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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리브 해의 혼종성과 정치적 의미 / 송병선 2007-08-30 / 13549   

카리브 해의 혼종성과 정치적 의미

송 병 선

모든 종류의 잡종이 대지에 만연하고 있다.
그 결과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부패이다.......
인간은 한쪽 구석에 서서 이런 부정한 행위에 관해 말을 하고,
여자들이 지나갈 때마다 음탕한 말을 내뱉는다.
도시의 거리들은 거지들로 가득 차 있다.
― 알프레드 슐츠

‘혼혈’이란 단어는 진정한 숭배의 대상이자 민족주의의 상징이 되었다.
― 마그누스 뮤르너




I. 들어가는 말 : 혼종성 논쟁

      라틴아메리카의1) 국가적, 민족적 정체성 형성에서 ‘혼종’ 혹은 ‘혼혈’이란2) 개념만큼 설득력을 가진 것은 찾아보기 힘들다. 유럽인들과 그들과 함께 신세계에 도착한 흑인들, 원주민들, 그리고 아시아나 아랍인들 사이의 만남 혹은 충돌에 의해 만들어진 문화적․인종적 혼합은 종종 비난을 받기도 했고, 찬양을 받기도 하면서, 항상 뜨거운 논쟁의 대상이 되어왔다. 이와 같은 현상은 앞에서 인용한 글에서도 잘 드러난다. 가령 첫 번째 인용문인 알프레드 슐츠(Alfred Schultz)의 글은 잡종(crossbreed)이란 말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듯이, 혼종을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여긴다. 이 글이 인용된 『인종 혹은 잡종 Race or Mongrel』(1908)에서 그는 지구의 고대 인종들, 특히 로마의 성쇠에 관해 다루면서, 고대 국가들의 몰락은 이방의 혈통들과 결혼한 것에 기인한다는 이론을 전개한다. 그러면서 한 국가의 부강은 인종의 순수성에 비롯된다고 강조하면서, 이민이 엄격하게 금지되지 않으면 미국은 조기에 몰락할 것임을 예언한다.

      한편 마그누스 뮤르너(Magnus Mürner)의 글은 민족주의 관점에서 혼혈성을 상징으로서 다루고 있다. 위의 글이 인용된 『이베로아메리카 역사에서의 혼혈성 El mestizaje en la historia de Ibero-América』(1961)에서 그는 스페인주의, 아프리카주의, 원주민주의, 혼혈성이 동일한 목표로 사용되었음을 지적한다. 그는 스페인이 라틴아메리카를 정복한 이후, 원주민과 백인과 흑인은 “온갖 종류의 비율로 결합되었고, 단순한 육체적 혼합을 넘어 그들의 삶도 세 종류의 인종을 혼합하면서 계속된 채색 속에서 조화를 이루게 된다. 그래서 진정으로 그들을 대표하는 계급과 유형은 혼혈인이 된다. 그 이후부터 서인도의 영혼은 본질적으로 혼혈의 정신이 된다.”(Mürner 11)라고 밝힌다. 즉, 혼혈이 라틴아메리카의 역사적 관점을 연장시키고, 그곳에서 요구되던 과거와의 관계를 만드는 데 이용되면서 민족주의를 확장시키고 심화시키는데 도움을 주었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혼혈성에 관한 이러한 논쟁은 멕시코의 교육자이자 사상가인 호세 바스콘셀로스(José Vasconcelos)가 1925년에 『우주 인종 La raza cósmica』을 출판하면서 가시화된다. 이 책은 인종과 문화적 혼합을 퇴보가 아닌 진보적인 것으로 포용할 것을 주장하면서, 라틴아메리카의 정체성 문제에서 혼혈성은 해보다는 이익이 많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러나 혼혈성을 유익하게 바라보는 이런 관점은 식민주의적 관점이라는 수많은 장애물과 모순에 부딪치게 된다. 이렇듯 혼혈성은 식민지시대 이후부터 라틴아메리카의 의식 속에서 아주 상이한 방식으로 작용한다. 가령 리처드 그래햄(Richard Graham)은 “메스티소와 물라토는 멕시코, 브라질, 쿠바에서 인종차별주의자와 인종차별철폐주의자들의 사고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Graham 4)라고 지적하는데, 이것은 혼혈성의 상징적 의미가 비난에서 칭찬까지 극단을 오가면서 각 그룹의 이해관계에 의해 사용되었음을 시사하는 말이다.

      본고에서는 현대 문화이론에서 유행처럼 사용되고 있는 ‘혼종성’ 개념을 그것이 탄생된 카리브해 지역에서는 어떻게 정치적으로 사용되었으며, 또 지금도 사용되고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살펴볼 예정이다. 그리고 볼리바르, 마르티, 바스콘셀로스, 페르난데스 레타마르로 이어지는 민족주의 담론과 현대 라틴아메리카 문화이론의3) 주축을 형성하는 ‘문화횡단’ 개념을 오르티스, 라마, 프라트, 모랄레스를 통해 살펴보면서, 그것이 갖는 애매한 정치적․문화적 위치를 연구하고자 한다.


