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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칠레 소설에서 1950세대... / 우석균 2003-10-22 / 4020   

칠레 소설에서 1950세대:
변별적 글쓰기 전략과 문학의 장으로 편입과정

우 석 균



     부르조아적 생산양식과 생활방식이 득세한 이래, 작가나 예술가들은 줄곧 자신들이 사회권력에서 소외되는 현상을 개탄하고 고발해왔다. 그러나 대다수 피지배층에 비하면 그들은 지식이라는 어느 정도의 특권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예술세계를 통하여 담론을 생산함으로써 일정한 권력을 창출, 소유, 행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피에르 부르디외는 지식인들이, 최하위에 위치하기는 하지만 엄연히 지배층에 속해 있다고 주장하면서 그들이 속한 영역을 지식인의 장(campo intelectual)이라 부른다. 작가들은 이 지식인의 장 중에서도 문학의 장(campo literario)을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어느 한 사람이 작가가 되기 위해 글을 쓰는 행위는 본인이 원하든 말든, 성공적이든 배척을 받든 이 문학의 장에 편입됨을 의미한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어느 작가가 작품활동을 시작하는 이 순간을 시원(始原, beginning)이라 지칭한다. 이 시원의 순간에는 한 작가가 기존작가들의 작품세계와 다른 미학을 시도하는 변별적 원칙(principles of differentiation), 즉 변별적 글쓰기 전략이 나타난다. 시원에서 나타나는 제 양상은 -문학기법, 주제, 문학관, 기존의 문학적 혹은 사회적 담론의 수용이나 창출 등등- 크게 그가 기존 작가들의 미학을 수용하는 계승적 관계에 있느냐 아니면 거부하는 단절적 관계에 있느냐의 문제로 대별된다. 기존 미학들과 계승적 관계에 있다 함은 표절이나 단순한 추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미학을 나름대로 창조적으로 계승하는 변별적 글쓰기를 말한다. 한편, 시원에서 단절적 관계를 지향한다고 해서 철두철미하게 독창적인 글쓰기를 시도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그 당시의 문학의 장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특이한 글쓰기를 선뵈는 것을 지칭한다. 문학의 장에서 이미 기득권적인 담론의 위치를 점하고 있는 기존 미학과 단절적 관계를 가진다면 이 편입과정에서 기존 미학과 치열한 다툼을 거치게 되고 엄연히 문학의 장에 편입되어 있으면서도 계속 배척받을 소지가 있다. 기존 미학이 문학의 장에서 통용될 수 있는 담론을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원에서 기존 미학과 단절적 관계를 가지는 글쓰기 전략을 채택한 작가는 푸코가 말하는 정당성의 문제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즉, 그와 같은 글쓰기가 가능하다는 것을 문학의 장 내에서 입증시키고 통용시켜야만 문학의 장에 성공적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문학세대 전체의 시원에 대한 연구는 당연히 어느 작가 개인의 시원에 대한 고찰보다 어려울 수밖에 없다. 문학세대들 간의 문제를 다루는 수직적 비교가 필요한 것은 당연하거니와, 같은 세대 작가 사이의 수평적 비교도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 같은 세대 작가라고 해도 각각 등단하는 시기도 차이가 나고 발전해 가는 양상도 다르기 때문에 개개인의 글쓰기들을 종합적으로 고찰하여 그 문학세대 전체를 놓고 볼 때 의미 있는 사건이나 담론을 선별하여 추론해야 하기에 다소 자의적인 작업이 되어버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글은 아쉬우나마 이 두 가지 면을 고려하여, 칠레 소설에서 문학의 근대화 및 국제화를 주창했던 집단인 1950세대가 문학의 장의 기존 담론에 대해 단절적 관계를 지향하면서 채택했던 변별적 글쓰기 전략과 그를 통하여 문학의 장에서 자리매김하는 과정을 살펴보려고 한다.


I. 역사적 시원

     1950년대를 전후해 작품활동을 시작한 칠레 소설가들에게 1950세대라는 이름을 처음 부여한 사람은 이 세대의 일원인 엔리케 라푸르카데(Enrique Lafourcade)이다. 1956년 산티아고 국립도서관에서 열린 한 강연회에서의 일이었다. 하필 1950이라는 숫자를 내세운 것은 조금은 자의적인 점이 없지 않다. 1950년을 전후해 특기할 만한 새로운 경향의 작품들이 발표되었기 때문에 1950세대라는 이름이 어울린다고 지적하면서도, 단순히 1950이란 숫자가 한 세기를 반분하여 구세대에서 신세대로 넘어가는 경계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라고도 토로하기 때문이다.

