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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증언 소설의 시학과 그 가능성 - 미겔 바르넷의... / 송병선 2003-10-22 / 4517   

증언 소설의 시학과 그 가능성 ― 미겔 바르넷의 『어느 도망친 노예의 일생』을 중심으로

송 병 선



1. 증언 소설과 미겔 바르넷


     지난 반세기 동안 세계 문학계에 환상 문학이 휩쓸고, 최근 들어 하이퍼픽션, 테크노픽션이 등장하는 지금 ‘증언 소설’이란 말은 시대착오적인 현상처럼 들린다. 또한 세계 문학계에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켰던 중남미 현대 소설의 특징이 소설 형식과 언어의 탐험에 있다는 사실을 보아도, 이 ‘증언 소설’이란 말은 중남미 문학 내에서조차도 주변적인 장르에 속하는 것처럼 들린다. 1966년에 미겔 바르넷(Miguel Barnet, 1940~ )이 최초의 증언 소설인 『어느 도망친 노예의 일생』(Biografía de un cimarrón)을 출판했을 때만 해도 이것은 시대 착오적인 현상처럼 보였다. 그러나 70년대와 80년대에 있었던 일련의 사건들로 -가령 멕시코의 틀라텔롤코 대학살 사건, 칠레와 아르헨티나 및 대부분의 중미 국가에서 있던 군사 독재- 인해 대두된 급박한 사회 상황을 원동력으로 삼아 역사적 사실을 역동성 있게 파악하여 현실을 고발하는 문학작품의 필요성에 의해 증언 소설은 그 세력을 급속히 뻗쳐 나가면서 중남미 현대 소설의 한 특징으로 자리잡는다. 특히 이 소설은 60년대 말과 70년대 초의 파디야 사건으로 인해 쿠바의 문화 정책이 경직화되면서, 쿠바 정부가 ‘현실적 효과’를 지닌 역사적 상황을 흡수할 수 있는 문학을 강조함에 따라 쿠바 문화 노선에 입각한 새로운 형태의 문학 장르로 자리 잡는다.

     미겔 바르넷의 『어느 도망친 노예의 일생』(1966)과 『라첼의 노래』(1969)는 소위 ‘증언 소설’이라고 불리는 장르를 여는 효시이며, 쿠바 소설계에 예술성과 사실성을 효과적으로 배합할 수 있는 방법론을 제시한다. 이렇게 붐 소설의 실험 양식이 지배하던 중남미 문학계에 ‘증언 소설’이라는 장르를 개척한 미겔 바르넷은 1940년 1월 28일에 쿠바의 아바나에서 태어났다. 그는 아바나에 있는 미국계 개신교 학교에서 초등교육을 받았으며, 어렸을 때부터 만화책이나 탐험 소설보다는 역사책을 선호했다. 그것이 바로 그가 쿠바의 역사에 관해 열정을 품게 된 동기인 것 같다. 11살 때 이미 중남미 역사 소설의 대표작인 시릴로 비야베르데의 『세실리아 발데스』를 읽었으며, 청소년기에는 인류 역사에 흔적을 남긴 유명한 사람들의 전기와 역사성이 강한 소설들을 읽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광고 문구의 작성에도 뛰어났으며, 광고 전문 기관에서 공부하기도 했다. 그는 바로 이곳에서 처음으로 아프리카 문화에 관한 강연을 들었고, 그에게 평생동안 영향을 끼쳤던 쿠바 민속학자인 페르난도 오르티스의 작품을 배우게 되었다.

     1959년에 쿠바 혁명이 성공하자 미겔 바르넷은 쿠바 국립극장에서 민속학 및 민족학을 공부한다. 또한 1962년에는 쿠바 과학 아카데미를 창설하며 동시에 그곳 연구원으로 일하게 된다. 6년간 그는 이 기관의 책임자로 일하면서 아프리카 기원에 바탕을 둔 쿠바 문화를 과학적으로 연구하는데 전념한다. 특히 아프리카의 종교성에 관해 깊은 관심을 보이며, 반투와 요루바에 기원을 둔 아프리카-쿠바의 종교의식을 연구한다. 이런 주제에 관심을 보인 그는 자연스럽게 시를 쓰기 시작하여 『보석과 공작새』(La piderafina y pavorreal, 1963), 『성스런 가족』(La familia sagrada, 1967) 등의 시집을 출판한다. 그는 자신의 시를 쿠바의 텍스트와 정체성을 탐구하면서 뿌리를 찾는 작품으로 평가한다.

