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작품번역 > 단편소설
 
 
  물 / 아르게다스 2003-10-22 / 7533   



호세 마리아 아르게다스 / 박병규 옮김



     판타차 아저씨와 내가 광장에 도착했을 때 회랑(回廊)은 텅 비어 있었다. 문은 모두 닫혀 있었다. 돈에우스타키오 모퉁이에도 사람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거대한 산들에 둘러싸인 마을은 조용했고, 쌀쌀한 아침 시간이라 왠지 서글프게 보였다. 판타차 아저씨가 입을 열었다.
     “산후안 마을이 죽어가고 있어. 광장은 마을의 심장인데, 광장을 봐라. 푸나보다 더 황량하다.


푸나

▶그림 설명: 해발 2,000미터 이상에 위치한 안데스 고산 평야 푸나(puna). 페루 인구의 36%가 해발 2,000-4,000에 거주한다.


     “하지만 아저씨가 나팔을 불면 사람들이 모이겠죠.”
     “천만에. 그럴 사람들이 아니야. 루카나스 지방에는 사람들이 많단다. 개미처럼 와글와글하지.”
     우리는 여느 일요일처럼 유치장 쪽 회랑으로 갔다.
     벌써 마을 어른이 물 분배용 탁자를 준비해놓았다. 광장에 있는 것이라곤 노란 탁자뿐이었다. 회랑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여있는 탁자는 산후안 마을을 약탈한 사람들이 무겁고 쓸모가 없어 그곳에 버린 것 같았다.

     [역주. 마을 어른(barayoc): 원주민 공동체의 지도자. 식민시대, 스페인 제국은 교통의 원활한 해안에 식민도시를 건설하고, 이곳을 통치의 중심으로 삼았기 때문에 안데스 고산평야 지대에 거주하는 원주민들을 직접 통제하기가 어려웠다. 따라서 바라욕에게 행정권을 주어 원주민 공동체를 간접적으로 통치하였다. 지금도 바라욕은 마을 어른으로서 축제, 결혼 등 원주민 공동체의 크고 작은 행사를 관장하며, 도덕적 권위자로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통나무 기둥이 회랑 지붕을 떠받치고 있었는데, 어떤 지붕은 한쪽으로 기울어 곧 무너질 지경이었다. 하얀 돌기둥만이 튼튼하게 버티고 있었다. 벤치는 흰 칠이 벗겨지고 사방이 부서진 채로 회랑 여기저기에 나뒹굴고 있어서 가슴이 아팠다.

     “에르네스토야, 물이 없단다. 산후안 사람들은 다 죽을 거야. 돈브라울리오는 몇 사람에게만 물을 주고, 다른 사람들은 미워하니까.”
     “하지만 돈브라울리오는 돈세르히오, 도냐엘리사, 돈페드로에게서 물을 빼앗아 주민 공동으로 사용하도록 했다던 데요.”
     “그건 거짓말이다. 이제 물은 일년 열두 달 내내 돈브라울리오 소유가 된 거지. 그리고 물을 나눠주는 사람들은 겁이 많아서 돈브라울리오 앞에서 벌벌 떤단다. 돈브라울리오는 여우같고, 개 같은 사람이야.”

     우리는 유치장 문 앞에 이르러 회랑 한쪽에 앉았다.
     오래 전에 폐광이 된 벤타니야 은(銀) 광산이 보였다. 은광산의 야연광에서 풀죽은 아침 햇살이 반짝거렸다. 흰 돌무더기가 산 중턱에 혓바닥처럼 길게 늘어서 있었고, 그 끄트머리에 시커먼 광산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예전에는 큰 광산이었으나 지금은 사랑에 빠진 촐로들의 밀회 장소였다. 아주 무더운 날에는 소가 들어가 잠을 자기도 했다. 밤에는 돼지같이 지저분한 사람들이 꿀꿀거렸다.

     [역주. 페루에서 매우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는 말이다. 식민시대에는 메스티소(mestizo)와 유사한 뜻으로 해안 식민도시로 이주, 스페인 문화, 교육, 규범을 수용함으로서 신분 상승을 꾀한 원주민을 일컫는다.]

     판타차 아저씨는 잠시 광산의 흰 돌무더기를 바라보았다.
     “전에 광산을 할 때는, 산후안 사람들은 부자였다. 지금은 농사 지을 땅도 부족하지만...”
     “땅은 많아요. 물이 부족해서 그렇지. 사람들이 모이게 나팔을 부세요.”

     판타차 아저씨는 「낙인가」(烙印歌)를 불기 시작했다.
     나팔 소리는 적막한 아침을 가르며 힘차게 퍼져 나갔고, 마을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판타차 아저씨가 나팔을 불면 불수록 산후안은 점점 마을다운 마을이 되어 가는 듯했다. 나는 곧바로 광장 네 모퉁이에서 사람들이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붕을 비추고 있는 햇빛도 신이 난 것 같았다. 말오줌나무와 유카리나무의 무성한 잎도 생기가 돌았다. 마주 보이는 교회의 하얀 정면과 종탑도 눈이 부셨다.


말오줌나무

▶ 그림 설명: 말오줌나무


     하늘은 아득하게 푸르렀고, 하얀 구름은 산등성이에 눌러앉아 쉬고 있었다. 산자락까지 펼쳐진 케루스와 칸투스의 잿빛 바다, 침묵에 잠긴 사위, 그리고 판타차 아저씨의 슬픈 얼굴에서 나는 깊은 산 속에서 흔히 느낄 수 있는 그런 야릇한 아픔을 맛보았다.

     “아저씨, 한 곡 더 불어 봐요. 산후안을 생각해서.”
     “한심한 마을이지.”
     여느 일요일과 마찬가지로 판타차 아저씨의 나팔 소리를 듣자 사람들은 광장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학생들이 맨 먼저 나타났다. 빅투차, 호세, 베르나코, 프로일란, 라몬차..... 몇몇은 광장 모퉁이로, 몇몇은 투우장 문을 통해 광장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들은 회랑에 앉아 있는 우리를 발견하고 달려오기 시작했다.
     “아저씨! 아저씨!”
     “에르네스토야!”
     학생들이 우리를 에워쌌다. 얼굴에는 반가운 기색이 역력했다. 판타차 아저씨의 나팔 소리를 듣자 학생들은 신이 났고, 모두들 ‘낙인의 춤’을 추고 싶은 표정이었다.

     나는 그 노래를 듣자 축제가 생각났다. 우텍 초원과 야나스 초원에서 옥수수를 수확할 때나 틸레, 파파차크라, 콜파 초원에서 감자를 캘 때 사람들은 축제를 열었다. 고산 평야에서 소에게 낙인을 찍던 광경도 떠올랐다. 학생들 모습을 보고 있으니, 꼭 우리 안에서 우글거리는 가축을 보고 있는 듯했다. 누렁이, 얼룩배기, 부락대기, 황소, 투우, 귀와 등에는 띠를 두르고 이마에는 붉은 장식을 단 송아지. 또 아우성치는 소리는 가축들이 울부짖는 소리 같기도 하고, 낙인을 찍는 사람들의 걸걸한 목청 같기도 했다.
     “낙인가, 낙인가.”
     나는 신명이 넘쳐 광장으로 뛰어갔다.
     “춤 춰! 춤 춰!”
     “야호! 야호!”
     학생들이 함께 어우러져 춤을 추기 시작했다. 맑게 개인 하늘에서 찬연한 태양이 빛나듯이 우리는 순수하고 신명나는 기쁨에 넘쳐 있었다.
     학생들의 낡은 바지는 허수아비처럼 펄럭거리고, 라몬차와 프로일란은 깡충깡충 뛰고 있었다.
     판타차 아저씨는 우리들이 춤추는 모습을 보고 신바람이 났다. 나팔 소리는 한결 간드러지게 흥을 돋구었고, 발밑에서는 자욱한 흙먼지가 일어났다. 춤만으로는 우리들의 신명을 다 풀어낼 수가 없었다. 학생 몇 명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칸라라, 칸라라,
거대한 산이여, 무정한 산이여!
골이 깊고 봉우리가 높으니
네가 두렵단다
칸라라여, 칸라라여.


