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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리강습 / 카스테야노스 2003-10-22 / 5808   

요리강습

로사리오 카스테야노스(Rosario Castellanos) / 송병선 옮김



     부엌은 하얗게 빛나고 있다. 사용하면서 더럽힐 것을 생각하니 아쉬운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제 앉아서 부엌을 응시하고 설명해야 하며, 눈을 감고 그것을 떠올려야만 할 시간이다. 깨끗한 부엌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런 깔끔함은 우리를 오싹하게 만드는 정신병원처럼 과도하게 청결한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혹시 이런 섬뜻한 분위기는 소독 냄새와 바쁘게 걷는 간호원들의 조용한 발자국 소리 때문에 생기는 건 아닐까? 사실 간호원들의 발자국이야말로 환자가 무슨 병에 걸렸는지 그리고 곧 죽게 될 것인지를 알게 해 주는 숨겨진 존재들이다. 하지만 그런 것은 나와 전혀 상관없다. 내가 있는 장소는 바로 여기이다. 인류가 시작되었을 때부터 여자는 이곳에 있어 왔다. 독일 속담에는 여자란 퀴체(부엌), 킨데르(아이), 키르체(기도)와 동의어란 말이 있다. 예전에 나는 강의실과 거리, 그리고 사무실과 카페를 방황했다. 많은 지식과 기술을 배우려고 시간을 썼지만, 이제는 다른 지식과 기술을 배우기 위해 예전의 것은 모두 잊어야만 한다. 가령 나는 어떤 메뉴를 선택해야 할 것인가 생각해야 한다. 어떻게 이토록 과중한 일을 사회나 인류 역사의 도움 없이 수행할 수 있을까? 내 키에 맞게 특별히 제작된 선반에는 내 정신의 수호신들이 일직선으로 정리되어 있다. 그것은 바로 극찬 받는 요리사들의 책이다. 그 책 속에서 요리사들은 요리법을 통해 도저히 해결될 수 없는 모순들을 서로 조화시킨다. 즉, 많이 먹으면서도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는 법, 보기에 화려한 음식을 경제적으로 만드는 법, 맛좋은 음식을 빠르게 만드는 법 등이다. 그들의 이런 배합은 끝이 없다. 경제적으로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는 법, 보기에 화려한 요리를 빠르게 만드는 법, 맛좋은 음식을....... 경험 많은 주부여, 있으면서도 없는 어머니의 영감이여, 전통의 목소리여, 슈퍼마켓의 비밀을 마구 떠들어대는 사람들이여, 당신들은 내게 오늘 저녁 요리로 무엇이 좋다고 충고합니까? 나는 아무 요리책이나 펼쳐서 〈돈키호테의 저녁〉이라는 요리법을 읽는다. 아주 문학적이지만 만족스럽지는 않은 제목이다. 왜냐하면 돈키호테는 미식가가 아니라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비록 이 작품을 좀 더 깊이 분석하면, 이런 저런 것들이 나올지 모르지만...... 이 요리법은 다리 밑을 지나는 물보다 이 인물에 더 많은 잉크를 사용하고 있다. 〈얼굴 중심부의 작은 새〉. 이것은 너무나 비교(秘敎)적인 냄새가 풍긴다. 도대체 어떤 얼굴의 중심부란 말인가? 무언가의 얼굴 혹은 누군가의 얼굴에 중심이 있는가? 만일 있다면, 그건 입맛을 돋굴만한 음식은 아닐 것이다. 〈비고스, 루마니아 스타일〉. 이 책의 저자여, 지금 당신은 누구에게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소? 만일 내가 쑥이나 파인애플을 사용한 요리를 잘 알고 있다면, 이런 책을 참고하고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다른 많은 요리들을 알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당신이 현실에 대한 최소한의 판단력이 있다면, 이런 책을 쓰느니 차라리 당신 자신이나 당신 동료들의 누군가라도 요리 전문 용어 사전을 써서 일반 사람도 어려운 요리법을 손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요리책들의 저자는 여자들이 자기들 지식 수준과 똑같다고 생각하면서 요리법을 나열하는데 한정시킨다. 엄숙히 고백하건대, 나는 당신들과 같은 수준이 아닐 뿐만 아니라, 당신들이 다른 여자들과 함께 알고 있는 요리를 해서 칭찬을 받은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솔직히 말해 나는 요리라는 것은 해본 적이 없습니다. 당신들은 그 증상을 주시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멍청이처럼 깨끗하고 무감각한 부엌 안에 멈추어 서서 앞치마를 두릅니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그럴 듯하게 보이기 위해 사용하는 것일 뿐이며, 앞치마를 두르면 속으론 창피하지만 겉으로는 정당하게 어설픈 내 모습을 감출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고기류〉라고 써 있는 냉장고의 냉동실 문을 열고 얼음이 위에 달라붙어 도저히 알아볼 수 없는 고기 팩을 하나 꺼낸다. 따뜻한 물에 얼음을 녹이자, 라벨에 적혀 있는 내용물 표시가 눈에 띈다. 그것이 없었더라면 나는 절대로 그 팩에 담긴 내용물이 무엇인지 몰랐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스테이크용 고기였다. 정말로 멋진 메뉴였다. 그거야말로 간단하면서도 몸에 좋은 음식이다. 하지만 그 요리는 어떤 종류의 모순을 극복하려고 하지도 않고, 또한 어떤 종류의 격언적인 제안도 하지 않기 때문에 내게 별로 흥미를 주지는 않는다. 그런 과도한 논리만이 내 배고픔을 잊게 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냉동실의 차가운 온도로 꽁꽁 얼어붙은 고기의 외양을 보자 배고픔이 사라진다. 그 팩을 뜯자 고기 색깔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마치 피를 흘릴 듯한 붉은 색이다.