     1950세대 전체를 놓고 볼 때 문학의 장에 자리매김을 시도했던 첫 번째 움직임은 라푸르카데가 『칠레 신(新)단편 선집』(Antología del nuevo cuento chileno)을 발간했던 195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서문에서 이 책에 작품을 실은 소설가들은 모두들 30세 미만이며, 서로 교류를 하여 공통적인 문화적 토양에 바탕을 두고, 기존 칠레 소설에 대해 전투적인 적대감을 견지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문학 세대로 간주할 수 있다고 공언하였다. 또한 이 일단의 젊은 소설가들의 공통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부연하며 이들이 개혁정신을 지닌 새로운 문학세대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1. 이들은 개인적이고 신비적인 성향의 세대이다.
2. 고귀하고 엘리트적 문학을 지향한다.
3. 문학을 위한 문학, 즉 미학적 문학을 지향한다.
4. 문학, 철학, 역사 등을 두루 섭렵하여 전세대 작가들보다 체계적이고 문화적인 지식인 소양을 갖추었다.
5. 의식이 깨어 있고, 감수성이 예민하며 지적이다. 모든 작가들이 현대 문학의 흐름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인다.
6. 새로운 작가들은 반혁명세대이다. 이들이 전투적이라는 것은 문학을 통한 사회참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로서 직업정신에 투철하다는 뜻이다.
7. 이들은 오르테가 이 가세트(Ortega y Gasset)이 말하는 비인간화된 세대이다.
8. 이들은 귀족적이며 고립적인 세대이다.


     이 단편 선집은 신인 작가들을 소개하려 했다는 점에서만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졌다. 라푸르카데의 서문에서 나타나는 “신비스런”, “비인간화된”, “귀족적” 등등의 추상적인 단어들의 현란한 나열은 거센 비판을 받았고, 작품 선정 기준 역시 지나치게 자의적이었다는 평을 들었다. 심지어 이 작품에 선정된 작가들까지도 유사한 불만을 표출했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단편 선집은 여러 가지 점에서 새로운 문학 세대의 탄생을 알리는 서곡이었다. 무엇보다도 1950세대의 대부분의 주인공들이 아직 의미 있는 작품을 쓸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하기도 전에 그들의 가능성을 인정하여 한 권의 책에 모았다는 점에서 이 선집의 역사적 가치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그토록 비난을 받았던 라푸르카데의 서문 역시 새로운 문학 세대의 태동 원인과 본질적인 요소들에 대해 몇 가지 날카로운 지적을 하였기에 나름대로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라푸르카데는 첫째, 새로운 작가들은 그 이전 작가들이 크리오이스모(criollismo)나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에 지나치게 집착했던 것에 반하여 작품의 미적 효과에도 관심을 가진다는 것을 잘 간파하였다. 둘째, 근대화와 더불어 칠레에서도 직업분화 현상이 일어나 직업 의식에 투철한 전업 작가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제대로 파악하였다. 셋째, 새로운 작가들은 그전 작가들과는 달리 대부분 대학교육을 받았다는 점을 중시하였다. 이는 전업 작가들이 등장하면서, 즉 작가란 직업의 전문화 현상이 일어나면서 예전보다 작가가 되기 위한 기본 소양이 광범위해졌다는 지적이기도 하지만, 작가들의 출신 사회계층이 변하면서 문학작품의 경향이 바뀌고 있지 않나 하는 가정이기도 하다. 넷째, 새로운 세대가 외국어에 관심을 가지는 등 세계주의를 열망한다는 점도 올바르게 파악하였다.

     이 선집에 실린 대부분의 단편들은 거의 습작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를 일관하는 공통된 변별적 글쓰기를 발견할 수 있다. 작품의 무대가 도시로 옮겨졌고, 크리오이스모 작가들처럼 세부적인 자연묘사를 하기보다는 사람들의 심리 묘사에 더 치중한다. 비록 이 선집의 젊은 작가들이 자신들의 변별적 글쓰기 전략을 확고히 수립하지 못했다는 점은 자명하나 적어도 새로운 경향의 문학이 탄생하고 있다는 점은 확실히 한 셈이다.

     결론적으로 라푸르카데의 선집은 비슷한 문화적 소양을 가진 신인 작가들의 발굴, 라푸르카데가 자신의 서문을 통해 문학의 장 내에서의 자리매김을 시도한다는 점, 아직 채 확립되진 않았지만 새로운 작가들이 이전 작가들과 단절적 관계를 갈망하여 변별적 글쓰기를 시작하고 있다는 점에서 1950세대의 역사적 시원을 가름하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고 할 수 있다.