     “아저씨, 그 노래말고 ‘우텍 초원가’요.”
     내가 이 노래를 청한 까닭은 우텍 초원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자란 옥수수 대와 케르칼레스는 정말 달콤했다.


우텍 초원아
사랑스런 우텍 초원아
메추리 눈은 사랑스럽고
눈속임하는 종달새는 노래하면서 훔친단다
나는 비둘기에게 반했지
우텍 초원아,
사랑스런 우텍 초원아


     판타차 아저씨의 나팔 소리와 우리들 노래를 듣고 마을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마을 사람들은 우리를 둘러쌌다. 몇몇 사람들이 낮은 목소리로 노래를 따라 불렀다. 여자들은 목소리를 높여 합창했다. 이내 마을 광장은 흥겨운 축제 분위기로 변했다.
     마을 사람들의 더럽고 마른 얼굴은 기쁨으로 빛났고, 흥이 겨운지 노란 눈이 반짝였다.
     “이거 한잔하고 싶은데.”
     “그래. 피스코[역주. 포도 원액을 증류하여 만든 일종의 브랜디] 생각이 간절해.”
     판타차 아저씨는 곡조를 바꾸었다. 갑자기 ‘우텍 초원가’를 끊고 ‘추수가’를 불기 시작했다.
     “추수가다. 추수가!”


아버지, 어머니.
하늘에는 악어새가 반짝거리고
초원에서는 황소들이 싸우고 있어요.
비둘기는 흥겨운 마음으로
‘티니아이’, ‘티니아이’ 노래하지요.
아버지, 어머니.


     “주민 여러분, 춤을 추면 하느님이 노합니다. 가뭄이 든 이때, 춤은 절대 금물입니다. 산후안 수호 성자에게 기우제를 지내야 합니다.”
     빌카스 어른이 회랑 끝에서 사람들을 꾸짖었다. 광장에 도착한 어른은 마을 사람들이 춤을 추는 광경을 목격하고 분노했던 것이다.
     어른은 늙은 원주민으로, 마을 유지들과 사이가 좋았다.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커다란 동굴에서 부인과 함께 살고 있었다. 그 동굴의 소유주는 산후안의 부자, 돈브라울리오였다. 돈브라울리오는 어른에게 동굴도 빌려주고 감자와 옥수수를 심으라고 밭뙈기도 주었다.

    [역주. 마을 유지: 일반적으로 도시에 사는 메스티소(mestizo)를 가리켜 페루 원주민들이 부르는 말. 경제적으로나 사회적 신분으로나 원주민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다.]

     사람들은 이 어른을 존경했다. 물을 분배하거나 축제 준비를 할 때 결정권을 가진 사람도 이 어른이었다. 근엄한 표정, 조금 걸걸한 목소리, 사람들을 바라보는 눈길에서 권위가 느껴졌다.
     학생들은 어른의 목소리를 듣고 흠칫 놀랐고, 부끄러운 듯이 흰 돌기둥 옆으로 모였다. 그리고 다소곳하게 있었다. 사람들은 회랑으로 올라가 아무 말 없이 벤치에 일렬로 앉았다. 여자들은 어른이 안 듣는 곳에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반대편 회랑으로 갔다. 판타차는 바닥에 나팔을 내려놓았다.
     “빌카스 어른은 우리 적이야. 저 얼굴을 좀 봐라. 마치 자기가 유지나 된 듯이 귀찮아 죽겠다는 표정이구나.”
     “맞아요, 아저씨. 빌카스 어른은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아요. 투우 같은 표정 좀 보세요. 그지없이 근엄하네요.”
     판타차 아저씨와 나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회랑에 일렬로 앉아 있었다. 라몬차, 테오파네스, 프로일란, 하신토, 베르나코는 회랑 첫 번째 기둥 옆에 쭈그리고 앉아 낮은 목소리로 얘기를 나누면서 가끔씩 우리를 쳐다보았다.
     “저 아이들은 틀림없이 빌카스 어른 얘기를 하고 있을 거다.”
     “그럼요.”
     마을 사람들은 예의를 차려야 한다는 듯이 낮은 소리로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빌카스 어른은 학교 문에 등을 기대고 정면의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늘은 갈수록 짙푸르러졌고, 솟아오르는 구름 송이는 갈수록 하얗게 변했다.

     “이보게, 창잡이.”
     빌카스 어른이 창잡이 펠리스차를 불렀다.
     “예.”
     “돈코르도바 댁에 가서 창을 가져와 살찐 돼지를 잡게나. 오늘은 일요일이야.”
     “알겠습니다.”
     펠리스차는 판초를 어깨에 걸치고 창을 가지러 갔다. 광장 복판을 지나고 있을 때 판타차 아저씨가 소리쳤다.
     “유지 집에 돼지가 있거든 그걸 잡아.”
     “안돼!”
     우리는 고개를 돌려 빌카스 어른을 쳐다보았다. 어른은 화가 나 있었다.
     “어르신, 왜 안 된다고 하십니까?”
     판타차 아저씨가 빌카스 어른에게 말했다.
     “나팔수, 유지를 존경해야지.”
     “하지만 유지네 돼지라고 별것입니까. 길거리나 교회당 문에 오줌을 싸기는 마찬가지인데.”
     그런 뒤, 우리는 빌카스 어른에게 등을 돌려버렸다.

     판타차 아저씨는 나팔을 들고 ‘고산평야가’를 불기 시작했다. 가끔씩은 와나쿠 초원 풍 노래를 불었다. 밤이 되면 오두막집에 앉아, 흐느끼는 안데스 음악을 연주하기도 했다. 그 선율은 잡초를 헤집고 지나는 차가운 바람처럼 적막한 어둠을 뚫고 사람들 귓전에서 맴돌았다. 여자들은 얘기를 멈추고 음악에 귀를 기울였다. 돈브라울리오 부인조차 “우리 코나이 농장에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제 그 음악을 사람들이 가득한 길거리에서 들으니 예전하고는 느낌이 달랐다. 기쁨으로 빛나는 하늘 아래서 듣는 안데스 음악은 슬프다기보다는 낯선 음악 같았다.
     “안데스 음악은 우리 나팔수가 최고야.”
     빌카스 어른 말이었다.
     “그건 와나쿠에서 태어났기 때문이죠. 와나쿠 목동들은 아침저녁으로 나팔을 붑니다. 양과 야생마를 즐겁게 하려고 말입니다.”
     “와나쿠 사람들은 선량한 사람들이지.”

