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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아멜라 엘티트의 작품에 나타난 저항의 전략 / 이성훈 2007-08-28 / 9901   

디아멜라 엘티트의 작품에 나타난 저항의 전략
- 『룸페리카 Lumpérica』를 중심으로-

이 성 훈



1. 서론


룸페리카 표지      1973년 피노체트의 쿠데타와 뒤이은 정치, 사회적 억압은 문학의 영역에서도 예외는 아니었고, 검열과 출판기관의 폐쇄, 그리고 지식인들의 망명 등으로 인해 칠레 내의 문화적 역량은 많은 부분 훼손되게 된다.1) 이후 피노체트의 군부 쿠데타를 “마르크스주의 암”으로부터 국가를 보호하고자 하는 애국주의적 시도로 파악하는 입장과, 민주적 질서와 인권을 유린한 세력으로 간주하는 또 다른 입장간의 대립은 쿠데타 이후 칠레 사회를 가르는 주요한 준거틀이었고, 문학영역 또한 여기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이러한 대립 속에서 후자는 주로 ‘증언’이라는 형식과 고발문학, 그리고 망명 문학을 통해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을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 볼 점은 자신들의 경험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증언이나 고발이라는 형식으로 권위주의 정권과 그 문화에 저항했던 경향이 아니라, 이러한 경험들을 타자화하고 보다 미학적으로 형상화하고자 했던 작가들의 작업이다. 이런 태도들은 전통 좌파 그룹에 의해 엘리트주의적이고 실험적인 것으로 비판되었지만, 이 작업들은 그 시대를 기억하는 또 다른 형식을 제공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특히 피노체트의 권위주의에 대응하는 새로운 전략을 모색했던 디아멜라 엘티트(Diamela Eltit, 1949- )의 작품 세계는, 이 시기 문학을 피노체트에 대한 저항이냐/옹호냐 라고 하는 단선적으로 평가하는 데서 벗어나 당대 칠레 지식인들의 지적 태도를 살펴 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성찰의 틀을 제공할 것이다.

      칠레 문학사에서 매우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그녀의 작품세계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칠레 현대사의 가장 중요한 분기점이라고 할 수 있는 피노체트의 쿠데타와 매우 밀접한 상관관계를 보여 주고 있다. 쿠데타 이후 칠레 사회가 경험하고 있는 다양한 문화적, 심리적 경험들을 함축적으로 드러내 보이고 있는 그녀의 작품세계는, 다양한 층위에서 주어지는 억압과 칠레 사회가 경험하고 있는 분열과 병리적 현상들을 명민하게 포착하는 서사 전략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그녀의 서사전략은 당대 현실을 객관적으로 재현하는 사실주의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글쓰기의 자유로움을 통해 다양한 서사적 실험 속에서 당대 현실이 갖는 억압과 폭력을 드러내고, 거기에 균열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현실 참여 경향과는 차별성을 드러낸다.

      그녀의 다음과 같은 자전적 진술은 쿠데타 이후 칠레 사회의 분위기와 지식인들이 경험하고 있는 지적 태도를 잘 보여준다.

무기력하게 공존하는 법, 일상적 굴욕감을 견디는 것, 무관심이라는 안락함에 빠지지 않도록 싸우는 것, 절망적인 경제적 상황 속에서 생존하는 것, 이런 것들을 배우는 것이 여러 해 동안 내가 생존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내가 하는 것이 무엇엔가 직접적인 공헌을 할 수 있다고 믿어서가 아니라, 이런 식으로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 자신의 명예를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에 거의 강박감을 가지고 이런 상황 속에서 글을 썼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의 자유가 위협을 받았을 때, 내가 선택한 것은 자유롭게 글쓰기를 할 수 있는 자유였습니다.2)

      이런 그녀의 글쓰기에 대한 입장을 가장 체현하고 있는 작품이 『룸페리카』(1983)라고 할 것이다. 이 작품에 대한 평가는 매우 이중적이라 할 수 있다. 기존의 문학적 전통을 옹호하는 입장에서는 지나치게 실험적이고 신비주의적이라는 비판을 하고 있으며, 다른 한편에서는 새로운 서사전략을 통해 당대현실을 포착하는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다. 공포감을 야기한다고까지 평가되는 그녀의 작품이 주는 난해함은 우선 장르의 해체, 구문의 파괴, 텍스트 구조의 해체라고 하는 기존의 문학적 관행의 전복에서뿐만 아니라, 문학을 직접적 저항의 수단으로 이해하는 정치적 입장에 대한 전복에서 기인한다.3) 즉 쿠데타 이후 칠레의 정치, 문화적 억압을 드러내고 이에 대한 직접적 형식의 저항을 재현하고자 하는 좌파의 문학적 태도에 대한 비판이 그녀의 작품 속에는 내재해 있는 것이다. 이들 좌파 그룹들은 정치적 억압을 고발하고 민주적 질서의 회복이라는 당면과제에 직접적으로 복무하지 않는 전위주의적이고, 엘리트적인 작품들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비난하는 것이다.

