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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틴아메리카 하위주체 연구의 기원, 쟁점, 의의 / 우석균 2005-09-09 / 6654   

라틴아메리카 하위주체 연구의 기원, 쟁점, 의의

우 석 균



라틴아메리카 하위주체연구는 구하를 필두로 한 남아시아 하위주체연구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 태동하였다. 미국 대학의 라틴아메리카 연구자들이 중심이 되어 1992년 연구그룹을 결성했으며, 2000년까지 공동의 연구 활동을 수행했다. 처음에는 그들의 연구가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점차 라틴아메리카 연구에서 독창적이고도 중요한 연구 분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남아시아 연구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고는 하나 라틴아메리카의 변화된 정세에 대한 고뇌와 참신한 문제 제기가 담겨 있음을 인정받은 것이다. 또한 미국 학계를 매개로 한 것이기는 하지만 남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 간의 남-남 대화라는 점도 주목을 받았다.

본고는 먼저 1장에서는 라틴아메리카 하위주체 연구그룹의 태동과 연구 성과물들에 대해, 2장에서는 남아시아 하위주체연구에 눈을 돌리게 된 시대적 배경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3장에서는 연구그룹의 이론적 가로지르기와 그룹 내부의 상이한 시각들을 다룰 것이며, 4장에서는 라틴아메리카 하위주체 연구그룹을 둘러싼 최대 쟁점에 대해 살펴보고 이에 대한 연구그룹의 입장을 살펴볼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라틴아메리카 하위주체연구의 의의를 짚어보는 것으로 결론을 대신하고자 한다.


1. 라틴아메리카 하위주체 연구그룹의 태동과 활동

라틴아메리카 하위주체 연구그룹은 미국에서 활동하던 라틴아메리카 연구자들인 존 베벌리, 일레아나 로드리게스, 로버트 카, 호세 라바사, 하비에르 산히네스 등 5인의 주도로 결성되었다. 이들은 급변하는 세계정세 속에서 변화의 방향성에 대해 의구심을 품고 있던 터에, 니카라과 산디니스타 정권의 대선 패배에 충격을 받고 변화된 현실을 설명해 줄 새로운 지적 패러다임을 찾고 있었다. 그때 이들에게 결정적인 지적 영감을 주었던 책이 구하와 스피박이 공동 편찬한 『하위주체연구 선집』(Selected Subaltern Studies, 1988)이다. 라틴아메리카 그룹이 그람시의 하위주체 개념을 전유한 구하에 대해 금방 관심을 두게 된 데에는 스피박의 간접적인 역할이 있었다. 스피박은 이미 「하위주체는 말할 수 있는가?」로 1980년대 미국 학계에 논쟁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을 뿐만 아니라, 존 베벌리 및 일레아나 로드리게스와 더불어 프레드릭 제임슨이 주도한 마르크스주의 문학그룹(Marxist Literary Group)의 멤버였다.

라틴아메리카 그룹은 1992년 조지 메이슨 대학에서 첫 모임을 가진 후 영어로 작성된 「창립선언문」을 발표했으며, 이 글은 이듬해 비평지 《바운더리 2》에 게재되었다.1) 일레아나 로드리게스는 조지 메이슨 대학의 모임과 더불어 오하이오 대학(1994), 라이스 대학(1995), 푸에르토리코 대학(1996), 윌리엄-메리 대학(1997), 듀크 대학(1998)의 모임까지 모두 여섯 차례 회합을 가졌다고 회고한다. 그 사이 연구그룹의 저변이 확대되어 10여 명의 핵심 멤버와 10여 명의 또 다른 교류 학자들이 연구를 진행했다. 이는 단지 하위주체 연구자들의 수적인 증가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미 조지 메이슨 대학에서의 첫 모임 때부터 인류학자, 역사학자, 라티노를2) 연구하는 학자 등이 참여하면서 인문과학과 사회과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은 물론 개별 분과학문들 사이의 경계도 허물어뜨리려는 시도를 했다. 또한 연구자들의 저변이 확대되면서 포스트모더니즘, 후기마르크스주의, 해체론, 탈식민주의, 문화연구 등등 다양한 분석틀이 유입되었다. 모임 때마다 각자 원고를 들고 참석했으면서도 원고를 읽기보다 대화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 것이 분과학문간의 가로지르기와 다양한 분석틀의 유입에 크게 도움이 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라틴아메리카 그룹은 국가 및 계급과 하위주체의 관계, 엘리트와 하위주체, 하위주체성, 여성 하위주체, 종족, 재현과 대표성, 헤게모니와 지배, 차이와 인정, 통치능력(governability)과 시민(citizenship), 식민주의와 하위주체, 문화와 문화정치, 다문화주의, 신사회운동 등등에 대한 풍성한 논의를 할 수 있었다.

1) Latin American Subaltern Studies Group, "Founding Statement", Boundary 2, Vol. 20, No. 3, pp. 110-121. 이 「창립선언문」은 다음 문헌에도 포함되었다: John Beverley, José Oviedo and Michael Aronna(eds.), The Postmodernism Debate in Latin America, Duram and London: Duke University Press, 1995, pp. 135-146; Dispositiio, No. 46, 1996, pp. 1-11. 스페인어로는 산티아고 카스트로-고메스에 의해 번역되어 "Manifiesto inaugural"이라는 제목으로 다음 문헌에 실려 있다: Santiago Castro-Gómez and Eduardo Mendieta(coordinadores), Teorías sin disciplina, Latinoamericanismo, poscolonialidad y globalización en debate, México, D.F.: University of San Francisco and Editorial Miguel Ángel Porrúa, pp. 85-100.

2) 라티노(latino). 미국에 거주하는 라틴아메리카인을 지칭함.