     그 붉은 색은 아카풀코의 해변에서 음탕한 놀이를 하며 햇볕에 그을린 뒤, 나와 내 남편의 등에 새겨진 색깔이었다. 그는 〈남자답게 행동할 것〉이라며 즐거운 표정으로 엎드려 누웠다. 그래서 그는 쓰려오는 피부가 그 어느 것에도 스치지 않게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보금자리에만 있는 비둘기처럼 유순한 멕시코 여자였기에, 침대에 누워 콰우테목처럼 고통을 참으며 미소짓고 있었다. 그러자 그는 〈우리 침대는 장미 침대가 아니야〉라고 말하면서 입을 다물고 조용히 내 몸 위로 올라왔다. 나는 하늘을 향해 드러누운 채 내 무게뿐만 아니라 내 위에 엎드린 그의 무게까지도 감당해야만 했다. 그건 사랑을 할 때 취하는 고전적인 자세였다. 그리고 나는 흥분을 못 이겨 즐거운 신음소리를 냈다. 그것 역시 고전적인 신음소리였다. 신화에 나오는 그런 신음소리였던 것이다.

     최고의 순간(적어도 빨갛게 타버린 내 피부에게 있어서)은 그가 잠들었을 때였다. 첫날밤에 입은 나일론 나이트 가운은 내 손가락에서 ―타자기의 자판을 너무나 오래 두드려 무뎌진― 미끄러지듯이 빠져나가 레이스처럼 보이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나는 여자를 더욱 여성적이게 보이게 만드는 단추와 다른 장식들을 깊은 밤의 어둠 속에서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몇 번이고 심사숙고를 한 끝에 결정한 순백의 네글리제는 외설적인 상징이었지만, 이제는 그 의미가 사라지고 없었다. 어느 순간 이 옷은 두 사람의 눈과 방안의 불빛 아래에서 그 의미를 모두 보여주었지만, 이제는 피로에 지친 두 사람의 눈 아래에 헝클어져 있었다.

     눈을 몇 번 깜짝거리고는 다시 눈을 감는다. 나는 다시 생각의 늪으로 도피한다. 광활하게 펼쳐진 거대한 모래사장. 바다밖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넘실거리는 파도 때문에 나는 옴짝달싹도 할 수 없다. 그러자 내가 서 있던 벼랑은 내게 뛰어내려 자살하라고 부추긴다.

     그러나 이건 거짓말이다. 나는 꿈을 꾸고, 또 꿈을 꾸고, 또 다시 꿈을 꾸는 꿈이 아니다. 나는 유리잔 속에 비친 이미지를 반영하지는 않는다. 나는 의식의 먹구름에서 완전히 제거되지는 않고 있다. 비록 내 곁에 있으면서도 내게서 멀리 떨어진 사람이 나를 우습게 여기고 나를 잊으며 폄하하고, 나를 버리고 사랑하지 않을지라도, 나는 끈끈하고 탁하면서 안개가 자욱히 낀 인생을 계속해서 살아갈 것이다.

