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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남미 문화연구의 현황과 과제 / 이성훈 2007-08-30 / 10493   

중남미 문화연구의 현황과 과제

이 성 훈



I. 서론


      지적 기획으로서 문화연구는 개별국가 마다 나름의 독자적인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또 서로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즉 문화연구가 태동한 영국에서 수행되는 방식과 미국에서 수행되는 방식은 차별적이며, 또 중남미에서 수행되는 방식 역시 차별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차별적인 성격에 따라 문화연구가 갖는 역사적 의미 또한 서로 다른 것이다. 주된 학문방식의 하나로 수행되고 있는 문화연구가 서로 다른 사회에서 어떤 차별적인 모습을 모여주고 있으며, 이때 발현되는 차이들이 왜, 어떻게 만들어 졌는지를 이해하는 작업은 문화연구가 갖는 실천적인 성격을 고려할 때 매우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 중남미 문화연구 또한 나름의 중남미적 문맥 내에서 새로운 의미를 구성해내고 있으며, 이 안에 중남미 이론진영이 가지고 있는 일정한 경향성과 함께 90년대 이후 진행되어온 전지구화 현상에 대응하고자 하는 지식인 내부의 갈등과 실천적 고민이 내재해 있다고 할 것이다.

      중남미 문화연구와 관련해서 우리가 먼저 주목해야 할 점은 이 개념이 주는 혼란이다. 일반적으로 중남미 문화연구(Latin American Cultural Studies)라는 개념에는 문화연구의 대상과 연구주체 사이의 괴리가 존재한다. 즉 중남미 문화연구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이 주장하듯 중남미에 ‘대한’ 문화연구가 주로 미국의 대학에 기반한 연구자들에 의해 진행됨으로써, 중남미를 학문의 대상으로 전유하려는 1세계 학문제도의 ‘식민주의적’ 기획이라는 것이다. 또한 중남미 내부에서 활동하고 있는 연구자들이 수행하는 ‘문화에 대한 연구’와는 차별성을 갖고 있으며, 중남미의 지적 전통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존재한다. 그러나 중남미 문화연구를 일방적으로 1세계에서 행해지는 중남미에 ‘대한’ 이론적 전유라는 이해 방식으로는 중남미에서 행해지는 다양한 방식의 이론적 실천을 폭넓게 잡아내지 못한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이런 중남미 문화연구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따라 가면서 중남미 문화연구가 갖는 특징들을 살펴보고, 중남미 문화연구의 현재를 간단하게 정리하고자 한다.


II


      중남미 문화연구를 둘러싼 입장은 우선 둘로 나누어서 살펴볼 수 있다. 하나는 중남미 이론 진영에서 나타난 ‘문화연구’ 자체에 대한 비판적 입장이 그것이고, 다른 하나는 중남미 문화연구가 수행되고 있는 방식에 대한 비판적 태도이다. 먼저, 문화연구 자체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은 주로 넬리 리처드(Nelly Richard), 우고 아추가르(Hugo Achugar) 등 중남미에서 활동하고 있는 좌파지식인 그룹에 의해 제기되는 것으로, 문화연구를 비서구를 학문적으로 위계화하고 타자화하기 위한 1세계 학문제도의 지적전략으로 간주하고 배제하는 입장이다.

