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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코니 / 에르난데스 2006-10-04 / 8163   

발코니

펠리스베르토 에르난데스(Felisberto Hernández)/ 박 병 규 옮김




      여름마다 자주 찾아가던 도시가 있었다. 그 시절에는 너나없이 가까운 곳으로 피서를 떠나 동네가 텅텅 비었다. 이렇게 빈 집 가운데 아주 오래된 저택도 있었다. 호텔이었다. 그러나 여름이 시작되면 호텔도 한산해졌다. 투숙객들은 떠나고 종업원들만 우글거렸다. 호텔에 숨어들어가 고함을 지른다고 할지라도 이끼에 파묻혀 개미소리조차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내 연주회가 열린 극장 역시 사람이 없기는 매 한가지였다. 연주회장에는 침묵이 감돌아, 그랜드 피아노의 검은색 뚜껑은 어느 때보다 크게 보였다. 음악 감상에 침묵만큼 좋은 것도 없다. 마지막 울림까지 들을 수 있고, 또 이제까지 들은 음악을 곰곰이 생각할 여유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금방 음악에 대한 소감이 떠오르지는 않는다. 그러나 한동안 잠자코 있으면, 침묵이 음악 속으로 끼어든다. 마치 검은 꼬리가 달린 고양이처럼 음정 사이를 지나가면서 그 음악의 의도와 의미를 가득 남긴다.
      어느 날 연주회가 끝났을 때, 어떤 노인이 쭈뼛쭈뼛 인사를 건넸다. 푸른 눈동자 아래로 벌건 눈시울이 보였다. 두툼한 아랫입술은 객석의 난간처럼 반쯤 열린 입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런 입에서 차분하고 느릿한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게다가 말하는 중간 중간 거친 숨소리도 들렸다.
      한동안 뜸을 들인 노인은 이렇게 말했다.
      “내 딸이 선생님 음악을 들었어야 하는데, 아쉽습니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딸이 장님일 거라고 여겼다. 그러나 설령 장님이라고 할지라도 음악을 들을 수는 있다는 생각이 들어, 어쩌면 농아이거나 아니면 지금 이 도시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어쩌면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상상했다. 그렇지만 그날 저녁 나는 행복했다. 그 도시에서는 모든 것이 느렸다. 노인과 함께 조용히 짙푸른 그림자 속을 걸어갔다.
      문득 나는 노인에게 고개를 기울이고 ―마치 예민한 물건을 조심스럽게 다루기라고 하듯이― 이렇게 물었다.
      “따님은 올 수 없었습니까?”
      노인은 ‘아’하고 짧게 내뱉더니, 걸음을 멈추고 한동안 나를 쳐다보았다. 마침내 이렇게 말했다.
      “네, 그렇습니다. 올 수가 없었습니다. 선생님 짐작이 맞습니다. 딸애는 다음날 외출하려고 작정하면 잠을 못 이룹니다. 다음날 새벽같이 일어나 무척이나 서두르죠. 그러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요. 그리고 외출을 단념합니다.”
      연주회 관객은 이내 극장 주변의 길거리로 사라졌고, 우리들은 카페로 들어갔다. 노인이 종업원에게 사인을 보내자 조그만 잔에 짙은 색깔의 음료를 가져왔다. 나는 잠깐 동안밖에 시간을 낼 수 없었다. 다른 곳에서 저녁 식사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노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따님이 외출을 않는다니 안 됐습니다. 사람은 바람도 좀 쐬고, 즐기기도 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노인은 두툼한 입술에 잔을 털어 넣었다. 목도 축이지 못할 양이었다.
      “딸애는 나름대로 즐기며 삽니다. 저는 오래된 집을 구입했습니다. 우리 두 사람이 살기에는 너무 큰 집입니다. 집은 좋습니다. 정원에는 분수가 있고, 딸애 방에는 한쪽에 발코니로 나가는 문이 있습니다. 발코니는 길거리로 나 있습니다. 그 발코니에서 딸애가 산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가끔은 정원으로 나가 돌아다니기도 하고, 밤에 피아노를 칠 때도 있습니다. 언제든지 저희 집에 들러 저녁이라도 하신다면 저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고마운 일입니다.”