     판타차 아저씨는 오랫동안 나팔을 불었다. 얼마 후, 나팔을 무릎에 내려놓고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산자락을 둘러보았다. 이제 산자락에서 푸른 기운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앙상하고 거무죽죽하게 메마른 관목만이 산이라는, 초목이 있다는 느낌을 주었을 뿐이다.
     “이제 보니 틸레네 밭이나 사뇨네 밭이나 가난뱅이들 밭은 죄다 허옇구나. 돈브라울리오 심기가 불편한 탓이다. 에르네스토야, 하느님도 속수무책이란다.”
     “사실이 그래요. 돈브라울리오, 돈안토니오, 후아나 부인 집 옥수수는 튼실하고 파릇파릇하고, 땅은 물이 얼마나 많은지 수렁처럼 질퍽거려요. 하지만 마을 사람들 곡식은 메말라서 축 처졌어요. 바람이 불어도 까닥하지 않을 지경이죠.”
     “맞다. 그래서 돈브라울리오는 날강도란다.”
     “돈브라울리오가요?”
     “응, 여우처럼 교활한 사람이야.”
     판타차 아저씨 말에는 분노가 서려 있었다.
     근처에 있던 학생들이 우리 얘기를 들었다. 베르나코가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놀란 눈으로 물어보았다.
     “아저씨, 정말 돈브라울리오가 날강도예요?”
     개구쟁이 라몬차는 판타차 아저씨 앞에 버티고 서서 불룩 튀어나온 배를 우리에게 내보였다.
     “아저씨는 돈브라울리오가 훔치는 것을 본적이 있나요?”
     베르나코와 라몬차는 내심 겁이 났으나 시치미를 뚝 떼고 빌카스 어른을 쳐다보았다.
     “그럼 돈브라울리오가 어디서 돈을 벌겠니? 마을 사람들을 우려먹고 사는 거야. 물을 훔치고 있단다. 그것도 당당하게 말이지. 원주민들에게서 가축도 빼앗고. 돈브라울리오는 굶주린 사냥개야.”
     내 곁에 앉아 있던 베르나코가 귀엣말로 얘기했다.
     “저 아저씨는 해안 지방에 가더니 아주 못된 사람이 되었네. 유지들은 모두 날강도라고 말하는 것 좀 봐.”
     “아저씨 말이 맞아. 내막을 잘 알고 있다.”
     학생들은 판타차 아저씨 옆에 앉아 있는 라몬차와 베르나코를 보고 차츰 우리가 있는 곳으로 모여들었다.
     판타차 아저씨는 우리를 하나씩 번갈아 쳐다보았다. 정이 가득 담긴 눈이었다.
     “학생들!”
     판타차 아저씨는 나팔을 들고 코차 관개 수로에서 물을 댈 때 마을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애정 어린 눈으로 판타차 아저씨를 바라보았다. 마치 맏형이라도 되는 듯이, 마치 정신적 지주라도 되는 듯이.
     “저 아저씨 때문에 후아나 부인의 황소에게 받히겠어. 에르네스토, 너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니?”
     “라몬차, 너는 겁쟁이야. 아마도 울에 갇힌 황소만 보아도 울고 말걸.”
     “뭐라고!”
     두꺼비 상을 지닌 라몬차의 미소를 보자 우리 학생들은 빌카스 어른이 있다는 것도 잊어버리고 회랑이 떠들썩하도록 웃음을 터뜨렸다.
     라몬차는 빌카스 어른의 배를 잡고 한 발로 서서 빙글빙글 돌았다.
     “라몬차, 그만해.”
     빌카스 어른만 웃지 않았다. 마치 길바닥에서 썩어 가는 죽은 개를 보기라도 한 듯이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틴키 사람들이 칸라라 산 정상에서 소리를 질렀다. 바위에 올라가 마을을 내려다보며 망아지 울음소리 같은 고함을 질렀다.
     “틴키 사람들이다, 틴키 사람들!”
     학생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벤치에 앉아 있던 원주민들은 모두 일어나서 틴키 사람들을 보려고 회랑 끝으로 갔다.
     판타차 아저씨는 칸라라 산에 있는 틴키 사람들에게 들리도록 힘껏 나팔을 불었다. 라몬차는 겁먹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푸키요까지 나팔 소리가 들리겠다.”
     “나스카까지 들릴 거야.”
     나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틴키 사람들은 산꼭대기 바위에서 뛰어내리더니, 재빠르게 산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다시 커다란 바위 위로 올라가 마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저 멀리 비세카와 아콜라 골짜기에서 메아리가 들렸다.
     “비세카 메아리가 더 크구나.”
     “아무렴! 비세카는 골짜기 중의 골짜기니까. 치투야 산이 수호신 아닌가. 아콜라 수호신은 칸라라 산 정도밖에 안되지만.”
     “칸라라 산에 정도밖에 안 된다고? 칸라라 신령님은 치투야 신령님보다 훨씬 힘이 세.”
     “맞는 말이야. 푼타가 머리이고, 돈코르도바의 창같이 생겼어.”
     “치투야는 어떻고? 칸라라 정도야 새 발의 피도 안 되지.
     마을 사람들은 마치 건장한 두 남자를 쳐다보기라도 하듯이 이 산 저 산을 번갈아 바라보며 진지하게 비교를 했다.

     치투아 산과 칸라라 산은 비세카 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고 있었다. 칸라라 산은 저편 길고 나지막한 구릉 뒤로 우뚝 치솟아 있고, 이쪽으로는 아콜라 강이 산자락을 침범하면서 흐르고 있었다. 멀리서 보면 칸라라 산은 귀찮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칸라라 산은 비세카 강이 가로막고 있어서 큰소리를 못내는 것이야.”
     마을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치투아 산은 높고 평평한 산이다. 타얄나무와 산사나무가 완만한 산자락을 뒤덮고 있어서 멀리서 보면 혹처럼 검푸르게 보였다. 그 모습은 위풍 당당하기보다는 고즈넉했다.
     마을 사람들 얘기에 따르면, 두 산은 적수로서 밤이 되면 비세카 강변으로 내려와 서로의 낌새를 살피고 다닌다고 한다.



     틴키 사람들은 교회당 모퉁이 길로 들어왔다. 부인네들은 마을에 남겨두고 홀몸으로 왔다. 광장 한복판을 지나 학교 쪽 회랑으로 다가왔다. 백 명 남짓한 사람들 모두 파란 옷을 입고 있었다. 커다란 흰색 모자를 쓰고 털신을 신은 틴키 사람들은 율동적으로 움직였다.
     “틴키 사람들이야말로 믿을 만하지.”
     판타차 아저씨가 말했다.
     빌카스 어른은 틴키 사람들을 경멸했다. 그래서 광장으로 들어오는 그들을 보자 거만하게 고개를 쳐들었으나 가까이 올 때까지 눈길을 떼지 않았다. 그러나 내심으로는 틴키 사람들을 두려워했다. 단결심이 강한 데다 그곳 어른은 유지들을 존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틴키 사람들의 어른 돈왈파가 먼저 회랑으로 올라갔다.
     “안녕하십니까.”
     돈왈파가 인사를 했다. 그리고 빌카스 어른에게 다가가 악수를 청한 다음에 판타차 아저씨가 있는 곳으로 왔다. 두 사람은 서로 껴안았다.
     “돈왈파!”
     “판타차!”
     “때마침 해안 지방에서 돌아왔어.”
     “여섯 달 만이지.”
     틴키 사람 두 명도 돈왈파와 마찬가지로 빌카스 어른과 악수를 하고 판타차 아저씨와 껴안았다.

