 술에 취해 집밖을 어슬렁거리던 테넨바움 박사와 마주친다. 라미로가 자기 딸의 방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던 그는 술집에 가서 술을 마시자고 권한다. 두 사람은 차를 타고 레시스텐시아로 떠나고, 도중에 라미로는 술 취한 테넨바움 박사와 대화를 나눈다. 그러면서 테넨바움 박사가 아라셀리의 방에서 있었던 일을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자 그는 테넨바움 박사를 죽이고, 그를 운전석에 앉힌 다음 강으로 차를 떨어뜨린다.

     그러나 다음 날 죽은 줄만 알았던 아라셀리가 그의 앞에 나타난다. 이후 라미로는 테넨바움 박사의 살인 용의자로 경찰에 구속된다. 그러나 아라셀리가 알리바이를 조작해주는 바람에 구사일생으로 살아난다. 아라셀리는 내면에 감추어진 색정을 다시 드러내고, 라미로는 과격하게 그녀와 사랑을 하던 중 다시 아라셀리를 죽이게 된다. 그리고 경찰의 추적을 피해 파라과이의 아순시온으로 도피한다. 하지만 아르헨티나 경찰에 인도되기 위해 파라과이 경찰을 기다리는 동안 전화벨이 울린다. 그를 찾아온 여자는 나이 어린 아라셀리였다.

     ꡔ뜨거운 달ꡕ은 1984년 아르헨티나에서 25주간 계속해서 베스트셀러 목록에 포함되면서 그 해 가장 많이 팔린 책 중의 하나가 된다. 그리고 후에는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이것은 『뜨거운 달』이 독자를 작품 속으로 유혹하는 ‘스릴러’임을 증명한다. 독자들은 하나같이 32세의 변호사이며, 파리에서 8년 간 공부를 한 후 고향 차코로 돌아온 라미로와 13살의 아름다운 소녀의 거스를 수 없는 매력 사이에서 일어나는 ‘위험한 정사’에 매료된다. 이런 뜨거운 사흘 밤 동안에 라미로는 일련의 살인을 저지르고, 아르헨티나 사회에 복귀하면서 가졌던 모든 꿈을 파괴하게 된다.

     언뜻 보면 이 작품은 통속적이기 그지없는 하드보일드 소설이다. 그러나 멕시코 국가소설상 심사위원들은 지아르디넬리의 과감한 창조력을 높이 평가한다. 라틴아메리카의 저명한 평론가이자 심사위원이었던 노에 히트릭은 “소설을 어떻게 써야 하느냐에 관한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으며, 전통적 양식에 도전하는 새로운 문학 실험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이런 이유로 상을 받아 마땅하다”라고 평한다. 추리 소설의 독자는 『뜨거운 달』에서 분명히 전통적인 추리 소설적 요소를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즉, 폭력과 범죄와 수사, 그리고 섹스와 죽음이 나타나고, 절제된 언어와 짧은 구성을 통해 서스펜스를 유지하면서 긴박하게 전개된다.

     그러나 이 작품이 하드보일드 소설의 전통적 요소를 그대로 답습했다면 이런 평가를 받지 못했을 것이다. 이 작품에는 독창적이고 새로운 요인이 여러 개 있다. 그 중에서도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뜨거운 달』이 하드보일드 소설의 전통적 요소를 지니고 있으면서 동시에 패러디를 통해 하드보일드 소설의 양식을 전복시킨다는 것이다. 또한 이 작품 속에서 우리는 하드보일드 소설이 허물어지고 있는 사회를 표현할 수 있는 문학 장르로 다시 자리매김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살펴볼 수도 있으며, 그것을 통해 ‘포스트붐’ 세대들이 왜 이런 장르에 집착하고 있으며, 최근에 많은 문학상을 수상하고 있는지도 알 수 있다.


