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작품번역 > 단편소설
 
 
  아스테리온의 집 / 보르헤스 2003-10-22 /   

아스테리온의 집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 현중문 옮김


그리고 여왕은 아들을 낳았는데, 아스테리온이라 불렀다.
― 아폴로도로스, 『도서관』, III권 1장



     내가 오만하다거나, 사람을 싫어한다거나, 혹은 실성했다고 수군거리는 사람들이 있다. 모두 터무니없는 비난이다(때가 되면 응분의 조치를 취할 것이다). 내가 집밖으로 나가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밤이나 낮이나, 사람들은 물론 동물들에게도 문이(무한히 많다)[원문의 각주: 원문은 ‘열 넷’이라고 적혀 있다. 그러나 아스테리온 입장에서 이 숫자는 ‘무한’에 해당한다고 추론할 수 있는 근거는 아주 많다.] 열려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들어오고 싶으면 들어오라. 이곳에서 여성적인 화려함이나 궁전처럼 휘황찬란한 물건은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그 대신 적막과 고독을 발견할 것이다. 또한 지상에서는 둘도 없는 집을 발견할 것이다(이집트에 이와 유사한 집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것은 거짓말이다). 집 안에 ‘단 하나의 가구’도 없다는 것은 나를 비방하는 자들조차 인정하는 사실이다. 또 하나 웃기는 거짓말은 나 아스테리온이 수인(囚人)이라는 것이다. 닫힌 문이 하나도 없다고 되풀이 말할 필요가 있을까? 자물쇠도 없다고 덧붙일 필요가 있을까? 게다가 어느 날 오후, 나는 길거리로 나간 적도 있다. 밤이 되기 전에 돌아온 까닭은 핏기가 없고, 손바닥처럼 밋밋한 평민들의 얼굴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이미 해는 저물었다. 그러나 한 아이의 애절한 울음과 신도들의 거친 기도로 미루어보건대 모두들 내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일장 연설을 하거나, 도망치거나, 무릎을 꿇었다. 어떤 사람들은 ‘쌍도끼 신전’ 기단 위로 기어올라가고, 어떤 사람들은 돌을 모으고 있었다. 바다 밑으로 숨어버린 사람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어머니가 여왕이라는 게 공연한 일은 아니었다. 나는 평민들과 같을 수 없다. 겸손하기 때문에 그들과 어울리고 싶지만.

사실 나는 유일무이한 존재다. 그리고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전수할 수 있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철학자처럼 나도 글이라는 기예를 통해서는 아무 것도 전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내 머리는 오로지 큰 것만을 생각할 뿐, 성가시고 자질구레한 사항은 담아두지 못한다. 그래서 이 글자와 저 글자의 차이점을 눈여겨본 적이 없다. 고결한 조바심 때문에 글을 배우지 못했는데, 가끔 후회가 될 때도 있다. 밤과 낮이 너무 길기 때문이다.

물론, 소일거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나는 적을 향해 돌진하는 양처럼 석조 회랑을 내닫다가 현기증을 느껴 바닥에 꼬꾸라지기도 한다. 저수조 뒤나 복도 모퉁이에 웅크리고 숨거나, 술래잡기를 하기도 한다. 옥상도 있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뛰어내리며 노는 곳이다. 어느 때라도 잠을 자는 놀이를 할 수도 있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눈을 감고 있는 놀이다. (이따금 정말로 잠을 자기도 한다. 눈을 떠보면 하루의 색깔이 바뀌었을 때도 가끔 있다) 그 많은 놀이 가운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놀이는 다른 아스테리온이 되는 것이다. 그가 나를 찾아와서 집 구경을 시켜주고 있다고 상상한다. 나는 정중하게 얘기한다. “이제 우리 지나왔던 사거리로 돌아갑시다.” “이제 우리 다른 안마당으로 들어갑시다.” “홈통이 마음에 드실 거라고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이제 모래가 가득 담긴 항아리를 보시게 될 겁니다.” “곧 지하실이 어떻게 두 갈래 갈라지는지 아시게 될 겁니다.” 가끔 나는 실수를 하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우리 둘은 마주보고 껄껄 웃는다.

나는 이런 놀이만 상상한 게 아니다. 집에 대해서도 명상했다. 집은 모든 부분은 여러 번 반복되기 때문에 어떤 곳은 곧 다른 곳이다. 하나의 저수조, 하나의 안마당, 하나의 가축용 물통, 하나의 구유통이란 없다. 구유통도, 가축용 물통도, 안마당도, 저수조도 열네 개[무한]이다. 이 집의 크기는 세계의 크기만 하다. 다시 말해서. 이 집이 세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먼지로 뒤덮인 회색 석조 회랑과 저수조가 있는 안마당을 지치도록 돌아다닌 끝에 길거리로 나왔고, 쌍도끼 신전과 바다를 보았다. 이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밤의 비전을 통해 신전과 바다 또한 열네 개[무한]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모든 것은 여러 번, 즉 열네 번 반복된다. 그러나 단 한 번인 것처럼 보이는 게 세상에 둘 있다. 위로는 복잡한 태양이요, 아래로는 아스테리온이다. 어쩌면 내가 별과 태양과 그 거대한 집을 창조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9년마다 내가 악에서 해방시켜주기를 바라며 아홉 사람이 집으로 들어온다. 석조 회랑 안쪽에서 목소리나 발소리가 들리면 기쁜 마음으로 사람들을 찾으러 달려간다. 의식은 몇 분 안에 끝난다. 내 손에 피를 묻히지 않아도 사람들은 차례차례 쓰러진다. 사람들은 쓰러진 그 자리에 있다. 그리고 시체 덕분에 이 회랑과 저 회랑을 구별할 수 있다. 나는 그 사람들이 누군지 모른다. 아는 것이라곤, 그들 중 한 사람이 임종을 하면서 언젠가 나를 구원해 줄 사람이 당도하리라고 예언했다는 것이다. 그때부터는 고독이 고통스럽지 않다. 구원자가 살아 있고, 결국에는 먼지를 밟고 일어날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내가 세상 모든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구원자의 발소리도 들을 수 있으련만. 제발 복도도 한결 적고, 문도 한결 적은 곳으로 나를 데려가 주기를 바란다. "구원자는 어떻게 생겼을까? 황소일까, 사람일까? 인간의 얼굴을 가진 황소일까? 아니면, 나 같이 생겼을까?"




아침 햇살이 청동검에서 반짝거렸다. 이미 피의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테세우스가 말했다.
“아리아드네, 믿을 수 있겠어? 그 괴물은 방어도 안 했어.”◇

마리아 모스케라 이스트만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