      본고에서는 『룸페리카』를 대상으로 하여, 다이멜라 엘티트가 권위주의 시기 칠레를 재현하는 방식과 그것에 대한 저항의 형식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CADA의 미학적 입장과 그 영향

      디아멜라 엘티트의 작품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녀가 1979년부터 활동했던 전위적 예술 조직인 CADA(Colectivo de Acciones de Arte)에 관한 이해가 필요하다.4) 쿠데타 이후 칠레 문학과 문화계의 흐름을 가장 예민하게 읽어내고 있다고 평가되는 넬리 리처드(Nelly Richard)는 피노체트 시기의 정치적 억압에 저항했던 문화계의 흐름을 크게 두개로 나누어서 설명하고 있다. 이는 피노체트에 의한 단절과 좌절의 경험이 정치 지형 내에 일정한 변화를 강제했고, 이러한 좌파 정치지형의 변화가 자연스럽게 문화의 영역에서 일정한 변화를 가져온 것으로 이해된다. 정치적으로 아옌데 시기의 역사적 경험과 그 대안의 모색을 둘러싼 갈등은, 보다 정통주의적인 좌파 노선에 충실해야 한다는 입장과 유럽식 좌파 노선으로의 선회를 주장하는 그룹으로의 분화를 촉발하게 된다. 이러한 저항 진영의 정치지형의 변화가 문화의 영역에도 적용될 수 있는데, 그에 의하면 문화와 정치, 기호와 이데올로기, 정체성과 재현의 문제를 둘러싼 관점의 차이를 보여준다.5) 주로 정치적 억압 국면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놓고 진행된 양자간의 입장 차이는 결국 재현 가능성이라는 보다 본질적인 문제를 놓고 서로 다른 입장을 내 보인다. 기존의 사실주의적인 재현의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한 그룹이 주로, 전위주의적 기법을 통해 새로운 저항의 형식을 마련하고자 한 것이다.

      결국 전자의 투쟁적 정통주의는 여전히 증언이나 고발 등 저항적 메시지를 형상화하여 대중적 감수성을 자극하고 전복적 힘을 구체화하는 도구로 문학을 사용하고자 했다. 이에 반하여 새로운 경향이 나타났는데, 이들은 주로 전통적 저항 형식과 재현의 가능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새로운 미학적 형식을 모색하고자 했다. 이러한 경향은 1977년부터 주로 시, 서사, 시각 예술의 영역에서 새로운 문화적 형식을 모색하기 위해 전통적 문화적 사유체계와 형상화 기법에 대한 비판적 검토를 진행했다. 이런 비판적 재개념화를 통해 신 전위주의적인(neo- vanguardista) 문학적, 예술적 흐름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 흐름을 대표하는 그룹이 바로 CADA로, 이들은 주로 권위주의 정부의 공식적 담론에 대응하는 수단으로써 시각적이고 극(劇)적인 재현 수단을 모색했다. 이들은 피노체트 이후 칠레 사회가 경험하는 분열과 갈등을 공식적인 언어와 담론체계가 담아내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파악한 것이다. 이들의 이러한 판단은 예술과 문학 전통에 기대고 있는 장르, 테크닉, 언어 등에 대한 비판적 검토로 이어졌고, 공식적인 언어에 의해 배제된 ‘또다른 칠레’의 현실을 남아낼 수 있는 예술 형식을 시도한 것이다.6) 이 그룹은 작가인 라울 수리타(Raul Zurita), 엘티트, 시각 예술가인 로티 로젠펠드(Lotty Rosenfeld), 환 카스티요(Juan Castillo), 그리고 사회학자인 페르난도 발셀스(Fernando Balcells)로 구성되었는데, 엘티트는 처음부터 이 그룹에 참여하여 자신의 표현 장르인 산문과 시각예술, 퍼포먼스 등의 표현수단을 결합하여 자신의 메시지를 극단화하는 방법을 모색했다.7)

      이들의 미학적 입장에 관해 리처드는 이들이 신전위주의적인 예술을 극단적으로 밀고 나가는 것은, 독재로 인해 야기된 뒤틀려진 현실 속에서 상실된 현실, 예술, 기호들 간의 조응을 조형화해내는 실험적 태도라고 말한다. 즉 칠레 사회의 급격한 변화가 유발한 총체 혹은 유기적 결합으로서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에 균열을 야기했고, 이 점이 바로 기존의 예술적, 사회적 체계에 대한 전위주의적인 비판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8) 이런 맥락에서 CADA의 작업은 “별을 보며 항해하던 행복한 시기”로의 복귀가 아닌, 더 이상 좌표로서 별자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드러냄으로써 예술적 긴장을 불러일으키고, 파편화한 칠레 사회에 대한 각성을 자극하게 되는 것이다.