     나는 이런 의식의 문을 닫고, 옆에 있는 사람을 버리고 없애버릴 수도 있다. 나는...... 소금을 뿌리자 야단스럽게 붉던 고기 색은 어느 정도 가라앉았다. 그러자 이제는 어느 정도 참을 만한 친숙한 존재가 되어 있다. 그건 내가 아무 생각도 없이 수천 번 보아 왔던 고기 덩어리다. 그건 바로 내가 주방문을 빠끔히 열고는 급한 표정으로 요리사를 쳐다보면서......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함께 있던 사람들이 아니었다. 우리의 만남은 우연이었다. 그런데 그건 과연 행복한 우연이었을까? 그런 사실을 확인하기에는 아직 너무 이르다. 우리는 전시회, 강연회, 영화 클럽에서 우연히 만났다. 우리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마주치곤 했다. 그는 전차에서 내게 자리를 양보하곤 했다. 그런데 당시까지 멍하니 바라만 보면서 만나면 당황해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두 사람들에게 기회를 만들어 준 것은 동물원 경비원이었다. 우리는 기린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경비원이 동물원을 닫을 시간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그러자 바보스럽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만 할 질문을 던졌다. 그것이 그 사람인지 나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건 중요한 일이 아니다. 그 질문은 〈당신은 일을 합니까, 아니면 공부합니까?〉였다. 바로 그때 상호의 관심과 선의의 의도가 조화를 이루면서 ‘진지한’ 목적이 표명된 것이었다. 1년 전에 나는 그 사람이 존재하는지조차 몰랐지만, 이제는 그의 정액과 땀으로 축축하게 범벅이 된 허벅지를 드러낸 채 그의 옆에 편히 누워 있다. 나는 그를 깨우지 않은 채 일어나 맨발로 샤워실까지 갈 수 있었다. 그런데 나를 정화하려고 샤워를 하려고 했던 것일까? 나는 그를 역겹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와 함께 합치는 것은 정액을 닦는 것처럼 쉬운 일이지만, 성사(聖事)처럼 끔찍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침대에서 꼼짝하지 않으면서 평온한 것처럼 규칙적으로 호흡을 한다. 그리고는 불면의 세계로 빠져든다. 그것은 내가 간직하고 있는 처녀 시절의 유일한 보석이다. 나는 죽을 때까지 그런 세계를 간직할 생각이다.

     잠시 후추 세례를 받자 고기 덩이는 흰머리가 난 듯이 변해버린다. 나는 고기를 마구 비벼대어 고기 덩이에서 늙은이의 기미를 떨어낸다. 그것은 마치 후추가 두꺼운 고기 표면을 뚫고 들어가 후추향이 배듯이, 나 역시 겉으로 보이는 모습을 떨쳐 버리고 내 안에 본질적인 것을 빼곡하게 스며들게 하려는 노력이었다. 나는 내 옛 이름을 잃어 버렸으며, 아직도 내 것이 아닌 새로운 이름에 적응이 되지 않았다. 호텔 로비에서 어느 종업원이 나를 불렀을 때, 나는 귀머거리처럼 멍하니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내 성(姓)이 바뀌었다는 것에 대한 막연한 불쾌감이었으며, 그것을 인정하는 서곡이었다. 자기 이름을 부르는데 대답도 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그건 급하고 중요한 문제일 수도 있고, 삶이냐 죽음이냐를 따지는 중대한 것일 수도 있다.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으면, 이름을 부른 사람은 맥이 빠져 아무 흔적이나 메시지도 남기지 않고 가 버린다. 그러면 두 사람이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도 모두 사라져 버리는 법이다. 그런데 내 가슴을 이토록 답답하게 하는 것이 고민 때문일까? 아니다. 내 어깨를 누르고 있는 것은 바로 그의 손이었다. 그의 입술은 인자한 듯 하면서도 아이러니컬하게 웃고 있다. 그것은 평소의 그의 미소라기보다는 오히려 마술사나 짓는 듯한 미소이다.

     우리가 바를 향해 걷는 동안 (어깨가 아려온다. 마치 껍질이 벗겨지는 것 같다) 나는 내 어깨 위에 올린 그의 손을 잠자코 받아들였다. 내가 그와 피부를 접촉하거나 충돌하면서 심한 변신을 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당시에는 알지 못했지만 지금은 알고 있다. 나는 느끼지 못했지만 지금은 느끼고 있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 제대로 몰랐지만, 지금은 바로 현재의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

     고기는 그냥 그렇게 놔두어야 할 것 같다. 고기가 녹을 때까지, 그리고 내가 뿌린 향료가 스며들게 될 때까지 말이다. 내가 제대로 판단하지 못해 우리 두 사람이 먹기에는 너무 큰 고기를 산 것 같은 인상이 든다. 나는 나이프로 썰어먹는 게 귀찮아 고기를 즐겨 먹지 않는다. 반면에 그는 심미적 이유를 들어가며 몸매를 지키려고 애를 쓴다. 그러니 이 고기의 대부분이 쓰레기통에 버려질 것은 뻔하다. 그래, 나는 이런 것으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 내 주위를 펄럭거리며 날아다니는 요정중의 하나가 나를 도와줄 것이며, 내가 나머지 고기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설명해 줄 것이다. 하지만 어쨌거나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은 잘못된 방법이다. 결혼 생활을 이렇게 대충대충 시작해서는 안된다. 이런 스테이크처럼 맛없고 하찮은 것으로 시작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갑자기 엄습한다.

