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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투아나의 전설 / 아스투리아스 2003-10-22 /   

타투아나의 전설

미겔 앙헬 아스투리아스 / 박병규 옮김

타투아나는 카사마타(Casa-Mata) 주변을 배회하고...



     아몬드 선생의 수염은 분홍색이다. 예전에는 사제였다. 그 차림새가 얼마나 풍요로웠는지, 백인들은 황금이라고 여긴 나머지 만져볼 정도였다. 선생은 무슨 병이든지 치료할 수 있는 여러 약초와 흑요석―말하는 돌[역주. 마야인들은 흑요석에 반사되는 빛에서 신의 뜻을 읽었다. ‘말하는 돌’이란 마야인의 표현 방식으로 신의 예언을 읽는다는 뜻이다.]―의 어휘를 알고 있으며, 별자리를 기록한 마야 문자도 읽을 줄 안다.

아몬드 꽃     아몬드 선생은 어느 날 아침 숲 속에 나타난 나무이다. 아무도 아몬드 씨앗을 뿌리지 않았으므로 마치 귀신이 옮겨놓은 것 같았다. ‘걸어다니는 나무’[역주. 마야 원주민의 어법으로 나무가 하늘을 향해, 구름을 향해 성장한다는 뜻이다.]라고나 할까... 선생은 여러 해 동안에 겪은 일을 들려준다. 모든 나무들처럼 수많은 달(月)을 보았다. ‘풍요의 땅’[역주. 마야인들이 떠나온 원초적 고향 툴란]을 떠나 이곳으로 왔을 때는 이미 늙은 몸이었다.

     옛날 ‘부엉이’ 달이 찼을 때, 선생은 길에게 영혼을 나누어주었다. 길은 모두 네 개였다. 네 길은 각자 하늘 끝을 항해 떠났다. 검은색 하늘 끝은 주술사의 밤이고, 녹색 하늘 끝은 봄철 폭풍우이고, 붉은색 하늘 끝은 구아카마요 앵무새, 즉 열대의 환희이고, 하얀색 하늘 끝은 약속의 땅이었다. 길은 모두 네 개였다.

    [역주. 부엉이 달: 고대 마야인은 놀라울 정도로 정확한 태양력을 사용하였다. 태양력에 따르면, 1달은 20일이며, 1년은 13개월(360일)이다. 여기에 부가적으로 5일을 더하였으니 1년은 365일다. 부엉이 달은 10월 18일부터 11월 14일까지인데, 부엉이는 지하세계에 거주하는 신의 전령 역할을 하는 동물이다. 한편으로 마야인은 태양력과 더불어 20진법을 응용한 1년 400일 주기의 예언용 달력도 사용하였다.]

    [역주. 아스투리아스 작품에서 색깔은 방위를 상징한다.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옥수수 인간』을 보면, 노란색은 남쪽으로 죽음과 불운을 상징하고, 검은색은 서쪽으로 지하세계를 나타내며, 붉은색은 동쪽으로 비의 신을 의미하며, 하얀색은 북쪽으로 새벽, 여명, 문명을 표현한다. 이 작품에서는 노란색 대신에 녹색이 등장하는데, 이는 아스투리아스가 기존의 전설에 자신의 상상력을 투여 자유롭게 재구성하였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 길아, 길아!
     흰 비둘기가 하얀 길을 불렀다. 하얀 길은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 흰 비둘기는 선생의 영혼으로 꾸벅꾸벅 조는 병을 치료하고 싶었던 것이다. 지금도 비둘기와 어린아이들은 이런 병에 시달린다.

    - 길아, 길아!
    붉은 심장이 붉은 길을 불렀다. 붉은 길은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 붉은 심장은 붉은 길이 한눈 파는 사이에 선생의 영혼을 훔치고 싶었던 것이다. 지금도 심장은 도둑처럼 잃어버린 세월을 돌려주지 않는다.

    - 길아, 길아!
    푸른 포도나무 넝쿨이 푸른 길을 불렀다. 푸른 길은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 푸른 포도나무 넝쿨은 선생의 영혼으로 포도나무 잎과 그늘에 진 빚을 청산하고 싶었던 것이다.

    네 길이 길을 떠난 지 몇 달이나 지났을까?
    네 길이 길을 떠난 지 몇 달이나 지났을까?

    가장 빠른 길은 검은 길이었다. 아무도 검은 길에게 말을 건네지 않았다. 검은 길은 도시에 머물면서 광장과 시장통을 둘러보았다. 잠시 쉬는 동안 선생의 영혼을 보석 상인에게 무(無)값으로 넘겨주었다.

    제 철을 만난 흰 고양이들이 여기저기로 뛰어다녔다. 장미원을 망치면 안 돼! 구름은 하늘에 널어놓은 빨래 같았다.