II. 카리브 해의 탈식민주의와 혼종성

      20세기 후반 서구의 학술적․ 정치적 담론은 혼종성 hybridity, 문화횡단(transculturation), 문화혼합(cultural mestization), 이종성(heterogeneity), 크레올화(creolization), 호미 바바(Homi Bhabha)의 ‘제3의 공간’, 에두아르 글리상(Edouard Glissant)의 ‘관계의 시학’과 같은 용어들을 통한 ‘차이’에 대한 연구라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이런 용어들은 최근의 탈식민주의적 핵심 개념인 경계 넘기(crossing border), 중간자(in-between)의 근간을 이루고 있기도 하다.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가 『오리엔탈리즘 Orientalism』(1978)에서 타자에 관한 유럽 지식의 계보를 보여준 이후, 가야트리 스피박(Gayatri Chakravorty Spivak), 호미 바바, 혹은 라나지트 구하(Ranajit Guha)와 같은 인도학자들, 아이자즈 아흐마드(Aijaz Ahmad)를 비롯한 아랍학자들, 그리고 월터 미뇰로(Walter Mignolo)나 존 베벌리(John Beverley)로 대표되는 라틴아메리카 하위주체 그룹이 이 이론을 따르고 발전시키게 된다.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이런 이론들은 어떤 절대적인 체계나 진리, 혹은 고정된 중심도 거부하고 해체하는 방법론을 취하면서, 서구 담론이 지닌 근본적인 세계관에 이의를 제기하고 그것을 해체함으로써 새로운 사색의 길을 열어놓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용어들은 지리적, 문화적, 언어적 경계를 넘는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이런 경계는 여러 이유로 존재하지만, 가장 분명한 것은 식민주의의 역사적, 문화적, 정치적 유산 때문이다. 이것은 특히 식민제국들이 자신들의 문화와 언어를 남긴 카리브 해 국가들에서 잘 드러난다. 호미 바바는 이런 피식민 주체의 정체성을 중간자로 보고, 그 중간자는 혼종성과 모방 개념이라는 두 가지 전략을 가지고 식민제국의 정형화에 대항한다고 설명한다. 즉, 이런 피식민 주체가 식민담론을 모방하지만, 그것은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는 차이를 지니고 있으며, 따라서 항상 경계에 서 있는 불안한 주체이며, 양가적 정체성을 지닌다는 것이다.4)

      이렇듯 탈식민주의의 핵심 개념인 혼종성은 계몽시대 이후를 지배했던 위대한 이분법(문화/자연, 이성/감정, 자아/타자)뿐만 아니라, 식민역사에서 탄생하는 이분법(식민자/피식민자, 이주자/원주민, 능동/수동)에서 자유롭다. 그리고 신식민주의적 권력의 재생산을 거부하는 전략이 되면서 과거의 잃어버린 목소리를 되찾으려고 노력하는 문화적 저항의 진정한 형식이 된다. 그러나 식민주의적 ‘역담론’의 전형적 전략인 혼종성은 정치적․사회적 헤게모니와 연결될 수도 있다. 탈구조주의, 탈식민주의, 포스트모더니즘은 ‘혼종성’을 헤게모니의 해체로 보고 있지만, 혼종성이 태동되었던 카리브 해의 역사를 보면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혼종성 담론이 정치적으로 유럽화와 백인화를 지향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지적하기 위해, 쿠바의 혁명가이자 시인인 마르티가 발전시킨 ‘우리의 혼혈 아메리카’의 혼종성 담론을 간단하게 언급한 이후, 20세기의 몇몇 주요 라틴아메리카 지식인들이 어떻게 혼종성 담론의 패러다임을 재구성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문화적 혼성을 권력의 전략으로 사용하고, 가끔씩은 사회주변부 내에서 반체제와 저항으로서 작용하고 있음을 지적하는 모렐로스의 학술적 작업을 언급하고자 한다.


III. 카리브 해 혼종성: 볼리바르 이후의 민족주의 담론

      라틴아메리카 역사를 탈식민주의 관점에서 연구하는 영국사학자 피터 훌름 Peter Hulme은 에드워드 사이드를 비롯한 다른 탈식민주의 이론가들이 카리브 해 지역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사실을 비판하면서, 탈식민주의 이론의 진정한 선구자들은 라틴아메리카 작가들, 특히 카리브 해 작가들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프란츠 파농(Franz Fanon), 에메 세제르(Aime Cesaire), 에두아르 글리상(Edouard Glissant), 페르난도 오르티스(Fernando Ortiz), 로베르트 페르난데스 레타마르(Roberto Fernández Retamar) 등을 대표적인 예로 든다.5) 카리브 해 지역은 라틴아메리카에서 원주민이 완전히 학살되었던 유일한 장소였고, 이것은 토착주의를 강조하지 않는 반식민주의적 담론의 등장을 용이하게 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사이드와 바바를 비롯한 탈식민주의자들이 주장하는 혼종 공간을 현실 속에서 보여주는 곳이다. 카리브 해 지역에서 유럽중심주의의 산물인 순수성과 기원을 거부하는 ‘문화횡단’이나 ‘칼리반’, ‘혼혈성’의 개념이 나온 것은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스페인이 신세계 정복을 시작한 이후, 스페인어권 카리브 해 연안 국가들은 스페인 문화, 원주민 문화, 아프리카 흑인 문화의 서로 다른 특성들이 합류하여 혼합된 땅이라는 변별적 특징을 지니고 있다. 카리브 해의 혼종성 논쟁과 이론의 계보는 셰익스피어가 사용한 ‘칼리반’과 ‘고귀한 야만’의 개념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그러나 카리브 해, 보다 넓게는 라틴아메리카에 관한 혼종성 담론은 19세기 독립과 국가형성시기에 스페인 식민권력과 투쟁하면서, 여러 상이한 인종 그룹을 재편하기 위해 탄생된다. 이렇게 스페인 식민지에서 새로운 공화국으로 가는 전환기를 이끌었던 시몬 볼리바르(Simón Bolívar)와 호세 마르티(José Martí)를 비롯하여, 새로운 국가건설을 명제로 삼고 있던 멕시코의 호세 바스콘셀로스와 쿠바의 로베르토 페르난데스 레타마르는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혼종을 바라본 대표적 지식인들이다.