4. 하드보일드 소설의 패러디와 정치성

     『뜨거운 달』은 멤포 지아르디넬리가 추리소설에 대한 그의 관심을 처음으로 작품화한 것이다. 추리소설은 그가 젊었을 때부터 매료된 장르였다. 당시 레이몬드 챈들러, 제임스 카인, 대쉴 하메트과 같은 미국 작가들의 하드보일드 소설이 아르헨티나 젊은이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그들은 권위적인 체제와 인물을 허물어뜨리기 위한 불경한 행동으로 그런 문학장르를 수용했다. 하드보일드 소설에 대한 지아르디넬리의 관심은 1980년에 멕시코의 유력 일간지 《엑셀시오르》(Excelisior)의 문화면에 에드문도 발데스(Edmundo Valdés)와 함께 탐정소설 칼럼을 연재하면서 가시화된다. 그리고 1984년에 이 칼럼 중의 몇 편의 글이 『추리소설』에 수록되는데, 여기서 지아르디넬리는 추리소설을 비평가들이 “부당하게 소외시킨 문학의 흐름”이라고 소개한다.

     1980년대 초반에 그는 신문 칼럼니스트로서 하드보일드 소설 장르를 연구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작품에서 이것을 실험한다. 『모범적인 삶』(Vidas ejemplares)이라는 단편 모음집 중에서 「그 작자」, 「안드레스 로페스의 산책」은 탐정 소설에 대한 그의 관심을 반영한다. 사실 처음에 『뜨거운 달』도 이 단편집의 일부를 구성할 예정이었지만, 마지막 순간에 지아르디넬리는 이 작품집에서 빼버린다. 그것은 “이 작품은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아르디넬리는 항상 추리소설을 쓰고 싶었다고 말하면서 “『뜨거운 달』은 탐정 소설 이상의 것이다”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몇 년 후 『단지 죽은 사람들만 남았을 뿐』(1985)을 언급하면서, 지아르디넬리는 “『뜨거운 달』은 탐정소설이면서 동시에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라고 되풀이해서 말한다. 사실 이 두 소설은 추리소설 기법을 따르고 있지만, 기존의 추리 소설이 닫힌 작품인 것과는 달리 이것들은 상이한 독서와 상이한 해석을 낳는 열린 작품으로 변화된다.

     『뜨거운 달』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은 한번 읽기 시작하면 눈을 떼지 못한 채 단숨에 읽혀버리는 책이다. 물론 추리소설적 전개가 독자를 유혹하지만, 이것은 단지 소설의 전개 차원에 한정될 뿐이다. 이 소설의 초점은 추리 소설적 줄거리가 아니며, 성에 대한 집착도 아니다. 그것은 권력의 유혹에 관한 탐구이며, 폭력과 죽음에 관한 성찰이다. 이 작품은 범죄이야기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일어난 시대와 현실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이런 경우 무대가 1977년 여름의 아르헨티나 차코 지방으로 설정된 것은 의미심장하다. 그 시기는 아르헨티나 전역이 군사 독재정권의 정책인 ‘국가재건운동’으로 뜨겁게 달구어져 있을 때였다.

    망명 작가가 자신의 추리 소설을 독재라는 상황 속에 설정했다는 것은 정치, 사회, 문학적 문제를 상정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독자는 그것들을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처음에 독자의 관심을 끄는 것은 이데올로기적 차원이 아니라, 추리소설적 요소이다. 이 작품은 처음부터 “그는 그런 일이 생길 줄 알았다. 그녀를 보자마자 그런 사실을 알았다”라고 서술하면서, 숙명적 어조를 띤다. 그리고 독자에게 라미로가 브라울리오 테넨바움 박사의 아름다운 딸을 눈여겨보는 순간부터 일련의 비이성적이고 잔인한 행위가 일어날 것임을 예고한다. 이렇게 정확한 언어와 빠른 이야기 전개를 통해 독자를 사로잡으면서, 이 작품은 탐정소설의 주요 주제를 상정한다. 즉 “인간은 사실 자기가 살고 있는 상황의 포로”라는 생각을 부각시킨다.