    선생은 검은 길이 한 일을 알고 시냇물에서 식물 형상을 벗었다. 달은 아몬드 꽃처럼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다시 인간 모습을 되찾은 선생은 그 도시로 향했다.

    한나절을 걸은 끝에 계곡에 도착했다. 오후의 기색이 역력하게 드러나는 시간이고, 가축이 목동들과 얘기를 나누면서 돌아오는 때였다. 목동들은 분홍색 수염과 녹색 장옷 차림의 선생을 보고 유령이라고 여겼는지, 묻는 말에 대답 대신 외마디 소리를 내질렀다.

    선생은 도시 서쪽으로 향했다. 남자들과 여자들이 우물가에 모여있었다. 물은 항아리를 채우면서 키스 소리를 냈다. 선생은 시장통 그늘을 따라갔다. 그리고 검은 길이 보석 상인에게 무값으로 영혼을 넘겨준 곳에 이르렀다. 상인은 황금 자물쇠가 달린 유리 상자 안에 영혼을 보관하고 있었다.

    선생은 지체없이 한쪽 구석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상인에게 다가갔다. 선생은 진주 백 아로바[역주. 1아로바는 약 11.5kg]를 주겠으니 영혼을 돌려달라고 했다.

    상인은 미친 사람이라 여기고 웃었다. 진주 백 아로바라니? 아니지, 선생의 보물은 무값이었는데!

    선생은 값을 올렸다. 상인이 거절할 때마다 값이 올라갔다. 옥수수 만한 에메랄드 수백 알무드[역주. 용적과 면적의 단위. 1알무드는 약 437㎡]를 주겠다고 했다. 호수로 하나 가득 주겠다고 했다.

    상인은 미친 사람이라 여기고 웃었다. 에메랄드 호수라니? 아니지, 선생의 보물은 무값이었는데!

    선생은 사슴 눈(眼)으로 만든 부적을 주겠다고 했다.[역주. 마야인에게 사슴은 창조자의 상징이다.] 비를 오게 하고, 폭풍우를 잠재우고, 담배를 마리화나로 만드는 부적이었다.

    상인은 거절했다.

    이번에는 에메랄드 호수 한 가운데 그림 같은 궁전을 지을만한 보석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상인은 거절했다. 선생의 보물은 무값이었다. 또 무슨 얘기를 했을까? 상인은 선생의 영혼으로 노예 시장에서 아름다운 여자 노예를 사고 싶다고 했다.

    선생은 영혼을 되찾고 싶은 욕심에 그토록 많은 보물을 주겠다고 했는데도 소용이 없었다. 지금도 상인은 가슴이 없다.

    한 줄기 담배 연기가 현실과 꿈을 갈라놓고, 검은 고양이와 흰 고양이를 갈라놓으며, 상인과 이상한 구매자를 갈라놓았다. 선생은 가게문을 나서면서 문지방에 신발을 털었다. 지금도 먼지는 저주받은 존재이다.


    그로부터 1년 4백일이 지난 후, 상인은 산을 넘고 있었다. 먼 나라에서 선생의 영혼으로 구입한 여자 노예와 히아신스에서 꿀을 따는 새와 말을 탄 일행 30명을 데리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상인은 말을 매고, 여자 노예에게 말했다.
    “너는 도시 생활이 무언지 모를 거야. 네 집은 궁전 같고, 네 말 한 마디에 하녀들이 복종한단다. 물론 나에게도 무슨 일을 부탁할 수 있지.”

    상인은 계속 이야기했다. 햇볕이 얼굴을 반쯤 비추고 있었다.
    “전부 네 것이다. 너는 보물이고, 나는 무값의 보물을 가진 상인이야! 너는 에메랄드 호수하고도 바꾸지 않은 영혼만큼 가치가 있으니... 우리 해먹에서 함께 석양을 볼 것이며, 아침을 맞이할 것이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저 내 운명을 아는 늙은 노파의 이야기나 들으면서 살 것이다. 내 운명은 거대한 손의 손가락에 달려있다고 했다. 네가 원한다면 네 운명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여자 노예는 경치를 둘러보았다. 경치가 멀어질수록 갖가지 색깔은 청색으로 녹아들었고, 청색 또한 갈수록 옅어졌다. 길옆에 우거진 나무는 복잡한 우이필 장식무늬 같았다. 고요한 하늘에서 새들이 잠자코 날고 있었다. 날갯짓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말없는 화강암을 오르는 짐승들이 씨근대는 소리는 사람들 숨소리 같았다.


우이필

▶ 그림 설명: 우이필(huipil). 마야 여자들이 입는 옷으로 기본 문양은 마름모꼴이다.


    여자 노예는 옷을 벗고 있었다. 검은 머리단이 젖가슴에서 다리까지 뱀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상인도 황금색으로 입고 산양 털 망토를 어깨에 걸쳤다. 학질 때문에 추웠고, 사랑 때문에 몸이 떨렸기 때문이다. 말을 탄 일꾼들이 꿈속의 형체들처럼 망막에 들어왔다.