조지 메이슨 대학과 오하이오 대학에서의 모임 이후 학술지 《디스포시티오》 46호에 ‘아메리카의 하위주체연구’(Subaltern Studies in the Americas)라는 제목으로 특집을 냈으며,3) 푸에르토리코 대학과 윌리엄-메리 대학의 회합 이후에는 2001년 『라틴아메리카 하위주체연구 독본』을 출간하고, 듀크 대학 모임을 토대로 2000년 《네판틀라》 창간호에 하위주체연구 특집을 냈다.4) 이 과정에서 남아시아 하위주체 연구그룹과의 대화를 시도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그래서 라이스 대학 모임 때는 라틴아메리카 그룹의 정신적 스승이었던 구하를 초청했다. 듀크 대학 모임은 라틴아메리카 연구그룹으로서는 영광의 순간이었다. 라틴아메리카 그룹 외에도 라클라우, 엔리케 뒤셀, 아니발 키하노, 차그라바르티 등이 참석했고, 대학 당국자는 하위주체연구를 듀크 대학 인문학의 모델로 삼겠다는 의사를 피력하기까지 했다. 라틴아메리카 연구그룹의 전성기는 2000년까지 지속되었다. 그해 11월 스피박의 주도로 컬럼비아 대학에서 국제 학술대회 ‘확대 하위주체연구’(Subaltern Studies at Large)가 열렸고, 스피박과 구하는 물론 아프리카 및 근동의 하위주체 연구자들이 참석한 이 대회에서 라틴아메리카 하위주체 연구그룹의 위상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3) 46호는 1994년에 발간되어야 했으나 실제로는 1996년에 발간되었음.

4) 라틴아메리카 하위주체 연구그룹의 기원이나 인적 구성, 연구 활동, 활동중단 경위 등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하기 바란다: Ileana Rodríguez, "La encrucijada de los Estudios Subalternos: Postmarxismo, desconstruccionismo, postcolonialismo y multiculturalismo", Ileana Rodríguez(ed.), Convergencia de tiempos: Estudios subalternos/contextos latinoamericanos estado, cultura, subalternidad, Amsterdam/Atlanta, GA: Rodopi, 2001, pp. 5-6; Ileana Rodríguez, "Reading Subalterns Across Texts, Disciplines, and Theories: From Representation to Recognition", Ileana Rodríguez(ed.), The Latin American Subaltern Studies Reader, Durham and London: Duke University Press, 2001, pp. 1-2, 29-30; 이성훈, 「중남미 하위주체 연구그룹의 성과와 한계」, 《라틴아메리카연구》, Vol. XVI, No. 2, 2003, pp. 493-494. 이밖에 필자의 몇 가지 궁금한 점에 대한 존 베벌리의 서신 인터뷰들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라틴아메리카 그룹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하위주체연구의 문제 설정이나 방법론에 동의하지 못하는 측의 비판 수위도 높아졌으며 또한 그룹 내부 연구자들끼리의 차이도 부각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외부적 비판과 내부적 차이로 인해 연구그룹의 결속을 유지하는 일이 점점 힘든 일이 되었다. 연구그룹의 모임이 기껏해야 8-10개월 주기로 열렸고, 주로 해당 대학의 지원을 받지 못한 비공식적인 성격의 모임이었으며, 상이한 분과학문 연구자들이 다양한 관심사를 천명하였기 때문에 연구그룹의 동질성은 애초에 기대하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5) 아무튼 결정적인 해산 동기는 듀크 대학 모임과 ‘확대 하위주체연구’를 거치면서 하위주체연구가 ‘확대’되었다는 사실이었다고 한다. 라틴아메리카 그룹의 역량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의제들이 대두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또한 존 베벌리처럼 ‘하위주체’라는 개념 역시 일정 부분 한계가 있지 않나 하는 의구심을 느끼기 시작한 이도 있었다. 라틴아메리카 하위주체 연구그룹은 결국 컬럼비아 대학의 국제학술대회 이후 활동을 중단하기로 결정하였다.

5) 존 베벌리는 서신 인터뷰에서 이와는 다른 이야기를 한다. 모임이 가끔씩 열린 것이 오히려 결속력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공식적인 지원을 받지 못해 각자 여행 경비를 부담하면서도 적극적으로 모임에 참석하고, 모임이 열리면 숙식을 으레 그룹 동료의 집에서 해결하고, 모임 때마다 2-3일씩 난상 토론을 거치는 과정에서 참여 연구자들은 강력한 소속감을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2. 패배의 경험과 새로운 분석틀의 모색

라틴아메리카 하위주체 연구그룹이 구하를 필두로 한 남아시아 그룹에 눈을 돌리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라틴아메리카 그룹의 최초의 5인이 산디니스타 정권의 대선 패배에 충격을 받고 현실에 대한 새로운 분석틀을 모색했으며, 그들이 프레드릭 제임슨과 가까운 좌파였다는 점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라틴아메리카의 1960년대는 가히 혁명의 시대였다. 1959년 쿠바 혁명의 성공 이후 혁명을 통해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는 낙관적 전망이 라틴아메리카 전역에 널리 퍼지게 된 탓이다. 칠레의 아옌데 정권을 탄생시킨 원동력이 바로 새로운 사회가 임박했다는 믿음이 야기한 적극적인 현실참여였다. 그러나 1970년대가 진행되면서 그 믿음의 기반은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다. 심각한 좌우 이데올로기 갈등으로 사회 혼란이 끝없이 되풀이되고, 공산화를 저지해야 한다는 미명으로 집권한 군부의 혹독한 탄압에 신음하고, 군부 쿠데타에 의한 아옌데 정권의 붕괴를 목도하면서였다. 1980년대 라틴아메리카는 또 다른 시련에 직면했다. 1982년 외채위기 이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극심한 경제위기가 라틴아메리카 전역을 휩쓸었던 것이다. 혁명을 논하는 것 자체가 사치가 된 현실, 게다가 경제위기의 책임이 좌파에게도 전가되는 상황에서 라틴아메리카 좌파의 존재 기반은 완전히 무너졌다. 1990년 니카라과 대선에서 산디니스타 정권이 보수파에게 패한 사건은 좌파의 존재 기반이 완전히 무너졌다는 것을 입증한 사건이었다. 더구나 1970년대 퇴색하는 징후가 보이던 좌파의 낙관적인 전망을 되살려준 사건이 1979년 산디니스타 정권의 탄생이었기에 충격이 클 수밖에 없었고, 또한 1989년의 베를린 장벽 붕괴에 연이은 것이어서 더욱 파장이 컸다.