     고마워요, 라고 나는 중얼거린다. 그런 동안 나는 냅킨으로 내 입술을 톡톡 두드리며 닦는다. 올리브가 담긴 투명한 컵에도 고맙다고 한다. 그리고 남편에게 재미없고 비생산적인 일과라는 새장을 열어주어 고맙다고 말한다. 나는 요리책의 모든 지시 사항을 따라 할 것이고, 그러면 이내 또 다른 일과라는 새장에 갇힐 것이다. 내가 길고 화려한 웨딩드레스를 입을 기회를 주어서 고마워요, 그리고 오르간 소리를 들으며 감격에 복받쳐 교회 안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준 데 고마워요. 고마워요......

     그런데 이 스테이크가 완성되려면 얼마나 걸릴까? 하지만 나는 이런 것에 너무 신경 쓰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먹기 얼마 전에 프라이팬에 올려놓으면 되니까 말이다. 요리책에 의하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고 적혀 있다. 그런데 도대체 오래 걸리지 않는다는 것은 얼마를 뜻할까? 15분일까? 아니면 10분일까? 5분일까? 물론 이 책은 이런 것을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지 않다. 내가 직감적으로 알아내는 수밖에는 없다. 내가 여성이기 때문에 나는 그런 직감을 지녀야 하지만 나는 그런 것을 갖고 있지 못하다. 내가 갖고 태어나지 않은 그런 감각을 지녀야만, 아마도 고기가 가장 잘 익은 정확한 순간을 알 수 있는 모양이다.

     그럼 당신은? 내게 감사해야 할 것이 하나도 없나요? 당신은 잘난 듯이 엄숙하게 모든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해 냈지요. 아마 당신은 나를 사랑한다는 듯이 보이려고 했지만, 그런 행동은 몹시 불쾌했어요. 바로 내 처녀성을 다룰 때 말이에요. 당신이 내 처녀를 보았을 때, 나는 이미 사라지고 없는 이 지구상의 마지막 공룡처럼 느껴졌어요. 나는 내 자신을 합리화하려고 했어요. 그리고 내가 처녀를 간직한 채 당신에게 온 것은, 정조나 자만 혹은 추함과 같은 생각 때문이 아니라 단지 전통적인 스타일에 매달렸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려고 했어요. 나는 진주에 난 조그만 흠도 참지 못하는 성격이에요. 그러니 신고전주의자 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고, 그런 엄격함은 사랑하는 것과는 양립할 수 없는 것이었지요. 나는 노젓는 뱃사공이나 테니스 선수나 발레리나처럼 민첩하지 못해요. 난 어떤 운동도 제대로 하는 게 없어요. 나는 우리의 신방에서 결혼 의식을 마친 것일 뿐이에요. 그리고 항복의 몸짓과 같은 어색한 내 자세 때문에 내 얼굴이 동상처럼 굳어졌던 거지요.

     그런데 당신은 내가 적극적으로 변하기를 기다리고 있고, 그런 것을 원하고 필요로 하고 있나요? 아니면 당신에게 받치는 이런 성스런 행위에 만족하나요? 그리고 그런 수동성이 내 성격에 부합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가요? 만일 당신 성격이 변덕스럽고 게걸스럽다면, 당신은 아마도 내가 당신의 사랑 모험에 걸림돌이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안심하고 있을 겁니다. 다행히 내 성격상, 내 감정을 북돋울 필요도 없고, 아이들로 내 손발을 묶을 필요도 없으며, 체념이라는 진한 꿀로 내 입을 막아버릴 필요도 없을 거예요. 나는 지금 있는 것처럼 앞으로도 그렇게 있을 거예요. 아주 가만히 말이에요. 당신 몸이 내 몸 위로 떨어질 때면, 나는 다른 사람의 이름과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날짜가 새겨진 비석이 나를 덮어버리고 있다고 생각할 거예요. 당신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신음할 테고, 나는 당신의 귀에 내 이름을 속삭일 거예요. 당신이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 나라는 것을 기억시키기 위해 말이에요.

     그래, 나는 나예요. 그런데 나는 누구일까요? 물론 당신의 아내지요. 이런 직함만으로 나는 과거의 기억에서 현재의 나를 구별하고, 미래의 계획에서 현재의 나를 찾아낼 수 있어요. 나는 당신의 소유권이 명시된 이름을 달고 다니지만, 당신은 나를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어요. 나는 당신을 잡기 위해 그물을 짜는 사람이 아니에요. 또한 신앙심이 투철한 벌레도 아니에요. 나는 당신이 나를 아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뿐이에요. 하지만 그건 모두 거짓이에요.

