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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바문화의 기원과 쿠바 문학 / 신정환 2003-10-22 / 6003   

쿠바 문화의 기원과 쿠바 문학

신 정 환



1. 들어가는 말 - 문화와 정체성


     오늘날 미국과 전 세계에 불고 있는 라틴 리듬의 열풍은 20세기말부터 특히 주목을 끌고 있는 라틴아메리카 문화의 저력과 매력을 대변해 주고 있다. 라틴 리듬뿐만 아니라 중남미의 공예품, 회화, 음악, 건축 등은 이곳의 문화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활력과 함께 전 세계의 문화 지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또한 이베로아메리카 정상회담이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등 정치․경제적 통합과 함께 이 대륙이 고립에서 벗어나 국제사회의 실질적인 구성원으로 편입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라틴아메리카의 많은 나라들 가운데서 쿠바는 비록 카리브 해에 떠 있는 조그만 섬에 지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일찍이 정복 시대부터 유럽과 아메리카를 잇는 관문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고 특히 1959년의 카스트로 혁명 이후 아메리카 대륙 최초의 공산 정권이 들어섬으로써 전 세계적인 관심의 초점이 되어왔다.

     그러나 쿠바의 위상은 사실 정치적인 측면보다 문화적인 측면에서 그 진가가 드러난다. 쿠바의 수도인 아바나는 카스트로 혁명 직전까지만 해도 중미의 라스베가스라 불릴 정도로 화려하고 안락한 휴양․관광 도시로 각광을 받았고 예술적으로도 멕시코 시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등의 대도시들에 뒤지지 않는 중요한 문화적 거점으로서 수많은 작가와 예술가들의 요람이 되어 왔다. 문학에서는 모데르니스모 시운동의 선구자이자 독립운동가였던 호세 마르티(José Martí), 흑인 시(poesía negra)를 쓴 니콜라스 기옌(Nicolás Guillén), 대표적인 바로크 소설가들인 알레호 카르펜티에르(Alejo Carpentier)와 레사마 리마(Lezama Lima) 등의 작가들이 있고, 회화에서는 모더니스트인 아멜리아 펠라에스(Amelia Peláez), 초현실주의자인 윌프레도 람(Wilfredo Lam) 등 국제적인 화가들을 배출했으며 영화 부문에서도 《저개발의 기억》으로 유명한 토마스 구티에레스 알레아(Tomás Gutiérrez Alea), 기록영화의 아버지인 산티아고 알바레스(Santiago Alvarez), 촬영감독으로서 오스카상을 수상한 네스토르 알멘드로스(Néstor Almendros) 등 많은 거장을 낳았다. 한편 음악 분야에서도 실비오 로드리게스(Silvio Rodríguez)와 파블로 밀라네스(Pablo Milanés) 등의 세계적인 음유시 가수들이 활동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손(son), 룸바(rumba), 맘보(mambo), 차차차(chachacha), 살사(salsa) 등 오늘날 유행하는 대부분의 라틴 리듬이 쿠바에서 탄생하였다.

     쿠바의 이러한 문화적 저력은 과연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이 글은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쿠바 문화의 기원을 탐색해 보는 데에 목적이 있다. 문화의 뿌리를 찾는 연구는 단순한 고고학적 의미만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구체적으로 말해 문화란 한 공동체를 다른 공동체와 구별해 주는 변별적 정체성이라 할 수 있다. 문화적 뿌리의 문제는 곧 한 공동체의 정체성 문제와 직결되는 것이며, 정체성은 또한 과거의 화석화가 아니라 갈수록 냉엄하고 복잡다기해지는 국제 사회에서 그 공동체가 살아남기 위한 미래의 전망과도 직결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2. 이종혼합 문화

2.1. 쿠바 정복사와 지정학적 의미

     콜럼버스가 쿠바에 도착한 것은 제 1차 항해에서 아메리카 대륙에 첫 발을 내디딘 지 보름이 지난 1492년 10월 27일이었으며 그 장소는 지금의 오리엔테 지방의 북쪽 해안이었다고 알려진다. 그러나 이 땅은 지금의 도미니카 공화국, 아이티, 푸에르토리코 등의 지역과는 달리 금이 풍부하지 않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탐험가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다가 17년 후인 1509년에 이르러 디에고 벨라스케스(Diego Velázquez, 1465~1524)가 이끄는 군대에 의해 본격적인 정복사업이 이루어졌다. 철제갑옷을 입고 총과 칼, 그리고 금속활로 무장한 정복자들에 대해 단지 몽둥이와 돌 그리고 조잡한 나무 활에만 의지한 원주민들은 변변한 저항도 해보지 못하고 쉽게 굴복하고 말았다. 스페인 군대는 곧 섬 전체를 피로 물들이면서 장악하였고 소위 “문명화”와 기독교화 사업을 추진하였다.

