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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세 도노소의 『음탕한 밤새』에 나타난 포스트모던의 특성 연구 / 이상원 2007-08-28 / 11364   

『음탕한 밤새』에 나타난 포스트모던의 특성 연구

이 상 원



1. 서론


음탕한 밤새의 표지      지역주의와 토착주의의 특성이 강하게 드러나는 칠레 사실주의의 전통은 붐(Boom) 시대를 거치며 안으로 수그러드는 듯했지만 60년대 초까지도 그 영향력이 남아 있었다. 호세 도노소(José Donoso, 1924)는 사회계층 사이의 긴장이나 갈등, 그리고 몰락해 가는 개인이나 사회집단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표현한다. 그의 소설들은 대토지 소유제와 같은, 대지주들이 영향력을 행사했던 19세기말과 20세기 초반의 칠레 사회현실 모습을 배경으로 하며 서로 상반되는 두 사회계층의 인물들이 서술형식의 중심축을 이룬다는 점에서 사회적 사실주의(realismo social)의 작품과 밀접한 연관성을 갖는다.1) 하지만 사회 문제의식이 중심주제인 사회소설이나 네오리얼리즘과는 달리 도노소의 소설은 현실 반영의 사회성을 극복하고 문학의 내적 자율성을 강조한다.2) 비록 도노소의 소설들이 사회적 사실주의의 경향이 있다고 해도 그의 소설세계는 사회소설이나 신사실주의(neo-realismo)의 범주에 국한되지 않는다. 세도밀 고이치(C. Goic)는 중남미 57세대의 대표적인 작가로 호세 도노소를 꼽는다. 그는 신사실주의에 대한 반론과 극복에서 시작된 이 문학 세대가 1950년과 65년 사이에 문학적 태동기를 거쳐 65년부터 70년대 후반, 아니 지금까지 중남미 현대소설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미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새로운 문학 경향이 초현실주의(Superrealism)나 비현실주의(Irrealismo) 경향과 일치하며 무엇보다도 허구와 상상의 세계를 강조하는 문학의 내적 자율성과 자기반영적 특징을 갖는다고 말한다.3) 모네갈(R. Monegal) 역시 중남미 붐 소설, 신소설들을 언급하며 도노소 소설의 특징으로 문학 언어의 혁신적 사용을 든다. 소설의 외적인 구조변화와 더불어 언어의 허구적 특성을 강조하는 것이다.4)

      비현실주의적 경향이나 초현실주의 그리고 혁신적인 언어 사용과 같은 도노소 소설의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작품이 『음탕한 밤새 El obsceno pájaro de la noche』(1970)이다. 이 소설은 이전에 발표되었던 그의 소설적 특성들을 그래도 차용하면서도 동시에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도노소는 우선적으로 19세기 유산의 일부처럼 인식되었던 전통적인 사실주의 표현을 거부한다. 그리고 몰락해 가는 현대 자아의 정신 병리적 심리상태를 병렬적으로 기술(記述)하면서 현실과 구분되는 문학적 상상력의 세계, 순수한 허구 세계를 펼쳐 보인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경향, 이후 포스트 붐이나 포스트모던 소설의 특성과 연관되는 새로운 소설기법들을 선보인다. 이전 작품들을 집대성하며 소설세계 변화에 대한 한 주기를 완성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작품세계를 추구하는 것이다.5) 새로운 소설형식이나 혁신적인 언어 사용과 같은 다양한 미학구조의 선험적 시도는 이후 포스트모던 소설에서 논의될 수 있는 중요한 특성들과 연결된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먼저『음탕한 밤새』의 서술구조의 바탕이 되는 사실주의 형식을 분석하기로 한다. 그리고 그 속에 숨어있는 허구적 상상세계의 비사실주의적 요소들을 분리해 문학의 내적 자율성에 해당되는 자기반영적 특성을 살펴보기로 한다. 동시에 도노소 소설에서 보이는 자의식 소설과 같은 메타 픽션의 세계, 또는 상호 텍스트성이나 패러디 같은 포스트모던 소설에서 강조되는 일반적인 논점들을 살펴보기로 한다.6)


2. 사실과 허구세계의 양면성 고찰

      도노소의 소설 『음탕한 밤새』는 미로와 같다. 사실적 묘사와 허구적 상상이 함께하기 때문이다. 이 새로운 소설은 현실과 비현실, 꿈과 불면, 환영과 환상 그리고 실제와 상상이 서로 부딪치고 충돌하는, 마치 정신분열증의 세계처럼 보인다. 확실히 도노소는 이 소설을 통해 사회적 사실주의의 굴레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인다.7) 다양한 관점에도 불구하고 도노소 소설의 대표적인 주제는 기본질서 체계의 붕괴와 자기 파괴이다. 이러한 주제 의식은 상반되는 두 사회계층 사이의 반목이 두드러지며 강조된다.8) 소수 독점사회 지배계급인 최상류 계층과 하류 기층민 사회계급을 대변하는 등장인물들이 서로 대립하고 충돌하며 끊임없는 긴장감을 형성해 가는 것이다. 그리고 서로 대비되는 사회 배경 속에 역사적 사실과 현실 그리고 상상과 허구의 세계가 함께 뒤섞인다. 앞으로 펼쳐질 모습이 사실주의 표현과는 거리가 먼 상상의 세계, 몽환 분위기와 광기로 가득 찬 정신착란의 세계가 될 것임을 암시하는 징후는 제목에서부터 잘 나타난다. 소설의 제목인 『음탕한 밤새』에서 보이는 이미지는 외설과 음란이다. 제목에서부터 도노소의 소설은 부정적인 관점으로 일상성의 존재와는 반대되는, 혐오스러운 배경과 어두운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이렇게 『음탕한 밤새』는 본격적인 이야기의 시작 그 이전부터 제목의 상징성을 통해 독자들을 정상이 아닌 비정상의 세계로 이끌어 들인다. 일상적 관점이 아닌 광기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게 하거나 기이함이나 공포심을 갖고 도노소의 세상을 바라보게 하는 것이다.9)