II. 주제적 시원

     1954년이 채 지나가기 전에 1950세대 형성 과정에서 중요한 작품이 출판된다. 클라우디오 지아코니(Claudio Giaconi)의 단편 소설집 『고난의 청춘』(La difícil juventud)이다. 염세주의적 냄새가 진하게 풍기는 이 작품은 니카노르 파라(Nicanor Parra)와 피에르 마빌(Pierre Mabille)에게서 인용된 두 제언(題言)이 권두를 장식하고 있다. 파라의 인용문은 “사람들이 내게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을 때 나는 그렇다고 대꾸했다. 아무 계획이 없느냐고 물었을 때 그렇다고 대답했고, 앞으로도 그러리라고 했다”이며 피에르 마빌의 것은 “신의 말은 황폐해졌다”이다. 첫 번째 제언은 동문서답으로 시작하였다. 삶은 본질적으로 비논리적이라는 암시이고 그렇다면 아무 계획 없이 사는 셈이라는 뜻이다. 신의 말에 대한 의구심을 표방하는 두 번째 제언은 모든 사회적 통념이나 규범에 저항하는 당시 젊은이들의 삶의 태도를 극명하게 반영하는 것이다. 실제로 지아코니의 작품 속에 나타나는 모든 주인공들은 반항아들이고, 극도의 무기력에 빠져 있으며, 신경 쇠약에 시달린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가시(可視)적인 특별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삶의 본질을 이해할 수 없기에 왜 살아야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당황하고 있다. 단편집 제목과 같은 첫 번째 단편인 『고난의 청춘』의 주인공 가브리엘은 툭하면 직장에 결근한다. 그리고는 자기 존재의 의미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불안해하며, 화를 내면서 “나는 하루에 단 1분간의 휴식도 취하지 못한다”고 토로한다. 모든 단편들에 따분함, 현대사회에서의 의사소통의 단절 문제, 제반 사회적 가치에 대한 회의, 실존적 고뇌, 사르트르 식의 절대적 자유에 대한 고찰 등등이 나타나면서 그 동안 라푸르카데의 단편 선집이나 1950년 전후에 등단한 젊은 작가들의 작품 속에 나타난 여러 가지 주제를 총체적으로 열거하는데 성공했다. 그리하여 『고난의 청춘』은 이 무렵까지 출판된 1950세대의 어느 작품보다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어느 평론가는 이 작품이 특히 젊은이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는데 그 이유가 자신들의 모습이 거울에 비추어지듯 한 문학 작품에 그대로 투영되었기 때문이었다고 회고한다. 라푸르카데의 단편 선집의 미학적 가치에 회의적이었던 알로네(Alone, 본명은 Hernán Díaz Arrieta)같은 이도 『고난의 청춘』에 대해서는 비록 작품 분위기가 지나치게 어두운 게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칠레 문학의 새 시대가 도래한 것은 틀림없다고 확언할 정도였다. 결론적으로 『고난의 청춘』은, 미학적인 면보다는 분위기나 주제면에서이지만, 사람들에게 커다란 주목을 끈 1950세대 최초의 작품인 셈이다. 따라서 이 작품이야말로 주제면에서 1950세대의 변별적 글쓰기를 문학의 장에 공식적으로 자리매김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III. 미학적 시원

     1956년에서 1958년 사이에는 1950세대의 초기 작품들 중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소설들이 쏟아져 나오게 된다. 호세 마누엘 베르가라(José Manuel Vergara)의 『다니엘과 황금사자들』(Daniel y los leones dorados, 1956), 호세 도노소의 『대관식』(Coronación, 1957), 하이메 라소(Jaime Laso)의 『족쇄』(El cepo, 1958), 마리아 엘레나 헤르트너(María Elena Gertner)의 『도시의 섬들』(Islas en la ciudad, 1958), 마르가리타 아기레(Margarita Aguirre)의 『하숙생』(El huésped, 1958), 그리고 엔리케 라푸르카데의 『하늘나라에 오르기 위하여』(Para subir al cielo, 1958)등이다.

     『다니엘과 황금사자들』은 주인공이 유럽인들이며 작품 무대도 영국과 스페인이다. 세계주의(cosmopolitismo)를 지향하면서 특히 1920, 30년대 칠레의 문학의 장을 독점하다시피 하고 1950년대까지도 영향을 끼치면서 자연주의적 문학 기법을 선호했고 조국에 대한 관심을 부르짖어온 크리오이스모에 반기를 든 셈이다. 물론 외국인을 주인공으로 하고 외국을 무대로 했다고 해서 세계주의에 입각한 변별적 글쓰기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고는 할 수 없다. 그렇지만 크리오이스모 작가들이 소설의 무대가 될 국내의 어느 곳인가를 미리 찾아보고 자연과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의 관습과 말투를 꼼꼼히 조사하여 거의 그대로 소설 속에 묘사할 때와는 달리, 이국적인 장소나 인물을 상정하면서 현지 조사보다는 직접 가 보기 힘든 곳에 대한 상상력이 더 중요한 요소가 되고 어느 나라 사람이 읽어도 공감이 가는 허구 설정을 위해서는 모든 인간들에게 공통적인 본연의 감정을 탐구하여 제시하여야 하기 때문에 이전과는 다른 글쓰기 방법을 연구하게 된다. 실제로 위 여섯 작품 중에서 다른 소설들은 이국적인 무대와 주인공을 택하지는 않았지만, 특정한 사건과 인물을 제시하면서도 인간의 보편적 심리상태를 성공적으로 허구화하고 전형화시키려는 공통적인 자세를 보였고, 이를 위해 자연 묘사에 더 관심을 두었던 크리오이스모 작가들이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서구의 새로운 문학기법들을 실험적으로 수용하면서 외래 문화에 대해 적극적인 자세를 견지한 점에서 세계주의의 일단에는 도달했다고 할 수 있다.

