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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경, 여성성, 그리고 카리브 해 담론 / 벤 헬러 2005-09-16 / 6433   

풍경, 여성성, 그리고 카리브 해 담론

벤 헬러 / 이정진 옮김



그림

20세기 들어 카리브 해 지역에서는 미서전쟁을 비롯한 이 지역에 대한 미국의 다양한 개입과 더불어 국가적 지역적 정체성이라는 문제가 중요성을 띠게 되었다. 많은 작가들이 개별국가나 카리브 전체 지역의 정체성을 규명하고자 했는데, 이를 두고 글리상(Edouard Glissant)은 ‘카리브 해 담론’이라 명명했다.

이런 다양한 담론들은 카리브 문화의 특성을 주변 환경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런 관점은 슈펭글러의 영향이 큰데, 사실 이런 생각은 새롭지는 않은 것으로서 18, 19세기의 다양한 서구 역사학자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카리브 해 담론은 주변 환경을 여성적인 것으로 보고, 거기에다 항용 여성과 결부된 특징인 유동성과 관계성과 같은 특성들을 부여했다는 점이다.

이 글은 카리브 해 담론에 있어 몇몇 중요 작가들의 사례들을 통해 풍경과 문화의 관련 양상을 추적하고자 한다. 더불어 이렇게 여성화된 문화적 정체성을 두고 여성작가들이 어떻게 문제제기하는지도 살펴보고자 한다.

책표지 우선 살펴볼 것은 푸에르토리코의 국가적 정체성을 세우는 데 근간이 된 작품인 페드레이라(Antonio Salvador Pedreira)의 『섬 문화』(Insularismo, 1934)이다. 스페인에서 영국으로 식민지 경영 국가가 바뀌는 상황과 국가적 정체성의 규명을 주도한 새로운 지식인층에 대해 느끼는 국내의 위협감에 대한 반응인 이 책은 카리브 해와 라틴 아메리카의 독립을 둘러싼 보다 너른 논쟁에 속해 있기도 하다. 이 책은 푸에르토리코의 가장 큰 약점으로 흑인 문화의 영향으로 인한 문화적 고립으로 보는 반면 국가적 정체성을 규정하는 적합한 자질로는, 백인 농민들의 깊은 신실함과 19세기에 형성된 ‘크리오요’(criollo)의 독립적 감성을 든다. 한편 그는 슈펭글러를 쫓아 자연과 문화의 관련성을 논하는데, 그의 평가는 푸에르토리코의 자연에 대해서 부정적이었다.

그는 푸에르토리코의 협소한 땅은 영적인 의미에서건 육체적 의미에서건 시야의 협소함에 대응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주변 환경은 곧 여성적인 것으로 규정된다. 물론 땅이 좁은 것은 바다 때문이다. 바다야말로 푸에르토리코를 고립시켜 여타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과의 형제적 관계를 방해하는 요인이라는 것이다. 바다는 그의 글 속에서 위협적인 어머니로 묘사된다. 어머니 바다는 라캉식으로 말하면 “아버지의 법”이 작동하는 것을 방해한다. 이 부재는 남근(phallus)에 대한 동경을 낳고, 이는 곧 영적 지도자에 대한 격정적인 요청으로 이어진다.

페드레이라는 유년기에 머물러 있는 푸에르토리코가 대륙간의 논쟁에서 남과 북의 중재자, 해석자 혹은 번역자라는 임무를 띠고 있다고 보았다. 그는 이 임무가 이타적인 것으로 보기는 했지만 이 나라가 그저 모든 사람이 다리 삼아 건널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의 생각은 푸에르토리코가 국가간의 관계에서 어쩔 수 없이 고리 역할을 해야 하지만 이로 말미암아 국가적 정체성의 형성이 방해받아서는 안 된다고 본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경계의 역할 또한 여성성과 관련이 되어 있다. 라틴 아메리카 전통에서 원형적인 중재인 셀레스티나(Celestina)는 여성인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중재인의 여성성은 창조적인 잠재력을 결하고 있다는 것이다. 셀레스티나는 스스로는 산기를 넘긴 늙은 여인으로 젊은 연인들의 결합을 매개하기만 하는 것이다.