      『음탕한 밤새』의 공간 배경은 크게 둘이다. 이름 모를 노파들과 버려진 하녀들이 거주하는 영혼수련원(la Casa de los Ejércicios Espirituales)과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허구의 세계, 린코나다(Rinconada)가 소설의 주요 공간 배경이다. 특히, 린코나다는 이전까지의 도노소 소설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공간 개념이다. 영원한 여름이 계속되는 린코나다는 쾌락의 정원이다. 린코나다에 거주하는 괴물들은 할리우드 영화를 보며 보그(Vogue) 잡지를 읽고, 말보로 담배를 피우며 록 뮤직을 듣는다. 그리고 체 게바라와 슈퍼맨, 마를린 먼로 등과 같이 동시대의 유명인들에 관해 떠들어댄다. 실존인물들이 린코나다의 몽환적 분위기와 환각적 요소에 접목되는 것이다. 특히 린코나다라는 가상공간 속에 자리 잡은 슈퍼맨과 마를린 먼로의 이미지는 서로 극명하게 대비된다. 강인한 남성의 상징이자 정의와 약자의 보호자인 슈퍼맨과 연약한 섹스 심벌의 상징인 마를린 먼로와의 관계는 마치 고아 미소녀 ‘이리스 마테루나(Iris Mateluna)’와 남성 심벌을 상징하는 석판지 두상을 쓴 거인과의 관계를 연상하게 한다. 코린 테야도(Corín Tellado)의 도색잡지로 인해 이리스는 섹스 심벌인 지나(Gina)로 변모하려는 유혹을 받고 이런 그녀와 성관계를 맺기 위해 고관과 신사들, 지주와 변호사 그리고 심지어 상원의원들까지 포드 자동차 뒤에서 거인 두상의 석판지 가면을 쓴다. 미소녀와 성인 남자들과의 이런 과장된 관계는 남성 계급사회 안에서의 여성의 종속적인 위치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렇게 『음탕한 밤새』에는 문학적 상상을 통한 순수한 허구의 세계가 펼쳐진다. 현실반영의 모습이 아닌 기괴하고도 음란한 가상공간이 그의 소설세계 안에 처음으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거짓 공간처럼 받아들여지는 상상의 세계, 린코나다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은 움베르토(Humberto)와 무디토(Mudito)이다. 하지만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들의 서술 시점은 사실주의적 관점으로부터 출발한다. 칠레 명문가의 연대기 또는 전기라는 사실주의적인 관점으로부터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도노소의 소설은 칠레 중심부 마울레(Maule)강 유역의 대지주 명문가, 바스크 출신의 실존인물인 아스코이티아(Azcoitía)가의 일대기를 움베르토가 연대기 형식으로 기술하면서 시작된다.10) 화자이며 전기 작가로 등장하는 움베르토와 무디토의 삶 역시 사실적 요소를 바탕으로 그려진다. 움베르토라는 등장인물의 성격 규명 역시 그의 주인으로 나오는 헤로니모 아스코이티아(Jerónimo de Azcoitía)와의 관계로부터 이루어진다. 헤로니모와의 우연한 만남을 통해 등장인물의 특성과 그가 속한 사회계층의 성격이 분명해지는 것이다. 신분 상승을 꿈꾸는 평범한 법학도로 나오는 움베르토는 사회 신분상 중간계층에 속한다. 반면 헤로니모는 최상류 사회 지배 계층을 대표한다. 최상류 계층의 혈통에 대한 헤로니모의 자랑과 허세는 기형아인 그의 아들, 보이(Boy)의 출생에서 극명하게 보인다. 헤로니모는 움베르토에게 정상인이 아닌 보이를 위해 그만을 위한 특별한 공간을 만들라고 한다. 그리고 보이를 위한 사적인 공간인 그곳이 정상처럼 보일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정상인의 세계보다 더 뛰어나 그의 아들이 스스로의 본모습과 정체성을 영원히 깨닫지 못하게 한다. 이렇게 보이를 키우기 위해 만들어진 허구의 세계, 가상공간인 린코나다는 괴물들이 살아가는 기괴한 곳으로 남성 중심주의의 지상낙원처럼 묘사된다.

      헤로니모의 전기 작가가 된 움베르토는 린코나다의 도서관이 있는 탑 속에서 보이의 세상을 관리한다. 그리고 아스코이티아가의 마지막 연대기를 적어 나간다. 하지만 바깥세계와 단절된 생활을 하는 그는 정체성 위기로 인해 심한 갈등을 겪는다. 내적 갈등과 정신 병리 현상을 겪던 그는 과대망상증을 보이다가 결국 벙어리이자 귀머거리인 무디토로 변신한다. 움베르토가 겪는 이러한 정체성 변화는 소설 서술형식의 변화를 가져오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전기 작가로 나오며 연대기 형식의 사실주의 표현을 이끌어가던 기존의 관점을 포기한다는 상징적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사실주의 작가로서의 존재 의미를 벗어던진다는 움베르토의 변신은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분리해내는 전환점이 된다. 현실과의 완전한 단절을 의미하게 되면서 사실과 허구와의 경계에 서있었다는 양립 관점이 허물어지게 되는 것이다.