      볼리바르가 1815년 자메이카에서 보낸 편지와 4년 후 앙고스투라(Angostura)의 베네수엘라 의회에서 읽은 연설문은 라틴아메리카 혼종성을 최초로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언급한 자료로 여겨지고 있다. 먼저 「자메이카에서 쓴 편지」(1815)에서 볼리바르는 당대 식민지의 조건에 관해 자메이카의 총독에게 답하면서, 라틴아메리카의 혁명적 노력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는 아메리카 대륙을 세상에서 가장 큰 “단 하나의 국가”(30)로 만들겠다는 꿈을 꾸고 그런 꿈이 위대하다고 말하지만, 크레올 계급 출신의 지도자들이 민족적․지역적 자립계획을 세우고 있기 때문에 요원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리고 로마제국처럼 분열되면서 형성된 각각의 독립국들은 과거의 역사 위에 정부를 수립할 수 있었지만, 아메리카는 다르다고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의 유산을 거의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원주민도 아니고 유럽인도 아닙니다. 우리는 이 땅의 합법적인 주인들과 스페인 침략자들의 피가 반반씩 섞인 혼혈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아메리카에서 태어났지만, 우리는 법적으로 유럽인입니다. 우리는 원주민들과 맞서 이런 권리를 위해 싸워야 하며, 동시에 침략자들과 맞서 우리 자신을 지켜야만 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극도로 복잡한 상황에 있습니다. (Bolívar 1993, 22)

      여기서 그는 유럽인과 원주민의 범주를 언급하지만, 볼리바르가 말한 “반반”이라는 말은 인종적 의미보다는 정치적 의미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러면 왜 그들이 합법적인 소유자들과 침입자들 사이의 ‘극도로 복잡한 상황’에 있는지 그 의미가 파악된다.

      이와 같은 생각은 놀랍게도 1819년 2월에 열린 베네수엘라 국회 개막 연설문에서도 그대로 반복된다. 여기서도 그는 라틴아메리카가 더 이상 스페인에 의해 통치될 수 없으며, 이런 증거는 바로 원주민과 유럽인에 맞서 싸워야 하는 ‘혼혈 종족’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볼리바르는 순종의 개념을 버리면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유럽인도 아니고 미국인도 아닙니다. 우리는 유럽에 뿌리를 둔 아프리카와 아메리카의 혼혈인입니다. 심지어 스페인조차도 아프리카의 피와 제도, 그리고 특성을 이어받았기 때문에 더 이상 유럽인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떤 인종에 속하는지는 정확하게 규정할 수 없습니다. 원주민의 대부분은 말살되었고, 스페인 사람들은 아메리카 원주민과 흑인과 혼합되었으며, 아프리카 인들은 원주민과 스페인 사람들과 뒤섞였습니다. 우리는 동일한 어머니에게서 태어났지만, 우리의 아버지들은 혈통과 태생이 각각 다른 외국인들입니다. 이런 모든 것은 피부색에서 가시적으로 나타나며, 우리는 이런 다양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야만 합니다. (Bolívar 1951, 181)

      여기서 볼리바르는 라틴아메리카의 구성에서 아프리카 인들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있으며, 유럽 인종의 순수성에 관해 의문을 던진다. 또한 라틴아메리카 인들의 계보에서 원주민 여인의 역할을 인정한다. 그러면서 사회적․인종적 혼혈의 라틴아메리카 인들은 유럽인들과 차이를 보이며, 따라서 자발적으로 자신들의 운명을 개척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혼혈이라는 차이성은 자주독립을 위한 투쟁의 조건이라는 것이다.

      이렇듯 혼종에 관한 볼리바르의 생각은 스페인 사람들과 원주민 여자 사이의 혼혈이라는 초기의 ‘메스티소’ 개념을 극복하고, 그 동안 간과되었던 흑인들의 공헌을 인정하는 것으로 발전한다. 아프리카 인들을 아메리카 인으로 인정하는 이런 볼리바르의 생각은 원주민의 대부분이 말살되어 아프리카-유럽의 만남에 초점을 맞추는 카리브 해의 혼종성 담론을 예시하고 있다. 1815년의 「자메이카에서 쓴 편지」와 더불어, 카리브 해는 혼종성에 대한 생산적이고 사색적인 진원지가 되면서, 혼종성 담론의 중심 지역이자 핵심 지역으로 부상한다.

      볼리바르가 혼종성을 찬양했던 19세기 초의 중심인물이라면, 쿠바의 대표적인 지식인인 호세 마르티는 19세기 말에 혼종성을 열렬한 찬미한 인물로 간주된다. 마르티는 볼리바르를 정신적 스승이자 인종적 계급질서와 차별에 의문을 던지게 만든 모델로 여긴다. 그는 볼리바르에 관한 글에서 “인종을 속박에서 해방시키고, 대륙을 해방시키고, 민족을 일깨우지 않았는가?”(Martí 190)라고 물으면서, 그의 독립 계획을 해방의 수사법으로 이해한다. 마르티는 쿠바의 독립전쟁, 특히 10년 전쟁(1868-1878)에서 백인과 흑인이 협력했다는 예를 보여주면서, “인종 간의 증오는 없다. 그것은 인종들이 없기 때문이다”(Martí 167)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볼리바르가 라틴아메리카에서 인종간의 전쟁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한 후 거의 80여년이 지난 다음, “쿠바에는 인종간의 전쟁이 일어날 걱정이 없다. 인간은 백인, 물라토, 혹은 흑인 이상이다. 쿠바인이라는 사실은 백인, 물라토, 흑인을 초월하는 것이다. 전쟁터에서 쿠바를 위해 죽으면서, 백인과 흑인의 영혼들은 함께 하늘로 올라갔다. 국가에 충성을 다하고 쿠바를 지키면서 형제애를 나누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었다. 그래서 백인 옆에는 항상 흑인이 있었다.”(Martí 101)라고 언급하면서 인종에 대한 볼리바르의 관점을 그대로 반복한다.