몰론 (문화의) 번역자를 여성으로 보지 않을 여지도 있다. 최근의 한 번역이론가에 의하면 작가는 남성으로, 작품은 여성으로, 번역자는 작가에게서 남근(phallus)을 뺏으려는 사람이다. 그러나 이렇게 보아도 번역자의 문화적 권위가 불확실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이런 푸에르토리코 문화의 번역자적 성격은 지난 세기 내내 논란이 되었는데, 최근에 이르러서야 부정적인 함의를 떨쳐버리게 되었다. 예컨대 바바와 같은 이론가들은 혼종성(hybridity)과 확장되고, 산포된 국가적 정체성을 옹호하는 것이다.

레사마리마 페드레이라와 비슷한 시기에 쿠바의 시인인 레사마 리마(José Lezama Lima)도 ‘섬 문화’(insularismo)란 주제를 논했다. 그러나 전자가 푸에르토리코를 자국의 풍경을 고립적인 것으로 본 반면 레사마 리마는 카리브 해의 바다풍경에 기반한 국가적 정체성의 신화를 제안했다. 1938년에 나온 반 허구적인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이 “섬나라 감수성”이라고 명명한 섬 문화의 독특성을 주장했다.

그에게 섬 문화의 독특성은 외부로부터의 문화적 영향에 대한 개방적인 태도였다. 페드레이라와 같이 그 또한 외국 문화의 모방과 문화적 피상성과 허세에 대해서 비판적이었지만, 그가 볼 때 자국의 문화적 성취는 외국 문물의 단순한 모방보다는 외부 영향의 수용과 변화에 있었다. 이런 섬나라 감수성의 상징으로는 ‘저류’(底流, resaca)가 주로 활용되었는데, 섬나라 감수성 또한 역류처럼 밀려오는 파도를 받아들인 후에는 무언가 보태 되돌려 보냈던 것이다.

레사마 리마 또한 페드레이라와 같이 문화를 자연과 연결시켜 설명하는 데서 슈펭글러의 영향을 읽을 수 있지만 그의 섬 문화에 대한 평가는 사뭇 달랐다. 그는 섬 문화를 외부의 영향을 선택적으로 흡수해서 변화시키는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이런 두 사람간의 차이는 푸에르토리코와 쿠바의 식민 역사의 차이일 수 있다. 아바나는 국제 무역항으로서 멕시코와 스페인간의 항로에서 주요 거점이었던 반면 푸에르토리코는 고립된 지역이었던 것이다.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둘은 공유하는 것이 있었는데, 자국 문화에 대한 아프리카 문화의 기여에 대한 공통된 태도 또한 그랬다.

그러나 아프리카 문화의 수용에 대한 레사마 리마의 입장은 좀더 유보적인 것으로서 그는 쿠바가 흑인의 감수성을 받아들이는 데 너무 성급했다고 주장했다. 그 결과 흑인 문화는 쿠바 문화와 깊은 연관 없이 피상적인 형태로 수용되었던 것이다. 그는 외부의 영향에 반대하지 않았고, 자생적인 문화를 옹호하지도 않았다. 그의 입장은 자신을 잃지 않으면서 외국 문물에 개방적인 태도로 요약될 수 있다.

그렇다고 레사마 리마가 자국의 메스티소 문화를 옹호한 것은 아니었다. 흑백의 결합으로 형성된 이 문화는 ‘저류’ 변형 과정의 논리적인 귀결인 것처럼 보이는데도 말이다. 섬나라 감수성과 메스티소 모두 보편적 가치에 거리를 두는, 자생적 문화에 대한 열망의 두 측면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보이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레사마 리마는 두 가지 문화현상의 유사성을 부인하고 인종적 결정주의를 들어 메스티소를 비판했다. 그는 메스티소에 중심을 둘 경우 흑인과 백인들을 배제해 새로운 동질화 작용이 일어나는 것도 경계했다.

달리 보면 레사마 리마의 입장은 쿠바 문화와 그의 글에서 ‘거장’(maestro)으로 형상화된 백인 유럽 문명 사이의 관계를 재확립하려는 시도로도 보인다. 이런 관점에서 그는 페드레이라와 마찬가지로 그 자신을 방어적인 입장이긴 해도 유럽 문명에 동화된 엘리트로 두고 있다. 그 자신 부유한 가정의 출신인 것까지 고려한다면 자국의 하층계급 문화를 낮게 평가했다고 그를 비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가 메스티소 문화를 비판한 것은 인종적 결정주의 때문이었고, 더불어 문화적 다양성을 옹호하기 위해서였다는 사실이다.