      움베르토의 현재 모습인 무디토는 영혼수련원에 있는 마드레 베니타(Madre Benita)를 보조해 준다. 하지만 그 역시 정체성의 혼돈을 겪으며 다른 사람들의 모습으로 변한다. 움베르토/무디토는 스스로의 본모습을 잃어버린 채 가면을 쓴 배우처럼 행동한다. 움베르토는 헤로니모의 선거운동 과정에서 주인의 정체성을 갖고 그의 모습으로 변신한다. 린코나다에서는 주인을 대신해 완벽한 헤로니모의 역할을 한다. 또 남성성을 제거하고 영원수련원의 늙은 노파 패거리중의 하나인 마녀로도 변신한다. 헤로니모의 연인 역할을 하는 이리스 마테루나의 개로 나타나며 거대 두상의 석판지 가면을 쓴 거인으로 변신할 때는 강력한 힘을 가진 남근(男根)의 상징적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마침내 수련원 여성들의 구세주이자 희생양인 기적의 아이, 헤로니모의 아들인 보이의 추한 모습으로 변하게 된다. 이러한 등장인물들의 다양한 정체성 변화는 외형적인 변모로부터 만들어진다기보다는 내적 의식세계의 전환으로부터 일어난다. 그리고 여러 의식세계로 해체되어 갈라진 그들의 모습은 분열된 인간 본성의 또 다른 얼굴들이다. 동시에 겉으로 드러나는 붐 소설의 일반적인 테마비평, 주체의 해체와 분열이라는 중남미 정체성 문제의 한계를 넘어선다. 끊임없는 정체성 변화와 다양한 정체성 전이(轉移)현상으로 발생되는 근본적인 문제, 즉, 글쓰기 문제에 관한 자기반영적 물음을 던져주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등장인물들의 정체성 문제는 문화비평에 대한 단순한 테마분석의 한계를 넘어 자의식 소설세계의 근분 문제점들을 상징적으로 제시하게 된다. 그리고 정체성 표현으로 상징되는 언어의 자기반영성은 이후 포스트모던 시대에 구체화되어 나타나는 자의식 소설, 포스트모던 소설의 한 흐름이었던 메타픽션과 연관이 된다.11) 혁신적인 언어사용과 글쓰기의 문제, 소설 정체성에 대한 기본적인 물음들을 독자에게 던져주게 되는 것이다.


3. 무정체성(no-identidad): 기표(significante)와 문자(escritura)의 자기반영성 고찰

      등장인물들의 정체성 문제나 무정체성과 같은 정체성의 전이 현상은 여러 각도로 해석될 수 있다. 움베르토에 대한 정체성은 사회적 가치보다는 문학적인 동기로 규정되어 진다. 움베르토는 익명의 군중들을 대신하는 것보다도 예술적 가치 추구의 대상이 되는 작가라는 개별 정체성을 획득하려고 한다. 작가라는 정체성을 획득하려는 그의 모습은 사실상 소설구성 요소의 핵심이 되는 언어의 문제, 문자의 상징적 역할과 대비된다.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작가가 되려는 움베르토의 노력은 결국 실패한다. 하지만 작가가 아닐지라도 그는 자신의 이름이 있다. 소설 속에는 자신의 이름조차 없는 많은 등장인물들이 존재한다. 움베르토의 어머니와 여동생 역시 마찬가지다. 그녀들의 존재는 여러 번 언급되지만 그녀들의 이름은 결코 나오지 않는다. 이렇게 이름조차 없는 다수의 인물들을 대변하는 존재가 영혼수련원에 있는 늙은 노파들이나 주인으로부터 버림받은 하녀들이다. 소외된 계층인 그들은 모두가 사회적 가치가 없는 무의미한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체성을 가진 존재와 그렇지 않은 존재라는 둘 사이에서 느끼는 움베르토의 갈등은 언어라는 사회적 기호, 고정 의미에 대한 지시기호(記票/significante)와 지시대상(記意/significado) 사이의 차이만큼 크다. 헤로니모처럼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에서 오는 갈등은 마치 움베르토의 눈에 비친 사실과 허구사이의 인식차이 만큼이나 크게 된다.

      많은 등장인물들이 이름이나 문자로 비유될 수 있는 사회적 기호, 개별 정체성이라는 자신의 이름을 갖지 못한 채 소설 속에 존재한다. 다른 존재로부터의 인정과 차이를 가져오는 개별 정체성 획득에 대한 움베르토의 욕구는 사실주의 규범을 어겨가면서까지 아스코이티아가의 전기를 완성하려는 데서도 잘 보인다. 그래야만 그의 책에 전기 작가로서 움베르토라는 이름이 새겨지기 때문이다. 움베르토는 린코나다에서 글을 쓰는 동안 정체성 상실과 환각 그리고 궤양으로 고통을 겪으며 스스로의 글이 몸 안에서 터져 나오는 이상한 환영을 겪는다. 그의 몸과 신체 일부가 분리되어 따로 떨어져나가고 그들 각각이 고유한 삶을 갖게 된다는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해체되고 분리된 그의 몸뚱이와 신체 일부가 각자 따로 새로운 삶을 찾게 된다는 이상한 경험은 움베르토가 등장인물의 역할뿐만이 아니라 또 다른 실체를 상징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실패한 작가라는 움베르토는 고유 이름이라는,12) 개별 정체성을 갖지 못하는 소설구성 요소의 주체, 즉, 문자의 역할을 대신한다. 새로운 주관적 의미를 양산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떠돌아다니는, 언어라는 의미의 기표 그 자체로 인식될 수 있는 것이다. 작가의 정체성을 획득하지 못한다는 것은 움베르토가 스스로 원하는 것을 표현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움베르토의 글과 문자는 그가 원했던, 표현하고자 했던 지시대상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지시어, 기표만을 가리킨다는 메타언어의 역할을 하게 되고 만다. 렐리아(M. Relia)는 『음탕한 밤새』에서 보이는 이러한 혁신적인 언어사용을 언급하며 기표의 특권에 따르는 언어의 끝없는 이전(移轉) 현상을 강조한다.