     위 여섯 작품들 중에서도 호세 도노소의 『대관식』은 새로운 미학이 성공적으로 문학의 장에 자리매김하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 다른 작품들은 실험정신을 지녔다는 점만이 인정되었을 뿐 전반적으로 새로운 변별적 글쓰기가 아직 대다수 평론가와 독자들에게는 엉성하다는 느낌을 주었지만, 『대관식』만은 후한 평을 얻었고 위 여섯 작품들 중에서 아직까지도 인구에 회자되는 유일한 소설이다. 알로네는 이 작품을 윌리엄 포크너의 문학 기법을 절묘하게 도입하여 공히 1950년대 칠레 최고의 소설로 꼽히는 마누엘 로하스(Manuel Rojas)의 『도둑의 아들』(Hijo de ladrón, 1951)과 비견될 만한 미학적 완성도를 갖춘 소설이라고 칭찬하였다. 문학 평론가들이 기존작가들과 더불어 문학의 장 내의 담론의 합법성에 대해 판단하는 중요한 축을 이루고 있는 집단이라는 점이나, 알로네가 비록 구태의연한 인상주의적 서평만 썼었던 인물임에도 네루다를 발굴하는 등 빼어난 문학적 감각으로 몇 십년간이나 칠레의 유력 일간지 메르쿠리오(El Mercurio)지의 문학 칼럼 난을 통해 문학의 장을 좌지우지했던 점 등을 고려하면, 『대관식』은 단순히 미학적 완성도를 지닌 한 개인의 작품으로서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1950세대가 미학적인 면에서 자신들의 변별적 글쓰기를 문학의 장내에서 통용시킬 수 있도록 권력적 담론을 창출한 첫 작품이라는 점에서 커다란 의의가 있다.


IV. 세대 의식의 시원

     이 무렵 1950세대들은 작품을 통해 자신들의 변별적 글쓰기를 문학의 장내에 자리매김함과 동시에 이를 한층 공고히 할 또 다른 좋은 기회를 맞았다. 1958년 콘셉시온 대학이 두 차례에 걸쳐 개최한 칠레 작가대회로, 1950세대에 속한 많은 소설가들이 강연을 통해 자기 미학관을 직접 표방하고 이전 세대 작가들을 공식적으로 비판하였다. 사실 이 대회를 주도한 이들은 1938세대에 속하는 이데올로기 지향적이고 사회참여적인 문학을 표방했던 작가들로서, 그들의 목표는 1924년 페드로 프라도(Pedro Prado)의 『어느 지방판사』(Un juez rural)이래 살바도르 레예스(Salvador Reyes), 마누엘 로하스, 마리아 루이사 봄발(María Luisa Bombal)등이 간헐적으로 시도한 크리오이스모 극복을 이 대회를 통해 공식적으로 완수하여 문학적 담론들의 권력 관계를 재편하여 자신들이 문학의 장을 주도하려는 것이었다. 1950세대는 크리오이스모뿐만 아니라 1938세대까지 비판하면서 이들의 담론에 도전했다. 제 1차 칠레 작가대회에서 1950세대의 전략은 무엇보다도 1938세대의 사회참여 개념에 대한 비판이었다. 라푸르카데는 이 개념을 철두철미 거부하여 문학의 목표는 현실에 충실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허구를 창조하여 미적 쾌락을 제공하는 것이라는 극단적인 주장을 펼친다. 아르만도 카시골리(Armando Cassígoli)와 허버트 뮐러(Hebert Müller)는 문학의 사회참여 기능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이들은 헤럴드 불룸이 ‘테제라’ ―다른 사람들이 이미 쓴 용어를 계속 사용하지만 거기에 다른 의미를 새로이 부여하는 것― 라고 부르는 전략을 채택하여 사회참여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내린다. 1938세대가 주장하는 것처럼 반드시 이데올로기적, 경제적 문제를 소설 속에 반영하는 것만이 사회참여가 아니라고 비판하고 이 용어에 대한 의미 확장을 시도하였던 것이다. 몇 달 후에 치얀(Chillán)에서 열린 제 2차 칠레 작가대회에서는 좀 더 적극적이고 체계적으로 1950세대의 변별적 글쓰기가 소개된다. 여러 강연자들 중에서도 클라우디오 지아코니는 1950세대의 태동 원인, 형성 과정, 문학적 목표 등에 대해 자세히 언급했다. 우선 그는 이 세대가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에 커다란 영향을 받았음을 밝힌다. 그리고 그들은 칠레 문학에 전혀 공감을 느낄 수 없어 외국 문학을 더 선호하게 되었으며, ‘민주주의’, ‘조국’, ‘명예’ 등으로 요약되는 칠레의 기존의 사회적 가치들이 공허하게만 느껴지기 때문에 칠레 사회의 국외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하면서 젊은이들과 자신들 젊은 작가들의 반항적 기질을 옹호하였다. 자신들의 변별적 글쓰기 목표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1. 크리오이스모의 극복
2. 현대사적 질곡에 대한 고뇌와 세계성 획득
3. 재래적 문학 기법의 극복
4. 과감한 형식과 문학 기법 추구
5. 다채롭고 사실주의적인 인간 심리 탐구
6. 일화성(逸話性) 배제