      CADA가 보여준 작업들, 「굶어 죽지 않기 위하여 Para no morir de hambre」 (1979), 「마이푸 Maipu」(1980), 「아, 남아메리카여 Ay, Sudamérica」(1981)들은 이런 그들의 입장을 가장 두드러지게 보여주든 일종의 행위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안에서 그들은 칠레 사회라는 문맥 속에서 정치, 사회, 문화적인 것 사이의 결합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라는 문제에 있어 “해석적 긴장”을 보여준다.9)

      즉 권위주의 시기 칠레는 서로 대립적인 기호체계를 가진 단절된 두 개의 담론 영역으로 나뉘는데, 가해자와 영역과 피해자의 영역이 그것이라는 것이다. 가해자들의 담론은 자신들의 진실을 강제하기 위한 ‘훈육적 틀’로서 작동하는 ‘질서’ 혹은 ‘체계’라는 이데올로기를 적극적으로 전파하고, 자신의 권력 장악을 자연스러운 어떤 것으로 각인하고자 했다. 반면에 이러한 담론의 작동에 대응하기 위해, 타자들은 일상의 대안적 담론 속에서 규범적 형식과 공식적 언어에 대항하는 새로운 형식을 모색하고 이를 통해 이견을 재절합해야만 했다.10) 이러한 권위주의 정부의 억압적이고 규범적인 언어에 포섭될 것인가, 아니면 거부할 것인가 사이에 존재하는 윤리적, 정치적 차원의 분열에서 야기된 이러한 CADA의 고민이 나름의 문화적 실천의 형식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 그룹은 전략적으로 선택된 장소와 소재를 퍼포먼스화 함으로써, 권위주의 하의 일상이 어떻게 은밀하게 통제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구성원들은 권위주의 정권의 검열에 저항하는 수단을 모색하고, 그리고 인간 육체 그 자체가 어떻게 지배 담론의 헤게모니를 재현하고 있으며, 또 저항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CADA의 행위 예술은 개인적, 사회적 육체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다는 전제에 기반하고 있으며, 이런 결합을 시각적인 예술을 통해 대중적으로 보여주고자 했다.11) 예를 들어 1980년의 「마이푸」라고 이름 한 퍼포먼스에는 유곽 앞에서, 엘티트가 유일한 등장인물로 나타나 유곽 앞 보도를 물로 청소하고 자신의 팔을 태우고, 상처 내는 행위를 보여준다. 이런 과정을 통해 개인의 육체가 사회적 의미를 획득하는 텍스트로 기능하게 되는 것이다.

      이들의 이러한 입장은 그들이 세 번째 행위예술 「아, 남아메리카여」에서 보여준 예술가에 대한 정의에서도 명확하게 드러난다.
삶의 일상적인 수준을 확장하는 작업이 유효한 예술의 유일한 시도이자 유일한 방향이며, 가치있는 유일한 작품이다. 또한 비록 그들의 삶의 공간이 정신적이라고 할 지라도 이러한 작업을 하는 각 개인들이 바로 예술가이다.12)

      CADA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던 엘티트는 작가로서도 쿠데타 이후의 문학적 관행과 사회, 정치적 문맥에 대응하는 주목할 만한 서사전략을 보여주고 있다. 즉 그녀의 『룸페리카』는 전통적인 젠더, 장르 등을 가로지르면서 총체성을 상실한 상황에서 문학 텍스트와 역사는 파편적일 수밖에 없으며, 또한 사회적 의미 역시 암시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맥락에서 서사를 쓰는 행위 역시 매우 유동적인 기획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드러내 보인다.

      10개의 장으로 구성된 『룸페리카』는 전통적인 플롯이나 갈등에 기반한 인물의 성격변화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파편적인 대화와 서사로 구성되었는데, 이는 “주인공이 총체적인 맥락으로 확장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의미와 고정된 맥락을 제공하는 담론적 지평이 역사적 단절이라고 하는 분절적 폭력 아래에서 파편화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녀의 작품세계가 보여주는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다양한 사회적 층위와 개인들의 발화를 담아내는 ‘파편적’ 성격이라 할 수 있는데, 이러한 파편적 성격이 갖는 의미는 전체에 대한 전망의 부재, 파편화환 사회에 대한 상징으로 이해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그녀의 작품 세계는 피노체트 시기의 억압적 권위를 합리화하는 모든 종류의 담론들에 대한 회의와 불신을 유발하게 하는 다양한 테크닉을 담고 있다고 할 것이다. 이것들은 권위로 인정된 다양한 담론에 의혹을 제기하고, 유일한 진리라고 하는 권위주의가 유포하는 절대주의의 근간을 전복시키는 도구로 작동한다.13)

      『룸페리카』가 보여준 담론 코드의 단절, 언어적 절합 등의 새로운 형식 모색을환 까를로스 레르토라(Juan Carlos Lértora)는 “소수자 문학의 시학(poética de literatura menor)”이라 명명한다. 즉 이 작품에 나타나는 전통적이고 정전으로 간주되는 경향과 차별되는 새로운 담론적 실천을 들뢰즈와 가타리의 소수자 문학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이렇게 명명하는 것이다.14) 물론 들뢰즈와 가타리는 소수자 문학을 바르샤바와 프라하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의 문학이 가지고 있는 특징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하고, 이를 소수 언어를 사용하는 소수민족의 문학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들이 카프카의 예를 통해 분석하고 있듯이, 언어의 탈영토화, 정치성과 밀접하게 결합된 개인, 언표행위의 집단적 구성이라는 소수자 문학의 정의는 엘티트의 경우에도 일정하게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 환 카를로스 레르토라의 입장인 것이다. 다시 말해 지배 집단에 정서적으로 통합되어 있지 않지만, 그들의 언어를 사용해야 하는 저항 진영의 언어와 서사 전략이 바로 소수자 문학의 문학이라는 형태로 발현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서사전략의 측면이외에도 ’소수집단‘이라는 의미가 보여주듯이 소수자들이 경험하는 정치적 억압과 사회적 불평등에서 야기되는 표현과 발화의 자연스런 ’탈영토화‘를 통해 지배언어의 규범과 발화체계를 전복하고자하는 탈영토화의 욕망이 바로 소수자 문학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엘티트의 글쓰기가 들뢰즈와 가타리의 소수자 문학에 대한 정의와 명확하게 부합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추구하는 서사전략의 유사성으로 인해 소수자 문학이라고 간주한 레르토라의 의견도 유의미하다. 같은 맥락에서 렐리 리처드도 이 작품을 쿠데타 이후 칠레 내러티브가 구성되어가는 과정에서 등장한 엘티트의 첫 번째 작품으로, 권위주의 칠레의 심각한 균열과 구조의 해체라는 문맥 속에서 등장한 선도적인 작품으로 간주한다.15)