     이 고기는 질기고 딱딱하다. 그래서 쇠고기 같아 보이질 않는다. 아마 매머드 고기일 것이다. 이 고기는 선사시대부터 시베리아의 빙하 속에 간직되어 있었고, 그곳 사람들은 이 고기를 녹여 양념을 한 다음에 음식으로 사용했다. 대사관에서 보여준 지겹기 짝이 없는 이 기록 영화는 과도할 정도로 이 동물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었는데, 이 고기를 먹는데 전념하던 시대에 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다. 그게 수년 전이었던가 아니면 수개월 전이었던가...... 내가 마음대로 기억할 수 있는 기간은 기껏해야......

     종달새일까? 아니면 나이팅게일일까? 아니다. 우리의 시간은 로미오와 줄리엣에게 여명이 밝아올 시간을 알려주는 날개 달린 창조물에 지배되는 것이 아니라, 정확한 시간에 시끄럽게 울리는 자명종에 의해 다스려진다. 그리고 날이 밝으면 당신은 세가닥으로 꼰 내 머리칼의 사다리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사소한 불평의 길을 통해 내려온다. 가령, 겉옷은 단추 하나가 떨어져 있고, 빵은 탔으며, 커피는 식어 있다는 등의 불평을 하면서.

     나는 마음속으로 내 분노를 삼킬 것이다. 나는 식모처럼 집안의 모든 일을 할 의무가 있다. 나는 이 집을 먼지 하나 없이 깨끗이 청소할 것이며, 빨래도 할 것이고, 한번도 빠짐없이 식사도 준비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한푼도 받지 못하고, 일주일에 한번씩 휴일도 없으며, 주인을 바꿀 수도 없다. 나는 집안 일에 온 정성을 쏟아야 하며, 가장이 요구하고 동료들은 음모하고, 부하들은 증오할 일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것이다. 시간이 나면, 나는 남편 친구들에게 점심과 저녁 식사를 대접하는 사교계 인사로 탈바꿈할 것이고, 모임에도 참석할 것이며, 오페라 입장권을 예약할 것이고, 몸매에도 신경 쓰며, 옷도 계속 바꿀 것이고, 피부에도 신경 쓸 것이며, 내 매력을 유지하도록 신경을 쓸 것이고, 농담도 멋지게 할 것이며, 밤늦게 자서 아침 일찍 일어날 것이고, 매달마다 임신의 위험을 무릅쓸 것이며, 간부들과의 저녁 모임이 있다는 말과 뜻하지 않은 손님이 왔다는 남편 말을 믿을 것이다. 또한 남편의 와이셔츠나 손수건에서 내가 사용하는 것과 다른 프랑스 향수 냄새가 나면 온갖 망상에 시달릴 것이고, 남편이 없는 외로운 밤에는 내가 무엇 때문에 괴로워하는지 생각하지 않고, 진한 술을 준비해서 마실 것이며, 술기운으로 기분을 되찾아 탐정소설을 읽을 것이다.

     가스렌즈의 불을 켤 시간이 아닐까? 고기가 서서히 구워질 수 있도록 약한 불로 조금씩 프라이팬을 데운다. 요리책에는 〈사전에 약간의 고기 기름을 프라이팬에 발라야만 한다. 그래야 고기가 프라이팬에 달라붙지 않는다〉라고 적혀 있다. 이런 것은 나 같은 사람조차도 아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나는 요리책에서 이런 권고 사항을 읽는데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나는 아주 바보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것을 ‘멍청하다’고 말한다. 예전에는 그런 것이 순진함이었고 당신은 그런 나를 몹시도 좋아했다. 그러나 나는 그런 것을 좋아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처녀 시절에 나는 남몰래 숨어서 읽은 것들이 있었다. 흥분되면서도 창피한 마음으로 땀을 흘리며 읽곤 했다. 하지만 하나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 것을 읽을 때면 관자놀이가 고동쳤으며, 눈앞이 아른거렸고, 구역질 날 것 같은 경련을 느끼면서 내 허벅지 근육이 수축하곤 했다.

     이제 기름이 끓기 시작한다. 손이 헤픈 나머지 기름을 너무 많이 부었다. 그래서 이제는 기름이 탁탁거리며 튀어 올라 내 손에 화상을 입힌다. 이렇게 나는 내 죄 때문에, 내 커다란 죄 때문에 불타는 지옥에서 타버릴 것이다. 하지만 너만이 그런 여자는 아니다. 당신의 모든 학교 친구들도 모두 당신과 똑같이 했거나, 아니면 더 나쁜 죄를 범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는 고백실에서 그 죄를 고백하고 뉘우치고서 용서받은 후, 다시 그런 죄에 빠져들곤 했다. 모든 친구들이 그랬었다. 만일 내가 계속해서 그녀들과 만났더라면, 모두 나를 심문하려 들었을 것이다. 기혼녀들은 자신들만 그랬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안심하기 위해 그랬을 것이고, 처녀들은 어디까지 모험을 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꼬치꼬치 캐물었을 것이다. 내가 그런 그녀들을 실망시킬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재주넘기를 하거나 아주 멋진 속임수를 부리거나 인내에 관한 인류 최고의 기록이라는 〈아라비안 나이트〉에서 말한 ‘황홀경’에 관한 이야기를 꾸며댔을 것이다. 카사노바여, 만일 그대가 내 이야기를 들었더라면, 그대는 내가 누군지 알아보지 못했으리라.