     또한 바르넷은 인류학과 민족학에 기초하여 쿠바 혁명 이전의 사회에서 소외되고 수탈당한 분야에 속했던 사람들의 삶을 재구성한다. 이것은 20세기 초에 소외된 정체성의 회복이라는 당대 쿠바의 소설계가 추구하던 역할을 그대로 추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새로운 미학적 차원에서 기록 문학적 리얼리즘을 정당화하는 이런 장르의 출현은 공동체 의식을 통합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사회성을 표명하는 새로운 표현 양식에 대한 가능성을 연다. 『어느 도망친 노예의 일생』과 『라첼의 노래』는 80년대에 들어 출판된 『갈리시아 인』(1983)과 『실제의 삶』(1986), 『천사의 직업』(1989)의 5부작으로 완성되며, 이 작품들은 작가가 추구한 방법론의 기능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보여주고, 또한 그의 증언 소설이 얼마나 풍부한 가능성을 갖고 있는지를 전세계에 알린다.

     바르넷의 소설들은 ‘역사 없는 민중’, 즉 역사라는 학술적인 서적에 등장하지 않는 사람들에 관해 말하고 있다. 그는 역사 없는 민중들의 조그만 삶에서 공식 역사의 가면 속에 숨겨진 요소들을 파헤친다. 『어느 도망친 노예의 일생』은 에스테반 몬테호라는 도망친 흑인 노예의 삶을 다루고, 『라첼의 노래』는 쿠바 혁명 전에 알람브라 극장의 합창단원으로 일했던 어느 여인의 생활을 재구성하고 있다. 또한 『갈리시아 인』은 1916년에 쿠바로 이민온 갈리시아 사람인 마누엘 루이스의 삶에 관한 감동적인 기록이며, 『실제의 삶』은 미국에 이민간 쿠바인인 훌리안 메사가 겪는 고통과 불만족스런 삶을 다루고 있으며, 『천사의 직업』은 1940년부터 1962년 동안 중산층의 삶을 누린 한 청년의 인생을 서정적으로 기록한다.

     그는 이렇게 도망친 흑인 노예와 라첼과 같은 중남미 태생의 백인, 그리고 식민 이후부터 쿠바에 깊이 침투한 스페인의 갈리시아 인, 미국으로 이민간 쿠바인 및 중산층의 삶을 통해 식민 시대부터 현재에 이르는 쿠바의 정체성을 찾고자 한다. 그래서 그는 상이한 시대에 살았던 쿠바 문화의 전형적인 대표적인 인물들을 선택하여 그들의 증언을 토대로 쿠바의 형성과정 및 각 개인의 개성을 탐구한다. 역사 없는 민중, 다시 말하면 하잘 것 없는 사람들의 구비(口碑) 증언에 바탕을 두면서, 이 모든 것을 재구성하고 살을 붙인 다음에 사회학적 의미뿐만 아니라 문학적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증언 소설’의 미학을 구현한다.


2. 증언 소설의 시학과 그 가치: 정의할 수 없는 정의

     70년대와 80년대에 들어 중남미에서는 많은 증언 소설과 그에 관한 글들이 출판되고 있다. 하지만 과연 ‘증언’이란 정확히 무엇인가? 그것은 문학 외적인 요소, 즉 기본적으로 기록적 가치가 있는 소설인가, 아니면 새로운 문학 장르인가? 만일 새로운 문학 장르라면 증언 소설의 미학적 효과는 어떤 것인가?

     우선 왜 증언 문학이 갑작스레 번성하게 되었는가에 대해 살펴보자. 이 분야의 권위자인 존 비벌리는 증언 소설의 이런 증가를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요소가 서로 일치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1) 대도시 문학 규범 속에서 쉽게 동화되지 않는 ‘기록적’ 성격의 텍스트가 중남미 문화 속에서는 전통적으로 중요하다. (2) 오스카 루이스, 리카르도 포사를 비롯한 여러 연구가들이 추구했던 민족학 이야기 (즉 라이프 스토리)가 1950년대 이후 발전되면서 대중성을 획득했다. (3) 체 게바라의 『쿠바 혁명 전쟁 회고록』이 정치 분야뿐만 아니라 문학적으로도 광범위하게 수용되었다. (4) 60년대 이후 형성된 ‘반문화’ ―가령 파농의 탈식민지 이론, 프레이리의 교육학, 페미니즘 운동 등 ―가 개인의 해방뿐만 아니라 구비 증언에 대해 중요성을 부과하였다.(Beverley 10)

     하지만 이런 상황적 설명을 벗어나 증언 소설의 문학적 요소가 무엇인가로 들어가면 문제는 한층 복잡해진다. 바르넷은 그의 소설의 특징을 이렇게 설명한다.