      이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았다. 그리고 날짜를 잡아 저녁도 먹고 피아노도 연주하기로 마음먹었다.
      노인은 해가 아직 한참이나 남아 있던 어느 날 오후 호텔로 찾아왔다. 저 멀리, 발코니가 있다는 그 집 귀퉁이가 보였다. 2층 집이었다. 집 옆의 대문으로 들어갔다. 정원이 보이고, 잡초가 분수대의 조각상을 뒤덮고 있었다.
      정원을 둘러싼 높은 담벼락에는 유리조각을 박아놓았다. 계단을 올라가자 복도가 나타났고, 복도 유리창을 통해서 정원을 볼 수 있었다. 긴 복도에 수많은 양산을 펼쳐놓은 것을 보고 상당히 놀랐다. 색깔도 가지각색이어서, 마치 온실에서 자라는 거대한 화초처럼 보였다. 그때 노인이 설명했다.
      “대부분은 내가 딸아이에게 선물한 양산입니다. 딸애는 이렇게 펼쳐놓고 색깔을 감상하는 것을 좋아한답니다. 날씨가 좋으면 하나를 골라들고 정원을 돌아다니지요. 바람이 부는 날에는 이 문을 열 수가 없습니다. 양산이 굴러다니니까요. 하는 수 없이 다른 출입문으로 드나듭니다.”
      우리는 복도 끝까지 걸어갔다. 벽과 양산으로 만든 복도 같았다. 마침내 문 앞에 다다랐다. 노인은 손가락으로 유리창을 두들겼다. 안쪽에서 가느다랗게 대답하는 소리가 들렸다. 노인은 나에게 먼저 들어가라고 했다. 발코니 한 가운데 서 있는 딸을 보았다. 색유리창을 등지고 우리 앞에서 서 있었다. 우리가 방 가운데 쯤 이르렀을 때, 그녀도 발코니에서 우리 쪽으로 다가오면서 한 손을 쳐들고 환영한다는 인사를 보냈다. 햇빛이 들지 않는 벽 쪽에 붙여놓은 작은 피아노가 눈에 띄었다. 건반 뚜껑은 열려 있었다. 희멀건 치아를 드러내고 천진난만하게 웃는 듯이 보였다.
      그녀는 나가지 못해 죄송하다고 했다. 그리고 빈 발코니를 가리키며 말했다.
      “내 유일한 친구랍니다.”
      “이 얌전한 물건은 친구가 아닌가요?” 나는 피아노를 가리키며 물었다.
      우리는 그녀 발치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잠시 사방 벽에 같은 높이로 죽 늘어놓은 꽃 그림을 보았다. 마치 병풍을 둘러놓은 듯했다. 그녀는 피아노만큼이나 순진한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그러나 빛바랜 금발 머리와 가냘픈 몸은 아주 오래전부터 되는대로 방치해둔 듯했다. 노인이 소리 없이 방문을 나설 때, 그녀는 발코니만큼 피아노와 친하게 지낼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었다. 딸은 말을 잇고 있었다.
      “피아노는 어머니의 소중한 친구였습니다.”
      나는 피아노를 보려고 의자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눈을 크게 뜨고 손짓으로 만류했다.
      “죄송합니다. 저녁 식사 후에 촛불을 켜고 피아노를 쳤으면 좋겠습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저녁에만 피아노 연주를 듣는 습관이 있어서요. 물론 어머니가 연주를 했지요. 어머니는 촛대에 네 자루 촛불을 켜고 아주 천천히, 마치 촛불을 하나씩 밝히듯이 아주 느린 곡조를 연주했답니다.”
      이어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실례한다며 발코니로 나갔다. 유리창에 팔을 올려놓은 모습이 흡사 어떤 사람의 가슴 위에 팔을 올려놓은 듯했다. 그러나 그녀는 이내 돌아와서 말했다.
      “빨간색 유리 앞을 자주 지나가는 사람을 보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폭력적이고 성격이 나쁜 사람이었어요.”
      나는 궁금했다.
      “그러면 저는 어떤 색 유리에 해당합니까?”
      “초록색이요. 시골에서 혼자 사는 사람은 대부분 초록색이죠.”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저는 시골에 파묻혀 조용히 살고 싶습니다.”