    갑자기 굵은 빗방울이 길 위로 떨어졌다. 저 멀리 산비탈에서는 폭풍우에 겁을 먹은 목동들이 가축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말을 탄 상인 일행은 피신처를 찾아 발길을 재촉했다. 그러나 시간이 없었다. 뒤이어 바람이 구름을 채근하고 있었다. 밀림을 헤치고 계곡에 이른 바람에 비에 젖은 망토는 찢어질듯이 펄럭거렸다. 번갯불에 풍경이 환하게 밝아졌다. 폭풍우는 이내 정신나간 사진사처럼 여기저기서 번쩍거렸다.

    상인 일행은 유령처럼 도망치고 있었다. 고삐는 끊어지고, 발은 바쁘게 움직이고, 갈기는 바람에 날리고, 귀는 떨어져 나갈 것 같고, 말은 서로 부딪히고, 낙마를 한 상인은 나무 아래로 굴러갔다. 그 순간 번개를 맞은 나무가 쓰러졌고, 상인 또한 나무 뿌리에 휩쓸려 벼랑 아래로 떨어졌다.

    한편, 선생은 미친 사람처럼 도시를 배회하고 있었다. 아이들을 놀래주고, 쓰레기통을 뒤지고, 당나귀나 황소나 주인 없는 개에게 말을 붙였다. 선생이 보기에는 서글픈 눈을 가진 짐승이나 사람이나 마찬가지였다.

    “네 길이 길을 떠난 지 몇 달이나 지났습니까?”
    선생은 이집 저집 다니며 사람들에게 물었다. 사람들은 녹색 튜닉과 분홍색 수염을 기른 유령 같은 선생을 이상하게 여겨 대꾸도 하지 않고 문을 닫아버렸다.

     선생은 만나는 사람마다 묻고 다녔다. 세월이 한참 흐른 후, 보석 상인의 가게 앞에서 여자 노예에게 물었다. 폭풍우 속에서 유일하게 목숨을 건진 사람이었다.

     “네 길이 길을 떠난 지 몇 달이나 지났습니까?”

     흰옷을 입은 하루(日) 위로 태양이 고개를 내밀었다. 금은으로 장식한 가게문 앞에 서있는 선생의 등이 눈부셨다. 에메랄드 호수로도 사지 못한 영혼 한 조각과 맞먹는 검은 얼굴도 눈부셨다.

     “네 길이 길을 떠난 지 몇 달이나 지났습니까?”

     여자 노예의 입술 사이에 대답이 웅크리고 있었다. 치아만큼이나 단단한 답변이었다. 선생은 여자 노예의 고집 앞에서 입을 다물었다. ‘부엉이 낚시꾼’ 달이 찼다.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눈으로 상대방 얼굴을 씻어주고 있었다. 마치 한동안 헤어진 연인들이 다시 만난 것 같았다.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과 고함소리가 들리고, 현장은 난장판이 되었다. 하느님과 국왕의 이름으로 두 사람은 체포되었다. 선생의 죄목은 주술사이고, 여자 노예의 죄목은 마녀였다. 두 사람은 십자가와 칼에 둘러싸여 수감되었다. 선생은 분홍색 수염과 녹색 튜닉 차림이었다. 여자 노예의 살결은 눈이 부셨다. 피부는 황금으로 만든 것처럼 탄탄했다.


     일곱 달 후, 두 사람은 대광장에서 화형에 처한다는 판결을 받았다. 처형식 전날, 선생은 여자 노예에게 다가갔다. 손톱으로 여자 노예 팔에 조그만 배를 문신했다.

     “타투아나, 이 문신이면 앞으로 어떤 위험이든지 피할 수가 있다. 오늘처럼 말이다. 내 생각이 자유롭듯이 네 또한 그렇게 자유롭기를 바란다. 성벽이나 땅바닥이나 허공 같은 곳에 이 조그만 배를 그리고 눈을 감아라. 그리고 배에 올라타고 떠나면 된다... 어서 떠나라. 내 생각은 파를 썰어넣어 만든 진흙 우상보다 훨씬 강력하다. 내 생각은 수키나이[역주. 붉은 색과 흰색 꽃이 피는 관목] 꿀보다 더 달콤하다. 내 생각은 보이지 않게 만드는 힘이 있단다.”

     타투아나는 지체없이 선생이 시키는 대로했다. 배를 그린 다음 눈을 감고 배 안으로 들어갔다. 배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감방과 죽음을 벗어날 수가 있었다.

     다음날 아침, 그러니까 처형식 날 아침, 간수들은 감방에서 마른 나뭇가지를 발견했다. 나뭇가지에는 분홍색 아몬드 꽃 두세 송이가 달려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