나는 이 소설들을 사회학적 성격을 띤 나의 일을 하는 과정에서 인터뷰에 응해 준 사람들의 구비 증언에 바탕을 둔 구체적인 기록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라고 간주합니다. 다시 말하면, 구체적인 사례 연구이지만 동시에 나에 의해 재창조된 작품입니다. 나는 그들의 증언 내용에서 핵심을 파악한 후에 허구와 진실이라는 바탕 위에서 작업했습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나는 이 소설들은 증언 소설이라고 평가합니다. 왜냐하면 이 소설들에서 사용하는 모든 역사적 기초는 절대적으로 믿을 만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내 책의 목적은 사회학적이자 동시에 문학적이라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나는 두 경향이 차이가 있고 반대된다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내게는 이런 모순점들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몇몇 비평가들이 말하고 있듯이 만일 내가 문학에 공헌한 바가 있다면 이것은 바로 위에서 말한 이유일 것입니다. 즉 사회학적 방법과 문학을 융해시켰다는 것입니다. 다른 학문사이에도 이런 과정이 존재합니다. 그러니 사회학적 문학에도 이렇게 되지 못한다는 법은 없지 않습니까?(Bernard 68-69)


     언급된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바르넷은 증언 문학에는 민족학자의 사회 과학적 방법과 작가의 방법을 함께 사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아마 그가 인종 학자로만 만족했다면 멕시코의 학자인 리카르도 포사와 빈곤의 문화를 연구했던 오스카 루이스처럼 녹음과 기록에 근거하여 ‘역사 없는 민중’을 대표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재구성하는 것으로 만족했을 것이다. 하지만 바르넷은 민족학자임에도 불구하고 텍스트의 ‘문학성’을 추구한다. 그는 원래의 담론이 지닌 구비적 성격을 보존하고 편집자의 자아를 어느 정도 제거함으로써 사회과학적으로 수집된 자료를 미학적 형태로 융화한다.

     따라서 언뜻 보면 간단해 보이는 증언 소설의 시학은 매우 복잡한 글쓰기 과정을 내포하고 있다. 이것은 피회견자, 즉 증인이 작가에게 말하는 내용의 사실성부터 문제되기 시작한다. 하지만 바르넷은 역사적 사실의 사실성 자체보다는 역사에서 소외된 인간들의 삶에 더욱 관심을 두면서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더 이상 현실이라고 말할 수 없을 때 상상력을 동원합니다. 기억은 바로 그런 상상의 부분입니다. 내 책은 기억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따라서 정보 제공자들은 자기 개인적 삶의 유사성에 최대한 근접하도록 마음껏 생각을 펼칠 수 있었습니다. 나라고 해서 우리 민중들의 구비 전통에서 유래된 체계를 사용하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습니까?”(Biangui 108)

     증언 소설의 시학은 녹음 테이프에 수록된 말을 옮겨 적는 과정에서 타인에 의해 불가피하게 변형된다는 점에도 있다. 즉, 증언 소설의 작가는 피회견자의 말을 듣고 그대로 쓰려고 노력하면서도, 작가로서의 ‘자아’를 없애지 않으려는 모순적 행동을 한다. 이것은 바흐친이 말하는 대화주의 담론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바르넷은 주체의 언술은 최소한으로 변형되어야 하며, 이런 불가피한 ‘배반’은 편집자의 직관에 의해 행해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또한 피회견자의 시적인 감수성과 탁월한 인간미와 당대의 역사적 지식이 겸비된 편집자의 훌륭한 ‘청각’ 이외에도 피회견자와 회견자 사이에 아주 훌륭한 대화 채널이 필요하다는 것을 상정한다.