     자기 아버지의 옛 친구인 테넨바움 박사를 방문하여 그의 집에서 저녁을 먹은 지 닷새 후, 라미로는 아순시온의 허름한 호텔에 있다. 그곳에서 그는 아르헨티나 경찰에게 인도되기 위해 파라과이 경찰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다. 이 마지막 순간에 주인공의 자기의 가련한 상황을 주시하면서 자기가 어떻게 이런 지옥의 세계까지 오게 되었는지를 자문한다. “프랑스에서 대학을 졸업한 젊은 변호사였고, 행정법을 전공한 법학 박사였으며 곧 노르데스테 대학에 교수로 임명될” 라미로 베르나르데스가 어떻게 이내 강간범이며 살인자이고 쫓겨다니는 몸이 될 수 있었을까? 도대체 누구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보름달 때문인가? 아니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더운 밤 날씨 탓일까? 밤만 되면 순진한 소녀에서 갈증에 허덕이는 여자로 변하는 아라셀리 때문일까? 폭력과 죽음을 사랑하는 군부체제 탓일까? 아니면 자기도 모르는 내면 속에 숨겨진 어두운 마음 탓일까? 그러나 이런 질문은 아무런 해답도 얻지 못한 채 남는다. 그리고 아무런 희망도 없는 라미로는 출구 없는 연옥행을 선고받는다. 이 작품은 단지 “바로 이것이 그가 두려워하는 형벌이었다. 그의 형벌은 젊은 나이로 살아 있는 것이었으며, 이런 아무도 원치 않는 대지에서 죽기에는 너무 이르고 사랑하기에는 너무 늦어버린 것이었다”라고만 서술하고 있다.

     이렇게 지아르디넬리는 탐정 소설을 개척한 작가들과는 달리 아무런 해결도 제시하지 않는다. 이것은 범죄가 현재의 상태와 사회적 안정을 파괴하려는 역할을 띠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멜리아 심슨(Amelia Simpson)은 『라틴아메리카 탐정소설』(Detective Fiction from Latin America)에서 “전통적인 탐정 소설의 모델에서 범죄는 이상한 사건으로 일어난다. 즉, 통제되고 정돈된 사회 속에서 일탈현상으로 발생한다. 반면에 하드보일드 소설에서는 병들고 혼란한 사회의 징후이며 동시에 그런 사회의 부패로 폭력이 생긴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하드보일드 소설은 흔적을 따라 미스터리를 밝히는 것보다 도덕적으로 허물어지는 사회에 관한 탐구가 보다 근본적인 것으로 상정하고 있다.

     전통적인 탐정소설에서 경찰당국이 범죄를 해결하고 기존 질서를 회복하는 것과는 달리, 『뜨거운 달』에서 경찰들은 타락한 존재들이며, 진보와 질서와 통제라는 이름 하에 사회의 안전을 위협하는 존재들이다. 경찰들이 라미로를 심문하는 장면은 그들의 타락이 어느 정도인지를 잘 보여준다. 여기서 지방 경찰서장이 설명하는 것처럼 그들은 범죄나 정의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당신에게 분명히 설명하겠소. 우리는 당신이 테넨바움 박사를 살해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소. 그것을 검증하는 일은 약간 힘이 들겠지만, 그건 그리 중요한 게 아니오. 여기에서는 경찰이 무언가 증거를 들이대고 싶으면, 그 증거를 만들고 그것으로 그만이오.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소? 선생, 당신이 지금 파리에 있다고는 생각하지 마시오. 여기 우리는 전쟁중인 나라에 있소. 내전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그것도 전쟁이오.


     그리고 군인들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작가는 70년대 아르헨티나에서 군인들이 사람들의 삶과 죽음을 결정할 수 있는 힘이 있었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우리는 당신에게 많은 것을 바라고 있었오. 우리는 이데올로기에 전염되지 않고 잘 교육받은 사람들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오 (......) 당신은 학위나 뛰어난 학문 때문만으로 대학 교수에 임명되었던 것은 아니오. 우리 군대가 권력을 장악하는 동안에는 우리의 동의가 없으면 절대로 대학 교수로 임명될 수가 없소. 당신은 흔히 일컬어지는 비축 인력이 될 예정이었소. 그래서 우리는 당신에게 관심이 있었던 것이오. 심지어 당신 과거를 살펴봐도 하나도 흠잡을 것이 없었소. 이제 알겠소?”