      그때 방문이 열리고 노인이 나타났다. 하녀가 뒤따라 들어왔는데, 키가 너무 작아서 소녀인지 난장이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들고 온 쟁반 위로 불그스레한 하녀 얼굴이 나타났다. 노인이 내게 물었다.
      “무얼 드시렵니까?”
      나는 괜찮다고 말하려다가 언짢게 생각할까봐 아무거나 달라고 했다. 노인은 작은 잔에 담긴 짙은 색 음료를 마셨다. 저번 연주회가 끝나고도 그런 음료를 마셨다. 그럭저럭 시간이 지나 밤이 되자 우리는 양산이 걸린 복도를 지나 식당으로 갔다. 딸은 양산 몇 개의 위치를 바꾸었다. 내가 아름답다고 칭찬하자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식당은 길거리보다 낮은 곳에 있었다. 쪽창으로 인도를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이 보였다. 초록색 전등갓을 벗어난 불빛이 하얀 식탁보 위로 떨어졌다. 식탁 위에는 그 집안의 오래된 물건이 모두 나와 있었다. 마치 추억이 잔치를 벌이는 듯했다. 식탁에 앉은 우리 세 사람은 한 동안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식탁 위에 놓인 물건들도 소중한 침묵을 지키고 있는듯했다. 우리들 손만 부지런히 식탁을 드나들었다. 그런 손은 식탁에서 태어나고 자란 거주민처럼 보여서, 손의 일생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주 오래 전에 손은 이런 물건들을 식탁에 정연하게 늘어놓아야 했다. 수 백 번도 더 드나든 다음에야 찬장에 식기들이 자리를 잡았다. 이 그릇이라는 존재는 갖가지 종류의 손을 위해 봉사해야 했다. 어떤 손이 매끄럽고 윤이 나는 접시의 얼굴에 음식을 담았다. 포트에 물을 가득 채우고, 또 포트 엉덩이를 들추었다. 포크와 나이프를 고기 깊숙이 집어넣어 자른 다음 입으로 가져가야 했다. 마침내, 그릇이라는 존재를 목욕시키고, 물기를 닦아주고, 조그만 방으로 인도해야 했다. 몇몇 그릇은 수많은 손을 거치고도 살아남았다. 몇몇 손은 그릇과 사이가 좋아 그릇을 사랑하고, 그릇에 추억을 가득 남기지만, 그릇은 여전히 침묵 속에서 살아야 했다.
      조금 전, 그녀 방에서 사물들 얘기를 나눴다. 그녀는 발코니를 통해서 들어오는 으스름 빛을 끝까지 향유하고 싶어서 불을 켜지 않았으며, 빛이 사라짐에 따라 그녀는 점점 어둠 속으로 웅크려들었다. 마치 날개가 달린 동물이 잠잘 준비를 하는 듯했다. 그 때 그녀는 사물도 사람과 관계를 맺으면 영혼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어떤 사물은 이전에 다른 사물이었기 때문에 영혼도 달랐다. 이를테면, 전에는 나뭇가지였으나 이제는 가구의 다리가 되고, 전에는 상아였으나 이제는 건반이 되는 식이다. 그러나 발코니는 그녀가 거주하면서 처음으로 영혼을 갖게 되었다.
      문득 식탁 가장자리에 난장이의 불그스레한 얼굴이 나타났다. 난장이가 짧은 팔로 사물을 집으려고 식탁에 손을 뻗자, 노인과 딸은 접시를 식탁 가장자리로 옮겨주었다. 그러나 난장이에게 잡히는 사물은 품위를 잃었다. 게다가 노인은 덥석 포도주병 모가지를 잡고 포도주가 흘러나올 때까지 병을 기울였다.
      처음에는 대화가 잘 풀리지 않았다. 얼마 후 종소리 때문에 괘종시계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노인 등 뒤의 벽에 붙어있었던 것인데, 그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다. 그 때 대화가 시작되었다. 그녀는 내게 물었다.
      “선생님은 오래된 옷이 정겹지 않나요?”
      “물론 정겹지요. 사물에 대한 당신의 말에 공감합니다. 옷이야말로 우리와 가장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사물이죠.”