     사실상 증언 소설에서는 누가 말하는 주체인지를 명확히 설정할 수 없다. 이런 현상은 구비 언어의 특성을 되돌아보게 하며, 동시에 언어가 여러 주체들의 이데올로기 하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보여준다. 기호의 임의성과 선별, 몽타주와 자료들의 축약은 암묵적으로 편집자의 이데올로기적 측면을 보여주고, 타인의 목소리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은 증언 소설 편집자의 윤리적 문제로 작용한다. 그래서 바르넷은 “우리는 정보자와 함께 해야 한다. 이것은 그의 모든 의견을 함께 하고 그가 생각하듯이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그가 말하는 것과 그가 보는 것을 수용하는 것이다”(Barnet 1983: 19)라고 말한다. 이것은 편집자와 민족학자가 자신의 대화자를 끊임없이 찾고 끊임없는 형식적 실험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증언 소설의 담론은 바흐친이 제시하는 ‘원심력과 구심력’의 상호 모순적인 충동을 보여준다. 다시 말하면, 특정 계층을 대표하는 사람이 자발적으로 행하는 언술행위는 텍스트라는 고상한 원칙에 의해 수정된다. 이런 증언 소설의 혼성적 형식은 편집자가 “민중의 감수성에 영향을 끼쳤던 주요 역사적 사건과 실제로 겪었던 주인공의 입을 통해 그 사건을 기술하는 현실 연구”(Barnet 1983: 23)의 이데올로기적 도구가 된다. 따라서 바르넷에게 있어 증언의 이상적 주인공은 자기가 속했던 계급의 상황을 의식하는 개인이지만 동시에 총체적 주체가 되는 사람이다. 비록 편집자와 피회견자의 의도와 감수성이 일치할 지라도 두 주체 사이의 복잡한 긴장 관계는 지속된다. 즉 지식인의 시각은 문화적· 경제적으로 소외된 계층과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데올로기적 긴장 관계는 증언 소설의 형식에서 아주 뚜렷이 나타난다. 따라서 증언 소설의 시학을 찾고 그에 대한 일관된 정의를 내리는 것은 위험하다. 바르넷은 “요약하려고 시도하는 말은 하나의 함정에 불과하다”라는 말로 대답하면서 그에 대한 정의를 내리려 하지 않는다. 이렇게 증언 소설의 내적 복잡성은 대화주의적 소설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명백히 드러내고 있다. 왜냐하면 현실 모사의 과정 속에서 일어나는 이데올로기적 충돌은 적어도 실제적인 두 주체의 차이로 인해 가시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점에서 증언 소설은 이미 설정된 장르가 아니라 역동적 현상임을 보여준다. 바르넷 자신도 그의 소명은 “문학적 뿌리를 갖는 것”이라고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예술의 전통적 의미로 문학을 하려고 하지는 않았다”라고 고백한다(Sklodowska 142). 여기에서 ‘전통적’이라는 말을 매우 시사적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문학성이 새로운 관점에서 고찰되어야 하며, 또한 바로 야우스가 말하는 ‘기대 지평선’의 변화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점에서 바르넷의 작품은 증언 소설이 ‘문학 작품’이며, 이것은 붐 소설의 담론과는 다른 또 다른 가능성을 제시하는 대안이 되는 것이다.

     증언 소설은 형식적 실험만을 꾀한 붐 소설과는 달리 중남미의 참여 문학 전통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쿠바 혁명의 성공이 전에는 주변부에 있던 그룹에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권리를 주었지만, 이런 권리는 피회견자의 문맹이나 교육 부족 혹은 체계적 증언 능력의 부족과 같은 과거의 상부 구조의 흔적으로 인해 불가능했던 것이다. 따라서 새로운 사회· 경제적 기초와 이전의 상부 구조가 공존하는 전환의 상황에서 지식인은 구비 문화와 문자 문화, 과거와 현재, 개인적 주체와 공동적 주체 사이의 중개자 역할을 담당함으로써 지식인의 사명을 깨달았던 것이다.