3. 텍스트로서 육체, 그리고 육체에 쓰기

      엘티트의 글쓰기는 많은 부분 CADA가 가지고 있었던 문제의식과 그 문제의식을 풀어내는 미학적 형식에 영향을 받고 있다. CADA와 그녀의 문학작품과의 관계에 대해 그녀 스스로 자신의 시각 예술작품과 문학작품을 명확하게 구분할 수 없고, 사실상 동일한 창조적 과정의 산물이라고 말하고 있다.16) 이처럼 시각예술과 퍼포먼스적 요소는 그녀의 문학작품의 중요한 특징을 이루는데, 우리가 검토하고 있는 『룸페리카』에서도 중요한 구성요소라고 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형식적 층위에서 드러나는 많은 서사적 전략들, 특히 전통적인 의미의 플롯이나 인물들의 성격변화에 기대지 않고 퍼포먼스적인 구조를 차용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것이다. 예를 들어 1장은 1-1, 1-2, 1-3, 1-4라는 번호가 붙은 네 개의 하위절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각의 하위 절은 끝에 “첫 번째 장을 위한 코멘트(comentarios a la primera escena)”, “첫 번째 장을 위한 지침(indicaciones para la primera escena)”, “첫 번째 장의 오류들(errores de la primera escena)”이라는 제목이 달린 설명문의 배치함으로써, 동일한 사건에 대한 다양한 시각의 도입을 극적인 구조를 통해 보여주고, 기존의 전통적인 소설 장르의 구성문법에서 탈피하고 있다.

      또한 이 작품은 많은 부분 CADA 시기 보여주었던 「마이푸」에 나타난 자신의 육체를 통한 퍼포먼스적 요소가 서사라는 틀 내에서 주인공인 일루미나다(L. Iluminada)의 모습을 통해 이 작품의 중요한 모티브가 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부분을 살펴보면서 이 작품이 갖는 메시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이 작품의 시공간적 배경은 해가 질 무렵부터 동이 틀 때까지, 통금이 진행되는 산티아고 있는 한 광장이다. 작품의 등장인물은 일루미나다와 “창백한 사람들(los pálidos)”로 표현되는 광장에서 밤을 지내는 도시의 하층민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이름이라든지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어떠한 구체적인 기표도 갖고 있지 못하고, 단지 시간적으로 밤, 공간적으로 외부와 단절된 공원에서 가공의 빛에 의해 부여된 가상의 정체성만을 가지고 있다.
이 밤이 일루미나다에게 남긴 것은 하나의 축제였다. 이제는 비록 낮의 자연광으로도 예전처럼 빛나지 않지만, 그녀는 자신의 육체 위에 쏟아지는 조명 빛에 의해 끝임없이 빛났다.
조명 빛은 그녀를 마치 화장하듯이 비추면서 멀리 전등과 연결된 전선이 있는 곳까지 여러 각도로 번져나갔다. 이 불빛에 의해 그녀의 얼굴은 파편화 했지만, 자신의 모든 육체를 드러냈다.(9)17)

      위의 인용문에서 알 수 있듯이 통행금지가 실시 중인 광장에는 바로 옆 건물에서 강하게 조명이 내리 비추고 있고, 이 위에서 내리 비추는 조명이 낮의 자연 조명을 대체하고 있다. 이는 권위주의 통제 하의 칠레라는 당시 상황에 대한 알레고리로 해석될 수 있는 상황설정이며, 이 안에서 등장인물은 자신을 비추는 조명에 의해 새로운 정체성 즉, 일루미나다라고 하는 정체성을 부여 받게 된다. 또한 광장주변을 어슬렁거리는 도시룸펜들도 개별적인 이름을 갖는 것이 아니라, 단지 조명 빛의 결과로 인해 창백한 사람들이라는 정체성을 보여 받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 광장에 등장하는 인물들, 그리고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가공의 조명 빛에 의해 부여된 정체성만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 불빛이) 그들에게 생명을 부여할 것이다. 시민으로서의 정체성 말이다.(9)

      일루미나다라고 하는 여성 등장인물은 이제 새로운 정체성을 가지고, 외부와 단절된, 그리고 외부조명에 의해 감시된 공간에서 자신의 새로운 존재의미를 모색해 나가게 된다. 이 과정은 주로 두 개의 층위에서 진행되는데, 하나는 자신의 육체를 통해 텍스트 의미를 확장해 나가는 방식이고, 다른 측면은 광장에서 창백한 사람들과의 소통을 얻어가는 과정이다. 이 과정을 통해 엘티트의 여성 인물과 소설이 의미를 형성해 나가게 된다.