언어학적 관점에서 살펴본다면 도노소의 소설은 보르헤스 작품과 다른 모습을 보인다. 허구 질서의 가능성에 대한 역설적 형태의 글쓰기가 아닌 것이다. 또 옥타비오 파스처럼 서로간의 차이에 대해 끊임없이 부딪치고 투쟁하면서 순간적으로 화합을 꾀하는, 이항 대립적 글쓰기 형태와도 다른 모습을 보인다. 도노소의 소설세계는 파스의 경우처럼 시적 경험을 통해 근원이나 진리에 접근할 수 있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투쟁의 해결 장소가 아니다. 그의 소설 언어에는 이러한 구원이나 소망이 없다. 왜냐하면 글쓰기의 장은 대화의 영역이 아니고 또 문체상으로 내가 너로 건너가는 통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음탕한 밤새』는 기표와 기의 사이의, 지시어와 지시대상 사이의 대화에 대한 최소한의 가능성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 둘 사이에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 대화의 가능성 대신 존재하는 것은 바로 언어라는 고정된 의미가 결정되는 근원이나 중심에서 멀어지고자 하는 주변화 작업이다. 그리고 기의의 대가에 대한 기표의 특권에 힘입은 언어의 끊임없는 이전 현상이다. 도노소의 소설 언어는 관점의 해체와 중심 부재가 강조되는, 기표와 기의라는 서로간의 차이 개념을 보여주고 강조하는 성난 바로키즘(barroqismo)의 또 다른 형태이다.13)

      이렇게 움베르토는 서술자로 증인의 역할뿐만이 아니라 실패한 작가라는 소설언어, 부유하는 기표를 상징한다. 소설언어의 자기반영적 특성을 암시하는 중요한 소설장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영혼수련원의 늙은 하녀들이 전해주는 구전 이야기들은 문자라는 사실주의 형식, 움베르토에 의해 기술되는 연대기 형식과는 서로 대립된다. 개별 정체성이 없는 영혼 수련원의 늙은 노파들에게는 다른 것과 구분되는 ‘차이’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목소리는 다른 사람들과 섞여 버린다. 그녀들의 의식세계 역시 마찬가지다. 이러한 개별 정체성 혼돈은 서로간의 대화형식으로 발전해 가며 구전문화의 전승이라는 전설, 또는 신화적인 서술 형태로 발전한다. 신화와 전설, 그리고 민담과 같은 구전 이야기 형식은 사실주의 형식과 대비되는 작품 서술구조의 또 다른 중심축이다. 움베르토에 의해 기술되는 전기나 연대기 형식과 서로 대구를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14)

      다른 한편으로 등장인물들이 갖는 끝없는 정체성의 전이현상, 무정체성(No identidad)은 문자의 자기 반영적 특성 외에 이야기의 힘, 우화성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고정된 의미를 갖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는 무한 지시기호처럼 무정체성은 단지 무엇인가를 향하고 가리킬 때만 생명력을 얻는다. 단지 상상할 때만, 무엇인가를 쓰기 위해 생각할 때만 되살아나는 존재인 것이다. 무정체성의 상징적 인물이 바로 임분체(Imbunche)이다.15) 소설 속의 대표적인 임분체는 말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무디토이다. 무디토의 또 다른 얼굴인 임분체는 고유 정체성을 상실하거나 숨기기 위한 자기파괴 방법의 도구처럼 등장한다. 그리고 결국 재로남아 연기처럼 사라져버리는 자기멸렬이자 자기파괴라는, 도노소 텍스트의 대표적인 주제를 다시 한번 일깨운다.


4. 저자의 죽음과 상호텍스트성 그리고 패러디

      주요 등장인물들의 정체성 변화는 단순한 테마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언어의 자기반영성과 문학의 내적 자율성을 강조하는 또 하나의 표현 방법이다. 이러한 관점은 움베르토가 전기 작가로 등장하며 실질적으로 작품을 써가지만 결국 거짓 작가로 내몰리며 그의 책이 다시 쓰여 진다는 점에서, 또 중요화자로서의 역할이 끊임없이 바뀌며 독자이자 공동저자의 역할을 하는 무디토에게 작가 본연의 임무를 넘겨준다는 점에서도 잘 나타난다. 화자인 움베르토는 증인으로 나오지만 동시에 글쓰기의 주인공인 작가로 나온다. 작가로서 그는 헤로니모와 이네스, 보이 그리고 페타 폰세(Peta Ponce) 등 중요 인물들을 만든다. 사회적 배경과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등장인물들은 움베르토의 책, 헤로니모의 전기 속에 존재하는 현실 반영성을 지닌 실존인물들이다. 하지만 동시에 움베르토에 의해 만들어지고 기술되는 그리고 무디토에 의해 다시 쓰이는 허구의 존재기도 하다. 작가로서 움베르토의 역할은 바르트(R. Barthes)가 말한 ‘저자의 죽음’(La muerte del autor)처럼 무디토에 의해 사라진다. 그의 책이 실질적인 독자 역할을 했던 무디토에 의해 다시 쓰여진다는 설정에서 알 수 있듯이 수동적 의미의 독자를 위한 ‘읽혀지는 텍스트(texto legible)’가 사라지고 무디토라는 새로운 독자에 의해 다시 만들어지는 ‘쓰여지는 텍스트(texto escribible)’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움베르토가 사실주의 관점으로 기술했던 이야기 역시 이미 존재했던 구전 설화나 신화의 내용을 다시 복제한 것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마치 상호텍스트성(Intertextualidad)이나 양피지(palimpsesto) 이론과 같은 새로운 유형의 읽기 행위를 불러오게 한다.16) 텍스트가 현실반영성을 가진 작가 고유의 창작물이 아니라 이미 존재했던 기존의 텍스트들을 모방하거나 베낀다는, 포스트모던에서 논의되는 텍스트와 텍스트 간의 상관관계에 대한 여러 가지 의문을 제기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도노소의 소설은 모방과 짜깁기 또는 덧글 쓰기와 같은 상호텍스트성에 관한 새로운 관점을 일깨운다. 그리고 소설이 마치 고대의 서사시처럼 익명의 집단이나 민중들에 의해 만들어 진다는 관점, 즉 전통적인 서술의 형식을 취하지만 이미 떠도는 이야기들을 다시 편집한 것에 불과하다는 점 역시 기존에 전해지는 이야기들을 글로 적어 보여주는, 순수 창작물이 아닌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 텍스트 이해의 또 다른 의미인 메타텍스트의 성격을 띠게 한다.17)