     모택동이 말한 ‘민중들의 모순’이란 개념은 아마도 지금까지 설명한 화자/편집자의 관계에 대한 속성을 설명하는데 적절한 요소일 것이다. 이것은 혁명에 의한 사회변혁 수준에서 수용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실제’ 모순을 다룬다. 바로 여기에서 화자/편집자의 관계는 민중의 힘과 해방운동에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한 진보적 지성의 유대라는 이데올로기로 작용한다. 증언은 익명의 민중에게 그들의 이름과 목소리를 되돌려 주는 것이다. 그리고 부르주아 교육을 받는 지성인들이 민중의 일부로써, 민중에게 종속되어 있으며, 또한 그런 귀속감 속에서 지성인으로서의 합당한 이유를 발견하는 것이다. 따라서 증언은 억압자와 피억압자의 틈 사이에 자리잡고 있다. 그것은 억압자와 피억압자의 변증법적 형태이다. 이것은 ‘증언’이란 것이 가야타리 스피박이 지적하는 식민주의적 혹은 하인적 속성을 지닌 ‘본토 정보자’의 인류학적 기능을 재연하는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일반적인 기록 소설, 혹은 리얼리즘 계통의 소설이 이야기 전개뿐만 아니라 작중인물들도 텍스트의 목적에 부합하면서 끝나는 닫힌 구조의 형식이라면, 증언 소설은 모든 부르주아 문화의 핵심이 숨어있는 공적인 분야와 사적인 분야 사이의 구분을 파괴된다. 증언 소설의 화자는 계속해서 살아가면서 실제 역사 속에서 행동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증언 소설은 그 자체가 사회적 행동일 뿐만 아니라 그 행동 자체만으로는 부족함을 깨닫는 ‘열린 작품’이다. 또한 그것은 문학 속에서 지배와 소외로 점철되어 있는 사회 기관에 대한 재평가이다. 갈수록 대중성을 획득하고 있는 증언 소설의 가능성과 욕망은 오늘날의 세상 속에도 아직 생동적인 경험이 존재하고 있으며, 이런 것은 부르주아 문학의 전통 형식으로는 적합하게 표현될 수 없으며, 어떤 의미에서는 이런 문학을 배반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3. 『어느 도망친 노예의 일생』: 증언 문학의 새로운 지평

     속박된 삶을 사느니 산으로 도망쳐 그를 뒤쫓는 무자비한 세력에 대항하기를 원했던 어느 노예의 이야기를 서술하는 『도망친 어느 노예의 일생』은 현재 유럽, 미국 및 아시아 여러 나라의 언어로 번역되어 있으며, 현대 음악계에서 가장 유명한 작곡가 중의 하나인 독일의 한스 베르너 헨체에 의해 오페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또한 파리 국립극장의 선두에 서서 일했던 장 빌라르는 죽기 직전에 그의 마지막 작품으로 바로 이 책에 바탕을 둔 연극을 상연했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이자 화자인 104세의 에스테반 몬테호는 자신이 받은 박해와 그의 정치적 저항을 회상하면서 현재의 관점에서 과거를 재조명한다. 몬테호는 당시에 살아있던 도망친 노예의 유일한 생존자였다. 그는 1860년대의 쿠바와 노예 시절, 움집에서의 생활 및 산으로 도망친 노예들의 생활, 사탕수수 공장에서의 또 다른 노예제도, 스페인에 대항한 독립 전쟁 등에 관해 생생히 말한다. 이런 그는 바로 역사에 참여하지 못한 대중의 힘없는 목소리이며, 사회, 경제적으로도 극단적 주변성을 띤 인물이다. 그러나 몬테호는 “나는 도망친 노예였기 때문에 부모가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지. 그들을 본 적도 없었어. 하지만 이런 것은 슬픈 일이 아니지. 왜냐하면 사실이기 때문이야.”(Barnet 1984: 25)와 같은 생동력있고 단순하며 투명한 언어를 구사하면서 쿠바 역사의 결정적인 시기를 개인적 관점에서 재구성한다. 그는 이런 언어가 바로 자신이 증언 소설을 쓰게 된 이유라고 설명한다.


그들의 언어는 역사 과정의 결과입니다. 그것이 바로 증언 소설을 쓰는 이유이며, 그것은 부르주아 역사학이 다루지 않는 언어를 회복하는 것, 즉 수백 년의 전통에 의해 창출된 핵심적인 언어입니다. 만일 내 작중인물들이 각기 자신의 독특한 언어를 소유하지 않고 자신을 특징짓는 체계를 지니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들의 언어는 부르주아 문화에 기대지 않고 불안정하게 구성된 그런 삶의 내용입니다. 내 작중인물들이 실제로 지닌 유일한 것은 바로 그들이 말하고 서술하는 방법, 즉 그들의 언어입니다.” (Biangui 113)


     그러나 엄격히 말하자면 몬테호의 이야기의 많은 부분은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지는 않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본 대로 자기의 의견을 말한다. 따라서 그의 의견은 매우 주관적이다. 바로 여기에서 바르넷은 바로크적인 필체와는 전혀 다른 이런 몬테호의 언어가 문학에 시사하는 바를 깨닫고, 역사적 사실을 보완하는 편집자의 임무를 수행함으로써 ‘증언 소설’을 창조한다. 즉, 바르넷과 몬테호의 만남은 쿠바와 노예 제도의 역사라는 어두운 지역에 빛을 비추기 위한 필요성과 일치했던 것이다.