     스페인 사람들이 쿠바에 왔을 때 이 섬에는 약 10만 명의 원주민들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들은 크게 보아 현재의 카마구에이, 올긴, 산티아고 데 쿠바 등지에 살면서 경작을 했던 타이노(taínos) 족, 섬 전체에 흩어져 살면서 수렵과 낚시를 했던 수브타이노(subtaínos) 족 그리고 현재의 피나르 델 리오(Pinar del Río) 지방에 살면서 혈거 생활을 했던 구아나아타베예스(guanahatabeyes) 족 등 3 부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백인들이 섬을 점령한 이후 모든 원주민들은 노예화되었고 가혹한 학대와 중노동, 학살, 유럽 질병의 유입, 아사(餓死), 자살 등으로 그들의 인구는 급격히 감소하였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최초로 백인들의 잔인함을 고발하고 원주민들의 권리를 주창한 바르톨로메 데 라스 카사스(Bartolomé de las Casas)는 ꡔ인디아의 파괴에 대한 간략한 보고서ꡕ(1542)에서 쿠바의 원주민들이 당하고 있는 참상을 직접 목격하고 이를 고발하고 있다. 쿠바뿐만 아니라 전 대륙에 걸쳐 자행되고 있던 원주민 학대는 인류 역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인구감소를 불러왔을 뿐만 아니라 콜럼버스 도착 이전에 이미 형성되어 있던 고유한 원주민 문화의 단절을 야기했다. 특히 문자보다는 구전에 의한 “역사적 기억”(memoria histórica)을 공유하고 있는 원주민 사회에서 현인들(sabios)의 사라짐은 원주민들 고유의 목소리의 상실 현상을 초래한다. 이는 다시 말해 자신의 역사를 스스로의 목소리로 구성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인디오 문화의 말살이 곧 쿠바 문화 자체의 말살을 뜻하는 것은 아니었다. 정복단계가 완료되고 식민체제가 자리잡으면서 “단절의 체험”(experiencia de ruptura)은 이종혼합을 통한 새로운 문화의 생성으로 이행된다. 여기에는 앞서 말했듯이 카리브해에 위치하여 구세계와 신세계의 관문 역할을 하면서 새롭고 다양한 외부 문물과의 접촉을 용이하게 해 주었던 쿠바의 지리적 위치가 큰 역할을 하였다. 덕분에 아바나에는 스페인 국왕의 독점적 통제하에 전 세계에서 온 선박들의 깃발과 마스트가 장대한 숲을 이루면서 신․구세계의 중간 기착지로서 명성을 누렸다.

     인류의 역사는 곧 다양한 문화들간의 교류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이런 의미에서 모든 문화는 이종혼합의 역사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위대한 문명일수록 교환과 교통이 용이한 곳에 위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는 문화적 갈등과 충돌이 예술적 충동과 상상력의 기반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대륙의 관문으로서 쿠바 역시 파도처럼 밀려오는 수많은 문물과 유행사조를 받아들여 기존의 것들과 조화시키는 데에 성공하면서 라틴아메리카의 중요한 문화적 거점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지정학적 위치 못지 않게 쿠바 문화의 특징적 형성에 기여하는 것은 이 섬이 가지고 있는 지형학적 특징이다. 11만 평방 킬로의 면적을 가지고 동서로 길게 뻗은 쿠바는 대부분 평탄한 지형을 가지고 있으며 산맥 역시 대부분 동서로 평행하게 자리잡으면서 인적․물적․사상적 소통을 용이하게 해주고 있다. 지리적으로 국토를 분열시키는 방해물이 사실상 없다는 점은 쿠바의 문화를 내적으로 통일하고 공고화하는데 기여하였다. 쿠바의 지식인인 펠릭스 바렐라는 “쿠바는 그 지리적 상황 덕분에 항상 풍요로웠다”라고 말한 바 있는데 이는 쿠바의 외적인 지정학적 위치와 내적인 지리적 특성을 모두 감안한 언급이라 할 수 있다.