      디아멜라 엘티트의 작품들은 주로 “자신을 절합하는 사회적이고 개인적인 힘들에 대한 함몰이나 혹은 저항이라는 의미를 드러내는 물리적 공간으로서 육체(들)의 구성에 기반하고 있다”는 진술에서 보여지듯이 『룸페리카』에서의 여성 주인공의 육체는 작가의 정치적 의미가 쓰여지는 물리적 공간, 즉 텍스트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18) 작품 속에서 일루미나다는 광장의 조명에 의해 노출된 자신의 육체를 광장 주변에 존재하고 있던 창백한 자들의 시선에 관음적으로 드러냄으로써, 자신의 육체를 대상화하고 있다. 그러나 광장의 조명이라는 외부의 ‘감시자’에 의해 대상화한 그녀의 육체는 점차 다른 의미를 획득해 나가게 되는데, 이는 자신의 육체를 텍스트로 사용하는 행위를 통해서다. 즉 조명에 의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존재성을 부여받지 못했던 인물들이, 아니, 조명에 의해 기존의 정체성과 단절을 경험한 그들은 이제, 조명에 의해 단지 대상화한 육체성을 가진 존재로 등장하고, 다시 그 육체를 텍스트로 사용하여 이제 새로운 의미를 확보해나가는 것이다. 쟝 프랑코가 지적하고 있듯이 엘티트의 작품은 “권위주의 정권에 저항하기 위해, 그리고 문학을 상징적으로 가장 소외된 공간에 밀어 넣기 위해, 상업적 텍스트의 가독성에 저항하기 위해, 저항의 공간으로서 여성의 육체를 전경화 했다.”19) 이런 맥락에서 그녀의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인물은 여성주의라고 하는 해석 방식을 뛰어 넘어 새로운 정치적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노출된 형태로 드러나는 육체에서부터 일루미나다는 자신의 육체를 통해 전복적 의미를 부여해 나가게 되는데, 그것은 자신의 육체에 대한 쓰기를 통해서이다. 그녀는 광장 바닥에 자신의 육체를 부비면서, 그리고 자신의 팔에 상처를 내고, 머리를 자르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육체를 성화시키는 제의를 거쳐 간다. 이것은 일종의 희생제의로서 의미를 부여 받는다고 할 수 있는데, “육체의 상처를 제의화하는 의미전화를 통해 그녀의 상처는 전복적 의미를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불로 육체에 위해를 가하는 것은 육체가 자신의 의지로 스스로를 강하게 하는 상처를 남길 것이다.(37)

      그녀는 자신의 팔과 머리에 상처를 내서 피를 흘린다. 그리고는 마지막으로 창백한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자신의 머리카락을 광장 중앙에서 자르게 된다.
그녀는 봉투 깊숙이 손을 넣어 거기서 가위하나를 꺼냈다.
가위를 든 손을 머리위로 가져갔고, 자신의 머리를 묶었던 머리끈을 잘랐다.
그리고는 광장의 중심으로 나아가서, 조명 아래에서 자신의 머리카락을 자르기 시작했다. 주위의 시선을 모으면서 그녀의 머리카락은 바닥에 떨어졌다.(216-217)

      브리토(Eugenia Brito)는 이 머리를 자르는 행위를, “머리를 자르는 과정은 자기 자신의 해방을 모색해가는 과정에서 하나의 전환을 의미하는 하나의 의미있는 목표를 달성하고 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즉 일루미나다가 행하는 자신의 육체에 대한 가학적 행위는 여성의 육체에 대한 관음적 시각과 자신의 육체에 각인되어 있는 다양한 종류의 사회적 코드에 대한 저항으로 해독되는 것이다.20)

      많은 비평가들은 이 주인공의 변화과정을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읽어내고 있음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바처럼 지속적으로 엘티트가 텍스트로서 육체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 왔다는 점에서 다른 해석도 가능할 것이다. 우리는 인간의 육체를 무엇인가가 각인된 신체로 간주한다. 강내희의 표현을 빌면, 우리 몸에는 다양한 무수한 길들이 나 있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습속은 이 길들의 조합, 우리 몸에 새겨진 글자들의 형태, 문자의 지형, 즉 문형에 따른 효과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몸은 지금까지 인간을 구성해온 어떤 가치들이 투사된 하나의 효과이고, 인간의 육체는 그 가치들을 현재적으로 재현해내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육체에 자해 하는 행위는, 자신의 육체에 강제된 사회적 억압과 금기에 대한 저항적 쓰기로 의미를 확장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일루미나다는 자신의 텍스트인 육체에 메시지를 각인하는 과정을 통해, 저항적 메시지를 획득해 내는 것이다.21)