     결국 두 차례에 걸친 칠레 작가대회에서 1950세대 소설가들은 유사한 내용의 발표들을 했다. 그렇지만 자신들의 공통점을 미리 깨닫고 칠레 작가대회에서 조직적인 움직임을 준비했던 것은 아니다. 이미 라푸르카데의 『칠레 신단편 선집』 서문에서 지적되었고 호르헤 에드와르즈(Jorge Edwards)가 다시 강조하는 것처럼 1950세대의 본질적인 성향들은 개인주의와 내면적 고독으로 특징지워지기에 일부 작가들을 제외하고는 지극히 고립적인 활동을 해왔던 것이다. 칠레 작가대회는 자신들의 문학의 장내의 자리매김 시도가 개개인의 독자적인 작업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된 셈이다. 그리하여 이 대회는 1950세대로서는 문학의 장을 좌지우지 해왔던 크리오이스모 작가들이나 1938세대 작가들과 다른 담론을 공식적으로 그리고 집단적으로 표방했다는 점에서도 중요하지만 젊은 작가들끼리 스스로의 벽을 허물고 동질감을 느끼게 되었다는 점에서도 큰 의의가 있다. 호르헤 에드와르즈가 고백하는 것처럼 마침내 그들은 자신들이 새로운 문학 세대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 것이다.


V. 대논쟁

     1959년은 수많은 사람들이 1950세대에 대해 각자의 의견을 개진한 한 해였다. 이 해 3월부터 1950세대를 둘러싼 대논쟁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논쟁의 시발은 호르헤 이반 허브너(Jorge Iván Hubner)가 신문에 기고한 “위기의 청춘?”(“¿Juventud en crisis?”)이란 글에서 젊은 작가들을 비판한데서 비롯되었다. 처음에는 극히 제한된 사람들만이 신문에 자유기고 형식으로 논쟁에 참여하였다. 하지만 곧 수많은 문학 평론가, 작가들이 논쟁에 가세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여러 잡지들도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1950세대의 본질을 파헤치려고 애를 썼다. 1950세대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젊은 작가들의 염세주의를 비판했고 당시에 등단하는 젊은 작가들이 실제로 한 문학 세대를 이룰 만큼의 동질성을 지니고 있느냐 하는데 회의적인 시선을 보낸다. 심지어는 1950세대란 라푸르카데와 지아코니등이 저열한 상업적 목표를 위해 젊은 작가들을 선전하는 과정에서 생긴 신기루일 뿐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1950세대 작가들은 1년 전인 칠레 작가 대회에서처럼 젊은 세대가 정신적 위기를 겪는 원인과 자신들이 변별적 글쓰기를 시도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천명하며 방어에 나선다.

     논쟁은 어느 쪽도 이겼다고 볼 수 없다. 1950세대는 이전까지 축적해 온 문학적 성과를 통한 문학의 장 내에의 자리매김을 논쟁을 통해 좀더 확고하게 굳혔다는 어느 정도의 자신감을 얻는데는 성공했지만 그들의 변별적 글쓰기가 아직 완전히 성숙되지 못했다는 숱한 비판에 직면해야 했을 뿐더러 문학의 장의 담론들의 역학관계를 완전히 바꾸려는 그들의 궁극적 목표를 이루기에는 너무나도 높은 장벽이 가로막혀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논쟁은 결론적으로 1950세대에게 고무적인 결과를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 1950세대의 작가들 중에서도 라푸르카데나 지아코니의 1950세대에 대한 정의가 지나치게 자의적이라고 느끼는 이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문학을 계속 추구해야 칠레 소설이 발전할 수 있다는 책임 의식을 더 한층 공고히 공유하게 되었다. 게다가 대논쟁은 독자들의 관심도 유발하여 아직 작품을 발표할 기회를 잡기 힘들었던 젊은 작가들의 숨통을 틔워 주었다. 예를 들어 라푸르카데가 자신의 신세대 이론을 입증시키려고 다시 발간한 『1950세대 단편집』(Cuentos de la generación del 50, 1959)등이 그런 기회였다.