라틴아메리카 하위주체 연구그룹의 대다수 멤버는 좌파 출신으로 이 패배의 경험을 딛고 막다른 골목에서 탈출할 방도를 모색하게 되었다. 그들은 참담한 좌절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주의의 끈을 결코 놓지 않았다. 이 그룹 창립 멤버들이 현실사회주의의 붕괴 징후가 나타나기 훨씬 오래 전부터 프레드릭 제임슨에게 경도되어 있었다는 사실은 어째서 좌파의 존립기반이 무너졌음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주의를 포기하지 못했는지를 시사해준다.6) 제임슨은 쿠바에서 어느 중고등학교를 방문했을 때의 신선한 충격에 대해 토로한 적이 있다. 지식인의 역할에 대한 수업이 따로 개설되어 있으며, 문화적 소양을 갖춘 현실참여적인 지식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몹시 부러웠다는 것이다.7) 그런데 제임슨이 역설하는 지식인상이야말로 바로 라틴아메리카 하위주체 연구그룹을 결성한 이들의 자화상이었다. 일레아나 로드리게스, 로버트 카, 마이클 클라크는 자메이카의 마이클 맨리 정권이나 니카라과 산디니스타 정권에 대해 비상한 관심을 기울여 왔고, 존 베벌리는 미국의 반전운동이나 신좌파에 참여하고 중앙아메리카의 연대그룹과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으며, 호세 라바사는 게릴라 출신, 파트리시아 시드는 멕시코 학생운동권 출신이고, 마리아 밀라그로스 로페스는 푸에르토리코 사회당과 여성운동에 참여한 경력의 소유자였다.8) 마르크스주의를 부정하는 것은 그들이 살아온 삶과 현실참여적인 지식인이 되고자 한 신념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일이었기에 쉽지 않은 일이었던 것이다.

6) 존 베벌리와 일레아나 로드리게스는 제임슨의 제자이자 그가 1970년대 중반 마르크스주의 문학그룹을 만들 때부터 창립 멤버였으며, 존 베벌리의 경우 모임의 간사를 역임하기까지 했다. 일레아나 로드리게스는 몇 년 후 미네소타 대학에 이데올로기와 문학 연구소(Institute for the Study of Ideologies and Literature)가 세워졌을 때 제임슨처럼 정치, 문학, 문화를 연계하여 현실을 분석하려는 시도를 했다(Ileana Rodríguez, "Reading Subalterns Across Texts, Disciplines, and Theories: From Representation to Recognition", pp. 1-2).

7) Fredric Jameson, "Third-World Literature in the Era of Multinational Capitalism", Michael Hardt and Kathi Weeks(eds.), The Jameson Reader, Oxford and Massachusetts: Blackwell Publishers, 2000, p. 325.

8) Ileana Rodríguez, Op. cit., p. 5.


문제는 패배의 원인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 주거나 변화된 현실을 설명할 만한 분석틀이 없었다는 점이다. 패배의 경험이 너무나 컸기에 과거의 분석틀들은 더 이상 신뢰할 수 없었다. 또 최악의 경제위기가 라틴아메리카 전역에 급격한 사회변화를 초래했기 때문에 새로운 분석틀이 절실히 필요했다. 창립선언문 서두에 요약되어 있는 것처럼 경제위기는 좌파 기획에 대한 불신만 초래한 것이 아니었다. 경제위기에 대한 책임은 군부정권이나 권위주의적 정권에도 전가되어 정권 퇴진과 급격한 민주화 과정이 뒤따랐다. 경제위기를 틈타 헤게모니를 장악한 신자유주의는 초국가적인 경제적 배치를 강요하였다.9)

9) Latin American Subaltern Studies Group, "Founding Statement", John Beverley, José Oviedo and Michael Aronna(eds.), The Postmodernism Debate in Latin America, Op. cit., p. 135.

라틴아메리카 하위주체 연구그룹이 좌파의 시각을 고수하면서 변화된 현실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과거에 대한 성찰이 필요했을 것이다. 어째서 패배할 수밖에 없었는가를 깨닫지 못한 채 마냥 마르크스주의를 고집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1967년 체 게바라의 죽음은 패배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일깨워주는 상징적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 체 게바라는 자기가 대변한다고 믿었던 볼리비아의 원주민 농민이 정작 혁명에 무관심하다고 한탄하는 일기를 남긴 바 있다.10) 이는 계급 개념으로 접근하기 힘든 광범위한 하층민의 존재를 의미했고, 계급투쟁론으로는 그들의 지지를 이끌어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라틴아메리카 하위주체 연구그룹은 좌파에 대한 반성을 넘어 국민국가 형성이라는 근대기획 자체에도 의문을 표하기 시작했다. 국민국가가 하층민의 이해보다는 토착지배 엘리트 및 식민지배자들의 이해를 대변했다는 역사적 경험 때문이었다. 가령 니카라과의 소모사 족벌체제는 내부 식민의 전형적인 예였고, 1990년 대선에서의 보수파 승리는 네오콘의 지원을 등에 업은 콘트라반군이 산디니스타 정권의 통치 능력에 끊임없이 균열을 가져온 결과였다. 민족이라는 개념 자체도 의심스러운 것이었다. 1992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과테말라의 리고베르타 멘추의 경우 증언서사 『나의 이름은 멘추』(Me llamo Rigoberta Menchú y así me nació la conciencia, 1982)에서 언어와 문화가 상이한 22개의 원주민 부족이 과테말라에 존재한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원주민 공동체의 비밀을 라디노들에게11) 알려주지 않을 것이며 알려주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진술을 되풀이하고 있다. 민족이라는 범주가 라틴아메리카의 다양한 공동체들을 포괄하기에는 너무도 추상적이고 허구적인 개념이라는 것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계급이나 민족 혹은 국가를 대신해 현실을 해석할 수 있는 개념이 절실히 필요했던 라틴아메리카 하위주체 연구그룹에게 국가, 계급, 인종, 민족, 젠더 등등 그 어느 범주로도 환원되지 않으면서도 지배-종속 관계를 설명하고자 그람시의 하위주체 개념을 전유한 구하와의 만남은 필연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10) Ibid., p. 139.

11) 라디노(ladino). 원래는 메스티소를 뜻하는 말이었으나 메스티소는 물론 백인이나 인디오식 삶의 양식을 포기한 원주민들을 폭넓게 지칭하는 말이 되었음.