     『어느 도망친 노예의 일생』은 비록 민족· 민속학 연구소에 의해 출판되었지만 사회과학 서적보다는 소설처럼 읽힌다. 이것은 몇몇 특별한 상황이 합쳐졌기 때문이다. 젊은 연구가와 늙은 노인인 에스테반 몬테호의 만남은 만일 몬테호의 서술적 재능과 그의 유머 감각 및 그의 뛰어난 기억이 없었다면 그토록 높은 미학적, 인간적, 인식적인 가치를 획득할 수 없었을 것이다. 바르넷이 편집자로 개입하여 한 일은 도망친 옛 노예의 기억에 극적인 리듬과 연대기적 순서 (노예 생활, 도망친 노예 생활, 독립 전쟁, 1912년 인종 전쟁)등 필요한 것만을 덧붙이는 일이었을 뿐이다. 그렇게 해서 과학적 기록의 ‘무미건조함’은 몬테호의 독특한 개성과 그가 살아온 비참하고도 천박한 삶에 대한 바르넷의 존경으로 인해 극복되었던 것이다.

     바르넷의 계획의 독창성은 그의 과감한 형식적 중립성에 있다. 과학적 방법으로부터 작가는 자료 수집 방법론을 차용했지만 (가령 인터뷰, 녹음, 색인 카드, 해당 시기에 관한 연구 등), 텍스트로 구성하는 과정 속에서 미학적 범주(선별, 축약, 몽타주 등)를 무시하지 않았다. 이런 사회과학적 방법론과 문학의 상호 관계에 관해 바르넷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 책(『어느 도망친 노예의 일생』)이 특히 네 명의 작가들과 근접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그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특히 그들의 접근 방식과 서술하는 방식을 배웠습니다. 트루만 카포티의 『차가운 피』는 대위법적 서술의 극적인 테크닉과 집단 심리 의식을 발굴하는 방법을 보여주었습니다. 오스카 루이스의 『산체스의 아이들』은 사회학적 자료들과 시각적 기억을 어떻게 이용하고 또한 기본적인 설문을 사용하는지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리카르도 포사의 『환 페레스 홀로테』는 한 작중인물의 생동적인 발전 과정의 흔적을 어떻게 밟아야 하는지를 제시해 주었습니다. 환 룰포의 『페드로 파라모』에서 나는 시(詩)라는 형식 없이는 사실적인 것에 근접할 수 없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Biangui 114)


     이러한 방법론적 공헌 이외에도 『어느 도망친 노예의 일생』은 문학사적 가치도 높게 평가된다. 쿠바의 문학사를 살펴보면, 20세기 초의 문학사는 주요 테마로써 흑인 계급을 다루고 있으나, 이는 권력에 끊임없이 도전했던 크리오요 계급(중남미에서 태어난 스페인 사람)의 정치적 목적을 위하여 사용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특히 ‘반노예 소설’ 혹은 ‘노예 폐지 소설’ 등에서 흔히 다루는 노예제에 대한 신랄한 비판은 백인들의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지배계급의 정치, 경제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Sklodwska, p. 31). 즉, 『세실리아 발데스』, 『삽』 등으로 대표되는 쿠바의 흑인 소설은 항상 수동적이고 순종하며 물화된 노예들의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흑인들의 세계관은 ‘흑인’들이 백인들로 구성되어 있는 지배계급에 도전하지 못하도록 하며, 또한 새롭게 탄생하고 있던 당시 신흥 부르주아지에게 유리한 사회, 정치적 개혁을 하기 위한 의도가 그 저변에 깔려 있는 것이다.

     종래의 흑인 노예 소설과는 달리 바르넷의 『어느 도망친 노예의 일생』에서 전통적인 순종하는 노예의 이미지는 완전히 파괴된다. 주인공인 몬테호는 개인주의적이자 반항아적 성격을 보여줌으로써, 자기 자신의 개성적인 이미지를 창출한다. 이와 같은 그의 성격을 반영이라도 하듯이 이 작품은 ‘반항-도망친 노예 생활-맘비사 전쟁 참가’의 축으로 전개된다. 이와 같이 이 작품은 20년대와 30년대를 풍미했던 값싼 민족주의와 관습주의의 형식에 반대하면서 흑인문학의 잔재를 복구하려는 작가의 의도를 강하게 보여준다.