      마르티는 카리브 해의 경험을 바탕으로 인종을 불문하고 모든 카리브 해를 비롯하여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에게 미국의 팽창주의적 계획에 저항할 것을 권하기 위해 “우리의 혼혈 아메리카”(Martí 163)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그러면서 그는 “맨발로 파리의 연미복을 입은 민족”(Martí 163)라고 은유적으로 표현한다.6) 이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마르티에게 ‘혼종성’의 개념은 다양한 인종 그룹들이 불편하게 공존하고 있으며, ‘야만과 문명’이 부적절하게 혼합되어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러나 ‘맨발’이 상징하는 아프리카 인들과 원주민들의 야만과 서구 문명의 인식소인 ‘연미복’은 인종과 문화의 이분법을 넘어, 라틴아메리카의 불평등과 사회적 부정과 계급화는 인종적 혼종에 의해서만 야기된 것이 아니라, 정치적 관계와 사회 계급의 문제에 의해서도 생긴 것임을 시사한다. 그래서 마르티는 ‘혼종성’의 개념을 인종과 문화와 사회계급으로 확장하여, 스페인에 대항한 쿠바의 독립전쟁에서는 인종적 관용과 사회계급을 막론한 전 국민의 단합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여기서 인종적 화합은 현실보다 이상에 가깝지만, 그것은 유럽, 특히 마르티가 물질주의에 사로잡혔으며 흑인과 원주민을 배척했다고 비판하는 미국과 대비되어 라틴아메리카 정체성의 강력한 상징으로 자리 잡는다.

      민족주의 시대에 카리브 해의 혼종성 담론은 흔히 인종 혼합을 통해 ‘인종’을 개량할 수 있다는 인종차별적이고 유럽중심적인 사고에 바탕을 두고 있다. 즉, 유럽인들과 미국인들이 결과적으로 카리브 해/라틴아메리카의 사회를 백인화하고, 원시적인 원주민들을 동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Chanady 2003, 193) 하지만 그런 혼종성은 외부의 위협과 내부의 투쟁에 직면한 카리브 해 국가들의 중요한 민족 신화로 탈바꿈하면서, 긍정적인 자기 이미지와 특이성을 창조하게 된다. 마르티의 주장이 아직도 카리브 해 혼종성 담론의 기초를 이루는 것은 바로 이런 점에 기인한다.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 해의 혼종성을 연구할 때 빠질 수 없는 글이 멕시코의 교육부 장관을 지낸 호세 바스콘셀로스의『우주 인종 La raza cósmica』(1925)이다. 그는 미국의 물질주의와 그들의 문화적․정신적 빈곤을 비판하면서, 우수한 히스패닉의 취향이 결국은 라틴아메리카에서 제5의 인종을 탄생시킬 것이며, 그것은 다른 네 인종(흑인, 백인, 원주민, 아시아인)을 혼합하면서 그들의 현재 위치를 빼앗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마르티와 마찬가지로 그 역시 미국의 라틴아메리카 개입에 관해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혼혈로 이루어진 멕시코의 긍정적 이미지를 구성하면서, 바스콘셀로스는 라틴아메리카가 외국인들과 잘 교감하며, 따라서 모든 사람들을 새로운 형태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백인과 흑인과 원주민의 평등을 선언했던 볼리바르와 같은 유명한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바로 “보편적인 인간의 감정”(Vasconcelos 33)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천명한다.7)

      바스콘셀로스는 멕시코의 힘과 회춘의 원천이 될 혼혈은 강압이 아닌 “취향에 의한 자유로운 선택”(Vasconcelos 43)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며, 따라서 미래에 유럽의 특성들을 지배하게 될 것이라고 간주한다. 그는 라틴아메리카의 모든 지식인들에게 인류의 “집단적 구원”에 동참할 것을 권하면서, 그것은 그들이 인류의 구원에 필요한 “생물학적 요소와 취향, 그리고 유전인자”(Vasconcelos 60)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고 역설한다. 즉, 다른 사회들은 고갈되어 있는 반면에, 이 새로운 히스패닉 인종은 진정으로 보편적인 인류의 시기를 시작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이전 지식인들처럼 바스콘셀로스는 문화적 의미의 ‘혼종’을 교화적 사명의 일부로 보았고, 교육을 통해 원주민들을 사회 속에 통합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스페인적 전통이라는 굳건한 기초위에 새로운 종족과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려고 했으며, ‘우주 인종’을 통해 혼혈종족을 옹호하려는 희망을 드러내고 있다.