2.2. 이종혼합(異種混合)인가 이종누적(異種累積)인가

     “식민지의 삶은 혼혈의 역사적 극장이다”라는 조지 큐블러(George Kubler)의 말은 라틴아메리카에서 전형적인 실례를 보여준다. 새로운 땅을 발견하고 정복한 뒤 식민체제의 건설에 매진하던 스페인 지배자들은 정치체제, 종교, 풍습, 인종 등 모든 분야에서의 혼합정책을 시행하였다. 특히 이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부분은 물론 인종간의 혼혈이어서 식민지배자들은 백인 남자와 원주민 여자간의 혼혈뿐만 아니라 원주민 남자와 백인 여자간의 혼혈도 권장하였다. 이런 의미에서 호세 마르티는 혼혈이야말로 “우리 아메리카”(Nuestra América)의 본질적인 조건이라고 확신하였고, 쿠바 작가인 페르난데스 레타마르(Roberto Fernández Retamar)도 라틴아메리카에서 혼혈은 우연한 사고가 아니라 본질이라고 주장하였으며, 레오폴도 세아(Leopoldo Zea) 역시 혼혈은 “우리의 존재”(nuestro ser) 자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아메리카 대륙 내의 여러 국가들 중에서도 특히 그 관문이었던 쿠바는 이러한 혼혈을 가장 극적으로 체험하면서 인종과 문화의 용광로가 되기에 이르렀다. 쿠바에서 혼혈의 과정을 겪은 대표적인 세 인종은 원주민, 스페인인 그리고 아프리카 흑인들이며 이들간의 혼혈을 통해 백인과 원주민간의 메스티소, 백인과 흑인간의 물라토, 원주민과 흑인간의 삼보 등 새로운 인종이 출현하였다. 그러나 스페인 사람들 안에 흐르고 있는 라틴계, 게르만계 그리고 아랍계의 피를 감안하면 실로 유럽과 아프리카 그리고 아메리카의 세 대륙이 거대한 인종적 도가니 안에서 융합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19세기말부터는 중국인, 일본인, 필리핀인 등 아시아계 이민이 들어왔고 프랑스인들이 아이티의 독립운동에 쫓겨 피난 왔으며 북미의 루이지아나에서는 웨일즈인들이 집단 이주해 와서 시엔푸에고스 등의 도시를 세웠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로 쿠바는 전 세계 인종들의 집합소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조지 큐블러가 주장하듯이 혼혈은 비단 인종적인 차원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었다. 즉 그것은 종교, 풍습, 예술, 생산물, 언어 등 문화들간의 충돌에서 빚어지는 모든 종류의 혼합뿐만 아니라 동식물의 교배에도 적용될 수 있는데, 이 때 혼혈(mestizo)이란 용어는 더 광범위한 함의를 가지면서 흔히 이종혼합(híbrido)과 동일한 개념으로 이해되곤 한다. 이중에서 예술에서의 이종혼합을 예로 들어보면, 스타츠니는 그것의 3가지 양태로서 먼저 콜럼버스 이전 요소들의 잔존, 둘째 원주민 감수성의 격세유전적인 지속, 셋째 지역 특유의 동식물적 요소들이 장식적 문체에 이용되는 것 등을 꼽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다른 대륙, 특히 유럽에서와는 달리 이러한 이종 집단이 모순의 지양을 통해 종합된 것이 아니라 단순히 누적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 말은 이 지역의 문화들이 원주민, 스페인, 혹은 흑인 문화라고 따로 언급될 뿐, 라틴아메리카적이라고 불릴 만큼 고유한 문화적 종합은 이루어 내지 못했음을, 혹은 않았음을 뜻한다. 라틴아메리카의 문학, 철학, 신학, 미술, 시 등에서 이러한 종합은 20세기 후반부에 들어서서 비로소 이루어진다고 간주되지만,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 저변에 누적된 문화의 여러 층위들은 여전히 그 고유성을 잃지 않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작가인 세베로 사르두이는 혼혈의 문화와 관련하여, 특히 쿠바의 문화야말로 몇 겹으로 겹쳐진 이종혼합의 문화라고 말하면서 소설은 그 누적된 각각의 층위를 밝혀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는 지명, 풍습, 신앙, 예술, 그리고 음식 문화에 이르기까지 여러 층위에서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쿠바의 지명들은 이러한 이종혼합의 예들을 잘 보여준다. 즉 라 아순시온 에 바라코아(La Asunción de Baracoa), 산 살바도르 데 바야모(San Salvador de Bayamo), 산 크리스토발 데 라 아바나(San Cristóbal de La Habana) 등의 이름은 스페인어와 원주민어가 합성된 것인데 이것들은 후에 원주민어로만 지명이 통일된다. 쿠바인들이 경배하는 카리다드 델 코브레 성모 (Virgen de la Caridad del Cobre)는 신앙생활에서의 이종혼합의 예를 보여주는 예이다. 1604년 니페 해안에서 발견된 이 목재 조각에서 흑인 노예들은 물과 사랑과 행복의 분노한 여신인 오춘(Ochún)의 모습을 보았고, 백인들은 성모 마리아를 보았으며 원주민들은 아타벡스(Atabex)의 모습을 발견한다. 한편 쿠바인들의 이종혼합적 특성은 카스트로 혁명 이후 정체(政體)가 공산주의임을 선언한 뒤에도 다른 사회주의 국가와는 달리 카톨릭이나 전통 아프리카 신앙 의식이 사라지지 않고 공존해 왔다는 점을 보아도 단적으로 드러난다.