      이렇게 말하며 웃었으나 그녀는 진지했다.
      “내 생각에 옷이 몸의 형태나 땀 냄새 이상의 그 무엇을 간직하고 있다는 게 전혀 불가능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내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미처 방비를 하기도 전에 공격을 감행하는 사람처럼 내 말에 끼어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자신의 차후 대답까지 예상하고 내게 질문한 게 틀림없었다.
      마침내 그녀가 말했다.
      “저는 잠자리에 든 후에 시를 지어요(그날 오후 그녀는 그런 시가 있다고 암시했다). 처음에 시를 지은 이후부터 지금까지 흰색 잠옷을 입어요. 여름에는 가끔 그 옷을 들고 발코니로 나갑니다. 작년에는 그 옷에 시를 헌정했어요.”
      그녀는 식사를 중단했다. 난장이가 식탁으로 팔을 뻗어도 개의치 않았다. 영감에 사로잡힌 듯이 눈을 크게 뜨고 시를 읊기 시작했다.
      “하얀 잠옷에 부쳐.”
      나는 온 몸이 굳어졌다. 그런 순간에도 난장이의 손을 주시하고 있었다. 난장이는 사물에 다가갈 때까지 뭉툭한 손가락을 꼭 쥐고 있었다. 물건을 잡는 순간에 손가락을 폈다.
      처음에는 난장이의 이상한 행동 주기에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이내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시계추 운동과 일치했기 때문이다. 이것 때문에 짜증이 났다. 그리고 곧 그녀가 시 낭송을 마칠 것인데 뭐라고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 고민이었다. 게다가 노인의 아랫입술 가장자리에 근대 쪼가리까지 붙어있었다.
      시는 형편이 없었다. 그러나 율격은 훌륭했다. 잠옷이라는 단어는 내가 예상한 단어와 율격을 맞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참신한 시라고 말했다. 그리고 노인을 쳐다보며 혀로 아랫입술을 핥았다. 노인이 따라 해주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러나 노인은 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런데 입장이 난처했다. 시가 아직 끝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그녀는 잠옷(camisón)이라는 단어와 운을 맞추기 위해 발코니(balcón)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거기서 시는 끝났다.
      일단 말을 꺼내고 나자 목소리가 차분해졌다. 나는 식탁에 앉은 사람들에게 이제 막 무언가가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
      “저는 시에 스며든 청년기적 성격이 이채롭습니다. 아주 참신하고…….”
      내가 아주 참신하다는 말을 꺼내고 있을 때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다른 시도 있어요.”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가 된 나는 참 운도 없다고 생각했다. 난장이가 또 음식을 들고 와 내 접시에 푸짐하게 덜어주었다. 도대체 품격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식탁에 놓인 사물도 그렇고, 시도 그렇고, 복도에 매달아놓은 양산도 그렇고, 저택 한쪽 벽면을 뒤덮고 있는 담쟁이도 그렇다. 설상가상으로 나는 그 집안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그저 식충이처럼 밥만 먹고 있는 것 같았다. 내 잔이 비었는데도 노인은 포도주병에 손조차 내밀지 않았다.
      그녀가 두 번째 시 낭송을 마쳤을 때 이렇게 말했다.
      “이 시가 훌륭하지 않았더라면 말입니다……. 다른 시를 읊어달라고 부탁했을 겁니다.”
      그리고 접시를 가리켰다.
      그러자 노인이 맞받았다.
      “글쎄 식사부터 해도, 시간은 많은데 말입니다.”
      나는 냉소를 띄게 되었다. 그런 순간에 배를 채우는 문제는 뒷전이었다. 그러나 곧 허기진 뱃속을 채울 필요를 느꼈고, 그러기 위해서는 너그러워질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포도주를 가리키면서 얼마 전에 들은 술주정꾼 얘기를 들려주었다. 이야기를 마치자 두 사람은 배를 잡고 웃었다. 내친김에 다른 얘기도 들려주었다. 그녀의 웃음소리는 듣기 괴로웠다. 그런데도 얘기를 더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녀의 입은 함박만 하게 벌어져 있었다. ‘닭다리’ 이야기를 듣고는 눈물까지 글썽였다. 양손은 무릎 사이에 끼고 있었다. 노인은 기침이 터져 잔을 채우기도 전에 술병을 내려놓아야 했다. 난장이는 온몸을 뒤흔들며 웃었다. 정말 기적처럼 우리 모두는 하나가 되었고, 나는 섭섭한 마음을 덜게 되었다.