     나는 고기를 프라이팬에 던져 놓고는 나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벽쪽으로 물러난다. 너무나 요란한 소리가 난다. 하지만 마침내 그 소리는 멈추었다. 고기는 시체의 속성을 버리지 못한 채 조용히 프라이팬 속에 있다. 나는 아직도 그 고깃덩이가 너무 크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당신이 내 희망을 저버린 것이 아니에요. 나는 특별히 바라던 것이 없었어요. 이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에요. 점차로 우리는 서로 알게 될 것이고, 우리의 비밀과 우리의 조그만 속임수를 발견하게 될 것이고, 서로를 즐겁게 해주는 법을 익혀 나갈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어느 날 당신과 나는 완벽한 한 쌍의 연인이 될 것이며, 그러면 우리가 서로 포옹하는 가운데 우리의 모습이 사라지면서 화면에는 ‘끝’이라는 말이 모습을 드러낼 거예요.

     그런데 도대체 무슨 일일까? 고기는 움츠러들면서 작아지고 있다. 아니, 이건 꿈이 아니다. 이건 내가 잘못 본 것이 아니다. 프라이팬에 그려진 주위색으로 고기 본래의 크기를 그대로 볼 수 있다. 이 고기는 지금보다 조금 더 컸었다. 정말 잘된 일이야! 제발 우리 식욕에 맞는 크기대로 적당히 되었으면......

     다음 번 영화에서 나는 다른 배역을 맡고 싶다. 그게 원시 마을에 사는 백인 마녀일까? 아니다. 오늘 나는 영웅이나 위험에 처한 인물이 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오히려 뉴욕이나 파리, 혹은 런던의 아파트에서 혼자 부유하게 사는 유명한 여자 (가령 패션 디자이너나 그와 유사한 것)가 되고 싶다. 그녀가 종종 즐기는 정사는 그녀를 기분 좋게 하지만, 그녀의 신분을 변화시키지는 않는다. 그녀는 감정에 사로잡히는 사람이 아니다. 잠시 갑자기 장면이 바뀌어 그녀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자기 스튜디오의 커다란 창문을 통해 도시의 풍경을 바라본다.

     아, 이제 고기 색깔은 보다 점잖은 색을 띠고 있다. 단지 몇몇 끝부분만이 아직 설익었다는 것을 일깨워줄 따름이다. 그러나 나머지 부분은 노릿노릿하게 익었으며, 먹음직한 냄새를 풍기고 있다. 그런데 이 고기가 두 사람이 먹기에 충분할까? 이제는 이 고기가 너무 작아진 것 같다.

     지금 당장 내가 치장하고 내 옷장에서 모델들이 입는 옷을 입고서 길거리로 나간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최고의 일은 내가 아마도 돈 많고 멋진 자동차를 탄 나이가 지긋한 중년 남자에게 접근하는 일일 것이다. 나이 지긋한 중년 남자. 그리고 돈 많은 남자. 이 시간에 거리를 배회하는 유일한 사람은 ‘사냥’하기 위해 방황하는 남자밖에 없을 것이다.

    젠장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일까? 이 빌어먹을 고기는 이제 보기 흉한 검은 연기를 내뿜기 시작하고 있다. 내가 뒤집었어야 했는데! 한쪽 면이 새카맣게 타 있었다. 그나마 다행스런 것은 고기가 한 면이 아닌 두 면이 있다는 것이다.

     아가씨, 내가 보기에는....... 아가씨가 아니라 아줌마예요! 우리 남편은 질투심이 매우 많은 사람이라고 당신에게 말했잖아요....... 그래서 나를 혼자 다니게 놔두지 않아요. 당신은 모든 ‘통행인’이 유혹을 느끼게 만드는 사람입니다. 이 지구상의 그 누구도 통행인이라는 말은 쓰지 않아요. 혹시 보행자가 아닌가요? 그건 단지 신문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사람을 일컬을 때만 쓰는 말입니다. 당신은 어떤 X도 강한 유혹을 받게 하는 여자예요. 쉿! 그건 매우 의-미-깊-은 말이에요. 당신은 스핑크스 같은 시선을 갖고 있어요. 그런데 나이 먹은 남자가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나를 뒤쫓아오고 있어요. 그게 그 남자에게는 훨씬 낫지요. 왜냐하면 길모퉁이에...... 젠장! 판사님, 우리 남편은 나를 몰래 감시하고 있고, 내가 햇빛이나 그늘에 나가도록 허락하지도 않아요. 그리고 모든 것을 의심해요. 정말 모든 걸 말이에요. 이런 식으로 살 수는 없어요. 그래서 나는 이혼하길 원해요.