     그러면 논쟁이 벌어지는 동안 나타난 몇 가지 쟁점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첫 번째 두드러진 쟁점은 1950세대라는 것이 과연 실재하는가 하는 것이다. 이 문제 제기는 무엇보다도 1950세대가 공동으로 작성한 문학 선언문 같은 것이 없다는 점에 기인한다. 라푸르카데나 지아코니는 수 차례에 걸쳐 1950세대의 문학적 목표와 미학에 대해 발표했고 많은 젊은 작가들이 자신들이 비슷한 글쓰기를 시도하고 있다는 점을 시인했지만, 한 번도 위 두 사람의 행동이 다른 작가들과의 협의에 의해 도출된 적은 없다. 더구나 두 사람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려 라푸르카데가 『1950세대 단편집』을 냈을 때 지아코니는 싣기로 한 자기 단편을 마지막 순간에 철회하기까지 했다. 게다가 이 단편집이나 1954년의 『칠레 신단편 선집』에 선정된 작가들 중 활발히 상호교류하며 비교적 동질적인 지적 형성과정을 겪었던 사람은 사실 몇 안 된다. 라푸르카데, 지아코니, 에드와르즈, 엔리케 린 정도만이 서로 교류하며, 사르트르, 카뮈, 카프카, 조이스, 보르헤스, 프루스트 등에 공통적으로 심취하고 때때로 삶과 사회에 대한 반발을 보헤미안적인 행동으로 달랬을 뿐이다. 기예르모 블랑코 같은 이는 자신이 1950세대 작가라는 레벨을 붙이게 된 것은 순전히 라푸르카데가 발간한 단편 선집이 열어 놓은 창을 통해서였을 뿐이라고까지 말한다. 이런 소외된 사람들이 라푸르카데와 지아코니의 그룹과 이질감을 느끼는 건 당연한지도 모른다. 그래서 호세 도노소 같은 이는 1950세대가 존재한다는 것을 현재까지도 일관되게 부정해 왔고, 그 근거로서 자신은 프랑스 문학과 실존주의보다는 영국 문학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았다고 말한다. 더구나 라푸르카데와 지아코니의 친우 그룹 역시 완전히 동질적이라고는 할 수 없다. 지아코니는 고골의 예찬자였고 라푸르카데는 앙드레 지드, 릴케, 우이도브로(Vicente Huidobro)의 추종자였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푸코의 용어를 빌어 말한다면 각자가 나름대로의 ‘도서관’을 가지고 있었던 셈이다. 따라서, 1950세대가 결코 동질적인 집단이 아니었다는 결론을 쉽게 도출해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50년 전후해 등단한 작가들을 1950세대로 분류하는 이유는 결코 구성원들간의 밀접한 관계의 유무만이 같은 문학 세대인가 아닌가를 결정하는 요인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레이몬드 윌리암스의 분류법에 따라 1950세대를 좀더 세부적으로 살펴본다면 이들은 문학의 장에 편입하는 과정에서 공통적으로 크리오이스모에 대해서는 일체 부정하고 거부하는 ‘반대적 입장’(oposición)을 견지했고, 1938세대에 대해서는 전반적으로 그들의 문학관을 ‘테제라’적으로 재해석하여 사회참여 개념에 다른 각도로 접근하는 ‘대안적 입장’(alternativa)을 취했다. 즉 이전의 칠레 소설에 대해 동일한 문제의식을 지녔고, 그것을 극복하는 수단으로는 공통적으로 국제적인 소설의 흐름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려 했다는 점에서 충분히 같은 세대로서의 동질감을 표출한 셈이다. 다만 라푸르카데, 지아코니, 에드와르즈, 린 사이의 관계 같은 ‘의식적’ 유대를 견지한 작가들보다 느슨한 유대에 머문 작가들이 많았을 뿐이다.