      그날 저녁에는 피아노를 연주하지 않았다. 노인은 주무시고 가라며 담쟁이넝쿨로 뒤덮인 쪽의 침실로 안내했다. 계단을 오르면서 살펴보니 벽시계와 연결된 끈이 계단에 늘어져 있었다. 이 끈은 침실까지 이어져 내가 누울 침대 기둥에 묶여있었다. 침실 가구는 오래 된 탓에 누렇고, 전등은 밝게 빛나는 복부를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배에 손을 얹고 노인을 바라보았다. 그날 저녁 노인은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남겼다.
      “잠을 이루지 못해서 몇 시쯤 됐나 알고 싶으면 이 줄을 당기십시오. 이 방에서도 식당에 있는 시계 종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시간을 알려주고, 조금 쉬었다가 분을 알려줄 것입니다.”
      갑자기 노인은 웃음을 터뜨리더니 안녕히 주무시라는 말과 함께 방을 나갔다. 틀림없이 시계와 대화를 나눈 술주정꾼 이야기가 생각났을 것이다.
      노인이 삐걱거리는 나무계단을 내려가고 있을 때 드디어 혼자 몸이 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몸은, 다른 동물을 잡아먹는 맹수처럼, 음식과 술을 마구 삼켰으니 이제 밤새도록 먹은 것과 씨름할 것이다. 나는 조용히 옷을 벗고 맨발로 방안을 돌아다녔다.
      잠자리에 누웠을 때, 내가 요즘 무슨 일을 하면서 사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억을 더듬어 며칠 전에 있었던 일과 그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러나 이내 조금은 씁쓸하고 조금은 뻔뻔하게 침묵의 심부(深部)와도 같은 잠속으로 스며들었다.
      다음날 아침, 얼굴에 웃음을 번졌다. 내 인생이 만족스러웠다. 아주 이른 시각이었다. 천천히 옷을 입고 정원 위로 설치된 복도로 나왔다. 이쪽에서도 키가 큰 잡초와 빽빽하게 들어찬 나무가 보였다. 노인과 딸이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바로 내 발밑 벤치에 앉아 있었던 것이다. 단번에 그녀의 목소리를 알아차렸다.
      “지금 우르술라는 무척이나 괴로워하고 있어요. 남편을 사랑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더 사랑하고 있어요.”
      노인이 물었다.
      “그런데도 이혼을 할 수가 없다는 게냐?”
      “예, 우르술라는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은 남편을 사랑해서 다른 사람하고는 살기 싫어하거든요.”
      그러자 노인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자식들에게 아버지의 정부가 한둘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게 어떨까?”
      딸은 화를 내며 벤치에서 일어났다.
      “아버지는 항상 그런 식이에요. 언제쯤이나 우르술라를 이해하실지 모르겠네요. 우르술라는 그런 짓을 못해요.”
      나는 그 얘기를 듣고 무척이나 궁금했다. 난쟁이 이름은 우르술라가 아니었다. 타마린다라고 불렀다. 노인은 딸과 단 둘이 산다고 말했다. 그런데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어제 저녁 소식을 들었을까? 그녀는 화가 나서 식당으로 들어갔다가 잠시 후 하얀 레이스가 달린 주황색 우산을 들고 정원에 나타났다. 점심때에도 식탁에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노인과 함께 식사와 포도주를 조금 든 후에 책을 사려고 집을 나섰다. 잡초에 파묻힌 그 집에서 양껏 저녁을 먹고 나면 무료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집을 나서자 나보다 먼저 발코니 앞을 지나가는 사람이 보였다. 다리를 저는 늙은 흑인이었다. 멕시코 모자처럼 챙이 넓은 초록색 모자를 쓰고 있었다.