4. 상처와 신음의 문학

      자신의 육체를 텍스트로 사용하는 행위, 그리고 그 육체에 가해하는 행위를 텍스트에 뭔가를 쓰는 행위로 이해하고 이를 일종의 제의적 행위로 이해했을 때, 그녀의 상처는 당시 칠레 사회가 가지고 있는 상처에 대한 알레고리로 읽혀질 수 있다. 자신들을 감시하는 조명 하에서 자신의 팔에 상처를 내고 그 상처를 벌려 보이는 행위는, 광장에서 그 행위를 바라보고 있는 창백한 사람들과의 소통을 마련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인 일루미나다와 “창백한 사람들”은 전통적인 의미의 성격변화를 보여주지 않는다. 주인공이 하는 언어적 표현 역시 “목이 말라요(tengo sed)”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맥락에서 등장인물의 성격변화는 더 이상 현실세계의 분열된 의미체계가 아닌, 그 밖에 존재하는 가상의 층위에서 표현되어 지는데, 이는 ‘절규'를 통해 나타난다. 희생적 제의로 표현되는 육체에 대한 쓰기와 신음을 통해 그녀는 규범적 언어를 비틀어 내는 다른 경험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다른 한편으로 이 육체에 대한 쓰기를 통해 그녀가 얻어내는 것은 언어가 아니라, ‘절규‘라는 점에서 또 다른 의미를 포착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바 있는 것처럼 쿠데타 이후 칠레 사회의 담화가 지배자들의 공식적인 담론과 피억압 집단의 비공식 담론으로 양분되었다고 했을 때, 공식적인 담론에 대한 저항이 지배자들의 언어, 즉 주어진 규범적 언어를 통해서 불가능하다는 깨달음을 엘티트는 그 언어를 비트는 행위와 절규를 통해서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손바닥을 입술에 댄 채, 목이 말라요, 라고 말했다. 그리고 스스로 움직여 손을 밀어 넣었다.
그러나 그 말과 반대되는 의미가 시작한 것은 바로 그 손을 문 입을 가지고였다. 그녀는 단어와 단어, 음절과 음절, 문자와 문자, 소리로 그 구절을 해체했다.
그 말이 갖는 음성학적 규칙을 비틀었다. 음조를 변화시켜 낯선 외국어처럼 만들어 버렸다. 이제 그 말은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것이 되었고, 그녀의 잔뜩 힘이 들어간 목구멍은 힘겹게 신호들을 내뱉었다. 그리고는 무슨 뜻인지를 알 수 없게 된 입술에서 손을 뗐다. 따라서 그녀의 벌린 입은 이제 아무런 소리도 낼 수 없었다. 단어들은 더더욱이었다.
이렇게 그녀는 언어를 분해한 것이다.(37-8)

      이 장면은 다양한 의미로 확장될 수 있다. 자신의 가학적 행위를 통해 일루미나가 얻고자 하는 행위는 바로 자신의 언어체계, 누군가에 의해서 주어진 공식적인 담론체계를 해체하고자 하는 의식적인 행위로 해석되어 진다. 즉 현실 언어가 가지고 있는 소통 가능성이라고 하는 사회 공동체적 코드를 거부함으로써, 현실 언어의 한계와 거기에 대한 저항의 몸짓으로 읽힐 수 있다. 이처럼 반복적으로 작품에 드러나는 자신의 육체에 대한 쓰기, 이 가학적 행위는 소외된 계층, 공식적인 의미망에서 배제당한 사람들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그녀의 서사전략에서 기인한 것이다. 피학적 태도는 또한 언어로 표현되지 못한 역사적 경험의 무게와 그 기억을 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해 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엘티트의 작품은 문학적 담론 권력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앞서 보이는 기존의 언어질서에 대한 비틈은 보다 적극적으로 남성적 권위로 대표되는 문학전통에 대한 성찰로 확장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담론 권력에 대한 문제제기는 성적 메타포를 포함한 글쓰기를 통해 새로운 의미를 형성해 간다.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을 위해 <4장 문학에서 하나의 이미지를 형성하기 위하여>를 간단하게 살펴보기로 하자.
텍스트 내에서 일루미나가 행하는 자신의 육체에 대한 가학적 행위와 전통적인 텍스트 문법의 파괴를 통해 엘티트는 새로운 대항담론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의 머리를 피가 나올 때 까지 계속 나무에 부딪혔다. 피가 그녀의 얼굴을 적시자, 손으로 피를 닦고는 손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그 손을 핥았다. 그리고는 상처 난 이마- 그녀의 생각들-로 광장 중앙으로 갔다. 그녀는 자신의 상처를 줄기는 같았다. 자신의 상처를 손톱으로 만져 보았다. 만약 아픔이 있다면 그녀의 상태가 절정으로 가고 있다는 것은 명백했다.
그녀의 상처위에 불빛이 내리 비추기를 기다리면서 그녀 스스로를 노출 시켰다:
그래, 내 자신이 상처를 가지고 있었어. 그러나 오늘 나는 흉터를 가지고 있지. 이제 나는 얼마나 어떻게 고통스러웠는지 기억하지 못하지. 다만 흉터를 인해 내가 고통 받았다는 것만을 알 수 있을 뿐이지.(19)