     두 번째 쟁점은 1950세대의 역사적 시원에 관한 문제로, 칠레 소설에 있어서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대논쟁이 벌어졌던 1959년의 시점에서 과연 문학적 역량을 갖춘 새로운 문학 세대가 이미 형성되어 있느냐 하는 의혹이다. 오늘날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의문은 일견 타당성이 있다. 사실 1950세대 작가들의 대표작이 쏟아져 나온 시점은 1960년대 중반 이후일 뿐 대논쟁이 있었던 시점까지는 거의 대부분의 작품들이 미학적인 면에서 엉성하다는 느낌을 주었기에 새로운 문학 세대가 이미 형성되어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가지기 힘들었다. 그렇지만 이러한 이유 때문에 1950세대의 형성기를 1960년대로 늦추기는 곤란하다. 대논쟁이 있었던 문제의 1959년은 사실 칠레 소설사에서는 다음 세대의 작가군들이 태동한 해이다. 이 해에 나왔던 아르만도 카시골리가 편찬한 『대학 단편 작가들』(Cuentistas de la Universidad)에는 1950세대 작가들 외에도 폴리 델라노(Poli Délano), 오스카르 한(Oscar Hann), 안토니오 스카르메타(Antonio Skármeta) 등의 작품들이 포함되어 있다. 1950세대와의 변별적 글쓰기를 수행한 이들의 존재는 1950세대의 역사적 시원을 1959년 이후로 파악하려는 모든 주장들의 설득력을 잃게 한다.

     세 번째 쟁점은 처음 논쟁의 시발점이 되었던 허브너의 글에서 지적한 대로 1950세대가 자신들의 소설을 통해 그린 젊은이들의 정신적 위기가 과연 타당하느냐는 것이다. 허브너는 양차 대전을 겪은 유럽의 정신적 황폐는 이해할 수 있지만 칠레 사회는 그런 심각한 좌절을 겪지 않고 순조롭게 성장하고 있는데 왜 젊은이들이 정신적으로 방황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허브너의 칠레 사회에 대한 낙관론적인 시각은 1950세대가 느끼는 것과는 사뭇 거리가 있다. 다른 중남미 국가들과 달리 비교적 안정적인 발전을 했던 칠레는 1920년대 이래 근대화가 진행되며 급격한 사회변동을 경험한다. 준거할 규범이 되었던 모든 사회적 담론들이 흔들리면서 칠레 젊은 층은 정신적 동요를 겪었다. 이 상황은 칠레가 순조롭게 근대화되지 못하고 새로운 가치관이 사회를 제어하는 확고한 담론으로 고착되지 못하자, 염세주의로 귀결되어 한동안 지속되었다. 구체적으로는 사회 중하층의 열화 같은 지지를 얻어 1938년에 출범했던 민중전선(Frente Popular) 정부가 사회적인 제 욕구 표출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이래 사회 계급간의 반목이 더욱 두드러졌고, 그 뒤를 이은 여러 정권, 특히 1952-1958년 사이의 카를로스 이바녜스 델 캄포(Carlos Ibáñez del Campo)정권은 근대화 정책에 실패하여 만성 인플레 등 경제 위기를 유발하여 칠레를 표류시켰다. 이 암울한 상태 속에서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기와 지적 형성기를 보냈던 1950세대는 다른 문학 세대보다 똑같은 사회 상황을 좀더 비관적으로 느꼈다. 지아코니는 한발 더 나아가 문제가 되는 것은 비단 칠레 상황만은 아니었다고 말한다. 그는 2차 대전을 직접 겪지는 않았지만 1945년의 원자폭탄의 파괴성에 커다란 충격을 받아 인류 문명 자체에 대해 회의에 빠졌기 때문에 칠레가 전쟁을 겪었나 안 겪었나 하는 문제와 상관없이 비관주의에 빠졌고, 침울한 문학을 생산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한다. 결론적으로 1950세대와 허브너의 상반된 견해는 현실인식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 어느 쪽이 옳다는 논쟁 대상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이 쟁점을 둘러싼 논쟁 과정에서 지아코니의 언명은 자신들의 문제의식은 단순히 칠레 사회의 사건들에 국한된 게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면서 1950세대의 세계주의 지향을 재천명한 점이 더 의미 있다고 할 수 있다.