     그런데 지금 고기는 어떻게 되었을까? 어머니는 내가 고기조각에 불과하다고 가르치지 않았으며, 품행 바르게 처신해야 한다고 가르치지도 않았다. 고기는 다 타버린 땔감처럼 몸을 비틀고 있다. 이것 이외에도 나는 이미 오래 전에 가스불을 껐는데, 도대체 어디서 그토록 많은 연기가 계속해서 뿜어 나오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물론 이것은 마음의 연기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창문을 열고 환풍기를 틀어서 남편이 돌아올 때 아무 냄새도 맡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숭을 떨면서 가장 멋진 옷을 입고 최고의 미소를 지은 채, 문에서 남편을 맞이하고 외식을 하자며 속마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제 그건 하나의 가능성이다. 우리들은 식당의 메뉴판을 꼼꼼히 살펴볼 것이다. 그러는 동안 보잘 것 없는 재가 되어버린 고기 덩이는 쓰레기통 안에 아무도 모르게 숨어 있을 것이다. 나는 이런 사건을 말하지 않으려고 무척 조심하면서도 마구 떠들 것이다. 그러면 남편은 나를 경박스럽고 무책임한 아내로 간주할 것이지만 바보 같은 저능아로 여기지는 않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겨냥할 첫 번째 이미지이다. 물론 이것이 내가 원하는 정확한 이미지는 아니지만, 나는 후에 이런 이미지를 꾸준히 지켜나가도록 노력할 것이다.

     또 다른 가능성이 있다. 창문을 열지 않고, 환풍기를 틀지 않고, 고기를 쓰레기통에 던져버리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남편이 오면 동화 속의 식인괴물처럼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도록 한다. 그러면서 나는 여기에는 인간의 고기 냄새가 나는 것이 아니라 쓸모 없는 여자의 냄새가 나는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내 실수를 과장하며 떠들 것이고, 그렇게 해서 그가 관대한 아량을 베풀도록 부추길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은 너무나 평범한 것이 아닌가! 방금 내게 일어난 일은 갓 결혼한 모든 여자에게 일어나는 일이 아닌가! 우리가 시어머니를 방문하러 가면, 그녀는 자기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해 줄 것이다. 그녀는 어떤 것이 내 약점인줄 모르기 때문에 아직 나를 공격할 단계가 아니다. 가령 자기 남편이 튀긴 계란 두 개(속어로 ‘계란’은 여자의 유방을 뜻한다. ‘튀긴 계란을 달라’는 것은 사랑하자는 말이다)를 달라고 했는데, 그녀는 이 말을 문자 그대로 받아 들여서...... 하, 하, 하. 바로 이런 이유로 환상적인 과부, 그러니까 멋진 요리사가 되지 못했던 것일까? 하지만 과부가 된 것은 한참 후의 일이고, 그것도 다른 이유로 발생한 것이다. 과부가 된 순간부터 그녀는 자신의 모성적 본능에 따라 아이들 응석을 받아주기 시작했던 것이고......

     아니다. 그는 전혀 이런 일을 재미있게 생각할 사람이 아니다. 그는 내가 정신을 딴 데 팔았으며 부주의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면 나는 용서를 빌면서 그의 비난을 묵묵히 받아들일 것이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나는 고기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계속해서 이상하기 그지없는 일련의 사건들이 고깃덩이에 일어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런 점에서 성녀 테레사가 하느님은 냄비 안에 걸어다니고 있다는 말을 일리가 있는 것 같다. 현재 우리가 말하는 대로하자면, 물체는 에너지라는 등식이 성립하는 것이다.

     다시 한 번 정리해 보자. 우선 고기는 특정한 형태와 특정한 색과 특정한 크기를 지니고 있었다. 그런 다음 변하더니 더 예쁜 모습을 띠었고, 그러자 나는 몹시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나서 다시 변하기 시작하더니 더 이상 예쁜 모습을 띠지 않게 되었다. 이렇게 계속해서 변하고 또 변하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 그 고기가 변화를 멈출 지 제대도 알 수가 없다. 만일 내가 이 고깃덩이를 무한정으로 불에 올려놓는다면, 이 고기는 고기라는 흔적이 하나도 남지 않을 때까지 타버릴 것이다. 그리고 굳은 모양이자 실제로 존재하고 있는 것과 같은 인상을 풍기던 고깃덩이는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게 어쨌다는 것인가? 우리가 함께 있고, 내가 그를 만지고 그를 쳐다볼 때, 내 남편 역시 강하고 현실적인 인상을 풍긴다. 하지만 분명히 그는 바뀔 것이다. 그리고 나도 바뀔 것이다. 비록 그런 변화가 두 사람 모두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천천히 느리게 진행될지라도...... 그러면 그는 떠날 것이고, 불현듯 그는 기억 속의 인물로 변할 것이고....... 아, 안돼, 안돼! 난 절대로 이런 함정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즉, 내가 고안해 낸 작중 인물과 내가 꾸며낸 화자와 내가 만들어낸 이야기의 함정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이런 생각은 고깃덩이의 이야기에서 파생된 것이 아니다.