     이내 우리 학생들과 판타차 아저씨는 틴키 사람들에게 둘러싸였다. 나는 틴키 사람들 얼굴을 하나하나 뜯어보았다. 한결같이 못생긴 얼굴에 눈은 노랗고, 때가 낀 살갗은 추위에 텄으며, 긴 머리칼은 땀에 절어있었다. 복장은 누더기 같았고, 눌러쓴 모자 위로는 머리털이 삐죽 드러나 보였다. 털신은 풀숲에 씻겨 가장자리에만 털이 붙어있었다. 그러나 산후안 사람들보다 표정도 밝고, 풀죽은 기색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틴키 사람들은 큰소리로 판타차 아저씨와 얘기를 나누면서 웃었다.
     학생들은 하나 둘씩 떠났다. 몇몇은 하얀 돌기둥이 있는 회랑으로 올라갔다. 다른 학생들은 광장에서 놀았다. 틴키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광장과 하얀 교회당 종탑과 커다란 유카리나무가 마음에 들었다. 마을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내 삶 깊숙이 자리잡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 역시 틴키 사람이고, 같은 부락 사람이며, 이스추 고지대에서 살아왔던 것처럼 생각되었다.
     “베르나코야, 틴키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니?”
     “물론이죠, 틴키 사람이 진짜 사나이죠.”
     판타차 아저씨도 틴키 사람들과 얘기하는 것이 즐거운지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나스카에서 본 자동차, 가게 얘기로부터 시작해서 지주는 도처에서 착취를 한다고 얘기했다. 그 때, 베르나코가 내 귀에 대고 말했다.
     “아직도 모르겠어? 아저씨는 딴 사람이 되었어. 부자들에게 분개하고 있단 말이야”
     “아시겠죠? 해안 지방에서도 유지들이 물을 독차지하고 있습니다. 루카노 지방, 왈와 지방, 나스카 지방 소작인들은 최근 물을 댔습니다. 두세 마지기 밭을 가진 사람들도 물을 댔습니다. 그러나 선심 쓰듯이 물을 조금씩 주니까 해마다 땅은 물이 부족하답니다. 나스카 유지들은 엄청난 부자죠. 한 사람 재산만으로도 산후안의 밭이며, 목장을 죄다 살 수 있을 정도니까요. 미국 놈들이나 다를 바가 없는 놈들입니다. 일꾼들에게는 하느님이나 마찬가지랍니다.”
     “사실입니다. 나스카 사람들은 그렇죠.”
     돈왈파가 맞장구를 쳤다. 판타차 아저씨는 말을 이었다.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나스카에서도 유지들이 일꾼들을 착취하고 있습니다. 산후안, 치파우, 산티아고, 왈와 같은 곳에서 온 일꾼들을 착취한답니다. 여섯 달 내지 여덟 달 동안 일당도 주지 않고 농장에서 일을 시키다가 열병에라도 걸리면 사탕수수밭이나 목화밭에 처박아버립니다. 나중에 큰돈이라도 되는 듯이 2~3솔[역주. 페루의 화폐 단위]을 던져줍니다. 짐작하시겠지만 유지들이 준 돈은 치료비도 안됩니다. 돌아오는 길에 보니까 갈레라스 초원에서도, 투유타카에서도 길바닥에 사람들이 쓰러져 있었습니다. 안단마르카, 칠크, 손돈 사람들도 아이들처럼 달달 떨면서 죽어가고 있습니다. 여기저기 돌무더지밖에 보이지 않아 말문이 막혔습니다.”
     “저런, 유지들은 사람을 잡아먹는 호랑이나 마찬가지라니까.”
     “부락민 목숨은 갯값이야.”
     산후안 사람들과 틴키 사람들은 선뜻 알아듣지 못했으나 분개해서 서로를 쳐다보았다. 힘 자랑 대회에서 산후안 겁쟁이들을 주눅들게 했던 판타차 아저씨의 눈동자가 광채를 뿜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판타차 아저씨의 말을 들으려고 유치장 문 앞으로 모였다. 이 백 명쯤 되었다. 빌카스 어른과 이그나시오 신부는 저쪽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빌카스 어른은 시치미를 떼고 있지만 판타차 아저씨 얘기를 들어 두었다가 나중에서 유지에게 고해 바치려고 그곳에 있었던 것이다.
     판타차 아저씨는 회랑 벤치 위로 올라가 겁에 질린 마을 사람들을 두 눈으로 훑어보았다.
     “우리 부락민들은 아주 많습니다. 유지들은 기껏해야 두세 명 정도입니다. 다른 지방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봉기를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부자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여러분들 생각은 어떻습니까?”
     산후안 사람들은 무척 놀랐다. 틴키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판타차 아저씨는 봉기를 하자고 했지만 사람들은 두려워했다. 차비나 일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차비나 사람들은 돈페드로가 마을 공유지에 둘러친 울타리를 부순 다음 돈페드로씨를 죽이려고 뒤를 쫓았다. 그러나 얼마 후, 총을 든 군인들이 마을에 들어와 노인, 어린애 가릴 것 없이 무차별하게 난사했다. 산꼭대기로 피신했던 몇 사람만이 화를 면할 수 있었다. 산후안 사람들은 여자들 같아서 봉기를 두려워했다.

     지금까지 광장에서 유지들에게 대든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일요일이면 유치장 회랑에 모여서 물을 달라고 애걸복걸하다가 그냥 발길을 돌렸다. 물을 댈 차례가 오지 않으면, 그 주일에 옥수수 밭이 타죽어 버릴 것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무너졌고, 돌아가는 발길이 무거웠다. 그러나 이번 일요일에는 판타차 아저씨가 유지들에게 대항하자고 강경하게 외쳤으며, 빌카스 어른 앞에서 유지들 욕을 했다.
     “유지들은 날강도이고 돈밖에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다 큰 어른들을 어린애처럼 울게 만듭니다. 자, 유지들을 타도합시다. 도둑놈들을 때려잡읍시다!”
     이노센시오 신부와 함께 있던 빌카스 어른은 처음에는 못 들은 척했다. 그러나 판타차 아저씨가 유지들을 타도하자고 외치자 마침내 마을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황급하게 달려와서 판타차 아저씨를 노려보고는 나스카 개 같은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판타차! 입 닥쳐! 유지를 존경해야지!”
     분개한 빌카스 어른의 말을 들은 산후안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하지만 판타차 아저씨는 고개를 더욱 쳐들었다.
     “어르신, 당신은 철부지 같은 늙은이라 쓸데가 없어요.”
     “저런 빌어먹을 자식!”
     빌카스 어른은 마을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판타차 아저씨가 있는 곳으로 가려고 했다. 그러나 신부가 빌카스 어른 판초를 붙잡고 말렸다.
     “어르신, 참으세요. 판타차는 말뿐인 사람이오.”
     판타차 아저씨는 신부에게 소리쳤다.
     “한번 해볼 테야.”
     신부는 판타차 아저씨의 위협을 듣고 빌카스 어른을 꼭 붙잡았다.
     “어르신, 제발 고정하십시오.”
     이런 소동이 벌어지자 다른 회랑에 있던 마을 사람들과 여자들이 싸움 구경을 하려고 유치장 회랑으로 다가왔다.
     남자들과 여자들은 큰소리로 얘기했다. 여자들은 대부분 이렇게 말했다.
     “어른에게 무슨 버릇이야.”
     그러자 빌카스 어른만큼이나 나이가 많은 돈왈파가 대꾸했다.
     “어른이라고? 빌카스는 악랄한 사람입니다. 우리들과 다를 바가 없는 원주민이란 말입니다.”
     빌카스 어른은 도전적인 자세로 돈왈파를 노려보면서 말했다.
     “이런 허풍쟁이가.”
     “저 광장에서 투우처럼 1대 1로 붙어볼까?”
     돈왈파가 대답했다.
     “어르신, 끝장을 내버려요.”
     틴키 사람들이 돈왈파를 응원했다.
     돈왈파는 판초를 벗어 틴키 사람들에게 던져주고 광장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힘 좋은 투우처럼 버티고 섰다.
     “어서 덤벼!”
     돈왈파가 빌카스 어른에게 어서 오라고 손짓을 했다.
     하지만 여자들이 빌카스 어른을 붙잡았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돈왈파 손에 목덜미가 잡혀 목 졸린 수탉처럼 비명을 질렀을 것이다.
     판타차 아저씨는 빌카스 어른을 쳐다보며 큰소리로 웃었다.
     “저것 좀 보라니까.”
     판타차 아저씨는 나팔을 들고 익살스러운 와나쿠 초원가를 불었다.