      이런 입장은 현재 중남미 문화연구를 대표하고 있는 가르시아 칸클리니, 마르틴 바르베로, 베아트리스 사를로, 다니엘 마토 등의 진술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이들은 문화연구라는 이름이 생기기 훨씬 전부터 중남미에서 문화연구를 해왔다고 말하고 있다. 중남미 문화연구의 대표자들로 평가되는 이들은 1980년대부터 중남미 문화연구가 급속하게 제도화되고, 학문권력화해 감에 따라 ‘문화연구’라는 용어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견해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영어를 중심으로 해서 학문세계가 재편되는 과정에 ‘문화연구’가 일정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문화연구가 수행되는 과정에서 글로벌한 학문방식에 의해 지역적인 특수성이 전유됨으로써, 중남미적 문맥이 사상된다고 보는 것이다. 더 나아가 문화연구가 1960년대 영어권 대학제도에서 만들어졌던 지역학, 혹은 지역연구의 이데올로기를 세련된 방식으로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결국, 이러한 태도는 문화연구를 1세계의 학문적 지배라는 식민적 의도를 지닌 것으로, 그리고 세계학문시장의 확장을 위한 재생산의 기제로 간주하는 것이다. 따라서 문화연구의 유행은 ‘지역적인 것’ 의 역사적 맥락을 지울 수 있으며, 비판적 지역 지식인들의 입장을 형해화할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비판적인 입장은 자연스럽게 중남미 연구자들에 의해 중남미의 지적 전통을 강조하는 경향으로 이어진다. 중남미 지적 전통을 이루고 있는 에세이 장르에서 보여주었던 분과학문적 경계의 해체, 그리고 이 안에서 보여주었던 사회, 역사적 레퍼런스를 통한 현실의 개입이라는 중남미 지식인들의 비판적 지적 전통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렇듯 문화연구를 수입된 하나의 지적 상품으로 간주하고, 이러한 문화연구의 연구모델이 주변부적 현실을 전유할 때 제기되는 위험성에 대한 지적은 중남미 이론진영 내에 폭넓게 자리 잡고 있다. 다시 말해 중남미 지적전통과 거리가 있는 서구의 기획에 의존하고 있으며, 미국 내 대학제도 내에서 성공적으로 안착함에 따라 유행하게 된 헤게모니적 지적 제도로 간주하는 것이다. 이런 비판적인 입장은 특히 미국대학 제도 내에서 중남미에 ‘대한’ 문화연구가 수행되는 방식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이런 비판적인 입장은 많은 부분 문화연구 자체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과 겹칠 수도 있지만, 1980년대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학문 시장이 재편되고 중남미 출신 학자들이 대거 미국의 대학 제도에 진입하면서 상대적으로 중남미 보다는 미국 내에서 중남미에 ‘대한’ 다양한 담론들이 만들어지고 중남미에 적용되면서 강화된다. 특히, 탈식민주의 이론, 하위주체이론, 중남미문화연구 등 다양한 담론들이 사회문화적 행위자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중남미를 학문적 대상으로 전유하고 중남미를 하나의 텍스트로 전락시켰다는 비판이 나타난다.

      이처럼 미국대학 제도 내에서 그들의 이데올로기적 입장에 따라 담론들을 조직화하고 적용시키는 것은 중남미에 존재해왔던 다양한 종류의 지적 실천들을 간과하고,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글로벌한 모델을 통해 학문적 위계를 완성한다고 본 것이다. 이러한 입장은 학문적 발화 위치를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대립적인 관점에서 사고하고 있다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중남미 지식인들이 가지고 있는 위기의식을 보여준다고 할 것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 이러한 미국중심의 중남미 문화연구는 다니엘 마또가 지적하고 있듯이 대학이라는 학문제도를 중심으로 사고됨으로써, 중남미에 존재하고 있었던 대학제도 밖의 실천들이 갖는 의미를 간과하고 있으며, 문화연구 초기의 ‘진지한’ 성격을 잃고 있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가르시아 칸클리니 역시 영어권 문화연구가 중남미의 사회문화적·경제적 과정보다는 중남미에 대한 해석에 더 많은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중남미 문화연구의 일정한 ‘텍스트주의’의 강화는 대중문화, 혼성성, 모더니티/포스트모더니티, 국가문제 등의 주제를 중심으로 한 격렬한 논쟁으로 이어졌지만, 이러한 주제들을 만들어 낸 구체적인 사회적, 문화적 움직임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렇듯 문화연구가 학문시장과 그 안에서의 헤게모니를 둘러싼 하나의 형식을 박제화하면서, 초기의 문제의식들이 학위과정이나 논문을 위한 주석화 과정으로 변모했고, 하위주체연구, 탈식민주의이론 등과 함께 탈분과학문인 ‘정전’으로 위치하게 됨으로써 초기의 문제제기적 성격을 상실하게 되었다는 비판 역시 가능한 것이다.