      특히 작가 스스로가 허구의 세계에 움베르토/무디토라는 등장인물로 존재하고 텍스트 밖의 존재인 독자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동시에 공동저자로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의 역할은 글쓰기에 대한 자기반영적 특성이라는 자의식 소설세계의 일면을 보인다. 작가가 증인으로 작품 속에 뛰어 들어가고 독자와 서로 치환되는 소설장르의 일상적 규범을 무너뜨리는 소설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작가와 등장인물 그리고 독자사이의 전형적 역할을 거부하는 소설 그 자체에 관한 이야기는 메타픽션 소설의 대표적인 형태이다.18) 이러한 현상은 독자의 역할을 하는 무디토가 공동저자로 픽션의 허구세계를 넘나들고 작가와 독자의 역할이 서로 전도되며 픽션과 리얼리티가 함께 뒤엉키게 되면서 더욱 두드러진다.

      린코나다의 도서관에서 움베르토는 아스코이티아가의 마지막 연대기를 적어 나간다. 하지만 사실적 기술의 바탕이 되었던 외부 세계와의 연결고리는 상상력이 소진돼가며 점차 미약해진다. 움베르토는 헤로니모가(家)의 연대기를 완성하기 위해 사건을 왜곡한다. 그리고 위축된 엘리트 명문가의 힘을 북돋기 위한 거짓 기술을 한다. 거짓 진술은 움베르토의 책 출간을 위한 대가이기도 했다. 무디토는 헤로니모에게 어울리지 않는 영웅의 이미지를 부여했다고 해서 움베르토를 사기꾼 작가이자 위선자로 부른다. 무디토가 린코나다의 도서관에 있는 움베르토의 책을 훔친 것은 바로 이러한 사실에 대한 깊은 죄책감 때문이었다. 그는 마드레 베니타에게 이러한 사실을 고백하고 움베르토의 죄를 끝내기로 한다. 헤로니모 가계에 대한 연대기 마지막 부분을 다시 적기로 한 것이다. 움베르토와 무디토는 동일 인물이자 같은 작가로서 결국 상상력의 소진에 의해 스스로의 정체성을 잃어버린다. 움베르토가 상상을 통해 헤로니모의 새 모습을 만들어냈듯이 무디토 역시 순수한 상상의 세계를 통해 헤로니모의 마지막 순간을 적어 나간다.

이제 헤로니모를 제거해야만 한다. 당신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나의 상상력이 필요하다. (…). 당신은 비틀거리기 시작한다. 이제 당신은 무너져 내릴 것이다. 당신의 몸뚱이는 떨어지면서 부서져 수천 조각으로 분리되고 그 부서진 조각들은 내 차에 실릴 것이다. 나는 조각 난 당신 몸을 질질 끌고 정원으로 가 바람과 비, 그리고 시간과 잡초더미들이 당신의 부서진 몸뚱이를 썩게 만들고 완전히 없애버릴 생각이다. 나에게는 아직도 당신의 마지막 모습을 적기위한 여백이 많이 남아 있다. 더 비참한 당신의 마지막 장면을 만들기 위한 시간도 여전히 많다. (『음탕한 밤새』, 472)