돌밭에 앉은 아카크요[역주. 사람을 보면 요란스럽게 지저귀는 새]야
바위 위에서 조잘대는 새야,
나를 속이려 들지마라.
으스대는 아카크요야
너는 재주 많은 유지라고 그러더구나
약오르지, 아카크요야
네 구멍 좀 보여주라.
약오르지, 아카크요야.
네 하는 짓 좀 보여주라.


     빌카스 어른은 정말로 화가 나서 붙잡고 있던 여자들을 뿌리치고 광장으로 나섰다. 그러나 돈왈파에게 덤비지도 않았고, 판타차 아저씨에게 욕을 하지도 않았다. 곧장 돈에우스타키오 모퉁이를 향해 걸어갔다. 광장 한복판에 다다랐을 때 고개를 돌려 마을 사람들을 쳐다보고 이렇게 외쳤다.
     “돈브라울리오에게 당해 봐!”
     “정말 못 말리는 사람이네.”
     빌카스 어른은 돈에우스타키오 모퉁이로 뛰어갔다. 그리고는 돈브라울리오 거리로 접어들었다.
     빌카스 어른이 다시 회랑으로 올라왔다.
     돈왈파가 말했다.
     “빌어먹을, 돈브라울리오 밑이나 핥아라.”
     그러나 산후안 사람들은 겁에 질렸다. 틴키 사람들은 제자리에 있었으나, 산후안 사람들은 신부와 함께 다른 회랑으로 가버렸다. 나는 베르나코에게 얘기했다.
     “산후안 사람들은 빌카스 어른과 다를 바가 없어. 빌어먹을!”
     “돈브라울리오가 밤마다 길거리에서 총을 쏴대니 주눅이 들 수밖에 없지.”
     “신부가 뭐라고 하는지 가보자.”

     우리는 시치미를 떼고 산후안 사람들이 있는 회랑으로 건너갔다. 신부는 두려운지 매번 돈에우스타키오 모퉁이를 쳐다보았다.
     산후안 사람들은 겁에 질려 있었다. 신부 주변에 옹기종기 달라붙어 대책을 물어봤다.
     “여러분, 돈브라울리오는 돈이 많습니다. 산도 초원도 모두 그 사람 것입니다. 우리 소가 자기네 목장에 들어가면 잡아다가 굶겨 죽입니다. 마음만 먹는다면 우리들도 때려죽일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돈브라울리오 편을 들어야 합니다. 판타차는 나팔수에 불과합니다. 도움이 안 되는 사람입니다.”
     “제기랄!”
     “돈브라울리오에게 대들어 봤자 소용이 없습니다.”
     산후안 사람들은 잡아다 놓은 씨암탉 같았고 놀란 토끼 같았다. 그래서 돈브라울리오가 고함이라도 치거나 광장에서 고함을 지르며 총을 쏘아대면 모두들 돼지 새끼 마냥 꽁무니를 내뺐다.

     이제 마을 사람들은 두 패로 갈라졌다. 산후안 사람들은 신부 편이었고, 틴키 사람들은 판타차 아저씨와 돈왈파 편이었다. 산후안 사람들이 더 많았다.
     틴키 사람들은 유치장 회랑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신부가 한 말을 아저씨에게 전해주자.”
     나는 베르나코에게 동의를 구했다.
     “가자.”
     우리는 유치장 회랑으로 건너가려고 길모퉁이를 돌고 있을 때, 돈파스쿠알이 투우장 문을 통해서 광장에 나타났다. 매주 물을 나누어주는 사람이었다. 베르나코가 소리쳤다.
     “돈파스쿠알!”
     “돈파스쿠알!”
     사람들은 모두 물을 나누어주는 그 사람의 이름을 소리 높여 불렀다.
     판타차 아저씨는 나팔로 돈파스쿠알에게 신호를 보냈다. 돈파스쿠알은 틴키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곧장 걸어갔다.
     산후안 사람들도 돈파스쿠알하고 얘기를 하려고 신부 혼자 남겨두고 유치장 회랑으로 달려왔다.
     마을 사람들이 돈파스쿠알을 에워쌌다. 판타차 아저씨 목소리가 들렸다.
     “산후안, 아얄라이, 틴키 사람들은 들으시오. 돈파스쿠알은 물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저수지 물을 줄 것이오. 틀림없이 돈브라울리오는 화를 내겠지만, 돈파스쿠알 권한이오.”
     잠시 후, 돈파스쿠알이 벤치 위로 올라갔다.
     “우리들은 판타차 말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주에는 저수지 물을 댈 사람은 안토, 후아나, 헤수수, 파트리시오.... 돈브라울리오는 틀림없이 노발대발하겠지요. 하지만 단 한 번만이라도 가난한 사람들이 일주일 동안 물을 가져가야 합니다. 유지들이야 돈이 많습니다. 감자밭과 옥수수 밭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소중합니다. 인티 신[역주. 태양신]이 비를 내려줍니다. 그리고 저수지 물은 관개용수입니다. 이번에 채워진 저수지 물은 마을 사람들 몫입니다.”
     돈파스쿠알의 목소리에서는 판타차 아저씨와는 달리 분노를 느낄 수가 없었다. 훨씬 겸손한 것 같았다. 그 사람 역시 돈브라울리오에게 대항하자고 마을 사람들을 설득했다.
     “좋습니다.”
     “좋아요.”
     이렇게 대답한 사람들은 틴키 사람들이었다.
     “당신 양심에 따라서 물을 나누시오.”
     산후안 사람들 가운데는 아얄라이 마을의 돈사크사가 처음으로 얘기했다.
     “당신 양심에 맡기겠오.”
     “돈브라울리오는 부락민을 착취하고 있습니다. 우리 부락은 우리 손으로 지킵시다. 저수지 물은 원주민 것입니다.”
     산후안 사람들은 돈파스쿠알의 말에 놀라지 않았다. 주인을 쳐다보는 양처럼 조용히 돈파스쿠알을 바라보고 있었다. 판타차 아저씨가 말했다.
     “산후안 사람들은 두려워하지 마시오. 여자들이나 돈브라울리오 권총을 무서워할 것입니다.”
     “틀림없이 돈브라울리오는 노발대발할 것입니다. 조금만 기다립시다. 나는 이 자리에서, 그 사람 면전에서 주민들에게 물을 나누어줄 테니까...”
     사람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눈치를 살폈다. 그때서야 주민들은 왜 판타차 아저씨와 돈왈파와 돈파스쿠알이 유지 돈브라울리오와 빌카스 어른과 이노센시오 신부에게 대항하는지 깨달았다.
     “대부님 말씀이 옳습니다. 우리 마을에 유지는 두세 명밖에 안됩니다. 우리들은 이처럼 많고요. 유지들이나 동민들이나 모두 눈, 코, 입이 달린 사람입니다. 저수지 물은 주민들에게 나눠줍시다!”
     “그렇습니다. 대지는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이 물을 줍니다.”
     산후안 사람들 역시 결심을 굳혔다. 그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었다. 판타차 아저씨와 돈왈파는 사람들을 붙잡고 돈파스쿠알 말을 따르라고 부탁했다.
     산후안 사람들은 마을 유지, 돈브라울리오와 싸울 태세를 갖추었다.