      다시 말해 중남미의 문화연구는 8,90년대의 혁명적 운동이나 민주화과정이라는 시대적 상황과 결부된 실천적인 성격이 강했다. 이에 반해 문화연구가 이러한 역사, 사회적 맥락과 유리되어 있다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다. 즉 사회적 행위자 부재로 인해 중남미 문화연구가 전략적 기획으로서 의미가 퇴색한 평면적 분석으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이 점은 뒤에서 다시 논의하겠지만 민족국가의 역할에 대한 입장 차이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세계화의 결과로 파생된 민족국가의 역할 축소, 공적 공간의 제약 등으로 인해 전통적인 행위자가 아닌 하위주체나 소수자, 파편화된 주체 등의 행위자를 통해 현실을 분석하고자 했던 문화연구의 최근 기획들은 일정하게 좌절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직면해서 중남미 문화연구가 모색해야 할 길은 다시, 문화연구의 역사적 형성 시기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자각이 나타나고 있다. 즉 자본주의의 진전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이를 통해 대안적 삶의 형태와 문화형식을 모색하고자 했던 문화연구의 초기 문제의식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더 이상 1960년대 혹은 1980년대 식의 유토피아적인 상상력이나 지적 탐구가 불가능하다고 할지라도, 결국 이러한 긴장을 현재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세계화에 따른 전지구적 보편주의라는 일방적 흐름과 이에 수반하는 개별 민족국가의 국가적 기획의 상실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 사이에 문화연구가 위치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문제제기는 최근 들어 민족국가의 역할에 대한 주목과 1960년대의 종속이론, 해방철학 등의 중남미 사회이론에 대한 관심으로 나타나고 있다.


III


      앞서 살펴본 것처럼, 주로 중남미 이론 진영에서 제기되는 문화연구에 대한 비판은 문화연구가 중남미의 비판적 지적 전통을 간과한 서구의 이론적 틀로 1세계의 학문헤게모니를 위한 수단이라는 측면과, 중남미문화연구가 주로 미국의 대학 제도 내에서 행해지면서 중남미를 학문적 대상으로 전유함으로써 구체적인 사회적인 맥락을 간과하고 있다는 비판으로 요약된다. 이러한 ‘텍스트화’ 경향은 중남미의 사회적 행위자에 대한 고려를 간과하고, 문화연구 초기의 지적 실천으로서 의미를 상실하면서 지적 박제품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에 대해 미국 내 중남미 연구자들에 의한 비판이 제기되는데, 그 중 대표적인 인물들은 존 비벌리, 알베르토 모레라이스 등이라 할 것이다. 여기서는 존 비벌리의 입장을 따라 미국내 중남미 문화연구자들의 입장을 살펴보기로 하자.

      존 비벌리에 따르면 중남미에 ‘대한’ 다양한 담론들에 대해 중남미 이론 진영에서 제기되는 비판들은 공통적으로 세 가지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먼저, 이러한 담론들은 정체성이나 다문화주의에 대한 미국적 문제의식이나 탈식민과 관련한 영국의 문제의식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는 다문화주의나 탈식민주의로 환원될 수 없는 보다 복합적인 중남미의 다양한 역사와 사회문화적 형성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비판으로 이어진다. 두 번째, 미국이나 유럽의 대학들에서 발원하고 그것들의 다양한 제도적 수단들에 의해 유지되는 이러한 담론들의 권위는 중남미 지식인들에 의한 다양한 실천들을 사상하고 있다. 이러한 권위는 명백하거나 혹은 암묵적으로 중남미 지식인들의 권위와 담론들을 부정하고 있는데, 즉 ‘중남미적 사유(Latin American thought)’ 라고 부르는 중남미 지적 전통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1세계의 이론적 모델의 헤게모니는 중남미에서 일종의 문화적 신식민주의로 기능하고 있고, 이런 상황에서 중남미 지식인들은 학문의 주체로서 보다는 이론의 대상의 상태로 전락하게 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런 과정을 통해 이런 이론들은 국가적이고 지역적인 정체성이나 개발을 위한 자신들의 기획을 절합할 수 있는 이론적 능력을 박탈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들을 존 비벌리는 중남미 지식인들이 자신들이 수행하는 분과학문에 개입하려는 ‘하위주체들’을 막으려는 시도로 파악하고, 이를 ‘좌파 보수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즉 여전히 실증주의적인 인식론과 모더니즘적인 미학을 가지고 변화된 현실을 담아내려는 ‘완고한’ 태도로 간주한 것이다. 또한 비벌리는 이러한 입장들을 “일종의 네오-아리엘주의(neo-arielismo)라고 비판하고 있다. 다시말해, 1세계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이론적 실천과 비판적 사유의 형식들을 미국의 제국주의적 헤게모니와 동일시하고, 문학과 문학비평의 권위 그리고 문자 지식인 들을 중남미의 문화적 기억과 가능성의 담지체로 다시 한번 확인하는 태도”라는 것이다. 변화된 상황을 재현하려는 문화연구의 이론적 시도를 헤게모니 기제로만 파악하려는 중남미 이론진영을 비판하고, 중남미 이론진영이 가지고 있는 문학과 문학비평 중심의 인문주의적 접근 방법이 새롭게 등장하는 다양한 사회주체들을 담아내기에는 적절하지 않다고 본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문화연구가 발원한 지점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남미 문화연구가 갖는 정치적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문화연구는 대학 제도 내에서 기존의 헤게모니적 담론을 해체하고, 민주적 질서를 모색하고자하는 이론진영에서 제기된 것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문화를 본질적으로 고급문화와 동일시하는 중남미 이론진영의 일부 아리엘 주의적 태도, 즉 ‘문화주의적 관점’보다는 하위주체와 탈식민성을 강조하는 문화연구가 중남미 현실의 분석과 재구성에 보다 유용하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미국 내 중남미 연구자들의 입장은 ‘증언문학’을 둘러싼 갈등이 보여주듯이, 중남미 이론진영의 ‘오해’를 온전하게 해명해주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벌리의 경우에서 보이듯이 중남미 이론진영의 비판을 이론적 보수주의로, 그리고 신아리엘주의적인 것으로 비판하면서 미국내 중남미 문화연구가 발원한 지점의 강조를 통해 중남미 문화연구가 가지고 있는 생산적인 성격을 강조하고 있다.