      바스콘셀로스의 ‘우주 인종’이란 개념은 다양성이 새로운 혼종적인 사회적․문화적 형태를 생산한다는 멜팅포트(melting-pot) 개념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미국의 멜팅포트 이미지가 원주민과 흑인들을 제외한 채, 유럽의 이민자들을 주로 다루고 있는 반면에, 바스콘셀로스의 ‘우주 인종’은 모든 인종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하지만 ‘우주 인종’의 특징을 결정짓게 될 미학적 대상이 ‘취향’이라는 점은 그의 이론이 우생학적이며 백인화 과정을 암묵적으로 강조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Chanady 2003, 196) 다시 말하면 진정한 혼종화보다는 ‘순수화’를 의미하며, 따라서 멜팅포트의 개념과도 상당 부분 유사함을 부인할 수 없다.8) 이렇듯 바스콘셀로스의 인종 이론과 미학적 이상주의는 많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지만, 그의 글은 문화적 가치와 자기긍정의 상징으로서 ‘혼종’의 중요성을 보여주고 있다.

      볼리바르와 마르티가 적극적으로 구현하고자 했던 혼종성은 바스콘셀로스뿐만 아니라 이후의 라틴아메리카를 비롯한 카리브 해 국가들의 지성계에도 큰 흔적을 남긴다. 쿠바의 대표적인 비평가이자 시인인 로베르토 페르난데스 레타마르는 “라틴아메리카의 문화는 존재하는가?”(Fernández Retamar 9)라는 어느 유럽 기자의 회의적인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칼리반 Calibán』(1971)이라는 긴 에세이를 출판한다.9) 그는 『칼리반』을 통해 1959년 쿠바혁명의 관점에서 ‘혼종성’을 다시 점검하면서, 볼리바르의 앙고스투라 국회연설문과 마르티의 유명한 ‘우리의 혼혈 아메리카’를 인용한다. 페르난데스 레타마르에게 마르티의 ‘혼혈성’은 쿠바혁명 속에서 라틴아메리카/카리브의 정체성을 완전하게 깨닫게 만드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즉, 카리브 해/라틴아메리카의 정체성에 대한 이런 질문들은 혼종성의 수사학을 발전시키게 되는 동기가 되고, 이내 카리브 해 지역의 다양한 요소들에 대한 긍정적인 해답을 제공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페르난데스 레타마르의 사상을 태동시킨 이런 의문들은 식민지적 회의주의를 반박하고, 혼종성을 평가하게 만드는 계기를 제공해주었던 것이다.

      그래서 페르난데스 레타마르는 “혼종성은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본질”이며 “우리 문화의 변별적 기호, 즉 인종적․문화적으로 말하자면 원주민, 아프리카인, 유럽인들의 후손들의 문화”(Fernández Retamar 12-13)라고 강조한다. 여기서 페르난데스 레타마르는 다시 ‘인종’을 문화와 같다고 여기고 있는 것 같지만, 곧이어 나오는 각주에서는 “인종들의 부적절한 생물학적 사실이 아니라 문화들의 역사적 사실이다”(Fernández Retamar 14)라고 분명하게 밝힌다. 그는 마르티가 ‘혼혈’을 강조한 사실을 지적하면서, 자신이 억압받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 “마르티는 급진적으로 반노예주의자이다. 왜냐하면 그는 수탈된 계급의 대변자이고, 그런 계급 속에서 세 인종은 혼합된다.”(Fernández Retamar 71)라고 설명한다. 카리브 해 경험을 바탕으로 탄생한 마르티의 의견과 마찬가지로, 페르난데스 레타마르의 칼리반 이론 역시 라틴아메리카의 상상적 공동체를 이루면서, 칼리반이란 기표를 라틴아메리카 지성계에 각인시키고, 지성계에 중요한 이정표가 된다.

      볼리바르, 마르티, 바스콘셀로스, 그리고 페르난데스 레타마르가 혼종성 사상을 전개한 시기는 모두 국가건설의 중요한 순간이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탈식민지의 카리브 해 지역 The Caribbean Postcolonial』의 저자인 샬리니 푸리(Shalini Puri)는 민족주의 시대의 카리브 해 혼종성 담론이 크게 세 가지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고 지적한다(Puri 45). 첫째, 식민모국 문화와의 변별적 요인으로 신세계의 혼합적 정체성을 연구하고, 그것을 통해 국가와 지역의 합법성을 제공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둘째로는 부르주아 민족주의적 헤게모니를 보장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평등의 담론을 평가하고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혼종성 담론은 인종 정책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그것은 엘리트가 수용할 수 있는 문화적․인종적 혼종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카리브 해의 민족주의적 혼종성은 메스티소나 크레올이 특정 시기에 구체화시킨 것으로, 비록 식민주의적 회의주의를 반박하는 데는 성공하고 있지만, 결국 이런 정체성은 ‘비위협적’ 특성을 띠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IV. 탈식민주의와 카리브 해 혼종성 이론: '문화횡단' 이론의 계보

      동질적 관점에서 혼종성을 파악한 민족주의적 관점과는 달리, 카리브 해의 국가들에서는 내적인 차이를 유지해야 한다는 탈식민주의적 관점을 지닌 혼종성 개념이 태동한다. 쿠바의 인종학자 페르난도 오르티스가 생물학적 혼종성의 개념을 넘어 특정한 지역의 경제를 바탕으로 ‘문화횡단’ 현상을 연구한 이후, 그의 이론은 앙헬 라마 Angel Rama, 마리 루이스 프라트(Marie Louise Pratt)를 비롯하여 마리오 로베르토 모랄레스(Mario Roberto Morales)로 이어지면서 발전된다. 우선 쿠바의 민속학자 페르난도 오르티스는 『쿠바에서의 담배와 설탕의 대위법』(1940)에서 “쿠바의 진정한 역사는 지극히 복잡한 문화횡단(transculturación)의 역사다”(Ortiz 86)라고 단언하고 있다.