라틴아메리카 하위주체 연구그룹은 구하의 방법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근대화, 독재, 정당, 혁명, 메트로폴리스/주변부, 발전, 민족주의, 민족해방이라는 과거의 의제 대신 합의, 다원주의, 민주주의, 하위주체성, 권력 이동, 새로운 세계 질서, 거대 지역을 의제로 삼았다.12) 국가, 계급, 민족에 대한 문제제기나 하위주체를 천착하는 것을 넘어 세계적인 맥락에서 하위주체 문제를 성찰하고자 하는 점이 뚜렷이 눈에 띈다. 실제로 연구그룹은 자신들의 궁극적인 목표가 민주적인 세계 질서 확립에 이바지하는 것이라고 말한다.13) 이렇게 세계적인 맥락을 염두에 두게 된 것은 물론 전지구화라는 부정하기 힘든 현실 때문이었다.

그러나 연구그룹이 세계적인 맥락으로 관심을 확장시킨 것을 라틴아메리카 사회변화와 연관시킨다면 크게 두 가지 현상과 관련된다. 첫째, 제반 사회적 갈등에 대해 국가가 중재 능력을 상실하면서 하위주체를 대변할 초국가적 네트워크가 필요해졌다. 경제위기 이후 국가의 힘은 실제로 크게 약화되었다. 라틴아메리카 각국이 저마다 신자유주의 모델을 채택하면서 공적 영역이 축소된 결과이다. 경제위기의 유일한 긍정적 산물인 군부의 퇴진과 급작스런 민주화 과정도 국가의 중재 능력을 상실하게 만들었다. 군부통치 시절 억눌려져 있던 각종 사회적 욕구가 민주화 과정에서 한꺼번에 분출될 때, 국가가 그 욕구를 해소하고 중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또한 민주화가 경제위기 속에서 진행되면서 국가로서는 사회적 불만을 해소할 만한 자원 동원이 불가능하다시피 한 측면도 있었다. 주적이 국가가 아니라 초국가적 자본이라는 인식 혹은 국가에 대해 별로 기대할 것이 없다는 인식은 신사회운동 같은 초국가적 네트워크의 결성을 촉진할 수밖에 없었다. 둘째, 국경이 유동적이 되었다. 군부독재, 경제위기, 전지구화는 라틴아메리카에서 제1세계로의 대규모 이주를 야기했다. 제1세계 내부에 제3세계 하위주체가 대규모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하위주체 연구자들로 하여금 세계적인 맥락을 고려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12) Latin American Subaltern Studies Group, Op. cit., p. 142.

13) Ibid.



3. 이질적 이론들의 접목과 연구그룹의 내부 분화

앞서 언급한 것처럼 라틴아메리카 하위주체 연구는 구하를 수용하면서 수많은 이론들과 접목시켰고 특히 포스트- 이론들이 커다란 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런데 포스트- 이론들 중 적어도 포스트모더니즘은 라틴아메리카 하위주체 연구자들이 연구그룹을 결성하기 이전부터 이미 개별적으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라틴아메리카의 포스트모더니즘 논쟁을 다룬 책이 라틴아메리카 연구그룹의 「창립선언문」을 포함시킨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이 유별났던 이유는 1980년대 경제위기 속에서 라틴아메리카 사회를 해석하는 기존 분석틀들이 폐기되다시피 했을 때 마침 서구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이 유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기존 좌파와 우파 모두에게 탈출구를 제시했다. 좌파는 포스트모더니즘에서 마르크스주의의 계급투쟁의 경직성을 완화시켜줄 차이의 정치학을 발견했고, 우파는 거대담론의 종말을 논하는 포스트모더니즘에서 오랜 이데올로기 갈등을 종식시킬 일말의 희망을 보았다. 1980년대 이전의 분석틀을 폐기하고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외부 이론이 도입되었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은 당시 라틴아메리카에서 최초로 광범위하게 통용된 것이라는 점에서 일개 방법론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즉, 새로운 에피스테메의 출현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그래서 다른 포스트- 이론들이 방법론으로 차용되는 경향이 있는데 반해 포스트모더니즘은 구하와 더불어 라틴아메리카 하위주체연구의 토대이자 중요한 출발점이 되었다. 그러나 하위주체 연구그룹이 포스트모더니즘을 받아들이는 방식에도 결국 패배를 극복하고자 하는 갈망이 개입되어 있다. 이로 인해 라틴아메리카 포스트모더니즘은 이중성을 띠게 되었다. 새로운 에피스테메이면서 동시에 패배를 극복할 도구로 사용되게 된 것이다. 에피스테메이자 도구라는 모순적인 포스트모더니즘이 라틴아메리카 하위주체연구에 국한되어 나타나는 현상만은 아니었다. 닐 라르센이 말하는 이른바 ‘좌파 포스트모더니즘’이14) 라틴아메리카 포스트모더니즘에서는 강력한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고 있었다. 서구 포스트모더니즘이 모더니티의 극복을 목표로 했다면 라틴아메리카 좌파 포스트모더니즘은 불균등 모더니티에 대해 관심을 기울인다.15) 그래서, 서구 포스트모더니즘이 인문학자들에 의해 선도된 것과는 달리, 라틴아메리카 좌파 포스트모더니즘에는 사회과학자들이 눈에 많이 띈다. 이는 과거 종속이론에 심취했던 사회과학자들이 새로운 분석틀을 더욱 더 절실히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16)

14) Neil Larsen, "Postmodernism and Imperialism", John Beverley, José Oviedo and Michael Aronna(eds.), Op. cit., p. 118.

15) John Beverley and José Oviedo, "Introduction", Ibid., p. 4.

16) Ibid., pp. 5-6.


라틴아메리카 하위주체 연구그룹의 결성 무렵 구하와 포스트모더니즘만큼이나 대전제가 되었던 것은 문화라는 화두였다. 이는 몇몇 창립 멤버들이 프레드릭 제임슨과 긴밀한 유대 관계에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래서 「창립선언문」의 서두부터 연구그룹의 목표가 라틴아메리카의 정치적, 문화적 영역을 재정의하는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17) 문화에 대한 관심은 또한 당시 미국 학계의 동향과도 깊은 관계가 있다. 영국의 문화연구가 1980년대 미국으로 건너갔고, 하나의 분과학문의 위상을 획득할 정도로 확실히 뿌리를 내렸다. 그리고 몇 년 뒤 미국 내 라틴아메리카 연구에서도 라틴아메리카 문화연구가 중요한 연구 분야가 되었다. 라틴아메리카 하위주체 연구그룹은 자신들의 작업이 결국에는 광범위한 의제를 다루는 라틴아메리카 문화연구의 한 범주라고 보고 있다.18)

17) Latin American Subaltern Studies Group, Op. cit., p. 135.