     유지들은 일요일 아침이면 돈브라울리오 댁으로 찾아갔다. 그들은 정원에서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돈브라울리오가 일어날 때까지 기다렸다. 담 옆에는 오래된 유카리나무 등걸이 여러 개 있었다. 유지들은 돈브라울리오가 일어날 때까지 그곳에 앉아 햇볕을 쬐었다. 돈브라울리오는 기상 시간이 따로 없었다. 일곱 시에 일어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아홉 시나 열 시에도 일어났다. 이 때문에 유지들의 방문 시간은 각자의 꿍꿍이속에 따라서 달랐다. 아첨이나 하는 추잡한 인간들은 돈브라울리오 하인들의 눈 도장을 찍으려고 아침 일찍 정원으로 출근했고, 단순히 미움을 살까 두려운 사람들은 해가 중천에 떴을 때 느지막이 갔다. 그리고 돈브라울리오가 마을 사람들과 한잔하려고 나올 시간을 계산하고 있는 사람들은 술에 취했을 때만이 그에게 알랑거렸다.
     일요일이면 돈브라울리오는 돈에라클리토 가게에서 아침을 들면서 반주를 했다. 그 가게는 돈브라울리오 거리에 있었다. 돈브라울리오는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술잔을 권하면서 산후안의 유지들을 비웃었고, 사람들이 취하면 추잡한 노래나 시켰다. 그리고 길거리로 나와 껄껄 웃으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안녕하시오, 돈카예타노! 안녕하시오, 돈페테리코!”
     술에 취한 유지들은 서로 바지를 벗기기도 하고 싸우기도 했으며 괜히 진열장에 머리를 쿵쿵 박기도 했다.

     돈브라울리오는 정오가 되면 물을 나누어주려고 유치장 회랑으로 갔다. 그 뒤에는 유지들이 따라왔다. 때때로 돈브라울리오는 정신없이 취해서 물 분배를 잊어버리기도 했다. 그러면 이노센시오 신부는 오후 두세 시경에 교회 종을 울렸다. 종소리를 들은 돈브라울리오는 기분 내키는 대로 잠자코 집안에 있거나 거리로 뛰쳐나와 상소리를 내뱉으며 유치장 회랑으로 갔다. 그리고 아무나 닥치는 대로 폭력을 행사하거나 마을 사람들을 유치장에 집어넣었으며, 길거리에서 총을 난사하기도 했다. 그러면 유지와 원주민들은 광장에서 도망쳤으며, 술에 취한 사람들은 구석지로 기어들어 갔다. 회랑은 적막해지고, 돈브라울리오는 쩌렁쩌렁한 웃음으로 광장을 뒤흔들면서 잠자러 갔다. 돈브라울리오가 산후안의 주인 같았다.
     이번 일요일에도 틀림없이 돈브라울리오는 정신없이 취했다. 그러니까 아직 오지 않은 것이다. 빌카스 어른과 이노센시오 신부는 겁을 먹은 채 가게 문 앞에서 유지의 처분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페루 후추나무     이미 오후가 되었다. 인티 신(태양)이 세상을 태우고 있었다. 벤타니야 광산의 돌멩이는 거울처럼 반짝거렸고, 언덕과 산자락과 계곡은 햇볕에 이글거렸다. 태양이 산의 심장을 태우고 있는 것 같았고, 대지의 눈동자를 영원히 메마르게 할 것 같았다. 산자락의 금작화와 케르칼은 순식간에 시들어버렸으며, 도랑 가의 커다란 버드나무와 후추나무는 축 늘어졌다. 과수원 새들도 잠잠해졌고, 그렇게 얘기가 많던 마을 사람들도 낮잠에 빠졌다. 판타차 아저씨, 돈파스쿠알, 돈왈파는 광산 산등성이로 꾸불꾸불 나 있는 길을 진지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인티 신은 대지를 죽이려는 게 틀림없었다. 그러니까 온 힘을 다해 대지를 정면으로 쏘아보고 있는 것이다. 인티 신의 분노 때문에 세상은 불타고, 사람들은 울었다.
     하얀 교회당과 종탑은 쨍쨍 내리쬐는 햇살에 눈이 부셨다. 광장은 화덕 같았다. 광장 복판에 서 있는 유카리나무만이 아무 불평 없이 가만히 서서 폭염을 견뎌내고 있었다. 바람 한 점 없었다. 이 세상 모든 것이 정지되고, 짓눌리고, 누렇게 변해버렸다.
     저 높은 곳에서 하늘이 웃고 있었다. 소녀의 눈동자 마냥 파란 하늘이었다. 마치 흙먼지만 풀썩거리는 산자락과 민둥산이 산봉우리와 메마른 개천의 모래를 즐겁다는 듯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는 그런 하늘이 눈에 거슬렸다. 꼭 적(敵)이 우리를 비웃고 있는 것 같았다.
     “인티 신이여 제발 그만하소서!”
     아얄라이 사람 돈사크사가 말했다. 노인의 목소리가 길거리에 울려 퍼졌다. 분노한 인티 신 때문에 지친 목소리는 처량하게 들렸다.
     “장송곡을 불어, 장송곡.”
     판타차 아저씨는 회랑 가장자리에 서서 인티 신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나팔이 깨지라고 와나쿠팜파를 불어제쳤다. 이제 나팔 소리는 주민들의 심금을 울렸다. 곡조는 그들의 아픔을 대변해주는 것 같았다. 장송곡은 화덕처럼 이글거리는 광장으로부터 하늘로 치솟아 메마른 산과 케르칼나무를 핥으면서 멀리 퍼져 나갔다. 분노한 인티 신 때문에, 저주받을 돈브라울리오 때문에 좌절한 마을 사람들의 고통을 사방으로 실어 날랐다.
     “판타차가 인티 신을 혼내주라고 하느님께 빌고 있어.”

     갑자기 돈브라울리오가 광장에 나타났다. 산후안 유지들도 떼를 지어 따라오고 있었다.
     신부의 아들 비센티차는 종을 치려고 교회로 달려갔다. 주민들과 여자들은 회랑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는 사나운 투우가 광장으로 뛰어들듯이 사람들은 유치장 문 앞으로 뛰어갔다. 꼭 걸신들린 사람 같았다.
     “불쌍한 사람들 같으니라고!”
     돈사크사가 말했다.
     돈왈파, 돈파스쿠알 그리고 판타차 아저씨는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빌카스 어른은 돈오라시오 집 문 앞에 개처럼 쭈그리고 앉아 돈브라울리오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노센시오 신부도 거기에 있었습니다.”
     “돈브라울리오는 술을 마시면 눈에 뵈는 것이 없는 사람이죠.”
     틴키 사람들은 돈왈파 주변에 모였다. 산후안 사람들은 입을 다물고 다른 쪽으로 모였다.
     “믿을 수 없는 사람들. 줄을 잘못 섰지.”
     두 패로 갈라진 주민들을 바라보면서 판타차 아저씨가 말했다.
     “저수지 물을 원주민들에게!”
     판타차 아저씨는 외쳤다.
     산후안 사람들은 고개를 돌려 판타차 아저씨를 쳐다보았다. 그들 눈에서 사내다운 모습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모두들 불쌍한 양 같았다. 틴키 사람들 역시 유약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돈파스쿠알, 유지 앞에 버티고 서시오, 내가 욕을 할 테니.”
     “그러지. 칸라라 신처럼 버텨보지. 돈안토, 돈헤수수, 돈파트리시오, 돈로소...”