      상상력 고갈로 인해 더 이상 글을 쓸 능력을 잃어버렸다는 점에서 그들은 실패한 작가이다. 하지만 소설의 결말 부분에서 무디토는 움베르토의 잘못을 시정하며 헤로니모의 전기를 다시 적고 그를 텍스트에서 지워 버린다. 이처럼 『음탕한 밤새』에는 상상력 고갈로 고심하는 작가 스스로의 자화상도 반영이 된다. 현실감을 상실해 가는 허구적 글쓰기에 대한 작가의 자의식적 태도가 엿보이는 것이다. 이렇게 움베르토나 무디토는 바르트의 ‘고갈의 문학’에서처럼 상상력이 소진돼가는 포스트모던 시대의 작가들을 대변하는 또 다른 매개체의 역할을 한다고 해석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무디토가 움베르토의 전기를 다시 쓰기로 결정한 사실은 ‘저자의 죽음’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더 이상 현실을 반영할 수 없다는 사실주의적 관점에 대한 역설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리얼리티를 모방하거나 반영할 수 없다는 언어의 현실재현성에 관한 역설적인 표현, 패러디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19) 사실과 허구가 함께했던 공간 내에서 사실주의적 관점의 일방적 포기는 결국 도노소의 소설이 객관적인 현실을 모방하지 못하고 허구성만을 드러내주는 소설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설에 관한 소설, 즉 자기반영적 메타픽션이 되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도노소는 현실반영과 재현이라는 사실주의 작품에 대한 역설적인 패러디, 허구세계의 구축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는 결국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그가 써내려간 모든 것을 없애 버린다. 이름 모를 노파가 강가에 앉아 자루 안에 든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데서 보듯이 허구세계의 모든 것을 한줌의 재로 만들어 공중에 날려버리는 것이다. 마치 쓰면서 지워가는 소설처럼 종말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 시작과 끝이 없는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포스트모던 소설 구성 형식의 일반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뫼비우스 띠 구조형식은 언어가 리얼리티를 지칭하지 못하고 결국 다른 언어를 가리키게 된다는, 그래서 끝없이 언어의 구조 속을 맴 돌 뿐이라는 언어의 미로 현상을 강조한다.20) 도노소의 소설 『음탕한 밤새』는 이처럼 시작과 끝이 같거나 또는 없는 소설형식을 취한다. 언어의 현실반영성에 회의를 갖는 대표적인 결말의 형태, 쓰면서 지워가는 포스트모던 소설형식의 한 예를 보여주게 되는 것이다.


5. 결론

      사실과 허구 사이의 경계를 허물며 도노소의 소설은 사실주의의 관점을 벗어난다. 사실과 허구를 경계를 넘나드는 이러한 모호성은 등장인물들의 악한 본성이나 무의식적인 충동, 기존 질서의 파괴와 해체, 기이한 존재로의 육화(肉化) 그리고 고유정체성 상실로 인한 타자로의 변신과 같은 비현실적인 상황이 화자의 의식세계에 아무런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면서 강조된다. 이렇게 사실과 허구라는 견고한 이분법이 무너지고 서로가 같은 차원에서 존재하는 새로운 소설형식의 등장은 소설이 객관적인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허구화된다는, 리얼리티의 허구성, 주관성, 복수성을 강조하는 포스트모던의 새로운 흐름이기도 하다.

      혼돈으로 점철된 무질서한 세계 『음탕한 밤새』에서는 모든 등장인물과 상황이 서로 역전, 또는 전도될 수 있으며 문학적 상상력만이 이 모든 질서를 변하게 한다. 이렇게 도노소의 새로운 소설은 상황에 따라 하나의 전기, 연대기, 토착주의 소설, 풍자소설, 자전소설, 독백소설, 허구의 공상소설 그리고 작가의 자전적 관점이 들어나는 자기반영 소설이 될 수 있다. 여러 다양한 장르로 해석될 수 있는 탈 장르화 경향이나 장르의 확산, 그리고 이른바 같은 장르 안에서의 ‘영역의 혼동’ 역시 포스트모던 세계의 주요 특징 중 하나이다.

      도노소의 소설은 사실과는 동떨어진 완전한 허구의 세계를 탐닉한다. 그리고 허구적 생명력을 통한 새로운 글쓰기 작업에서 저자의 죽음이나 소설언어의 정체성 같은 메타픽션의 자의식 개념을 보여준다. 『음탕한 밤새』에서 보이는 포스트모던의 메타픽션 경향은 작중인물이자 저자 그리고 독자의 역할이 서로 바뀌는 치환현상에서 두드러진다. 저자 역할을 하는 움베르토는 사실주의처럼 작품 위에 있거나 모더니즘처럼 작품 뒤에 숨지 않는다. 대신 포스트모던 소설처럼 직접 작품 속으로 뛰어든다. 동동저자로 등장하는 독자 역할의 무디토 역시 마찬가지다. 그리고 움베르토의 전기가 무디토에 의해 다시 쓰이고 마침내 이것마저도 한줌의 재로 사라져 버린다는 결말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소설구성 형식에 대한 자기반영 세계를 보여준다. 객관적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허구성만을 보여주었다는 작가의 고백처럼 쓰면서 지워가는 소설의 형태를 갖는 것이다. 동시에 모든 것이 재로 사라져버린다는, 사실주의 표현의 한계를 암시하는 결말은 메타픽션과 포스트모던 소설의 대표적인 기법중 하나인 역설, 사실주의 소설형식에 대한 패러디의 한 형태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순수한 상상의 세계로 만들어진 허구세계 역시 새로운 창조가 아니라 이전에 존재했던 여러 다른 이야기, 어린 마녀이야기나 성녀 이야기와 같은 전설과 신화, 민담 등을 짜깁기했다는 사실 또한 양피지 이론과 같은 포스트모던의 상호텍스트성에 관한 여러 논의를 떠올리게 한다.

      이처럼 『음탕한 밤새』에는 포스트모던 사고의 기본이 되는 글쓰기 작업 그 자체에 대한 진지한 성찰모습이 잘 나타난다. 물론 도노소의 소설이 완전한 메타픽션이나 잘 짜인 형태의 포스트모던 소설 형식을 다 갖추었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소설이 허구세계의 구축을 통해 사실과 허구와의 관계를 보여주는 반사실주의 소설 경향을 보이며 소설 정체성이나 글쓰기에 관한 문제를 다루는 소설에 관한 소설, 곧 메타픽션의 특징들을 갖고 있음은 부인 할 수는 없다. 현실을 반영하는 전통적 의미의 소설이 아니라 그 자체의 진실성과 허구성을 응시하는 자기반영적, 또는 자기 지시적 픽션의 특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각주

1) 『대관식 Coronación』(1957)과 『이번 일요일 Este domingo』(1966) 그리고 『무한지대(無限地帶) El lugar sin límites』(1967)와 같은 도노소의 소설 비평에 대한 일반적인 접근방법론은 사회학적 관점이다. 사회적 사실주의라고 불리는 이 접근 방법론은 아츄가르(H. Achugar(1979), Ideología y estructuras narrativas en José Donoso)나 폴라르의 도노소 연구에 관한 선집[A. Cornejo Polar(1975), José Donoso: La Destrucción de un mundo]에서 잘 살펴볼 수 있다.