      오르티스는 계속해서 ‘문화횡단’이란 용어는 소수 문화가 주류 문화로 완전히 동화하는 과정을 의미하는 앵글로아메리카의 사회학적 용어인 ‘문화변용’(aculturación)에 반대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설명하면서, 인종들과 문화들의 만남으로 야기된 문화적 변형의 과정은 새로운 혼종을 낳게 되는 ‘상호 영향’이란 개념으로 더 잘 설명되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신대륙의 식민지 통치가 역사 속에서 그러한 ‘만남’을 광범위하고 지속적으로 제공했던 것이고, 그 중심이 바로 쿠바였다. 쿠바는 식민지의 교차로였으며 신대륙의 주요 항구였기 때문에 아주 다양한 문화의 사람들이 도착한 곳이었다. 수세기에 걸쳐 일어난 문화횡단의 과정은 너무도 광범위하여 오르티스는 “쿠바에는 쿠바인의 형성에 영향을 끼친 수없이 많고 다양한 문화들이 있다. 기원을 살펴볼 때 그 문화들은 지역적으로 이질적이며, 그들의 특징도 각기 다르다. 그래서 쿠바에서 인종과 문화는 거대한 규모로 혼합되고, 그것은 모든 다른 역사적 현상을 뛰어넘는 중요한 요인이다.”(Ortiz, 87)라고 주장한다.

      오르티스는 문화가 자유롭고 동등하게 교환되면서 자발적으로 문화횡단을 시작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문화횡단을 사회적 격변의 충격으로 인해 야기된 격렬한 충돌로 이해한다(Timothy 231). 사실상 문화횡단은 이러한 과정을 보여주는 종합적 국면의 세 번째 단계이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약한 문화가 강한 문화와 처음으로 만났을 때 약한 문화가 상처를 입고 대대적으로 상실되는 1단계인 문화해체(desculturación)와, 억압된 문화가 다시 모여 지배 문화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는 두 번째 단계인 문화이입(inculturación) 이후에 일어나는 과정이다. 쿠바에서 유럽인들의 도착은 너무도 위압적이었으며, 그들은 원주민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한다. 그런 이유로 문화해체-문화이입-문화횡단의 주기가 유럽인들과 아프리카 노예들 사이에서 너무나 빠른 속도로 일어나며, 그 밖의 많은 다른 문화들이 그 과정에 더해진다. 오르티스는 궁극적으로 이런 과정이 문화횡단에게는 유익하게 작용했다고 말하면서, 지금의 모든 문화는 외래 문화였으며, 종래의 원주민 문화가 ‘이식된 문화’에 의해 갈기갈기 찢겨지는 불균형이 초래되었다고 지적한다(Timothy 231).

      비록 오르티스의 『쿠바에서의 담배와 설탕의 대위법』은 쿠바와 전 세계에서 설탕과 담배의 경작과 무역과 그 사용에 대한 소설 연구를 통해 문화횡단을 간접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나중에 그는 자신의 방법론을 여러 아프리카계 쿠바 음악 연구로 확장시키면서, 식민지 쿠바의 흑인 문화에 대한 자기의 초기 이론을 확립한다. 세계에서 가장 다양하고 역동적이며 영향력 있고 긴 역사를 자랑하는 쿠바음악은 문화횡단적 관점에서 광범위하게 분석될 수 있다. 그것은 역사적 연구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음악들과 오늘날 어떤 관계를 지니고 있는지도 조망할 수 있게 한다.

      그로부터 30년 후, 앙헬 라마(Angel Rama)는 문학 분야에 이 개념을 이용하면서, 카리브 해에 국한되었던 오르티스의 이론을 라틴아메리카 전역으로 확장시킨다. 그는 문화횡단의 개념을 전통적으로 문화변용으로 언급하고 있었던 라틴아메리카적 관점을 서술하면서, “두 문화의 접촉에서 수동적 혹은 열등한 요소라고 여겨졌던 것에 대한 저항이다. 이 개념은 이중적 인식에서 탄생되었다. 하나는 이미 문화횡단이 진행된 현대 문화 속에서 아주 오래된 과거 역사의 특징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창조적 힘이 이어받은 전통뿐만 아니라 동시에 외부의 전통에 대해서도 작용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다.”(Kraniauskas 237-238에서 재인용)라고 인식한다. 라마는 문화들 사이에서의 서술적 이행의 형태로 문화횡단 현상이 함축하고 있는 창조적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고, 1960년대와 1980년 사이에 출간된 라틴아메리카 문학과의 관계 아래서 이런 가능성을 다룬다. 오르티스가 문화횡단의 가장 좋은 예로 음악과 무용과 같은 행위 담론에 관심을 기울였던 것과는 달리, 라마는 문학이야말로 문화횡단의 형태를 보여주는 가장 훌륭한 발판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앙헬 라마의 가치는 신식민주의적 이론가들이 인종차별주의적 관점에서 ‘이질적’ 세계들을 자본주의 세계에 종속시킨 것과는 달리, 문화횡단을 대안적 모델로 사용하면서 하위주체인 농촌 민중문화를 회복시켰다는 점이다(Krauniauskas 238). 그가 연구하고 있는 라틴아메리카의 ‘붐’ 문학은 문학적 차원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적 차원에서 대중문화에 중요성을 부여하지 않고, 단지 부차적 차원으로만 다루고 있었다. 라마는 당시까지 민속 분야에 국한되었던 이런 대중문화가 창조적이며, 헤게모니 담론에 저항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을 밝힌다. 그러나 그는 다문화주의적 관점을 취하면서, 이런 대중문화가 새로운 헤게모니 담론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몇몇 비평가들은 그가 문화횡단과정을 분석하면서 하층민의 관점이 아닌 엘리트 문화의 관점에서 접근했음을 비판하기도 한다.