     교회 종이 요란하게 울렸다. 이제 광장은 축제가 열리는 것 같았다. 여기저기에서 수군거리는 소리와 하얀 태양과 맑은 하늘과 종소리가 들렸으나 마음은 즐겁지 않았다. 주민들은 떼로 몰려오는 유지들을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돈파스쿠알, 돈왈파, 판타차 아저씨는 돈에우스타키오 모퉁이를 쳐다보았다. 산후안 사람들은 유치장 쪽에 있었다. 그들 뒤에 부인들이 서 있었다. 반면, 틴키 사람들은 학교 옆에 모여 있었고, 학생들은 하얀 돌기둥을 붙잡고 있었다.
     돈브라울리오는 벌써부터 얼큰해져 회랑의 돌멩이를 발로 차면서 걸어오고 있었다. 손수건을 목에 동여매고, 모자는 삐딱하게 눌러썼다. 바지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었다. 혁대의 버클이 반짝거렸고, 그 옆으로는 권총집이 보였다. 갓 태어난 칠면조처럼 얼굴이 불콰해진 돈브라울리오는 일을 빨리 처리하려고 걸음을 서둘렀다. 유지들도 술에 취한 것이 틀림없었다. 돈카예타노는 비틀거렸다. 광장 중앙 유카리나무 옆에서 돈카예타노가 소리를 질렀다.
     “돈브라울리오 만세!”
     “만세!”
     모두가 이렇게 맞장구쳤다. 돈브라울리오도 마찬가지였다.
     마지막으로 이노센시오 신부와 빌카스 어른이 슬그머니 광장으로 들어왔다.

     내가 매달려 있던 돌기둥 옆에 베르나코가 있었다.
     “에르네스토야, 무서워 죽겠어. 싸움이 벌어질지도 모르겠어.”
     “틀림없이 싸움이 일어날 거야. 돈파스쿠알과 판타차 아저씨가 분노하고 있거든.”
     “하지만 판타차 아저씨는 용감해.”
     “돈브라울리오를 봐. 틀림없이 싸울 거야. 돈브라울리오는 권총을 가져왔을 거야.”
     “에르네스토야, 조용히 해. 돈브라울리오는 미친 사람처럼 총을 쏘아대니까.”

     돈브라울리오는 회랑으로 올라갔다. 주민들은 모두 돈브라울리오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신지요, 어르신.”
     “안녕하시오.”
     돈브라울리오는 탁자 옆을 지나 벽에 등을 기대고 섰다. 유지들과 빌카스 어른, 이노센시오 신부가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원주민들은 돈브라울리오를 쳐다보았다. 어떤 사람들은 겁에 질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고, 어떤 이들은 침착했으며, 어떤 이들은 분개하고 있었다. 판타차 아저씨는 나팔을 등 에 매고 어깨끈을 고쳤다. 얼굴은 벌겋게 상기되었다.
     돈브라울리오는 뒷짐을 지고 땅을 내려다보았다. 생각에 잠긴 돼지 같았다. 더구나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불그스레한 목덜미가 드러났는데, 노란 잔털이 가득 나 있었다.
     돈브라울리오를 보았을 때, 내 가슴속에는 분노가 끓어올랐다.
     광장은 침묵에 휩싸였다. 광장 중앙의 유카리나무는 땀을 흘리고 있는 것 같았다. 나무는 겸손하게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파스쿠알, 시작해!”
     돈브라울리오가 명령했다.
     돈파스쿠알은 탁자 위로 올라갔다. 탁자 위에서 판타차 아저씨와 돈왈파와 돈사크사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는 눈을 돌려 주민들을 내려다보았다.
     “시작하라니까!”
     “월요일은 엔리케, 오라시오, 화요일은 안토와 후아나, 수요일은 페드로, 로소, 호세, 파블로, 목요일은....”
     돈브라울리오는 채찍이라도 맞은 듯이 몸이 굳어버렸다. 빳빳한 눈썹은 투계 벼슬처럼 보였다. 두 눈에서는 분노가 일렁거리고 있었다.
     “금요일은 사크사와 와만....”
     “그만해!”
     돈브라울리오가 소리쳤다.
     아얄라이 사람들은 깜짝 놀라서 고개를 돌렸다. 곧 돈브라울리오에게 달려갈 채비를 했다. 틴키 사람들은 아직도 버티고 있었다.

     “돈브라울리오, 저수지 물은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눠줘야 합니다.”
     그러자 판타차 아저씨가 외쳤다.
     “물은 주인이 없소!”
     돈왈파가 말했다.
     “주민들이 우선이오!”
     돈브라울리오는 권총을 꺼냈다.
     “꺼져, 자식들아. 꺼지란 말이야!”
     산후안 사람들은 뒤로 밀려나면서 넘어졌다. 먼저 여자들이 아이들 손을 잡고 도망쳤다.

     두세 발의 총성이 회랑에서 울렸다. 유지들, 이노센시오 신부와 빌카스 어른이 돈브라울리오와 한패였다. 산후안 사람들은 사방으로 달아났다. 코냐니의 사나운 투우에게 쫓기기라도 하듯이 뒤돌아볼 틈도 없이 도망쳤다. 여자들은 광장에서 비명을 질렀고, 학생들은 돌기둥을 타고 올라갔다. 아얄라이 사람들은 투우장 문 앞으로 몰려들어 서로 들어가려고 아우성이었다. 판타차 아저씨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돌아와, 돌아와!”
     그 소리도 소용없이 주민들은 문 뒤로, 모퉁이 뒤로 숨어버렸다. 회랑에는 틴키 사람들 몇 명만 남아 있었다. 그들은 하얀 돌기둥처럼 의연했고 진지했다.
     이장(里長) 돈안토니오도 총을 가져왔다. 틀림없이 돈브라울리오가 빌려주었을 것이다. 이장은 공포 두 발을 쏘았다. 모퉁이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던 산후안 사람들마저 숨어버렸다.
     돈파스쿠알은 아무 말 없이 탁자에서 내려왔다.
     유지들과 주민들은 탁자를 사이에 두고 서로 노려보았다. 돈브라울리오는 진자 미친 사람 같았다. 판타차 아저씨를 노려보는 눈초리가 이상했다. 독이 오른 눈초리는 심장을 파고들어 산산조각 내버렸다. 유지들과 빌카스 어른은 돈브라울리오 뒤에서 떨고 있었다. 판타차 아저씨가 소리를 질렀다.
     “이 날강도야. 나를 죽여, 가슴이든지 머리든지 쏘면 될 게 야냐.”
     판타차 아저씨는 나팔을 높이 쳐들었다. 부릅뜬 눈은 한낮의 태양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악당 같은 유지에게 덤벼들었다.... 돈브라울리오는 총을 쏘았고, 판타차 아저씨는 돌 위로 쓰러졌다.
     “유치장에 처넣어!”
     피를 뒤집어 쓴 돈파스쿠알, 돈왈파, 그리고 틴키 사람들은 눈을 감았다. 그들은 비겁해졌고, 용기도 사라졌고,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다. 순식간에 풀이 꺾여버린 것이다.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순한 양처럼 고분고분했다. 그 자리에서 서서 땅만 내려다볼 뿐이었다.
     “저 자식들 유치장에 넣으라니까, 뭣해!”
     돈브라울리오가 잡아먹을 듯이 명령했다.
     빌카스 어른이 유치장 문을 열었다. 유치장은 어른의 소관이었다. 맨 먼저 돈왈파가 유치장 안으로 들어갔다. 강아지처럼 발발 떨고 있었다. 돈파스쿠알은 불행을 당한 미망인처럼 땅바닥만 쳐다보며 돈왈파를 따라서 들어갔다.
     “나머지는 집으로 돌아가. 꺼져버려!”
     틴키 사람들이 떠나갔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줄지어 가면서 그래도 걱정스러운지 자꾸만 뒤를 돌아보았다.