레사마 리마는 표 나게 강조하지는 않지만 역시 ‘저류’의 비유를 들어 다양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아 섬 문화를 여성적인 것으로 보았다 하겠다. 섬 문화의 형성에 카리브 해의 영향을 강조할 때 현대 프랑스 페미니즘과의 유비는 자연스럽다. 이리가레이등이 말한 것처럼 여성의 몸은 남성과는 달리 다양하고 확산된 성욕을 가능케 하고, 이런 여성의 몸의 경험은 새로운 문학적 표현의 가능성을 담고 있다. 카리브 해의 고정되지 않은 움직임은 이런 여성성을 바로 상기시킨다.

그러나 이런 프랑스 페미니즘에 대한 비판은 다양하게 제기되어왔다. 성차에 대한 강조는 여성의 운명을 그 몸에 가두며 여성간의 경험의 차이를 무화시킨다는 것이다. 또한 이런 여성의 이미지는 바로 전통적인 가부장제가 여성에게 부여해왔던 이미지와도 대략 일치한다. 쥬디스 버틀러(Judith Butler) 같은 이는 문화의 작용을 견디는 몸이라는 관념을 거부하고 자연(몸)이 바로 문화의 형성물이라는 입장을 취한다. 한편 그로스(Elizabeth Grosz)같은 이는 남성이 내놓는 정액의 예를 들어 유동성을 여성에게만 부여하는 것에 거부한다. 이와 같은 프랑스 페미니즘에 대한 비판은 바로 카리브 해 문화의 자기정의에도 똑같이 적용되지 않는가 하고 물어볼 수 있다. 요컨대 레사마 리마가 내세우는 섬의 감수성은, 그 자신 그토록 비판한 인종적 결정주의를 지리적인 것으로 대체한 것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하고 물을 수 있는 것이다. 그가 강조하는 카리브 해의 유동성과 개방성은 국가적 정체성을 규정하기 위해 만들어낸 수사적 장치로서 사실 그 안에 많은 모순들을 담고 있다.

글리상 카리브 해의 풍경과 문화의 관계에 대한 가장 지속적인 탐구를 한 작가로는 소설 『레자르드 강』(La Lézarde, 1958), 에세이집 『카리브 해 담론』(Le Discours Antillais, 1981), 『관계의 시학』(Poétique de la Relation, 1990)을 쓴 마르티니크의 글리상일 것이다. 그의 소설은 크게는 섬 풍경에 대한 상징적 해석을 두고 구축되어 있다. 이 소설에서 풍경은 단순히 배경에 머무르지 않는다. 사실 이 소설이 제기하는 핵심적인 질문은 마르티니크 사람들의 자연과의 관계이다. 이 소설은 주요 인물들의 땅과의 변화하는 관계를 기술하고 있는 것이다.

글리상은 풍경을 여성적인 것으로 묘사하고, 더 나아가 여성 인물들을 풍경을 빌어 형상화한다. 그는 페드레이라와는 달리 서정정인 필치로 풍경을 아름답게 묘사한다. 한편 여성을 섬의 조건과 병치하여 묘사할 때 강조되는 것은 그 경계적인 성격이다. 이렇게 풍경과 인간을 연계하여 묘사하는 기법은 자생적인 문화와 공동체에 대한 감각을 확립하기 위해서이다. 이로써 그는 공간을 그 안에 사람이 사는 장소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그가 이런 문학적 시도에 내재하는 반동적 민족주의의 위험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은 산문집인 『카리브 해 담론』에 잘 나타나고 있다. 이때 중요해지는 것이 유랑인데, 이 관념은 레사마 리마의 유동성과 비슷하게 엄격한 국가적인 독립성을 뒤흔든다. 그가 예로 드는 사람은 시인 생 존 퍼스(St. John Perse)이다.