2.3. 쿠바성(性)

     국민국가(nation state)의 등장과 함께 본격적으로 근대성이 개막되는 유럽에서 국가의 성립 이전에 이미 지역별로 국민 혹은 민족이 형성되어 있었음에 반해 라틴아메리카에서는 국가의 성립이 국민이라는 개념을 선행한다고 볼 수 있다. 쿠바에 사는 사람들이 국가라는 개념을 염두에 두고 조국(patria)이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하는 것은 18세기말에 이르러서이다. 구체적으로 말해 1761년 역사가인 아라테(Arrate)는 “조국의 명예를 위해”라는 말을 하고 있고 30년 후 또 다른 역사가인 이그나시오 데 우루티아 이 몬토야(Ignacio de Urrutia y Montoya) 역시 “나의 사랑하는 조국”이라는 말을 구사한다(앞의 책, 45). 쿠바가 조국이라는 의식은 이전까지 조국 혹은 모국이라 인식되었던 스페인으로부터의 분리를 의미하는 것인데, 여기에는 스페인 본국인과 쿠바에서 태어난 스페인 사람들, 즉 크리오요(criollo)들이 서로 다르다는 인식이 기반이 되었다. 그리고 이는 곧 ‘쿠바적인 것’(lo cubano) 혹은 쿠바성에 대한 인식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쿠바성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지칭하는가? 그것은 앞서 보았던 대로 인종간, 문화간의 이종혼합과 자기가 살고 있는 자연에 대한 새로운 눈뜸 그리고 그것을 지키기 위한 투쟁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산출된 것이다. 특히 이중에서도 쿠바의 자연은 그 풍요로움을 바탕으로 쿠바성의 형성에 커다란 역할을 하며, 이런 의미에서 호세 마르티는 “사람들은 두 어머니를 가지고 있으니 하나는 자연이고 다른 하나는 환경이다”라는 말을 한다. 더 나아가 작가인 호세 포르나리스(José Fornaris)는 자연을 쿠바의 정체성의 핵심으로 보고 “쿠바의 자연은 우리들을 이 땅에 살던 옛 원주민들과 형제가 되게 한다”라고 말한다. 쿠바인들은 혈통을 통한 타인종들과의 직접적인 이종혼합뿐만 아니라 자연을 통해 핏줄이 다른 선대인들과의 간접적 유대감도 느끼고 있는 것이다. 풍요로운 자연과 타자(他者)에 대한 개방성은 자연 쿠바인들에게 노동보다는 춤과 음악과 시를 사랑하는 여유롭고 관용적인 성격을 부여하였는데 이는 쿠바가 라틴아메리카 문화의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해 나가는 데 기반이 되고 있다.


3. 문학에 나타나는 쿠바 문화의 뿌리

     전통적으로 쿠바의 이종혼합 문화를 가장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분야는 문학이었다고 할 수 있다. 쿠바 문화의 정수 혹은 쿠바성(cubanidad)에 대해서 다룬 소설 작품들로는 카르펜티에르의 『빛의 세기』(El siglo de las luces), 레사마 리마의 『파라다이스』(Paradiso), 카브레라 인판테(Cabrera Infante)의 『트레스 트리스테스 티그레스』(Tres tristes tigres) 등 여러 작품들을 들 수 있지만 이 글에서는 가장 대표적인 작품으로서 세베로 사르두이의 『가수들은 어디서 왔는가』(De donde son los cantantes, 1967)를 중심으로 쿠바 문화의 기원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가수들의 기원을 묻는 이 작품은 실제로는 가수로 상징되는 쿠바의 기원을 천착하는 작품이다. 모두 3부로 나누어져 있고 앞뒤로 “쿠바 이력서”와 “작가의 말”이 붙어 있는데, 1부에서는 중국 문화, 2부에서는 흑인 문화 그리고 3부에서는 백인 문화를 다루면서 이 세 가지 문화가 이종혼합된 채 쿠바 문화의 정수를 이루고 있다고 작가는 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작품은 앞서 언급된 대로 누적된 쿠바문화의 이종혼합의 각 층위를 밝혀주어야 할 임무가 소설에 있다고 말한 자신의 말을 몸소 실행에 옮기는 작업이라고도 볼 수 있다.