     또한 몬테호는 전쟁 속에서 겪는 개인 및 특정 집단의 운명을 통해 사회, 정치적 상황을 드러냄으로써 사회 고발적 측면을 띤다. 그는 노예 생활과 도망친 후 산에서 숨어살던 시절을 지낸 후에 맞게 되는 쿠바 독립 전쟁 동안 그가 참여하는 전쟁의 합법적이고 정당한 참여자로써의 의식을 갖게 된다. 그는 “아마도 이렇게 소리치지 않은 쿠바인은 없었을 것이야. 자유 쿠바 만세! 서로를 알지도 못한 채 길거리에서 서로서로 손을 잡고 모자와 손수건을 던져 가면서... 난 그것을 제대로 말할 수 없는데 왜냐하면 너무도 감격해서...”(Barnet, 1984: 200)라고 서술하면서 이런 의식을 보여준다. 몬테호는 이 장면을 역사적 대사건 속에서 항상 외면되고 탄압 받은 흑인 쿠바와 유색 인종의 관점에서 본 국가주의의 탄생 순간을 비교하면서 말하고 있다. 독립 전쟁이 끝나자 흑인들은 크리오요 계급에 의해 이용만 당한 채 자신들의 이상이 수포로 돌아갔음을 알게 되는데 이 점을 몬테호는 “결과는 흑인들은 다시금 거리로 나 앉아야만 했다”라고 밝히면서 매우 신랄하게 백인들로 형성된 크리오요 지배계급을 비판하고 있다.

     가야타리 스피박의 최근의 비평인 「하위 주체도 말할 수 있는가?」에서 유럽 제국주의의 하인들은 무자비한 배반과 권모술수를 일삼았으며, 따라서 서양인들이 ‘타인’의 이미지를 형성하는데 있어서 토착민의 ‘협조’가 있었음을 주장한다. 비록 편집자가 제국주의의 하인처럼 중개적 입장을 취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도망친 어느 노예의 일생』에서 에스테반 몬테호의 인품은 흑인들의 민속적 비전의 물신화에 종속되어 있지 않으며, 20세기 초에 유행했던 반노예주의 문학과는 더욱 더 거리가 있다. 영원한 반항아인 에스테반 몬테호는 도망친 노예의 정신과 자신의 가치 체계 및 신앙으로 인해 문학적인 존재가 아니라 인간적인 존재이다. 그는 자기의 근원도 잘 모르며, 자기의 성(姓)도 모르고, 생년 일자도 모른다. 하지만 항상 자신의 자유와 명예를 위해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 그래서 몬테호는 죽기 일보 직전의 상황에서도 굴복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죽고 싶지 않다고 말하지. 왜냐하면 앞으로 올 전투에도 참여해야 하기 때문이오”(Barnet 1984: 205)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사람은 수동적인 하인이 아니라, 자신의 권리가 무엇이며 자신의 종족에게 해를 입힌 부정(不正)을 의식하는 사람이며, 또한 그런 것들을 자신의 기억력을 통해 고발한다. 몬테호는 “그곳(미국의 쿠바 침략에 관한 분야)은 연구할 분야가 무척이나 많은 곳이오. 나는 숨겨져 있는 모든 것이 발견되는 날에는 세상이 망할 것이라는 사실을 확신하오”(Barnet 1984: 207)라고 말하면서 개인이지만 집단적 주체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이런 목소리는 지배계급의 산물인 권위주의적 언술이나 도그마와 객관성을 추구하지 않는다. 반면에 공식 언술과의 차연화 과정을 통해 역사라는 과거의 경험을 현재의 시점에 맞추어 전개해 나가면서 기존의 역사를 탈신비화시킨다. 즉, 지루하기 짝이 없고 또 너무도 정확한 백과사전식의 공식 문서의 날짜나 자료가 아니다. 이와는 달리 에스테반의 삶 속에는 수많은 사람의 생애가 집약되어 있다. 이것은 바로 증언 소설을 가능케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왜냐하면 단지 한 사람에게 국한되어 있는 증언을 받아서 다시 쓰는 것은 쓸모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4. 증언 소설: 역사와 문학, 그리고 지식인의 역할

     일반적으로 역사와 소설은 두 개의 분리된 학문으로써 개별적으로 연구되어 왔다. 이런 현상은 역사는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자료에 근거한 학문인 반면, 소설은 작가의 상상력에 바탕을 둔다는 가정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탈구조주의 계열의 역사학자인 화이트가 역사학자들 역시 과거에 대한 해석을 하기 위해 미학적 전략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역사와 소설의 구분은 단지 이론상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을 갈파한 이후, 이 두 학문은 불가분의 관계를 갖게 되었다. 여기에서 이 두 학문을 연결시키는 핵심적인 역할은 소설에서 흔히 쓰이는 비유적 상상력(imaginación tropológica)이 수행한다.