2) 이 같은 관점은 고도이(Eduardo Godoy)와의 인터뷰에서 도노소 스스로가 밝힌 점이기도 하다. 고도이와의 인터뷰에서 도노소는 『대관식』) 과 『이번 일요일』를 언급하며 이 작품들이 사회적 사실주의의 작품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단순한 사회적 저항이나 사회 계층 간의 갈등과 같은 사회적 주제만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Eduardo Godoy(1971), “Diálogo con José Donoso”, Signos, 5(2).

3) Cedomil Goic(1972). Historia de la novela hispanoamericana. 245-250.

4) 모네갈은 붐 소설 작가들을 시기에 따라 세 부류로 나주고 도노소를 가르시아 마르케스, 바르가스 요사, 카브레라 인판테, 푸엔테스 등과 함께 제일 마지막 세대에 포함시킨다. Emir Rodríguez Monegal(1976). Narradores de Esta América, Tomo 1, 11-36.

5) 호세 프로미스는 『음탕한 밤새』를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간의 고독』과 비교한다. 그러면서 이 소설이 더 이상의 변화와 새로운 표현 기법이 불필요한, 도노소 소설세계의 한 주기를 마감하는 완벽한 작품이라고 평한다. José Promis Ojeda(1975), “̈La desintegración del orden en la novela de José Donoso”, en La desctrucción de un mundo, 31.

6) 포스트모던이 모더니즘의 연장선에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는 것은 후기모더니즘 또는 탈 모더니즘으로 불리는 용어선택의 차이만큼이나 미묘한 문제이다. 포스트모던 소설의 새로운 특성이라고 불리는 논점 역시 마찬가지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던 소설의 구분과 경계를 명확하게 한다기보다는 서로간의 ‘차이’에 관한 최소한의 조건, 언어의 현실반영성이나 언어의 현실 재현성에 초점을 두고 포스트모던 소설의 특성들을 이전 소설과 비교해 설명하기로 한다.

7) Ana María Moix(1971). Los cuentos de Donoso, 11.

8) José Promis Ojeda(1975), “̈La desintegración del orden en la novela de José Donoso”, en La desctrucción de un mundo, 15-41.

9) Hernán Vidal(1972), José Donoso; surrealismo y rebelión de los instintos, 180-182.

10) “이 소설에서 도노소는 중남미 특유의 대토지 소유제나 대농장 지주제의 실상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헤로니모 아스코이티아라는 주인공을 통해 변화하는 시대의 구체적인 사회 형태까지도 그려내는 것이다. 부유한 헤로니모에게는 항상 거물 국제자본가라는 이름이 따라 다닌다. 그러나 헤로니모가 금융가이자 산업자본가라고 해도 그가 소유한 땅만으로 이런 부를 축적했을 리는 만무하다. 그의 특징적 이미지는 아스코이티아가 연대기의 사실적인 기술에서 보이듯이 정치에 참여하며 여러 세대를 거친 대농장 주인의 후손, 노예와 같은 하인들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중남미 대지주들의 전형적 모습이다. (…) 아스코이티아 가와 토지와의 관계는 칠레 소수집정제의 기반이 되는 농촌의 대토지소유제와 긴밀한 연관성을 갖는다.” L. Julio Rodríguez(1984), La literatura hispanoa- mericana entre compromiso y experimento, 59.

11) 메타픽션이란 용어는 1970년 윌리엄 개스(Willian H. Gass)가 「철학과 픽션의 형태」라는 논문에서 “소위 반소설이란 것의 대부분은 실로 메타픽션들이다”라고 언급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이 용어는 흔히 비평가들의 입을 오르내리던 ‘반소설’ ‘반사실주의 소설’ ‘초소설’ ‘우화’ ‘내향적 소설’ ‘자아생성 소설’ 그리고 ‘자기반사적 소설’등을 총괄하며 “자의식 언어로써 그 자체의 구조를 반영하는 픽션”을 말한다. Patricia Waugh(1984), Metafiction: The Theory and Practice of Self-Conscious Fiction, 14. 또는 “픽션 구조들이 어떻게 생성되고 리얼리티가 어떻게 서술적 가정과 관습들을 통해 걸러지고 변형되는가를 탐색하는 픽션들”이라고 정의될 수 있다. Larry McCaffery(1982), The Metafictional Muse: The Works of Robert Coover, Donald Barthelme and William H. Gass, 5. 즉, 메타픽션이란 포스트모더니즘 속의 글쓰기의 한 양식으로 픽션과 리얼리티와의 관계에 대한 의문이나 관심을 제기하기 위해 자의식적으로 만들어진 허구적 글쓰기를 말하게 된다.