     광장은 조용해졌다. 아무도 없었다. 아우성도 분노도 주민들도 한순간에 사라졌다. 그리고 판타차 아저씨가 죽었다. 피끓는 젊은이였고, 용기 있는 젊은이였다. 유지들도 창에 찔린 종마(種馬)처럼 땅바닥에 쓰러진 판타차 아저씨를 아무 말 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유치장 문 앞에 서있던 빌카스 어른과 신부는 무서운지 쳐다보지도 않았다.
     “밤까지 가두어 둬.”
     돈브라울리오 명령했다.
     빌카스 어른과 신부는 그럴 수가 없었다.
     “인디오들아, 끌고가라니까.”
     돈브라울리오가 제멋대로 지껄여도 빌카스 어른과 신부는 대꾸조차 못했다.
     “못하겠습니다. 나으리.”
     빌카스 어른과 신부는 어린애들처럼 사정했다.
     “그럼 당신이 해, 돈카예타노!”
     “예, 알겠습니다.”
     술에 취한 돈카예타노는 판타차 아저씨가 있는 곳을 다가가 한쪽 다리를 잡아당겼다.
     “저런 머리에 맞았네.”

     나는 질질 끌려가는 판타차 아저씨를 보았을 때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올랐다.
     “승냥이 같은 자식아!”
     나는 돈브라울리오를 향해 소리치면서 회랑으로 뛰어나왔다. 내 자신을 사나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판타차 아저씨와 같은 진짜 사나이라고 여겼다. 칸라라 신의 정령이 내 몸안으로 들어온 게 분명했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분노였다. 가슴이 미어지고 핏줄이 터지고 두 눈이 쏟아질 것 같은 분노였다.
     돈브라울리오, 돈카예타노, 돈안토니오는 눈을 휘둥그래 뜨고 나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이 날강도들아!”
     나는 땅에 떨어진 판타차 아저씨의 나팔을 집어들어 돈브라울리오의 머리를 향해 던졌다. 유지의 이마에서 핏방울이 툭툭 떨어졌다. 훌륭한 솜씨였다.
     유지들은 왕초를 돌보려고 몰려들었다.
     나는 돈브라울리오에게 말했다.
     “너를 죽이겠어. 주민들이나 물어뜯는 개자식아!”
     “총을 쏴, 어서 총을 쏘란 말이야!”
     돈브라울리오는 소리만 질렀다. 나팔에 맞아 이마가 깨졌다. 얼굴로 흐르는 검은 피는 뱀처럼 보였다.
     “돈안토니오, 죽여버려.”
     돈브라울리오는 제멋대로 말했으나, 목소리는 더 이상 사내답지 못했다. 피를 본 그는 여자들처럼 겁쟁이가 되었다.
     “하느님, 저 사람 좀 혼내주세요.”
     나는 하얀 교회당 정면을 보았다.
     빌어먹을, 하느님은 안 계셨다. 하느님은 계신다는 말을 거짓말이다.
     돈안토니오는 나보고 도망치라고 발짓을 했다. 이장은 나를 좋아했다. 아들의 절친한 친구였기 때문이다.
     “돈안토니오, 죽여버려!”
     돈브라울리오는 다시 한번 외쳤다.
     이제 나는 돈브라울리오의 목소리가 좋았다. 그 자리에 서 있고 싶었다. 그가 내지르는 고함소리는 분노를 앗아가고, 즐거웠다. 웃음이 터지려고 했다.
     “죽여버리겠어, 개자식!”
     그러나 돈안토니오는 발을 굴렀다. 그리고 나를 향해 권총을 겨누었다. 두려움 때문에 내 가슴은 싸늘하게 식어갔다. 나는 회랑에서 광장으로 뛰쳐나갔다. 뒤에서 돈안토니오의 총성이 들렸다.
     “안토니오!”
     틀림없이 이장은 허공에 대고 총을 쏘았다.



     우텍 초원 주민들은 산후안 사람들이나 틴키 사람들보다 훌륭한 사람들이었다. 대담한 원주민들과 지주들은 돈브라울리오를 쫓아냈다. 돈브라울리오는 푸키요에서 군인들을 데려와 우텍을 점령하고, 앙갚음으로 주민들을 짓밟고 가축들을 죽였다.
     산후안 광장에서는 돈브라울리오만이 용감했다. 하지만 그가 우텍에 당도했을 때에는 분노를 누그러뜨리고 마음씨 좋은 유지처럼 굴었다.
     그래서 나는 광장에서 도망치면서 우텍 사람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산후안 사람들은 안전하게 집으로 피했다. 길거리에는 돼지들만 있었고, 대낮인데도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나는 산타바르바라까지 쉬지 않고 달려갔다. 그곳에서 초원과 우텍 마을이 보였다.
     저 아래 비세카 강 옆에 우텍 초원이 펼쳐져 있었다. 그 초원은 마치 산타바르바라 산 중앙에 자리한 계단처럼 보였다.
     우텍 초원은 결코 처량해 보이지 않았다. 저기 하늘 아래서 살아 숨쉬고 있었다. 비록 검은 구름에 덮여있고, 대지에 내리는 소나기 소리가 시끄러웠지만 우텍 초원은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푸른 옥수수 밭에서 바람은 장난을 치고 있었다. 멀리서 보아도 초원은 낯선 사람의 가슴에 애정을 일깨운다. 옥수수 수확철이 되면 주민들은 밭머리에 오두막을 세운다. 투야스, 이코, 토르카사 같은 새들이 떼를 지어 온 들판을 날아다닌다. 새들이 지저귀며 옥수수 밭 위로 날아다닐 때면 하얗고 노랗고 파란 가슴이 보인다. 때때로 새들은 담장 옆에서 자라나는 모얄에 앉아서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멀리서 보면 우텍 초원은 연기로 가득 차 있어 전부가 마을인 것처럼 보인다. 수확철이 지나면, 투우, 말, 노새 같은 커다란 동물들이 초원을 가득 메운다. 종마는 머리 나온 것이 못 미더워 하루 종일 울고, 발정 난 망아지들은 온 초원이 떠들썩하도록 울부짖는다. 우텍 초원, 높은 산골짜기에서 내려다보면 원주민들이건 유지들이건 낯선 사람이건 간에 모두를 푸근하게 만든다.
     “어머니 같은 우텍 초원!”
     나는 틴키 사람들처럼 이렇게 초원을 불러보았다. 그리고 망아지처럼 산타바르바라 산에서 울부짖었다. 우텍의 젊은이들이 듣도록 목청껏 외쳤다. 하지만 거짓말이다! 아늑한 초원과 흥겹게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마을로 뻗어 있는 길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더욱 씁쓸했다. 이제는 판타차 아저씨도 없었고, 돈파스쿠알도 없었고, 돈왈파도 없었다. 돈브라울리오만이 있었다. 이마에 상처가 났어도 다시 마을 사람들에게서 강탈한 것으로 마셔댄 술에 취에 주민들 얼굴에 침을 뱉고, 채찍질하고, 욕설을 퍼부을 것이다.

     그날 오후, 나는 메마른 그 산에서 주민들을 생각하고, 햇볕에 타들어가는 밭을 생각하고, 굶주린 가축을 생각하고 혼자 울었다. 눈물이 앞을 가렸다. 맑은 하늘, 초원, 파르스름한 산은 떨고 있었다. 위대하고 위대하신 인티 신은 세상을 태우고 있었다. 나는 주저앉았다. 그리고 교회당에서 그랬듯이 마른 풀 위에 무릎을 꿇고 치투아 산을 향해 이렇게 빌었다.
     “신령님이여, 온 세상의 유지들을 끝장내소서.”
     그리고 나는 내리막길을 달려갔다. 우텍 초원의 농부들과 합세하기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