글리상은 퍼스는 백인 크리오요들의 무소속감의 희생자로 볼 여지도 인정하지만 그보다는 모든 카리브인들이 느끼는 방랑벽의 표상이다. 카리브인들이 구속적인 풍경을 거부한다할 때 그것은 곧 바다로 나아간다는 것을 뜻해왔다는 것이다. 또 하나 카리브 사람들을 그 지리적인 구속에서 떼어놓는 것은 노예들의 역사이다. 아프리카에서 온 노예들은 항상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열망이 있었고, 이런 사실은 살고 있는 장소에 뿌리를 내리는 과정을 방해한다. 글리상은 페드레이라와 레사마 리마와는 달리 카리브 해의 문화에 아프리카 문화가 끼친 영향을 간과하지 않았다.

글리상은 가장 최근의 저서인 『관계의 시학』에서 생각을 좀 더 진전시켜 새로운 개념의 정체성을 제안하기에 이른다. 그는 들뢰즈와 가따리에게서 빌려온 리좀이라는 개념에 기반해 관계의 시학을 말하고 있다. 그는 들뢰즈와 가따리를 모조건적으로 수용한 것은 아니고 그들이 말하는 노마디즘을 정착이 불가능한 상황에서의 순환적인 것과, 정착에 대한 강한 열망을 담고 있는 침략적인 것으로 대별한다. 글리상은 항해를 두 번째 부류로 본다.

그는 서구에서 국가적 정체성이 전형적으로 지역과 자아를 1) 존재론적으로 사고하는 시기 2)항해를 통해서 사고하는 시기 3)방랑과 전체성을 통해 사고하는 시기를 차례로 통과해왔다고 본다. 그 중 두 번째 시기가 서구의 식민지 개척기인데, 식민지 경영자들의 정체성 형성은 피식민지인들의 정체성을 문제적인 것으로 만들어놓았다. 피식민지인들은 자시의 정체성을 대립적인 방식으로만 사고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착취자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데 반발하는 방식으로 자신을 정의하게 되었다. 그래서 글리상은 뿌리뽑힘(deracinement)의 과정이, 즉 순환적 노마디즘이 정체성 형성에 기여할 수 있다고 본다.

이런 유의 사고는 여성성을 관계성으로 보는 초도로우(Chodorow)의 대상관계 심리학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초도로우에 따르면 남성은 유년기때 경험한 어머니와의 일체감이 자아정체성의 확립을 방해하는 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차이를 강조하게 되는 반명 여성들은 어머니와의 연속성을 계속 유지하게 된다.

얼핏 보면 초도로우는 그 연구 영역이 다른 듯 보이지만 그녀의 이론은 글리상 이론의 잠재적인 비판을 제공한다. 요컨대 글리상은 차이와 대립에 방점을 두는 남성적인 관점에서 대립된 타자를 향해 나아가는 항해를 옹호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이제 남은 질문은 이런 여성화된 풍경에 대해서 여성작가들이 어떻게 반응했는가 하는 것이다.

페레 푸에르토리코의 여성작가 로사리오 페레(Rosario Ferré)는 그녀가 견지하는 반생물학적인 태도 때문에 이런 질문을 하는 데 특이한 경우라 하겠다. 우선 그녀가 생물학적 결정론을 거부한다고 해서 지리적 결정론까지 거부한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그녀가 생물학적 결정론을 거부한다고 해서 남녀의 생물학적 차이까지 거부하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그녀는 여성의 체현된 경험으로써 여성의 몸을 부각시키는 편이다. 그리고 그녀가 시적 대상으로 삼는 지역은 카리브 해가 아니가 베니스라는 점이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든다. 그녀는 오랜 전통을 따라 베니스의 여성적인 것으로 형상화하는데, 전통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녀의 시에서 베니스는 젊은 여성일 뿐만 아니라 좀 더 성숙한 모성의 상징으로도 쓰인다는 것이다. 그녀의 이런 시적 탐구는 실제 베니스에 존재하는 교량 이름이기도 한 리알타(Rialta)란 여성인물을 통해 추구된다.

그녀의 분신인 리알타의 자기 탐구는, 융 학파의 페미니스트 심리학자들의 여성 자아형성 이론이 연상되는 어머니와의 재결합으로 이어지는데, 주목할 것은 이 모성과의 재결합 과정이 (주로 남성성과 연결되어 온) 글쓰기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 시의 해명에서 중요한 자료는 그녀가 쓴 자전적인 에세이다. 그녀의 어머니가 유년기에 불러주었던 베니스가 나오는 노래는 자기정체성의 해체와 산포에서 오는 슬픔을 담고 있었다는 것이다. 작가 자신 나중에 결혼을 하면서 이런 경험을 하지만 글쓰기를 통해 극복하게 되고, 이때 어머니의 노래가 애초의 어머니의 의도와는 달리 작가에게 글을 쓰게끔 하는 계기가 되었다.