18) Ibid., p. 114.


문화연구로서의 라틴아메리카 하위주체연구는 크게 보아 잡종 문화론과 미국식 다문화주의를 경계했다. 잡종 문화론은 네스토르 가르시아 캉클리니(Néstor García Canclini)가 제기한 문화론이다. 문화의 뒤섞임 현상에 대해서는 이전부터 여러 논자들이 다양한 용어를 사용하며 상당히 심도 깊은 논쟁을 전개해 왔으며, 가르시아 캉클리니가 잡종 문화론을 개진하면서 1990년대 라틴아메리카 문화론들 중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하게 되었다.19) 잡종 문화는 전근대와 근대 및 전지구화 시대가 혼재하고, 원주민 문화, 백인 문화, 아프리카 문화 등이 뒤섞여 있고, 현대적인 대중매체와 전통문화가 혼재하는 라틴아메리카 현실에 주목한 문화론이다. 그러나 하위주체 연구그룹은 잡종 문화론이 근본적으로 엘리트주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 이질적인 문화를 ‘잡종 문화’라는 하나의 범주로 동질화시키려는 시도는 무엇이든 체계화하려는 지식인 엘리트의 속성에서 비롯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20) 잡종 문화론은 또한 여러 문화가 뒤섞인 현상을 서술할 뿐 문화적 헤게모니 문제나 문화적 차이가 지배-종속 구조와 맞물려 있는 현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따라서 다양한 종족, 언어, 문화가 존재하는 라틴아메리카 현실에서, 또 대부분의 경우 원주민이 곧 하위주체인 현실에서 잡종 문화론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다. 라틴아메리카 하위주체 연구그룹이 미국식 다문화주의를 수용하지 못하는 것도 유사한 이유에서였다.21) 미국식 다문화주의 논의가 문화간 차이에 대한 현상적 논의에 그치거나 차이의 인정을 원론적인 수준에서 주장할 뿐이라 궁극적으로는 원주민 하위주체 문제의 탈정치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본다.

19) Ana del Sarto, "Introduction to Foundations", Ana del Sarto, Alicia Ríos and Abril Trigo(eds.), The Latin American Cultural Studies Reader, Durham and London: Duke University Press, 2004, p. 181.

20) Ileana Rodríguez, "Hegemonía y dominio: subalternidad, un significado flotante", Santiago Castro-Gómez and Eduardo Mendieta(coordinadores), Op. cit., pp. 104-105.

21) Ileana Rodríguez, "Reading Subalterns Across Texts, Disciplines, and Theories: From Representation to Recognition", pp. 5-6.


라틴아메리카 하위주체 연구그룹이 진화하면서 그룹 내부의 분화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 분화는 관심 주제에 따라서 이루어지기도 하고 연구 방법론 혹은 라틴아메리카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에 따라 이루어지기도 했다. 가령 여성 하위주체나 원주민 하위주체에 대한 관심이 그룹 내부의 분화를 가져오기도 했지만, 해체론냐 마르크스주의냐 하는 방법론상의 문제가 대두되기도 하고, 마르크스주의적 역사 인식이 더 중요한가 혹은 탈식민주의적 역사 인식이 더 중요한가에 대한 시각 차이에 따라 분화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방법론의 차이나 역사 혹은 현실 인식의 차이는 때로는 해결하기 힘든 난제가 되어 연구그룹의 동질성을 유지하는 데 걸림돌이 되기도 했다.

마르크스주의와 해체론의 대립에 대해서는 하위주체연구의 딜레마를 다룬 플로렌시아 E. 마욘의 글에 명쾌하게 나타나 있다. 마욘은 하위주체연구가 구하를 필두로 그람시, 데리다, 푸코를 받아들였다고 요약하고 있다.22) 마욘은 라틴아메리카 하위주체연구가 구하를 취하는 것은 물론 남아시아 하위주체 연구그룹처럼 그람시와 푸코에 기초하면서 부가적으로 담론, 텍스트, 언어 분석 기법을 가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데리다를 제외할 것을 제안하는 마욘의 입장은 그녀 자신도 밝히고 있듯이 해체론자인 스피박에 대한 유보적인 입장을 천명한 것이기도 하다.23) 해체론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은 물론 텍스트 분석의 미로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고자 함이다. 해체론에 대한 의혹은 이미 남아시아 하위주체 연구그룹에서도 제기되었다. 1986년 캘커타에서 열린 학술대회에서 데이비드 하디만(David Hardiman)은 남아시아 하위주체연구가 해체론을 옹호하는 입장과 정치성을 옹호하는 입장 때문에 갈림길에 서 있고, 양자의 입장 차이는 극복하기 힘들지도 모른다고 말한 바 있다.24) 하위주체의 역사를 새롭게 서술하기 위해 기존 역사서술의 해체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해체론자의 입장이 비정치적이라는 비판은 수긍하기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22) Florencia E. Mallon, "Promesa y dilema de los Estudios Subalternos: Perspectivas a partir de la historia latinoamericana", Ileana Rodríguez(ed.), Convergencia de tiempos, p. 121.

23) Ibid., pp. 152-53.

24) 재인용, Ibid., pp. 127-28.


탈식민주의 하위주체 연구자와 마르크스주의 하위주체 연구자의 대립 역시 풀기 힘든 난제였다. 전자의 대표적인 인물인 월터 미뇰로(Walter Mignolo)는 라틴아메리카 하위주체의 제반 문제가 식민 역사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식민성(coloniality)을 탈피하는 방법이 하위주체연구의 중심이 되어야 된다는 것이다.25) 반면 마르크스주의 하위주체연구자의 대표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을 존 베벌리는 식민 역사보다 근대사가 문제이며, 자본주의가 하위주체의 제반 문제를 야기했다고 주장한다.26) 탈식민주의 하위주체연구와 마르크스주의 하위주체연구의 대립은 마치 민족이 먼저냐 계급이 먼저냐를 따지던 과거의 갈등을 연상시킬 정도로 입장 차가 선명하다.