IV


      중남미 문화연구를 둘러싼 중남미 이론진영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중남미 문화연구는 1990년대 이후 중남미 지역연구에 있어 중요한 학문적 의제로 작동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많은 중남미 문화연구자들이 지적하고 있듯이 중남미 문화연구는 기본적으로 다음의 두 가지를 기본전제로 삼고 있다. 중남미 이론진영에서 행해지는 비판에 대한 반론의 성격을 띤 것도 사실이지만, 중남미 문화연구의 특징을 정의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전제라고 할 것이다. 아브릴 트리고(Abril Trigo)는 먼저, 중남미 문화연구가 글로벌한 층위에서 전개되는 이론적 장이지만, 라틴아메리카의 사회적 문화적 과정이라는 역사적 배경을 고려하지 않으면 온전하게 이해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둘째, 중남미 문화연구는 기존의 인문학적이고 분과학문적 패러다임과의 인식론적 단절의 결과임에는 분명하지만, 중남미의 비판적 사유의 일정한 역사적 지속성의 결과라는 측면이 고려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즉 중남미 문화연구를 영국의 문화연구나 서구의 포스트모던 이론에서 기원한 것으로 보는 태도는 중남미 문화연구가 갖는 특징을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미 언급했듯이, 영어권 문화연구와 서구의 포스트 이론이 중남미에 도착하기 전부터, 그리고 문화연구가 주조되고, 포스트모더니즘이 탄생하기 훨씬 이전부터 많은 중남미 지식인들은 이미 일종의 문화연구를 수행하고 있었다. 물론 1980, 90년대 중남미에 문화연구가 자리 잡고 제도화되는 과정은 이론 층위에서 전개된 중요한 변화와 일치하는 것은 사실이다. 오랜 기간 동안 지속되어온 모더니즘적인 가치를 강조하는 이론에서 포스트 모던적인 학문으로의 헤게모니 이동과 밀접하게 상관관계를 갖는 것이다. 그러나 문화연구가 각 지역의 특수한 상황에 따라 나름의 독특한 특성을 가지면서 발전해 나가듯이 중남미 문화연구도 중남미의 지적, 사회적 맥락에 따라 나름의 특성을 발현해 가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중남미 문화연구는 이론 층위에서 진행된 인식론적 단절의 결과가 아니라, 특정한 역사적, 문화적 지속의 결과이다. 많은 경우 중남미 문화연구의 기원을 유럽의 문화연구에서 찾아내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풍부한 중남미의 비판적 지식 전통이 갖는 자양의 결과라는 점이다.

      이처럼 중남미 문화연구가 중남미의 사회문화적 변화과정이라는 역사적 배경 속에서 배태되었고, 인식론적 단절이라기보다는 특정한 역사적 지속의 결과라고 했을 때, 이 진술은 풍부한 중남미의 지적 사유와 서구의 이론틀이 결합하면서 일련의 이론적 혼종을 경험한 후에 만들어진 것이라는 의미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중남미의 지적 사유라고 칭해지는 중남미의 비판적 에세이 전통이다. 주로 19세기 독립이후에 나타난 다양한 종류의 사회적 의제들, 예를 들어, 국가적인 것과 중남미적인 것, 도시적인 것과 지역적인 것, 전통 대 모더니티의 문제, 정체성과 기억의 문제, 특히 지식인의 역할과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실천 등의 문제들에 관한 에세이가 쓰여 졌다. 이러한 비판적 에세이는 독립시기에서부터 시작해서 현재까지 중남미 지식인들의 중요한 지적 실천의 형식이 되고 있다.