      초록색 발코니 유리창에 붙어서 밖을 내다보는 사람이 보였다. 그날 저녁 식탁에 안자마자 나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녀는 시를 읊지 않았다
      노인과 나는 양껏 먹은 다음이라 소화도 시킬 겸 폭소를 터뜨렸다. 잠시 침묵의 시간이 찾아왔다. 그때 그녀가 말했다.
      “오늘 저녁 음악을 듣고 싶습니다. 먼저 방에 올라가서 촛불을 켜놓겠어요. 촛불을 켠 지도 무척 오래됐죠. 피아노는 어머니가 연주를 하겠거니 생각할 거예요.”
      노인도 나도 말 한 마디 하지 않았다. 잠시 후 타마린다가 다가와 아가씨가 기다린다고 전했다.
      첫 소절을 연주했을 때 침묵은 마치 앞발을 쳐든 육중한 맹수 같았다. 첫 소절에 이어지는 음들은 너울거리는 촛불처럼 움직였다. 또 다시 한발을 내딛듯이 다른 소절을 연주했다. 그러나 조금 후, 피아노 줄이 끊어졌다. 그녀는 비명을 내질렀다. 노인도 나도 멈칫했다. 노인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딸에게 다가가서 피아노 줄이 너무 낡은 탓이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달랬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얼굴을 가린 채, 아니라고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때까지 피아노 줄이 터진 적은 한번도 없었다. 실례한다는 인사를 남기고 내 방으로 돌아왔다. 복도를 지날 때는 그림자라도 밟을까봐 두려웠다.
      다음날 아침 노인과 딸이 만나는 정원 벤치로 다가갔다. 조금 늦었지만 그래도 딸의 얘기는 들을 수 있었다.
      “우르술라가 사랑하는 사람은 넓은 챙이 달린 녹색 모자를 쓴 사람이에요.”
      나는 그 사람이 전날 오후에 만난 늙은 절름발이 흑인일 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또 그 사람이 어제 저녁에 그런 소식을 전해주었다고 생각할 수도 없었다.
      정오에 다시 노인과 단 둘이서 식사를 했다. 이 기회를 이용해서 노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정원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매우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오늘 두 분이 우르술라 얘기를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일부러 들으려고 한 것은 아닙니다.”
      노인은 식사를 하다말고 큰 소리로 되물었다.
      “들으셨어요?”
      잘 하면 내막을 알 수 있는 호기라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대답했다.
      “예, 다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우르술라가 늙은 절름발이 흑인을 좋게 생각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어제 그 사람이 챙이 넓은 초록색 모자를 쓰고 지나가는 것을 보았답니다.”
      “아, 선생님이 오해를 하셨습니다. 딸아이는 어릴 때부터 나를 붙잡고 이야기를 했답니다. 그 애가 창조한 인물들의 삶에 참견하도록 요구했죠. 그리고 그 인물들의 삶을 따라왔습니다. 마치 그 인물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듯이, 그들의 삶에 대한 정보를 얻기라도 한 듯이 말입니다. 인물들에게는 발코니에서 본 사람들의 행동이나 의상을 부여했습니다. 어제 초록색 모자를 쓴 남자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오늘 그 사람 이미지를 인물에 덧씌운 것입니다. 내가 그런 놀음에 굼떠서 화를 내죠. 선생님이 도와주시겠습니까? 저는…….”
나는 노인의 말을 가로챘다.
      “그럴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내 상상력으로는 이야기만 망칠 것입니다.”
      밤에도 그녀는 식탁에 나타나지 않았다. 노인과 나는 밤늦게까지 먹고 마시고 이야기했다.
      잠자리에 들었을 때 나무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가구에서 나는 소리는 아니었다. 누군가 계단을 올라오고 있었다. 잠시 후, 방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냐고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였다.
      “저예요. 선생님하고 얘기를 나누고 싶어서 왔어요.”
      나는 불을 켜고 문틈으로 내다보았다. 그녀가 말했다.
      “문 뒤에 숨어도 소용없어요. 벗은 모습이 저쪽 거울에 훤히 비치네요.”