25) 탈식민주의 하위주체 연구자로 분류되기는 하지만 월터 미뇰로는 탈식민주의라는 용어를 라틴아메리카에 적용하기를 거부한다. 대신 쿠바의 비평가 페르난도 레타마르 페르난데스(Fernadno Retamar Fernández)가 1970년대에 천명한 탈서구주의(postoccidentalismo)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식민 상태를 벗어나는 방법이 지역마다 차이가 나는 것이 당연하다는 논지에서이다. 탈서구주의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하기 바란다: Walter Mignolo, "Posoccidentalismo: el argumento desde América Latina", Santiago Castro-Gómez and Eduardo Mendieta(coordinadores), Op. cit., pp. 31-58.

26) Ileana Rodríguez, "La encrucijada de los Estudios Subalternos: Postmarxismo, desconstruccionismo, postcolonialismo y multiculturalismo", p. 18.



4. 라틴아메리카니즘인가 하위주체의 국제적 연대인가

라틴아메리카 하위주체연구에 대한 최대의 비판은 연구 그룹을 결성한 학자들이 미국에 정착한 라틴아메리카인과 일부 미국인이며 미국 대학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라틴아메리카 현실과 유리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미국의 헤게모니를 강화시켜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었다. 우고 아추가르는 탈식민주의와 하위주체연구 모두 결국 미국 학계가 주도하는 비평 담론이라는 것을 주목하고 이 담론들이 제3세계에서 발화된 것이 아니라면 결국 “새로운 범아메리카주의 의제”(new Pan-Americanist agendas)에27) 불과하다고 말한다. 마벨 모라냐도 하위주체연구가 부정적인 의미의 붐을 이루고 있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그녀에 따르면 하위주체연구는 제1세계의 전지구적 문화적 헤게모니를 위해 등장한 일종의 지적 상품이며, 제1세계와 제3세계의 정치사회적 지배-종속 관계가 지식의 영역에까지 확산되는 징후이며, 라틴아메리카를 제1세계 시각에 입각해 지적 대상으로만 타자화시킨 것이다.28) 안토니오 코르네호 폴라르는 하위주체연구의 관심사를 일정 부분 공유하기는 하지만 미국 내의 라틴아메리카 연구 결과물이 영어로 쓰여진다는 사실을 우려한다.29) 이들의 비판을 종합해보면 라틴아메리카의 이해보다 미국의 이해를 대변할 가능성이라든가,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오리엔탈리즘식 담론인 라틴아메리카니즘의 생산과 확산에 알게 모르게 관여할 가능성, 하위주체를 상품화시킬 가능성, 하위주체가 연구 대상 텍스트로 전락할 가능성, 미국의 지적 헤게모니에 라틴아메리카의 지적 사유가 종속되거나 말살될 가능성 등 다양한 측면에서 라틴아메리카 하위주체연구를 경계하고 있는 셈이다.

27) Hugo Achugar, "Leones, cazadores, e historiadores, a propósito de las políticas de la memoria y el conocimiento", Revista Iberoamericana, No. 180, 1997, p. 386.

28) Mabel Moraña, "El boom del subalterno", Santiago Castro-Gómez and Eduardo Mendieta(coordinadores), Op. cit., p. 240.

29) Antonio Cornejo Polar, "Mestizaje e hibridez: los riesgos de las metáforas. Apuntes", Revista Iberoamericana, No. 180, 1997, pp. 341-344.


미국의 헤게모니에 대한 우려는 상당 부분 근거 있는 것이다. 미국 내 라틴아메리카 연구(Latin American Studies)는 처음부터 의혹의 대상이었다. 미국에서 라틴아메리카 연구가 하나의 연구 분야로 확실히 정착하게된 것은 1960년대의 일이었고,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잠재적인 적을 연구하기 위해 지역학 연구를 활성화시키는 과정에서였다. 미국 내 라틴아메리카 연구가 처음부터 ‘라틴아메리카로부터’(desde)가 아니라 ‘라틴아메리카에 대해’(sobre)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지역연구가 냉전 종식과 함께 전반적으로 퇴조하는 가운데에도 미국 내 라틴아메리카 연구는 오히려 활성화되었다. 이는 군부독재와 경제위기로 라틴아메리카인들이 미국에 대거 이주, 정착한 현실이 반영된 것이다. 라티노가 백인 다음으로 많아지면서 미국 대학들이 과거에 비해 라틴아메리카 연구를 강화시켰으며, 라틴아메리카 출신 연구자들의 수가 비약적으로 늘면서 라틴아메리카 연구는 양적인 팽창은 물론 질적인 성장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하위주체연구는 미국 내 라틴아메리카 연구의 역량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라틴아메리카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연구 영역을 새로 개척했고, 제1세계의 최신 이론과 접목시켜 보편성을 획득했으며, 라틴아메리카 지배 엘리트의 대표성을 문제 삼는 ‘권위 있는’ 목소리가 되었다. 그러나 라티노 공동체의 팽창 속도나 라틴아메리카 연구의 활성화에 비해 라티노의 미국 주류 사회 편입이 여전히 쉽지 않은 상황에서 라틴아메리카 연구는 미국의 다문화주의 틀에 의거한 일종의 ‘백신’에 불과하다는 시각을 불식시키기 힘들었다. 또한 세계경제가 미국, 유럽공동체, 동아시아로 블록화되면서 라틴아메리카를 미국 중심의 경제 블록에 편입시키려는 시도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라틴아메리카 연구가 과거의 지역학 연구처럼 라틴아메리카를 지배하려는 기초 작업이라는 의혹도 당연한 것이었다. 더구나 라틴아메리카 대학들의 경우 신자유주의 모델에 수반된 시장논리의 희생양이 되어, 인문과학은 물론 사회과학도 비판적 사유를 생산, 유통시킬 수 있는 역량이 예전에 비해 현저히 축소되었다. 라틴아메리카 내부의 연구 역량을 훨씬 상회하는 미국 내 라틴아메리카 연구의 연구 역량은 라틴아메리카로부터의 시각과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시각 사이에 이미 심각한 불균형을 초래했고, 장기적으로 볼 때 라틴아메리카적인 맥락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연구를 수행함으로써 라틴아메리카를 타자화시킬 가능성이 농후하다.