      1990년대 중남미 문화연구 영역에는 당시의 지배적인 담론들의 영향을 받아 혼종이론, 인터 아메리칸 문화연구 네트워크, 중남미 하위 주체연구 그룹, 탈식민주의와 탈서구주의 연구, 문화비평, 세계화에 대한 초국적 문화연구 경향 등이 존재했다. 그러나 중남미 하위주체 연구 그룹이 1997년 활동을 중단하는 것을 시작으로 새로운 세기에 들어서면서 중남미 문화연구 진영 내에서 균열이 나타나게 된다. 이러한 균열과 몇몇 이론들의 좌절은 중남미 문화연구의 소멸이라는 평가를 줄 정도로 이론진영에 심각한 우려를 불러 일으켰다. 이러한 이론적 모색의 좌절은 “세계화에 가능한 유일한 저항은 페허에서 비판적으로 흐느끼는” 것 뿐이라는 진술에서 보이듯이 이론적, 실천적 층위에 걸쳐서 지식인들의 태도에 심각한 영향을 끼쳤다.

      이러한 2000년대 들어 중남미 문화연구가 경험하고 있는 이론적 기획으로서의 좌절, 더 나아가 현실에 대한 실천적 개입의 좌절을 어떻게 파악할 것인가 문제가 문화연구의 미래와 관련하여 매우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 이에 대해 아브릴 뜨리고의 전망은 우리에게 유의미한 시사점을 주고 있다. 즉 그는 이러한 문화연구의 이론적 좌절들을 총체적 좌절 혹은 단절로 간주하는 것이 아니라, 점차 서로 다른 입장들이 조정되는 점진적인 과정이자, 1960, 70년대 형성된 중남미의 다양한 사회이론 등을 포함해 중남미 비판적 사유 전통의 대표적인 형태들이 복귀하고 있는 과정으로 간주한다. 즉 최근의 세계화에 대한 연구들이 보여 주듯이 세계적인 흐름과 지역적인 것이라는 극단 사이에 위치한 국가의 역할, 모더니티와 근대화, 초국적 대중문화의 영향, 이러한 변화와 관련한 정체성 문제와 관련된 주제들이 집중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런 경향은 하위주체연구에서 보여주는 기존의 민족국가에 대한 이해와·는 다른 입장을 보여준다. 보다 직접적으로 민족국가의 역할을 인정하고, 전통적인 의미의 행위자에 기대고 있다는 점에서 60,70년대 중속이론을 대표로 하는 중남미 사회이론과 유사성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중남미 비판적 사유전통의 풍부한 자양에 기대고 있는 중남미 문화연구는 서구의 이론적 틀이라는 비판적 태도에도 불구하고 1980년 대 이후 중남미 현실의 변화에 대응하고자 하는 지적 실천으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 왔다. 그러나 하위주체 연구 그룹이 보여주듯이 이 시기는 민족국가의 역할에 대한 문제제기와 새로운 행위주체의 모색이라는 특징을 갖지만, 서구의 이론 진영이 만들어낸 이론적 틀의 관념적 투사라는 비판적 입장 또한 존재한다. 이런 비판들은 당연히 6,70년대 중남미 비판적 사유전통에서 문화연구가 직면한 이론적, 실천적 딜레마를 해결하고자 한 중남미 이론진영의 노력으로 이어진다. 다시 말해 중남미 문화연구는 1990년대를 넘어서면서 일정하게 이론적 기획으로서 좌절을 경험하게 되고, 이런 좌절이 자연스럽게 다시 중남미 비판적 사유의 전통으로 복귀를 야기한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어찌보면 중남미 문화연구 그룹에 대한 중남미 이론진영의 지속적인 문제제기는 일면 타당한 것이었지도 모른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태도는 개방적인 자세로 외부의 이론적 자극을 수용하고, 현실을 보다 섬세하게 해석하고 재현하려는 태도일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중남미 문화연구는 1960년대 중남미 사회 이론이 보여주었던 국가, 계급, 정치 등에 대한 보다 고전적인 문제의식의 복원을 통해 구체적인 중남미의 문제들에 개입하려는 지적 실천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