      나는 급히 방문을 닫고, 기다리라고 말했다. 이제 들어와도 된다고 말하자 그녀는 방문을 열었다. 그녀는 방안에 있는 다른 문 쪽으로 갔다. 내가 한번도 열어본 적이 없는 문이었다. 그녀는 아주 손쉽게 문을 열었다. 거기에 방이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 그녀는 어두컴컴한 방안으로 들어가서 의자를 꺼내와 침대 곁에 놓았다. 그리고 들고 온 파란 상자를 열어 시작 노트를 꺼냈다. 그녀가 시를 낭송하는 동안 몰려오는 졸음을 쫓느라고 무척이나 힘들었다. 눈을 뜨려고 했는데 눈까풀이 너무 무거웠다. 가끔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려봤다. 꼭 임종하는 사람 같았을 것이다. 갑자기 그녀가 피아노 현이 끊어질 때처럼 비명을 질렀다. 방 한 가운데 커다란 거미가 있었다. 거미는 기어가지 않고 뛰려는 듯이 털북숭이 다리를 떨고 있었다. 신발을 던졌으나 맞추지는 못했다. 내가 일어나자, 그녀는 거미가 뛸지도 모르니 다가가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다. 나는 등불을 들고 벽에 붙어서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비누를 던지고, 비누 갑 뚜껑을 던지고, 칫솔을 던졌다. 비누 갑으로 겨우 거미를 맞췄다. 다리를 움츠린 거미에서 거무튀튀한 진액이 흘러나왔다. 그녀는 노인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일렀다. 그녀가 밤늦게까지 일하거나 독서하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이다. 그녀가 가고 난 다음에 신발 뒤꿈치로 거미를 으깨버렸다. 불을 켜놓고 자리에 누웠다. 막 잠이 들려는 순간 발가락이 꼼지락거렸다. 거미라고 생각한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다음 날 아침 노인이 찾아와서 거미 때문에 죄송하다고 말했다. 딸이 다 이야기했다는 것이다. 나는 별일 아니라고 말하고, 화제를 돌리기 위해 인근 지역에서 연주회가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노인은 그 집을 나가려는 핑계라고 생각했다. 어쩔 수 없이 연주회를 마치면 다시 돌아오겠다고 약속했다.
      그 집을 떠날 때 그녀의 손에 입을 맞추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나는 어쩔 줄을 몰랐다. 노인과 포옹하는데, 갑자기 노인은 귓불 근처에 입을 맞추었다.
      연주회는 열지 못했다. 그런데 며칠 뒤 노인이 전화를 했다. 안부 인사를 건네고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이 꼭 오셔야 합니다.”
      “급한 일이라도 생겼습니까?”
      “참으로 불행한 일이라고 해야겠죠.”
      “따님 일인가요?”
      “아닙니다.”
      “그러면, 타마린다?”
      “아뇨. 지금 말할 수는 없습니다. 연주회를 연기하고 4시 기차로 오십시오. 테아트로 카페에서 만납시다.”
      “따님은 무사하죠?”
      “침대에 누워 있습니다. 아픈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일어나지도 않으려 하고, 햇빛을 보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조명 아래서만 살려고 하고, 양산을 모두 접으라고 했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테아트로 카페는 무척 번잡했다. 우리는 길 건너편으로 자리를 옮겼다. 노인은 기운이 없었다. 그러나 내 말에 금방 희망을 가졌다. 종업원이 짙은 음료가 담긴 작은 잔을 가져왔다. 노인이 말했다.
      “그제 비바람이 몰아쳤습니다. 오후였는데, 우리는 식당에 있었습니다. 갑자기 쿵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누가 들어도 천둥소리는 아니었습니다. 딸아이가 제방으로 달려가기에 저도 뒤따라갔습니다. 내가 방에 들어가 보니 딸아이는 발코니로 나가는 문을 열어놓았더군요. 그런데 하늘과 번갯불만이 보였습니다. 딸아이는 손으로 얼굴을 가렸습니다. 감쪽같이 사라진 것입니다.
      “그러면 번갯불 때문에 아픈 것이군요?”
      “아니죠. 아직도 내 말을 모르시겠어요?”
      “무슨 일인데요?”
      “발코니가 없어진 것입니다. 무너진 거죠. 사라진 것은 번갯불이 아니라 발코니란 말입니다.”
      “아니, 발코니가 어떻게…….”