      이후 문화횡단은 라틴아메리카 문화연구에서 중요한 개념으로 자리 잡는다. 가령 마리 루이스 프라트는 이 용어를 인종학적으로 이해한 후, “지배 문화나 구미의 대도시 문화가 전파한 자료들에서 하위 그룹이나 소외된 그룹이 어떻게 선택하고 만들어내는지”(Pratt 24)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하면서, 오르티스가 사용했던 것과는 다소 다르게 적용한다. 그리고 문화횡단이란 접점 지역에서 생산되는 현상이라고 지적하면서, 혼종성과 혼혈 이론을 발전시키는데 대단한 공헌을 했던 ‘접점 지역 contact zone’이란 개념을 만들어낸다. 이것은 “지리적, 역사적으로 분리되어 있던 민족들이 서로 접촉하게 되면서, 일반적으로 강압과 인종 불평등과 좀처럼 제어되지 않는 충돌의 조건을 의미하는 지속적 관계를 설정하는 공간”(Pratt 26)이라고 규정한다. 이런 접촉은 분명히 성적인 접촉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혼혈은 접촉의 즉각적인 결과임을 암시하고 있으며, 그런 ‘지속적 관계’의 산물로 연구되고 있다.

      최근 카리브 해 연안 국가의 혼종성에 관한 연구는 사회에서 소외된 대중 부문의 출현을 강조하고 있다. 즉, 혼종담론은 국가건설과 혼란한 사회의 통일을 강조하던 담론에서 혼종 민중문화에 관한 관심으로 옮겨간다. 물론 계속되는 국내외적 문제와 불평등, 그리고 국가화합을 위협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사회운동의 출현에 직면한 경우, 초기의 민족주의적 패러다임을 강조하는 경우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현대 라틴아메리카 문화연구자들은 현대의 ‘혼종성’ 연구가 하위주체가 아닌 국가통합의 전략으로써 사용될 경우, 혼종 담론은 엘리트들이 저항운동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사용했던 과거의 모델과 별로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자각한다. 바로 여기서 그들은 하위주체에 관심을 보이게 된다.

      이런 하위주체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혼종성 이론은 과테말라의 소설가이자 문화연구가인 마리오 로베르토 모랄레스에게서 잘 드러난다. 그는 20세기 후반에 등장한 마야부족의 사회운동과 정체성 정책을 보면서, 원주민 그룹 안에서 발생하는 이분법적 구성을 비판한다. 그는 마야인-비(非)마야인이라는 대립개념은 복잡한 사회현상을 왜곡시킨다고 지적한다. 즉, 세계화와 갈수록 중요해지는 대중매체가 혼종적 정체성을 탄생시켰고, 따라서 그 누구도 명확하게 이런 구분을 설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것을 이분법적으로 구별하는 과거 회귀적 원주민의 태도는 본질주의적인 지배계층인 메스티소 혹은 라디노(스페인어를 말하는 혼혈인)의 담론과 차이점이 없다고 주장한다(Morales 303).

      이런 맥락 속에서 모랄레스는 혼종성의 개념을 부활시킨다. 그는 혼종 혹은 혼혈을 20세기 전반의 멕시코혁명 동안 라틴아메리카 귀족계급이 추구했던 백인화로의 동화로 인식하지 않는다. 대신 혼종이란 본질주의적 정체성의 해체와 상이한 민족문화의 조화로운 공존을 야기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계속된 문화혼합의 과정 속에서 혼종적 성격을 띠게 된 민족 문화들 간의 유동적 경계를 강조한다. 그는 이런 새로운 현실을 ‘다문화’라고 지칭하지만, 그 개념은 “모자이크의 경계가 엄격하게 존재”(Morales 323)한다는 것을 함축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래서 경계의 유지를 의미하는 ‘차이’와 상호간의 문화횡단 현상이 벌어지면서 수많은 형태가 만들어지는 문화적 ‘혼합’을 구분한다. 또한 그는 문화혼합이 새로운 국가정체성의 공통분모이며, “상호문화주의와 상호인종적 민주화”(Morales 324)는 이분법적으로 구성된 정체성이 혼종성과 문화혼합으로 바뀌어야만 가능하다고 결론 내린다.


V. 맺음말: 혼종성의 문제

      1996년에 마틴 린하드(Martin Lienhard)는 라틴아메리카의 ‘혼혈성’(인종적, 문화적 혼합)을 비판하는 글을 발표한다. 그는 그것이 독립 전야의 크레올 엘리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였다고 설명한다. 비록 이런 담론은 인종 그룹 간의 평등을 확인해주었지만, 실제로는 사회 특정 분야가 배제되었다는 사실을 숨기는데 도움을 준 것이 사실이다. 또한 클로르 데 알바(Klor de Alva) 역시 ‘혼종’의 신화는 “라틴아메리카 대부분 원주민의 식민화된 조건이나 비참한 과거와 관련된 민족의식을 완화하기 위한 민족적 기억상실증을 조장”(Klor de Alva 257)하기 위해 사용되었다고 비판한다.