     경찰들은 테넨바움 박사의 죽음에는 관심이 없고, 단지 그들이 교수후보로 선택했던 라미로, 즉 새로운 사회질서를 설립하기 위해 구축한 ‘비축 인력’이 그들의 계획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살인에 연루되었다는 점뿐이다. 그들은 라미로의 명성을 회복하여 후에 그를 조종하는 것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서장은 라미로가 고백하면 그 사건을 해결해주겠다고 말한다.

     그런데 만일 살인범죄와 수사가 『뜨거운 달』에서 부차적인 것이라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토도로프는 「탐정 소설의 유형학」이란 글에서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은 영어로 ‘후던잇'(whodunit)이라고 불리는 수수께끼 소설과는 다르다”라고 설명하면서, 주변 상황이 하드보일드 소설을 기존의 탐정소설과 구별되는 요소라고 지적한다. 추리 소설에 관한 글에서 지아르디넬리 역시 행위가 일어나는 상황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는 추리소설이란 독자에게 생각을 하게 만든다면서, “사실 범죄는 거울의 다른 면이다. 그것은 두려워 조심스럽게 숨기려고 하는 거울의 어두운 면”이라고 주장한다. 다시 말하자면, X-Ray가 우리 몸을 비추듯이, 추리 소설은 사회를 투사하며, 인간의 강박관념과 한계를 보여주는 내면의 텍스트란 의미이다. 그는 「왜 추리소설을 재평가해야 하는가」라는 글에서 “현대 추리소설은 효율적이고 진지하며 현학적인 ‘문명’의 내부를 투사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가장 훌륭한 현대 세계 문학작품과 동일하다”라고 덧붙인다.

     이런 점에서 하드보일드 소설은 저항과 사회비판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멤포 지아르디넬리는 개인의 범죄를 이용해 군사체제가 저지른 집단적 범죄를 점검한다. 군사독재 시절에 탐정소설을 쓴 아르헨티나 작가들에게 고문과 실종, 죽음과 공포, 부정과 부패는 이제 더 이상 허구적 세상의 재료가 아니라 현실이었다. 그리고 몇몇 작가들은 손수 그런 탄압과 부정을 직접 겪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포스트붐’에 속하는 아르헨티나 작가들은 전통적인 추리소설의 모델을 거부하고, 미국 하드보일드 소설의 특정 법칙을 변형하면서 자신의 환경에 맞게 재구성한다. 특히 그들은 범죄란 붕괴되는 사회의 현상 때문에 일어나며, 그런 사회의 부패가 폭력을 부추긴다는 가정을 수용한다.

     지아르디넬리는 근엄한 어조로 현실을 고발하지 않는다. 대신 알레고리 형식으로 독재의 모습을 비판적으로 조명한다. 의식과 양심을 버리고 본능에 휩쓸리는 라미로의 도덕적 타락은 개인적 차원뿐만 아니라 사회적 차원에서도 권력의 병리적 현상을 제대로 보여준다. 이런 의미에서 라미로와 아라셀리의 비도덕적이며 폭력적인 관계는 권위를 무너뜨리는 비유로 이해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1977년 12월의 차코의 지옥 같은 더위는 군사 독재기간 동안 아르헨티나를 지배했던 숨막힐 것 같은 상황을 보여주는 메타포이다. 또한 이 소설 속에 나타나는 에로티즘적 요소들도 숨겨진 내면의 분출이라는 개인적 차원이 아니라 군사독재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멤포 지아르디넬리가 어느 인터뷰에서 말했던 것처럼 “우리 사회는 모두 이 독재적이며 혐오스런 에로티즘에 의해 유혹을 받았으며 종속되었고 강간”당했던 것이다.