     고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것은 단지 일련의 변형 과정을 겪었을 뿐이다. 우리 눈으로 볼 수 없고 우리 코로 냄새 맡을 수 없다고 해서 일련의 변화가 마무리 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질적인 도약을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런 변화는 계속해서 다른 차원에서 이루어 질 것이다. 내 의식의 차원과 내 기억의 차원, 또한 내 의지의 차원에서 그것은 나를 변형시키고, 내 마음을 결정지으며, 내 미래의 향방을 규정할 것이다.

     오늘 이후 나는 바로 이 순간에 결정한 대로 살아 나갈 것이다. 나는 매력적인 멍청이가 될 것이며, 새침장이가 될 것이고, 위선적인 여자가 될 것이다. 약간 주제 넘는 짓일지는 몰라도 이제부터 나는 이런 게임의 법칙을 따를 것이다. 내 남편은 마치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지면 파문이 서서히 커지듯이 점차로 내 손아귀에 들어오게 될 것이고, 그런 사실을 깨닫는 순간 남편은 분개할 것이다. 그러면 그는 나를 장악하려고 몸부림 칠 것이다. 만일 내가 그에게 양보해야 한다면, 나는 그를 경멸스럽게 대할 것이다. 그리고 만일 양보할 필요가 없다면, 나는 그를 용서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만일 내가 또 다른 행동을 한다면, 그러니까 내가 저지른 실수를 용서해달라고 비는 전형적인 여성처럼 행동한다면, 내 상대자에게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또한 나는 여성이라는 핸디캡과 싸울 것이다. 여자가 요리를 해야만 한다는 것은 겉으로 보기에 패배로 운명지어진 것이지만, 실질적으로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는 승리를 보장한다. 이것이 바로 보잘 것 없는 우리 조상들이 택했던 길이다. 그녀들은 동의한다는 말 이외에는 입을 열지 않았지만, 결국 남편들이 여자들의 가장 비합리적인 변덕에도 복종하도록 했던 것이다. 요리법은 오래된 것이고, 따라서 이미 그 효과는 검증된 것이다. 만일 내가 아직도 그것을 의심하고 있다면, 가장 가까운 이웃집 여자들에게 물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녀들은 이런 내 확신이 틀림없다는 사실을 확인해 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이렇게까지 행동해야만 한다는 사실은 정말로 역겹기 그지없다. 이런 말들은 현재의 나뿐만 아니라, 예전의 나에게도 적용될 수 없다. 그 어떤 것도 나의 내면의 진실에 해당하지 않으며 내 진정한 마음을 지켜주는 것도 아니다.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서, 이것이 대다수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일반적인 것이며 모든 사람들이 분명하다고 확신하고 있는 것이라는 이유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일까? 이렇게 묻는 건 내가 ‘이상한 동물’이기 때문은 아니다. 물론 나에 관해서는 판들(Phandl)이 소르 후아나 수녀에게 말했던 것을 그대로 적용시킬 수 있다. 즉, 신중한 신경쇠약자의 부류에 속한다고 말이다. 사실 이렇게 진단하는 것은 매우 쉽지만, 이런 주장을 받아들이면 어떤 결과가 생길까?

     만일 내가 오늘 일어난 사건들을 고집스럽게 이야기한다면, 남편은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볼 것이고, 나와 함께 있는 것을 거북스럽게 느낄 것이다. 그리고 나를 미친년 취급할지도 모른다는 계속되는 불안감 속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남편이 나와 함께 산다는 것은 이제 더 이상 문제가 될 수 없다. 그는 어떤 종류의 문제도 원치 않는다. 내가 제시하게 될 추상적이거나 불합리한 문제는 더욱이 원치 않는다. 그가 원하는 가정은 인생의 폭풍에서 빠져 나와 편안한 안식처가 될 수 있는 잔잔한 호수이다. 나는 그런 것에 동의한다. 그래서 나는 그의 청혼을 수락했으며, 부부관계의 조화를 위해 내 자신을 희생할 각오까지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 자신을 완전히 포기하고 희생하는 것은 고상한 경우나 커다란 결정을 하는 순간, 혹은 결정적인 순간에만 필요하다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우스꽝스럽기 그지없는 이런 무의미한 것이 일어난 오늘 같은 날 해야 할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아직은......◇