     이러한 상상력에 힘입어 현대 중남미 소설의 역사와 문학과의 관계는 상대성 및 개연성으로 특징지어진다. 이는 주로 역사 사실 자체를 하나의 언어학적 현실로 취급하고, 소설의 외부 구조에 위치시킴으로써 소설이 단순히 역사적 사실 및 시대 상황의 반영이라는 마르크스주의 문학비평 양식에 도전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역사적 담론을 역사적 사실과 동일시하는 것이 아니라, 소설의 창작 과정에서 발생하는 ‘또 다른 그 무엇’을 말하는 심층적 의미를 형성함으로써 예술의 미학적 기능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19세기 역사 소설의 모델은 “재현을 통해 과거와 그 구조를 설명하기 위하여 사용된 모델로써의 기능을 수행하는 서술적 담론의 구조를 띤 언어 구조”(White, p. 2)라 정의될 수 있다. 하지만 중남미 현대 소설에 있어서는 개인적 역사 경험에 미학적 행위를 가미하는 구조적 원리가 작용한다. 다시 말하면 역사와 ‘허구’라는 두 개의 상호 모순적인 개념이 상호 관련을 맺는 것이다.

     이러한 현대 역사 소설과 마찬가지로 『어느 도망친 노예의 일생』은 소설이 역사라는 원재료로만 쓰여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 소설의 발생론적 성격 때문에 역사적 사실 및 복잡한 여러 자료들의 미학적 체계를 통해 구성되며, 이를 통해 기록적 사실은 미학적 차원으로 승화됨을 보여준다. 즉 『어느 도망친 노예의 일생』의 문학성은 역사적 증언을 예술적으로 변형된 담론으로 만드는 편집자-작가의 의식적인 문학 기술을 통해 구현되며, 이로 인해 대화성, 역사적 사실의 상대성 및 주변성 등의 현대 소설의 양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증언 소설은 현대 소설과의 공통점 이외에도 변별성도 지닌다. 증언 소설은 작가가 ‘자아’가 어느 정도 배제될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문학성을 함유한 문학이면서 동시에 문학 외적 형식의 문학이며, 따라서 반문학(反文學)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바로 이것이 증언 소설이 일반적인 현대 역사 소설과 대별되는 ‘미학적 효과’이며 변별적 요소이다. 붐 소설이 중남미를 대표하고 있는 소설이며, 자본주의 체제의 소부르주아 지식인의 산물이라고 볼 때, 증언 소설은 붐 소설에 의해 배척 당한 사회 소설의 요소를 복구하는 소설이다. 60년대와 70년대의 혁명을 다룬 곤살레스 레온의 『휴대용 국가』, 코르타사르의 『마누엘의 책』, 혹은 사바토의 『파괴자 아바돈』 류의 붐 소설과는 달리, 증언 소설은 중남미 민중과 지식인의 공동 의식에 의해 생산된 것이며, 이것은 쿠바 문화의 선봉장인 레타마르가 말한 ‘대화시’와도 일맥상통한다.

     역사 없는 사람들을 역사의 전면으로 부각시키려는 바르넷은 계획은 쿠바 및 중남미 문학 범주 내에서만 이해되어야 할 성질이 아니라 그보다 넓게 탈식민주의 세계 전반에 적용될 수 있다. 이런 탈식민국가에서는 소외된 의식을 표현하려는 목적으로 수많은 계획이 무성하게 펼쳐진다. 중남미, 특히 카리브해 국가의 지식인들은 식민지 문화의 패러다임 내에서 소외된 존재로부터 식민화된 사람들(흑인, 노예, 캘리반 등)의 의식을 해방하려는 우를 범했고, 이는 식민 지배를 겪었던 대다수의 국가에서 행해지고 있다. 즉, 그들은 자신들이 속해있던 이전의 상부구조의 흔적을 떨쳐버리지 못한 채 단순히 소부르주아 지식인 차원에서 행동했으며, 마찬가지로 역사 없는 사람들도 의식의 부족으로 인해 지식인에 종속되면서 부르주아의 잔재를 그대로 답습하는 모순을 범했던 것이다. 이런 면에서 바르넷의 증언 소설은 작가-편집인이 자신의 ‘자아’를 가능한 한 배제한 채, 중개자의 입장에서 역사 없는 민중의 언어를 미학적으로 승화시키는 작업을 담당하도록 제안하고 실천함으로써 지식인과 민중의 유대 관계를 공고히 할 수 있는 또 다른 발판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