12) 소설 속에서 언급되는 고유 이름은 문자라는 상징성을 갖는다. 개별 정체성의 상징적 표현인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옥타비오 파스(Octavio Paz)의 작품 『원숭이 문법학자 El mono gramático』(1970)를 통해서도 살펴볼 수 있다. 『원숭이 문법학자』에서 파스는 언어의 일원론적 가치체계 속에 존재하는 지시기호와 지시대상 사이의 차이를 강조한다. 그리고 그 예로 사물의 고유한 이름을 비유한다. 고유한 이름을 빗대어 시어(詩語)의 특성과 문자, 언어의 자기반영적 특성을 설명하는 것이다. 아날로지(analogía)와도 같은 이러한 비유 과정은 도노소가 말하는 사회적 기호로서의 정체성 추구, 고유 이름의 획득 과정과 같은 의미로 해석 될 수 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물과 실체들은 그들 나름대로 고유한 이름을 갖는다. 또한 자신만의 고유한 이름을 소유할 가치를 지닌다. 하지만 누구도 그것을 갖고 않다. 우리가 사는 현실세계에서는 누구도 고유한 자신만의 이름을 갖지 못할 것이며 또 지금 현재도 갖고 있지 않다.” Octavio Paz(1984). “El mono gramático” en Poemas(1935-1975), 560.

13)Lelia Madrid(1898), “Jose Donoso: El adios a la semejaza”, en La fundación mitológica de América Latina, 74-75.

14)구전 이야기 형식과 전기나 연대기 같은 사실주의 기술(記述)의 형식의 대구구조는 서로 반대되는 두 사회 계층에 대한 상징적 표현이다. 말과 입으로 전해지는 전통적인 구술형식은 비소유 문맹의 소외계층을 대변한다. 그리고 문자로 기록되는 사실주의 표현은 문학형식을 이해하는 사회 지배계층을 상징한다. 역사적 관점에 비쳐본다면 영혼 수련원의 여성들과 노파들은 성적, 경제적 착취의 부산물들이다. 사회에서 버림받은 힘없고 소외된 존재들인 것이다. Hector Calderón(1987), Conciencia y lenguaje en el Quijote y El obsceno pájaro de la noche, 194-196.

15)스페인 학술원에 의하면 임분체(칠레 고유 원주민인 아라우카족의 말로는 ivumche)는 6개월 된 어린아이를 훔쳐 동굴로 데려가 괴물로 만들어 버린다는 악인이나 마법사, 또는 악마적인 존재를 말한다. 뮬러 레이바(O. Muller-Leiva)는 임분체를 밀모단 두목의 수컷으로 묘사한다. Oreste Plath(1962), Seúdonimo: Folklore chileno, 121-122. 칠레의 옛 원주민 칠로에(chilóe) 족의 전설에 의하면 임분체는 마녀들의 술법도구로 사용되는 흉측하게 변형된 어린아이를 뜻한다. 이 전설에 따르면 임분체로 납치당한 어린이는 듣고 보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말할 능력도 잃어버리게 된다. 여러 임분체 이야기 중에 공통점은 마녀들이 어린 남자아이를 이용한다는 것과 임분체로 변형시키기 위해 아이 몸의 모든 열린 기관들을 꿰매버린다는 것이다.

16) 양피지 이론(Palimsesto)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양피지가 처음에 썼던 글을 지워내고 그 위에 다시 새로운 글을 써 넣었다고 해도 여전히 희미하게 이전에 씌어졌던 텍스트의 흔적을 갖기 때문이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작가들은 결국 백지 위에 새로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양피지 위의 글처럼 희미한 자국들이 남아있는 이전의 자취 혹은 기호를 복원할 뿐이며 포스트 모던시대의 텍스트에는 그 이전 텍스트의 희미한 자국처럼 끊임없는 창조가 아닌 ‘모방’ 혹은 ‘베끼기’만이 존재하게 된다. 한 예로 제라르 쥬네트의 상호텍스트성 연구서인 『팔림세스트 Palimseste』(Paris Seuil, 1982)는 제목이 암시하고 있는 것처럼 한 텍스트 이전의 다른 텍스트와의 관계, 즉 초텍스트성(Hypertextuality)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보르헤스연구회(1993), 『중남미 문학과 포스트모더니즘의 문제점』, 63.

17) 문자가 아닌 말로 전해지는 구전 이야기 형식은 하녀 페타폰세를 통해 전해진다. 그리고 그녀가 전해주는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은 움베르토와 무디토 책 내용의 기원이 이미 일반 민중들 사이에 전해오는 어린 마녀 이야기와 어린 수도녀의 전설에 근거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18) “메타픽션은 허구세계를 현실세계로 간단히 확장시켜버리는 사실주의자들의 근본적인 가정을 불신한다. 그리고 그 가정에 대한 비진실성을 폭로한다. 메타픽션 작가들은 독자들이 만족할만한 대안세계를 제사하지 않는다. 대안세계를 구성하기에 충분하거나 일관성 있는 구성요소들을 고의적으로 제공하지 않는 것이다. 메타픽션 세계에서는 작가가 텍스트에 뛰어들고 작가와 독자, 그리고 등장인물들이 서로 치환되며 작중인물들은 작가가 살고 있는 현실세계로 걸어 나온다. Patricia Waugh(1984), Metafiction: The Theory and Practice of Self-Conscious Fiction. 136.

19) 파트리샤 워는 메타픽션의 대표적인 형식으로 역설과 모순 그리고 발췌물과 텍스트 상호간의 과잉 침해라는 4가지 경우를 든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풍자의 역설적 효과를 기대하는 패러디와 전도를 메타픽션의 가장 대표적인 수법 중 하나라고 강조한다. 파트리샤 워(1992), 『메타픽션: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이론』, 김상구 역(1992), 181-204.

20) 자기반영 소설, 메타픽션의 한 형태인 ‘뫼비우스의 띠’ 소설 구조는 포스트모던 소설 형식의 대표적인 형태로 리얼리티가 얼마나 유동적이며 언어가 얼마나 자의적인가를 보여준다. 권택영(1990),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무엇인가―지역주의에서 미니멀리즘까지―』, 312.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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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스페인어문학 33호(200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