     네 번째 쟁점은 1950세대가 그토록 떠들어대는 세계주의가 칠레 문학과 본질적인 관련이 있느냐 하는 점이다. 특히 초기 1950세대 소설에서 두드러졌던 실존주의와의 유사성에 의한 평가가 엇갈려졌다. 세 번째 쟁점의 연장선상에서 제기되었던 이 문제는 1950세대들이 작품 속에서 칠레의 문제점이 아닌 서구의 것을 유행을 쫓아 여과 없이 표출시키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에서 비롯되어 1950세대의 세계주의가 서구의 문예사조를 경박하게 모방하여 칠레의 정체성과는 전혀 상관없는 문학을 낳았다는 비판으로 귀결되었다. 이런 비판은 비단 대논쟁이 벌어졌던 1959년에만 제기된 게 아니라 그 후로도 상당히 오랜 기간 지속되어 왔다. 비판자들은 1938년의 민중전선 정부 수립에 갈채를 보냈던 1938세대 작가들과 쿠바 혁명에 고양된 1950세대 직후에 등단한 작가들이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문학의 주 기능은 사회참여라고 규정 지었기에 동질감을 느끼고 서로간에 옹호자로서 1950세대의 비사회참여적 경향에 맹공을 가했고 1938세대 작가 드로겟(Droguett)은 나름대로 1971년에, 마지막 20년간, 즉 1950세대가 문학의 장에 자리매김을 시작하여 모든 문학적 담론을 제어하기 시작하는 위치에까지 오르는 동안, 칠레 문학에는 아무런 특기할 만한 일이 없었다고 단언하고 1950세대 다음 세대 작가들인 안토니오 스카르메타나 파트리시오 만스(Patricio Manns)같은 사회참여적 작가들에게 큰 기대를 건다고 자기와 비슷한 문학관을 가진 작가들을 옹호하였다. 일반적으로 1950세대가 그 직전이나 직후 세대보다 사회 현실에 덜 예민했다는 주장은 칠레 문학사에서 흔히 발견되는 진술이다. 그러나 나는 이 점에 있어서 1950세대가 다른 세대들과 본질적인 차이점을 지녔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 다만 1950세대가 동일한 사회적 의식을 지녔지만 다른 변별적 글쓰기를 통해 문학의 장에서 독창성을 인정받으려 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1958년의 칠레 작가 대회에서 1950세대가 소위 말하는 ‘사회 문제’, ‘사회참여’라는 용어를 확대 재해석하려 했지 아예 용도 폐기하려 했던 것은 아님을 이 글 앞부분에서 밝힌 바 있다. 호르헤 에드와르즈의 경우도 자신은 사르트르에게 감명을 받아 평생 비판적 시각을 작품 속에 담으려 했다고 말한다. 흥미로운 것은 사르트르의 영향은 1950세대 직후 세대에게도 지대했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50세대가 비판을 받았다면 사르트르에 대한 글읽기에서 차이가 났을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헤럴드 블룸이 말한 대로 모든 사람들이 특정인의 글을 읽을 때 그 글을 곧이곧대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나름대로 “일탈된 글읽기”(lectura desviada)를 수행한다고 봤을 때 1950세대는 사르트르의 문학 작품에 나타나는 반항적 실존적 분위기에 더 중점을 두고 그 직후 세대는 사르트르의 『문학이란 무엇인가?』에서 주장하는 좌파적인 입장의 사회참여 이론 그 자체에 더 관심을 두는 상반된 독서법을 구사했다는 가정이 성립된다.

     한편 세계주의가 더 중요한가 아니면 칠레적인 사회 분위기를 재현하는 것이 더 중요한가라는 단순한 이분법적 판단을 요구하는 것은 중남미 역사를 살펴보면 큰 의미가 없다. 글쓰기 시원에서 문화적인 열등감에 사로잡혀 토착적인 요소보다 서구 조류에 더 민감한 것은 중남미 전반에 걸쳐 흔히 발견되는 현상으로, 비단 문학의 장 내의 상황이 아니라 지성계 전반에 걸친 일반적인 것이다. 멕시코의 철학자 레오폴도 세아(Leopoldo Zea)가 올바르게 지적한 것처럼 중남미의 전반적인 사상적 흐름은 자생적이고 창조적인 요소에 좌우되기보다는 서구 사상을 어떤 식으로 알맞게 변형시키는가 하는 문제에 천착해 온 특수성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1950세대만이 특히 세계주의를 열병처럼 앓았다는 주장은 대단히 자의적인 것이다. 실제로 중남미 자연을 묘사하는데 그토록 중점을 두었던 크리오이스모 역시 그 시원이 유럽과 결코 무관하지 않았다. 톨스토이식 글쓰기가 숭배의 대상이었으며, 중남미라는 공간에 최고의 가치를 부여하게 되기까지는 1차 대전을 전후해 유럽의 석학들인 스팽글러, 왈도 프랭크(Waldo Frank), 오르테가 이 가셋(Ortega y Gasset) 등이 줄기차게 서구 문명 혐오증을 보이거나 중남미 예찬을 했던데 크게 고무받았던 것이다. 1938세대는 고르키나 미국의 1930년대 사실주의 소설들을 글쓰기의 표본으로 삼았을 뿐만 아니라 이 세대의 볼로디아 테이텔보임(Volodia Teitelboim)같은 이는 자기 세대의 글쓰기 시원은 유난스럽게도 유럽풍이었다고 고백했고, 1938세대 중 비센테 우이도브로의 추종자들은 그를 전위주의라는 유럽의 최신 문학 조류를 수입한 세계주의자라고 치켜올려 세웠다. 또 1950세대 다음 세대의 스카르메타의 경우 미국의 록음악, 영화, 의복 등 서구의 대중문화적 텍스트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고 토로한다. 푸코식으로 이 현상을 설명한다면 칠레의 모든 문학 세대가 서구 조류에 바탕을 둔 도서관을 가지고 있었다고 결론지을 수 있기에 1950세대에 대한 비판은 무의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