      차라리 입을 다무는 게 나았다. 노인은 나를 철썩 같이 믿었다. 그리고 딸을 보더라도 발코니의 ‘발’자도 꺼내지 말라고 단단히 일렀다. 나는 함께 지내면서 먹고 마시던 일을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를 만나면 무언가 떠오를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양산을 치운 복도는 썰렁했다.
      그날 저녁은 많이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다. 노인을 따라서 그녀 방으로 갔다. 이내 노인은 방에서 나갔다. 그녀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그러나 노인이 나가자마자 발코니로 나가는 문을 바라보며 말했다.
      “무슨 일인지 아시겠죠?”
      “아가씨, 무너진 발코니는…….”
      “무너진 게 아니라 스스로 뛰어내린 것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나만이 발코니를 사랑한 게 아닙니다. 발코니도 나를 사랑한 게 틀림없어요. 그걸 나에게 증명한 거죠.”
      나는 고개를 숙였다. 마음에 준비도 안 되었는데 책임져야 할 일에 휘말렸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나에게 마음을 쏟기 시작했던 것이다. 나는 그녀의 마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또 그녀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도 몰랐다.
      그녀는 말을 잇고 있었다.
      “모든 게 내 잘못입니다. 내가 밤중에 선생님 방으로 찾아가는 것을 보고 질투를 한 거죠?”
      “누가요?”
      “누군 누구에요. 발코니지.”
      “그런데 아가씨는 그 일에 너무 집착하는 것 같습니다. 발코니는 너무 오래됐습니다. 자기 무게를 이기지 못해서 무너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녀는 내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그날 밤 나는 그가 협박하고 있다고 눈치 챘어요.”
      “하지만,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죠?”
      “나에게 위협을 가한 일을 선생님은 기억 못하세요? 털북숭이 발을 들고 나를 노려보던…….”
      “아, 그래요. 거미였죠.”
      “발코니나 할 수 있는 일이랍니다.”
      그녀는 눈을 떴다. 베개를 한쪽으로 치우고 잠옷 바람으로 침대에서 내려와 발코니로 나가는 문 쪽으로 걸어갔다. 허공으로 몸을 내던질 것이라고 짐작한 나는 그녀를 붙잡으려고 했다. 그러나 그녀가 잠옷 차림이어서 망설였다. 그러나 그녀는 문 옆에 놓인 탁자를 향하고 있었다. 얼핏 보니 탁자 위에는 검은색 고무 표지의 시작 노트가 놓여있었다.
      그녀는 의자에 앉아 노트를 펼치고 시를 읽었다.
      “발코니의 미망인…….”◇



작가소개: 에르난데스, 펠리스베르토(Hernández, Felisberto, 1902-1964)

      우루과이 몬테비데오 태생의 피아니스트이자 환상문학 작가. 젊었을 때는 피아니스트로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를 순회 공연하는 한편, 문학창작에도 힘써 3권의 단편집을 출판하였다. 그러나 1940년 이후, 에르난데스는 피아니스트의 길을 접고 전업 작가로 나섰다.
      그의 작품세계는 「발코니」에서 보듯이, 무생물도 생명력을 지닐 수 있다는 애니미즘적인 현실관에 뿌리를 두고 있다. 에르난데스에 따르면, 현실은 우리의 외부에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생각 속에 존재한다. 따라서 등장인물의 생각(주로, 과거의 기억)에 대한 유사 심리학적 탐구는 음악적 요소와 더불어 작품의 향취를 드높이는 요소이다.
      에르난데스는 생전에는 그렇게 관심을 끌지 못한 작가이다. 독자들이 중남미 환상문학에 대해 관심을 갖기 전에 생을 마감한 탓인데, 사후 후안 카를로스 오네티, 훌리오 코르타사르, 이탈로 칼비노 등이 그이 독특한 작품세계를 재평가함으로써 상대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단편집 『아무도 등불을 켜지 않았다』(Nadie encendía las lámparas, 1947), 『침수된 집』(La casa inundada, 1960)과 중편 『수국(水菊)』 (Las hortensias, 1949), 그리고 장편 『클레멘테 콜링의 시절』(Por los tiempos de Clemente Colling, 1942)과 『잃어버린 말(馬)』(El caballo perdido, 1943)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