      이러한 자신의 몸에 새긴 상처는 곧 흉터로 남게 되고 이러한 흉터가 곧 과거의 고통스러움을 환기할 것이라는 일루미나의 진술은 당대 칠레인들이 경험했던 역사적 사건이 남긴 트라우마에 관한 가장 강력한 증언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흉터와 상처를 기억하는 엘티트의 방식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남성적 담론질서에 대한 도전과 새로운 소통 가능성의 모색으로 나아간다.
그래서
우리 칠레인들은 뭔가 메시지를 바라고 있지.
일루미나다는, 온통
레세마를 생각하고, 촉수를 부빈다
제임스 조이스와 촉수를 부빈다
네루다 파블로(sic.)와 부빈다
환 룰포와 부빈다
파운드와 부빈다
로브 그르예와 부빈다
어떤 사내에건 부빈다(83)

      작가가 소통의 도구로서 언어에 대한 문제제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남성 중심적인 문학 패러다임 전통이 가지고 있는 권위와 독점적 권력에 문제를 제기하고자 했을 때, 그녀는 암묵적으로 자신의 촉수를 남성적 권위를 상징하는 인물들에게 부비는 것이다. 이 부빔은 마찰과 저항을 불러일으킬 것이고, 이 과정을 통해 자신의 육체와 텍스트는 다르게 해석되어 진다. 이러한 남성적 권위와의 ‘부빔’을 통해 자신의 글쓰기를 모색해 나가는 그녀의 글쓰기는 자신의 육체에 쓰는 행위를 통해 완성된다. 즉 엘티트의 글쓰기 전략이 제도화된 글쓰기, 하나의 권력으로 자리 잡은 글쓰기 패턴에 대한 문제제기라고 할 때 위의 인용문은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다시 말해 자신의 육체를 남성적 권위에 ‘부빔’으로써 균열과 마찰이라고 하는 새로운 글쓰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22)
문학에서 하나의 이미지의 새로운 출현을 위하여, 자신의 빛나는 육체에 달린 머리를 숙여서 표현하는, 길게 완벽하게 밀어버린 머리.
용인할 수 없다고 생각해 왔던 것을 행하면서, 즉 밀어 버린 머리아래 그녀의 진정한 아름다움이 숨겨 있을 것이라는.
그녀의 난잡함
모든 그녀의 재능/ 이제 진실을 구별해 내는 것을 방해하는 그 숱한 혼돈으로 인해 길을 잃는다.(72)

      이러한 새로운 글쓰기에 대한 엘티트의 자의식은 또한 진정한 소통의 가능성이라는 문제로 이전한다. 이러한 소통 대상과의 문제는 작품에서 관음적인 시선을 가진 타자로 등장하는 “창백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드러난다. 5장에서 보이듯이 일루미나다는 광장의 조명아래에서 그들에게 분필로 “어디로 가는가?"라고 쓰고자 한다. 이 쓰기는 그들과의 단순한 의사소통의 타진이라는 단순한 의미를 넘어, 역사적 과거를 환기, 혹은 환원하는 작업으로 “창백한 사람들”과 공통의 경험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 될 것이다. 다시 말해 당대 지식인들이 느끼는 소통의 부재, 그리고 칠레의 역사적 과거를 어떻게 기억하고 어떻게 이 기억에 대응할 것인가라고 하는 지식인들의 자의식이 강하게 투영되고 있다. 쏟아지는 빗속에서 일루미다가 광장 바닥에 쓴 ”어디로 가는가?“라는 질문은 처음에는 창백한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이 질문은 빗물에 쓸려 흔적만 남게 되고, 다시 무릎으로 기어가 그녀는 다시 이 질문을 광장 바닥에 쓴다. 이 행위는 마침내 지금까지 관음적인 시선을 지닌, 무관심한 구경꾼이었던 그들의 관심을 끌게 된다. 이윽고 비를 피하기 위해 쓰고 있었던 비닐을 벗고 그 글씨들을 해독하게 된다.
따라서 이 글씨들은 해독되어졌고, 문자와 텍스트, 육체와 정신이 서로 다시 겹쳐지고 다시 부벼졌다. 이렇게 해서 이 소설이 만들어졌고, 등장인물들이 나타났으며, 광장의 조명아래에서 이것들을 읽을 수 있게 된 것이다.(97)

      이런 과정을 통해 일루미나다는 그들은 관음적인 시각과, 조명기구의 감시적 시선에서 벗어나 소통을 이루게 된다. 이렇게 해서 엘티트는 결국 지배적인 언어코드에 대항하는 새로운 서사전략을 모색하고, 이 전략을 통해 타자와의 소통을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이미 언급한 것처럼 이러한 대안 서사의 모색은 끊임없이 칠레의 역사적 기억을 어떻게 환기하고, 그 트라우마를 어떻게 치유할 것이라는 문제와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다는 점이 엘티트의 작품이 갖는 주요한 특징이라 할 것이다.


5. 결론

      1973년 이후 쓰여진 칠레 문학에서 디아멜라 엘티트의 작품이 가장 과격한 방식으로 서사구조, 언어, 사회의 구조에 대해 비판을 제기한 작품이라는 평가가 보여주듯이 그녀의 작품세계는 트라우마를 경험한 칠레 사회의 당면 문제를 가장 강력한 방식으로 형상화했고, 쿠데타 이후라는 문맥 내에서 권위주의에 대한 문학적 대응의 새로운 한 형식을 보여주고 있다.