     아라셀리, 즉 차코의 롤리타 역시 소설 속에서 알레고리적 역할을 수행한다. 지아르디넬리는 “아라셀리는 아르헨티나이다. 여성이고 젊으며 매력적인 동시에 사악하고 부패하며, 비도덕적이고 과격하다”라고 밝힌다. 작가는 아라셀리의 상징은 쓸 때부터 미리 구상했던 것이 아니라, 무의식적인 것으로 후에 이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아라셀리 아버지의 다음과 같은 말이 여주인공과 아르헨티나의 역설적인 관계를 잘 설명해 준다. “이 나라는 엉망진창일세, 라미로. 예전에는 참 좋았는데, 지금은 완전히 개똥같은 나라로 전락해 버렸네.”

     순진하고 아름다운 소녀 아라셀리가 사악하고 가증스럽고 불쌍하게 변하는 과정은 마치 암세포가 번지듯이 쉬지 않고 진행된다. 이런 이유로 어떤 비평가들은 이 소설을 ‘암의 묘사’라고 보면서,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는 암이 전이된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뜨거운 달』에서 멤포 지아르디넬리는 병든 사회의 초상을 그렸고, 건강했던 사회는 권력의 남용에 의해 오염된다. 이 작품은 군사독재의 마지막 기간 동안의 아르헨티나 사회를 지칭하고 있지만, 이것을 확장해보면 이 작품은 인간의 한계와 능력에 관해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라고도 볼 수 있다. 빠져나갈 출구가 하나도 보이지 않을 때, 문명화된 인간은 광인이 되어버린다. 아무도 그 한계를 넘어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라미로는 가공할만한 괴물도 아니며 타락한 사람도 아니었다. 그는 우리 모두처럼 희생자이며 동시에 가해자가 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평범한 인간이었다. 지아르디넬리는 이런 주인공을 통해 극한적인 인간 조건 속에서 어떤 의식을 갖게 되는지를 탐구한다. 그러면서 독자에게 폭력에 대한 자신의 능력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5. 하드 보일드 소설의 가능성

     거짓 흔적의 게임을 통해 마침내는 누가 범죄를 저지른 범인임을 밝히는 애거서 크리스티 류의 소설과는 달리, 멤포 지아르디넬리의 『뜨거운 달』은 독자에게 진실을 은폐하지 않는다. 대신 독자를 아라셀리의 강간과 그녀의 아버지의 살해를 목격하게 하면서, 작가는 “공범 독자”라는 문학 개념을 한계 상황으로 이끈다. 이런 현상은 지아르디넬리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라틴아메리카의 ‘포스트붐’ 소설은 결정적인 해답 대신에 독자에게 그런 해답을 상상하게 만든다.

     의심할 여지없이 『뜨거운 달』은 고전적 의미의 추리 소설이 아니다. 이 소설의 의미는 새로운 문학 의식과 전통적 모델의 병치를 통해 팔림세스트를 형성하면서 이루어진다. 즉, 정치를 추리소설의 모델로 흡수하는 패러디적 담론이다. 린다 허천은 패러디란 반복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것은 차이를 포함하는 반복이며, 비판적 거리를 수반하는 모방이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그것은 아이러니컬한 도치를 통해 원래의 모델이나 작품을 비웃기도 하며 찬양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지아르디넬리는 하드보일드 소설의 주제와 문체를 『뜨거운 달』에 통합시키면서, 이 장르를 찬양한다. 그러나 이 장르의 전통적 법칙을 변형하면서, 작가는 기존 질서를 전복하고 있으며, 아르헨티나 사회에서의 폭력에 관해 그 누구보다도 진지하게 성찰하고 있다.

     패러디적 글쓰기란 “패러디는 변화를 가능케 한다. 심지어는 급진적 변화를.”이라고 말한 린다 허천의 말대로 급진적 변화를 가능케 하는 해방의 행위이다. 창조적 행위는 해방이며, 이것은 바로 언젠가는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 새로운 민주 사회의 일원이 되기를 희망하는 추방작가들의 최대의 관심사이다. 이렇듯 그들은 하드보일드 소설의 기존 장르를 뛰어 넘어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제 우리는 문학의 서열을 정해 놓은 낡은 관습을 문제시하고, 우리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해 가르칠 수 있는 문학장르가 무엇이며 그것이 저급하다는 이유만으로 무시되어 오지는 않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