사실 미국 내에서 라틴아메리카 연구를 수행하는 것의 문제점에 대한 이러한 일련의 문제는 라틴아메리카 하위주체 연구그룹이 창립 초기부터 심각하게 의식하던 것이었다. 가령 로버트 카의 경우 자신이 미국의 제도권 교육을 받고 미국 학계에 소속된 학자이며, 소외된 국가들의 착취나 시장의 전지구화에 기여할 문화적 재현을 은연중에 수행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30) 누가, 누구를 어떻게 재현하는가를 문제시한 스피박의 성찰과 같은 맥락에서였다. 이런 문제의식은 라틴아메리카 하위주체 연구그룹의 지속적인 강박관념이 되었다. 그래서 존 베벌리는 라틴아메리카 하위주체연구의 승리를 확인한 자리가 되었던 듀크 대학 모임에서조차 엘리트 교육기관으로서의 듀크 대학의 위치에 대해 의문을 던지고 있으며,31) 듀크 대학으로부터의 하위주체연구는 반하위주체연구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하위주체연구가 캠퍼스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였다.32) 하위주체연구가 엘리트화될 가능성과 라틴아메리카적인 맥락이 실종될 가능성을 동시에 염두에 두고 한 지적이다.

30) Robert Carr, "Re-presentando el testimonio: notas sobre el cruce divisorio Primer Mundo/Tercer Mundo, John Beverley and Hugo Achugar, La voz del otro: testimonio, subalternidad y verdad narrativa, 2nd ed., Ciudad de Guatemala: Universidad Rafael Landívar, 2002(1992), p. 86.

31) John Beverley, "The Dilemma of Subaltern Studies at Duke", Nepantla, Vol. I, Issue I, p. 33.

32) Ibid., p. 42.


그렇지만 라틴아메리카 하위주체 연구그룹은 그들의 작업이 일종의 라틴아메리카니즘이라는 의혹에 대해 전적으로 수긍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무엇보다도 연구그룹 멤버들 중 상당수가 현실 사회주의나 반체제 활동에 참여한 경험이 있거나 하위주체로 분류될 수 있는 단체들과 연대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의 하위주체연구가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제국주의적 담론, 즉 라틴아메리카니즘이라는 비판에 대해 나름대로 반론을 제기하였다. 존 베벌리는 첫째, 그룹이 특권적 위치에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연구그룹을 결성한 초기에 전혀 주목을 받지 못해서 연구 지원을 받지 못했고, 연구 결과물 출판에도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고 말한다. 또한 남아시아 하위주체연구의 성과가 미국에서 널리 주목을 받기 시작한 뒤에도 라틴아메리카 하위주체연구는 상당기간 계속 주목을 끌지 못했다고 한다. 조지 유디스(George Yúdice)가 말하는 것처럼 라틴아메리카 하위주체 연구그룹은 ‘하위주체연구의 하위그룹’이라는 주변부적 위치에서 태동했다는 것이 존 베벌리의 변이었다.33) 두 번째로 존 베벌리는 하위주체연구가 현실 변화에 따른 새로운 대응 전략의 일환이라고 주장한다. 하위주체연구의 비판자들이 전지구화라는 정세 변화를 보지 못한 채 미국-라틴아메리카의 이분법적 구도에 사로잡혀 있고, 여전히 국민국가나 정당에 의거하여 반제국주의나 전위적 당의 필요성을 부르짖는 좌파 보수주의에 빠져 있다는 것이 골자였다. 존 베벌리는 미국을 비롯한 제1세계의 헤게모니 장악 기도를 저지하는 데 유효한 것은 하위주체의 국제적인 연대라고 말한다.34) 하위주체의 광범위한 국제적인 연대가 민주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길이고, 지배 엘리트 주도의 투쟁보다 민주적인 환경 조성을 통한 투쟁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33) 존 베벌리 인터뷰.

34) John Beverley, "Adiós: A National Allegory(Some Reflections on Latin American Cultural Studies)", Stephen Hart and Richard Young, Contemporary Latin American Cultural Studies, London: Arnold, 2003, pp. 55-57.



5. 결론을 대신하여: 라틴아메리카 하위주체연구의 의의

라틴아메리카 하위주체연구에 대한 가장 커다란 의혹은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라틴아메리카니즘의 문제였다. 하지만 하위주체 연구그룹은 이밖에도 적어도 두 가지 근본적인 문제로 고심해야만 했다. 하나는 라틴아메리카니즘 논란과 비슷한 맥락의 고민이었다. 엘리트 지식인이 과연 하위주체를 이해할 수 있는지, 만일 하위주체를 이해한다고 해도 과연 엘리트의 특권적 위치에서 탈피해 하위주체를 재현할 수 있는지 하는 문제였다. 또 다른 고민은 하위주체를 정의하는 문제였다. 하위주체에 대한 정의 없이 하위주체연구를 수행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었다. 이 두 가지 근본적인 고뇌는 「창립선언문」에서부터 고스란히 드러났다. 하위주체연구자가 하위주체의 전사자(transcriber), 번역자, 해석자, 편집자로 전락하지 말아야 한다고 다짐하거나35), 하위주체를 돌연변이 주체, 이주 주체(a mutating, migrating subject)로 규정지으며36) 하위주체의 다양한 측면을 고려할 것을 천명한 점 등이 두 가지 난제에 대해 충분히 의식하고 있었다는 반증이다.

35) "Founding Statemente", pp. 144-45.

36) Ibid., p. 146.