     사르두이에 따르면 중국인은 쿠바 세계관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고 할 정도로 쿠바 문화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특히 그는 중국인의 문화가 통찰과 관조, 그러면서도 동시에 극단적인 행위가 변증법적으로 이루어지는 세계라고 보았다. 한편 흑인 역시 쿠바의 핵심적인 문화를 형성한다. 저명한 인류학자인 페르난도 오르티스(Fernando Ortiz)에 따르면 흑인 문화는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쿠바적인 것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를 이루었으며 흑인이 쿠바화되고 쿠바는 흑인화되면서 아프로쿠바노 (afrocubano)라는 신조어까지 나오게 되었다. 사르두이는 흑인들이 남긴 가장 특징적인 현상으로서 그들의 음악성과 감각성을 들고 있다. 한편 작가는 3부에서 백인 문화를 추적하기 위해 주인공인 소코로와 아욱실리오로 하여금 5백년전의 콜럼버스가 그랬던 것처럼 카디스 항구를 떠나 쿠바의 산티아고로 순례를 오게 하며 이곳에서 다시 아바나로 입성하게 한다. 이는 1959년 카스트로의 아바나 입성을 상징하면서 권력의 기원을 찾는 듯도 하지만 그 과정에서 현란한 스페인어의 잔치를 보여주면서 결국은 언어 자체가 주인공이 되는 양상을 보인다.

     이 소설에서 사르두이는 쿠바의 기원을 무엇이라 결론 내리는가? 작가는 3부에 걸쳐 계속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코로와 아욱실리오의 진정한 실체를 결코 밝히지 않는다. 혹은 밝히지 못한다. 이는 아직도 서인도(西印度)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는 카리브해의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처음부터 잘못된 인식에서 출발했던 쿠바의 기원이 텅 비어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모순의 지양과 종합을 이루어내지 못하고 중첩되어 있는 쿠바, 더 나아가 라틴아메리카의 이종혼합의 문화를 구조적으로 보여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4. 맺는 말

     쿠바의 기원이 비어있다는 사르두이의 암시는 쿠바 문화 자체 혹은 그 특성이 부재함을 의미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쿠바문화는 풍부한 민중 정서적 문화전통을 가지고 있되 그것의 형성과정을 보면 이질적인 요소들의 사이좋은 공존이 그 기반이 되어왔고 ―이는 같은 중남미권의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지역간․인종간 차별이 없다는 점을 보아도 명백히 알 수 있다―, 또 그 전통이 수구주의적 입장에서 다른 전통을 억누르는 억압기제로 작용하지 않음을 말해줄 뿐이다. 이렇게 쿠바 문화의 근저에서 작용하고 있는 문화적 관용성이야말로 오늘날 쿠바 문화의 뿌리를 밝혀주는 열쇠가 되며 ‘쿠바성’의 핵심이라고 말할 수 있다.

     1990년대 초반 사회주의 블록의 붕괴 후에도 쿠바 정권은 무너지지 않고 오히려 카스트로의 인기는 변함없이 지속되고 있는 이해하지 못할 기현상 역시 유연한 이종혼합을 가능케 한 관용적 문화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쿠바인들이 현실인식이 약하고 매사에 순응적이고 보수적이라는 말은 아니다. 그들은 오히려 말장난(choteo)이나 친구 삼기(parejería) 등의 특유의 관습에서 볼 수 있듯이 기성의 권위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다. 이는 쿠바가 오늘날 무소불위의 제국을 이루고 있는 미국의 코앞에 있으면서도 지난 40년간 정치적으로 결코 굴하지 않았던 사실만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앞서 살펴본 쿠바 문화의 뿌리와 특성은 한국의 문화에도 타산지석이 되고 있다. 전통적으로 단일 민족과 단일 문화에 대한 허위의식적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는 배타적인 한국의 풍토는 혼혈 혹은 이종혼합을 하나의 병리현상으로 간주하면서 타자성에 대한 접근을 원천적으로 봉쇄하여 왔다. 그러나 쿠바의 풍요로운 이종혼합 문화는 혼혈이 병이 아니라 부인할 수 없는 삶의 과정이요 진정한 세계화의 요체임을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