      살펴 본 것처럼, 1970년대에 쓰여져 1983년에 출판된 그녀의 『룸페리카』는 이 안에서 역사가 단순히 연속적인 파편적인 장에 불과하다는 맥락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파편적인 인식과 서사는 그 자체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역사와 현실에 대한 보다 치열한 문제의식의 산물로 나타난 것이다. 제목이 의미하는 소외된 집단으로서 룸펜과 소외된 공간으로서 아메리카의 결합으로서 ‘Lumpérica’는 당대 칠레 사회, 더 나아가 중남미 사회가 경험하고 있는 정치사회적 질곡 속에서, 당대 지식인들이 느끼는 좌절과 대응을 보여준다. 즉 이 안에서 여성 주인공이 서사적 힘을 획득하기 투쟁을 보여줌으로서 현실에 개입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를 또다른 층위에서 형상화 한 것이다. 자신의 육체를 텍스트로 삼아, 권의주의적인 담론에 저항하는 새로운 쓰기의 전망을 보여주거나, 기존의 언어구조에 대한 전복적 사유방식을 통해 새로운 담론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그녀의 입장은 권위주의 정권 지배하의 칠레 문화영역 내에서 진행된 문학과 정치, 재현과 이데올로기 등의 새로운 이해 방식과 그 가능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다시 말해 작품의 단절된 언어는 쿠데타 이후 초기 칠레 사회가 보여주고 있는 극심한 파편화를 재연하고 있으며, 독자로 하여금 자신들이 배제된 세계 속에서 의미를 만들도록 자극하는 것이다. 이런 엘리티의 문학적 입장은 이후 민간정부로의 이행 이후에도 ‘시장의 지배’라는 또다른 억압에 대한 지속적인 문제제기와 문학적 형상화 작업을 통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각주

1) Idelber Avelar(1999), Alegorías de la derrota: La ficción postdictatorial y el trabajo del duelo, 63-69. 그는 피노체트의 쿠데타에 따른 문화적 역량의 파괴를 하이메 꼬야르의 견해를 빌어 “칠레는 실제로 분서를 자행하고, 출판기능을 최소한으로 제약한 그리 많지 않은 국가 중의 하나였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실제로 그가 인용한 통계에 의하면 아엔데 기간 동안 출판된 단행본의 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해 1972년 719권에 이르렀지만, 쿠데타 이후에 급격하게 감소해 1979년 244권이라는 최소 기록을 세우게 된다.

2) Juan Carlos Lertora(1993), Una poetica de la lieratura Menor: La narrativa de Diamela Eltit, 18. 인용문 중 강조는 본인의 것임.

3) Raquel Olea(1993), “El cuerpo-mujer. Un recorte de lectura en la narrativa de Diamela Eltit”, 83-84.

4) 이 조직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가장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이론가는 넬리 리처드이다. 이를 위해서는 다음 책을 참고하시오. Nelly Richard(1994), La insubordinación de los signos(Cambio político, transformaciones culturales y poéticas de la crisis). 이 그룹은 권위주의 정권에 대한 대항하는 다양한 종류의 퍼포먼스 외에도, 1988년 선거를 앞두고 피노체트에 반대하는 세력에 의해 광범위하게 사용된 "NO+"라는 슬로건을 만들기도 했다. 그녀는 한 인터뷰에서 사회적 행위로서 CADA 그룹의 가장 큰 성취는 이 슬로건을 만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Juan Andres Piña(1991), Conversaciones con la narrativa chilena, 233.)

5)Nelly Richard(1993), “Tres funciones de escritura: desconstrucción, simulación, hibridación”, 37.

6) Nelly Richard(1993), 37. 또 다른 측면에서 엘티트의 작품들은 많은 경우 여성주의적인 관점에서 해석되기도 한다. 이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을 위해서는 Mary Green, “Diamela Eltit: A Gendered Politics of Writing”을 참고하시오.

7) Alice A. Nelson(2002), Political Bodies: Gender, History, and the Struggle for Narrative Power in Recent Chilean Literature, 153.

8) Nelly Richard(1993), op.cit., 37.

9) Alice A. Nelson(2002), 152-153.

10) Nelly Richard(1994), 55.

11) Alice A. Nelson(2002), 153.

12) Nelly Richard(1993), 40.

13) Nelly Richard(1993), 43.

14) Juan Carlos Léctora(1993), 27.

15) Nelly Richard(1993), 37.

16) Alice A. Nelson(2002), 157.

17) 이 글은 Editorial Planeta에서 1998년에 발행된 3판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후 괄호 안의 숫자는 이 판본의 페이지를 의미한다.

18) Raquel Olea(1993), 90.

19) Jean Franco(1992), 70.

20) Eugenia Brito(1994), 113.

21) 강내희, 『문학의 힘, 문화의 가치』, 13-19.

22) Alice A. Nelson(2002), 162-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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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스페인어문학 32호(2004년). 원문의 경음 표기 대신 격음을 사용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