제1세계 연구자와 제3세계 하위주체의 괴리, 엘리트와 하위주체의 괴리, 하위주체의 ‘불가지성’ 등이 하위주체 재현 가능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하위주체연구의 존립기반을 뒤흔들고 있는 가운데 과연 라틴아메리카 하위주체연구에서 어떤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인가?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재현의 민주화 필요성을 강력하게 일깨워주었다는 점이다.
하층민의 재현 문제는 하위주체연구의 태동 이전부터 라틴아메리카의 비판적 사유가 고심하던 주제였다. 그래서, 공식 역사가 무시하고 간과해온 작은 목소리를 복원하려는 구하의 시도는 라틴아메리카에서도 증언서사의 형태로 이미 예전부터 존재했다. 증언서사란 혁명과 군부독재 사이의 팽팽한 긴장이 감돌던 1960년대부터 현실에 대한 직접적인 고발의 필요성 때문에 성행한 장르이다. 증언, 증언문학 혹은 증언의 스페인어 원어인 테스티모니오(Testimonio)라고도 불린다. 증언의 필요성을 느낀 사람이 직접 쓴 경우도 있고 편집자의 편집 과정을 거친 경우도 있다. 후자는 정보 제공자가 원주민이나 흑인인 경우에 많았다. 증언서사는 하층민의 목소리를 보다 생생하게 전달한다는 점에서 하위주체연구의 중요한 텍스트가 되었다. 증언서사 전통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리고베르타 멘추를 화자로 한 엘리사베스 부르고스의 『나의 이름은 멘추』는 하위주체연구의 정전처럼 여겨질 정도이다.

증언서사 『도망친 노예의 일생』(Biografía de un cimarrón, 1966)의 저자/편집자인 미겔 바르넷(Miguel Barnet, 쿠바)의 시각과 라틴아메리카 하위주체연구 연구자들의 시각은 유사한 부분도 있고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 부분도 있다. 『도망친 노예의 일생』은 과거 노예였던 흑인의 목소리를 미겔 바르넷이 녹취, 정리, 편집한 텍스트이다. 소설가이면서 증언서사를 시도한 이유를 살펴보면 그가 구하의 하위주체연구를 일정부분 선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미겔 바르넷은 기존 소설의 한계가 소설가의 위치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하나의 계층이자 심지어 계급이라고도 할 수 있을 엘리트 크리오요(criollo)들이 주로 소설의 생산자인 현실에서 인디오나 흑인이 처한 현실을 재현하는 데는 크나큰 한계가 있다는 것이었다.37) 그래서 그는 에스테반 몬테호라는 105세의 노인을 정보 제공자로 삼아 하층민의 목소리를 직접 전달하고자 했다. 그를 정보 제공자로 삼은 이유는 노예에서 도망친 노예로, 도망친 노예에서 일용노동자로 신분이 변하고, 식민 지배를 처절하게 경험했을 뿐만 아니라 독립전쟁도 참여하는 등 쿠바의 중요한 사회변동을 두루 경험했기 때문에 그의 인생을 통해 쿠바 현실을 총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었다.38) 개인의 운명과 국가의 운명을 동일시하는 이런 태도는 국가를 비판한 하위주체연구의 관점과는 분명 다른 것이다. 게다가 미겔 바르넷은 『도망친 노예의 일생』을 증언소설이라고 규정한다. 그럼으로써 소설가로서의 지위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국가나 소설가에게 특권적인 지위를 부여하고 있는 바르넷의 태도는, 비록 그가 기존의 하층민 재현에 있어서의 문제점을 지적했지만, 여전히 지배 엘리트의 관점을 완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37) Miguel Barnet, "La novela testimonio. Socio-literatura", René Jara and Hernán Vidal(eds.), Testimonio y literatura, Minneapolis: Institute for the Study of Ideologies and Literature, 1986, p. 285.

38) Ibid., p. 288.



라틴아메리카의 비판적 사유와 재현의 관계를 살펴보면 미겔 바르넷의 한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다. 라틴아메리카 하위주체 연구그룹보다 한 세대 이전의 비평가들 역시 재현의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가령, 앙헬 라마는 독립 이후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대표성(representatividad) 문제를 고민했고,39) 안토니오 코르네호 폴라르는 정복 시대부터 원주민 세계의 재현에 문제점이 있었다고 지적한다.40) 특별히 두 사람을 거론하는 이유는 양자 모두, 하층민을 대표하거나 혹은 하층민을 성공적으로 재현한 인물로 페루의 소설가이자 인류학자인 호세 마리아 아르게다스(José María Arguedas)를 꼽고 있기 때문이다. 백인이지만 원주민어를 먼저 배우고 원주민에게 양육되었다는 점, 안데스 출신이며 전통 문화의 수호자이인 동시에 소설과 인류학 연구를 통해 제도권에서 안데스 인디오의 목소리를 대변했다는 점을 높이 샀던 것이다. 결국 라마나 코르네호 폴라르는 하층민을 대변하고 재현할 수 있는 지식인에게서 라틴아메리카의 미래를 보았던 셈이다.

39) Ángel Rama, Transculturación narrativa en América Latina, 3rd ed., México D.F.: Siglo XXI, 1987(1982), p. 13.

40) Antonio Cornejo Polar, Escribir en el aire: ensayo sobre la heterogeneidad socio-cultural en las literaturas andinas, Lima: Editorial Horizonte, 1994.


그러나 하위주체연구는 소설이 아니라 증언서사를 정전으로 삼았을 때부터 지식인 엘리트가 아닌 하위주체에게서 라틴아메리카의 미래를 기대하고 있음을 암시했다. 소설가의 위로부터의 재현이 아니라 하위주체의 아래로부터의 이야기가 차이를 없애는 첫 걸음이라는 것이 하위주체 연구자들의 현실인식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멘추가 『나의 이름은 멘추』를 통해 여성, 종족, 농민, 문화적 타자, 일 국가 내부의 피식민자, 국제적 분업하의 피착취자라는 하위주체의 중층적인 문제를 스스로 발화한 데에 대해 열광했다. 물론 『나의 이름은 멘추』도 지식인 엘리트가 편집자로 개입하였다는 문제점이 있다. 또한 미학에 대한 고려 없이 증언서사와 소설을 단순 비교하는 것도 다시 생각해볼만한 문제이다. 하지만 하위주체연구는 하위주체가 좀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엘리트가 하위주체의 이야기를 좀더 많이 들을 때, 즉 재현의 민주화가 실현될 때 더 낳은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싶었던 것이다. 적어도 라틴아메리카 하위주체 연구자들이 겪었던 패배의 경험은 그렇게 가르쳐 주었었다. 이 점에 있어서 존 베벌리의 말은 명쾌하기만 하다. 그는 지식인 엘리트가 하위주체를 이해하고 재현하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문제 제기에 대해 하위주체연구는 하위주체를 엘리트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엘리트를 하위주체화시키는 것이 목표라고 말한다.41)◇

41)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