페레의 시에서 여성의 관계성은 정체성의 파편화를 낳는 문제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그녀는 흥미롭게도 글쓰기를 통해 이런 부정적인 정서상태를 극복한다. 그녀는 글쓰기를 통해 남성과 같은 문화적 권위를 확보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글쓰기를 통해 획득하는 것은 어머니 세대와의 단절이 아니라 그들에 대한 이해이고, 글쓰기를 통해서 그녀는 모성과 재결합하게 된다. 그리고 글쓰기를 한다고 해서 그녀가 매개와 통로의 존재이기를 멈추는 것은 또한 아니다. 대신 전에는 부정적인 실존적 상황이 새로운 창조적 동력으로 전환된다. 여기서 페레의 시와 이전에 소개된 새로운 국가적 정체성 확립의 문화적 기획 사이의 유비가 가능해진다. 글리상이 고향에 대한 흑인들의 열망을 관계성에 대한 긍정적인 가치로 전환시켰듯이, 페레 또한 매개와 연결로서의 여성의 체험을 자기권위 확보의 전략으로 전환시켰던 것이다. 그런데 페레의 출신지역 외의 지역을 시적 대상으로 삼은 선택을 설명할 필요가 있다. 이때 카라스코(Carrasco)의 이론이 아주 유용하다.

카라스코가 말하는 “장소의 비유적 비전”은 한정된 장소가 아니라 유동적인 공간이다. 그의 이론에서 또 중요한 것은 의식(ritual)인데, 의식을 통해 권력의 위계를 확인하는 (장소가 뜻하는) 의미의 위계를 만들어낸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페레의 어머니가 베니스로 신혼여행을 떠난 것은 원칙적으로는 두 상류 가계의 사회적 위치를 확인시켜 주고, 연결시켜주는 의미의 위계를 만들어낸다 하겠다. 그런데 그 여행의 경험은 페레의 어머니에게 비통한 상실감만을 안겨준다. 두 개의 가문과 그 가문이 거하는 장소와 더 나아가 과거와 현재의 결합은 이루어지지 않고, 그녀는 단절로 인한 상실감만을 강하게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이 시집은 푸에르토리코의 문화적 정체성을 잠정적인 현재 속으로 끌어들이는 작업도 한다. 베니스가 그녀 어머니에게 그랬던 것처럼 시인 자신이 사는 산후안(San Juan)역시 계속되는 작별과 결혼을 예고하는 성적 성숙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이 도시는 시 속에서 놀라운 동시에 뿌리뽑힌 세계로 이끄는 여행의 시발지로 묘사된다. 그런데 그녀의 이런 자전적인 이야기는 단지 개인적인 차원에서 그치지 않고 미국으로의 대량이민이라는 푸에르토리코 현대사의 결정적인 측면까지 포함한다. 시속의 많은 인물들은 그녀의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이방의 나라로 떠나는데, 그들 또한 돌아올 수 없는 여행을 떠났다. 그리하여 과거에 대한 맹렬한 그리움이 발생한다. 이런 시편들을 통해 페레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경유지로서의 성격을 받아들이며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낸다. 그녀는 이 유동적인 공간을 받아들이며 자신을 번역자의 성격을 지닌 창조적인 예술가로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그녀에게 푸에르토리코의 문화에 대해 쓰는 것은 고향 땅과 남성적인 관계를 맺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페미니스트의 입장에서 유동적인 장소 없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카리브 해 담론이 카리브 해의 독특한 문화를 이 지역의 자연환경과 연관지은 것은 명백하다. 이 자연환경이 여성적인 것으로 인식된 만큼 그 문화 또한 그랬다. 그러나 이런 사정이 가부장제가 강제한 것만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은 페레의 경우가 잘 보여준다. 그녀는 이런 비유화된 자연을 자신의 정체성 형성 과정의 딜레마에 대한 비유로 활용한 것이다.◇

원제: Heller, Ben A. "Landscape, Femininity, and Caribbean Discourse"
MLN - Volume 111, Number 2, March 1996 (Hispanic Issue), pp. 391-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