      이런 혼종성 담론에 관한 관점은 의심할 여지없이 민족주의 관점에서 혼종성을 어떻게 정치적, 사회적으로 이용했는지 연구할 때는 매우 시사적이다. 그러나 현대 문화연구와 탈식민주의 이론은 혼종성을 새로운 관점에서 다시 읽게 만든다. 허위의식으로서 그것을 해체하는 것을 넘어, 국가 정체성과 정치, 혼종성 사이에 카리브 해 지식인들이 설정했던 복잡한 관계를 점검해 볼 기회를 제공해주는 것이다. 즉, 새로운 주체의 탄생과 현실의 상징적 구성을 강조하는 탈구조주의적 관점에서 이런 혼종성 담론의 의미를 바라보게 해 준다. 혼종성의 패러다임을 백인과 유럽화된 지배헤게모니의 도구로서만 바라보는 대신에, 그것을 상이한 이데올로기적 콘텍스트 속에서, 그리고 상이한 입장에서 구성된 여러 방법을 점검해볼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이럴 경우 혼종성 담론은 국가 이데올로기에 반하는 이데올로기로 작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국가 이데올로기를 합법화할 가능성도 있음을 가정해볼 수 있다.

      이렇듯 혼종성 담론은 모호한 상태를 지닌다. 그것은 국가건설 계획과 맞물려 있었지만, 또한 최근에는 새로운 문화적 형태와 소수주체의 연구에 적용되기도 한다. 그리고 모랄레스나 라마, 그리고 최근의 네스토르 가르시아 칸클리니(Néstor García Canclini)와 같은 현대 학자들 사이에서 그것이 재출현하면서 현대 문화의 중심 요소로 자리 잡는 것은, 근대성의 계획이 이루어지지 않은 주변부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지식인들을 계속해서 당황하게 만들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문화횡단, 크레올화, 혼종성, 노마디즘, 이주와 같은 용어들이 차이를 강조하면서 전통적인 정체성을 해체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지만, 혼종성 담론은 종종 사회적 불평등과 정치문제로 갈가리 찢겨진 채 지구화 경제 속에서 계속하여 뒤처진 채 절룩거리는 사회에서 국가 공동체의 가능성을 강조하는 데 일익을 담당하기도 한다. 그러나 마르틴 오펜아임(Martín Hopenhaym)이 라틴아메리카 근대성에 관한 연구에서 지적하고 있다시피 혼종성 담론은 이질적이 사회에서 미래를 위한 필요한 유토피아를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아직도 상징적 공동체의 강력한 개념으로 남아있다.●



각주

1) 본 논문은 카리브해 지역의 연구이지만, 카리브 해의 문화 연구가 1980년대 이후 라틴아메리카 문화 연구의 한 영역으로 흡수되어 논의되고 있기 때문에, 종종 라틴아메리카를 언급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카리브 해 연안 지역의 혼종성은 라틴아메리카 국가들과 다소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이 개념은 전반적인 적용이 가능하다.

2) ‘혼종’과 ‘혼혈’이란 용어는 문화연구에서 미묘한 차이가 있지만 여기서는 문화적 개념에 입각하여 동의어로 사용한다.

3) 라틴아메리카의 문화연구는 영국의 문화연구나 서구의 포스트모던 이론에서 발생하지 않는다. 영국의 문화연구나 포스트모던 작가들이 라틴아메리카에 소개되기 이전에, 그리고 영국의 문화 연구가 영국에서 주조되고 포스트모더니즘이 탄생되기 이전에, 수많은 라틴아메리카 작가들은 이미 문화연구와 비슷한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라틴아메리카 문화 연구의 계보를 보면 매우 다양하고 하나의 입장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탈구조주의나 포스트모더니즘 이론들과만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지 않다. 또한 라틴아메리카 문화연구는 미국의 문화연구보다도 먼저 이루어지고 있었기에, 그들에게서 파생된 것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의견이다.

4)호미 바바에 의하면, 식민 문화담론은 “분리된 공간, 즉 결코 단일하지 않고 이중적인 분리의 공간”에서 생산된다. 그것은 기원의 진정성에 의지하여 권위를 모색했던 식민주의자들이 체계적으로 만들어온 것이다. 그러나 차이가 혼성의 주장으로 변하면서, “권위의 표상은 가면, 곧 모조물이 된다.”(Bhabha, 120)

5) Hulme, Peter, Colonial Encounters, London: Routledge, 1986을 참고할 것.

6) 차나디 Amaryll Chanady는 이 용어가 유럽과 원주민, 그리고 아프리카인들의 혼합의 결과인 “새로운 종족”으로 가득한 대륙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다인종으로 구성된 라틴아메리카의 사회 구성을 일컫고 있다고 지적한다. (Chanady 2000, 21)

7) 바스콘셀로스는 인종적 관용을 주장하고 미국의 인종 탄압을 비판하지만, 아시아 이민자들에게 관해서는 인종 차별적인 모순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는 아시아인들이 “쥐들을 번식시키고” 따라서 원초적 동물적 본능이 지적인 능력에 의해 통제되는 시기에 “인간의 조건을 타락”시키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Vasconcelos 34-35)

8) 바스콘셀로스의 자서전인 『혼혈 율리시즈 Ulises criollo』(1935)는 그가 여러 문화와 종교, 그리고 인종에 관해 언급하면서, 일반적으로 비유럽적 인종을 타자로 여기고 있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9) 페르난데스 레타마르의 ‘칼리반’ 개념에 관해서는 송상기의 「아리엘/칼리반: 부에노스아이레스/쿠바」(www.latin21.com)를 참고할 것. 여기서는 페르난데스 레타마르의 ‘혼종성’ 개념에 국한해서만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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